판소리를 始作한 初等學校 3學年 때부터 힘든 法을 몰랐다. 高等學校 3學年 때 ‘沈淸歌’를 4時間 完唱해도 힘들지 않았기에 ‘春香歌’ 8時間 完唱에 挑戰했다. 스무 살 되던 해, 最年少 나이에 最長時間 春香歌 完唱에 成功하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 後 1年 동안 極甚한 苦痛에 시달렸다. 온 몸에 기운이 빠져 階段 한 칸 오르기 힘들었고, 每日 병든 닭처럼 졸았다. 20代 後半엔 獨逸 劇作家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戱曲 ‘泗川의 선인’과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을 各各 再解釋한 創作 판소리 ‘泗川가’와 ‘억척가’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프랑스, 濠洲, 美國, 브라질, 루마니아 等 世界 巡廻公演을 다녔다. 하지만 泗川價와 억척價를 다시는 부르지 않기로 決心하고 2017年 突然 潛跡, 2019年 말까지 舞臺를 떠났다. 그女의 삶은 마치 한 篇의 映畫 같다. 燦爛함과 苦痛이 그의 삶에 왔다 떠나기를 反復한다. 20日 서울 永登浦區 카페에서 만난 소리꾼이자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 利子람(43) 이야기다. 利子람은 喜劇과 悲劇이 交叉했던 삶을 담은 에세이集 ‘오늘도 자람’(창비)을 15日 펴냈다. “2020年 初부터 블로그에 ‘이득봉’이란 筆名으로 글을 쓰기 始作했는데, 그 글을 보고 出版社에서 連絡이 왔어요. 저에게 10年 前에도 冊을 내라고 連絡했던 編輯者님이셨어요. 10年 前엔 準備가 안 된 것 같아 抛棄했는데 이番엔 機會를 잡았죠.” 利子람 前에도 創作 판소리는 있었지만 泗川價와 억척歌처럼 大衆的 人氣를 끈 作品은 드물었다. 2007年 超然한 泗川가는 泗川에 사는 뚱뚱하지만 착한 ‘순덕’李 外貌至上主義, 物質萬能主義와 싸우며 成長하는 이야기다. 2011年 超然한 억척가는 魏, 蜀, 오 三國時代에 戰爭을 겪으며 억척같이 살아간 女人의 人生을 다룬다. 海外에서의 反應은 暴發的이었다. 유럽 觀衆들은 브레히트의 戱曲이 韓國 傳統藝術로 遁甲해, 한 사람이 數十餘 名의 登場人物, 甚至於 戰爭터 銃聲소리까지 演技해내는 場面에 衝擊을 받았다. 브라질 상파울루 劇場 프로듀서는 公演 直後 舞臺로 뛰어 올라와 엎드려서 이자림의 구두에 입을 맞췄다. 美國 시카고 泗川가 公演 中 한 女性이 벌떡 일어나 울면서 ‘브라보’를 외치기도 했다. “파리에서 첫 泗川가 公演을 했을 때에요. 프랑스 有名 演劇俳優가 幕이 내린 뒤에 절 찾아왔어요. ‘本人이 마리오네트가 되기도, 마리오네트에서 빠져나와 마리오네트를 調整하는 사람이 되더라. 이런 樣式으로 브레이트 作品을 再解釋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鉏獅子와 登場人物을 同時에 演技하는 판소리의 스토리 텔링 養殖에 衝擊을 받은 거죠,” 冊은 藝術家가 舞臺 위 魂을 쏟아 붓기 위해 徹底히 그 負擔을 홀로 짊어진 孤獨에 對한 記錄이기도 하다. 利子람은 數百 番의 舞臺를 거치며 ‘소리앓이’를 겪는다. 온몸의 筋肉과 에너지를 使用해 소리를 내는 過程에서 身體的 以上이 찾아온 것. 利子람은 自身의 목소리로 인해 오른쪽 聽力이 消失됐고, 舞臺에서 노래하다 허리가 삐祈禱 했다. 루마니아 한 公演에선 舞臺 위에서 心臟이 죄어들어오고 숨이 막힌 적도 있었다. 2017年 突然 舞臺를 떠나면서 泗川價와 억척價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소리앓이 때문이었다. 그는 冊에 이렇게 썼다. ‘이런 藝術이 만들어져도 되는 거였을까.’ “억척가는 2時間 40分 동안 戰爭터의 軍人과 將軍들, 그리고 子女 셋을 잃은 어머니까지 몰아치는 장단 위에 쉼없이 音域을 바꿔가며 演技해야 했어요. 억척가 舞臺에 서기 前엔 늘 不安했어요. 舞臺 위에서 죽을 것 같은 感覺으로 繼續 노래하는 것이 옳은가에 對한 懷疑感이 찾아왔죠.” 利子람은 2017年부터 2019年 11月 ‘老人과 바다’의 첫 舞臺에 서기 前까지 2年 11個月 동안 겨울잠을 자며 쉼 없이 달려온 自身을 돌아봤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목소리의 源泉이 어디에 있으며, 그 목소리가 가닿는 곳이 어딘지”를 想像하는 ‘想像力 訓鍊’을 했다. 5km 밖 南山타워까지 목소리를 傳達하고 싶은가, 10m 앞 사람에게 傳達하고 싶은가에 따라 소리의 길이를 調節하는 練習이었다. 그는 如前히 苦悶한다. ‘죄다 늘어놓지 않아도 멋있을 수 있는 美德은 더 철이 들어야 생기는 걸까.’ “소리앓이를 겪으면서 나의 傲慢을 다루기 始作했어요. 젊었을 땐 ‘내 소리 대단하지?’라며 無條件 내지르기만 했는데 긴 時間 舞臺 위에서 혼자 數百 名의 觀客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내 體力的 限界點을 正確히 알고 에너지를 分配하는 게 더 重要하다는 걸 알게 됐죠. 소리꾼에서 直接 판소리를 만드는 작창가, 밴드 보컬, 에세이 作家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利子람은 映畫를 만드는 게 다음 꿈이다. 판소리의 偉大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판소리를 하는 小市民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단다. ”萬若 當身이 그 映畫의 主人公이라면 클라이막스 場面은 무엇일까요?“ 記者의 質問에 利子람은 한참을 苦悶하다 이렇게 答했다. ”클라이막스는 모르겠지만 映畫의 엔딩神은 알겠어요. 舞臺를 마친 소리꾼이 扮裝室로 돌아와 韓服을 벗고 추리닝으로 갈아 입은 뒤, 바나나를 입고 물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모습. 그게 映畫의 끝이었으면 좋겠어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