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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記者 購讀|東亞日報
김재희

김재희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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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業界를 取材하는 放送·映畫 擔當 記者입니다.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더 재밌는 記事 안에 담겠습니다.

jetti@donga.com

取材分野

2024-03-29~2024-04-28
文化 一般 55%
人物/CEO 7%
産業 3%
檢察-法院判決 3%
패션 3%
音樂 3%
社會一般 3%
人事一般 3%
기타 20%
  • [冊의 香氣]‘피카소의 뮤즈’가 아닌, 불꽃 같은 藝術家를 만나다

    스페인 畫家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女性遍歷으로 有名하다. 그와 公式的인 戀人關係였던 女性만 7名. 그中 有名한 이는 1936年부터 1945年까지 9年間 피카소와 함께했던 도라 마르(1907∼1997)다. 戀人의 肖像畫도 多數 그렸던 피카소는 마르를 뮤즈 삼아 ‘우는 女人’(1937年)이라는 有名한 作品도 남겼다. 마르는 當時 패션과 廣告寫眞으로 이름을 알린 寫眞作家였고, 다양한 그림을 남긴 畫家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作家’보단 ‘피카소의 戀人’으로 더 有名해졌다. 저널리스트인 著者는 熱情과 狂氣, 空虛함으로 點綴됐던 마르의 삶과 藝術家로서의 面貌를 再照明한다. 著者가 마르의 발자취를 追跡하게 된 契機는 한 卷의 다이어리였다. 男便이 아끼던 에르메스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著者는 이와 가장 비슷한 中古 製品을 이베이에서 注文했다. 配送된 다이어리 안주머니에 샤갈, 라캉, 자코메티 等 藝術家들의 住所錄 手帖이 끼워져 있었던 것. 이 手帖이 마르의 것임을 確信한 著者는 2年 동안 手帖에 적힌 이름과 關聯된 資料, 記事를 뒤졌고 生存 人物을 直接 찾아다녔다. 冊은 마르가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藝術家로 인정받고자 努力한 過程을 따라간다. 마르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스페인과 英國의 가난한 洞네를 다니며 失業者, 畸形의 몸을 가진 사람 等 社會 邊두리로 밀려난 이들을 寫眞으로 남겼다. 超現實主義 寫眞作家로 評價받는 그의 代表作 ‘無題’(1933年)는 巨大한 소라에서 매니큐어를 漆한 손이 뻗어 나오는 모습을 담았다. 夢幻的이고 奇異한 마르의 몽타주 作品들 亦是 實驗性과 斬新함 側面에서 높은 評價를 받는다. 藝術家로서의 面貌뿐만 아니라 사랑을 渴求했던 한 女子로서의 삶도 그려진다. 피카소를 비롯한 戀人들과의 關係에서 마르는 늘 感情에 率直했고 積極的이었다. 때때로 內面에서 끓어오르는 熱情은 狂氣로 表出되기도 했다. 그가 피카소와 만나기 前 戀愛했던 프랑스 시나리오 作家 루이 샤방스가 마르에 對해 남긴 詩는 불같은 마르의 性格을 推測하게 한다. ‘그대 이제 흔들리는구나. 神經質 가득한 미친 女人…내가 바친 사랑의 代價로 내 배를 걷어찼지.’ 처음 피카소와 만난 카페 되 마고에서 마르는 피카소의 視線을 끌기 위해 손가락 사이로 칼을 내리꽂았고, 마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피카소는 그를 카페에 데려온 詩人 폴 엘뤼아르에게 이렇게 묻는다. “저 異常한 女子를 압니까?” 有名 藝術家의 삶에는 늘 靈感의 源泉이 되는 뮤즈가 存在했다. 近代조각의 時調 오귀스트 로댕의 戀人이었던 카미유 클로델, 象徵主義 畫家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아내였던 에밀리 플뢰게가 代表的이다. 클로델은 精神病院에서 生을 마감한 悲運의 뮤즈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각에 天才的 才能을 드러냈던 彫刻家였다. 플뢰게 亦是 바람둥이 클림트가 唯一하게 平生 사랑했던 女性으로 有名할 뿐, 오스트리아 有名 패션디자이너로 活躍했다는 事實은 別로 알려져 있지 않다. 마르의 삶은 누군가의 뮤즈이기 以前에 한 名의 藝術家로서 創作에 渾身의 努力을 다하고 사랑에 늘 率直했던 한 主體的인 女性이 있음을 몸소 證明한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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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조카 잃은 後 1000日 하고도 68日…如前히 惡夢의 웅덩이

    [안인득 放火殺人, 그 後 1068日의 記錄]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訪問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效果가 結合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形式으로 금세은 氏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하루에 먹어야 하는 藥이 또 늘었다. 금세은 氏(43)는 每日 10가지의 神經精神科 藥 22알을 服用하고 있다. 追加된 藥은 抗憂鬱劑 0.5알과 不安, 痙攣을 緩和하는 藥 3알. 이제 하루에 알藥 26個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月 30日 慶南 진주시 경상국립대病院 神經精神科 診療室에서 稅銀 氏는 主治醫 金奉祚 敎授와 마주 앉은 채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年 11月 外傷後스트레스障礙(PTSD)와 憂鬱症 診斷을 받은 지 2年 4個月. 알藥 2萬 個가 그의 몸 안에 쌓였다. 아무리 藥을 먹어도 ‘그날’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친다. 藥은 順序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全身 떨림, 頭痛, 呼吸困難, 不眠症을 暫時 멎게 하는 臨時方便일 뿐이다. “不眠症 때문에 神經質的으로 變해서 藥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세은 氏) “肉體的이든 精神的이든 괴로우니 그렇지. 근데 藥 한꺼번에 먹으면 絶對 안 돼요.”(김봉조 敎授) 稅銀 氏는 오늘도 속 시원한 解決策을 듣지 못했다. 診療室을 나온 그는 病院 1層 藥局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멍한 눈으로 藥師로부터 A4 用紙 네 張에 達하는 服藥指導서와, 藥 封套가 가득 담긴 검은色 비닐封紙를 받아 들었다.악몽 같은 3年… “안인득 放置한 國家,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 10分 만에 달라진 삶1000日 하고도 68日 前, 2019年 4月 17日 全義 稅銀 氏는 全혀 다른 사람이었다. 齒衛生學科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始作한 齒衛生士 일이 잘 맞았다. 患者 相談까지 도맡았다. “예전엔 사람 만나는 데 對한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는데, 只今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어.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3男妹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어머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便히 사는 게 稅銀 氏 所願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마흔 살까지 한瞬間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癌 鬪病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갚아가고 있었다. 每日 알藥 26알로 버티는 生存者빗물만 봐도 ‘그날 핏물’ 트라우마… 20年 일했던 齒衛生士 結局 관둬“숨져가던 엄마 모습 아직도 생생” “家族 위해서 苦生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親舊들하고 놀러 다니고 좋은 옷 입고 便하게 살길 바랐지. ‘엄마, 이제 (通帳) 플러스 된다. 쪼매만 기다려라’ 했는데….” 自稱 ‘일벌레’이자 孝女였던 稅銀 氏는 2019年 4月 17日, 180度 다른 사람이 됐다. 그날 午前 4時 25分, 慶南 진주시 A아파트 303棟. 調絃病을 앓던 이 아파트 406號 住民 안인득(45)은 自身의 집에 불을 지르고 미리 準備한 凶器를 待避하는 住民들에게 휘둘렀다. 火災警報音에 잠에서 깨 非夢似夢으로 階段을 내려가던 住民들은 無防備 狀態였다. 고작 10分 만에 5名이 숨지고 17名이 다쳤다. 숨진 5名 中 2名은 稅銀 氏의 家族이었다. 그는 不過 10分 사이 어머니 金某 氏(當時 65歲)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禁止尹(假名·當時 12歲) 羊을 잃었다. 稅銀 氏는 晋州 放火·殺人事件의 生存者이자 遺家族이다.○ 웅덩이에 빠진 날세은 氏는 3年이 훌쩍 지난 只今도 事件 當日을 생생히 記憶한다. 어머니와 麥酒 한 盞을 하고 午前 3時쯤 잠에 든 稅銀 氏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騷亂에 눈을 떴다. “살려주세요!” 올케 車某 氏(44)의 悲鳴이 들렸다. 稅銀 氏 오빠 금민수(假名·47) 氏 夫婦와 딸 지윤 讓渡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놀란 어머니가 複道로 뛰쳐나갔다. 5分 程度가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稅銀 氏도 일어나 玄關으로 나갔다. 玄關門을 열자 뿌연 煙氣가 複道에 가득했다. 複道를 지나 防火門을 열자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警備員이 “手巾 달라”고 외쳤다. 精神없이 집으로 돌아가 手巾을 챙겨 玄關門을 다시 열자 바로 앞에 올케 茶 氏가 서 있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申告해야 된다!” 茶 氏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保護하다 옆구리를 凶器로 찔린 狀態였다. 稅銀 氏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只今 아파트가 피바다예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빨리 와주세요!” 非常階段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住民들을 지나 1層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어머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어머니도 孫女 지윤이를 지키려다 負傷을 입었다. “엄마 止血을 (消防隊員이) 저보고 도와 달랬어요.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止血을 하는데 止血이 안 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야….○ 빗물은 핏물이 됐다 稅銀 氏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민수 氏네 家族은 비 오는 날엔 늘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事件 以後 비 오는 날은 稅銀 氏에게 恐怖가 됐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어느 날 나가려고 玄關門을 열었는데 비가 와서 門 앞에 물이 가득한 거라. 그걸 보는 瞬間 그날 複道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지.” 피에 對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年間 했던 齒衛生士 일도 그만둬야 했다. 患者들을 治療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딸을 잃은 오빠 민수 氏의 삶도 如前히 2019年 4月 17日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민수 氏와 같은 通路에 살았다. 事件 當日, 門틈을 넘어오는 매캐한 煙氣에 잠에서 깬 민수 氏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그러곤 옆집 門을 두드려 이웃들을 깨웠다. 이웃들을 뒤따라 내려가던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딸과 어머니를 마주해야 했다.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딸)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演技 빼고 불났다고 門 두드리고…. 그게 第一 큰 失手라. 내가 미친놈이지.”○ 怨望할 수 없는 이유민수 氏가 唯獨 事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理由가 있다. 민수 氏는 안인득의 兄과 高等學校 親舊였다. 민수 氏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親舊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亦是 처음에는 平凡한 이웃 아저씨였다. “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菓子를 褓따리로 사주고 한 놈이라. 調絃病人 줄도 몰랐지.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근데 病이 심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본 기라.” 藥도 먹지 않고 入院도 拒否하며 안인득의 狀態는 漸漸 나빠지기 始作했다. 事件 數個月 前부터 住民들을 向해 暴言을 하고 汚物을 던졌다. “모두가 被害者” 國家에 損賠訴訟안인득 兄, 동생 入院爲해 百方努力… 檢-警-洞事務所 모두 責任 떠넘겨“조현병 患者가 왜 밉노?… 放置돼 있었던기 잘못이지” 事件 約 한 달 前, 안인득은 凶器를 使用한 暴行事件을 일으켜 警察에 立件됐다. 동생을 걱정한 안인득의 兄은 警察署에 電話를 해 “調絃病 患者인 동생을 强制입원시킬 方法이 없느냐”고 물었다. 警察은 “事件을 檢察에 넘겼으니 檢事에게 問議하라”고 했다. 檢察廳 民願室에선 法律救助公團을 찾아가라고 勸했다. 法律救助公團은 “洞事務所나 市廳으로 가라”고 했다. 洞事務所는 “强制入院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조현병 患者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려 四方八方으로 뛰었던 그의 兄이자 自身의 親舊. 민수 氏는 딸과 어머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怨望할 수 없었다. ○ 國家에 責任을 묻다 事件 뒤 어려워진 生計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事件에 對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事實이었다. 慶南地方警察廳 眞相調査팀이 調査를 벌여 警察 措置가 未洽했다고 認定했지만 關聯 警察 5名을 輕懲戒하고 2名을 警告 處分하는 데 그쳤다. 갈 곳 없는 憤怒와 怨望은 스스로를 向했다. 不眠症과 不安 症勢로 藥을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술에 期待 하루하루를 보냈다.민수, 稅銀 氏 男妹가 日常을 잃은 채 살아가던 2020年 봄, 電話 한 通이 왔다. 大韓神經精神學會였다. 調絃病 患者의 强力犯罪事件이 每年 反復되면서 學會는 關聯 法 改正에 나선 狀態였다. 學會는 重症精神疾患者는 國家가 直接 管理해야 한다고 說明했다. 法 改正을 위해 國家 對象 損害賠償 訴訟에 나서 달라고 했다. 訴訟을 위해 다시 事件을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男妹는 마음을 다잡았다. 家族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調絃病 患者가 왜 밉노? 그 사람들도 아픈 사람이다. 放置돼 있었던기 잘못이지. 藥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犯罪者가 되고, 그 사람 家族까지 罪人이 되는 기고. 안인득度, 안인득 兄도 被害者다.”(민수 氏) 稅銀 氏와 민수 氏 家族은 지난해 11月 8月 大韓民國을 被告로 한 損害賠償請求訴狀을 行政法院에 提出했다. “조금 괜찮아져서 訴訟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민수 氏가 答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訴訟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抑鬱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 눈물의 웅덩이가 마를 때까地勢은 氏는 每年 秋夕, 설날마다 事件이 發生한 아파트를 찾는다.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月, 所長 提出 直後 아파트를 찾은 稅銀 氏는 아파트 正門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視線은 事件이 났던 303棟을 向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검정 벙거지 帽子를 푹 눌러 쓴 채 稅銀 氏는 한참 떨어진 309洞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303棟을 바라보던 그는 携帶電話를 꺼내 한참 동안 寫眞을 쳐다봤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寫眞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入口에 쓰러져 있던 寫眞은 없어.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 記憶하게….” 오늘도 稅銀 氏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는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68日分의 苦痛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 ‘保護者 없는 精神疾患者’ 管理 死角地帶… “國家責任制 必要” 入院 拒否者 警察 護送 쉽지않고, 家族없는 1人家口는 더 어려워인권단체 “制度 改善 必要性 認定… 人權 살피고 豫防 治療도 힘써야” 금민수(假名), 금세은 氏 家族은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통해 警察이 法에 明示된 精神疾患者 對應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犯罪가 發生했고, 그로 인해 被害를 입었다고 主張하고 있다. 1次 公判 忌日은 4月 21日로 約 한 달을 남겨두고 있다. 精神健康福祉法에는 自身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危險이 큰 精神疾患者를 本人 意思에 反해 입원시키는 ‘비(非)字의 入院’ 制度가 規定돼 있다. 하지만 金 氏 家族과 大韓神經精神學會 等 關聯 團體들은 이런 制度가 有名無實하다고 指摘한다. 안인득은 △他人에게 威脅을 加한 前歷이 있고 △暴行, 辱說 等 攻擊的 性向이 持續된 境遇로 비자의 入院을 充分히 檢討할 만한 狀況이었지만 實際로는 入院하거나 治療받지 못했다. 비자의 入院 中 行政入院은 專門의 診斷이 必須다. 하지만 精神疾患者로 보이는 사람을 專門醫에게 强制로 護送할 法的 根據가 없다. 應急入院은 狀況이 急迫해 다른 節次가 不可能할 때에만 可能하다. 警察이 人權侵害 論難을 무릅쓰고 節次를 밟기 어렵다. 이 때문에 家族에 依한 ‘保護入院’이 全體 비자의 入院 80% 以上을 차지한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直系血族, 配偶者가 없는 境遇 保護入院이 不可能하다. 直系血族, 配偶者, 民法上 後見人 中 2名이 申請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大韓神經精神學會 法制理事는 “1人 家口가 늘어나면서 精神疾患者를 보살필 家族이 없어지고 있다. 國家責任制가 必要하다”고 말했다. 先進國은 비자의 入院 申請 權限을 廣範圍하게 열어둔다. 美國 32個 州에서는 ‘利害關係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申請할 수 있다. 日本도 ‘精神障礙人 또는 그 疑心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申請 權限을 認定한다. 精神障礙人 人權團體度 비자의 入院이 必要하다는 點은 認定한다. 다만 極端的인 狀況을 미리 防止하는 시스템이 必要하다고 指摘한다. ‘精神障礙와 人權 波濤손’ 박환갑 事務局長은 “狀態가 惡化되기 前에 미리 相談하고 外來治療를 받도록 하는 等의 患者 管理 시스템이 優先돼야 한다”며 “移送, 治療 過程에 人權侵害 餘地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指摘했다. 동아일보는 創刊 100周年을 맞은 지난해부터 持續的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番 히어로콘텐츠 ‘웅덩이: 1068日의 記錄’은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價値와, 境界를 허무는 디지털 技術을 融合한 差別化된 報道를 志向합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記事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具現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連結됩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記者 iamsam@donga.com▽記事 取材: 김재희 남건우 신희철 記者▽寫眞·動映像 取材: 송은석 남건우 記者▽그래픽: 김충민 記者 ▽編輯: 한우신 記者▽프로젝트 企劃: 位은지 記者▽사이트 開發: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動映像 編輯: 金泰希 인턴 김신애 CDQR코드를 스캔하면 記事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具現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連結됩니다.}

    •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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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分 만에 죽은 엄마와 조카…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안인득 放火殺人, 그 後 1068日의 記錄]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訪問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效果가 結合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形式으로 금세은 氏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하루에 먹어야 하는 藥이 또 늘었다. 금세은 氏(43)는 每日 10가지의 神經精神科 藥 22알을 服用하고 있다. 追加된 藥은 抗憂鬱劑 0.5알과, 不安, 緊張, 痙攣 症狀을 緩和하는 藥 3알. 이제 稅銀 氏는 하루에 알藥 26個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月 30日 慶南 진주시 경상국립대學校病院 神經精神科 診療室에서 主治醫 金奉祚 敎授와 마주 앉은 稅銀 氏는 藥을 늘리자는 金 敎授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年 11月 外傷 後 스트레스障礙(PTSD)와 憂鬱症 診斷을 받은 그가 하루에 먹었던 알藥은 20~30個 사이. 2年 2個月 동안 알藥 2萬 個가 그의 몸 안에 고스란히 쌓였다.베개에 머리만 대도 목 뒤까지 저릿해지는 偏頭痛에 急激한 視力 低下까지 겹치면서 稅銀 氏는 며칠 前 같은 病院에서 腦 磁氣共鳴映像(MRI)을 찍었다. “腦에 問題는 없다”는 醫師의 말에 安堵感이 든 것도 暫時. 2年 넘게 藥을 먹었지만 ‘그날’ 以前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쳤다. 藥은 順序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全身 떨림, 頭痛, 呼吸困難, 不眠症을 暫時 멎게 하는 臨時方便일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 終日 머리가 아플 수 있어요? 이제 내 몸한테도 火가 나.” (稅銀 氏)“副作用 問題로 抗憂鬱劑를 다 바꿨는데 2個月 넘게 期待하는 效果가 안 나와서…. 最近에 나온 藥으로 바꿔 봅시다.” (金奉祚 敎授)“不眠症 때문에 神經質的으로 變해서 藥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 (稅銀 氏)“肉體的이든 精神的이든 괴로운 게 解決이 안 되니 짜증 안 나는 게 異常하지. 근데 앞으로 그렇게 藥 한꺼번에 먹으면 絶對 안 돼요.” (金奉祚 敎授)稅銀 氏는 오늘도 속 시원한 解決策을 듣지 못했다. 診療室을 나온 그는 病院 1層 藥局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검정色 벙거지 帽子를 푹 눌러쓴 그는 藥師로부터 A4 用紙 네 張에 達하는 服藥指導서와, 藥 封套가 가득 담긴 검정色 비닐封紙를 받아 들었다. “엄청 深刻한 病 걸린 사람 같죠? 이게 2週値野, 2週値. 2週 뒤에 와서 이만큼 또 받아야 돼.”주치의도 그런 稅銀 氏가 안쓰럽다. 金奉祚 敎授는 “時期에 따라 患者를 甚하게 괴롭히는 症狀이 달라질 뿐 처음 診療 때와 比較해 나아진 點은 없다”며 답답해했다. “患者가 겪은 外相이 워낙 크다보니 長期間 治療에도 反應하지 않고, 다른 PTSD 患者에 비해 症狀도 다양하고 깊게 나타납니다. 예전엔 잠을 못 자는 症狀이 甚했고 最近에는 頭痛, 視野 가림 症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藥을 바꾸며 다양한 試圖는 하고 있지만 患者나 醫師가 期待하는 效果에는 아주 못 미치는 狀況입니다.”10분 만에 달라진 삶2019年 4月 17日 以前의 稅銀 氏는 全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일 中毒’이었다. 齒衛生學科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始作한 齒衛生士 일이 잘 맞았다. 患者들과 對話하는 것도 즐거웠다. 일을 始作한지 3年 만에 齒科 院長은 그에게 患者 相談도 맡겼다. “사람 만나는 것에 對한 두려움,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게 180度 變했어. 只今은 사람을 보자마자 꺼리기부터 하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只今은 내 自身이 바보 같아.”‘엄마는 내 삶의 目標’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程度로 끔찍한 孝女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3男妹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便히 사는 게 稅銀 氏의 所願이었다. 엄마를 위해 稅銀 氏는 스물세 살부터 마흔 살까지 17年을 한 瞬間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癌 鬪病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다 갚아가고 있었다. “家族 위해서 苦生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親舊들하고 놀러 다니고 海外旅行도 가고 좋은 옷 입고 便하게 살길 바랐지. 우리는 零細民이잖아. 빚 갚으면서, 그 渦中에 되는대로 돈 모으면서 熱心히 살았어. ‘엄마, 이제 (通帳) 플러스 된다. 조매만 기다려라. 한두 달 안 남았다’했는데….”자칭 ‘일벌레’이자 孝女였던 稅銀 氏는 2019年 4月 17日, 180度 다른 사람이 됐다.그날 午前 4時 25分. 慶南 진주시 A아파트. 調絃病을 앓던 이 아파트 406號 住民 안인득(45)은 이날 自身의 집에 불을 질러 집 全體에 번지게 했다. 미리 準備한 凶器를 兩손에 쥐고 非常階段에서 待機하다 待避하는 住民들에게 휘둘렀다. 火災警報音에 잠에서 깨 非夢似夢으로 階段을 내려가던 住民들은 無防備 狀態에서 얼굴, 목, 가슴 等에 傷處를 입었다. 4時 32分, “누군가 凶器로 사람을 찌른다. 사람들이 待避하고 있다”는 最初 112 申告가 接受됐다. 3分 뒤인 4時 35分 警察 5名이 現場에 到着해 10分間 對峙 끝에 安 氏를 檢擧했다. 5名이 숨지고 17名이 다친 뒤였다. 숨진 5名 中 2名은 稅銀 氏의 家族이었다. 그는 不過 10分 사이 ‘삶의 目標’였던 어머니 金某 氏(當時 65歲)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禁止尹 孃(假名·當時 12歲)을 잃었다. 稅銀 氏는 晋州 放火·殺人事件의 生存者이자 遺家族이다.웅덩이에 빠진 날딸을 피지로 留學 보낸 稅銀 氏는 엄마와 함께 아파트 303棟 304號에 살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엄마와 麥酒 한 盞을 하고 17日 새벽 3時쯤 잠에 든 稅銀 氏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騷亂에 눈을 떴다. 이내 “살려주세요!”라는 올케 車某 氏(44)의 외마디 悲鳴이 들렸다. 稅銀 氏 오빠 금민수 氏(假名·47)네 夫婦와 딸 지윤 量도 이 아파트 403號에 살았다. 놀란 엄마는 複道로 뛰쳐나갔다. 5分이 지나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寢臺에서 몸을 일으킨 稅銀 氏는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玄關으로 나갔다. 玄關門을 열자 뿌연 煙氣가 複道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悲鳴소리도 어렴풋이 들리는 듯 했다. 複道를 지나 非常階段으로 通하는 放火門을 열자 警備員이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手巾 달라”고 외쳤다. 警備員 뒤로 보이는 複道 階段이 피로 가득했다. ‘뭔가 사달이 났구나.’ 精神없이 집으로 돌아가 化粧室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手巾을 여러 張 챙겼다. 다시 玄關門을 열자 바로 앞에 올케 茶 씨가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阿鼻叫喚 속 茶 氏의 울부짖음에 精神이 번쩍 들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申告해야 된다!” 茶 氏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保護하다 옆구리를 凶器로 찔린 狀態였다. 稅銀 氏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지금 아파트가 피바다에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곧 죽을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신고를 마치고 非常階段을 精神없이 내려갔다. 3層과 2層 사이엔 507號 住民 조某 씨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曺 氏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3層을 지나 2層 階段으로까지 뚝뚝 떨어졌다. 그와 눈이 마주친 稅銀 氏는 몸에 手巾을 덮어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을 全혀 움직이질 못했지. 그 狀態로 나랑 눈이 마주친 거야.”1층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엄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엄마도 孫女 지윤이를 지키려다 負傷을 입었다. 2層 階段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을 민수 氏가 1層으로 옮긴 뒤였다. “우리 조카는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근데 救助隊員들이 止血을 안 해. 止血을 안 하니 피가 펑펑 나는 거야. 목에서도 나고 팔에도 나고. 내가 “止血 안 하고 뭐 하냐”고 하니까 엄마 止血을 (消防隊員이) 저보고 도와 달래.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止血을 하는데 止血이 안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稅銀 氏는 只今도 自身의 손 안에서 溫氣를 잃어 가던 어머니의 皮膚를 생생하게 記憶한다.빗물은 핏물이 됐다304호에 살았던 稅銀 氏와 엄마, 403號에 살았던 오빠 민수 氏네 家族은 1週日에 두 세 番은 함께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은 틀림없이 모였다. 땡초 넣은 ‘엄마表’ 된醬찌개와 감자煎, 三겹살, 두루치기는 단골 메뉴였다. “비 오는 날 제가 ‘언니(올케), 비와요. 땡초展 묵으까?’라고 文字 메시지를 보내면 얼마 안 있어 새언니한테 電話가 와요. ”땡초 사오라.“ 그럼 退勤길에 슈퍼 들러서 밀가루랑 땡초랑 麥酒 사서 가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는데…”가족들 麥酒파티 하던 비 오는 날은 이제 稅銀 氏에게 恐怖가 됐다. 비 오는 날 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 複道에 窓門이 없으니 비가 오면 다 들쳐요. 移徙 오고 얼마 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어요. 나가려고 門을 열었는데 門 앞에 물이 가득한 거야. 그걸 보는 瞬間 그날 複道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어요.”피에 對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年 間 했던 齒衛生士 일도 그만 둬야 했다. 患者들을 治療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 냄새를 맡으면 우리 엄마 應急處置 하면서 피가 펑펑 나던 그 모습이 當場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 事件 直前이었던 2019年 初 한 모임에서 稅銀 氏와 알게 된 同甲내기 親舊 김진석 氏(假名)는 事件 直後부터 그를 곁에서 지켰다. 呼吸困難, 全身 떨림, 해리性 記憶障礙, 不眠症, 極甚한 頭痛을 달고 사는 稅銀 氏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불치병인 것 같아요. 100미터만 걸어도 숨 차하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요. 食堂 갔다 恐慌發作이 오기도 하고…. 堂堂하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모든 게 한 瞬間에 와르르 무너진 거죠.”김 氏는 稅銀 氏가 瞬間瞬間 記憶을 잃는 症狀을 가장 걱정한다. 主治醫는 PTSD로 因한 해리性 記憶障礙라고 診斷했다. 처음은 健忘症 水準이었지만 時間이 지나면서 旅行을 갔던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程度로 狀態가 深刻해졌다.지난해 8月에는 비 오는 날 한밤中에 두 時間동안 비를 맞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稅銀 氏는 그날을 記憶하지 못 한다. 子正 무렵 오빠 네에서 밥을 먹고 代理를 불러 집에 간다던 稅銀 氏가 連絡이 되지 않았다. 稅銀 氏 知人에게 連絡을 돌리고 아파트 周邊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새벽 두 時가 다 된 時間에야 집 近處에서 비를 맞으며 멍한 눈으로 걷는 稅銀 씨를 發見했다. “稅銀아!”라고 불렀지만 稅銀 氏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金 氏 부축을 받아 집에 돌아온 稅銀 氏는 목 놓아 울었다.“증거 남기듯 寫眞을 찍는 게 習慣이 됐어요. 어디 갔었는지도 記憶 못 할 때가 있으니까 寫眞 보여주며 ‘우리 여기 갔었잖아’ 하려고. 둘 다 寫眞 찍는 것 正말 싫어하는데 繼續 練習을 해요.” (金 氏)바꾼 이름, 바뀌지 않는 삶稅銀 씨의 오빠 민수 氏와 그의 아내, 첫째 딸은 2019年 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이 잘못 돼서 온 家族에게 이런 悲劇이 닥쳤나’ 하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心情으로 改名을 擇했다. 늘 아빠 옆에서 잠을 자던 둘째 딸 지윤이, 술 마신 다음날 解酲국 끓여놨다고 電話하던 어머니가 없다는 現實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수 氏의 삶은 如前히 4月 17日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그날 自身의 집에 불을 질렀다. 같은 層에 살았던 민수 氏네 집 玄關으로 이내 煙氣가 슬금슬금 넘어왔다. 민수 氏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水泳選手인 첫째 딸은 學校 寄宿舍에서 生活해 집에 없었다.가족들을 내려 보낸 그는 옆집 門을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待避하라고 알렸다.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 마지막에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피를 흘리며 2層 階段에 누워 있는 것을 發見했다. “불이 나서 家族들을 내려 보냈는데 애하고 할매(어머니)가 누워 있어.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演技 빼고 窓門 열고, 불났다고 門 두드리고…. 그게 第一 큰 失手라. 내가 미친놈이지.”언니 金毛 量(19)은 事件 1年이 지나고서야 家族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茶 氏가 金 孃을 學校에 데려다 주려던 日曜日이었다. 房에서 짐을 챙기는 金 量의 눈이 벌겠다. “울었나?” 묻는 엄마의 質問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車 안에서도 默默不答이던 금 量은 寄宿舍 앞에서 “都大體 왜, 뭐 땜에 그카노?”라는 엄마의 質問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 運動場 뛸 때도 생각나고, 水泳할 때도 생각나고, 밥 먹을 때도 생각난다. 그래서 미치겠다. 너무 힘들고 너무 보고 싶다. 미치겠다, 엄마.”怨望할 수 없는 이유민수 氏는 안인득의 兄과 高等學校 때부터 親舊였다. 一週日에 서너 番은 함께 술盞을 기울이던 사이였다. 晋州는 洞네가 좁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았다. 민수 氏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親舊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亦是 처음에는 平凡한 이웃 아저씨였다.“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菓子를 褓따리로 사 주고 한 놈이라.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내가 ‘밥 묵었나’ 하면 ‘예’ 하며 지냈어. 근데 調絃病이 甚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 본 기라.”동생의 狀態가 深刻해지자 안인득의 兄은 민수 氏에게 ‘고함지르는 소리 안 들리드나?’ ‘시끄러운 일은 없었나?’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술자리에선 “동생이 아픈데 藥을 안 먹는다”며 걱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사건이 發生하기 얼마 前엔 동생이 집에 있으면 連絡해달라고 付託하기도 했다. “내가 가면 門도 안 열어준다. 집에 있는지 確認해보고, 있으면 電話 좀 주라.” 兄은 걱정을 하면서도 동생이 調絃病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민수 氏는 “알겠다”고 하고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약도 먹지 않고 入院도 拒否하는 동생을 두고 兄이 戰戰兢兢하는 사이 數個月 동안 住民들은 안인득의 汚物投擲, 暴行, 暴言 等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안인득의 主要 타깃은 윗집인 506號 住民 崔某 量(當時 19歲)과 그의 叔母 姜某 氏(57)였다. 안인득은 윗집에서 自身의 집에 벌레를 뿌린다는 妄想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8年 9月부터 事件 前까지 다섯 番에 걸쳐 506號 玄關門에 鷄卵, 간醬 等 汚物을 投擲했다. 直接 威脅도 일삼았다. 2019年 2月 28日, 안인득이 出勤을 하는 姜 氏에게 鷄卵을 던지고 辱說을 했다. 姜 氏는 申告했지만 警察은 “賃貸아파트라 이런 申告가 많다. 和解하라”고만 한 뒤 돌아갔다. 3月 10日, 안인득은 駐車 是非가 붙은 사람의 얼굴을 加擊하고 망치를 휘둘러 特殊暴行 嫌疑로 警察에 立件됐다. 兄은 警察에 “동생이 精神病歷이 있다”고 알렸지만 警察은 별다른 措置 없이 안인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3月 12日과 13日, 안인득은 이틀 連달아 崔 羊을 따라가며 辱을 했다. 집에 들어가는 崔 孃을 뒤따라가 招人鐘까지 눌렀다. 崔 量은 1級 視覺障礙로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腦病變 障礙로 몸의 半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高等學生이었다. 13日 姜 氏가 警察에 再次 申告해 “안인득이 더 以上 이런 짓을 못 하게 해 달라”고 呼訴했지만 警察은 안인득에 口頭 警告를 주는데 그쳤다. 3月 末 안인득은 晉州의 한 廚房用品店에서 凶器를 샀다. 事件 當日 그가 住民들에게 휘두른 것과 같은 凶器였다.형은 連絡이 닿지 않는 동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이 됐다. 4月 4, 5日 이틀에 걸쳐 안인득을 立件했던 警察署에 電話를 했다. “동생을 强制入院 시킬 方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警察은 “事件을 檢察에 넘겼으니 檢事에게 問議하라”고 答했다. 檢察廳 民願室도 責任을 떠넘겼다. 職員은 “檢事를 만나더라도 强制入院은 어렵다”며 法律救助公團을 찾아가라고 勸했다. 法律救助公團은 “行政機關이 處理해야 한다. 洞事務所나 市廳으로 가라”고 했다. 洞事務所에서는 “强制入院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事件 當日인 4月 17日, 子正이 넘은 時間 안인득은 注油所에서 揮發油를 샀다. 3時間 半 뒤, 안인득은 自身의 집에 불을 질렀다. 안인득에게 集中的으로 괴롭힘을 當하던 崔 量은 그날 안인득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稅銀 氏의 조카이자 민수 氏의 딸도, 두 사람의 어머니도 世上을 떠났다. 家族을 잃은 代價, 5000萬 원調絃病 患者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기 위해 四方八方 뛰었던 그의 兄이자 自身의 親舊. 민수 氏는 딸과 엄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怨望할 수 없었다. 憤怒와 설움은 스스로를 向했다. 하루에 燒酒를 6甁 씩 비우는 날이 許多했다. 事件 直後 1年은 술과 精神과 藥에 醉해 朦朧한 狀態로 每日을 보냈다.사건 後 나라가 被害者이자 遺族인 稅銀 氏와 민수 氏에게 진 責任은 治療費 5000萬 원이 全部다. 放火罪, 殺人罪, 傷害罪 等 强力犯罪被害者는 연 1500萬 원, 總 5000萬 원 限度에서 治療費를 받을 수 있다. 殺害된 조카를 救하려다 칼에 맞아 重傷을 입은 506號 姜 氏는 手術과 再活治療가 이어져 이미 5000萬 원을 다 썼다. 姜 氏의 딸은 때때로 電話로 安否를 묻는 稅銀 氏에게 늘 “希望이 없다”고 말한다.“저희 같은 사람들은 精神과 相談하고 藥 먹으면 돼요. 근데 506號 살던 叔母는 腦手術을 또 해야 할 수도 있고, 손에 感覺이 안 돌아와서 再活治療度 繼續 받아야 한대요. 그런 분들은 治療費를 平生 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라에선 그 조차도 안 된다고 하대요.”부족한 治療費, 어려워진 生計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責任을 지지 않는다는 事實이었다. 왜 住民들의 申告가 제대로 處理되지 않았는지, 왜 안인득은 제때 治療받지 못했는지, 속 시원히 答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慶南地方警察廳 眞相調査팀이 事件 以後 調査를 벌여 警察 措置가 未洽했다고 認定했지만 關聯 警察 5名을 輕懲戒하고 2名을 警告 處分 하는데 그쳤다. 잊지 않으면 고통스러웠다. 잊을 수가 없어 술에 기댔다. 稅銀 氏와 민수 氏가 日常을 잃고 時間의 흐름도 잊어가던 2020年 봄, 그들에게 電話 한 通이 왔다. 大韓神經精神學會였다. 調絃病 患者가 强力犯罪를 저지르는 事件이 繼續 發生하면서 學會는 關聯 法 改正에 나선 狀態였다. “只今 나라에서는 調絃病 患者를 放置하고 있어요. 안인득처럼 治療를 拒否하고, 남에게 被害를 끼칠 可能性이 큰 患者는 警察이나 地自體가 醫師 判斷을 받아 暫時라도 入院을 시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이런 事件이 또 나는 걸 막아야 합니다.”학회는 이들에게 國家 對象 損害賠償 訴訟에 나서 달라고 說得했다. 精神疾患者를 國家가 책임지고 管理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1年을 꼬박 苦悶했다. 辯護士에게 事件을 說明하기 위해 當時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돈 때문에 訴訟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하지만 金 氏 男妹는 마음을 다잡았다. 家族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調絃病 患者가 왜 밉노? 그 사람들, 그냥 精神이 아픈 사람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放置돼 있었던 게 잘못이지. 藥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犯罪者가 되고, 그 사람 家族까지 罪人이 되는 거고. 그걸 왜 못 막느냐는 거지. 안인득度 被害者다. 안인득 兄도 被害者고.” (민수 氏)金 氏 男妹는 國家에 責任을 묻기로 했다. 이들의 訴訟을 代理하는 法律事務所 法科治癒는 지난해 11月 8月 大韓民國을 被告로 한 損害賠償請求訴狀을 行政法院에 提出했다. 事件 發生 2年 7個月 만이다. 原稿는 민수 氏 男妹 세 名, 민수 氏의 아내 茶 氏 等 4名이다. 訴訟의 要旨는 警察이 法에 明示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犯罪가 發生했고, 그로 인해 被害를 입었다는 것이다. “조금 괜찮아져서 訴訟을 하게 됐느냐”는 質問에 민수 氏는 말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訴訟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抑鬱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매뉴얼이 作動하지 않을 때精神健康福祉法은 自身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危險이 큰 精神疾患者의 精神疾患者를 自身의 意思에 反해 입원시키는 이른바 ‘비(非)字의 入院’을 許容하고 있다. 患者의 人權을 侵害할 수 있는 措置인 만큼 嚴格한 節次와 要件을 갖춰야 한다. 이中 ‘行政入院’은 警察이 精神科 專門醫나 專門要員에게 要請해 危險하다고 判斷될 境遇 地自體長이 節次를 거쳐 最長 2週 間 입원시키는 制度다. 緊急한 狀況에는 警察官과 醫師 同意 아래 最長 3日 間 患者를 입원시킨 뒤 繼續 入院이 必要한지 決定하는 ‘應急入院’ 制度도 있다. 안인득은 △他人에게 威脅을 加한 前歷이 있고 △暴行, 辱說 等 攻擊的 性向이 持續된 境遇로 行政入院이나 應急入院을 充分히 檢討할 만한 狀況이었다. 하지만 안인득은 어떤 措置도 받지 않았다. 안인득 本人이 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行政入院과 應急入院 모두 現場에서 無用之物이 됐다.비자의 入院 中 行政入院은 有名無實하다. 行政入院에는 專門의 診斷이 必要한데 精神疾患者로 보이는 사람을 專門醫에게 强制로 護送할 法的 根據가 없다. 應急入院은 要件이 더 까다롭다. 者·打海 危險이 크고, 狀況이 急迫해 다른 入院節次가 不可能할 때만 可能하다. 當場 눈앞에서 事件이 벌어지지 않는 以上 警察이 人權侵害 論難을 무릅쓰고 應急入院 節次를 밟기 어렵다.이동진 서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는 “家族이 입원시키도록 하는 것이 論難을 避하는 길이기 때문에 行政入院은 입원시킬 家族이 마땅치 않은 境遇로 制限된다. 應急入院度 嚴格한 節次를 거쳐야 해 活用이 어렵다”고 指摘했다.까다로운 節次 탓에 現場에서는 大部分 ‘保護入院’李 活用된다. 家族에 依한 保護入院이 全體 비자의 入院의 80~90%를 차지한다. 保護入院은 家族 中에서도 直系血族, 配偶者, 民法上 後見人 中 2名이 申請하고 醫師 診斷이 있으면 可能하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直系血族이나 配偶者가 없는 境遇 適用이 不可能하다. 1人 家口가 늘어나는 韓國 現實에서 漸漸 더 實效性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백종우 大韓神經精神學會 法制理事는 “盧父母 中 한 名과 살거나 直系 家族이 없는 調絃病 患者들이 死角地帶”라며 “1人 家口가 늘며 精神疾患者를 보살펴줄 家族이 없어지고 있다. 重症精神疾患者에 對한 責任을 家族이 아닌 國家가 지는 ‘國家責任制’가 導入돼야 한다”고 말했다. 先進國에서는 비자의 入院을 申請할 수 있는 權限을 廣範圍하게 열어둔다. 美國 32個州에서는 ‘利害關係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자의 入院을 申請할 수 있다. 日本도 ‘精神障礙人 또는 그 疑心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申請 權限을 認定한다. 英國은 申請權者를 精神保健專門要員 또는 患者의 家族 또는 親知로 規定하는데 直系家族이나 同居人은 勿論 兄弟姊妹, 祖父母, 조카 等이 包含돼 있다.일반 市民의 安全을 保障하면서도 精神疾患者의 人權을 지키기 위해 ‘司法入院制度’ 導入을 提案하는 專門家들도 있다. 法院이 入院을 決定하기 때문에 獨立性이 保障되고, 患者 本人이 도움을 받아 自身의 意思를 法廷에서 表現할 수 있는 節次도 包含돼 있다. 이동진 敎授는 “비자의 入院은 强制措置人 만큼 國家가 責任을 지고 主導하고, 그 안에서 本人과 家族의 意見을 反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外來治療命令制가 活性化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地自體長이 精神醫療機關長의 請求를 받아 비자의 入院 患者가 退院하는 代身 最長 1年까지 外來治療를 義務的으로 받도록 하는 制度다. 退院한 患者가 아니더라도 醫師 判斷으로 危險한 患者는 外來治療를 義務的으로 받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정신장애인 人權團體度 어쩔 수 없는 境遇 비자의 入院이 必要하다는 點은 認定한다. 다만 그런 狀態까지 가지 않도록 事前에 管理해야 한다고 指摘한다. ‘精神障礙와 人權 波濤손’의 박환갑 事務局長은 “비자의 入院이 必要한 水準까지 狀態가 惡化되기 前에 미리 相談하고 外來治療를 받도록 하는 等의 管理가 必要하다”며 “狀態가 惡化된 患者를 입원시키는 措置는 必要하지만, 暴力的인 病院 移送 過程, 患者를 閉鎖病棟에서 强制로 治療하는 方式 等 問題點이 먼저 改善돼야 한다” 指摘했다.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물웅덩이만 봐도 그 날이 떠오르지만 稅銀 氏는 每年 秋夕, 설날마다 事件이 發生한 A아파트 3團地를 찾는다. 엄마의 숨이 멎은 곳이지만 엄마가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해서다. “秋夕, 설날 때마다 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니까…”지난해 11月 11日 아파트를 찾은 金 氏는 아파트 正門 入口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視線은 事件이 發生했던 303棟을 向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저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요. 나 여기선 帽子도 絶對 안 벗어요.”시야를 遮斷하는 검정色 벙거지 帽子를 푹 눌러 쓰고 검정色 패딩 조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稅銀 氏는 303洞과 한참 떨어진 309洞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한동안 303棟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기 始作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그는 한참 동안 畵面을 쳐다봤다. ‘그리움’이란 題目의 寫眞妾 폴더에 貯藏된 엄마의 生前 寫眞이었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寫眞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入口에 쓰러져 있던 寫眞은 없어. 나라도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을 記憶하게 寫眞이라도 찍을 걸…”회사로 돌아가는 車 안, 피지로 留學을 간 딸에게서 映像通話가 걸려왔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이제 眞짜 淑女 같다, 淑女. 다 컸네.”세은 氏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깨를 훌쩍 넘긴 머리를 매만지는 딸의 모습이 稅銀 氏는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어느덧 13살이 된 딸을 韓國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現在 健康 狀態로는 딸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稅銀 氏의 所願은 素朴하다. 딸과 함께 살면서 좋아했던 齒衛生士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애가 成人이 될 때까지라도 몸이 버텨줬으면 좋겠어. 只今 몸 狀態로는 運轉도 제대로 못 하니까.” 올해 2月 설 稅銀 氏는 아파트를 가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남긴 場所에 가면 病勢가 惡化될 수도 있다는 主治醫의 말 때문이었다. 代身 엄마와 조카의 遺骨函이 모셔져 있는 眞珠 응碩士를 세 番이나 찾았다.1000일이 지나도록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繼續된다. 稅銀 氏에게는 키워야 할 딸이 있고, 서로 依支하고 보듬어야 할 家族이 있다. 오늘도 稅銀 氏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00日 分의 苦痛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동아일보는 創刊 100周年을 맞은 지난해부터 持續的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番 히어로콘텐츠 ‘웅덩이: 1068日의 記錄’은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價値와, 境界를 허무는 디지털 技術을 融合한 差別化된 報道를 志向합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記事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具現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連結됩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記者 iamsam@donga.com▽記事 取材 : 김재희 남건우 신희철 記者▽寫眞·動映像 取材 : 송은석 남건우 記者▽그래픽 : 김충민 記者 ▽編輯: 한우신 記者▽프로젝트 企劃: 位은지 記者▽사이트 開發: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動映像 編輯: 金泰希 인턴 김신애 CD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남건우 記者 woo@donga.com신희철 記者 hcshin@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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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메스 手帖에 담긴 피카소 戀人의 祕密

    스페인 畫家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女性遍歷으로 有名하다. 그와 公式的인 戀人關係였던 女性만 7名. 그 中 有名한 이는 1936年부터 1945年까지 9年 間 피카소와 함께 했던 도라 마르다. 戀人의 肖像畫도 多數 그렸던 피카소는 마르를 뮤즈 삼아 ‘우는 女人’(1937年)이라는 有名한 作品도 남겼다. 마르는 當時 패션과 廣告寫眞으로 이름을 알린 寫眞作家였고, 다양한 그림을 남긴 畫家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作家’보단 ‘피카소의 戀人’으로 더 有名해졌다. 저널리스트인 著者는 ‘에르메스 手帖의 祕密’(複복서가)에서 熱情과 狂氣, 空虛함으로 點綴됐던 마르의 삶과 藝術家로서의 面貌를 再照明한다. 著者가 마르의 발자취를 追跡하게 된 契機는 한 卷의 다이어리였다. 男便이 아끼던 에르메스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著者는 이와 가장 비슷한 製品을 이베이에서 注文했다. 配送된 다이어리 안주머니에 샤갈, 라캉, 자코메티 等 藝術家들의 住所錄 手帖이 끼워져 있었던 것. 이 手帖이 마르의 것임을 確信한 著者는 2年 동안 手帖에 적힌 이름과 關聯된 資料, 記事를 뒤졌고 生存 人物을 直接 찾아다녔다. 冊은 마르가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藝術家로 인정받고자 努力한 過程을 따라간다. 마르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스페인과 英國의 가난한 洞네를 다니며 失業者, 畸形의 몸을 가진 사람 等 社會 邊두리로 밀려난 이들을 寫眞으로 남겼다. 超現實主義 寫眞作家로 評價받는 그의 代表作 ‘無題’(1933年)는 巨大한 소라에서 매니큐어를 漆한 손이 뻗어 나오는 모습을 담았다. 夢幻的이고 奇異한 마르의 몽타주 作品들 亦是 實驗性과 斬新함 側面에서 높은 評價를 받는다. 藝術家로서의 面貌뿐만 아니라 사랑을 渴求했던 한 女子로서의 삶도 그려진다. 피카소를 비롯한 戀人들과의 關係에서 마르는 늘 感情에 率直했고 積極的이었다. 때때로 內面에서 끓어오르는 熱情은 狂氣로 表出되기도 했다. 그가 피카소와 만나기 前 戀愛했던 프랑스 시나리오 作家 루이 샤방스가 마르에 對해 남긴 詩는 불같은 마르의 性格을 推測케 한다. ‘그대 이제 흔들리는구나. 神經質 가득한 미친 女人…내가 바친 사랑의 代價로 내 배를 걷어찼지.’ 처음 피카소와 만난 카페 되 마고에서 마르는 피카소의 視線을 끌기 위해 손가락 사이로 칼을 내리 꽂았고, 마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피카소는 그를 카페에 데려온 詩人 폴 엘뤼아르에게 이렇게 묻는다. “저 異常한 女子를 압니까?” 有名 藝術家의 삶에는 늘 靈感의 源泉이 되는 뮤즈가 存在했다. 近代조각의 時調 오귀스트 로댕의 戀人이었던 까미유 끌로델, 象徵主義 畫家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아내였던 에밀리 플뢰게가 代表的이다. 끌로델은 精神病院에서 生을 마감한 悲運의 뮤즈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각에 天才的 才能을 드러냈던 彫刻家였다. 플뢰게 亦是 바람둥이 클림트가 唯一하게 平生 사랑했던 女性으로 有名할 뿐, 오스트리아 有名 패션디자이너로 活躍했다는 事實은 別로 알려져 있지 않다. 마르의 삶은 누군가의 뮤즈이기 以前에 한 名의 藝術家로서 創作에 渾身을 다하고 사랑에 늘 率直했던 한 主體的인 女性이 있음을 몸소 證明한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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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侵攻 被害, 우크라 알고 싶어” 歷史書籍 販賣量 3倍 껑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侵攻을 契機로 우크라이나와 戰爭史를 다룬 冊들이 關心을 끌고 있다. 17日 교보문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關聯 冊 28種의 販賣量은 우크라이나 侵攻 威脅이 本格化된 올 1月 以後 平素에 비해 約 3倍로 늘었다. 지난달 21日 發刊된 ‘유럽 最後의 大國, 우크라이나의 歷史’(글항아리)를 始作으로 우크라이나 歷史와 文化, 宗敎, 國際關係를 다룬 ‘우크라이나의 歷史 1·2’(아카넷) 等이 注目받고 있다. 日本 外交官이 우크라이나 歷史를 槪括한 ‘유럽 最後의 大國…’은 15日 5刷까지 찍었다. 戰爭史 冊도 人氣다. 올 1月 27日 나온 허버트 맥매스터 前 白堊館 國家安保補佐官의 ‘배틀 그라운드’(敎諭書가)는 이달 둘째 週 敎保文庫 政治·社會部門 11位에 올랐다. 이 冊은 美國 러시아 中國을 中心으로 强大國 間 霸權 競爭으로 치닫고 있는 地政學的 背景을 分析했다. 지난해 12月 나온 美國 作家 에릭 라슨의 ‘爆擊機의 달이 뜨면’(생각의힘)은 같은 期間 敎保文庫 歷史·文化部門 11位에 올랐다. 이 冊은 윈스턴 처칠을 中心으로 第2次 世界大戰 때 獨逸 攻襲을 받은 英國 안팎의 情勢를 細密하게 담았다. 5年 前 發刊된 벨기에 歷史學者 자크 파월의 ‘좋은 戰爭이라는 神話’(五月의 봄)도 같은 期間 敎保文庫 歷史·文化部門 10位를 차지했다. 著者는 美國 政府가 大企業과 파워엘리트의 利益을 위해 第2次 世界大戰에 參戰했다고 主張한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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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收益 없어도 抛棄않는 理由는”…피땀눈물 담긴 그들의 孤軍奮鬪機

    初等學校 3學年 때부터 줄곧 作家를 꿈꿨다. 親舊들은 昇進을 하고 住宅請約을 넣을 때 돈 안 되는 글을 繼續 썼다. 펜을 놓으려던 서른한 살, 劇的으로 登壇했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如前히 不安했다. “生業을 찾겠다”며 떠나는 先後輩를 보면 마음이 쓰렸다. ‘피땀눈물, 作家’(商道북스)를 쓴 14年次 作家 이송현 氏(45) 얘기다. 네 番의 創業, 두 番의 廢業을 겪었다. 곧 廢業의 數字에 1이 더해진다. 2020年 門을 연 布帳馬車가 이달 末 장사를 접게 되면서다. 네 番의 創業과 세 番의 廢業. 成功率은 25%. 남은 것은 第一 먼저 始作한 서울 城東區 이디야커피 屯村店이다. ‘피땀눈물, 自營業者’를 쓴 12年次 自營業者 이기혁 氏(39) 얘기다. 지난달 25日 出刊된 職業에세이 ‘피땀눈물’ 시리즈에는 平凡한 이들의 ‘존버’(힘들게 버팀)가 담겨 있다. ‘無酌定 존버’가 아니다. 마냥 狀況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代身 突破口를 찾는다. 이송현 氏는 童話作家에서 放送作家와 登壇 詩人으로, 이기혁 氏는 카페社長에서 漫畫房, 布帳馬車 社長으로 끊임없이 變貌했다. 살아남겠다는 熾烈함, 그 過程에서 이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 200페이지 남짓의 冊에 담겼다. 이어지는 시리즈에는 아나운서, 初等學校 敎師 等 普通의 職業人들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課程이 紹介될 豫定이다. ● 펜 잡는 瞬間 돈과 멀어지지만… 信念으로 글을 쓴다 大學院 때 小說을 專攻한 이송현 作家는 小說로 登壇하겠다는 생각이 確固했다. ‘딱 1年만 더’ 라는 생각으로 收益 없는 글쓰기를 繼續 하던 서른 한 살의 2009年, “마해송文學賞 原稿를 받는데 支援해 보라”는 先輩 童話作家의 말을 偶然히 接했다. 半信半疑하며 旣存에 썼던 드라마 脚本을 童話로 바꿔 ‘아빠가 나타났다!’(문학과지성사)를 提出했다. 뜻하지 않게 제5회 마해송文學賞을 받으며 登壇했다. 小說家에서 童話作家로 進路가 바뀐 瞬間이었다. 그 때부터 장르에 區分을 두지 말고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登壇 直後엔 시트콤 作家의 길을 擇했다. 學生 때 習作으로 썼던 시나리오를 偶然히 읽게 된 金炳旭 監督이 ‘面接을 보러 오라’며 電話를 한 게 契機였다. 그렇게 2009年 ‘지붕 뚫고 하이킥’(MBC)의 構成作家로 合流했다. 14日 서울 江南區 카페에서 만난 이 作家는 “小說 속 大使는 文語體라 現實과 맞지 않는 境遇가 많다. 시트콤 臺本을 쓰면서 입에 착 붙는, 날것 그대로의 臺詞를 쓰는 法을 익혔다”고 말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素材發掘부터 臺本 作成까지 두루 經驗한 그는 2010年 同時에도 挑戰했다. 多文化 家庭 아이의 아픔을 다룬 同時 ‘胡주머니 속 알沙糖’으로 2010年 조선일보 新春文藝 同時部門에 當選됐다. 童話作家에서 放送作家, 詩人으로 끊임없이 外延을 넓혀 온 이 作家는 “專攻만 판다는 强迫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들의 삶을 再現하는 것은 똑같아요. 具現 方式만 다를 뿐이죠.” “李도 저도 아닌 사람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 삶의 經路가 부끄럽지 않다”는 그는 “글 쓰는 바닥에서 最高의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게 꿈”이다. 童話와 靑少年 小說을 쓰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法을 배웠기에 ‘에이틴’ 같은 靑少年 웹드라마나, 映畫 ‘장화, 紅蓮’처럼 傳來童話를 現代的으로 再解釋한 映像物을 만들고 싶다. 끊임없이 限界를 깨 왔지만 如前히 삶은 팍팍하다. 印稅로 生活費를 充當하기에는 버겁다. 얼마 前 30代 後半의 한 後輩는 “더 늦기 前에 作家를 접고 公務員 試驗이라도 봐야겠다”고 했다. “펜을 잡는 瞬間 돈과 멀어지는 삶을 擇하는 거 에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自身의 信念을 지키며 他人에게 좋은 기운을 傳하는 일이에요. 그 使命感으로 버티는 거죠.” ● 네 番의 創業, 세 番의 廢業… 그럼에도 오늘도 앞치마를 맨다 이기혁 氏는 語學 硏修次 떠난 과테말라에서 커피를 만났다. 每日 아침 홈스테이 主人 아주머니가 한 盞 가득 따라주는 커피의 香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이디야커피 屯村店을 2011年 3月 차리며 카페 社長님의 꿈을 이뤘다. 10坪 남짓의 空間이었지만 最善을 다했다. 14日 이디야커피 屯村店에서 만난 이기혁 氏는 “‘這番에 綠茶라떼 津하게 해 달라고 하셔서 이番에도 津하게 탔어요’라고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線에서 단골손님들을 챙겨 드린다. 同業하고 있는 親舊는 이 建物 入住會社 部長님 아이의 옷도 사줬다”며 웃었다. 그렇게 그는 같은 자리를 11年 동안 지켰다. 12年次 베테랑 自營業者인 그도 新種 코로나 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 19)을 避해가진 못했다. 이디야커피 아래層에 차린 漫畫카페 ‘둔디야’는 코로나 19로 손님이 急減하면서 門을 닫았다. 하지만 危機를 機會로 만들고 싶었다. 2020年 여름 確診者數가 한자리臺로 떨어졌다. 억눌렸던 消費心理가 噴出될 것이라 確信했다. 廢業으로 서울 主要 商圈의 空室도 많았다. 4名의 知人들과 그해 9月 弘大入口驛 隣近에 室內布車 ‘淸泡’를 열었다. 카페 마감 뒤 靑布로 向한 그는 모두 잠든 새벽, 술과 按酒를 나르고 그릇을 닦았다. 死活을 걸었지만 코로나 19는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門을 연지 두 달 뒤인 11月 確診者 急增으로 營業 時間制限이 생긴 것. 赤字가 堪當할 수 없는 水準이 되자 門을 닫기로 決定했다. 그는 靑布에서의 經驗도 滋養分이 됐다고 말한다. “술집은 카페보다 손님 하나하나에 더 神經을 써야 해요. 카페는 飮料가 나가면 끝이지만 술집은 수저부터 主流, 飮食까지 繼續 챙겨드려야 하니까요. 손님을 보는 눈이 더 밝아졌어요.” 코로나 19 確診者 急增에 더해 低價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周邊에 門을 열면서 賣出이 30% 줄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도 이디야커피 屯村店으로 向한다. 앞치마를 매고 커피머신 앞에 선다. 一喜一悲하지 않고 默默히 할 일을 하는 것, 그가 4番의 創業과 3番의 廢業에서 배운 點이다. “조금만 賣出이 떨어져도 ‘亡하는 건가?’라며 마음이 躁急해졌어요. 이제 저 自身과 가게에 對한 믿음을 갖고 버티는 게 正答이란 걸 알아요. 眞心을 다하면 새로운 가게가 생겨도, 날씨가 궂어도 저희를 찾아주는 손님이 있거든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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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冊의 香氣]崇高한 犧牲, 責任感, 그리고 사랑의 記錄

    2006年 5月 이라크로 派兵된 美 陸軍 選任副士官 찰스 먼로 킹은 바그다드에서 가장 危險한 곳으로 惡名 높았던 駐르프 알 스카르에 配置됐다. 駐屯地에서 約 15km 떨어진 地域에 偵察地를 마련하라는 任務를 附與받은 그는 苦悶에 빠진다. 그곳으로 向하는 길에는 爆發物이 四方에 널려 있었기 때문. 結局 移動 中 爆發事故로 麾下의 兵士가 목숨을 잃는다. 죽음을 目擊한 그날 킹은 便紙에 이렇게 적는다. ‘그 親舊가 우리를 웃기려고 했던 우스꽝스러운 짓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고 슬그머니 微笑를 짓기도 했어. 웃음은 傷處 난 靈魂에 더할 수 없는 特效藥이야.’ 苦難 속에서도 웃음을 잃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는 아들 조던을 向한 것이었다. 2005年 12月 배 속의 아들과 아내를 뒤로하고 이라크로 떠난 킹은 2006年 10月 戰死하기까지 아버지 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아들을 위해 自身의 삶을 便紙로 남겼다. 그는 戰場 한복판에서 軍人으로서의 使命과 家族을 向한 사랑을 每日 적었다. 그가 世上을 떠난 後 同僚들은 그의 아내인 著者에게 便紙를 傳했다. 퓰리처賞 受賞者로 뉴욕타임스 記者인 그는 男便과 함께한 日常의 이야기를 便紙와 함께 엮어 冊으로 펴냈다. 킹은 運命처럼 서로 이끌린 아내와의 結實이 조던이라고 했다. ‘네 엄마는 아빠로 하여금 失敗한 移轉 結婚生活로 겪고 있던 挫折感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時間을 많이 들였는데 그런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글은 傷處를 보듬는 家族의 所重함을 새삼 일깨운다. 著者는 男便이 보낸 첫 文字메시지부터 첫 데이트에서 샐러드를 시킨 것까지 킹의 生前 모습을 仔細히 傳한다. 아버지의 助言은 實質的이고도 생생하다. ‘男子도 얼마든지 울 수 있어. 울음만큼 苦痛과 壓迫感을 덜어낼 수 있는 것도 없지’ ‘누군가 너의 決定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自身의 힘으로 堂堂히 서도록 해. 너의 人生이지 그들의 人生이 아니니까!’ 著者는 男便의 便紙를 받고 “戰爭이 그 사람을 우리에게서 永遠히 빼앗아간 게 아니란 걸 느꼈다”고 말한다. 父母여서 더 견디기 힘든 戰爭의 傷痕도 담겼다. 킹은 처음이자 마지막 休暇 때 집에 돌아와 밤마다 惡夢에 시달렸다. 그는 “이라크 아이들이 너무 많이 피를 흘렸다”고 울부짖었다. 部下들을 無事히 家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使命感으로 生死가 오가는 戰爭터에서 하루하루를 버틴 그는 ‘아빠가 여기서 겪은 어떤 經驗들은 여기에 차마 쓸 수 없구나’라고 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侵攻을 契機로 戰爭이 人間의 삶에 남기는 悽慘한 痕跡을 바라보는 요즘, 킹의 마지막 便紙를 되새겨본다. ‘恒常 家族을 돌보고 보람 있는 人生을 살아라. 아빠는 너를 사랑하고, 너의 엄마를 사랑한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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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마른 感情, 그림 보며 깨워보세요”

    프랑스 印象主義 畫家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3B’를 즐겨 그렸다. 예쁜 사람(Beauty), 아기(Baby), 動物(Beast)이 그것. 와인과 葡萄가 올려진 테이블 周圍로 男女가 餘裕롭게 對話하는 ‘船上파티의 午餐’(1881年),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들이 춤추는 ‘물랭 드 가레트의 舞蹈會’(1876年)에서는 가난이나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정작 르누아르의 삶은 餘裕나 幸福과 距離가 멀었다. 7日 만난 ‘마음챙김 美術館’(他人意思油)의 著者 金소울 美術治療師(38)는 “르누아르는 끼니를 걱정할 程度로 窮乏했지만 幸福하게 살기를 擇했다. 苦難이 닥쳐도 어떤 感情을 느낄지는 自身이 選擇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12日 出刊되는 冊은 그림을 통해 自我를 實現하고 他人과 健康한 關係를 맺는 方法을 다뤘다. 홍익대 美大를 나온 金 氏는 10餘 年 前 父母님의 反對를 무릅쓰고 美術治療를 工夫했다. “大學 時節 힘든 일을 겪어 心理相談을 받았어요. 그때 慰安을 얻어 그림으로 누군가를 治療해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美術治療硏究所를 차릴 때 稅務署 職員은 “누가 돈을 내고 美術治療를 받느냐”고 물었다. “每日 午前 9時부터 午後 9時까지 來談者와 만나고 있어요. 性犯罪 및 家庭暴行 被害者, 憂鬱症 患者, 進路 問題나 人間關係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等 다양한 이들이 와요.” 그 亦是 힘들 때마다 모네의 그림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精巧한 歷史畫가 主를 이룬 19世紀 初盤, 빛과 그림자의 强烈한 印象을 表現한 모네의 ‘引上: 해돋이’는 “붓질조차 서툰 아마추어의 그림”이라는 惡評을 받았다. 하지만 時間이 지나 이 作品은 印象主義時代를 연 傑作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安住하지 않고 나아가는 데 모네의 그림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그는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그림으로 덴마크 畫家 게르다 베게너(1886∼1940)의 ‘릴리 엘베의 肖像’(1928年)과 ‘窓門 앞 두 女性’(1920年代)을 推薦했다. 베게너는 火가 릴리 엘베(1882∼1931)가 世界에서 처음 女性으로 性轉換 手術을 하기 前 男子였을 때의 아내. 그는 엘베의 肖像畫를 통해 性小數者에 對한 偏見을 克服하고자 했다. 畫家의 삶을 알아야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感情 狀態에 따라 똑같은 그림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통해 內面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氣分이 좋아지는 그림을 定해 必要할 때마다 보는 것도 좋은 方法이다. “서른이 넘으면서 感情이 굳어버린 것 같다는 분들이 많아요. 누군가를 强烈히 사랑했던 感情, 미워했던 感情까지 다 묻어버리는 데 익숙해진 거죠. 그림을 통해 내 안의 잠든 感情을 깨워 보는 건 어떨까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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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苦難 닥쳐도 어떤 感情 느낄지는 本人 選擇…그림 통해 感情 깨워보세요”

    프랑스 印象主義 畫家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3B’, 卽 예쁜 사람(Beauty), 아기(Baby), 動物(Beast)을 즐겨 그렸다. 와인과 葡萄가 올려진 테이블 周圍에서 男女가 餘裕로이 對話를 나누고 있는 ‘船上파티의 午餐’,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들이 함께 춤을 추는 ‘물랭 드 가레트의 舞蹈會’ 等 그의 代表作들에는 가난이나 슬픔이 없다. 정작 르누아르의 삶은 餘裕와 幸福과는 距離가 멀었다. 7日 만난 美術治療師이자 ‘마음챙김 美術館’(他人意思油)의 著者 金소울 氏(38)는 “르누아르는 끼니를 걱정할 程度로 窮乏했고,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으며 支援해주는 家族도 없었지만 幸福하기를 擇했다. 苦難이 닥쳐도 어떤 感情을 느낄지는 本人의 選擇과 意志라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12日 出刊되는 冊은 畫家의 삶이 投影된 그림들을 통해 어떻게 自我를 實現하고, 他人과 더 健康한 關係를 만들 수 있는지 傳한다. 金 氏가 碩士에 進學했던 10餘 年 前만 해도 美術治療는 非主流였다. 홍익대 美大를 나온 그가 美術治療를 工夫하겠다고 하자 父母님은 反對했고, 美術治療硏究所를 차릴 때 稅務署 職員은 “누가 돈을 내고 美術治療를 하느냐”고 물었다. 金 氏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며 勇氣를 얻었다. 精巧한 歷史畫가 主를 이뤘던 當時 빛과 그림자가 주는 印象을 表現한 ‘引上: 해돋이’를 보고 評論家들은 “붓질조차 서툰 아마추어의 그림”이라고 嘲弄했다. 以後 이 作品은 印象主義 時代를 열었다고 評價받았다. “사람들이 美術治療를 無視한다는 理由로 일찌감치 그만뒀다면 只今 제가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感情을 나누는 美術治療師가 될 수 있었을까요? 批判이 두렵더라도 익숙함에 安住하지 않고 繼續 앞으로 나아가는데 모네의 그림이 큰 힘이 됐어요.” 金 氏는 讀者들도 그림을 통해 지친 마음을 달래길 바란다. 그는 게르다 베게너의 그림들을 推薦했다. 베게너는 世界 最初로 女性으로 性轉換 手術을 한 릴리 엘베의 戀人이었다. 性小數者에 對한 差別이 甚했던 社會的 雰圍氣에도 不拘하고 베게너는 릴리를 있는 그대로 包容하는 것을 넘어 릴리를 뮤즈 삼아 그의 肖像畫를 畫幅에 담았다. “他人의 視線이 두려워 숨기는 내 眞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單 한 名만 있으면 돼요. 나를 眞心으로 支持해줄 單 한 名을 옆에 두는 것, 그리고 나 亦是 누군가에게 그런 存在가 되어주는 것이 삶에서 가장 重要한 價値임을 알았으면 합니다.” 畫家의 삶을 알아야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똑같은 그림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통해 自身의 感情을 確認해보는 것”을 推薦했다. 氣分이 좋아지는 그림을 定하고 氣分轉換이 必要할 때마다 꺼내보는 것도 그림을 즐기는 方法이다. “서른이 넘으면서 感情이 멈춰버린 것 같다고 털어놓는 來談者들이 많아요. 그건 內面을 들여다보지 않은지 오래됐다는 뜻이죠. 누군가를 强烈히 사랑했던 感情, 미워했던 感情, 무언가에 熱情을 쏟았던 記憶까지 모두 묻어버리는데 익숙해진 거죠. 그림을 통해 조금씩 내 안의 잠들었던 感情을 깨워보는 건 어떨까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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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도 ‘그냥 엄마’입니다”

    萬 세 살이 된 아이에게 離乳食을 먹이는 歲 엄마가 있다. 한 엄마는 아이의 옷을 다 벗긴 뒤 自身의 옷도 벗는다. 옷에 離乳食이 잔뜩 묻는 것을 막기 爲해서다. 또 다른 엄마는 아주 가벼운 플라스틱 숟가락을 使用한다. 아이가 飮食을 다 먹었는지 숟가락의 무게로 確認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自身의 무릎에 앉히고 손으로 아이의 입을 確認하면서 離乳食을 떠먹이는 엄마도 있다.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視覺障礙人 엄마다. 8日 만난 ‘그냥 엄마’(施工社·1萬7000원)의 著者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윤소연 氏(36)는 “視覺障礙人 엄마들은 無數한 施行錯誤를 거쳐 아이와 自身에게 가장 잘 맞는 育兒法을 찾는다”고 말했다. 4日 出刊된 冊은 視角障礙를 가진 세 엄마가 子女를 키우는 法, 障礙 父母에 對한 偏見 等을 담았다. 大學에서 幼兒敎育 講義를 하고 있는 尹 氏는 博士論文 主題로 ‘視覺障礙人 엄마의 養育’을 定했다. 4個月間 各 家庭을 여섯 番씩 訪問해 3時間씩 이들을 觀察했다. 視覺障礙人 엄마들은 離乳食 먹이기, 기저귀 갈기, 沐浴시키기 같은 育兒의 基本도 數百 番 反復해 손과 귀, 코 等의 感覺으로 익혀 나갔다. 아이가 걷기 始作할 때는 넘어지거나 부딪힐까 걱정돼 목에 방울을 달았다. 尹 氏는 “外出할 때 아이 혼자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는 아찔한 瞬間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가 便器 만지는 소리까지 안房에서 들을 程度로 視角 外의 感覺을 總動員해 아이에게 神經을 쏟는다”고 했다. 視覺障礙人 父母가 아이를 키우는 가장 重要한 方法은 對話다. 볼 수 없는 代身 말로 아이를 把握하는 것. 어린이집에 다녀와 머리핀이 없어졌으면 왜 머리핀이 없는지, 누군가와 싸우진 않았는지를 一一이 묻는다. “물 냄새는 어때?” “바람 소리를 들으니 뭐가 생각나?”같이 視角에만 限定짓지 않는 質問도 던진다. “세 家族의 共通點은 對話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이는 아이들의 言語能力 向上으로도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새가 있다’ 代身 ‘파란色 날개가 달린 새가 오른쪽으로 걸어가고 있어’라고 말해요. 父母의 障礙가 오히려 아이의 强點이 되는 것이죠.” 冊은 다음 달 오디오북과 디지털音聲圖書로, 8月頃 點字冊으로 各各 出刊될 豫定이다. 冊 表紙 題目 아래는 ‘그냥 엄마’가 點字로 表記돼 있다. 엄마 中 한 名은 題目을 確認하고는 눈물을 쏟았다. “이들도 앞이 보이지 않을 뿐 그냥 엄마예요. 아이와 엄마는 서로의 다름이 무엇인지 把握하고 맞춰 나가는 存在죠. 앞이 보이지 않는 모든 ‘그냥 엄마’들이 勇氣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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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빈 손예진 이정재 정우성 金宇彬 等 1億씩 寄附

    30日 結婚하는 俳優 현빈과 손예진을 비롯해 金宇彬 林英雄 김동욱 等 演藝人이 慶北·江原 地域 山불 被害 罹災民 支援 誠金을 8日 寄附했다. 希望브리지 全國災害口號協會는 현빈과 손예진이 함께 2億 원을, 이정재 정우성 金宇彬과 林英雄이 各各 1億 원, 俳優 김동욱이 5000萬 원을 傳達했다고 밝혔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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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준엽, 臺灣 俳優 쉬시위안과 結婚

    그룹 클론 出身의 구준엽(53)李 臺灣 俳優 쉬시위안(徐熙媛·46)과 結婚한다. 구준엽은 8日 인스타그램에 “저 結婚합니다. 20年 前 사랑했던 女人과 매듭 못 지은 사랑을 이어가려 합니다”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過去 1年間 交際했다. 구준엽은 “그女의 離婚 消息을 듣고 連絡했다. 婚姻申告만 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쉬시위안도 이날 自身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게 해준 모든 것에 感謝한다”고 썼다. 쉬시위안은 2011年 中國人 事業家 王샤오페이와 結婚해 1男 1女를 뒀으나 지난해 離婚했다. 쉬시위안은 臺灣 드라마 ‘꽃보다 男子’의 女主人公을 맡아 有名해졌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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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冊의 香氣]월든 湖水가를 거닐고 싶은 바쁜 現代人들에게 傳합니다

    1845年부터 2年 2個月 동안 美國 매사추세츠주 월든 湖水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自然 속에 파묻혀 살았던 美國 文人이자 思想家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그의 行動은 現代人이라면 한 番쯤은 꿈꿨을 ‘逃避’다. 쏟아지는 業務, 競爭에 지친 이들은 日常에서 벗어나 閑寂한 湖水가를 거니는 모습을 想像한다. 同時에 不必要한 消費와 貪慾에서 벗어나는 ‘無所有’의 삶도 渴望한다. 내가 眞짜 願하는 것, 眞正 必要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單 한 番이라도 眞摯하게 苦悶해본 적이 있었나. 著者 亦是 월든에서의 삶을 渴望했었다. 小路가 월든 湖水가에서의 삶을 記錄한 冊 ‘월든’은 500페이지가 넘는 厖大한 分量이라 玩讀에 番番이 失敗했지만 그는 서랍 속에 월든 湖水가 寫眞을 넣어 두고, 時間이 날 때마다 冊을 꺼내 들었다. 保證金 500萬 원에 月貰 40萬 원짜리 원룸에 살게 된 後 人間의 幸福과 삶의 意味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熾烈하게 苦悶하게 된 著者는 월든으로 떠난다. ‘小路의 모든 것에 對한 궁금症을 참지 못해’ 월든 투어를 떠났다는 著者는 小路가 살았던 오두幕과 숲길, 湖水가를 거닐며 조화로운 삶, 貪慾에서 자유로운 삶, 最小限의 삶을 살아갈 方法을 풀어냈다. 著者는 小路가 湖水가 통나무집에서 營爲했던 삶의 자취를 따라간다. 小路는 ‘하루 네 時間 以上 아무 目的 없이 自然과 오롯이 함께하는 散策을 하지 않으면 都大體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다’고 冊에 썼고, 著者 亦是 小路가 걸었던 散策길을 하루 終日 걸었다. 冊床과 椅子, 寢臺, 壁暖爐로만 채워진 그의 素朴한 房을 둘러보면서 ‘내가 가지려 하던 것은 正말 내게 必要한 것이었나’를 스스로 묻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小路의 삶에 對한 洞察도 共有한다. 特히 自然 속에서 貪慾을 버리고 ‘無所有’를 實踐한 그를 통해 우리 삶에서 價値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간다. 돈이나 物件의 不足함을 콤플렉스로 여기지 않았던 소로는 唯一하게 不足함을 느끼는 對象이 時間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健康이 좋지 않아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時間을 渴望했다. 어떻게 自身의 貴重한 時間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지 알면 ‘누구에게도 雇用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主體的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傳한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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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內 무슬림과 共存 解法 찾으려 寺院 100곳 누볐죠”

    2018年 6月 예멘 難民들이 內戰을 避해 濟州島에 들어온 뒤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恐怖症) 論難이 불거졌다. 이들 大部分이 무슬림이라는 事實이 알려지자, 예멘 難民 受容 反對 集會가 열리고 靑瓦臺 國民請願이 올라와 70萬 名의 同意를 받았다. ‘他人을 記錄하는 마음’(메디치)을 最近 펴낸 이수정 西江大 유로메나연구소 責任硏究員(37)李 國內 移住 무슬림을 인터뷰하기로 作定한 契機다. 當時 그는 國內 이슬람 建築 디자인을 硏究하기 위해 2018年 初부터 이슬람 寺院과 禮拜所를 찾아다녔다. 巨大한 돔이나 尖塔을 期待한 그가 맞닥뜨린 건 看板도 없이 屋塔이나 地下에 숨어든 禮拜所였다. 지난달 28日 서울 용산구의 이슬람 寺院인 서울中央成員에서 만난 그는 “建築物 硏究를 접으려던 次에 예멘 難民 事態가 터졌다”며 “다양한 國籍이나 宗敎를 가진 移住民이 늘고 있는 韓國에서 場所보다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더 重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國內 居住하는 外國人 무슬림은 約 15萬 名으로, 全國의 이슬람 宗敎施設은 150個假量 된다. 이 硏究員은 2018年부터 2年間 이슬람 宗敎施設 100餘 곳을 다니며 무슬림 移住者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韓國人과 겪는 葛藤 或은 差別의 經驗, 무슬림과 共存해야 하는 理由를 新刊에 담았다. 무슬림에 對한 差別的 視線은 이슬람 極端主義 테러리스트에서 비롯됐지만 팬데믹으로 더 深化된 樣相이다. 지난해 5月 江原 강릉시에서 라마단(이슬람 禁食聖月) 期間 食堂에 모인 무슬림 사이에서 集團感染이 터진 뒤 周邊 視線은 特히 곱지 않았다. “釜山에 있는 工場에 다니는 무슬림 勞動者가 ‘舍宅 밖으로 나가면 解雇하겠다’는 會社 通報를 받았다고 합니다. 宗敎모임에 나가는 걸 막으려고 外出을 禁止시킨 거죠. 京畿道가 모든 外國人 勞動者를 對象으로 코로나19 檢査를 받도록 한 것에 抑鬱함을 呼訴한 분도 있었어요.” 지난해에는 大邱 경북대 앞에 이슬람 寺院을 設立하는 過程에서 葛藤이 빚어졌다. 경북대로 遊學을 온 무슬림 學生들이 2014年부터 寺院 設立을 推進했는데 隣近 住民들이 騷音과 地域 슬럼化를 理由로 反對에 나선 것. 住民들은 工事場 入口에 車를 세워 工事를 막았다. 衝突이 커지자 地方自治團體는 무슬림 學生들에게 住民들과 合意하라며 工事 中止 命令을 내렸다. 이 硏究員은 “政府가 葛藤을 제대로 調律하지 않는 게 問題”라고 指摘했다. 유럽에서는 이슬람 寺院 設立을 놓고 葛藤이 생겼을 때 政府 主導로 仲裁委員會가 構成된다고 한다. 關聯 公聽會와 討論會가 열린 英國 런던 킹스턴어폰템스 地域이 代表的이다. 獨逸은 이슬람 團體와 政府 間 疏通機構인 ‘DIK’를 運營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仲裁위는 몇 年이 걸리더라도 討論會를 열어 合意點을 찾아간다. 韓國도 兩側의 意見을 調律하는 機構가 必要하다”고 말했다. 移住民을 우리가 讓步해야 하는 存在로 생각하지 말고 協議의 對象으로 보는 觀點의 轉換도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2020年 死亡者 數가 出生兒 數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發生한 狀況에서 移住民과의 共存은 必須가 됐다는 것. “移住 勞動者들은 韓國人이 忌避하는 3D 業種을 채우는 必須 勞動力이 됐어요. 무슬림이 流入돼 空室이 사라지고, 죽었던 商圈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왜 이들이 여기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苦悶해야 할 時點입니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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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張 여는 瞬間 保釋 만난듯… 29番째 게이고 作品 飜譯”

    日本作家의 小說冊을 즐겨 읽는 이라면 한 番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飜譯家 양윤옥(64·寫眞)이다. 國內에서 150萬 部가 팔린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雜貨店의 奇跡’(현대문학·2012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시리즈(문학동네·2009∼2010年) 等 日本 代表 作家들의 作品을 主로 飜譯했다. 特히 推理小說界의 巨匠 게이고의 小說 中엔 量 飜譯家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量 飜譯家가 15年間 飜譯한 그의 作品은 29篇에 達한다. 量 飜譯家는 24日 本報와의 電話 인터뷰에서 “最近 飜譯한 ‘調印計劃’은 1994年에 出刊됐지만 韓國엔 只今에서야 처음 紹介되는 게이고의 初期作”이라며 “첫 張을 펼쳤을 때 ‘드디어 숨은 寶石을 만났다’는 생각에 설렜다”고 말했다. 調印計劃은 스키점프 有望株 殺人事件을 통해 天才的 才能을 向한 人間의 欲望을 그린 作品이다. 量 飜譯家는 게이고의 文體에 對해 “登場人物의 表情이나 動作을 짧은 描寫로 켜켜이 쌓아가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에 精巧한 大型 建築物이 머릿속에 出現하는 느낌”이라고 說明했다. 게이고 文體를 잘 알기에 飜譯 過程에서 說明을 덧붙일까 苦悶되는 瞬間마다 ‘原文에 充實하기’를 따른다고 했다. 調印計劃에서도 原文에 쓰인 ‘날다’(飛)와 ‘뛰다(跳)’라는 單語를 놓고 苦悶하다 結局 元來 單語의 뜻을 살린 ‘날아오르다’와 ‘뛰어들다’로 飜譯했다. “天才 스키점프 選手 ‘니레이’는 점프 瞬間을 ‘날다’가 아닌 ‘뛰다’로 描寫합니다. ‘天才란 飛上하는 것이 아니라 段階를 밟아 跳躍하는 것’이라는 니레이의 생각이 담겨 있죠. 作家 意圖를 傳達하기엔 ‘날아오른다’, ‘뛰어든다’는 너무 平凡한 것 아닌가 苦悶했습니다. 說明을 덧붙이고픈 欲心도 들었지만 讀者들이 숨은 뜻을 알아줄 거라 믿었죠.” 原文에 손을 댈 때도 있다. 偏見이 들어간 表現이 憂慮될 境遇다. 하루키의 短篇集 ‘女子 없는 男子들’(문학동네·2014年) 中 ‘드라이브 마이 카’가 그랬다. 運轉技士 ‘미사키’가 運轉 途中 불붙은 담배를 窓밖으로 튕겨버리는 場面에서 하루키는 ‘加味주니타키초에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것이리라’라고 表現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것이리라’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것인지’라고 曖昧하게 얼버무려 飜譯했어요. 假想의 指名이라도 온 洞네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車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곳’이라고 表現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文章을 數十 개로 쓰는 執拗함도 있다. ‘女子 없는 男子들’ 中 ‘예스터데이’에서 ‘後斂句를 그야말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불렀다’라는 文章은 12가지 버전으로 써보며 苦悶했다. ‘쩌렁쩌렁한’의 原文은 ‘沐浴湯的인, 잘 들리는’이다. ‘가장 신나는 部分을 그야말로 沐浴湯敵으로, 구성지게 뽑아냈다’, ‘가장 高調되는 部分을 浴室 스타일로, 구성지게 뽑아냈다’ 等이 候補였다. 그는 “文章은 쉽고 便하게 느껴져야 한다는 생각에 冊에 나온 最終 文章으로 選擇했다.” 量 飜譯家는 飜譯家를 ‘구로고(黑衣)’에 比喩한다. 구로고는 日本 傳統演劇 가부키에서 觀客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온몸에 검은 천을 둘러쓰고 舞臺 進行을 돕는 이다. “飜譯者는 原作者의 ‘구로고’입니다. 原作을 最大限 우리말로 매끄럽게 紹介하는 것이 할 일이지요. 飜譯者가 自己主張을 하거나 얼굴을 내밀 일은 없어야 합니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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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冊의 香氣]朝鮮通信使의 눈에 비친 400年 前 日本 風景

    壬辰倭亂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와, 그의 아들 히데요리(1593∼1615)를 朝鮮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7年間 持續됐던 戰亂 後 約 10年 뒤인 1607年부터 다시 日本에 派遣되기 始作했던 朝鮮通信使의 記錄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申維翰이 1719年에 쓴 蛇行錄에는 ‘히데요시가 오사카에 살면서 싸움을 즐기고 奢侈하고 百姓의 膏血을 긁어다 欲心을 채웠다’는 記錄이 있다. 1607年 4月 9日 도요토미 家門의 本據地 오사카에 到着한 射倖院 鯨銛은 ‘해史錄’에 히데요裡에 對해 이렇게 적었다. ‘飮食을 먹을 때에도 風樂을 廢하지 않았고, 오직 豪華와 奢侈를 스스로 즐겼으며, 일의 處理가 많이 柔弱하므로 倭人들이 事理에 어둡고 어리석다고 한다.’ 히데요理가 敗亡하게 된 經緯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古典文學을 專攻한 뒤 朝鮮 後期 文化를 硏究해 온 著者는 1607年부터 1764年까지 總 11次例에 걸쳐 에도 幕府에 派遣됐던 通信社行들이 觀察한 오사카, 교토, 나고야, 에도 等 日本 主要 都市에 對한 記錄을 探究했다. 戰爭의 傷處가 가시지 않은 때, 朝鮮人들은 倭亂을 일으킨 히데요시와, 그를 물리친 도쿠가와 이에야스 麾下의 에도 幕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通信社行의 旅程은 오사카港 河口에서부터 始作됐다. 오사카 市內 나루터 周邊의 認可를 描寫한 記錄은 생생하다. 1719年 신유한은 이렇게 글을 남겼다. ‘모든 집의 담과 壁이 다 華麗하게 色漆을 하였다. 낮고 襲해서 居處할 수 없는 곳에는 푸른 풀로 金빛 방죽을 만들었는데 깨끗하여 침도 뱉을 수 없을 程度였다.’ 雜草가 난 곳조차 管理가 잘돼 있었다니, 淸潔을 重視하는 日本의 文化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便 朝鮮人들은 實權이 없는 日王을 批判的으로 바라보면서 이로 인해 벌어질 危險을 憂慮했다. 원중거는 “日王을 끼고 爭奪을 圖謀하는 者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저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면 邊方의 狡猾한 無理가 반드시 機會를 타서 우리 땅을 擄掠질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實際 에도 幕府가 무너진 뒤 日本은 朝鮮 侵奪에 나섰다. 壬辰倭亂과 丁酉再亂 때 日本으로 끌려간 朝鮮人인 ‘被虜人’에 對한 記錄은 戰爭이 남긴 傷處를 보여준다. 1636年 通信社行들이 지나갈 때 ‘자주 눈물을 닦으며 번거로이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疲勞人들이었다’는 記錄이 그렇다. 冊의 妙味는 通信社行들이 남긴 詳細한 記錄을 통해 400餘 年 前 日本 文化와 當時 사람들의 모습을 想像해 볼 수 있다는 點이다. 늦은 저녁 배를 타고 가다 江물에 놓인 다리를 본 조명채는 1748年 ‘空中에 밝게 빛나는 불 구슬이 문득 가까워져 오고, 만 길 뻗은 무지개가 뱃머리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고 적었다. 불 구슬은 다리 위에 밝힌 燈불이고, 무지개는 다리였다. ‘女人들이 閑暇로운 都會의 姿態를 더하고 粉漆을 狼藉하게 하여 눈을 絢爛하게 하였다’는 1764年 원중거의 교토 訪問 記錄도 興味롭다. 通信社行들의 글을 따라가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머릿속에서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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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壬辰倭亂 겪고 派遣된 朝鮮通信使가 본 日本 그리고 日本人

    壬辰倭亂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아들 히데요里를 朝鮮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7年 間 持續됐던 戰亂 後 約 10年 뒤인 1607年부터 다시 日本에 派遣되기 始作했던 朝鮮通信使의 記錄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申維翰이 1719年에 쓴 蛇行錄에는 ‘히데요시가 오사카에 살면서 싸움을 즐기고 奢侈하고 百姓의 膏血을 긁어다 欲心을 채웠다’는 記錄이 있다. 1607年 4月 9日 오사카 河口에 到着한 使行 中 한 名이었던 鯨銛은 ‘해史錄’에 히데요裡에 對해 이렇게 적었다. ‘飮食을 먹을 때에도 風樂을 廢하지 않았고, 오직 豪華와 奢侈를 스스로 즐기었으며, 일의 處理가 많이 柔弱하므로 倭人들이 事理에 어둡고 어리석다고 한다.’ 히데요理가 敗亡하게 된 經緯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古典文學을 專攻한 뒤 朝鮮 後期 文化를 硏究해 온 著者는 1607年부터 1764年까지 總 11次例에 에도 幕府에 派遣됐던 通信社行들이 觀察한 오사카, 교토, 나고야, 에도 等 日本 主要 都市에 對한 記錄을 探究했다. 戰爭의 傷處가 가시지 않은 때, 朝鮮人들은 倭亂을 일으킨 히데요시와, 그를 물리친 도쿠가와 이에야쓰 麾下의 에도 幕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通信社行의 旅程은 오사카港 河口에서부터 始作됐다. 오사카 市內 나루터 周邊의 認可를 描寫한 記錄은 생생하다. 1719年 신유한은 이렇게 글을 남겼다. ‘모든 집의 담과 壁이 다 華麗하게 色漆을 하였다. 낮고 襲해서 居處할 수 없는 곳에는 푸른 풀로 金빛 방죽을 만들었는데 깨끗하여 침도 뱉을 수 없을 程度였다.’ 雜草가 난 곳조차 管理가 잘 돼 있었다니, 淸潔을 重視하는 日本의 文化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便 朝鮮人들은 實權이 없는 日王을 批判的으로 바라보면서 이로 인해 벌어질 危險을 憂慮했다. 원중거는 “日王을 끼고 爭奪을 圖謀하는 者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저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면 邊方의 狡猾한 無理가 반드시 機會를 타서 우리 땅을 擄掠질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實際 에도 幕府가 무너진 뒤 日本은 朝鮮 侵奪에 나섰다. 壬辰倭亂과 丁酉再亂 때 日本으로 끌려간 朝鮮人인 ‘被虜人’에 對한 記錄은 戰爭이 남긴 傷處를 보여준다. 1636年 通信社行들이 지나갈 때 ‘자주 눈물을 닦으며 번거로이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疲勞人들이었다’는 記錄이 그렇다. 冊의 妙味는 通信社行들이 남긴 詳細한 記錄을 통해 400餘 年 前 日本 文化와 當時 사람들의 모습을 想像해볼 수 있다는 點이다. 늦은 저녁 배를 타고 가다 江물에 놓인 다리를 본 조명채는 1748年 ‘空中에 밝게 빛나는 불 구슬이 문득 가까워져 오고, 만 길 뻗은 무지개가 뱃머리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고 적었다. 불 구슬은 다리 위에 밝힌 燈불이고, 무지개는 다리였다. ‘女人들이 閑暇로운 都會의 姿態를 더하고 粉漆을 狼藉하게 하여 눈을 絢爛하게 하였다’는 1764年 원중거의 교토 訪問 記錄도 興味롭다. 通信社行들의 글을 따라가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머릿속에서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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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지친 마음 다독다독… 日常 椄木 哲學冊 ‘人氣’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哲學書가 人氣를 끌고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어크로스)처럼 出刊된 지 1年이 다 돼 가는 哲學書가 最近까지 베스트셀러 順位에 드는 哲學書의 ‘스테디셀러化’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月 出刊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敎保文庫 1月 綜合 月刊 베스트 8位, 人文 分野 月刊 1位에 오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末에 나온 新刊도 人氣다. 11月 出刊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인플루엔셜)는 1月 人文 分野 基準 敎保文庫 6位, 예스24 3位다. 12月에 나온 ‘데일리 필로소피’(다산초당)는 敎保文庫 13位, 10月 出刊된 ‘필로소피 랩’(윌北)은 예스24 20位다. 哲學書의 販賣量과 出刊 종수도 늘었다. 온라인 書店 예스24에 따르면 哲學·思想 分野 圖書 年間 販賣量은 2020年 前年보다 23.8% 減少했지만 지난해에는 60.7% 增加했다. 新刊 出刊 종수도 2020年 206種에서 지난해 290種으로 늘었다. 哲學書의 人氣 祕訣로는 日常과의 連結고리를 捕捉해 進入障壁을 낮추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點이 꼽힌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寢臺에서 나오는 法, 孔子처럼 親切을 베푸는 法 等 어려운 哲學的 思惟를 日常에 椄木했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는 파스칼, 프로이트 等 哲學者들의 말을 引用해 欲望, 사랑 等 나이가 들면서 抛棄하게 되는 것들을 抛棄해서는 안 된다고 强調한다. 표정훈 出版評論家는 “最近 人氣 있는 哲學書들은 어려운 哲學 知識을 說明하는 敎養書가 아니라, 哲學 知識과 洞察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마음의 休息을 얻는 自己啓發書 性格이 剛하다”고 分析했다. 팬데믹 長期化의 影響도 있다. 持續된 社會的 距離 두기로 心身이 지친 사람들이 마음을 달랠 冊을 찾는 것이다. 박숙경 예스24 課長은 “不安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慰安을 주는 ‘不安한 날들을 위한 哲學’(다산초당·2022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處方’(複복서가·2022년)은 幸福을 探究한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의 思想을 椄木했다”고 說明했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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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린 興行 날개 달고, 그때 그 小說 다시 날다

    國內에 飜譯 出刊된 지 오래된 外國 原作들이 映畫 興行에 힘입어 뒤늦게 빛을 보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推理小說 ‘나일江의 죽음’(1937年)은 ‘오리엔트 特級 殺人’(1934年)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년)에 비해 그동안 國內에서 큰 注目을 받지 못했다. 이 小說은 新婚夫婦가 탄 나일江의 豪華 旅客船에서 벌어지는 殺人 事件을 그렸다. 이를 原作으로 한 同名의 映畫가 9日 開封 後 엿새 동안 박스오피스 1位를 차지하면서 小說도 注目받고 있다. 21日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年 ‘애거사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黃金가지)에 묶여 出刊된 小說은 月刊 基準으로 販賣量이 約 500卷 水準에서 映畫 開封을 전후해 5000卷假量으로 10倍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12月 開封한 映畫 ‘드라이브 마이 카’의 原作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女子 없는 男子들’(문학동네·2014年)도 映畫 德을 봤다. 小說은 갑작스레 아내와 死別한 男子가 女性 運轉士를 만나 傷處를 治癒하는 過程을 담았다. 映畫는 지난해 프랑스 칸 國際映畫祭 黃金棕櫚賞 候補에 이어 올해 美國 아카데미賞 作品賞 候補에 올랐다. 이에 힘입어 지난달 22日 基準 原作 小說의 한 달 販賣量은 直前에 비해 約 5倍로 늘었다. 中國 小說家 옌롄커의 代表作 ‘人民을 위해 服務하라’(熊進知識하우스·2005年)도 23日 同名의 映畫 開封 消息이 알려지면서 이달 셋째 週 알라딘 小說·市·戱曲 部門 14位에 올랐다. 小說은 中國 文化大革命을 背景으로 師團長 아내와 젊은 士兵의 不倫을 통해 마오쩌둥 理念을 諷刺했다. 이 밖에 다른 小說 原作 映畫들도 開封을 앞두고 있어 出版界가 마케팅 效果를 期待하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監督,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主演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文’은 2018年 國內에 出刊된 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文’(프시케의숲)이 原作이다. 1920年代 美國 중남부에서 벌어진 인디언 殺人事件을 다룬 논픽션이다. 봉준호 監督의 ‘미키7’(假題)도 에드워드 애슈턴의 空想科學(SF) 小說 ‘미키7(Mickey 7)’을 原作으로 製作됐다. 國內에 아직 出刊되지 않은 이 冊은 複製人間이 다른 複製人間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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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冊의 香氣]빛, 그 波動과 粒子가 傳하는 感動의 本色

    太陽빛이 自然에 닿는 瞬間을 捕捉한 作品을 多數 남긴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太陽의 畫家’라는 修飾語가 붙는다. 그는 太陽빛의 强烈함을 드러내고자 點描法을 使用했다. 그가 햇빛의 變化에 따라 數十 番을 그렸다는 ‘씨 뿌리는 사람’에도 그 特徵이 녹아 있다. 노란色과 파란色 點이 對比를 이루는 밀밭은 灼熱하는 太陽이 밀밭 위에 일렁이는 느낌을 준다. 고흐가 즐겨 使用한 點描法은 어떻게 誕生했을까. 答은 빛의 性質과 特性을 硏究하는 光學에 있다. 프랑스 化學者 미셸 外製 슈브뢸은 實驗 中 隣接한 色에 따라 元來 色이 다르게 보이는 ‘丙齒 混合’을 發見했다. 이를 바탕으로 畫家들은 물감의 混合이 아닌 網膜에서의 混合을 통해 色을 認識토록 하는 點描法을 開發했다. 物理學者로 韓國科學技術硏究院 責任硏究員인 著者는 빛의 正體를 糾明하려고 努力한 科學者들과, 빛을 통해 世上을 아름답게 表現하고자 한 美術家들의 歷史를 追跡한다. 예컨대 카메라의 登場이 極寫實主義 畫風을 불러 일으켰고, 物理學 理論의 兩大 軸인 量子力學과 相對性理論이 마르셀 뒤샹과 살바도르 달리의 作品에 影響을 미친 이야기를 紹介한다. 光學의 創始者 아이작 뉴턴은 흰色으로 보이는 햇빛이 일곱 가지 色으로 나뉘고, 이를 합치면 다시 흰色이 되는 分光理論을 發見한다. 빛은 섞을수록 흰色에 가까워진다는 事實을 알아낸 것. 이를 契機로 비로소 畫家들은 빛을 畫幅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게 된다. 媒介體는 油畫물감. 이 물감에는 기름이 섞여 있어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고 매끄러운 느낌을 준다. 油畫물감을 여러 겹 덧漆해도 마치 色琉璃를 겹친 것처럼 透明한 效果를 낼 수 있다. 뉴턴에서 始作한 光學과 美術의 相互作用은 量子力學으로까지 나아간다. 量子力學에 따르면 電子의 正確한 位置와 運動量을 알 수 없고 오로지 確率爐만 記述할 수 있다. 이른바 ‘不確定性의 原理’다. 이는 選擇에 따른 無限大의 可能性을 想定하는 哲學 談論을 낳아 觀察者에 依해 完成되는 藝術로 이어졌다. 自轉車 바퀴, 男性用 小便器 等 旣成品을 그대로 가져온 뒤샹의 作品이 그 例다. 뒤샹은 “觀覽者의 觀點에서 解釋될 때 비로소 作品이 完成된다”는 哲學을 基盤으로 자유롭게 解釋될 수 있는 ‘열린 作品’들을 선보였다. 超現實主義 畫家 르네 마그리트의 作品 ‘禁止된 再現’은 보는 瞬間 눈을 疑心하게 된다. 洋服을 입은 男子는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는데, 그의 앞에 놓인 거울도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男子가 自身의 正面을 直視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他人의 視線으로 自身을 바라보는 걸까. 마그리트는 눈에 보이는 것을 疑心하고, 그 안에 숨은 意味를 想像하는 過程을 意圖했는지 모른다. 光學부터 相對性理論까지 物理學의 主要 槪念이 作品에 녹아든 過程을 파헤치는 이 冊을 읽으면 그림의 觀覽者를 넘어 畫家의 觀點을 經驗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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