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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紀의 美人’ 가슴 위에서 燦爛하게 빛나는 熱情의 象徵|週刊東亞

名品의 主人公

‘世紀의 美人’ 가슴 위에서 燦爛하게 빛나는 熱情의 象徵

  •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入力 2020-04-14 10: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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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르띠에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 [Getty Images/Timelife, Archives Cartier © Cartier]

    까르띠에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 [Getty Images/Timelife, Archives Cartier ⓒ Cartier]

    1969年 10月 23日 美國 뉴욕. 競賣會社 파크 버넷(Parke-Bernet)李 69.42캐럿이나 나가는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競賣에 부쳤다. 이 다이아몬드는 1966年 南아메리카의 프리미어 鑛山에서 發見됐다. 採取 當時 무게는 240.80캐럿에 達했다. 이 돌은 78캐럿과 162캐럿의 두 덩어리로 分離됐고, 이 中 162캐럿의 큰 덩어리가 69.42캐럿으로 細工된 것이었다. 

    競賣가 始作될 때 價格은 20萬 달러였다. 한동안 激烈하게 入札이 오간 끝에 다이아몬드 去來 歷史上 처음으로 100萬 달러가 넘는 105萬 달러에 落札됐다. 다이아몬드 購入者는 바로 프랑스 주얼리 會社 까르띠에(Cartier)였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를 사가는 사람이 落札 받은 다이아몬드에 自身의 이름을 붙일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 다이아몬드는 購入者 이름을 따 ‘까르띠에 다이아몬드’로 불리게 됐다.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를 꼭 손에 넣고자 하는 男子가 있었다. 俳優 리처드 버튼(1925~1984)이었다. 리처드 버튼은 競賣 前부터 큰 關心을 보였고 競賣에도 參席했다. 競賣가 進行되면서 呼價가 65萬 달러에 이르자 까르띠에와 버튼, 2名의 入札者만 남았다. 하지만 100萬 달러에 이르자 버튼은 抛棄했고 結局 105萬 달러에 까르띠에가 落札 받았다.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

    1969년 경매 포스터(왼쪽).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의 40번째 생일 파티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구글이미지, 그레이스켈리 페이스북 캡처]

    1969年 競賣 포스터(왼쪽).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王妃의 40番째 生日 파티에 參席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구글이미지, 그레이스켈리 페이스북 캡처]

    保釋 愛好家로 有名한 리처드 버튼은 한동안 이 다이아몬드를 購入하려 애썼으나 失敗만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에게 이 獨特한 다이아몬드를 膳物하리라고 굳게 決心했다. 

    마침내 그는 까르띠에를 說得해 69.42캐럿의 다이아몬드를 110萬 달러에 購入할 수 있었다. 單, 까르띠에는 뉴욕 5番街에 位置한 賣場에 다이아몬드를 며칠間 陳列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條件을 걸었고, 리처드 버튼은 이를 受容했다. 



    그 後 며칠間 數千 名이 까르띠에 賣場에 몰려들어 宏壯한 이야기를 담은 다이아몬드를 구경했다. 다들 이 다이아몬드가 傳說的인 별이 될 것이라 믿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다이아몬드가 半指로 끼기에는 너무 커서 까르띠에 側에 목걸이 펜던트로 만들어달라고 付託했다. 

    까르띠에는 펜던트나 半指에 끼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結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世上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中 하나인 69.43캐럿짜리 페어 셰이프(Pear Shape·西洋의 배 模樣) 다이아몬드를 男便으로부터 膳物 받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으로 이 목걸이를 하고 나타난 行事는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王妃의 40番째 生日 파티였다. 보랏빛 눈을 지닌, ‘世紀의 美人’으로 불린 女俳優의 가슴 위에서 燦爛하게 빛나는 이 다이아몬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불태운 熱情을 象徵하게 됐다. 

    이런 理由로 이 다이아몬드에는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保釋 歷史의 한 張을 記錄한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誕生했다.

    까르띠에와 世紀의 로맨스

     약혼반지를 착용한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상류 사회’의 장면들과, 10.48캐럿의 약혼반지. [© Dennis Stock/Magnum Photos , © MGM, coll Sunset Boulevard, © Cartier]

    約婚斑指를 着用한 그레이스 켈리가 主演을 맡은 映畫 ‘上流 社會’의 場面들과, 10.48캐럿의 約婚斑指. [ⓒ Dennis Stock/Magnum Photos , ⓒ MGM, coll Sunset Boulevard, ⓒ Cartier]

    1962年 映畫 ‘클레오파트라’ 撮影場에서 主演俳優로 만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됐다. 當時 두 사람 모두 配偶者가 있는 狀態라 만남부터 全 世界를 떠들썩하게 했다. 테일러는 8番의 結婚과 離婚을 거듭한 것으로도 有名하다. 그 8番의 結婚 中 2番이 버튼과의 結婚이었다.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러브 스토리는 ‘世紀의 로맨스’라고 할 程度로 話題가 됐다. 離婚과 再結合, 또 한 番의 離婚에도 두 사람의 사랑이 熱情的이었음을 否定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實際로 테일러는 生前에 自身이 죽으면 “前男便인 리처드  버튼 의 故鄕에 뿌려달라” 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熱情的인 사랑의 媒介가 바로 까르띠에 다이아몬드인 셈이다. 


    결혼식날 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를 착용한 캠브리지 공작 부인, 케이트 미들턴(왼쪽).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 [© Dan Kitwood/Getty Images, © Cartier]

    結婚式날 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를 着用한 캠브리지 公爵 婦人, 케이트 미들턴(왼쪽).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 [ⓒ Dan Kitwood/Getty Images, ⓒ Cartier]

    까르띠에 다이아몬드는 버튼-테일러 커플 外에도 수많은 魅惑的인 러브 스토리의 核心 素材로 자리해왔다.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王世子 레니에 3歲의 10.48캐럿 約婚斑指, 1936年부터 英國 王室의 家寶로 傳해 내려오다 2011年 英國 캠브리지 公爵 夫人의 머리를 裝飾해 話題가 된 까르띠에의 ‘헤일로(Halo)’ 티아라 까르띠에 다이아몬드가 代表的이다. 

    約婚斑指에서부터 結婚 禮物, 웨딩 티아라에 이르기까지 神話와도 같은 커플의 로맨스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이 까르띠에다.

    173年 傳統의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레드박스에 담긴 다이아몬드 반지. [© Cartier]

    레드박스에 담긴 다이아몬드 半指. [ⓒ Cartier]

    世界 最高 週얼러 까르띠에는 1847年 프랑스 파리의 寶石 아틀리에로 始作한 以來 뛰어난 審美眼과 匠人精神으로 ‘王의 寶石商, 寶石商의 王(Jeweler to kings, king of jewelers)’이라는 稱頌을 받았다. 까르띠에 歷史에서 創立者의 孫子 루이 까르띠에는 다이아몬드를 ‘永遠한 사랑을 담은 保釋’으로 만들어놓은 最初의 人物이다. 19世紀 末 그는 다이아몬드 光彩를 損傷시키지 않고 極度로 節制된 세팅을 디자인하기 始作했다. 

    다이아몬드가 가장 빛나는 세팅을 創造하고자 루이 까르띠에는 실버 素材 代身 플래티넘으로 半指를 만드는 作業을 했고, 結局 플래티넘을 웨딩 링의 完璧한 材料로 변화시켰다. 또한 그는 다이아몬드를 安全하게 固定할 수 있는 程度로만 가장자리를 에워싸는 金屬發(prong) 또는 물림쇠(claw)를 使用한 세팅을 考案해냈다. 이러한 마운트는 가장 單純한 버전으로 縮小돼 裝飾的인 모티프들은 뒤로 물러난 反面, 다이아몬드 빛의 反射가 가장 重要한 要素가 된 것이다. 오직 다이아몬드만을 위한 이 특별한 스타일과 表現法은 持續的으로 發展해왔다. 스타일에 對한 이러한 깊은 探究는 各其 다른 세팅을 創造하게 만들었으며, 173年 동안 다이아몬드 주얼리의 새로운 歷史를 써나가고 있다.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링

    솔리테어 1895 파베 링(왼쪽). 까르띠에 데스티네 솔리테어 링. [© Cartier]

    솔리테어 1895 파베 링(왼쪽). 까르띠에 데스티네 솔리테어 링. [ⓒ Cartier]

    까르띠에의 傳統的인 或은 現代的인 웨딩 링은 언제나 심플하다. 이 簡潔함이 다이아몬드의 完璧함을 돋보이게 한다. 다이아몬드들은 各其 自己만의 링이 있으며, 各各의 링은 唯一無二하다. 가장 조심스럽게 選擇된 原石을 使用해 까르띠에의 精誠을 담은 手工으로 製作한 것이 바로 ‘사랑의 象徵’, 웨딩 링이다. 까르띠에는 ‘새로운 人生을 始作하는 커플에게 最上의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所藏할 수 있는 機會를 膳物한다’를 모토로 하고 있다. 魅惑的인 光彩를 지닌 다이아몬드와 함께하는 로맨틱한 프러포즈가 모든 女性이 꿈꾸는 最高의 瞬間이라는 事實을 까르띠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 솔리테어링과 어울리는 갈랑트리 드 까르띠에 네클리스, 이어링(메건 마클이 실제로 착용한 이어링). [© Cartier]

    代表 솔리테어링과 어울리는 갈랑트리 드 까르띠에 네클리스, 이어링(메건 마클이 實際로 着用한 이어링). [ⓒ Cartier]

    世紀의 러브 스토리에 어김없이 登場하는 優雅한 레드박스의 主人公이 되는 幸福한 想像과 함께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링은 女性들의 로망 自體가 된다. 까르띠에 다이아몬드에 對한 女性들의 期待는 매우 특별했다. 레드박스에 담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주얼리가 自身을 最高 主人公으로 만들어주리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까르띠에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커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있다. 

    保釋·주얼리에 對한 사랑이 대단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내 寶石과의 사랑 이야기(My Love Affair with Jewelry)’라는 冊을 出刊했다. 冊을 보면 그는 까르띠에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의 主人이자 保釋·주얼리 愛好家였을 뿐 아니라, 빛나는 寶石이 眞正한 價値를 찾을 수 있도록 몸소 實踐한 人物이었음을 알 수 있다. 只今은 故人이 된 그는 生前에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寶石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을 所有할 수는 없다. 寶石이 나에게 준 歡喜와 感動 때문에 暫時 鑑賞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冊에서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를 몇 年 後 팔아야 해 只今도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1979年 그는 버튼으로부터 膳物 받은 다이아몬드를 뉴욕 한 寶石商에게 팔았다. 價格은 無慮 500萬 달러(藥 61億 원).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판 理由가 있었다. 南아메리카 보츠와나에 病院을 建立할 基金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8番의 結婚 遍歷과 華麗한 美貌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數十 年間 社會事業家로 살았다. 1999年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財團’을 設立해 慈善 活動을 펼쳤으며, 그해 12月 英國 王室로부터 男性의 記事(knight) 作爲에 該當하는 데임(dame) 爵位를 받았다.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는 그렇게 수많은 生命을 救하는 데 쓰인 傳說的인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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