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堈
(李剛,
1878年
4月 18日
~
1964年
10月 13日
)은
大韓帝國
의
獨立運動家
이다. 雅號(雅號)는 烏山(吾山, 鰲山)이다.
[1]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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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平安南道
룡강군
出生으로
1903年
하와이
로 勞動 移民을 떠났다. 하와이에서 英語를 배운 뒤 이듬해인
1904年
샌프란시스코
로 移住했다. 그는 이곳에 와 있던
안창호
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安昌浩가 創設한
共立協會
에 參加하여 《
공립신보
》의 主筆을 지냈다.
1907年
安昌浩가 歸國하여 組織한
新民會
에 參加하였으며, 곧
러시아
로 移動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에 新民會 支部를 設置하고 《
海藻新聞
》과 《
大同公報
》를 發行했다. 이때
安重根
과 가깝게 지냈으며, 그의
이토 히로부미
狙擊을 後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
1919年
3·1 運動
以後 러시아領에서의 獨立 運動 團體들이 合作한
大韓國民議會
, 武裝 獨立 運動 團體인
臣民團
을 組織했다. 그러나 與件이 어렵자
1923年
상하이
로 亡命,
大韓民國 臨時政府
에 加擔했고 議政院 議長 等을 지냈다. 이 期間 中
中國
에서 日本 警察에게 逮捕되어
1928年
부터
1930年
까지
平壤刑務所
에서 服役하기도 했다.
1962年
建國訓長
독립장이 授與되었다.
以外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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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
韓國獨立黨
拷問 兼 最高委員(1946年 ~ 1963年)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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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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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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