俛仰亭

俛仰亭
(?仰亭)
대한민국 全羅南道 記念物
2015年에 撮影된 俛仰亭
種目 記念物 第6號
( 1972年 8月 7日 指定)
數量 1棟
時代 朝鮮時代
位置
담양 제월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담양 제월리
潭陽 제월리
潭陽 제월리(大韓民國)
住所 全羅南道 潭陽郡 봉산면 俛仰亭로 382-11 (제월리)
座標 北緯 35° 17′ 4″ 東經 126° 57′ 38″  /  北緯 35.28444° 東京 126.96056°  / 35.28444; 126.96056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俛仰亭 (?仰亭)은 大韓民國 全羅南道 潭陽郡 봉산면 제월리에 있는 朝鮮時代 의 建築物이다. 1972年 8月 7日 全羅南道의 記念物 第6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俛仰亭은 中宗 28年(1533)에 俛仰亭 宋純 (1493∼1582)先生이 官職을 떠나 선비들을 가르치며 餘生을 보내던 精子로, 退溪 李滉을 비롯한 有名人士들과 學問에 對해 討論하던 곳이다.

朝鮮 中期 文臣인 宋純 先生은 過去에 及第한 後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末年에는 學問에 專念하면서 많은 冊을 著述하였다. 처음 있던 亭子는 宣祖 30年(1597) 壬辰倭亂으로 破壞되어, 孝宗 5年(1654)에 後孫들이 다시 지었다.

程子는 앞面 3칸·옆面 2칸 規模이며, 지붕은 옆面에서 볼 때 여덟 팔(八)字 模樣인 八作지붕이다.

俛仰亭은 簡素한 樣式의 建物이기는 하지만, 歷史的 價値가 커서 重要한 資料가 된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이 亭子는 宋純(宋純, 1493 ~1582)李 官職을 그만두고 故鄕에 내려와 지은 것이다. 松筍은 退溪 李滉 先生을 비롯하여 江湖諸賢들과 學問이나 國事를 論하기도 하였으며, 기대승 , 고경명 , 林悌 , 鄭澈 等의 後學을 길러냈던 由緖 깊은 곳이다. [1]

建物은 正面 3칸, 側面 2칸이며, 全面과 左右에 마루를 두고 中央에는 房을 配置하였다. 골기와의 八作지붕 [2] 建物이며, 추녀의 各 귀퉁이에는 滑走(活柱, 기둥)가 받치고 있다. 現在의 建物은 여러 次例 補修를 한 것이며, 1979年과 2004年에 지붕을 새로 올렸고, 周邊 대나무와 雜木을 除去하여 視野를 確保하였다. [1]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現地 案內文 認容
  2. 八作지붕은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아 만든 지붕이다.

參考 資料 [ 編輯 ]

  • 俛仰亭 -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