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外同胞廳
(在外同胞廳)은 在外同胞에 關한 事務를 管掌하는
大韓民國의 中央行政機關
이다. 廳長은 次官級 政務職公務員으로, 次長은 高位公務員團 可等級에 屬하는 一般職 또는 外務公務員으로 補한다.
所管 事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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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在外同胞政策의 樹立·施行에 關한 事務
- 在外同胞 및 在外同胞團體에 對한 支援에 關한 事務
- 在外同胞 支援 서비스 政策의 履行에 關한 事務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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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府 樹立 當時
在外同胞
對策은 主로
在日 韓人
政策이 中心이 되었다.
日本
으로부터 막 獨立했던 탓에 日本에 남아있는 韓國人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日本과의 外交 關係가 樹立되어 있지 않아
李承晩 政府
에선 解決이 遙遠했다.
朴正熙 政府
가 出帆한 뒤
韓日基本條約
이 締結되었지만 日本 政府는 如前히
在日 韓國人
을 差別했고 이에 政府는 1967年 僑民請을 設置할 必要性을 느끼게 되었다.
[2]
海外 僑胞의 數가 늘어나는 것에 對處하여 外務部 僑民과를 僑民請으로 昇格·독립시키는 案件이 論議되었고
[3]
1971年 總選
때 野黨인
新民黨
이 僑民請 設置를 公約으로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政府組織 主務 部處이던 總務處의 反對로 이는 實現되지 못했다.
1980年에 施行된
8次 改正 憲法
에 在外國民 保護에 關한 條項이 包含되면서 또다시 僑民請 新設이 推進되었다.
[4]
海外 業務는 保健社會部가, 在外國民 敎育 業務는 문교부가, 海外 勤勞者 就業 問題는 勞動附加, 在外國民 弘報 業務는 문화공보부가 管掌하는 等 關聯 業務가 너무 分散되어 있어 統合할 必要性도 함께 提起되었지만 1981年 12月 政府는 僑民請 新設 計劃을 白紙化하고 有關 機關 間의 有機的 協助와 調整을 통해 僑民政策을 推進하기로 決定했다.
[5]
平和민주당
은
1988年 總選
때 다시 僑民請 新設을 公約으로 내세웠으나 갓 出帆한
노태우 政府
는 1989年 最終的으로 野黨이 提案한 僑民請·住宅靑 新設을 받아들이지 않아 無爲로 그쳤다.
[6]
하지만 1991年 9月 "海外僑胞들의 法的 地位와 2世 敎育 問題 等을 解決하기 위해 僑民請을 新設해야" 한다는
金大中
평민당 總裁의 發言
[7]
等 僑民請 新設 主張은 以後에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金永三 政府
에서 1997年 10月
在外同胞財團
이 出帆하여 關聯 事業을 맡게 되었다.
[8]
僑民請 設置를 오랫동안 主張했던
金大中
이 大選에서 勝利한 뒤 出帆한
김대중 政府
에서는 "僑民請을 行政官廳으로 設立하면 相對方 國家들이 銳敏하게 反應하는 側面이 있으므로 在外同胞財團을 잘 活用해야 할 것"이라며 僑民請 設立에 留保的 反應을 보였다.
[9]
1999年 僑民들의 財産權과 參政權을 保護하기 위한 「在外同胞醫出入國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을 制定하면서도 僑民請 新設을 包含되지 않았다.
[10]
노무현 政府
出帆 以後에도 關聯 論議는 繼續 이어졌지만 黨政 間의 意見 差異가 너무 甚했다. 與黨인
열린우리당
은
李華泳
議員이 在外同胞廳을 新設할 것을 主張했고
韓明淑
議員이 大統領 直屬 在外同胞敎育文化委員會를 新設할 것을 主張했는데 大體로 新設 政府 機構를 통해 在外同胞에게
韓國語
와
한글
을 가르치는 文化 支援 事業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在外同胞財團의 한 해 豫算이 200億 원에 不過해 제대로 活動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專擔 組織이 必要하다는 主張이었다. 하지만
이태식
外交部 次官은 "大統領 傘下 委員會 等이 外國 國籍을 가진 在外同胞에게 여러 支援 業務를 할 境遇 外交的 摩擦이 憂慮된다"라며 反對했다.
[11]
[內容 1]
與黨 內에서도 大統領 直屬機構로 在外同胞敎育文化委員會를 設置할지 外交通商部의 外廳으로 領事僑民請을 新設할지에 對해 意見 統一을 이루지 못했다.
[13]
2008年 出帆한
李明博 政府
도 在外同胞廳 設置에 微溫的인 反應을 보이며 在外同胞의 權益 保護를 위해 外交部 傘下에 在外同胞委員會를 設置하겠단 計劃을 밝히는 線에서 그쳤다. 다만 2009年 與黨인
한나라黨
所屬
洪準杓
議員이 在外同胞廳 設立을 骨子로 하는 「
政府組織法
」 改正案을 提出하는 일이 있었다.
[14]
2010年에는 國會에서 關聯 論議가 活潑해져 한나라당과
民主黨
은 外交通商部 傘下에 在外同胞廳 或은 海外僑民請을 設置할 것을,
自由先進黨
은 國務總理 傘下에 在外同胞處를 둘 것을 提案했다.
[15]
朴槿惠 政府
때도 關聯 論議는 이어졌다. 새누리黨 在外國民委員長을 맡고 있던
沈允肇
議員은 700萬 名이 넘는 在外同胞 社會 關聯 業務를 專擔할 在外同胞廳이 必要하다고 主張하며 「政府組織法」 改正案을 2015年 發議했으며
金星坤
새政治民主聯合
議員도 分散된 在外同胞 業務를 專擔할 在外同胞廳의 必要性을 力說했다. 하지만 外交部는 如前히 "趣旨에는 共感하나 少數民族 問題에 敏感한 中國 等과의 外交的 摩擦을 考慮해 現行 在外同胞財團 體制를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라며 只今까지의 立場을 固守했다.
[16]
2017年 大選
때는 主要 政黨의 候補의 政策 擔當者들이 하나같이 在外同胞廳 設置를 發表하며 支持를 呼訴했고
文在寅 政府
出帆을 前後로 與野를 莫論하고
朴炳錫
,
金炅俠
,
薛勳
,
金碩基
議員 等이 在外同胞廳 設置를 主張하며 「政府組織法」 改正案을 發議했지만 어느 것도 通過되지 않았다.
하지만 移民 政策·行政에 對한 需要가 나날이 增加하면서 關聯 機關의 設置 要求는 繼續 剛해졌다. 2022年 1月 金泰煥 名譽 韓國移民政策學會長은 "各 部處 移民行政 業務의 有機的인 執行을 위해 統合的인 移民行政 推進 體系, 卽 '이민청'을 設立해야 한다"라고 主張했고 리휘문
성결대學校
敎授도 脫北移住·勞動移住·結婚移住·同胞 歸還移住 等에 對한 政策을 하나의 行政 機關에 一任해 이민청 或은 移民政策委員會를 設置할 것을 提案했다.
[17]
이에 應하여
2022年 大選
을 앞두고
國民의힘
尹錫悅
候補도 在外同胞廳을 設立하여 在外同胞의 "所重한 權利와 安全을 지키겠다"라며 公約을 내걸었다.
[18]
尹錫悅의 當選 以後인 4月 外交部도 "統合的이고 體系的인 在外同胞 業務 專擔 機構로서 在外同胞廳 設置에 贊成"한다는 立場을 밝혔다.
[19]
10月
政府서울廳舍
에서 政府組織改編案이 公開됐다. 公約대로 在外同胞廳 新設이 包含되었지만
女性家族部
를
保健福祉部
의 下部組織인 人口家族兩性平等本部로 改編한다는 案이 包含돼 論難을 일으켰다.
[20]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도 在外同胞廳 新設에는 黨 次元에서 積極 協力하겠다고 했지만 "女性家族部를 廢止하는 改編案은 政爭의 素地가 强하다"라며 女性家族部 廢止에 反對의 뜻을 내비쳤다.
[21]
結局 國民의힘에서 女性家族部 改編은 追後 論議하기로 하면서 政府組織改編 協商은 빠르게 進行되기 始作했고 2023年 「政府組織法」 改正案이 通過되면서 그해 6月 在外同胞廳이 正式으로 出帆했다. 新設된 在外同胞廳은 外交部의 在外同胞 業務를 移管받았고 이와 함께 在外同胞財團의 權利와 義務도 承繼받았다.
沿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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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年 11月 4日:
外務部
政務局에 아주과·구주과·미주과를 設置.
[22]
- 1949年 5月 5日: 政務國 第2課에서 在外僑民에 關한 事務를 扮裝하게 함.
[23]
- 1955年 2月 17日: 政務局에 제3과를 設置하고 第2과의 業務를 移管.
[24]
- 1956年 3月 9日: 在外國民에 關한 事務를 政務國 아주科와 龜尾課에 移管.
[25]
- 1958年 9月 10日: 關聯 業務를 아주過勞 一元化.
[26]
- 1961年 4月 22日: 醫全國 領事課로 移管.
[27]
- 1961年 10月 2日: 政務國 僑民過勞 移管.
[28]
- 1963年 12月 17日: 亞洲國 僑民過勞 移管.
[29]
- 1970年 8月 17日: 領事局을 設置하여 業務를 移管.
[30]
- 1974年 9月 19日: 領事僑民國으로 改編.
[31]
- 1992年 7月 31日: 在外國民領事局으로 改編.
[32]
- 1998年 2月 28日:
外交通商部
所屬으로 變更.
[33]
- 2005年 12月 9日: 在外同胞領事局으로 改編하고 在外同胞領事大使를 設置.
[34]
- 2013年 3月 23日:
外交部
所屬으로 變更.
[35]
- 2018年 3月 30日: 在外同胞映寫室로 統合.
[36]
- 2023年 6月 5日: 在外同胞에 關한 事務를 分離하여 在外同胞廳으로 昇格.
[37]
組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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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國
|
擔當官室·科
|
廳長 傘下 下部組織
|
|
代辯人室
|
車掌 傘下 下部組織
|
企劃調停官실
|
企劃財政擔當官室ㆍ革新行政擔當官室
|
|
在外同胞서비스志願센터ㆍ運營支援과
|
在外同胞政策國
|
在外同胞政策과ㆍ동포지원제도과ㆍ미주유럽동포과ㆍ아주러시아동포과
|
交流協力局
|
在外同胞協力總括과ㆍ동포교육문화지원과ㆍ차세대동포인권과ㆍ동포경제인네트워크과
|
庭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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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在外同胞廳에 두는 公務員의 庭園은 다음과 같다.
[1]
總計
|
151名
|
政務職 界
|
1名
|
|
廳長
|
1名
|
|
外務公務員 界
|
48名
|
|
高位公務員團
|
2名
|
|
9等級 또는 3·4級
|
2名
|
|
8等級 以下
|
44名
|
|
一般職 界
|
102名
|
|
高位公務員團에 屬하는 一般職 또는 外務公務員
|
2名
|
|
3級 以下 5級 以上
|
38名
|
|
6級 以下
|
62名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內容主
[
編輯
]
- ↑
盧武鉉
이 2006年
그리스
를 訪問했을 때 열린 同胞懇談會에서 "韓明淑 國務總理가 海外同胞 政策에 宏壯히 關心이 많았는데 總理가 되고 나더니 아무 말도 안 한다"라며 "아마 同胞廳을 만들고 싶어 했는데 外交通商部는 '靑'을 만들기보다는 在外同胞財團의 일을 잘하게 하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했는데 이처럼 外交部의 在外同胞廳 新設 反對는 오래된 것이었다.
[12]
參照週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