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民國 檢察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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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察廳
Supreme Prosecutors' Office

檢察 CI
略稱 SPO
設立日 1948年 7月 17日
設立 根據 政府組織法 」 §32②, 「 檢察廳法 」 §2② 및 §3①
職員 數 10,745名 [1]
모토 幸福한 國民, 정의로운 檢察
總長 이원석
上級機關 法務部
大檢察廳 廳舍

檢察廳 (檢察廳)은 檢事 에 關한 事務를 總括하는 大韓民國의 中央行政機關 이다.

檢察廳은 大檢察廳 , 高等檢察廳, 地方檢察廳 等을 아울러 이르는 表現으로 各各 大法院, 高等法院, 地方法院 等에 對應하여 設置하며, 支援에 對應해서 支廳을 設置할 수 있다. 各 檢察廳의 管轄區域은 各 法院의 管轄區域에 따른다.

役割과 職務

檢察廳은 檢事의 事務를 總括하는 機關으로, 檢事의 具體的인 職務와 權限은 다음과 같다.

  1. 犯罪搜査, 公訴의 提起 및 그 維持에 必要한 事項
  2. 犯罪搜査에 關한 司法警察官吏 指揮·監督
  3. 法院에 對한 法令의 正當한 適用 請求
  4. 裁判 執行 指揮·監督
  5. 國家를 當事者 또는 參加人으로 하는 訴訟과 行政訴訟 遂行 또는 그 遂行에 關한 指揮·監督
  6. 다른 法令에 따라 그 權限에 屬하는 事項

刑事訴訟法上 權限

刑事訴訟法 」 第246條 "( 國家訴追主義 ) 公訴는 檢事가 提起하여 遂行한다"와 第247條 "( 起訴便宜主義 ) 檢査는 "「刑法」 第51條의 事項을 參酌하여 公訴를 提起하지 아니할 수 있다"를 통해 犯罪를 起訴하여 訴追하는 權限을 國家機關인 檢事만이 갖는 起訴獨占權( 起訴獨占主義 )을 가지고 있다."고 흔히 알려져 있으나 警察도 法律에서 罰金이나 懲役 또는 罰金으로 處罰하는 事件에 對해 處分하는 卽決審判이라는 訴追權이 있다.

沿革

設立

1948年 8月 2日 國會 가 '檢察廳法'을 制定·公布하면서 檢察廳이 設立되었다. [2] 이때부터 法院으로부터 獨立的인 檢察活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組織

批判

檢察에 對한 批判은 主로 政權과 權力에 따른 搜査 中立性 違反과, 賂物 等 淸廉性 問題다. 한나라黨 정두언 議員은 "國民 모두가 犯人과 背後를 아는데 檢察만 모르는 事件도 한 두건이 아니었다"라며 檢察의 二重的인 모습을 批判했다. [3] 以後 檢察은 國會 司法改革特委에 所屬된 國會議員들을 뒷調査를 하여 物議를 일으켰다. [4] 民主黨 金振杓 院內代表는 "檢察 搜査權을 調整하려는 것은 帝王的 權利를 牽制와 均衡의 論理로 分配하자는 것"이라고 指摘했다. [5] 起訴猶豫를 利用하여 政權의 權力에 따라 免罪符를 주는 境遇도 많다는 指摘이 있다. [6] 2011年 6月에는 檢察과 警察이 檢事의 司法警察官 指揮에 對한 細部事項을 法務部令으로 定하기로 合意한 것을 國會 法査委가 大統領令으로 規定하도록 修正 議決한 것에 對해 極烈하게 反撥, 檢査場級이 集團으로 辭表를 내고 이어 平檢事들까지 辭表를 내면서 集團움직임에 對한 批判이 提起됐다. [7] 李明博 大統領도 "國民의 立場에서 成熟한 姿勢를 보여주기 바란다"라며 自制를 促求했다. [8]

2011年 8月에는 貯蓄銀行 關聯 事態에 對한 國政調査가 열린 가운데 檢察 幹部를 國會로 出席하도록 通報하였으나 한名도 나오지 않았고 이에 貯蓄銀行 國政調査 特委는 與野滿場一致로 檢察 幹部 6名에 對해 무더기 同行命令狀을 發付했지만 應하지 않았다. [9]

搜査權, 起訴權의 濫用

大韓民國 檢察은 刑事裁判에 對한 起訴權을 獨占하고 있으며(기소독점주의), 裁量에 따라 公訴를 提起하지 않을 수 있다(기소편의주의).

環境運動聯合 代表인 최열에 對한 搜査의 境遇, 檢察이 橫領으로 拘束令狀을 請求했다 法院이 이를 棄却하자 周邊 사람들을 調査한 뒤 斡旋受財 嫌疑로 다시 令狀을 請求하였다. 이 拘束 令狀이 또 棄却되자 최열을 不拘束 起訴하였으며, 一部에서는 [ 模糊한 表現 ] 大運河 事業에 妨害되는 環境團體의 代表를 길들이기 위한 性格이 있다고 批判했다. [10]

2000年 6月엔 法學 敎授 43名이 三星 이건희 會長 等 에버랜드 理事陣과 系列社 社長 等 33名을 에버랜드 便法贈與 事件으로 檢察에 告發한 事件 亦是 起訴便宜主義의 盲點으로 指摘되고 있다. 檢察은 告發 接受 뒤 3年 半동안 起訴하지 않고 擔當 檢事가 여러番 바뀐 끝에 2003年 12月 公訴時效를 하루 남겨두고 被告發人 33名 中 에버랜드의 前·現職 社長인 허태학·박노빈 두 사람만 特定經濟加重處罰法의 背任 嫌疑로 起訴하였다. 그나마도 나머지 31名에 對해서는 제대로 搜査를 하지도 않았다.

檢察에 對해 不利한 證言을 한 證人에 對한 僞證 搜査 亦是 問題點으로 指摘된다. 2010年 韓明淑 에 곽영욱이 賂物을 줬다는 疑惑에 對한 公判에서, 前 總理 公館 警護人이 "8年 넘게 總理 公館에서 勤務하는 동안 總理가 손님보다 늦게 午餐場에서 나온 적은 없다"라며 한명숙에 有利한 證言을 하자, 檢察은 이미 證言한 證人을 對象으로 "僞證 嫌疑로 搜査"한다며 再調査를 하기도 했다. [11]

이러한 檢察의 起訴獨占主義와, 起訴便宜主義 等 檢察이 絶對權力을 갖고 있는 나라는 全 世界的으로 類例가 없으며 檢察에 對한 改革이 時急하다는 點에서는 言論과, 市民團體, 各界 人士들과 政治權에서도 꾸준히 提起되고 있다. [12] 노무현 政府는 이러한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公職者非理搜査處 新設을 推進했으나 檢察을 비롯한 權力機關들과, 野黨의 反對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13] 李明博 政府도 檢察을 비롯한 高位公職者들의 問題를 把握하고 있으며, 李在五度 公職者非理搜査處 新設을 推進하기도 했으나 實質的인 結果物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14]

書類의 閱覽, 謄寫 命令의 拒否에 對한 批判

刑事訴訟法 第266條의4에 따르면, 檢事가 書類의 閱覽, 謄寫를 拒否하는 境遇, 被告人과 辯護人은 法院에 이를 命令하도록 要求할 수 있다. 龍山4區域 撤去 現場 火災 事故 에서 檢察이 警察 關係者에 對한 3000餘쪽의 記錄에 對한 閱覽, 謄寫를 拒否했다. 結局 抗訴審에서야 龍山 慘事의 遺族들이 서울 高等法院에 金碩基 前 서울地方警察廳長에 對해 낸 裁定申請 過程에서 公開 要請이 받아들여져 檢察의 搜査 記錄 3000餘 쪽이 公開됐다. 하지만 警察과 檢察은 이에 反撥해 裁判部 忌避 申請을 냈고, 結局 高等法院 刑事部와 大法院에 依해 棄却되었다.

偏頗 搜査

檢察總長의 任命權이 大統領에게 있기 때문에 檢察 組織이 權力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批判이 있으며, 그에 따라 政權마다 다른 性向의 大統領에 맞춰 搜査 原則이 바뀐다는 指摘도 받는다. 李明博 政府 들어서는 盧武鉉 前 大統領에 對한 搜査 2008年 촛불示威 搜査 , 無罪 判決이 났던 정연주 搜査 , 미네르바 搜査, 피디手帖 製作陣에 對한 起訴 , 韓明淑 搜査 , 民間人 査察 事件, 進步性向의 김상곤 京畿道 敎育監에 對한 搜査, 레프트21 販賣員을 不法集會로 起訴한 事件, [15] 민노당 後援 公務員에 對한 搜査와 起訴 等이 있다. [16] 민노당을 後援한 公務員은 5千원에서 2萬원에 不過한 少額임에도 不拘하고 强力하게 搜査·起訴한 反面, 한나라당을 後援한 公務員들에 對해서는 後援額이 數百萬원씩으로 確認되었음에도 無嫌疑로 搜査를 결론짓고 起訴도 하지 않아 偏頗搜査라는 批判을 받았다. [17] [18] 特히 盧武鉉 前 大統領에 對한 搜査는 拘束 與否를 迅速하게 결정짓지 않아 前職 大統領에 侮辱感을 주었다는 批判이 많았다. [19] 또한 한명숙 前 總理에 對한 搜査는 거짓證言과 함께 1時間만에 짜맞췄다는 證言이 나오면서 檢察의 廣範圍한 搜査 造作 論難이 불거지기도 했다. [20] 曺國 서울대학교 法大 敎授는 "疑惑의 對象으로 擧論된 人物은 모두 重要한 公人들이고 嫌疑도 무겁다. 檢察은 이 會長의 主張 가운데서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眞實인지 分明히 가려야 한다"라고 指摘했다. 하태훈 高麗大 法學專門大學院 敎授도 "李 會長이 資料를 提出하지 않거나 搜査에 協助하지 않는다고 해서 搜査가 意味 없다고 한다면, 搜査機關은 被疑者나 參考人의 입에 依存하는 搜査만 하는 것이냐"라고 批判했다. [21]

또한 미네르바(박대성)의 잘못된 主張에 對해서는 起訴를 하며 强力 對應한 것과는 달리 미네르바에 對한 잘못된 報道를 2個月에 걸쳐서 特種報道를 했던 新東亞 에 對해서는 아무런 起訴나 搜査조차 하지 않았다. [22] 民主黨 李春錫 代辯人은 BBK, 천신일, 라응찬, 民間人 査察 等의 例로 들며 새로운 證據가 繼續 나오고 있지만 再搜査만은 못하겠다는 態度 等을 들어 "檢察이 事實上 손을 놓은 搜査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批判했다. [23] 이에 對해 한나라당 洪準杓 最高委員은 "搜査에서 公正性을 이루고 있는가, 그것은 이 政府가 反省해야 될 問題"라고 批判했다. [24]

大檢 中搜部 에 對한 批判과 함께 存廢 論難도 꾸준하다. 2011年 6月 國會 法査委에서 中搜部 廢止가 合意되자 檢察은 强力히 反撥하며 搜査中인 事件을 中斷하기도 했다. [25]

檢察 腐敗 事件들

財閥들과의 賂物 收受 疑惑

檢察이 企業이나 財閥들에게 賂物을 받는다는 疑惑과 批判도 있다.

  • 2005年 7月 三星 X파일 事件 : MBC 이상호 記者가 22日 放送을 통해 三星 엑스파일을 公開했다. 엑스파일은 1997年 大選 過程에서 安企部 가 當時 三星그룹 李鶴洙 副會長과 中央日報 홍석현 社長의 對話를 盜聽한 錄音테잎과 이를 分析한 安企部의 報告書를 말한다. X파일에는 1997年 4月부터 10月까지 時時刻刻 變해가는 當時 政局을 反映한 三星그룹 의 全方位 로비實態가 담겨있던 것으로 全國民에게 큰 衝擊을 주었다. X파일에는 三星이 이회창 한나라당 候補에게 엄청난 賂物을 건냈으며, 最高位級 檢察 幹部들에게 名節때마다 1千萬원에서 5百萬원의 떡값을 뿌리며 檢察 人脈을 管理했다는 內容等이 包含되어 있었다. [26]
  • 2007年 김용철 이 暴露한 三星 祕資金 關聯 暴露 事件으로 인해 檢察이 財閥들에게 全方位的으로 賂物을 받았는지에 對한 論難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賂物들은 所謂 '떡값'이라는 名分으로 提供되었다는 主張들이 提起되었으며 이를 두고 '떡값을 받은 檢察'이라는 意味로 떡檢 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폰서와의 性接待
  • 2010年 4月 19日 MBC PD手帖 은 檢察과 스폰서間의 性接待에 對한 內容을 取材하였다. 建設業者 鄭某氏는 性接待를 拒絶한 檢事가 5%도 안되었다고 밝히면서 檢事들의 廣範圍한 性接待 疑惑에 對해 밝혔다. [27] 이로 인해 檢察은 言論과 國民으로부터 非難을 받게 됐다. [28] 以後 別途의 眞相調査委員會를 構成하여 調査를 하였으나 起訴된 檢査는 單 한 名도 없으며 이番 事件의 核心인 박기준 檢査 等도 解任이 아닌 免職 處分을 勸告했다. [29] 이러한 不實 搜査 論難 가운데 國會에서는 權力과 分離된 機關에서의 搜査가 必要하다는 共感 아래 스폰서 檢事 事件을 搜査할 特檢 法이 通過되었다. [30]
乘用車 賂物 事件
  • 2010年 特任檢事팀은 이날 特定犯罪 加重處罰法上 斡旋受賂 嫌疑로 拘束된 鄭某 前 部長檢事, 鄭 前 部長에게 高價의 乘用車를 提供한 S建設 金某 社長을 起訴했다. 鄭 前 部長은 金 社長의 告訴事件 便宜를 봐준 代價로 3400萬원 相當의 그랜저 乘用車를 받고 自身이 使用하던 市價 400萬원臺 中型乘用車를 金氏에게 준 嫌疑를 받고 있다. 特任檢事팀은 金氏 告訴 事件을 處理한 圖謀 檢査室의 崔某 搜査官(契長)도 2008年 金氏로부터 두 次例에 걸쳐 1000萬원을 받은 嫌疑로 不拘束 起訴했다. [31]
  • 2009年 9月 김종로 부산고검 檢事가 事件 請託 名目으로 박연차 태광産業 前 會長에게서 金品을 받은 嫌疑(斡旋受財)로 懲役 10月에 執行猶豫 2年, 追徵金 1千245萬원이 宣告됐다. [32]
部長檢事 賂物收受 疑惑
  • 2012年 11月 김광준 서울高檢 部長檢査가 서울중앙지검 特殊3部長 在職 時節, 有進그룹 系列社 代表 柳아무개(46)氏로부터 5億 9600萬원, 多段階 詐欺犯 조희팔 氏의 側近 강태용氏로부터 2億 7000萬원, 告訴 事件 撫摩 代價로 前 國家情報院 職員 夫人 金某氏로부터 8000萬원, KTF 任員 柳某氏로부터 旅行經費 2000萬원 等 9億6600萬원을 받은 嫌疑로 拘束되었다. 檢察은 特任檢事를 임명하여 搜査를 進行 中이다. [33]
執務室에서 被疑者와 類似性行爲 및 性關係
  • 監察本部에 따르면 地方 支廳 所屬으로 檢査 實務收拾을 위해 財經地檢에 派遣된 旣婚인 ㄱ檢事(30)는 이달 10日쯤 檢査 執務室로 被疑者인 女性 ㄴ氏(43)를 불러 調査하던 中 ㄴ氏에게 類似 性行爲 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ㄱ檢事는 며칠뒤 ㄴ氏를 九宜驛 1番出口에서 만나 車에 태워 다시 類似性行爲를 하였고 [34] 隣近 모텔로 데려가 性關係를 가진 것으로 調査됐다. 女性은 性關係 모두가 强壓에 依한 것이고 檢査는 相互合意下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主張하였다. ㄱ檢事는 地檢 自體 調査에서 ㄴ氏와 性關係를 가진 것은 認定하면서도 이를 問題삼지 않을 것을 合意했다고 主張한 것으로 알려졌다. [35]
性醜聞 事件

評價

2009年, 綜合 週刊誌 《시사in》李 實施한 調査에서 檢察에 對한 信賴度를 調査한 結果 10點 滿點에 4點 假量의 낮은 點數를 받았으며, 國民의 47.1%가 檢察을 不信한다고 對答했다. [36]

2017年에는 刑事政策硏究院이 發刊한 '韓國의 刑事司法 體系 및 管理에 關한 硏究' 報告書에 依하면 檢察은 法院·警察·矯導所·保護觀察所 等 5代 刑事司法機關 中 가장 낮은 點數인 2.61點을 받았다(5점 滿點). 또한 12.7%가 '信賴한다'고 答한 것에 비해, 58.7%가 '信賴하지 않는다'는 否定的 評價를 내렸다. [37]

같이 보기

各州

  1. 「檢事정원법」 第1條 및 「檢察廳 事務機構에 關한 規定」 別表 1·別表 2
  2. 檢察廳 홈페이지, 事件과 이슈
  3. 우은식 記者 (2011年 3月 16日). “정두언 "基本도 안하는 檢察, 로비할 廉恥 있나 " . 《뉴시스》 . 2018年 6月 29日에 確認함 .  
  4. “司改特委 委員들 "害코지 搜査 黨하나" 檢察 노이로제” . 《한겨레》. 2011年 4月 17日 . 2011年 4月 18日에 確認함 .  
  5. “정두언 "이건 國家라고 할 수도 없다 " . 《京鄕新聞》. 2011年 6月 20日 . 2011年 6月 20日에 確認함 .  
  6. 이범준 (2011年 6月 19日). “[뉴스分析]大統領도 못 막는 '帝王的 檢察 ' . 《京鄕新聞》 . 2011年 6月 20日에 確認함 .  
  7. “[社說]檢察, 國民 劫迫하는 '自害 行爲' 中斷하라” . 《京鄕新聞》. 2011年 6月 30日 . 2011年 7月 1日에 確認함 .  
  8. 박영환 (2011年 6月 30日). “李大統領, 김준규 檢察總長에 한마디 "成熟한 姿勢… " . 《京鄕新聞》 . 2011年 7月 1日에 確認함 .  
  9. 양영권; 도병옥 (2011年 8月 5日). “國會議員들의 憤怒, 檢察改革 다시 불붙었다” . 《머니투데이》 . 2011年 8月 7日에 確認함 .  
  10. 민경한 (2009年 6月 7日). “[寄稿] 檢察은 搜査·起訴權 濫用하지 말라 / 민경한” . 《한겨레》 . 2010年 3月 21日에 確認함 .  
  11. 노현웅 (2010年 3月 21日). “檢察 '韓明淑 警護員' 僞證嫌疑 調査” . 《한겨레》 . 2010年 3月 22日에 確認함 .  
  12. 勞動日 (2010年 4月 20日). “[詩論-勞動일] 檢察의 갈 길, 檢察의 살 길” . 《國民日報》 . 2010年 6月 9日에 確認함 .  
  13. 김남일 (2011年 3月 30日). “權力型非理 冷溫湯 搜査 '두얼굴의 中搜部' 運命은…” . 《한겨레》 . 2011年 4月 11日에 確認함 .  
  14. “李在五 "高位 公職者 非理 搜査處 新設 " . 《MBN》. 2009年 10月 27日 . 2011年 4月 11日에 確認함 .  
  15. 金智泰 (2011年 8月 6日). ' 레포트21' 거리販賣가 '不法集會'라는 不純한 視線들” . 《미디어오늘》 . 2011年 8月 7日에 確認함 .  
  16. 정제혁 (2011年 4月 18日). “政權 實勢엔 寬大, 批判勢力엔 苛酷 '亦是나 檢察 ' . 《京鄕新聞》 . 2011年 4月 18日에 確認함 .  
  17. 兆미덥; 송현숙 (2011年 8月 3日). “檢察, 政黨後援金 '두 個의 칼 ' . 《京鄕新聞》 . 2011年 8月 3日에 確認함 .  
  18. 김형노 (2011年 7月 22日). “檢察, 민노당 後援 敎師·公務員 무더기 起訴… 全敎組 等 反撥” . 《노컷뉴스》 . 2011年 7月 23日에 確認함 .  
  19. 김동현 (2010年 8月 13日). “洪準杓 "天安艦事態, 政府가 좀 利用한 것 같다 " . 《뷰스앤뉴스》 . 2011年 1月 21日에 確認함 .  
  20. 박유영 (2011年 1月 5日). " 韓明淑 9億 收受 거짓말, 1時間 만에 急造 " . 《뉴시스》 . 2011年 1月 5日에 確認함 .  
  21. 정제혁; 兆미덥 (2011年 9月 27日). “側近非理 搜査意志 없는 檢察‥ 名分도 解明도 未洽” . 《京鄕新聞》 . 2011年 9月 27日에 確認함 .  
  22. 李萬洙 (2009年 1月 19日). “檢察, "'신동아 미네르바' 搜査 必要性 없어 " . 《YTN》 . 2010年 5月 30日에 確認함 .  
  23. 조현호 (2010年 10月 24日). " 살아있는 MB政權 事件, 過去로 돌려 " . 《미디어오늘》 . 2010年 10月 24日에 確認함 .  
  24. 류정민 (2011年 1月 9日). “洪準杓 "올챙이 잡는 샐러리맨 檢事들 " . 《미디어오늘》 . 2011年 1月 10日에 確認함 .  
  25. 신윤정 (2011年 6月 5日). “政治權, "檢察 本分 잊어"‥저축은행 搜査에 緊張” . 《YTN》 . 2011年 6月 5日에 確認함 .  
  26. 盧會燦 (2008年 1月 8日). 《나를 起訴하라》. 情報와사람. 17~19쪽. ISBN   9788992913027 .  
  27. 송윤세 (2010年 12月 9日). ' 스폰서 暴露' 鄭氏 "性接待 拒絶한 檢事 5%도 안돼 " . 《뉴시스》. 2014年 12月 31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0年 12月 13日에 確認함 .  
  28. 조현철 (2010年 4月 20日). “PD手帖 '檢察-스폰서 密着' 告發” . 《京鄕新聞》 . 2010年 4月 20日에 確認함 .  
  29. 지영은 (2010年 6月 25日). ' 스폰서 波紋' 檢事長 2名 '免職' 處分” . 《MBC》 . 2010年 6月 26日에 確認함 .  
  30. 김남일; 高나무; 송경화 (2010年 6月 22日). ' 스폰서 檢事' 特檢法案 法司委 可決” . 《한겨레》 . 2010年 6月 26日에 確認함 .  
  31. “檢 '그랜저 檢事' 起訴…搜査 마무리” . 《全北中央新聞》. 2010年 12月 9日 . 2010年 12月 14日에 確認함 .  
  32. 이웅; 이한승 (2009年 9月 16日). “박연차 懲役 3年6月·罰金 300億(綜合 2報)” . 《聯合뉴스》 . 2012年 11月 24日에 確認함 .  
  33. 金在洪 (2012年 11月 22日). “現職 部長檢事 拘束…檢察 '恐慌 狀態 ' . 《法律新聞》 . 2012年 11月 24日에 確認함 .  
  34. 김승욱 (2012年 11月 23日). “女被疑者 "檢事가 車에서 類似性行爲 强要 " . 《聯合뉴스》 . 2012年 11月 24日에 確認함 .  
  35. 정환보 (2012年 11月 22日). “現職檢事가 檢査室에서 女性 被疑者와 類似 性關係” . 《京鄕新聞》 . 2012年 11月 23日에 確認함 .  
  36. 주진우 (2009年 8月 13日). “檢察과 警察이 "꼴찌' 차지했으니…” . 《示唆IN》 . 2010年 9月 14日에 確認함 .  
  37. 박미영 (2017年 2月 27日). “檢察 信賴度, 刑事司法機關 中 最下位” . 《法律新聞》 . 2017年 7月 2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