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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民族統一 抛棄’의 歷史的 意味[김상운의 빽투더퓨처]|東亞日報

김정은 ‘民族統一 抛棄’의 歷史的 意味[김상운의 빽투더퓨처]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18日 11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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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北韓 民族主義 談論의 歷史


金正恩이 南·北韓을 ‘同族關係’가 아닌 ‘敵對的 두 國家關係’로 規定한 데 이어 最近 對南機構 廢止 等 後續 措置를 연이어 내놓고 있습니다. 甚至於 各種 記錄映畫 背景에 찍힌 韓半島 이미지를 北韓 領土로 修正하는 디테일까지 發揮하고 있죠. 이제 正말 北韓이 民族統一을 抛棄한 것일까.

그런데 이보다 더 注意를 끄는 건 김정일 執權 當時 3年의 遺訓統治 期間을 둘 程度로 先代 守令의 敎示를 絶對視하는 北韓에서 守令이 앞장서 民族統一을 抛棄했다는 겁니다. 金日成-金正日은 生前에 마르고 닳도록 ‘自主的 民族統一’을 强調했죠. 1980年代 軍事獨裁 時節 이른바 NL(民族解放) 系列의 學生運動圈이 北韓에 密着된 것도 北韓 統一觀의 影響이 컸습니다. 韓半島 統一에서 ‘民族 談論’의 포기가 南北韓 歷史에서 갖는 意味는 무얼까요.

金日成 民族統一論 廢棄한 金正恩
金正恩 北韓 國務委員長이 지난해 12月 열린 朝鮮勞動黨 中央委員會 第8期 第9次 全員會議 擴大會議에서 發言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敵對的 2國家論’을 發表했다. 조선중앙TV
“하나의 民族, 하나의 國家, 두個의 制度, 두個의 政府에 기초한 聯邦制 方式으로 統一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現 實情에 맞는 祖國統一 方道의 大原則입니다.”

김일성은 1991年 新年辭를 통해 ‘느슨한 聯邦制’를 提案하면서 民族을 앞세웠습니다. 北韓은 1993年 김일성이 直接 提起한 ‘全民族 大團結 10代 綱領’을 發表하면서 “北에 있건 남에 있건 海外에 있건 共産主義者건 民族主義者건 無産者이건 有産者이건 無神論者이건 有神論者이건 모든 差異를 超越해 于先 하나의 民族으로 團結해야 하며 祖國統一의 길을 함께 열어 나가야한다”고 力說했죠. 金正恩의 敵對的 2國家論이 할아버지이자 初代 守令인 김일성의 敎示를 正面으로 어긴 거라는 指摘이 나오는 理由입니다.

事實 김일성이 提起한 北韓의 民族 統一論은 單純한 政治 戰術에 局限된 게 아닙니다. 北韓에서 民族主義는 1960年代 後半 唯一 支配體制를 構築하면서 提起된 主體思想과 直結되죠. 1960年代 尖銳한 中小 葛藤 渦中에 金日成이 親中派(延安派)와 親蘇聯派를 除去한 核心 名分이 ‘民族 自主’였기 때문입니다.

外勢의 干涉을 물리치겠다는 김일성의 名分論이 北韓에서 먹힌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日本 德分입니다. 嚴酷한 日本 植民支配를 거치면서 이른바 ‘抵抗的 民族主義’가 南北韓을 가리지 않고 民衆들의 心臟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外勢=惡의 勢力’이라는 黑白論理가 金日成이 親中, 親蘇派를 除去하는데 有用하게 活用될 수 있었죠.

1人 支配體制 構築을 契機로 主體思想이 北韓의 政治, 經濟, 文化 等을 規律하는 支配 이데올로기로 登極하면서 主體思想과 結合된 ‘北韓版 民族主義’가 社會 全般에 스며들게 됩니다. 예컨대 김일성은 1983年 演說에서 “오늘 新興勢力 나라들이 建設하여야 할 참다운 民族文化는 主體가 선 文化, 主體的인 文化입니다. 主體的인 文化란 自己 民族의 特性과 自己 나라 革命의 利益에 맞는 文化이며 人民大衆이 그 創造者로 되고 享有者로 되는 文化입니다”라며 文化領域에서도 ‘主體的 民族 文化’를 强調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主體思想이 確立되기 前에는 北韓에서 民族主義는 一種의 禁忌語였다는 事實입니다. 이른바 ‘國際 共産主義’를 信條로 여기는 正統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民族主義는 一種의 ‘毒素’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레닌은 全 世界 勞動者들이 資本家에 맞서는 階級鬪爭에서 勝利하려면 民族을 뛰어 넘어 서로 連帶해야 한다고 主張했죠.

實際로 民族主義에 對해 1985年版 北韓 哲學辭典에선 “全 民族的 利益을 내세우면서 自己 民族 內의 부르죠아誌의 利害關係를 合理化하는 史上”이라는 意味만 담았습니다. 하지만 1992年版 ‘朝鮮말 大辭典’에서는 民族主義를 “民族의 利益을 擁護하는 進步的 思想. 封建主義를 反對하는 부르죠아 民族運動時期에는 人民大衆의 利益과 함께 新興 부르조아지의 利益까지 包括하는 民族共同의 利益을 反映한다. 單一 民族國家인 우리나라에서 眞正한 民族主義는 곧 愛國主義로 된다”며 肯定的 意味를 살리고 있습니다. 北韓이 正統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離脫해 主體思想으로 履行하는 모습을 이를 통해서도 確認할 수 있습니다.

南北韓 統一談論의 敵對的 依存性
1972년 남북한의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 앞서 5월 3일 김일성 당시 수상을 접견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남북대화사료집
1972年 南北韓의 7.4 南北共同聲明 發表에 앞서 5月 3日 김일성 當時 首相을 接見한 이후락 中央情報部長. 南北對話史料집
‘1972年 公布된 南北韓의 憲法은 時期뿐 아니라 1人支配 强化 等 內容上에도 共通點이 많다.’

1972年 末 作成된 美國 國務部 情報調査局(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內部 報告書는 그해 發表된 南韓 維新憲法과 北韓 社會主義 憲法의 類似性에 注目했습니다. 그러면서 南北韓 當局 間 情報 共有 可能性을 내비쳤습니다. 두 憲法 모두 그해 南北韓 政府가 分斷 以後 처음으로 合意 發表한 ‘7.4 南北共同聲明’ 直後 發表됐죠.

朴正熙가 1972年 10月 發表한 ‘10月 維新’은 美中데탕트로 招來된 美軍 撤收 等 安保 危機에 對應한다는 名分 下에 長期執權의 길을 연 超憲法的 措置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 김일성도 主體思想을 憲法條文에 規定함으로서 1人 支配體制에 쐐기를 박습니다. 民族統一을 南北韓의 國內政治에 活用했다는 指摘이 나오는 背景입니다. 이를 두고 學界 一角에선 當時 南北韓이 ‘敵對的 依存關係’였다는 分析을 내놓고 있습니다.

7.4 南北共同聲明에 이어 維新體制가 登場했을 때 南北韓의 對應이 이런 脈絡에서 特히 눈길을 끕니다. 當時 朴正熙 政府는 維新 發表에 앞서 北韓 高位層 接觸을 통해 理解를 求하는 等 南北對話 維持에 功을 들입니다. 維新 宣布의 名分 中 하나가 平和統一 追求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北韓 亦是 南北對話 中斷을 憂慮해 維新體制 出帆 直後 南韓에 對한 批判을 自制하는 行態를 보입니다. 김일성은 1974年 우쓰노미야 도쿠마 自民黨 議員과의 對談에서 “南北對話가 이제 막 始作되었기 때문에 南韓에 對한 批判이 南北對話 中斷으로 이어질 憂慮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큰 忍耐心을 發揮해 南北對話를 繼續하기로 決定했다”고 말했죠.

하지만 北韓의 眞意는 平和共存과는 距離가 먼 것이었습니다. 1972年 11月 8日 北韓 外交部 副部長 이만석은 平壤 駐在 東獨,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大使에게 “北韓이 南韓의 維新 措置를 批判하면 野黨이 더 彈壓받는 結果를 招來해 ‘南朝鮮 革命’을 展開할 수 있는 立地와 空間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反政府 勢力을 통해 南韓 政府를 흔들려는 目的으로 南北 對話를 繼續 이어가기 위해 維新에 對한 非難을 삼갔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7.4 南北共同聲明에서 南北韓의 民族統一 談論은 國內政治的 目的과 體制 競爭 構圖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勿論 南韓 民主化 以後의 統一 論議는 軍事獨裁 時節과는 달라졌지만, 南北韓 모두 國內政治의 手段으로 利用한 側面을 否認하긴 힘듭니다. 反民族, 反統一로 돌아선 北韓을 代身해 民族統一의 비전을 세워야하는 우리가 警戒해야할 歷史的 敎訓이 아닐까요.

[參考 文獻]
-전미영 〈統一 談論에 나타난 南北韓 民族主義 比較硏究〉(國際政治論叢 43輯 1號, 2003年)
-신종대 〈維新體制 樹立을 보는 北韓과 美國依視角과 對應〉 (亞細亞硏究, 2012年)

“모든 解答은 歷史 속에 있다.” 秒 單位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歷史를 깊이 들여다보면 連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脈絡이 보일 수 있습니다. 文化財, 學術 擔當으로 歷史 分野를 여러 해 取材한 記者가 歷史的 事實들을 통해 뉴스를 分析하고, 未來에 對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상운 記者 sukim@donga.com
#南韓 #北韓 #統一 #民族主義 #金日成 #朴正熙 #10月 維新 #金正恩 #敵對的 두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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