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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洋 哲學의 共通點은 ‘생각 속의 境界 넘기’[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東亞日報

東西洋 哲學의 共通點은 ‘생각 속의 境界 넘기’[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1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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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시만드로스는 그리스의 과학자 겸 철학 저술가다. 필기구를 든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낙시만드로스를 그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0∼1511·왼쪽 사진). 아낙시만드로스가 해시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새겨 넣은 3세기 모자이크. 그는 해시계의 
최초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리스의 科學者 兼 哲學 著述家다. 筆記具를 든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낙시만드로스를 그린 라파엘로의 ‘아테네 學堂’(1510∼1511·왼쪽 寫眞). 아낙시만드로스가 해時計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새겨 넣은 3世紀 모자이크. 그는 해時計의 最初 製作者로도 有名하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사람들은 끊임없이 境界를 넘어서려 한다. 藝術家, 技術者, 犯法者 모두 주어진 境界 밖으로 가려고 한다는 點에서 똑같다. 바람과 빗물에 내맡겨진 돌덩이나 周邊 環境에 適應해 사는 動物들과 人間의 差異가 거기 있다. 人間의 그런 存在 方式을 일컬어 ‘實存(existence)’이라고 부른다. ‘밖에 서 있다’는 뜻이다. 東西洋의 哲學도 모두 생각 속의 境界 넘기다. 境界를 넘고 또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모든 境界를 넘어선 자리에서 되돌아본 世上은 어떤 모습일까?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런 疑問을 품었다.》

‘最初의 科學者 兼 哲學 著述家’

아낙시만드로스(紀元前 610年∼紀元前 546年)의 故鄕은 밀레토스이다. 그는 最初의 哲學者 탈레스의 同僚이자 弟子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最初’라는 修飾語가 따라다닌다. ‘第2의 스티븐 호킹’으로 評價받는 物理學者 爐벨리는 그를 ‘最初의 科學者’라고 불렀다. 實際로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렇게 불릴 資格이 充分하다. 현대 自然科學을 떠받치는 생각들을 벌써 2500年 前에 내놓았으니까. 그는 宇宙가 進化하고 그 안에서 生命도 進化한다고 생각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초로 세계 지도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제작한 지도의 모습을 추정한 그림.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낙시만드로스는 最初로 世界 地圖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製作한 地圖의 모습을 推定한 그림.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아낙시만드로스에 따르면 宇宙의 始作에는 大爆發이 있다. 처음에 물, 불, 흙, 空氣가 갈라졌고, 이들의 相互作用을 통해 宇宙가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불은 물을 말리고 물은 불에 물氣를 傳達했다. 그 結果 宇宙의 層狀 構造가 자리 잡고 生命體가 生存할 만한 環境도 만들어졌다. 最初의 生命體는 물에서 생겼다. 그 뒤 물이 마르고 땅이 드러나자 새로운 環境에 맞춰 물에 살던 것들이 땅으로 올라와 陸上動物이 되었다. 사람도 例外가 아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사람이 “물고기를 닮은 모습으로” 생겨났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重要한 것은 그가 宇宙의 進化와 生命의 進化를 모두 偶然의 産物로 여겼다는 點이다. ‘鎭火’와 ‘偶然’을 빼놓고 現代 科學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 아낙시만드로스는 ‘最初의 科學者’가 아닌가.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經驗 世界의 조각들에 埋沒된 偏狹한 科學者가 아니었다. 그는 科學者이기에 앞서 보이는 것 너머를 생각하고 이를 記錄한 最初의 哲學的 著述家이기도 하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學堂’에 筆記具를 든 모습으로 그를 그려 넣은 데는 그런 理由가 있다. 아쉽게도 그의 著述은 사라졌지만, 한 句節이 남아서 “莊重한 文體의 石文처럼”(니체) 2500年의 間隔을 뛰어넘어 只今도 큰 울림을 준다.

“있는 것들은 어떤 것으로부터 생겨났다가 必然性에 따라 消滅하여 그것으로 되돌아간다. 그것들은 지은 잘못에 對한 벌과 代價를 時間의 秩序에 따라 서로 支拂하기 때문이다.”

世上 모든 것의 始作 ‘無限者’

사람을 닮은 神들을 끌어들이지 않고서 自然을 說明하려고 한 點에서 아낙시만드로스度 탈레스를 따랐다. 하지만 물에서 모든 것이 생겨났다는 스승의 생각에 그는 同意하지 않았다. 물이 모든 것의 始作이라면 불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反對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끌어들여도 結果는 똑같다. 불을 모든 것의 始作으로 보면 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說明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의 始作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勿論 虛無가 모든 것의 始作일 理 없다. 眞짜 없는 것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면서 現實的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런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推理를 통해 찾아낸 原理에 아낙시만드로스는 ‘無限者’라는 이름을 붙였다. 性質에서도, 量에서도 定해진 境界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찾아낸 無限者로부터 바라본 世界의 모습은 어떨까? 世上에 있는 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無限者와 같지 않다. 아무 境界도 없는 것이 모든 것의 原理라면, 그로부터 생겨난 것은 모두 境界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있는 것들’은 무한자에서 떨어져 나와 限界를 가짐으로써 存在한다. 물과 바람, 山과 바다,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에서 땅과 바다와 하늘을 征服하려는 人間까지 모두 境界를 가진 유한자이다. 그것들은 모두 ∼이면서 ∼이 아니다. 山은 山이지 물이 아니다. 물은 물이지 山이 아니다.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니라는 이 不正의 關係를 벗어난 것은 없다.

無限者로부터 柔한자들을 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테네 學堂’ 속 그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의 속마음은 아닐까? 그는 正말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무한자에서 逸脫한 유한자들은 서로 對立한다. 이 對立이 싸움을 낳고, 싸움이 잘못을 낳는다. 내가 이 時刻, 이 場所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이 時刻, 이 場所에 없기 때문이다. 또, 수많은 他者의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나의 生存이 可能할까? 勿論 그 打者들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他者의 存在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境界를 가진 者들의 運命이다. 잘못과 不義로 이어지는 싸움에 永遠한 勝者는 없다. 모두 “지은 잘못에 對한 벌과 代價를 時間의 秩序에 따라 서로 支拂”하고 無限者로 되돌아가야 한다.

人間 實存의 兩面性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알려진 아낙시만드로스의 哲學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뒤쫓다 보면 人間의 實存이 難處한 問題로 登場한다. 正말로 境界를 넘는 것이 人間의 本性이라면, 人間이야말로 世上에서 가장 많이 ‘잘못’을 犯할 수밖에 없는 存在가 아닌가? 境界를 가진 것만으로도 잘못을 避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自身의 境界를 넘어서고 넓히려는 人間의 世界에서는 얼마나 많은 不義가 行해질 것인가? 다른 사람을 支配하고 動物들을 滅種시키고 自然을 破壞하는 것은 人間의 실존적 本性 탓이 아닌가? 이를 避하기 위해 우리는 實存을 抛棄하고 化石이나 古木같이 살아야 할까?

어려운 問題다. 하지만 質問을 이렇게 바꿔 보자. 人間의 實存 안에 다른 可能性은 없을까? 거기서 絶望의 理由가 아니라 希望의 理由를 찾을 수 없을까? 境界를 넓힐 수 있는 者는 境界를 줄일 수도 있다. 境界를 지워 磁氣를 없애는 일, 境界를 허물어 他者를 품는 일, 卽 犧牲과 共存이 實際로 있다는 事實이 그런 믿음의 證據이다. 自身의 健康을 위해 體重을 줄이는 것이 可能하다면, 地球의 健康과 他者와의 共生을 위해 過度한 生産과 消費를 줄이는 것은 왜 不可能할까? ‘유한자의 잘못’을 없애지는 못해도, 그것을 줄이는 實存의 方式이 있을 것이다.

境界를 넓히고 가진 것을 늘리는 데 마음을 빼앗기면 警戒의 無常함도, 境界를 지운 世上의 모습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警戒 너머의 共生을 노래한 효봉(曉峰) 禪師의 悟道頌이 그런 마음을 일깨워줄지 모르겠다.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불길 속 거미집에 고기가 茶 달이네/이 집안 消息 누가 알 수 있으리. 흰 구름은 西쪽으로 떠가고 달은 東쪽으로 달려가네.”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아낙시만드로스 #最初의 科學者 #哲學 著述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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