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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私生兒 金炫의 죽음 [鑄成하 記者의 서울과 平壤사이]|東亞日報

김일성의 私生兒 金炫의 죽음 [鑄成하 記者의 서울과 平壤사이]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5月 26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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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내걸린 김씨 3부자의 초상화. 김씨 왕조의 3대 세습에 위협이 되는 ‘곁가지’ 핏줄은 단호하게 제거돼 왔다. 동아일보DB
平壤 金日成廣場 主席團에 내걸린 金氏 3父子의 肖像畫. 金氏 王朝의 3代 世襲에 威脅이 되는 ‘곁가지’ 핏줄은 斷乎하게 除去돼 왔다. 東亞日報DB
주성하 기자
鑄成하 記者
1997年 南派 間諜에게 被殺된 이한영은 生前 ‘김정일 로열패밀리’라는 手記를 남겼다. 手記는 김일성의 私生兒 金炫의 存在를 처음 밝혔다. 이에 따르면 金玄銀 1971年에 김일성과 諸葛 姓氏의 專擔 按摩師 사이에 태어났다. 같은 해 5月 10日 성혜림度 김정남을 出産했으니 還甲인 김일성과 갓 서른에 접어든 아들 김정일이 거의 同時에 아들을 얻은 것이다.

金炫은 以後 ‘장현’이라는 이름으로 張成澤의 戶籍에 올랐다. 1979年 金炫은 生母와 함께 모스크바로 가 同甲내기이자 조카인 김정남과 함께 살았다. 金炫은 生母를 姨母라고 불렀다.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김정일의 邸宅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證言은 相當히 信賴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의 證言에서 거짓은 없다. 이한영이 1982年 韓國에 亡命했기 때문에 金炫에 對한 證言은 모스크바 生活에서 끝난다.

지난해 5月 記者는 美出刊된 金正日 回顧錄을 入手했다. 金日成 90周年 生日을 맞아 김정일이 아버지를 回想하는 內容이 爲主였는데, 여기에 金日成이 아주 허물없이 對했다는 마사지 擔當 看護師가 두 次例나 相當한 分量으로 言及돼 있다. 一介 看護師를 김정일이 仔細하게 紹介한 것은 매우 異例的이다.

回顧錄에 나오는 金日成 擔當 看護師의 이름은 순복이였고, 1962年부터 登場한다. 回顧錄에 따르면 김일성은 現地指導를 마치고 돌아오면 으레 擔當 看護員을 親딸처럼 정답게 찾으며 다리를 주무르게 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首領님의 健康은 동무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무하자 看護師가 熱心히 손을 鍛鍊해 男子 以上으로 손아귀 힘을 키웠다고 한다. 김일성은 늘 “네가 第一이다. 네 德에 잠을 잘 잔다. 네가 나라의 福을 만든다”고 致賀하곤 했다는데, 이 看護師가 金炫의 生母일 可能性이 매우 높다.

最近 信賴할 수 있는 한 消息通으로부터 金炫의 以後 運命에 對해 들었다. 金炫은 北韓에 돌아와 平壤 中心部 서재동招待所에서 살았다. 普通江 隣近의 招待所는 1988年 9月 建設됐는데 景致가 매우 좋다. 2000年頃 訪北했던 韓國의 一部 人士들과 記者들도 이 招待所에 머물렀다. 서재동招待所는 150∼170坪 規模의 獨立式 빌라 21채로 構成됐고, 各 빌라엔 寢室이 3個 있다.

金炫은 招待所 構內의 한 빌라가 아니라 入口에서 갈라져 들어간 單獨 빌라에서 살았다. 2014年 北韓은 서재동招待所 옆에 衛星管制綜合指揮所를 지었는데, 消息通은 그 자리가 金炫이 살던 빌라 자리였을 것이라고 했다. 指揮所 옆은 김정일의 本妻 金英淑이 살던 서장동招待所다.

金炫은 學校를 다니지 못했다. 김정일의 指示였을 것이다. 김일성의 庶子인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배다른 동생이니 威脅 人物이라 생각해서 無識하게 만들려는 意圖가 컸을 것 같다. 甚至於 結婚도 못 하게 했다. 氏를 더 잇지 못하게 한 것이다. 金炫은 키가 175cm 程度로 北韓에선 큰 키였고, 김일성의 젊은 모습을 빼닮았다고 한다.

金炫은 代身 王族의 待遇는 받았다. 最高級 招待所에서 豐足하게 살았고, 車輛 番號가 216으로 始作되는 벤츠도 갖고 있었다. 216 番號版은 北韓 最高위 幹部만 받는 特惠다. 運轉手도 있었고, 料理師도 있었다. 勿論 監視員들이었을 것이다. 金正日은 金炫을 한두 番쯤 現地視察에도 데리고 다녔다. 威脅이 될 存在인지 알아보기 위한 目的이 컸을 것이다.

白手 身世가 된 金炫은 난봉꾼으로 變해 벤츠를 끌고 나가 女性 交通安全員들을 誘惑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金日成을 닮은 젊은 男子가 216 벤츠를 타고 다니는 데다 警備가 森嚴한 最高級 邸宅에서 사니 女性들도 反抗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 뒤 金炫은 金正日에겐 짐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쿠데타라도 일어나 김일성의 핏줄이라며 金炫을 擁衛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었다. 아들에게 權力을 물려주기로 한 金正日은 結局 2007年 金炫을 조용히 죽였다고 한다. 金炫은 김일성의 私生兒로 태어나 36年을 잘 살고 죽은 것이다.

이렇게 핏줄 整理, 北韓말로 ‘곁가지 整理’에 들어가니 金炫과 모스크바에서 함께 큰 김정남이 가장 恐怖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남 亦是 2017年 2月 말레이시아에서 毒殺됐다. 外國을 轉轉하며 동생의 魔手를 避하려 했지만, 金氏 王朝에는 慈悲가 없었다.


鑄成하 記者 zsh75@donga.com



#金日成 #私生兒 #金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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