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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떠난 直後 暗殺… “亡命者 김옥균에게는 韓中日 모두가 敵”[박훈 韓日 歷史의 갈림길]|東亞日報

日 떠난 直後 暗殺… “亡命者 김옥균에게는 韓中日 모두가 敵”[박훈 韓日 歷史의 갈림길]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12月 10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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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수호조약 연회 기념도. 윗줄 가운데가 김옥균. 불평등 조약 이후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 개혁을 꿈꾸던 개화파 청년은 일본 망명 이후 청나라 이홍장과 담판을 지으려고 상하이를 찾았다가 하루 만에 암살됐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조日修好條約 宴會 記念도. 윗줄 가운데가 김옥균. 不平等 條約 以後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 改革을 꿈꾸던 開化派 靑年은 日本 亡命 以後 淸나라 李鴻章과 談判을 지으려고 상하이를 찾았다가 하루 만에 暗殺됐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所藏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東洋史學科 敎授
《甲申政變으로 日本에 亡命한 金玉均을 日本 當局이 絶海孤島(絶海孤島), 오가사와라섬에 流配시킨 것은 지난 回에 살펴보았다. 여기서 約 2年間 孤獨, 疾病과 싸우던 金玉均은 이番에는 홋카이도로 移送되었다. 日本 僻地에 그를 가둬 政治的 問題가 發生하지 않도록 한 日本 政府의 意圖였다. 金玉均이 다시 도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1890年 10月이었으니 4年이 넘는 流配였다.》

李鴻章과 談判하려던 김옥균


도쿄로 돌아왔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別로 없었다. 朝鮮은 如前히 袁世凱와 閔氏 一族이 掌握하고 있었고, 日本은 廳과 朝鮮 政府를 의식해 繼續 金玉均을 冷待했다. 日本에서 보낸 10年은 그에게는 文字 그대로 虛送歲月이었다. 나이도 어느덧 40代 中盤이 되어 버렸다. 그를 도왔던 開化派도, 日本의 在野人士度 차츰 떨어져 나갔다. 1894年 3月 그나마 身邊保護를 받을 수 있던 日本을 벗어나 四肢나 다름없는 상하이로 건너간 것은 이를 突破하기 위한 大賭博이었다.

그런데 金玉均이 왜 危險을 무릅쓰고 請으로 갔는지, 그리고 暗殺의 眞相은 무엇인지에 對해서는 如前히 적잖은 疑問이 남아 있다. 먼저 이경방(李經芳)과의 交流가 注目된다. 이경방은 李鴻章의 兩者이자 當時 淸國의 駐日 工事였다. 두 사람은 直接 對話와 書信을 통해 자주 接觸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경방은 本國으로 돌아간 後에도 後任 工事 왕봉조(汪鳳藻)를 통해 金玉均을 請에 招請했다. 더 以上 日本 政府에 期待를 할 수 없게 된 金玉均은 成功 可能性은 낮지만 朝鮮을 쥐락펴락했던 李鴻章을 만나 談判을 벌이려 했었던 것 같다(다보하시 기요시, ‘近代一線關係의 硏究’ 下). 상하이로 가기 直前 미야자키 道텐(宮崎滔天)에게 “나도 아시아 問題는 中國의 興亡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에 비하면 朝鮮 問題는 작은 問題다. 이건 祕密인데 곧 상하이로 가 李鴻章과 談判할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도 그의 胸中을 斟酌할 수 있다.

박영효 暗殺 未遂도 利用한 日


김옥균은 수행하던 홍종우가 쏜 총탄 3발을 맞고 사망했다. 암살 당시의 모습을 담은 우키요에(목판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金玉均은 遂行하던 洪鍾宇가 쏜 銃彈 3發을 맞고 死亡했다. 暗殺 當時의 모습을 담은 우키요에(木版畫).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알려진 대로 金玉均은 상하이에 到着한 지 하루 만인 1894年 3月 28日 美國 阼階에 있는 日本人 호텔 童話洋行에서 遂行하던 洪鍾宇에게 暗殺됐다. 總 3發을 맞고 房 밖으로 뛰어나왔지만 絶命했다. 그런데 이 무렵 도쿄에서는 박영효 暗殺 未遂 事件이 일어났다. 國際的 暗殺團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이 두 事件에는 이일식(李逸植)이라는 朝鮮人 貿易商이 깊이 介入돼 있었다. 그는 상하이와 홍콩 等地를 오가며 拒否를 모은 者였다. 甲申政變에서 閔氏들을 屠戮했던 金玉均이 高宗과 閔氏에게 不俱戴天의 怨讐라는 것은 世上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그를 죽이기만 하면 出世는 떼어 놓은 堂上이었다. 野心家 이일식은 經濟的으로 窮乏한 金玉均에게 接近하는 한便, 高宗의 뜻이라며 홍종우를 꾀었다. 김을 죽이기에는 日本보다 상하이가 훨씬 유리했기 때문에 김이 請으로 간다고 하자 一切의 經費와 活動資金을 댈 것을 미끼로 홍종우를 同行시켰던 것이다. 金玉均은 平素 홍종우를 疑心하고 있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그런데 當時 日本에는 金玉均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開化派 人士 朴泳孝가 있었다. 哲宗의 駙馬로 王室의 一員이면서 甲申政變에 主役으로 參與했으니, 그에 對한 高宗과 閔氏들의 怨恨도 깊었다. 김옥균뿐 아니라 朴泳孝의 목까지 손에 넣는다면 이일식은 그야말로 朝鮮 政府의 英雄이 될 것이었다. 金玉均 暗殺 消息이 傳해지면 박영효 暗殺은 어려워질 것이니 서둘러 暗殺을 試圖한 것이다. 그는 朝鮮人과 日本人 手下들을 確保한 뒤 自身의 居處로 朴泳孝를 불러들이려 했다. 그러나 낌새를 챈 朴泳孝가 움직이지 않자 그의 居處로 갔다가 오히려 朴과 그 同志들에게 붙잡혀 毆打를 當하는 身世가 되었다.

도쿄에서 열린 박영효 暗殺 未遂事件 裁判은 日本 言論의 至大한 關心 속에 두 달餘間 進行되었다. 때마침 金玉均 暗殺과 그 屍體가 朝鮮으로 移送됐다는 消息이 傳해지자 裁判廷은 朝鮮政府 糾彈과 靑果의 開戰을 煽動하는 場이 돼 버렸다. 裁判 끝에 이일식은 無罪釋放 되었다(김영작, ‘누가, 왜 金玉均을 죽였는가: 黑幕에 가려져 온 金玉均 暗殺의 眞相’). 裁判에서는 이일식이 所持하고 있던 高宗의 玉璽와 密旨가 僞造라는 것이 밝혀졌다. 金玉均 暗殺을 指令한 게 아닌가 하는 非難에 直面해 있던 朝鮮 政府는 嫌疑를 벗었으니 손대지 않고 코 푸는 데 成功한 것이다.

金玉均 暗殺을 반긴 朝鮮 朝廷


한便 朝鮮 政府의 要請을 받은 袁世凱는 卽刻 홍종우를 保護하라는 急轉을 淸 政府에 보냈다. 오가사와라 流配 時節 金玉均을 만나 상하이까지 따라온 섬 少年 와다 엔지로(和田延次郞)는 金玉均의 屍體를 日本에 가져가기 위해 四方八方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이미 袁世凱의 要請을 받은 상하이 當局은 金玉均의 屍體를 朝鮮 側에 넘겼다. 洪鍾宇는 김옥균 屍體를 조선행 배에 태우고 意氣揚揚하게 歸國했다. 그 過程에서 벌어진 不法에 對해 상하이 駐在 日本總領事는 沈默했다. 自己가 新任 總領事라 赴任하자마자 外交的 抗議를 하기가 適切치 않다는 말도 안 되는 理由에서였다.

金玉均의 죽음에 日本에서는 號外가 發行되는 等 한마디로 亂離가 났다. 廳과 朝鮮이 金玉均을 죽였다며 憤怒를 表出했다. 이런 輿論이 몇 달 뒤 淸日戰爭 개廛에도 影響을 미쳤다. 그러나 金榮作 敎授는 日本 當局이 金玉均 暗殺犯들의 動向을 詳細하게 把握하고 있었던 點, 그리고 政界 巨物로 暗殺 謀議에 干與한 오미와 兆베에(大三輪長兵衛)를 日本 政府가 끝까지 싸고 돈 點 等을 들어 日本 政府가 金玉均 暗殺을 放置, 幇助했다고 主張한다(김영작, ‘누가, 왜 金玉均을 죽였는가: 黑幕에 가려져 온 金玉均 暗殺의 眞相’). 김옥균에게는 韓中日 三國 政府가 다 敵이었다.

서울 駐在 外交官들은 金玉均의 屍體를 毁損하지 말 것을 勸告했다. 그러나 다른 재주는 없어도 國王과 閔氏들의 맘을 읽는 데에는 道士이던 調整 臣下들은 陵遲處斬하라는 上疏를 잇달아 올렸다. 이들은 金玉均이 仁祖와 英祖 때 反逆事件을 일으킨 李适(李适)과 신치운(申致雲)보다 더한 大逆罪를 저질렀다며 屍體에 對한 追罰(追罰)을 主張했다. 王이 이를 ‘嘉納(嘉納)’했다. 高宗은 이를 大慶事라며 宗廟에 告하고 文武百官의 鎭下(進賀)를 받으며 特別赦免을 實施했다. 갈기갈기 찢긴 金玉均의 屍體를 按酒 삼아 잔치를 벌이던 이때, 全琫準이 이끄는 農民軍은 全州를 陷落시키고 있었다.

박훈 서울대 東洋史學科 敎授
#김옥균 #暗殺 #홍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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