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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院, 市場서 찾은 얼굴徐 ‘韓國의 原形’ 을 찾는다 [韓國美術의 딥 컷] <3>권순철|東亞日報 </3>

病院, 市場서 찾은 얼굴徐 ‘韓國의 原形’ 을 찾는다 [韓國美術의 딥 컷] <3>권순철

  • 東亞日報
  • 入力 2020年 6月 4日 17時 51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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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年 동안 뉴욕현대미술관(MoMA)는 特定한 美術史의 내러티브(英美圈 白人 男性 中心의 美術史)와 連結지어 생각됐다. 牡馬는 그러한 注入式 美術史를 버리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 作品을 더 硏究하고 展示할 것이다. 이를 통해 定해진 美術史家 아닌 끊임없이 變化하는 美術史의 場이 될 것이다.”

지난해 글렌 로리 美國 뉴욕현대미술관腸은 ‘새로운 牡馬’에 對해 全 世界를 돌며 說破했다. 위의 發言은 韓國을 찾았던 지난해 4月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內容이다. 로리 館長의 말처럼 國際 美術界는 유럽·美國 中心 美術史의 誤謬를 認定하고, 地域 美術史를 다시 보는 中이다. 同時代 美術에서 그런 움직임의 一環이자 重要한 話頭가 바로 ‘正體性’ 問題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아서 자파의 ‘Big Wheel’(2018). 미국의 인종주의를 고발한 그의
 작품은 ‘흑인의 삶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예견한 셈이 됐다. ⓒLa Biennale di 
Venezia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黃金獅子賞을 받은 아서 自派의 ‘Big Wheel’(2018). 美國의 人種主義를 告發한 그의 作品은 ‘黑人의 삶은 重要하다’(Black Lives Matter) 示威를 豫見한 셈이 됐다. ⓒLa Biennale di Venezia


國內 文化界에서도 한 때 ‘韓國的인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活潑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國際的 脈絡을 考慮하지 않은 盲目的인 國家主義나, 이를 外面하는 事大主義의 二分法으로 빠지고 말았다. 世界的 普遍性을 바탕에 둔 韓國의 正體性 探究는 少數의 領域이었다. 권순철 作家(76)는 이런 瘠薄한 土壤에서 韓國의 原形(原型)을 찾고자 했다. 1960年代부터 始作한 韓國人의 얼굴과 넋, 山을 통해서다.

卷 畫伯을 1日 競技 楊州의 作業室에서 만났다. 1989年 以後 프랑스에 定着해 韓國을 오가던 그는 最近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의 擴散으로 韓國에 머물고 있다.

● 길거리 스케치로 始作된 얼굴 찾기


1960년대~1990년대 거리에서 이어진 얼굴 스케치. 초기에는 
해부학적 골상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인물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권순철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자연스러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며 몰래 스케치를 했다. 자신이 모델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아챈 행인이 그의 스케치북을 뺏으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권순철
1960年代~1990年代 거리에서 이어진 얼굴 스케치. 初期에는 解剖學的 骨相에 集中하다가 時間이 지날수록 人物의 個性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권순철은 他人의 視線을 의식하면 自然스러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며 몰래 스케치를 했다. 自身이 모델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아챈 行人이 그의 스케치북을 뺏으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권순철


卷 畫伯이 서울대 繪畫科를 다니던 1960年代 末~1970年代 무렵, 藝術家들은 美國의 抽象表現主義나 파리의 앙포르멜 等 抽象美術에 沒頭했다. 그 또한 “抽象 美術을 그리다가 머리가 아프면 길거리로 나가 스케치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서울대 文理大가 있을 무렵이었다. 卷 畫伯은 서울大病院 待機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韓國 全域의 重患者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런 가운데 ‘韓國性’에 對한 文化界의 苦悶에 卷 作家도 影響을 받았다. 美術學院에 가면 줄리앙이나 비너스 石膏像을 그리는 慣習을 異常하게 여기기 始作했다. 國展에 出品된 作品에도 人物은 西洋人 닮은꼴 이었다. 西洋 美術을 받아들이면서 失踪된 ‘韓國的인 얼굴’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卷 畫伯은 하게 됐다.

以後 서울대病院은 勿論 서울驛, 東大門市場 等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김윤수 前 國立現代美術館長은 1986年 個人展 序文에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스케치북과 한 두 卷의 冊을 그것도 겨울에는 木掌匣을 낀 손으로 들고 다녔다”고 回顧했다. 自身을 그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챈 行人에게 스케치북을 빼앗길 뻔 한 적도 있었다.

권순철의 ‘얼굴 探究’는 單純한 겉모습 蒐集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韓國人의 骨相을 硏究하기 위해 解剖學的 資料를 찾는가 하면, 碩士 論文으로 ‘韓國 美術에 나타난 얼굴 形態에 關한 考察’(1971)도 썼다.

● 時代와 精神을 담은 얼굴

얼굴, 2010, 캔버스에 유채, 260X194cm ⓒ권순철
얼굴, 2010, 캔버스에 油彩, 260X194cm ⓒ권순철

그의 ‘얼굴’ 作品을 가까이서 보면 山脈처럼 겹겹이 쌓인 물감을 發見할 수 있다. 다양한 色彩와 質感이 마치 抽象 作品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캔버스 위에 떠 있는 듯한 얼굴이 보인다. 解剖學的 뼈대에서 出發해 그림의 論理를 考慮하며 쌓아 올린 作品이기에 可能한 效果다.

이런 作業 方式은 單純한 描寫를 넘어 ‘精神’을 담고자 하는 作家의 意圖에서 비롯한 것이다. 1日 作業室에서 만난 그는 “日帝時代나 韓國 戰爭, 4·19 革命 같은 굴곡진 歷史가 담긴 얼굴이 韓國籍이라 생각했고, 그림 속의 얼굴에도 歷史를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림에 精神性을 담고자 하는 表現 方式은 폴 세잔(1839~1906)의 影響이다. 세잔은 旣存의 造形 言語를 벗어나 遠近法을 破壞하고, 個人이 보는 方式의 山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세잔을 모르면 現代美術을 理解할 수 없다”고도 한다. 권순철은 세盞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칼 융이 말하는 ‘集團 無意識’을 個個人의 몸을 통해 表現하고자 한다.

또 앞서 人體를 그렸던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이나 에곤 실레(1890~1918)와도 다르다. 두 作家의 人體는 ‘肉體’에 가깝다. 暴力的으로 비틀거나(베이컨), 性的인 要素를 强調(실레)하며 時代的 狀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卷 畫伯은 오히려 수많은 얼굴과 精神을 겹쳐가며 ‘原形’(原型)을 찾고자 한다. 이런 探究는 얼굴을 넘어 人體 作業으로도 擴張되고 있다.

권순철 ‘몸-넋’, 2003,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권순철
권순철 ‘몸-넋’, 2003, 캔버스에 油彩, 162X130cm ⓒ권순철


● 美術史 借用과 正體性은 現代美術의 話頭

권순철, ‘세 여인’, 1969, 캔버스에 유채, 96x131cm ⓒ권순철
권순철, ‘세 女人’, 1969, 캔버스에 油彩, 96x131cm ⓒ권순철

作家가 自身의 意圖에 맞게 過去 美術史의 方式을 借用하고, 이를 통해 正體性을 探究하는 것은 最近 現代 美術家들이 자주 使用하는 方式이다. 英國 作家 데이비드 호크니(83)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造形 言語를 속속들이 探究하고 이를 現代的으로 再解釋해 大衆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젊은 美術家들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等 表現主義 美術家들의 言語를 自身만의 方式으로 解釋한다. 권순철은 세잔이 生빅투아르 山에 담은 ‘精神性’에서 影響을 받았다.

권순철, ‘용마산’, 1990,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권순철
권순철, ‘용마산’, 1990, 캔버스에 油彩, 162X130cm ⓒ권순철



또 正體性이나 時代的 狀況을 感覺的으로 담는 것 또한 重要한 問題다. 1998年 英國의 現代美術商人 터너賞을 受賞한 크리스 吳필리(52)는 自身의 先祖가 살았던 짐바브웨의 코끼리 똥으로 作品을 만들었다. 英國에선 쓸모없는 코끼리 똥이 짐바브웨에서는 거름은 勿論 燃料이자 建築 材料로 使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5年 테이트모던에서 回顧展을 연 南아메리카 共和國의 作家 마를렌 뒤마(66) 또한 얼굴로 時代性을 表現한다. 그가 그린 얼굴은 主로 言論에 報道된 記事나 大衆 媒體에 登場한 이미지를 變形시킨 것들이다. 종이 위에 잉크의 번짐 效果를 活用한 그림들은 時時刻刻 變하는 現代 社會의 條件 속에서 不安한 사람들의 心理를 보여준다.

얼굴 (미륵), 1998, 캔버스에 유채, 130x98cm ⓒ권순철
얼굴 (彌勒), 1998, 캔버스에 油彩, 130x98cm ⓒ권순철




권순철은 時代的 狀況과 歷史를 물감에 담아 쌓아 올리는 方式을 통해 窮極的으로 普遍性을 追求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日帝時代부터 歷史를 몸으로 겪은 얼굴에는 崇高함이 있다. 過去 서울의 터미널이나 汽車驛에 가면 地方에서 子息들 보러 上京한 村老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 겪으면서도 땅과 家族을 지키며 살아온 超然한 얼굴엔 壓倒的 기운이 있다. 이 얼굴에 精神까지 表現할 수 있다면 그것은 世界的인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민 記者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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