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嶺南이 親全斗煥? 너희가 TK를 아느냐|주간동아

週刊東亞 1319

..

嶺南이 親全斗煥? 너희가 TK를 아느냐

[김수민의 直說] “全斗煥 功過 竝存” 李·尹… 嶺湖南 갈라치기 말라

  • 김수민 時事評論家

    入力 2021-12-19 10: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동아DB]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大選候補(왼쪽)와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候補. [東亞DB]

    慶北 다부동과 光州 망월동은 동지다. 망월동 墓域에 잠든 분들을 包含한 5·18 民主抗爭 光州 市民軍은 獨裁者에 對抗해 蹶起했다. 다부동 戰鬪에 參戰한 國軍은 民主와 自由를 守護하는 일에 목숨을 잃었다. 6·25戰爭 直前 치른 2代 總選에서는 여러 野圈·無所屬 候補가 李承晩 政權에 對立해 勝利했다. 大韓民國은 普通選擧가 없는 北韓보다 진작부터 民主的인 體制였고, 民主化 歷史를 통해 “勇士들이 지킨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 맞다”는 것을 確認했다.

    嶺南서만 全斗煥 呼名하는 李·尹

    “全斗煥도 功過가 竝存한다. 經濟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일은 成果인 게 맞다.”

    더불어民主黨(民主黨) 李在明 大選候補가 大邱·慶北(TK) 訪問에 나선 12月 11日 慶北 漆谷郡 다부동全的記念館에서 꺼낸 發言이다. 다부동 戰鬪 當時 高校生이었고 11年 뒤 5·16 쿠데타를 支持하는 陸軍士官學校 生徒 示威에 앞장선 전두환 前 大統領과 最近에도 遺骸가 發掘되는 當時 戰死者들은 아무런 關聯이 없다.

    李 候補의 發言은 ‘嶺南은 친(親)전두환’임을 前提하고 있다. 國民의힘 尹錫悅 大選候補가 釜山에서 전두환 擁護 論難을 일으킨 것과 닮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江原·忠淸·全羅道에서도 같은 소리를 하고 돌아다녔어야 한다. 李 候補는 이미 大邱·慶北選擧對策委員會 總括選對委員長職을 維新·5共 時節 與黨 人士였던 박창달 前 議員에게 맡긴 바 있다.

    李 候補는 이날 慶北 奉化郡에서 오랜 知人들과 對話를 나누며 “여태까지 色깔이 똑같다고 빨간色(國民의힘 系列 正當)이라 찍었다. 그런데 率直히 TK가 亡했지 않느냐. 무엇을 해줬느냐”라고 말했다. 慶北 北部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 私席에서나 펼칠 恨歎이다. 釜山에 가서는 불쑥 “釜山, 재미없잖아 率直히”라더니 ‘故鄕’에 들러서는 地域과 그 住民을 함부로 裁斷했다. 地域 現實은 勿論, 韓國 現代史와 地域 政治를 理解하는 사람이라면 낙인찍듯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韓國 現代史에서 農村은 애初 ‘保守’的이었다. 첫째, 農地改革을 거쳐 자영농으로 거듭난 이들은 反體制的 性向을 갖기 어렵다. 둘째, 6·25戰爭 當時 虐殺과 肅淸이 남긴 傷痕은 農村 사람들의 政治的 自由를 더욱 옥죄었다. 戰爭에서 비롯된 ‘洛東江 오리알’이라는 表現처럼 ‘골로 간다’는 말 亦是 慶北地域의 슬픈 歷史를 안고 있다. 政治犯이나 附逆者로 몰린 住民이 山골에서 處刑된 事件에서 由來한 表現인 것이다. 李 候補 故鄕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았다. 셋째, 새마을運動은 農村이 體制에 耐火하게 된 決定的 契機다. 이들 세 가지 要因은 嶺南만의 것이 아니다.

    嶺南과 湖南의 政治意識은 産業化 局面에서 갈리기 始作했다. 京釜線 等 旣存 인프라와 美國·日本이 友邦인 國際秩序는 ‘京釜축 産業化’를 誘引 乃至 强制했다. 湖南 農村 靑年들은 他地로 떠나 比較的 더 많이 苦生했고, 嶺南 農村 靑年들은 隣近 都市에 就業했다. 湖南 住民이 地域不平等에 憤慨하던 것이 當然하듯, 子女가 隣近 地域에 就業하는 것을 지켜본 嶺南 農村 住民이 與黨 性向으로 기우는 것도 特異한 現象은 아니었다.

    그間 TK 都市地域의 政治 現實은 크게 달라졌다. 얼핏 國會議員 議席數만 보면 特定 政黨이 獨占하는 것 같지만, 이는 1等만 當選되는 小選擧區制 때문에 생긴 錯視다. 政黨 得票率이나 基礎議員 中選擧區에서는 多樣性이 커져왔다. 産業化 過程을 거치면서 일어난 變化다. 2010年 慶北 구미시에서 基礎議員을 하며 地域 政治人 最初로 朴正熙記念事業 豫算 支援을 反對한 筆者는 當時 “이것은 豫告된 事件”이라고 말한 바 있다. 産業化는 現地人의 意識 變遷, 타지 人口의 流入, 勞動階級 形成을 낳으며 地域民의 다양한 欲求와 希望을 蓄積하는 法이다.

    農漁村地域은 이러한 變化를 덜 겪었다. 嶺南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湖南·忠淸·江原 地域도 마찬가지다. 여러 地域이 비슷한 現實을 經驗했다. 該當 地域들이 모두 保守政黨 系列에 몰票를 줬던 것도 아니고, 민주당 系列 政府 15年 동안 이 地域들에 出口가 마련됐던 것도 아니다. “國民의힘 찍다가 亡했다”고 置簿할 것이 아니라 모든 政治勢力이 責任感을 가져야 한다.

    “國民의힘 찍다가 亡했다” 틀린 理由

    그러려면 低開發 狀態인 農村에서도 肯定的 可能性을 發見할 줄 알아야 한다. 農村地域에서 댐 建設을 推進하면 댐 效用性과는 相關없이 土豪·土建勢力과 地方自治團體, 政治權의 共同作戰으로 霎時間에 댐이 建設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테다. 그러나 慶北 英陽郡에서는 少數 農民이 8年間 反對 鬪爭을 이어가며 制度 政治權을 움직여 끝내 營養댐 建設을 民主的으로 白紙化했다. 運動이 失敗할 때도 잦지만 그때도 住民들은 그 地域이 政治的으로 살아 있는 곳임을 證明한다.

    1998年 10月 15日 時事評論家 유시민 氏는 ‘週刊東亞’ 前身 ‘뉴스플러스’에 칼럼 ‘들어라! TK들아’를 發表했다. 當時 TK 地域엔 “김대중 政府가 工場을 全羅道로 빼돌린다”는 마타도르가 떠돌았고, 한나라당은 이 같은 ‘地域 情緖’를 利用해 場外集會를 이어갔다. 1995年 專 前 大統領이 監獄에 갇혔을 때는 그를 擁護하는 市民 輿論도 만만치 않았다. 柳氏는 自身이 TK 出身임을 利用해 地域 酒類 輿論을 叱咤했다.

    23年이 지난 只今 筆者는 또 다른 問題에 對해 묻는다. “너희가 TK를 아느냐.” 5·18 民主抗爭을 헐뜯거나 專 前 大統領을 讚揚하는 市民은 極少數다. TK도 그렇다. 2019年 몇몇 自由韓國黨(現 國民의힘) 政治人이 ‘5·18 妄言’을 뱉자 곧바로 같은 黨 所屬 權泳臻 大邱市長이 謝過했다. 그런데도 TK를 偏見에 가두고 다른 地域과 갈라치기하는 이들이 있다. 地域을 ‘빨간色’이나 ‘全斗煥’ 따위로나 認識하는 限, 이쪽이나 저쪽이나 ‘守舊反動’ 아닐까.

    비슷한 사람끼리 똘똘 뭉친 것 같은 地域에도 多樣性이 살아 숨 쉰다. 저마다 떨어져 따로 苦生하는 듯한 地域들도 하나의 비전으로 統合할 수 있다. 韓國 現代史는 이미 그 길을 걸어왔다. 亡한 것은 侵略과 獨裁와 갈라치기日 뿐, 그 사이에 있었던 숱한 犧牲과 勞苦는 헛되지 않고 서로 連結돼왔다. 망월동과 다부동은 하나다.



    댓글 0
    닫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