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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값 登錄金 鬪爭보다 學閥主義 打破 運動이 먼저다|신동아

半값 登錄金 鬪爭보다 學閥主義 打破 運動이 먼저다

  • 장석주| 是認 kafkajs@hanmail.net

    入力 2011-07-21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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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社會는 學閥이 身分을 決定하는 社會다. 學閥로 뭉친 特定 集團이 돈과 權力을 獨占한다. 게다가 學閥을 통해 얻은 富와 權力, 名譽는 다음 世代에게 고스란히 世襲된다. 學閥은 社會 階層의 垂直移動을 막는 障壁이며 平生 써먹어도 닳지 않는 象徵 財貨다. 學閥 없는 사람은 結婚하기도 힘들다. 大統領에까지 올랐지만, 上告 出身인 노무현도 끝내 이 學閥의 壁을 넘어서진 못했다.
    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

    半값 登錄金 촛불集會에 나온 大學生들.

    大學 登錄金이 尖銳한 政治的 이슈로 떠올랐다. 大學 登錄金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아우聲이다. 이로 인해 家計 負擔이 만만치 않은 것도 事實이고, 많은 大學生이 登錄金 마련에 허덕이며 學業은 뒷전이고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것도 事實이다. 한 大學生이 登錄金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窒息死했다는 안타까운 報道도 있었다. 더러는 金融機關에서 學資金을 빌려 쓰고 이를 나중에 갚는데, 그러다보니 卒業을 하고 社會에 첫발을 내디디는 瞬間에 이미 債務者 身分이 된다. ‘비싼’ 登錄金의 核心的 眞實은 大學에서 供給하는 敎育 서비스의 質이 登錄金에 견줘 못 미친다는 얘기다. 大學 門을 나서자마자 ‘大卒 失業’과 ‘88萬원 世代’로 내몰리고, 結局은 人間的 尊嚴을 잃은 채 ‘쓰레기가 되는 삶’으로 墜落한다.

    大學 卒業狀을 얻는 데 들인 費用보다 就業 같은 現實的 效用價値가 떨어졌기 때문에 登錄金이 비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價格에 견줘 商品의 質이나 價値가 떨어지면 消費者가 購買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大學 卒業狀은 學歷·學緣·學閥이 生産되는 基盤이고, 學閥社會에 編入하는 데 必要한 最小 條件이다. 學閥社會에서 離脫한다는 것은 結局 社會의 下層 階級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大學 卒業狀이 學閥社會를 살아가는 데 必要한 最小限의 象徵資本이라는 點, 그리고 學閥에 따른 區別짓기와 階級的 差別이 남아 있는 以上 大學 卒業狀에 對한 社會的 需要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社會的 差別과 不平等의 機制인 學閥社會가 儼然한데 學閥에 對한 幻想이나 大學 卒業狀에 對한 需要가 없어질 理는 없다. 大衆 媒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社會 全體가 過剩 學歷을 부추긴다. 過剩 學歷은 個人으로 보나 國家로 보나 浪費인데도 말이다.

    ‘半값 登錄金’ 問題는 무엇인가? 登錄金이 비싸져서 家計 負擔이 커졌다는 건 問題의 表皮에 지나지 않는다. 그 核心的 本質은 다른 데 있다. 비싸니까 半으로 줄여야 한다는 게 消費者의 立場이고, 登錄金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게 供給者의 立場이다. 둘의 立場은 相衝한다. 半값 登錄金을 實現하려면 政府가 國立大學을 包含해서 私立大學의 損失 部分까지 補償해줘야 하는데, 그러자면 稅金을 써야만 한다. 高等敎育이 社會的 公共財가 아닐뿐더러 身分 徵標로서의 大學 卒業張 取得에 따른 모든 利益 亦是 個人에게 歸屬된다. 稅金이 公共性과 無關한 大學生의 私益과 私學 財團의 營利를 위해 퍼부어져야 한다는 것은 受益者 負擔 原則에도 벗어난다. 그 稅金은 大卒者뿐만 아니라 高卒이나 中卒이 最終 學歷인 納稅者에게서도 나올 것이다.

    半값 登錄金은 正當한가



    劣等한 學歷 때문에 差別과 區別짓기를 當하는 階層이 ‘半값 登錄金’을 負擔한다는 게 理致에 닿는 일인가? 가난한 者가 제 티끌 같은 財産을 모아 富者를 돕고, 被害者가 加害者를 慰勞하며 돕는 格이다. 團地 納稅者라는 理由로 自身과 아무 聯關이 없는 半값 登錄金을 위해 財政的 負擔을 지우는 이런 解法에 欣快하게 同意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大學敎育의 인프라와 敎育서비스의 質的인 向上에 聯動하지 않고, 다만 大學 登錄金만 半값으로 내리겠다는 政治權의 約束은 有權者의 票를 의식한 典型的인 大衆 迎合的인 發想에 지나지 않는다. 半값 登錄金 鬪爭은 公共性이 不在할 뿐만 아니라 병든 몸통은 그대로 두고 꼬리만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 社會에 퍼져 있는 學閥主義야말로 병든 몸통이다. 그러므로 半값 登錄金 鬪爭보다 앞서야 할 것이 學閥主義 打破 運動이다.

    그렇다면 ‘學閥’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왜 社會的 問題가 되는가? 어느 특정한 階層에 權力과 돈이 集中하는 現象에서 ‘學閥主義’의 弊端이 派生한다. 學閥은 社會構成員들 사이의 ‘差異’를 낳는다. 아울러 이 差異는 “生活條件의 主要한 集合을 갈라놓는다.”(부르디외, ‘區別짓기’) 階層의 序列化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 中心에 ‘서울대학교’가 있다. 김상봉은 “서울대는 韓國의 支配階級이다”(김상봉, ‘學閥社會’)라고 規定한다. 學閥社會의 始發點은 國立大學校의 特權的 地位를 갖고 있는 ‘서울대학교’다. 學閥社會가 일으키는 모든 弊端도 그 責任이 霸權的 地位를 갖고 온갖 特惠를 누리는 ‘서울대학교’로 歸屬된다. 韓國社會의 權力과 財貨의 分配에서 ‘서울대학교’ 出身들은 最上位 受惠集團이다. 우리 社會에서 어느 學校 出身이냐에 따른 軟膏姓은 橫的·縱的 紐帶關係를 만드는 基礎的 人者다. 김상봉은 學閥主義가 만드는 問題를 이렇게 明瞭하게 짚는다.

    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

    지난 6月13日 國會에서 열린 敎育科學技術委員會 全體會議에서 野黨 議員들이 노트북에 ‘半값 登錄金 約束 지켜라’는 文句를 붙여놓고 會議를 하고 있다.

    “韓國社會에서 學閥은 社會的 差別과 不平等의 機制이다. 여기서 社會的 不平等의 機制란 사람들 사이의 差異를 差別로 고착시키는 區分原理, 卽 差別과 不平等의 規定根據(Bestimmungsgrund)를 뜻한다.”(김상봉, 앞의 冊)

    學閥이 階級的 差異를 만든다는 것은 누구도 否定할 수 없는 眞實이다. 學閥의 序列化 頂點에 서울大가 있고, 그 아래에 延世大·高麗大가 있다. 정진상은 이 大學 序列體制에 두 次元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서울대를 頂點으로 形成되어 있는 ‘大學看板’ 序列이고, 다른 하나는 專門的 일자리가 保障되는 學問, 例컨대 自然 系列의 醫大, 한의대, 藥大 等과 人文社會 系列의 法大, 經營大, 師範大를 上位에 두는 學問 序列이다.”(정진상, ‘國立大 統合네트워크―入試 地獄과 學閥 社會를 넘어’)

    學閥社會를 떠받치는 것은 强固한 大學 序列體制다. 서울대는 大學 序列의 피라미드에서 最上位를 차지한다. 서울大 出身들이 政治, 經濟, 言論, 學問 等의 分野에서 獨占的 支配 權力을 누리는 까닭이다. 서울大 學閥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社會的 身分의 徵標다. 어느 分野에 있든 學閥主義라는 緣줄을 타고 旣得權을 쉽게 손에 거머쥔다. 詩人 박노해는 이렇게 詩에 적는다.

    “서울대 年·고대 出身끼리는 保守 進步 가릴 것 없이 人脈을 타고 / ‘우리가 남이가’ 끌어주고 키워준다면서요.”(박노해, ‘사람만이 希望이다’)

    學閥의 緣故에 따라 끌어주고 밀어주기는 어느 組織에나 있는 慣行이다. 學閥에 따라 公公然하게 ‘숨은 區別짓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아래 연세대나 고려대와 같은 次上位 集團의 卒業者 亦是 權力과 財産을 取得하는 競爭에서 유리한 位置에 선다는 것은 公公然한 事實이다. 學閥에 따라 權力·돈·名譽가 따라오고, 社會的 差別과 不平等 構造가 固着化된다.

    노무현은 왜 失敗했는가? 그의 脆弱點은 ‘學閥’의 貧困함, 더 넓게는 아비투스(habitus)의 不在에 있었다. 아비투스를 社會構造와 個人의 實踐 行爲 사이의 認識論的 斷絶을 넘어서는 媒介的 메커니즘으로 理解하고 槪念化한 學者가 피에르 부르디외다. 부르디외는 ‘區別짓기’에서 行動과 認知, 感知와 判斷의 性向體系로서 個人의 歷史 속에서 내면화되고 肉體化 메커니즘을 ‘아비투스’라고 說明한다.

    “學閥을 통한 支配 헤게모니는 大衆媒體를 통해 傳播되어 階層別로 一種의 ‘아비투스’를 成立한다.”(김동훈, ‘韓國의 學閥,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노무현은 名門으로 꼽히는 부산상고 出身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大學 卒業狀이 없었다. 司法考試를 거쳐 辯護士로, 人權運動家로, 國會議員으로, 長官과 大統領으로 立身揚名하지만, 그에게 따라붙는 ‘上告 出身’이라는 꼬리票는 떼지 못했다. ‘高卒’ 出身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를 써도 우리 社會의 支配階級을 形成하는 서울대나 연·고대 出身들이 갖는 學歷資本, 文化資本, 社會資本에서 排除될 수밖에 없는 根本的 限界에 놓인다. 盧武鉉에겐 學閥에 따른 ‘人脈’도 ‘아비투스’도 없었고, 그에 따라 權力의 核心에 있으면서도 權力에서 排除되는 奇異한 現象과 마주쳤던 것이다.

    盧武鉉의 敎養 없음

    내 周邊에서 노무현을 대놓고 非難하던 사람들은 흔히 그 非難의 根據로 盧武鉉의 ‘敎養 없음’을 들었다. 이때 ‘敎養’이라는 것은 知識도 아니고 文化와 藝術에 對한 理解力도 아니다. 우리 社會의 支配 權力 集團을 이루는 사람들의 認識이나 話法과 盧武鉉의 그것이 크게 다르다는 뜻이다. 노무현은 確實히 달랐다. 그의 話法은 一切의 假飾이나 ‘잘난 척함’ 없이 率直하고 大膽했다. 그는 高等敎育을 받은 者들의 徵表인 ‘敎養’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다름을 싫어했다. 그는 學閥社會의 不條理함, 卽 ‘區別짓기’에 依해 ‘왕따’를 當하고 내쳐진 것이다. 高卒者가 大卒者에 비해 差別을 받고, 같은 大卒者도 地方大나 非名門大 出身이 名門大 出身에 비해 差別을 받는다면, 이런 社會는 ‘學閥社會’다. 김동훈은 ‘學閥이라는 集團的 偏見’이 社會의 全 部分에 스며들어 ‘文化的·心理的 葛藤’을 빚어내 ‘葛藤社會’를 낳는다고 말한다. 學閥社會의 本質은 變形된 身分社會라는 것이다.

    “우리 社會를 學閥社會라고 명명할 때, 社會學的 側面에서 그것은 變形된 身分制的 價値와 原理가 支配하는 社會를 말한다. 政治學的인 側面에서는 社會的 權力의 配分이 學閥이라는 네트워크에 依해 이루어지는 派黨的 要素로 分配되는 朋黨(朋黨)的 社會를 뜻한다. 經濟學的인 側面에서는 한 社會가 生産해내는 富와 權力을 少數 學閥集團이 地帶追求(rent-seeking) 行爲를 통해 獨占的으로 차지하는 獨寡占社會를 말하며, 文化的 側面에서는 學閥이라는 集團的 偏見이 個人의 人間關係 形成이나 結婚, 就業 等 日常의 모든 領域에 파고들어 文化的·心理的 葛藤을 빚어내는 葛藤社會를 의미한다.”(김동훈, 앞의 冊)

    김동훈은 우리 社會가 學閥이 身分을 決定하는 社會라고 判斷한다. 그 特定 集團에 돈과 權力이 集中하면서 獨寡占社會가 만들어진다. 서울대 亡國論이 나오는 까닭이다. 끼리끼리 뭉쳐서 갖가지 좋은 것들을 獨占하는 學閥社會가 낳은 弊端들이 日常의 領域으로 스미고 파고들면서 人間關係, 結婚이나 就業 等에 不公正한 競爭을 일삼으며 階層 間의 文化的·心理的 葛藤을 派生시킨다는 것이다.

    서울대 亡國論

    노무현이 大統領 자리에 있을 때 唯獨 많은 葛藤이 빚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 葛藤의 根源地는 노무현이 아니라 그의 大統領職 遂行에 番番이 발목을 잡은 政治 權力과 言論 權力이다. 그 뒤에는 學閥이라는 뒷배를 믿고 그 ‘프리미엄’의 단맛을 누리는 旣得權 階層, 知識인 엘리트, 政治家들이 있다. 富와 權力을 쥔 그들이 學閥을 섬기는 것은 그것이 自身들에게만 유리하도록 되어 있는 不公正 게임의 特惠를 누리는 條件이기 때문이다. ‘學閥’은 부르디외의 用語를 빌려 말하자면 ‘象徵 資本’이다. 平生 써먹어도 닳지 않는 象徵 財貨다. 學閥이 公公然하게 象徵 財貨로 通用되는 社會에서는 必然的으로 葛藤을 부른다.

    “學閥이 支配하는 社會에서는 少數의 學閥取得者들이 社會的 權力과 財貨, 名譽를 獨占하게 됨으로써 必然的으로 社會的 葛藤이 增幅된다. 또한 構成員들의 能力啓發과 參與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社會 發展의 總體的 에너지가 低下되고 無氣力과 不滿이 쌓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學閥이라는 證書 取得에 社會的 에너지가 集中됨으로써 消耗的인 競爭이 끊이지 않는 惡循環이 繼續된다.”(김동훈, 앞의 冊)

    結局 學閥이 偏見과 差別의 根據로 作動하고, 黨派的 利益을 擔保하고 富의 獨寡占을 持續시키는 機制가 되는 한 學閥主義에서 派生된 消耗的 惡循環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왜 ‘學閥社會’가 問題가 되는가? 한마디로 學閥이 그것을 얻는 데 들인 費用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學閥에 따르는 特惠는 社會的 公正性의 原理를 顯著하게 違反한다. 學閥이 公共的 原則과 競爭原理에 優先한다는 點이 問題다. 學閥을 통해 얻은 富와 權力, 名譽는 다음 世代에게 고스란히 世襲된다. 學閥은 社會 階層의 垂直移動을 막는 障壁이다. 아울러 學閥은 重要한 結婚 條件 中의 하나다. 좋은 學閥은 配偶者 選擇의 幅을 넓힌다. 反面에 學閥 없는 사람은 配偶者 選擇의 幅이 좁아지는 것은 勿論이거니와 結婚 自體가 힘들다. 김상봉은 學閥社會가 낳은 問題點을 이렇게 指摘한다.

    “다른 많은 社會問題에서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亦是 問題의 最初의 뿌리는 權力獨占과 그에 따르는 社會的 差別과 不平等이라는 社會的 不義에서 始作되고, 이로부터 社會的 意思疏通과 意思決定의 歪曲이라는 不合理로 이어지며, 이 不合理로부터 肥效率과 競爭力의 低下라는 結果를 낳게 한다.”(김상봉, ‘學閥社會’)

    學閥主義가 持續的으로 問題가 되는 것은 이것이 우리 社會에 作動하는 差別과 不平等의 根本的 要因이기 때문이다. 김동훈은 普通사람들이 學閥의 壁을 實感하는 것은 日常에서 겪는 文化的 偏見과 差別이라고 말한다. 學閥主義는 個別者의 集團無意識까지 파고들어 支配한다.

    “個人이 社會的 存在가 되는 契機에 반드시 學閥이 끼어들며 學閥이 끼어든 그 瞬間에 個人은 사라지고 個人의 正體性은 學閥이라는 集團的 이미지에 埋沒되어버린다.”(김동훈, 앞의 冊)

    學閥主義의 核心은 牌거리 짓기다. 政治, 經濟, 社會, 文化 等 分野에서 牌거리를 지어서 좋은 자리를 獨占하고 利속을 챙기는 게 學閥主義다. 學閥은 個人과 個人 사이, 階層과 階層 사이에 깊은 골을 낸다. 그 골을 타고 社會 葛藤과 下位 階層의 累積된 不滿이 흘러간다. 우리 社會 누구도 學閥主義라는 足鎖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學閥主義 社會에 살면서 그 慣行에 自身도 모르게 젖어 있기 때문이다. 學閥主義의 弊端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助長하거나 放任하는 態度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學閥主義度 犯罪다

    김동훈은 우리 社會가 學閥主義라는 足鎖에서 벗어나기 위한 實踐的 方案으로 첫째, 學閥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慣行을 정착시킬 것. 둘째, 學閥主義를 助長하는 言論과의 싸움을 할 것. 셋째, 學閥을 差別하는 企業들을 告發할 것. 넷째, 名門大의 學閥組長 行爲를 告發할 것. 다섯째, 高等學校의 反敎育的 入試 制度를 告發할 것. 여섯째, 學閥主義의 被害者인 高等學校 學生들의 목소리를 끌어낼 것. 일곱째, 私敎育 市場의 學閥 觀念 助長行爲에 制動을 걸 것 等을 提案한다. 우리 社會가 안고 있는 病弊들의 뿌리를 파고들어가면 이 學閥主義와 連結되어 있다. 學閥 序列이 社會的 身分 序列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 學閥을 섬기고 優待하는 社會的 認識을 바꿔야 한다.

    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
    장석주

    1955年 忠南 論山 出生

    1979年 조선일보 新春文藝 詩 當選, 동아일보 新春文藝 文學評論 入選

    同德女大, 경희사이버大 出講

    著書: ‘느림과 비움의 美學’ ‘只今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몽海航로’ 等


    學閥主義로 인해 얻은 旣得權은 賂物이다. 賂物이 犯罪라면 學閥主義度 犯罪다. 人種差別이나 性差別이 犯罪인 것과 마찬가지로 學閥差別이 犯罪라는 社會的 合意가 나와야 한다. 그런 社會的 合意라는 土臺 위에서 學閥差別을 禁止하는 制度를 만들고, 學閥差別을 없애기 위한 意識改革運動이 있어야 한다. 學閥差別로 不利益을 當한 사람들은 그 事實을 社會에 알리고 自身들의 憤怒와 不滿을 積極的으로 보여야 한다. 學閥差別이 없는 社會가 좋은 世上이다. 半값 登錄金 鬪爭보다 學閥主義 打破 運動이 優先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冊들

    ● 피에르 부르디외 | ‘區別짓기’ | 최종철 옮김 | 새물결, 2005,

    ● 김상봉 | ‘學閥社會’ | 한길사, 2004

    ● 정진상 | ‘國立大 統合네트워크 ― 入試 地獄과 學閥 社會를 넘어’ | 冊世上, 2004

    ● 김동훈 | ‘韓國의 學閥,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 冊世上, 2001

    ● 김상봉 外 | ‘學校를 버리고 市場을 떠나라’ | 圖書出版 메이데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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