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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鐵拳 조지 포먼을 눕히다|신동아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鐵拳 조지 포먼을 눕히다

팍스아메리카나의 實相을 貫通하는 代書士

  • 안병찬│前 韓國日報 副局長·言論人權센터 名譽理事長 ann-bc@daum.net

    入力 2011-07-20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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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하마드 알리의 人生 代書士는 美國을 貫通하면서 現在에도 進行되고 있다. 일찍이 20代 챔피언日 때 그는 미합중국을 相對로 ‘1人의 戰爭’을 벌였다. 孑孑單身으로 銃 없는 ‘反轉(反戰)의 戰爭’을 展開했다. 基督敎 白人이 旣得權을 獨占한 아메리카合衆國의 矛盾에 對한 抵抗이고 캠페인이었다. 그 鬪爭 過程에서 그는 基督敎 奴隸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敎로 改宗해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가 챔피언으로서 미합중국에 온몸을 던져 抵抗하던 모습은 팍스로마나(로마帝國)에 反旗를 든 奴隸의 劍鬪士 스파르타쿠스를 聯想시킨다. 또는 이슬람 原理主義 戰士로 팍스아메리카나의 徹天之怨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一面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리의 個人事(個人史)를 통해 美國의 內面과 矛盾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原稿는 當初 무하마드 알리가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헤비級 金메달을 獲得하고 50周年이 되던 해인 2010年에 맞추어 企劃한 것이다. 筆者는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의 形式에 따라 大反轉의 連續인 알리의 敍事的 삶을 再構成한다. 르포르타주는 歷史性과 文學性을 志向하는 非虛構的 저널리즘 記錄 形式으로 깨끗한 抒情, 冷徹한 數字, 體驗에서 우러나는 明證(明證)을 根幹으로 삼는다는 것이 筆者의 持論이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974年 10月30日 아프리카 자이르 킨샤사에서 열린 WBA 헤비級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조지 포먼이 알리의 强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들어가며

    黑人이자 이슬람敎徒인 무하마드 알리는 世界를 뒤흔든 ‘傳說的인 복서’라는 名聲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20年째 重症 파킨슨病을 앓으면서도 決코 주저앉지 않고 平和主義者의 삶과 人道主義의 삶을 志向하면서 人格的인 크기를 더하고 있다. 1942年 1月17日生이니 올해 나이 69歲다.



    6月18日은 美國의 ‘아버지의 날’이었다. 그날 무하마드 알리의 셋째딸인 해나 야스민 알리(34)는 CNN닷컴에 ‘나의 아빠, 무하마드 알리’라는 글을 올렸다.

    해나는 아버지 알리를 네 가지로 評價했다.

    첫째, 링 위에서나 밖에서나 맞닥뜨리는 어떤 葛藤도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둘째, 平和와 人道主義를 爲해 獻身하고 있다. 이슬람 國家인 이라크와 레바논 等地에서 美國 人質들을 釋放하려고 平和의 使節로 活動해왔다.

    셋째, 重症 파킨슨病을 앓으며 動作이 무척 느려졌지만 남을 돕는 일에는 머리와 가슴이 明晳하다.

    넷째, 自己의 名聲을 善行에 活用하고 正當하게 具現한다.

    해나는 아버지의 自敍傳 ‘나비의 靈魂’을 2004年에 執筆했다. 그 內容은 父女의 關係와 아버지의 影響 等에 關한 逸話를 담은 것으로 이슬람 樹皮史上(수피즘)의 神祕主義가 깔려 있다. 일찍이 基督敎徒에서 篤實한 이슬람 信徒로 改宗한 알리는 코란에 계시된 精神的 內容을 깊이 冥想하고, 遂行을 통해 眞理를 體得한다는 樹皮思想을 信奉하고 있다.

    나비의 靈魂

    인도주의자의 아이콘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알리는 天生 拳鬪 챔피언으로서의 因緣을 이어간다. 지난 5月2日 英國 騎士 爵位를 받은 白人 복서 헨리 쿠퍼가 77歲 生日을 이틀 앞두고 死亡했다. 쿠퍼는 1963年 런던 웸블리 競技場에서 열린 世紀의 黑白對決에서 알리의 턱에 왼손 훅을 命中시켜 알리의 拳鬪人生에서 첫 다운을 빼앗은 名場面으로 이름을 올렸다.

    알리는 “나의 親舊 헨리 쿠퍼 京義 죽음에 할 말을 잃었다. 2年 前 우리는 英國 윈저에서 열린 馬術競技를 함께 보았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따뜻하고 감싸 안는 微笑를 보내주었다. 그는 偉大한 파이터였고 紳士였다”는 要旨의 聲明을 發表했다.

    51年 前에 그는 로마올림픽에 參加해 拳鬪競技 라이트헤비급에서 金메달을 목에 걸었다. 열여덟 살이던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本來의 黑人奴隸 이름으로 美國 國家代表 選手가 되어 出戰했다. 올림픽 金메달 獲得은 알리 拳鬪歷程의 華麗한 出發을 알리지만, 同時에 黑人의 正體性을 自覺하면서 더 크고 넓은 삶의 舞臺를 開拓하는 契機가 되었다.

    2011年은 그가 3年 半의 流配生活을 거친 끝에 ‘정글의 血栓(더 럼블 認 더 정글)’이라는 이름을 얻은 競技를 치르고 35周年이 되는 해다. ‘정글의 血栓’은 그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式 새 이름을 가진 後 아프리카의 자이레共和國 首都 킨샤사에서 벌인 世界헤비級統合選手權 決定戰의 이름이다.

    黑人의 正體性을 되찾기 위해 抵抗하고 奮鬪하던 그는 20代 鐵拳人 無敗의 챔피언 조지 포먼을 相對로 정글의 血戰을 펴는 拳鬪 舞臺를 十分 活用했다. 그리하여 킨샤사를 自己 意志대로 아프리카人의 自尊을 限껏 宣揚하는 巨大한 캠페인 場으로 바꾸어 버렸다.

    2011年은 알리가 파킨슨病 診斷을 받았다고 發表하고 27年이 지나간 해다. 不治病에 걸린 事實을 안 것은 한창 活動할 나이인 42歲였다. 腦 神經細胞가 漸次 消失되어 安定(眼睛) 떨림, 硬直, 姿勢不安이 나타나는 神經系의 退行性 疾患이 파킨슨病이다. 世上은 알리가 致命的인 不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어 그의 時代는 終幕을 告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一般의 常識을 뒤집었다. 不治의 疾病을 毅然하게 正面으로 받아들이면서 後期의 人生을 열어 나가기 始作한다. 알리는 한層 遠大한 目標를 세워서 어린이를 아끼고 가난한 사람을 救助하고 平和를 사랑하는 奉仕的인 일을 꾸준하게 實踐하고 있다.

    올림픽 金메달을 딴 以來 半世紀를 이어온 알리의 人生 代書士는 勇氣 있는 七顚八起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삶의 代書士

    무하마드 알리는 젊은 時節 拳鬪에 專念하면서 “나는 가장 偉大한 사람이다(I am The Greatest)”라고 公言했다. 이 말은 虛張聲勢가 아니었다. 그는 拳鬪技術을 갈고 닦으며 챔피언의 길을 가면서 弘報 戰略上 虛風 개그를 考案하고 心理 戰略上 랩을 開發해서 스타덤에 오르는 데 活用했다. 拳鬪專門家들은 그가 ‘정글의 血栓’에서 스스로 考案한 ‘로프 타기 技術’을 보여주자 놀라서 말했다. 미친 짓 아냐?

    그는 이처럼 사람들의 意表를 찌르며 世界헤비級 챔피언에 세 番이나 오르는 大記錄을 세우고 美國 歷史上 가장 偉大한 챔피언이 된다. 알리는 美國 땅에서 黑人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不平等한지 깨닫자 自己가 믿는바 黑人性(네그튜드)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던져 鬪爭했다. ‘정글의 血栓’은 알리에게 一生一大의 拳鬪行事이자 黑人人權行事라는 象徵性을 갖는다. 그는 黑人의 文化的 遺産에 對한 自覺과 子婦, 黑人性을 되찾기 위한 先驅者的인 鬪爭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大衆의 英雄’으로 떠오른다.

    오늘도 그는 重症으로 履行하는 파킨슨病과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 病이 깊어서 이미 얼굴은 表情을 잃었고 몸은 行動力을 喪失했지만 그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平和와 統合을 傳播하는 博愛主義者의 얼굴을 보여준다.

    2009年 여름에 알리는 祖父의 뿌리를 찾아서 백인국人 아일랜드를 처음 訪問했다. 그때 專擔 寫眞作家로 一週日 동안 알리를 同伴한 韓國人 김명중氏는 한 인터뷰에서 알리가 어린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實例를 들었다.

    “…藥이라도 먹지 않으면 몸 떨림을 막을 수 없다는데도 그는 自己 힘으로 서 있으려고 했다. 게다가 제 아이들을 報告나선 그렇게 환하게 웃어줄 수 없었다. 두 살 난 내 막내딸을 무릎에 앉히고 10分을 쳐다보았다.”

    알리의 딸 라셰다 알리도 파킨슨病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凜凜한 姿勢를 決코 잃지 않았다고 證言한다.

    “아버지는 한 番도 ‘왜 내게 이런 病이…’ 하고 怨望한 적이 없어요. 只今도 뚜렷한 自己 目標를 가지고 있지요.”

    鐵人(鐵人)과 哲人(哲人)의 劃을 긋다

    알리는 모든 世代와 疏通하는 ‘魔法의 人物’이다. 波瀾萬丈한 人生歷程은 너무도 劇的이어서 ‘살아 있는 現象’으로 여겨진다. 알리는 勝利와 挫折과 克服을 통해 여러 가지 人間像을 드러냈다.

    그는 챔피언이고 藝能人이다. 그는 抵抗者이고 先驅者다. 그는 偶像(아이콘)이고 博愛主義者다. 이렇게 多面的인 役割로 무하마드 알리는 살아 있는 傳說의 人間이 되었다. 그는 拳鬪라는 打擊機에서 주먹 하나로 英雄的인 챔피언이 된 鐵人(鐵人)의 모습을 넘어서, 拳鬪에 文化와 思想을 混入해 마침내 博愛主義者가 되는 鐵人(哲人)의 모습을 보여준다.

    알리는 敗北할 줄 알고 敗北를 통해 또다시 勝利할 줄 아는 勇氣로 眞正한 ‘삶의 챔피언’이 되었다.

    美國 時事週刊誌 ‘타임’은 그의 逆情을 時間帶에 따라서 올림픽 金메달 受賞者-루이빌의 떠버리-건방진 챔피언-黑人 무슬림 改宗-徵集 拒否-憎惡의 時間-殉敎-챔피언 再奪還-獨占 行進(로드쇼)으로 이어진다고 整理했다.

    筆者는 무하마드 알리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가 어떻게 大스타가 되고 敍事的 英雄이 되고 黑人性의 先驅者가 되었는지, 그리고 不治의 病魔와 싸우면서 어떻게 平和를 向하는 博愛主義者가 되었는지, 一連의 揷畵와 事件을 찾아가며 敍述하려고 한다. 年代記 巡으로 알리의 拳鬪歷程과 人生行路를 풀어나가되, 그中에서 意味가 큰 部分은 劃(劃)을 그어 强調하고 解釋해나갈 것이다.

    이야기의 導入部는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벌어진 ‘정글의 血栓’의 劇的인 場面으로 카메라가 接近하며 擴大하는 ‘줌 人’ 形式을 빌려서 敍述할 것이다. 마침 筆者는 ‘정글의 血栓’이 벌어지고 1年 半 뒤에 킨샤사에 가본 일이 있기에 現場 描寫에 그 經驗을 混入한다.

    主人公 이름은 成長 聯隊에 따라서 처음에는 캐시어스 클레이로 써나가다가 1963年 이름을 바꾼 後부터는 무하마드 알리로 表記하기로 한다.

    ‘로프 타기’ 新技術

    다들 이제 競技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텔레비전으로 보면 포먼이 허덕이는 알리를 때려잡는 듯 보입니다. 알리는 로프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거기 등을 기댄 거예요.

    내 記事에는 窓밖으로 몸을 내밀고 지붕에 뭐가 있는지 보는 姿勢라고 썼지요. 그런 알리에게 포먼이 猛攻을 加했어요.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빠르고 猛烈한 포먼의 攻擊이었어요.

    노먼한테 그랬죠.

    “걸렸어.”

    다운되는 건 時間問題였어요. 로프가 바닥까지 半쯤 내려갔어요.

    洞窟에 웅크린 姿勢 같았죠.

    좀 어설프지만 아주 强力한 量 훅, 이게 마치 애들 싸움처럼 되어갔어요.

    그 라운드와 다음 라운드, 그 다음 라운드도 알리는 로프에 기댄 채 포먼에게 繼續 뭐라고 했어요.

    별난 光景이었어요. 그 渦中에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포먼은 스파링 파트너에게 하듯 줄기차게 强打를 퍼붓고,

    알리는 그네라도 타듯 출렁거렸죠.

    四方으로 몸을 미끄러뜨리면서 이따금 한 臺씩 받아치면서 이랬죠.

    “조지, 失望이야. 생각보다 別로잖아, 조지. 이거 別로 안 세잖아, 조지. 이래서 팝콘이라도 깨겠어? 조지, 안 되지!”

    포먼은 激忿했지요. 갈기고, 갈기고 또 갈겼어요.

    强펀치, 强펀치, 强펀치를!

    5回 中盤까지 포먼은 펀치를 쏟아 부었지요.

    3個 回戰에 걸쳐 내내.

    알리는 포먼이 强펀치를 먹이면 上體를 로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限껏 젖히면서 相對 주먹의 힘을 약화시킨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로프 타기로 에너지를 吸收한다. 相對 펀치가 얼굴에 들어오는 瞬間 옆으로 얼굴을 홱 돌려 힘을 吸收하는 理致와 같다.

    알리가 考案한 로프 타기 卽 ‘로프-아-도프’(원문 rope-a-dope)라는 新技術이었다.

    알리가 間間이 뻗어 치는 빠르고 剛한 펀치와 相對의 주먹을 되받아치는 크로스 카운터로 포먼의 얼굴은 금세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다. 오른팔을 뻗었을 때 왼팔로, 왼팔을 뻗었을 때 오른팔로 되받아 치는 것이 크로스 카운터다. 포먼은 數도 없이 많은 펀치를 던졌으나 알리에게 제대로 된 有效打를 먹이지 못했다.

    알리는 로프를 타며 다시 毒舌을 퍼붓는다. “때릴 수 있어? 넌 못 때려. 넌 밀고 있잖아!”

    알리의 ‘로프 타기’ 테크닉으로 포먼의 에너지는 漸次 枯渴한다.

    알리는 클린치로 엉킬 때마다 포먼에게 自己 體重을 全部 얹거나 기대거나 목을 붙들고 찍어 누르는 作戰을 되풀이한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4라운드와 5라운드. 알리가 4라운드 初盤에 던진 한 番의 콤비네이션(斷髮이 아니라 連續 다발의 펀치)과 5라운드 끝판에 던진 몇 次例의 콤비네이션으로 포먼은 비틀거렸다.

    “조지, 사람들이 네 펀치가 좋다던데! 조지, 네 펀치가 兆 루이스만큼 强하다던데!”

    알리는 ‘褐色 爆擊機’라는 別名을 얻으며 1937年부터 12年 동안 世界헤비級 選手權을 保有한 傳說의 복서 兆 루이스를 들먹이며 포먼을 嘲弄한다.

    KO勝! 8라운드

    8라운드.

    알리의 빠른 라이트 잽에 포먼이 휘청한다. 뒤로 물러선다. 포먼의 라이트 훅. 알리의 라이트. 다시 연타당한 포먼. 포먼의 얼굴에서 땀이 흩날린다. 알리가 포먼의 펀치를 消盡시키고 反擊한다.

    조지 플림턴은 얼떨떨한 表情을 하고 있는 노먼에게 말한다.

    “포먼한테 惡靈이 들었나봐!”

    8回가 30秒 남았을 때 알리가 터뜨린 最後의 콤비네이션 連屬打.

    첫 番째 왼팔 훅이 포먼의 머리를 위로 젖히게 만든 瞬間 뒤이어 强力한 오른팔 스트레이트가 얼굴에 名中한다. 알리는 다시 라이트 어퍼컷을 加할 準備를 했지만 뻗을 必要가 없다.

    포먼은 비틀거리더니 빙글 돌아서 링 위에 등을 대고 떨어진다.

    主審 잭 클레이턴이 쓰러진 포먼을 向해 카운트에 들어간다.

    “…투, 스리, 抛, 파이브, 식스, 세븐…” 에이트에 포먼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알리의 그 끝내기 한 房. 포먼이 쓰러지고 알리는 다가갔다. 알리는 다시 라이트 어퍼컷을 準備했지만 쓰지 않았다. 相對가 沈沒하는 李 長官을 망칠 必要가 없었다.

    아나운서 1의 외침

    끝입니다! 競技가 끝납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8라운드 케이오勝!

    조지 포먼에게 케이오勝을 거둡니다.

    이겼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勝利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무하마드 알리가.

    아나운서 2의 외침

    갑자기 그 瞬間이 왔습니다.

    그건 ‘팬텀 펀치(거짓 펀치)’가 아니었어요.

    조지 포먼이 바닥에 누운 걸 보세요.

    팬텀 펀치가 아니라 眞짜 펀칩니다.

    포먼이 다운됐어요. 아웃이에요!

    當初 알리의 心算은 달랐다. 킨샤사의 더위 때문에 포먼과 對決해서 내내 춤추는 拳鬪를 할 수 없다는 點을 計算했다. 알리는 ‘로프 타기’ 戰術을 써서 포먼이 自己를 몰아치다가 힘이 빠질 때를 노렸다. 알리의 코너맨들은 로프에서 떨어지라고 악을 썼지만 알리는 自己 戰略을 7라운드까지 固執했다.

    마침내 8라운드. 알리는 로프에서 떨어져 나오기 무섭게 모두 戰慄할 넉 아웃 펀치를 포먼에게 날렸다.

    알리는 재빠른 발놀림에 依存해 춤을 추며 움직이는 本來의 복싱 技法을 깨끗이 버리고, ‘로프 타기’라는 色다른 戰術을 應用했다. 이 變化로 알리는 다시 王이 되었다.

    ‘정글의 血栓’은 헤비웨이트級 복싱 史上 最高의 競技였다.

    알리의 ‘아프리카 祝歌’

    競技가 막 끝나자 雨期이던 킨샤사에 기다렸다는 듯이 長대비가 쏟아졌다.

    單 한 時間 만에 競技場의 라커룸이 물에 1m 以上 잠길 程度로 暴雨가 내렸다.

    새벽인데 그 빗속에 알리의 勝利 消息을 들은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이 길에 나와서 펄쩍펄쩍 뛰었다. 알리는 그런 아프리카 사람들과 어울려서 黑人精神을 가다듬는 思想家로서 簡潔하면서도 멋진 말을 던졌다.

    아프리카系 아메리카인(美國 黑人)은 아프리카人인 當身들만 못하다. 더러는 富者도 있지만 가난한 當身들이 지니고 있는 矜持가 없다. 우리는 美國에서 망쳤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矜持를 아프리카人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리에겐 많은 問題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풀어야만 한다.

    賣春, 痲藥, 牌싸움.

    黑人들은 自身에 對해 아는 것이 없다.

    精神的으로 白人들처럼 길들어왔다.

    主로 白人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自身을 알도록 가르치는 일, 스스로 뭉치고 굳게 結合하도록

    敎育하는 일은 쉽지 않다.

    黑人들이 이제 白人처럼 되어버렸다.

    當場 생각을 改造해야 된다.

    自己 歷史와 自己 言語를 가르치고 同族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도록.

    白人들한테 求乞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해나가야지.

    안병찬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警察에 앞서 殺人事件 2件을 解決해 이름을 날린 事件記者 出身. 韓國日報 베트남 特派員 時節이던 1975年 南部 베트남 敗亡(베트남 統一)의 마지막 現場을 取材하고 脫出한 後 르포르타주 ‘사이공 最後의 새벽’을 發刊해 서울市 文化相을 받았다. 한국일보 編輯部局長·主佛特派員·論說委員을 거쳤고 週刊誌 시사저널 編輯·發行人을 歷任한 後 경원대 言論學 敎授로 자리를 옮겼다. MBC 時事프로 ‘안병찬의 日曜廣場’ 司會者·放送委員會 第1報道敎養委員會 委員長·韓國비디오저널리스트協會長·言論人權센터 理事長을 歷任했다. 言論學博士로 現在 民營通信 뉴시스의 固定칼럼 ‘記者 49年次―안병찬의 映像르포르타주’(http://www.newsis.com)를 執筆하고 소셜뉴스 위키트리의 個人 데스크 ‘安炳瓚 記者 49年次’(http://www.wikitree.co.kr)를 運營하며 言論人權센터 名譽理事長을 맡고 있다. ‘新聞 發行人의 權力과 리더십’ 等 著書 16卷이 있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章 / ‘정글의 血栓’

    1 콩고강 킨샤사로

    콩고 江.

    ‘世界에서 가장 强力한 江’이라고 한다. 모든 講을 집어삼킨다는 野性的인 江이다. 長長 4375㎞의 물줄기는 巨大한 抛物線을 그리며 아프리카 中部內陸의 廣闊한 자이르 國土를 흐르니, 地理的으로 콩고 江과 자이르는 一心同體를 이루고 있다.

    킨샤사.

    콩고 江 어귀 가까이에 있는 熱帶林의 首都다.

    1976年 5月 初 나는 자이르 首都 킨샤사에 들어갔다. 한국일보 特派員으로서 아프리카 大陸 東部-南部-西部를 35日 동안 一周하며 ‘아프리카의 화맥(火脈)’을 取材하는 길에 寄着한 곳이다. 世紀의 拳鬪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主演한 ‘정글의 血栓’이 벌어지고 1年 半이 지났을 때였다.

    저녁 때 킨샤사 北쪽 江邊에 나가 콩고 講을 카메라에 담았다. 熱帶雨林 너머 西쪽 하늘은 夕陽을 받아 붉게 빛나고 흰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콩고 江 濁流는 水面에 그 莊嚴한 붉은 太陽 덩어리를 담아서 길게 投影하고 있었다. 果然 아프리카의 野性과 生命力을 運搬하는 大動脈다운 江이었다.

    그런데 보라. 夕陽녘의 콩고 江 기슭에서 黑人 母女가 발가벗고 沐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프리카의 赤裸裸한 場面을 담으려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카메라를 겨냥했다. 處女는 렌즈를 의식하자 스스럼없이 일어서서 豐滿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自己 몸매를 뻐기는 것이 아닌가.

    1年 半 前인 1974年 10月30日 킨샤사는 너무도 아프리카的인 同時에 너무도 아메리카的인 ‘뿌리의 祭典’을 演出했다.

    血戰과 大祝祭

    이 정글의 都市에서 아프리카系 美國人(아프리칸-아메리칸 또는 阿프리코-아메리칸)인 두 헤비級 拳鬪選手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타이탄의 格鬪’를 벌였다. 그 챔피언 타이틀전에는 ‘정글의 血栓(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大戰 視角은 10月30日 새벽 4時.

    世界의 줌렌즈는 客席이 6萬2800席인 킨샤사의 ‘5月20日 스타디움’(프랑스語 原名: ‘스타드 뒤 뱅트 메’·Stade du 20 Mai)에 焦點을 맞추어 漸漸 다가가고 있었다.

    킨샤사에서 일어난 ‘정글의 血栓’은 單純히 世界헤비級 拳鬪의 헤게모니를 다툰 勝負의 한판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땅에 옮겨간 아프리카人과 아프리카 땅에 남아 사는 아프리카人이 만나서 演出한 아프리카 傳統 文化의 大祝祭였고 아프리카의 뿌리와 아프리카의 正體를 찾는 象徵的이고 力動的인 政治 쇼였다.

    ‘정글의 血栓’을 스포츠와 思想의 兩面에서 絶頂의 祝祭로 이끈 主役은 아프리카系 아메리카人이자 이슬람敎徒(아프리칸-아메리칸 무슬림)인 무하마드 알리였다.

    2 稀代의 興行

    美國 뉴욕.

    1974年 어느 날 拳鬪 興行師 돈 킹이 記者會見場에 나타났다.

    그는 豫想을 훌쩍 뛰어넘는 ‘타이탄의 對決’이 成事되었다고 發表한다. 오는 9月에 美國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挑戰者인 全 世界헤비級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現 世界헤비級챔피언 조지 포먼이 맞붙기로 했다는 內容이다.

    돈 킹 : 者, 두 사람의 契約이 現實로 이루어졌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자이르의 킨샤사에서 對決합니다. ‘럼블 認 더 정글’. 이것이 우리가 이番 챔피언戰에 붙인 이름이오.

    記者 : 뭐요 돈 킹, 자이르라고요?

    돈 킹 : 그렇소, 자이르요.

    記者 : 이봐요, 왜 南極 같은 데서 열지 그래요?

    記者 : 뉴욕에서 열면 큰일 나요?

    돈 킹 : 여러분은 重要한 것을 놓쳤어요. 보시오. 나는 400年의 人種 差別을 克服하고 새로운 黑人 解放의 날 새벽을 여는 꿈을 꿔왔단 말이오. 이番 大田은 美國에 사는 우리의 精神을 煽揚해줄 것이고 希望을 채워줄 것이오. 우리 靈魂을…우리 黑人 프롤레타리아의 抛棄할 수 없는 要求를 말이오. 무슨 말인고 하면 이番 大田은 게토라고 부르는 黑人 居住地에 가득한 失望과 落膽, 그리고 侮辱感을 希望으로 바꿔줄 거란 말이오.

    記者 : 참 나, 돈, 돌지 않았어요?

    記者 : 돈, 當身은 辭典의 어떤 項目을 몽땅 외워버린 사람처럼 有識하게 區네요.

    돈 킹의 말에 報道陣은 氣가 차다는 反應이다.

    위의 場面은 完璧主義를 固守한다는 할리우드 監督 마이클 萬이 만든 映畫 ‘알리(Ali)’의 導入部에 나온다.

    돈 킹은 ‘정글의 血栓’이 벌어지기에 앞서서 9月20, 21, 22日 사흘 동안은 킨샤사 競技場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 最高의 歌手인 제임스 브라운, 비비 킹, 스피너스 等이 參加해 力動的인 黑人音樂을 公演하고 그 實況을 全世界에 中繼放送한다고 說明했다. 아메리카 黑人音樂을 ‘정글의 血栓’과 椄木하고 뿌리가 같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同族이 어우러져 巨創한 잔치판을 펼치겠다는 말이다.

    알리의 랩 揶揄

    무하마드 알리는 오래前부터 美國 黑人들이 眞正한 故鄕인 아프리카에서 正體性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돈 킹은 타고난 興行師답게 그런 알리의 意中을 看破하고 興行의 重要한 要素로 活用한다.

    記者會見場에 同席한 무하마드 알리는 목청을 높여 랩처럼 빠른 말을 쏟아냈다. 隨時로 터져 나오는 虛風과 揶揄와 毒舌은 타고난 才能이다.

    이 싸움은 스포츠 歷史上 類例가 없는 큰 祭典이 될 거요. 모든 競技를 통틀어서 史上 最高의 競技謠.

    아프리카系 아메리카人이 아프리카人을 만나는 紀念碑的인 첫 行事요. 거기에다 내가 조지를 박살내지. 조지 포먼을 박살내. 우리는 정글의 血戰場으로 가는 거요. 가자, 가자!

    얼마 後, 무하마드 알리는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記者會見을 했다. 하늘色 와이셔츠에 블루진 바지를 입고 나온 알리는 입심 좋게 조지 포먼을 揶揄했다.

    怪物 소니 리스튼이 모두 매트에 눕히니까 이제 아무도 相對할 사람이 없다고들 했지? 그런데 無名의 이 캐시어스 클레이가 소니 리스튼을 때려눕히지 않았나. 리스튼은 플로이드 패터슨을 두 番 때려눕힌 親舊야.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했다니까. 그래도 조지 포먼보다는 리스튼이 펀치가 歲요. 조지보다 리치度 길고 더 잘난 복서가 리스튼이지.

    난 이제 소니 리스튼에게 달려들던 22살 애송이 때의 내가 아니란 말이오. 經歷이 붙었지. 난 美國 鰐魚와 씨름도 했어요. 美國 鰐魚와 씨름을 했다니까!

    난, 고래하고도 싸우고 번개에 手匣을 채우고,

    벼락을 監獄에 가두고 지난週엔 바위를 죽이고,

    돌멩이에 負傷을 입히고 甓돌을 病院에 보냈지,

    난, 빠르지 빨라 빨라 빨라.

    지난밤엔 寢室 電燈 스위치를 끄자마자 미처 불빛도 꺼지기 前에 寢臺 속에 뛰어들었다니까.

    그렇게 宏壯히 빠르지, 빨라.

    조지 포먼을 꺾으면 모두 얼떨떨해서 나한테 굽실거릴 巨野! 포먼을 혼내줄 거야! 내가 얼마나 偉大한지 보여줄 거야!

    알리는 랩을 리듬에 맞춰 빠른 速度로 읊어대듯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速射砲같이 빠르게 險談을 쏟아내고 거침없이 自己 자랑을 해댄다. 自己가 詩人이라고 自處하는 알리는 리듬 있는 입담으로 相對 選手의 약을 올리며 視線을 自己 쪽으로 끌어 모으는 弘報와 宣傳의 名手다.

    무하마드 알리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 이름으로 프로복싱界에 華麗하게 登場할 때부터 自己가 考案한 랩 作戰을 心理戰과 宣傳戰에 活用했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은 瞬發力이 있는 머리와 타고난 感覺에서 나온 것이다.

    怪物 興行週 돈 킹

    美國의 복싱 興行師인 돈 킹(1931年生)은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정글의 血栓’을 성사시킨다는 興行計劃을 맨손으로 만들어낸 怪物이다.

    돈 킹은 처음에 무하마드 알리를 만나면서 拳鬪業界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클리블랜드시 出身인 돈 킹은 地域病院에서 黑人 歌手 로이드 프라이스가 나오는 慈善쇼를 組織한 적이 있는데 무하마드 알리에게 示範競技를 해달라고 付託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後 돈 킹은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對戰을 推進하겠다고 나서고 對戰料로 한 사람에게 500萬달러씩 支給하겠다고 壯談했다. 無一푼인 킹은 後援者를 찾다가 國外로 눈을 돌려 자이르共和國의 絶對 權力者 모부투 世世 세코 大統領을 物主로 잡는 데 成功했다. 交涉하던 끝에 마침내 모부투는 史上 最高의 對戰料로 1000萬달러를 내놓기로 約定했다. 모부투는 1974年에 憲法을 改正한 後 自己가 享有하는 絶對 權力을 正當化할 弘報手段이 切實하던 참이었다.

    돈 킹은 모부투와 大會를 共同運營하기로 合意하고 파나마의 린스넬리아 投資會社와 英國의 헴데일 映畫製作社, 俳優 데이비드 헤밍스, 뉴욕 비디오테크닉 株式會社, 그리고 自身의 돈 킹 프로덕션을 묶어서 컨소시엄을 構成했다. 모부투 世世 세코는 스위스 會社를 통해 돈 킹에게 巨額을 送金했다.

    돈 킹은 첫 事業으로 ‘정글의 血栓’을 성사시켜 一躍 拳鬪 興行界의 大夫가 되자 自己는 ‘永遠한 힘의 앞잡이’라고 豪言하고 다녔다.

    돈 킹이라는 風雲의 興行師는 餘勢를 몰아서 다음해에는 필리핀의 獨裁者 마르코스 大統領을 說得해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세 番째 對決인 ‘마닐라의 戰慄(Thrilla in Manila)’을 성사시켜 興行의 皇帝로 立地를 다진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알리와 포먼의 ‘世紀의 對決’을 成事시킨 프로모터 돈 킹.

    돈 킹은 巨軀에 激情的인 性品을 가졌다. 하늘로 솟구치듯 10㎝나 뻗쳐 오른 머리模樣은 그의 專賣特許다. 언제나 그는 搖亂한 裝飾이 달린 衣裳을 입는다. 堂堂한 姿勢로 對話를 이어가다가 틈만 보이면 瞬間瞬間에 말을 바꿔 相對를 說得하는 特出한 能力이 있다. 必要하다면 當場 激情의 눈물을 쏟아내는 데도 能熟하다.

    美國 作家 노먼 메일러는 돈 킹이 魔法의 눈빛을 가진 天才이며 말주변이 뛰어나다고 評했다. 돈 킹은 自身이 黑人이라는 事實을 잘 認識하면서 눈빛으로 眞正한 사랑과 거짓 사랑을 同時에 表現한다는 것이다.

    ‘돈 킹 프로덕션 프로모션’李 誘致한 大會의 챔피언 名單에는 마이크 타이슨·에반더 홀리필드·줄리오 세자르 차베스·페릭스 트리니다드·래리 홈스·로베르토 두란·살바도르 산체스·리카르도 마요르가 같은 當代의 복싱 스타가 줄줄이 올랐다.

    돈 킹은 끊임없이 口舌數에 올랐다.

    켄트州立大學을 中退한 그는 不法的인 馬券賭博業에 손을 댔다. 그는 두 件의 殺人事件에 連累되었는데 强度를 등 뒤에서 쏜 첫 番째 境遇는 正當防衛로 認定받았다. 두 番째 境遇는 600달러를 빚진 雇用人과 싸우다가 殺害했는데 ‘살의 없는 殺人’으로 判決을 받고 4年間 服役했다.

    돈 킹은 이런 前科를 숨기려 하지 않고 監獄에서 보낸 일을 즐겨 얘기했다. 監獄에서 精神分析學者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읽고 킨제이, 니체, 칸트, 마르크스도 읽었다고 虛風을 쳤다.

    그는 알리를 비롯해서 헤비級 챔피언 出身인 마이크 타이슨, 래리 홈스 等 여러 選手에게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當했다. 마이크 타이슨은 돈 킹이 1달러 때문에 어머니도 죽일 수 있는 惡漢이며 無慈悲한 人間이라고 非難한 적이 있다. 돈 킹은 또 이탈리아 移民者 出身 組織犯罪 頭目인 존 고티와 連繫된 嫌疑로 美國聯邦搜査局(FBI)의 搜査를 받고 上院 聽聞을 받았으나 오히려 自己를 辱하는 사람들을 人種差別主義者라고 非難했다.

    돈 킹은 美國에 對한 뜨거운 愛國心을 유난히 誇示한다. 特히 2001年 ‘9·11事態’ 以後에는 인터뷰를 하면서 星條旗를 熱心히 흔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背後人物 ‘검은 太陽王’

    자이르를 統治하던 44歲의 絶對 權力者 모부투 世世 세코 大統領은 돈 킹과 ‘정글의 血栓’을 主管한 物主(物主)다.

    모부투는 世界에서 일곱 番째 拒否라는 소리를 들었다. 專用機로 보잉 747基와 맥도넬 더글러스 DC-10基를 所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엄청난 不正蓄財를 했기에 ‘정글의 血栓’ 對戰料로 1000萬달러의 巨額을 기꺼이 投資했다고 보았다.

    그는 本來의 프랑스式 이름인 조셉 데지레 모부투라는 이름을 버리고 種族의 偉大한 戰士이자 豫言者였던 ‘모부투 世世 세코 엔쿠쿠 응벤두 와 자 房哥’의 이름을 그대로 複寫해서 自己 이름으로 썼다. ‘勝利에 勝利를 거듭하는 全知全能한 戰士·操舵手·征服者·革命의 아버지’를 모두 합친 存在가 된 것이다. 그는 太陽王이요 神이 選擇한 救援者였다.

    그가 支配하는 자이르 國土는 韓國의 23.7倍나 된다. 作家 노먼 메일러는 자이르가 유럽의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포르투갈·英國·벨기에·오스트리아·덴마크·동서독·스위스를 합친 만큼이나 크다고 比喩하고 있다.

    모부투는 1967年에 民族主義와 자이르 正統性을 敎理로 삼은 이른바 모부투注意(모부티즘)를 내세워 統治體制를 다졌다.

    모부투는 그해 1974年에 1人 體制를 다지기 위해 憲法을 改正한 터여서 黑人 興行師 돈 킹이 찾아가 ‘정글의 血栓’과 ‘黑人 솔 音樂 페스티벌’을 열자고 提案하자 好材 中의 好材라고 생각했다. 킨샤사에서 떠들썩한 國際的 媒體行事(미디어 이벤트)를 벌인다면 자이르 國民과 世界人의 耳目을 가리기 十常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정글의 血栓’ 主催者가 되기로 同意했다.

    3 킨샤사 道上에서 생긴 일

    ‘정글의 血栓’은 當初 1974年 9月25日로 날짜가 잡혔다.

    레온 게스트의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對決의 主人公인 알리와 포먼의 모습을 航空機 眼科 파리에서 잡아서 對備한다.

    알리가 탄 飛行機가 아프리카 北쪽 사하라 沙漠 위를 날 때, 操縱室에 나가 앉은 알리는 同乘한 레온 게스트 監督의 카메라를 向해 신이 나서 소리친다.

    아프리카 旅客機에 아프리카 스튜어디스들, 아프리카 操縱士들.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解放感을 느껴요. 참 나, 黑人 操縱士들이 모는 飛行機에 타고 있다니, 모두 다 黑人 乘務員이고. 美國 검둥이한테는 낯이 舌魚요. 꿈도 못 꿨지!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것은 기껏해야 타잔과 정글의 검둥이들이지. 아프리카 사람들의 머리가 그 理想이란 건 말도 안하지.

    아프리카 사람들은 英語와 프랑스語에 아프리카 말까지 하네. 우린 英語도 겨우 하는데….

    셰퍼드 끌고 간 포먼

    킨샤사로 가던 길에 파리에 寄着한 챔피언 조지 포먼은 짤막하게 記者會見을 마친다.

    隨行員 40餘 名을 帶同한 포먼은 愛犬인 獨逸産 셰퍼드 한 마리를 킨샤사까지 데리고 가는 길이다. 그가 會見場 마이크 앞에 셰퍼드를 앉히고 “한 마디 해봐, 어서” 하고 命令하자 개는 “컹컹컹” 하고 하늘을 보고 짖는다.

    記者가 물었다.

    “조지, 當身 經歷에 알리와의 大田이 險한 障礙가 될 것 같나요?”

    알리와는 生판 다르게 말數가 적은 조지 포먼이 눈을 끔적거린다.

    “아마, 그럴 수도…. 아마 그럴 수도….”

    점잖게 말하며 警察犬을 이끌고 會見場을 나간다.

    모부투는 ‘정글의 血栓’에 執着했다. 알리가 킨샤사 空港에 到着하자 오토바이 部隊를 動員해서 搖亂하게 護送했다. 그는 킨샤사에서 32㎞ 떨어진 콩고 江 上流의 大統領宮에서 두 챔피언 알리와 포먼을 따로 接見했는데, 포먼은 크고 사나운 獅子 한 마리를 모부투에게 膳物했다고 傳해진다.

    그런데 킨샤사에 到着한 後 조지 포먼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演習競技(스파링)를 하다가 相對選手의 팔꿈치에 오른便 눈 위가 찢어지는 負傷을 當했다. ‘정글의 血栓’은 霧散되는 危機를 맞았다.

    모부투는 大戰 豫定日을 一週日 앞두고 포먼이 浮上했다는 報告를 받자 심기가 매우 사나워져서 火를 냈다. 알리와 포먼 兩側이 調整한 끝에 大田 일을 6週 後인 10月30日로 延期하자 모부투는 두 大戰自家 킨샤사를 떠나지 못한다고 命令했다. 모두 남아서 待機하고 있다가 ‘정글의 血戰’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或是 出國해서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巨額을 投資한 搖亂한 代行社가 霧散될지 모른다고 모부투는 疑心했다.

    알리, “헬기로 포먼을 監視해!”

    스타디움에서 黑人音樂 祝祭를 보다가 이 消息을 듣자 알리는 毒舌의 랩을 퍼붓는다.

    “實은 포먼이 自害를 한 겁니다. 뻔하지 않아요? 이 알리한테 깨질 것 같으니까 自害를 한 겁니다. 試合 日子를 定해도 안 나올 게 뻔해요.”

    그는 記者會見場에서 더욱 소리를 높였다.

    “포먼을 헬기로 監視하세요. 모든 個人 飛行機와 보트와 空港을 監視해요. 모부투 大統領과 落下傘 軍隊까지 포먼이 도망가지 못하게 監視해요. 未審쩍은 배들이 포먼을 빼돌릴지 몰라요. 버스停車場, 네 거기도 監視해요. 코끼리가 끄는 交通手段을 利用해서 빼돌릴지도 몰라요….”

    서로 神經戰을 벌이며 調整過程을 거친 끝에 大戰 날짜를 6週間 延期하기로 合意했다.

    새로 잡은 날짜는 10月30日. 興行週 돈 킹은 黑人音樂 콘서트는 豫定대로 9月20日부터 3日間 연다고 發表했다.

    포먼은 킨샤사에 머물러 있기가 싫었으나 달리 方道가 없어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틀어박혀 지냈다.

    알리는 오히려 킨샤사에서 待機하는 時間을 肯定的으로 活用했다. 자이르 사람들 속으로 찾아 들어가 아프리카의 뿌리를 强調하고 “알리, 步馬藝!”를 合唱하게 만들며 아프리카 現地人의 마음을 흔들었다. ‘알리, 步馬藝!(Ali Bomaye!)’는 現地 아프리카어로 ‘알리야, 박살내!’라는 뜻이다.

    4 ‘줌인’ 킨샤사

    아프리카 킨샤사 視角으로 1974年 10月30日 새벽 4時.

    드디어 무하마드 알리 臺 조지 포먼의 世界헤비級타이틀전이 열리는 킨샤사는 興奮과 熱狂으로 가득 차 있다. 美國 視聽者들이 텔레비전 衛星 中繼放送을 보도록 美國의 黃金時間帶(프라임타임)에 맞춘 視角이다. 조지 포먼의 負傷으로 6週間을 기다렸다가 열리는 만큼 모두가 大戰 始作의 鐘소리를 침 마르게 기다린다.

    “알리가 敗北한다”

    알리는 포먼과 大戰할 자이르 首都 킨샤사에서 아프리카 大衆의 힘을 한데 끌어 모으는 데는 成功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알리를 向해 歡呼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拳鬪賭博師들은 알리가 3代1로 弱勢라고 점쳤다. 알리의 主治醫인 페르디 파체코는 試合이 끝나자마자 알리를 스페인의 神經精神科病院에 急送할 수 있도록 제트飛行機를 대기시켜 놓았다.

    美國 ABC放送 스포츠 記者 하워드 코셀은 알리를 젊은 時節부터 取材해온 古參 專門記者다. 알리와 親分이 두터운 그는 알리의 敗北를 斷言했다.

    무하마드 알리와 作別할 時間이 온 것 같습니다.

    조지 포먼에게는 안 될 거라는 게 率直한 생각입니다.

    奇跡이라도 바라겠지만 조지 포먼을 相對로?

    그 젊고 剛한 無敵의 相對에게?

    조지 포먼의 敵手들이 하나 둘 3回도 못 가서

    나가떨어지지 않습니까?

    魔法을 부릴 수는 없습니다.

    이 競技를 끝으로 알리는 隱退할 겁니다.

    한 時代를 記念할 만한 복서였습니다.

    妙한 魅力과 社交性을 지녔고

    때로는 無慈悲했고 本來 家庭的이었던 알리.

    이제 그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알리를 密着 取材한 美國 作家 노먼 메일러는 레온 게스트 監督의 다큐멘터리 ‘우리가 王이었을 때’에 出演해서 血戰을 눈앞에 두고 무겁게 내려앉은 알리 陣營의 雰圍氣를 傳했다.

    알리 네 라커룸은 靈安室 같은 空氣였어요. 最後의 晩餐場같이 말이지요. 알리가 말하더군요.

    “왜 모두 그리 不安해? 代替 모두들 무슨 일이야?”

    알리 側 사람들은 모두 敗北를 旣定事實처럼 여기고 怯을 내고 있었어요.

    ‘自尊心 때문에 最惡의 狀況을 무릅쓰고 나간 것이지만 이제 無慘히 깨지고 말 것이다. 不具가 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아주 沈鬱했어요. 알리 앞이라 차마 말들은 못하고. 何如間 그런 空氣였어요.

    暫時 뒤 알리가 트레이너인 분디니를 보고 말했어요.

    “오늘 밤 춤 한番 추는 거야!”

    그제야 사람들은 一齊히 “그래, 춤추는 거야!”하고 合唱했지요.

    무하마드 알리가 되물었어요.

    “내가 무엇을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아 “춤을 춰!” 했지요.

    알리는 “그래, 춤춘다고, 춤! 춤! 춤! 그런데 왜들 이 模樣이야? 신나게 춤출 건데.”

    모두 울먹이면서 “그래, 춤출 거야!”

    이러는 동안 雰圍氣가 鎭靜됐지요.

    美國 作家 조지 플림튼 亦是 알리 側 사람들이 “마치 敎授대로 가는 사람 보듯 알리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공 울리다

    킨샤사의 ‘5月20日 스타디움.’ 觀衆이 6萬2800席을 꽉 메웠다.

    美國 中繼放送 아나운서가 興奮해서 목청을 높인다.

    “怪力의 조지 포먼이냐, 多樣한 技術의 무하마드 알리냐.

    老將이냐, 新銳냐.

    뒤쪽에서 밴드가 演奏를 합니다.

    알리가 링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모든 것이 걸린 試合입니다.

    歷史的인 競技입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마지막 試合이 될지도 모릅니다.

    알리가 隱退한다면 只今 보시는 場面은 歷史에 남을 것입니다.”

    새벽 4時 直前에 헤비級世界챔피언 조지 포먼이 登場한다.

    붉은 가운을 입은 포먼이 一行과 함께 링으로 뛰어서 나오고 있다. 자이르 大統領 모부투 世世 세코의 巨大한 肖像畫가 競技場 높이 中央에 걸려 있다. 모부투는 競技場에 나오지 않았다. 大統領宮에서 閉鎖回路 畵面으로 大田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暗殺 企圖의 危險을 避하려는 措置라고들 했다.

    링에 오른 알리가 觀衆을 向해 아프리카 말로 口號를 외친다.

    “알리, 步馬藝! 알리, 步馬藝! 알리, 步馬藝!”

    두 選手는 링 한복판에 선 黑人 主審 잭 클레이턴 앞으로 나가 마주 선다. 포먼은 美國 星條旗 무늬의 트렁크를 입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조지 포먼에게 뭐라고 떠들고 있다.

    “넌 기저귀를 찬 어린애니까, 내 所聞을 들었을 거다. 넌 어릴 때부터 날 봤을 거야. 이제 임자와 딱 맞닥뜨렸어, 넌 끝장이야!”

    알리의 쉴 사이 없는 揶揄에 포먼은 눈을 끔적대며 若干 놀란 表情. 나이는 알리가 33歲, 포먼이 24歲다.

    알리와 포먼이 各自 코너로 물러난다. 알리는 앞뒤로 재빠른 발놀림을 해보인다.

    先制 라이트 잽

    1라운드.

    알리는 가볍게 左右로 움직인다. 徐徐히 다가서는 조지, 알리의 번개 같은 첫 라이트 펀치 한 房이 챔피언 포먼의 顔面에 的中.

    先制 라이트를 낼 때는 左右 어깨 사이에 相當한 間隔이 생기므로 相對의 레프트 훅에 露出되기 쉬워서 經驗者는 좀처럼 쓰지 않는다. 只今까지 敢히 포먼에게 先制 라이트를 쓴 相對는 없다.

    포먼은 介意치 않고 默默히 接近한다. 포먼이 알리를 코너로 몰아넣고 레프트 어퍼컷으로 몸통을 加擊한다. 알리는 速度와 技巧가 뛰어나지만 포먼과 近接戰을 하면 强打 한두 臺로 아찔한 狀態에 몰릴 수 있다. 포먼이 絶對로 有利하다.

    알리가 포먼의 머리를 껴안는다. 다시 눈 깜빡할 瞬間에 잽보다 훨씬 빠르게 알리의 라이트가 포먼에 的中한다. 알리는 12次例 確實한 先制 라이트를 맞힌다. 포먼은 알리의 라이트에 多少 唐慌한 表情. 포먼은 약이 올랐다. 라이트 두 房이 알리 얼굴을 加擊한다.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剛한 라이트.

    포먼은 링을 遮斷해서 逃亡치는 알리를 잡는 方法을 練習했다. 그러나 알리는 戰術을 바꾸었다. 알리는 祕密 計劃을 감추고 있다. 알리가 困辱을 치를 때 공이 울린다.

    作家 노먼 메일러는 1라운드가 끝난 後 祈子石은 알리의 오른팔 攻擊을 얘기하느라 시끄러웠다고 著書인 ‘더 파이트(The Fight)’에 쓰고 있다.

    어떻게 알리가 敢히? 놀라운 라운드다. 노먼은 自己가 拳鬪를 좀 안다고 自處해온 自慢心을 버렸다고 했다. 알리가 神通해서 달나라 旅行이라도 시키고 싶은 心情이었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알리는 相對의 全體를 보며 싸우는 藝術家 같았다.

    2라운드에 들어가기 直前, 알리는 다시 觀衆席을 向해 팔을 흔들며 외친다.

    “알리, 步馬藝! 알리, 步馬藝!”

    아프리카 觀衆이 우렛소리로 合唱했다. “알리, 步馬藝!” “알리, 步馬藝!”

    2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알리는 로프로 後退한다. 그는 포먼을 攻擊할 생각은 하지 않고 포먼이 펀치를 날리도록 許容한다. 로프에 기댄 알리는 間歇的으로 포먼의 얼굴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먹일 뿐 積極的으로 맞받아치거나 抵抗하지 않는다. 祈子石에서 노먼 메일러와 나란히 觀戰하던 스포츠저널리스트이자 作家인 조지 플림턴. 그는 後에 레온 게스트 監督의 카메라 앞에 出演해서 알리의 ‘로프 타기’를 이렇게 描寫했다.

    모부투 絶對權力의 興亡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970年代 中盤 아프리카 大陸은 新生國의 痼疾病인 쿠데타의 惡循環에 빠져 있었다. 政治暴力의 始發은 1960年의 콩고事態였다. 아프리카 民族主義의 젊은 旗手이던 루뭄바가 벨기에 植民勢力의 앞잡이인 촘베에게 無慘하게 살해당하는 混亂 속에 1960年 9月 美國을 등에 업은 總司令官 조셉 데지레 모부투 中將이 全權을 掌握한다.

    나는 西部 아프리카 케냐에서 86歲의 國父인 無知 조머 케녀터 大統領이 雜多한 種族을 하나의 民族主義 旗幟 아래 묶어나가는 ‘하람베 運動’을 보았다. 白人 獨裁 國家인 남아공과 로디지아는 新生 黑人國家들 속의 高度(孤島)에서 武力으로 頑强히 버티고 있었다.

    말라위는 남아공화국과 唯一하게 修交한 內陸國으로 1인 統治者의 公式 職銜은 ‘말라위의 終身 大統領 응窪地 닥터 카무즈 반다 却下’였다. 응窪地는 全知全能하다는 뜻이다.

    지난 4世紀 동안 콩고 江은 ‘植民의 水路’였다. ‘정글의 血栓’이 벌어지고 내가 ‘아프리카의 화맥’을 取材하던 1970年代 中盤에 콩고는 新生 아프리카의 中心點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美國을 등에 업고 쿠데타로 政權을 잡은 모부투는 1971年 10月에 國名인 콩고民主共和國을 자이르로, 수도 레오폴드빌(植民國 벨기에의 國王 이름을 땀)을 킨샤사로 바꾸었다.

    그의 公式 稱號는 巨創했다. ‘자이르共和國 大統領, 革命人民運動의 創設者이며 案內者 모부투 世世 세코 엔쿠쿠 응벤두 와 자 房哥’. 킨샤사는 이 1인 絶對權力者가 創案한 單調로운 國民體操 ‘活氣의 律動(아니마숑)’에 휩싸여 있었다.

    킨샤사의 모부투 大統領은 1人 體制로 자이르를 32年間 統治했다. 1997年 르완다戰爭의 불씨가 자이르로 튀어 第1次 콩고戰爭이 일어나자 그는 失脚해 海外로 도망친다. 그의 支配가 끝나자 자이르라는 國名은 지워지고 콩고民主共和國이라는 本來 이름이 回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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