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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齊家)도 못하고 治國(治國)을 하였으니…|신동아

제가(齊家)도 못하고 治國(治國)을 하였으니…

  • 안정효 < 번역가·소설가="">

    入力 2004-09-07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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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어찌어찌 됐다더라’는 所聞이 돌았다 치자. 그러면 꼭 누군가 나서서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神通하게도 時間이 지나면 어김없이 이‘카더라 通信’은 事實이 되어 나타난다. 占쟁이를 凌駕하는 ‘카더라 通信社’의 거침없는 사세 擴張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筆者가 飜譯을 主業으로 삼았던 20∼30年 前에는, 해마다 10月 셋째 水曜日 저녁 9時쯤 되면 長安의 수많은 出版社와 飜譯家들이 잔뜩 緊張해서 뉴스를 기다렸다. 노벨 文學賞 受賞者가 發表되는 時間이기 때문이다.

    當時는 國際著作權이나 知的財産權을 全혀 아랑곳 않던 ‘文化 劣等國’ 大韓民國이 海賊出版分野 世界 第1의 자리를 놓고 臺灣과 熱心히 다투던 時節. 노벨賞 發表가 9時뉴스에 나기만 하면, 너도나도 迅速하게 外國에서 求해온 原作을 갈기갈기 찢어 몇 名에게 나누어주고 조각飜譯을 시켰다. 며칠만에 市場에 깔리는 이 ‘不良 飜譯文學’은 間髮의 車路度 賣出이 크게 달랐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노벨賞 情報를 求하는 出版社라면 밝은 事業展望을 自身해도 좋았다.

    實際로 1976年에는 그런 喜悲劇이 두드러지게 엇갈리기도 했다. 前에는 그런 일이 全혀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해에는 美國 作家 솔 벨로가 노벨賞을 받으리라는 所聞이 外信을 타고 이틀쯤 미리 알려졌다. 이미 6個月쯤 前에 筆者가 벨로의 最近 小說 ‘險볼트의 膳物’을 飜譯해 주어 1千部를 찍어서는 겨우 4伯父밖에 팔지 못했던 出版社는, 公式 發表가 날 때까지 廣告 따위를 미리 準備해 두었다가 벨로가 正말 노벨賞을 타자 큰 재미를 보았다. 남들이 原作을 準備하기도 前에 完製品을 만들어놓고 기다렸으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셈. 이 出版社의 재빠른 動作을 보고 한 放送에서는 “노벨賞 發表가 난 지 24時間만에 冊을 求해 하룻밤만에 飜譯해서 冊을 냈다”고 호되게 批判하기도 했다.

    그 해 스웨덴 翰林院에서는 노벨賞 受賞者의 이름이 미리 알려져 크게 당혹해했다고 한다. 以後로는 情報가 미리 새나가지 않도록 特히 保安에 熱心이어서 ‘하룻밤 飜譯’ 騷動은 더 以上 되풀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徹底한 保安도 大韓民國의 情報網에는 所用이 없었던 模樣이다. 김대중 大統領이 노벨平和賞을 받았을 때를 보면 말이다. 翰林院의 發表가 있기 몇 달 前부터, 아니, 筆者의 어렴풋한 記憶으로는 아마 1年도 더 時間이 남았을 때부터 市中에는 金大統領이 노벨賞을 받으리라는 所聞이 퍼졌다. 그것도 ‘候補에 오른다’는 希望 섞인 推測이 아니라, ‘노벨賞을 받는다’는 確定的인 所聞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政治판에서 흔히 그렇듯이 ‘所聞’은 곧 現實로 나타났다.



    萬一 노벨 文學賞 受賞者가 누구인지를 그런 式으로 1年 前에 미리 알 수 있는 出版社가 있다면 그 作家의 모든 作品을 붙잡아두고 專屬 契約을 맺어 톡톡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니 그 出版社는 事業展望이 얼마나 밝을까 하는 생각에 군침이 돌던 記憶이 있다.



    누구나 占쟁이가 될 수 있는 나라


    노벨賞 發表가 나기 얼마 前에, 至極히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노벨賞의 나라’ 스웨덴 國會議長이 來韓했다. 筆者는 偶然히 이만섭 國會議長이 新羅호텔에 마련한 晩餐에 參席했다가,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國會議員으로부터 “金大統領의 노벨賞 受賞을 위해 로비가 進行中이라는 所聞이 市中에 나도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日”이라는 묻지도 않은 解明을 들었다.

    政治人들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豪言壯談을 하면, 그것은 이른바 ‘카더라 通信’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어느어느 企業에서 大統領이 노벨賞을 받도록 하기 위해 어쨌느니’ 하는 갖가지 所聞은 全혀 事實일 理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노벨賞 같은 名譽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미 오래 前부터 翰林院에서는 노벨賞을 김대중 大統領에게 줘야겠다고 미리 決定을 해놓았고, 神奇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出衆한 先見之明으로 그 事實을 正確하게 豫測했던 模樣이다.

    大統領이 되려면 政治的 所信이나 다른 어떤 資質 못지않게 아버지의 무덤을 明堂으로 옮기는 曆術(曆術)的인 精誠이 必要하고, 國會議員 選擧 立候補者는 占집부터 찾아간다는 이 나라에서는, 아마도 占쟁이들이 그 程度로 神通한 模樣이라고 筆者는 생각하기로 했다. 翰林院에서조차 알지 못했던 受賞 事實을 1年 或은 그 以前부터 알고 있었다니 말이다.

    이렇듯 ‘카더라 通信’만 蒐集해도 未來를 점치기가 어렵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巫俗人이나 曆術人으로 活動하기가 퍽 쉽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즈음 學校처럼 巫俗人을 集團 排出하는 ‘무당 工場’까지 생겨났다는데, 占쟁이 養成所를 만들어 全國 曆術人 連鎖店을 엮어놓으면 財閥로 成長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싶고. 내친김에 海外 店鋪와 代理店까지 開設하여 ‘카더라 通信業’을 아예 政府에서 産業化한다면, 새로운 尖端 점치기 技術을 통해 國家도 눈부시게 發展하리라는 展望도 쉽게 나온다.

    時間이 흘렀고, 이番에는 大統領의 세 아들에 關한 ‘카더라 通信’李 나돌기 始作했다. 세 아들이 小統領(小統領)의 職位를 利用하여 얼마얼마씩 利權을 챙겨왔다는 ‘터무니없는 所聞’이었다. 筆者는 이番에도 이들이 不淨腐敗와 結付되었다는 카더라 所聞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첫째 아들이 組暴과 濟州島에서 어쨌느니 하는 等等, 슬금슬금 異常한 얘기들이 나왔다. 勿論 그것 또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카더라 流言蜚語임이 밝혀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첫째 아들은 大統領의 子息으로 태어나면 利權 請託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市井雜輩의 誘惑이 워낙 甚해서 處身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冊까지 써냈다.

    檢察廳에 들어서며 記者들에게 “내 潔白은 檢察이 밝혀줄 것”이라고 豪言壯談을 하고는 며칠 後에 拘束되곤 했던 非理 政治人과는 달리, 大統領의 첫째 아들은 全혀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事實이 滿天下에 밝혀져 이 무렵까지도 카더라 産業의 展望은 점치기 어려웠다.

    그리고는 다시 時間이 흘렀다. 요즈음에는 大統領의 2代 三銃士에 關한 얘기가 新聞 放送에 하루도 빠짐없이 大門짝만하게 오르고 있고, 그 所聞의 眞僞가 아주 조금씩 밝혀지는 中이다. 勿論 카더라 通信과는 엄청나게 數値(數値)가 다른 ‘겨우 몇 十 億’ 程度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잠깐 생각해 보면, 大統領의 子息들은 온 國民이 모두 갖고 있는 ‘未來를 훤히 내다보는 神通力’을 全혀 배우지 못한 模樣이다. 政權과 權力의 꼬투리로 돈벌이를 하던 사람들이 繼續해서 “物議를 일으켜 罪悚합니다”라는 版박이 臺詞를 되풀이하며, 묶인 두 손목이 모자이크 處理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보이더니, 김영삼 大統領 時節의 小統領이 겪은 前例가 머지않아 되풀이되리라는 카더라 通信도 나돌았다. 그랬는데도 狀況은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말았다.

    都大體 또 다른 金氏 大統領 집안의 三兄弟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일으켰던 ‘물의’를 되풀이했다가는 언젠가 들통이 나게 마련이고, 그러면 檢察廳 門間에 서서 寫眞 찍히게 되리라는 豫想을 全혀 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豫測했으면서도, ‘까짓 거 잠깐 살다 나오면 되니까’ 一旦 未來를 위한 投資는 해둬야겠다는 覺悟라도 했던 것일까?



    齊家와 治國


    번번한 아들을 셋이나 둔 大統領이 今年에 보낸 어버이날은 그리 즐겁지 못했을 듯싶다. 어쩌면 셋이나 되는 子息들 가운데 精神이 제대로 박힌 子息 하나가 없어서, ‘民主鬪爭의 戰士’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노벨賞까지 받아낸 아버지를 위해 몸操心 하자고 다른 兄弟들을 말릴 생각조차 안 했을까? 民主化를 위해 아버지가 부지런히 드나들었던 刑務所를 子息은 이제 어떤 명예로운 이름으로 드나들려고 하는 것일까?

    마치 좀도둑처럼 몰래 入國해서 007式으로 卑怯하게 記者들을 따돌리고는, 살금살금 무엇인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느라고 “25時間째 潛跡해 버렸다”는 大統領 아들의 모습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있노라면, 온갖 카더라 通信에도 不拘하고 自身은 永遠히 無事하리라고 믿었음직한 셋째 아들은 아마도 미아리에 占집을 차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야말로 빤히 보이는 한치 앞날을 내다볼 能力조차 없어 보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카더라 通信社’가 發足한 時期는 전두환 所長이 新軍部를 이끌고 제5공화국을 創出하던 時期였다. 大多數의 國民은 軍事獨裁의 橫暴가 極에 達했던 第5共和國과 朴正熙 政權의 暴壓政治를 아직도 생생하게 記憶한다. 그러면서도 요즈음 朴正熙 記念館을 建築瑕疵는 소리가 搖亂하고, “차라리 5共 時節이 좋았다”는 말까지 나도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다가 이 나라는 차라리 軍事獨裁者들을 그리워하는 地境에 이르렀을까?

    所長(少將) 出身의 두 獨裁者가 휘두르던 國家 暴力에 시달리던 時節, 우리들은 그들 獨裁者와 맞서 싸웠던 두 사람을 鬪士로 尊敬하며 記憶했고, 그들이 겪은 苦難에 補償이라도 하듯 大統領으로 뽑아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 두 民主化의 騎手는, 鬪爭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國家를 運營할 資格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結局 ‘제가(齊家)’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治國(治國)’ 하겠다고 나선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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