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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애처롭다, YS는 우리便”|新東亞

“노무현이 애처롭다, YS는 우리便”

서청원 한나라당 代表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入力 2004-09-07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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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DJ 聯合은 늦었다” “地方選擧는 湖南 빼고 다 이긴다” 徐代表는 自信滿滿했다. 그는 “김대중 政權이 半身不隨 狀態에 빠졌으며, 政界改編은 不可能할 것”이라고 展望했다. 徐代表는 한때 怏宿이었던 이회창 候補와 劇的으로 和解한 飛火와, 全黨大會에서 민정系를 누르고 1位를 차지하는 데 決定的으로 寄與한 K議員의 實體도 털어놓았다.
    5月10日 한나라당 全黨大會에서는 ‘異變’이 벌어졌다. 最高委員 競選에서 當初 3位圈으로 評價됐던 서청원 議員이 민정系 重鎭들을 모두 따돌리고 1位를 차지한 것이다. 徐議員은 나흘 뒤 最高委員會議에서 한나라당 代表로 選出됐다. 徐代表와의 인터뷰는 5月16日 10時30分으로 豫定돼 있었다. 하지만 네 次例나 延期된 끝에 午後 6時45分이 돼서야 인터뷰를 始作할 수 있었다. 徐代表는 이날 4件의 인터뷰, 두 次例의 會議, 議員會館 訪問, 記者懇談會 等의 日程을 消化하면서 틈틈이 120餘 名을 面談했다. 그는 요즘 政治에 入門한 以來 가장 바쁜 時間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代表에 就任하신 所感부터 말씀해주시죠.

    “6·13 地方選擧와 12月 大統領選擧에서 반드시 勝利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黨員들의 決然한 意志를 읽을 수 있는 全黨大會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莫重한 責任을 느낍니다. 앞으로 黨의 面貌를 一新하여 政治改革을 바라는 時代의 要求와 腐敗한 政權을 審判하라는 國民의 바람에 副應할 수 있도록 最善을 다할 생각입니다.”

    ―1位를 차지할 수 있었던 要因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제가 競選過程에서 ‘장수論’을 提起했어요. 代議員들에게 ‘兩大選擧를 잘 이끌어줄 勇敢한 將帥가 必要하다’고 力說했는데 그게 的中한 것 같아요. 4月4日 서울市長을 推戴하는 行事에 가서 이番 選擧의 重要性을 强調했는데 拍手가 엄청나게 쏟아지더라고요. 그때 感이 팍 왔습니다. 全黨大會 하는 날은 제가 넥타이까지 풀고 와이셔츠 바람으로 呼訴했잖아요. 제가 여섯 番째로 演說했는데, 演壇에서 내려오니까 다들 ‘確實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代議員들이 ‘兩大選擧에서 이기려면 서청원이 必要하다’고 判斷한 겁니다.”





    競選의 숨은 功勞者 K議員


    ―이회창 候補가 徐代表를 支援했다는 所聞이 있습니다.

    “글쎄요. 그랬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요. 選擧 며칠 前에 K議員이 50餘名의 議員들한테 直接 電話를 걸어서 ‘徐議員이 돼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正말 한사람도 拒否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未來連帶度 처음에는 저를 0順位로 찍었다고 하고….”

    ―K議員에게 술 한盞 크게 사야겠습니다.

    “아까 議員會館으로 찾아갔어요. 술을 사야 되는데 워낙 바빠서 代身 밥을 샀어요. ‘議員님 고맙습니다’ 하면서.”

    ―徐代表와 李候補가 가까워진 契機가 무엇입니까. 1997年 신한국당 競選 때는 徐代表가 정발협 幹事長을 맡았다가 이수성 顧問을 支持했고, ‘YS 人形’ 事件이 터지자 이회창 候補와 感情的으로 부딪친 일까지 있었는데….

    “2000年 總選을 앞두고 公薦 때문에 한나라당이 어려웠잖아요. 그때 李總裁가 나보고 ‘徐議員이 選擧對策本部長을 맡아줘야겠소’ 하더라고요. 그런데 中央黨 選擧에 集中하다 보니 내 毒이 깨지는 걸 몰랐어.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잖아요. 初盤에 票差가 벌어져서 집에 가서 술 한盞 마시고 잤는데, 黨에서 나오라는 거야. 밤 12時30分쯤 逆轉됐거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李總裁가 대단한 거야. 總裁가 黨舍에서 當選者 이름 옆에 꽃을 달아주어야 하는데 ‘내가 只今 뭐가 좋아서 꽃을 다느냐. 只今 本部長이 떨어질 판이니까 좀더 지켜보자’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내가 相對 候補를 이기니까 꽃을 달기 始作했답니다. 다음날 總裁가 朝餐을 함께 하면서 ‘苦生하셨습니다’ 하는데, 그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總裁님 제가 大統領이 되시도록 돕겠습니다’라고 했죠.”

    徐代表의 政治的 뿌리는 上島洞이다. 그는 1980年代에 民推協에서 活動했고, 김영삼 總裁 祕書室長을 거친 뒤 文民政府에서 政務長官을 지냈다. 김영삼 前大統領은 한나라당內 민주系 人士의 一部가 이회창 候補 쪽으로 기울자 不便한 心氣를 내비치면서도 徐代表에 對해서는 愛情을 보여왔다. 金 前大統領은 徐代表가 全黨大會에서 1位를 차지하자 곧바로 祝賀電話를 걸었고, 바로 다음날 夫婦同伴 食事모임을 周旋했다. 이런 敦篤한 關係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는 徐代表가 상도동과 이회창 候補의 關係를 復元시키는 架橋 役割을 맡을 것으로 期待하는 사람들이 많다.

    ―金 前大統領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옛날 3黨統合 얘기도 하고, 民推協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1等을 해서 그런지 金 前大統領이 기뻐하시더라고요. 마지막에 제가 ‘밖에서 기다리는 記者들에게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했더니, 金 前大統領이 ‘한나라당 잘 되겠네’ 하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손명순 女史가 옆에서 ‘그걸로 發表해요’ 하셨고요. 그래서 金 前大統領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얘기를 公開한 거죠.”

    ―金 前大統領은 아직 이회창 候補에 對한 感情이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金 前大統領이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展望합니까.

    “글쎄요. 代表로서 政權을 創出하기 위해 모든 智略을 짜내야겠죠. 어떻게든 이회창 候補를 당선시켜야 할 責任과 義務가 있으니까요. 그건 金 前大統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직 껄끄러운 部分이 남아있지만, 앞으로 昭詳하게 말씀드리고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金 前大統領이 愛情을 갖고 있으니까 잘 될 것으로 봅니다.”

    ―金 前大統領은 올 大選에서 特定候補를 支持하겠다고 數次例나 公言했습니다. 徐代表는 그 사람이 누구라고 보십니까.

    “地方選擧 前에는 絶對로 말씀 안 하신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봐야죠. 저는 當然히 ‘한나라당을 支持해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릴 거고요.”

    -박종웅 議員의 釜山市長 出馬 與否를 놓고 벌어졌던 狀況을 돌이켜보면, 金 前大統領이 노무현 候補에게 相當한 關心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簡單치 않아요. 속事情은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YS의 意中은 누구보다 잘 알아요.”

    徐代表를 인터뷰한 5月16日 아침, 政治權에서는 銳敏한 ‘事件’이 터졌다. 자민련 함석재 議員이 脫黨을 宣言하고 美國으로 떠난 것이다. 咸議員의 地域區는 工巧롭게도 徐代表의 故鄕인 忠南 天安이다.

    咸議員은 “자민련의 執權 可能性이 없다”는 名分을 提示했지만, 政治權에서는 그가 早晩間 한나라당에 入黨할 것이라는 說이 有力하다. 그러자 김종필 자민련 總裁는 “해도 너무 한다”며 한나라당을 非難하고 나섰다. 咸議員의 脫黨은 一旦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關係를 急速度로 惡化시킬 것으로 豫想된다. 따라서 6·13地方選擧에서는 두 黨이 ‘敵’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狀況이다.

    ―자민련이 本格的인 崩壞 局面에 들어섰다는 視角이 있습니다.

    “저도 新聞 보고 알았어요. 예전에는 咸議員과 좋은 關係였는데 요즘에는 통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兩班이 왜 脫黨했는지, 앞으로 進路가 어떻게 될 것인지 只今으로서는 말하기가 어렵네요.”

    ―김종필 總裁는 數次例에 걸쳐 한나라당에 協助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회창 總裁는 매정하다 싶을 程度로 拒絶했습니다. 앞으로 兩黨의 關係를 어떻게 展望합니까.

    “임동원 長官 問題가 불거졌을 때는 두 黨이 連帶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民生問題나 法案 等을 中心으로 자민련과의 政策共助가 必要하다고 생각해요. 最近 민주당이 大田·忠淸地域에 候補者를 내지 않으면서 자민련이 그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지만, 地方選擧가 끝나면 다시 論議가 오갈 것으로 봅니다.”

    ―자민련에서 앞으로 追加 脫黨者가 나올 것으로 봅니까.

    “그 問題에 對해서는 아직까지 情報가 없어요.”

    ―자민련 內에는 JP와의 人間的 關係 때문에 地方選擧까지만 脫黨을 保留하고 있는 議員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이 이들을 迎入할 計劃은 없습니까.

    “未來를 推測해서 얘기할 수는 없죠. 제가 代表라고 하지만, 그런 狀況이 온다면 最高議員들과 相議해야겠죠.”

    요즘 政治權의 最大 話頭는 ‘政界改編論’이다. 민주당 노무현 候補는 競選過程에서부터 民主化勢力 結集論을 主唱하더니, 5月15日 釜山市長候補 推戴大會에서는 한나라당 민주系를 겨냥해 “민주系가 세우려 했던 民主政權의 歷史가 한나라당에서 實現되고 있느냐”며 政治的 決斷을 促求했다. 한便 자민련 김종필 總裁는 保革構圖에 好感을 보이면서, 李仁濟 朴槿惠 정몽준 議員까지 念頭에 둔 ‘IJP’連帶 또는 ‘4者連帶’를 摸索하기에 이르렀다.

    ―김종필 總裁가 提示한 保守와 改革으로의 政界改編을 어떻게 봅니까.

    “저는 안될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民主黨이 道德的으로 너무 큰 傷處를 입었거든. 한마디로 민주당은 무너지는 집이에요. 그런 집에 누가 移徙가겠습니까? 한나라당 議員들이 精神이 나갔습니까? 不正과 非理로 멍들어있는 政黨에 왜 갑니까? 只今 執權 可能性이 第一 높은 政黨은 한나라당입니다. 或是 들어간다면 예전에 政治했던 사람들이나 政治 志望生들이겠죠.”

    ―‘IJP連帶’는 어느 程度의 威力을 發揮할 것으로 생각합니까.

    “只今으로서는 豫測하기 힘드네요. 年代는 可能하겠지만, 政黨으로서 힘을 쓰지는 못할 겁니다. 이인제氏는 競選을 치르면서 힘을 完全히 잃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破壞力이 생기겠습니까? 아마 意味없는 連帶에 그치겠죠.”

    ―노무현 候補가 한때 提案했던 ‘新民主大聯合론’은 事實上 상도동과 동교동의 和解를 의미합니다. 民推協에서 活動한 분으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나는 그 말에 別로 感興이 생기지 않아요. 신민당이 政權을 눈앞에 두었을 때 김대중氏가 脫黨해서 평민당을 만들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民主化勢力이 政權을 놓쳤고. 그때부터 東西葛藤이 심해졌어요. 애初에 평민당을 만든 것부터 잘못인데, 只今 와서 무슨 名目으로 다시 民主化 勢力이 모입니까? 그건 말이 안되는 얘기죠. 민주系가 與黨할 때는 평민당 勢力이 엄청나게 攻擊했고, 只今은 그 反對가 됐잖아요. 예전에 함께 民主化運動을 했다지만, 感情的인 골이 아주 깊어요. 그건 노무현이가 외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노무현이가 뭐가 대단하다고.”

    ―YS와 DJ가 意氣投合할 可能性은 이제 없다는 얘기입니까.

    “너무 늦었어요.”

    徐代表는 5月15日 就任 後 처음으로 記者會見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徐代表는 權力型 非理事件과 關聯해 “김대중 大統領이 스스로 檢察의 調査를 받아야 한다”고 主張했다. 민주당에서는 徐代表의 發言이 政治攻勢라는 觀測이 優勢하다. 한나라당이 金大統領을 게이트 政局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여 地方選擧 局面에서 主導權을 쥐겠다는 意圖로 보는 것이다.

    ―記者會見의 톤이 豫想보다 剛했다는 評價가 많습니다.

    “톤이 높은 게 아니라 記者들이 그렇게 받아써서 그렇죠. 記者會見 內容 中에 새로운 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규선 녹음테이프도 그렇고 다 나온 이야기인데, 只今껏 核心을 찔러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大統領이 關聯됐다면, 더욱 徹底히 밝혀야죠. 저는 一連의 事件이 進行되는 過程을 지켜보면서, ‘大統領을 調査하지 않으면 眞實에 接近할 수 없다’는 確信이 생겼어요. 그런데도 靑瓦臺 政務首席이라는 사람은 ‘詐欺꾼에게 걸린 것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말하잖아요.

    나도 한때 김대중 大統領을 모셨던 사람입니다. 나도 그분이 잘되기를 眞心으로 바라고 있어요. 只今 제가 大統領 잘못되라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大統領이 沙果 한番만 하면 國民들도 理解할테니 제발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代辯人을 시켜서 辨明하니까 問題가 繼續 커지는 거예요. 國政調査를 政治攻勢라고 몰아붙이는 게 말이 됩니까? 政治攻勢는 루머를 가지고 몰아붙이는 거지만, 우리는 只今 事實을 말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現職 總警이 外國으로 逃亡을 갑니까. 오죽 했으면 ‘大統領 下野하라’는 말이 나옵니까.”

    ―靑瓦臺는 徐代表의 發言이 經濟와 월드컵 等에 惡影響을 끼칠 수 있다고 批判했습니다.

    “惡影響을 끼칠 수밖에 없죠. 그러기에 왜 原因을 提供해? 월드컵이 열리니까 搜査도 하지 말라고? 그건 말이 안되는 論理야. 나도 월드컵 걱정하고 經濟도 걱정해. 그래서 월드컵이 始作되면 場外鬪爭은 自制할 생각이요. 하지만 無條件 問題를 덮을 수는 없잖아요. 한나라당은 월드컵 期間에 國會를 열고 合法的으로 對應할 겁니다.”

    ―노무현 候補는 이회창 候補도 調査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나는 노무현 候補를 참 딱하게 봐. 아주 안타깝고 애처로워. 與黨 大統領候補가 TV討論에 나와서 싸우는 건 좋아. 하지만 根據도 없는 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正말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多數 國民들은 政爭에 批判的인 意見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 한화갑 代表와 條件 없이 만나 ‘큰 政治’를 論議할 생각은 없습니까.

    “저는 對話와 妥協을 重視하고 協商을 통해 問題를 푸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政治力을 發揮해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大統領의 非理는 妥協의 對象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먼저 민주당의 姿勢 變化를 促求합니다. 저는 原則이 지켜질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만날 겁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안됩니다. 우리의 正當한 要求를 政爭으로 糊塗하려는 사람들과의 對話는 意味가 없어요.”

    徐代表는 只今 重大한 政治的 試驗을 치르고 있다. 1964年 중앙대 總學生會長 時節 6·3 데모를 主動하다 布告令 違反으로 投獄된 것이 最初의 試鍊이었다면, 1980年 ‘朝鮮日報’ 記者로 5·18 光州民衆抗爭의 現場을 率直하게 報道하지 못한 것은 一生一大의 傷處로 남아 있다. 政界에 入門한 뒤 몇 次例 口舌數에 휘말리긴 했지만, 徐代表는 黨政의 要職을 두루 거치며 5選의 貫祿을 쌓아왔다. 千辛萬苦 끝에 제1야당의 黨權을 거머쥔 서청원. 目前에 다가온 兩大選擧의 結果는 또 한番 그의 政治歷程을 바꿔놓을 것 같다.

    ―地方選擧에서 한나라당이 廣域團體長을 몇 곳이나 掌握할 것 같습니까.

    “只今 雰圍氣가 너무 좋습니다. 오늘도 제가 報告를 받았는데, 3個 地域을 빼면 다 이길 것 같아요. 湖南에서만 우리가 劣勢高.”

    ―輿論調査를 보면 서울 京畿 濟州 等도 薄氷이던데요.

    “밑바닥 情緖는 달라요. 앞으로 時間이 더 남아 있으니까, 우리가 이길 可能性이 높습니다.”

    ―政治權을 强打한 노무현 바람을 어떻게 評價하십니까.

    “아직도 노무현 바람이 남아 있습니까? 基本的으로 노무현氏가 민주당의 大統領 候補로 選出된 것은 어떻게든 政權을 延長해보려는 民主黨 政權의 計算된 論法에 依한 것 아닙니까? 거품은 반드시 빠지는 法입니다.”

    ―노무현 바람은 인터넷과 젊은층을 中心으로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층의 政治熱氣를 어떻게 보십니까.

    “純粹하게 이루어진다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들의 政治意識도 높아질 수 있겠죠. 다만 그것이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 組織的으로 一方的으로 輿論몰이를 하고 說得을 强要하는 文化라면 正말 걱정스럽습니다. 자칫 純粹한 사람들까지 물들인다면 正말 不幸한 일입니다.”

    ―한나라당이 執權하기 위해서는 이회창 候補가 여러 모로 달라져야 한다는 意見이 많습니다. 徐代表께서는 李候補에게 어떤 것들을 注文하실 생각입니까.

    “李候補는 바깥에서 아는 것보다 훨씬 情이 많은 분입니다. 그 兩班이 20代에 判事가 되었기 때문에 社交力이 떨어지는 건 事實이에요. 元來 法官이라는 게 그래야 生命이 길잖아요. 程度를 걸어오다 보니 弄談도 잘 못하고 그런 거죠. 하지만 그동안 참 많이 努力했어요. 議員들하고 만나서 爆彈酒 먹고, 燒酒도 마시고, 弄談도 받아주고….”

    1997年과 2002年 5月은 韓國現代史의 傷處로 남을 듯하다. 1997年에는 김영삼 前大統領의 아들 김현철氏가, 2002年엔 김대중 大統領의 아들 김홍걸氏가 檢察에 拘束됐다. 徐代表는 5年 前 大統領의 守備手로 뛰었지만 現在는 攻擊手로 變身했다. 徐代表는 기막힌 歷史의 아이러니에 對해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오늘(16日) 김대중 大統領의 아들이 檢察에 出頭할 때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正말 不幸한 일이 또 찾아왔구나 뭐 그런 느낌이죠. 個人的으로는 이런 悲劇을 源泉的으로 막기 위해 別途의 法的인 裝置들을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앞으로 黨 次元에서도 그런 걸 準備할 豫定입니다.”

    ―상도동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김영삼 大統領은 賢哲氏가 拘束되자 茫然自失한 나머지 國政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大統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健康까지 惡化된 狀態라서.

    “只今 大統領은 道德的 統治能力을 完全히 喪失했어요. 김대중 政權은 政治的 半身不隨 狀態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黨이 大統領의 2線後退를 積極的으로 主張했던 겁니다.”

    ―2線後退는 具體的으로 무엇입니까.

    “大統領은 國防과 外交만 擔當하고, 中立內閣을 構成해서 實權 總理에게 맡기라는 거죠.”

    徐代表의 政治的 座右銘은 ‘謙遜’과 ‘正直’이다. 그는 인터뷰 末尾에 “목에 힘이 들어가거나 眞實에 忠實하지 않으면 政治的 壽命이 오래갈 수 없다”는 말을 두 番이나 强調했다. 多分히 特定 政治人을 겨냥한 發言처럼 느껴졌다. 李舜臣 將軍을 다룬 金訓氏의 小說 ‘칼의 노래’에서 ‘勇敢한 장수論’의 힌트를 얻었다는 徐代表. 그는 2002年 大選政局에서 한나라당이라는 ‘거북船’을 타고 巨大野黨을 陣頭指揮하는 ‘李舜臣’을 꿈꾸고 있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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