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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性政治 vs 엘리트 政治|新東亞

感性政治 vs 엘리트 政治

强點과 弱點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hades@donga.com 공영운 < 문화일보="" 정치부기자=""> rabbit@munhwa.co.kr

    入力 2004-09-09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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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弱點이 相對의 强點, 盧武鉉과 이회창은 長點과 短點을 絶妙하게 나눠가진 政治人이다. 年齡으로나 理念性向으로나 極과 極이다. 支持階層度 뚜렷이 區分된다. 結局 누가 굳건한 支持階層을 維持하느냐가 大選勝敗의 關鍵이다.


    ▼ 노무현 候補 ▼


    노무현(盧武鉉) 民主黨 大選候補는 釜山사람 치고는 말이 빠르지 않다. 若干 더듬는 듯 語訥한 套로 느릿느릿 얘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聽衆을 向해 곧장 말을 쏟아내는 이인제(李仁濟) 議員과는 鄭 反對 스타일의 演說을 한다.

    하지만 느릿느릿한 노무현式 演說이 達辯家들의 演說을 누르고 聽衆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豫想 밖의 現象이 벌어졌다.

    올해 初 만해도 盧候補의 大衆支持度는 10~15%로 이회창 李仁濟에 이어 줄곧 3等이었다. 그러나 光州地域 競選을 契機로 狀況은 急變했다. 노풍(盧風)李 全國을 强打하더니 마침내 이회창 候補와의 假想對決에서 盧候補가 앞서는 ‘驚異的인’ 事件이 벌어졌다. 一對一 對決에서 支持率이 50%臺까지 올라갔는데 이는 競選 前보다 30%以上 새로운 支持度가 더해진 結果였다. 그러면 30%의 새로운 支持度를 創出해낸 노무현 候補만의 長點은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한瞬間에 票를 몰고 온 노무현 候補의 長點이 뒤집어보면 곧 盧候補의 短點이 된다는 事實이다.

    例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나라당은 最近까지도 盧候補가 國際感覺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며 “只今까지 單 세 次例 밖에 海外旅行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國家의 外交政策을 調律할 수 있겠냐”고 攻擊했다.

    實際 盧候補는 태어나서 只今까지 海外旅行을 세 番밖에 못갔다. 日本과 英國, 캐나다에 잠깐씩 들렀을 뿐이라고 한다. 우리와 國家的 利害關係가 密接한 國家인 美國에는 가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 英語를 읽을 줄은 알지만 會話實力은 형편없다. 이런 盧候補의 國際化指數에 對해 그를 支持하는 사람은 “오히려 庶民답다”고 評價하지만 反對로 “大統領이 되려는 사람으로는 資格未達”이라는 批判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盧候補는 스스로도 自身의 性格이 直線的이라고 말하는데 盧候補 本人은 直線的인 性格을 弱點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盧候補 周邊 사람들도 “直線的인 盧候補의 性格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한 側近人士는 “4月30日 盧候補가 김영삼 前大統領을 訪問했는데 두 사람이 마주한 모습을 보니까 배짱있게 일을 推進하는 能力에서는 두 사람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젊은 時節 盧候補를 記憶하는 사람들은 그의 괄괄하고 挑戰的인 스타일을 印象 깊게 記憶하고 있다. 時局辯護士時節 盧候補가 法廷에서 相對便 檢査와 멱살잡이 直前까지 갈 程度로 興奮하는 모습을 種種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靑年時節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只今도 가끔 거칠고 투박한 言行을 언뜻언뜻 엿볼 수 있고, 이로 인해 口舌數에 오르는 境遇가 적지 않다. 假令 言論과의 인터뷰에서 盧候補는 自身의 見解와 다른 質問에 對해 “質問 自體가 잘못됐다”며 正面으로 問題提起를 하는데, 이런 盧候補의 行動을 斬新하게 보는 記者들도 있겠지만 그 反對도 적지 않은 게 現實이다. 술자리이기는 하지만 言論觀을 두고 記者들과 자주 言爭을 벌이는 것도 이런 言語習慣 탓이다.

    大衆政治人으로 成功하려면 國民에게 感動을 膳賜할 줄 알아야 한다. 盧候補는 國民들에게 剛한 印象을 남긴 몇 안되는 大衆政治人인데, 이는 그만의 所重한 資産이다. 盧候補보다 學閥이 좋고 達辯인 競爭者들이 그에게 밀린 決定的 理由는 바로 이 ‘感動’일 것이다.

    노무현 候補는 두세 次例 國民들에게 感動을 준 政治人이다. 첫番째는 1988年 5共 聽聞會였는데 盧候補는 이해찬 이인제 議員과 함께 聽聞會가 輩出한 政治스타였다. 30~40代 年齡層의 盧候補 支持者들은 當時 그의 모습에 剛한 印象을 받은 사람들이다.

    20代 有權者들은 노무현 候補를 2000年 4·13總選 當時 민주당 不毛地인 釜山에서 民主黨 看板으로 出馬했다가 落選한 政治人으로 記憶한다.

    地域感情 克服을 위해 無謀한 挑戰狀을 내민 盧候補의 容器에 感動한 사람들이 ‘노사모’라는 自發的 팬클럽을 만들었는데 當初 數百名 水準이던 노사모는 민주당 國民競選을 거치면서 會員數 4萬이 넘는 巨大 政治勢力으로 成長했다.

    노사모의 出現과 成長은 政治人이 國民에게 感動을 주면 國民들은 어떻게 答하는지를 보여준 事件이었다. 大統領候補 競選에 뛰어든 與野의 大選走者들이 한결같이 노사모를 벤치마킹한 네티즌 팬클럽을 組織했지만 노사모의 組織力을 뛰어넘지 못한 것은 ‘感動’과 ‘自發性’李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分析이다.

    노사모는 分明 盧武鉉만이 누리는 長點이다. 이들과 비슷한 情緖를 가진 젊은층의 支持가 노풍 擴散의 背景이라는 點도 分明한 事實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陷穽이 숨어있다. 盧候補는 感動을 준 政治人이지만 뜻밖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政治人이다. 盧候補가 政界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벌써 15年, 하지만 그가 現役 國會議員으로 活動한 時期는 不過 6年 남짓하다. 나머지 9年 동안 그는 出馬와 落選을 反復했고 政治權 周邊部를 맴돌며 歲月을 보냈다. 이 때문에 그는 政治履歷에 비해 알려진 바가 적은 政治人이다.

    이미 弱點이 드러난 이회창 候補의 境遇 支持度가 急激히 오르지도 않지만 웬만해서는 떨어지지도 않는 特徵이 있다. 아직까지는 一般國民들 사이에 政治新人과 다름없는 盧候補의 境遇, 致命的 弱點이 公開된다면 한瞬間에 支持率이 곤두박질치는 狀況에 處할 수도 있다.

    黨內 系譜議員이 없다는 點 亦是 盧候補의 長點이자 短點이다. 系譜議員이 없으니 國民을 相對로 直接 바람몰이를 할 수 있었다. 迅速하게 決定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大選走者가 된 뒤 黨과의 意見調律에 적지 않게 애를 먹고 있는 것 또한 事實이다. 盧候補는 民主黨 議員들과의 懇談會에서 “國民들에게 내가 訓育받아야 할 對象으로 비치지 않도록 해달라”며 民主黨 議員들과의 相見禮가 便치만은 않았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只今 한나라당은 盧候補의 弱點을 찾아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機敏하게 움직이고 있다. 相對的으로 檢證期間이 짧았기 때문에 長點만 浮刻되고 있을 뿐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視角이다.

    한나라당은 國防部의 主敵(主敵) 槪念 變更 움직임에 對해 “왜 盧候補는 말이 없냐”고 따지고 나섰는데 이런 式으로 懸案에 對한 盧候補의 생각을 따지는 한나라당의 攻勢는 選擧直前까지 繼續될 展望이다.

    여기에 더해 過去 盧候補가 主張했던 國家保安法 廢止, 美軍撤收 等에 對한 酷毒한 思想檢證도 準備하고 있다. 盧候補는 理念攻勢에 곧잘 짜증스러운 反應을 보이고 있는데 大選까지 앞으로 7個月間 盧候補의 神經을 건드리는 말의 攻勢는 繼續될 것 같다.



    ▼ 이회창 候補 ▼


    이회창 候補는 1997年 大選에서 ‘3金式 政治 淸算’을 내세우며 選擧에 나섰지만 3金 中의 한사람인 김대중 候補에게 敗北했다. 그리고 지난 4年餘 동안 金大統領과 政治生命을 건 鬪爭을 繼續했고 이제 自身이 펼친 政治歷程의 功過(功過)에 對해 有權者의 審判을 받아야 한다. 그는 두番째 挑戰을 成功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이番 大選에서 이회창 候補에게 가장 유리한 側面을 政治이슈의 흐름과 政治地形에서 찾는 視角이 많다. 김대중 政權의 權力型 非理가 繼續되면서 만들어진 ‘非理 이슈’가 몇 가지 理由에서 李候補에게 決定的인 機會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于先 非理 問題가 政局의 主要爭點으로 登場하는 한 原則과 대쪽, 淸廉과 强直을 自身의 이미지로 내세워온 李候補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하나는 ‘非理 政局’은 이회창 候補가 出馬名分으로 내세우는 ‘DJ政權 審判論’과 ‘政權交替論’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李候補는 지난 4年間의 野黨生活에서 政權과 强勁한 鬪爭을 繼續하며 反DJ情緖에 依存해 왔지만 이는 自發的인 選擇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간 側面도 强했다.

    李候補는 지난해 8月 總裁就任 3年을 記念한 자리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했다”고 回顧한 바 있다. 總裁에 就任한 當日인 1998年 8月31日 與圈이 ‘稅風事件’을 터뜨리고, 安風, 총풍 等 이른바 ‘3風’事件으로 ‘이회창 죽이기’에 나서는가 하면, 議員 36名을 빼가는 狀況에서 生存鬪爭은 ‘强要된 現實’이었다는 主張이다. 그만큼 그가 해온 半DJ鬪爭은 守勢的이고 防禦的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繼續되는 非理 事件은 그의 反DJ鬪爭을 積極的이고 攻擊的인 性格의 것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김대중 大統領의 國政遂行에 對한 支持度가 各種 輿論調査에서 30%線으로 떨어진 것, 50%를 上廻하던 민주당 노무현 候補의 支持率이 非理 政局에 묻혀 續落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 非理 이슈는 노무현 突風 當時 만들어진 ‘保革構圖’의 틀 속에 갇혀, 立地가 좁아진 이회창 候補에게 劇的인 脫出口를 만들어줬다. 政局을 腐敗-反腐敗 構圖로 바꿔놓음으로써 李候補가 保守, 旣得權, 特權層 이미지라는 否定的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깨끗함과 剛直함을 浮刻시키고, 계층적 弱點을 補完하는 效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問題는 이 이슈의 持續性 與否다. 한나라당이 세 아들 非理에 對한 國政調査와 特檢制 導入을 主張하고 金大統領에 對한 直接調査를 促求하는 것도 이 問題를 大選까지 連結시키고자 하는 目的이다.

    또 하나 이회창 候補의 强點은 地域的 基盤이다. 그는 嶺南圈에서 比較的 탄탄한 支持를 받고 黨內 嶺南圈 議員들로부터도 全幅的인 支援을 얻고 있다. 민주당 競選에서 이인제候補가 脫落한 結果로 忠淸圈에서도 相當한 躍進勢를 보이고 있다.

    이회창 候補는 또 지난 大選 以後 5年間 持續的으로 檢證을 받아와 否定的 이슈에 對해 抵抗性과 耐性이 생겼다.

    그는 또 候補의 資質部門에 對한 輿論調査에서 노무현 候補에 비해 安定感과 國政運營 能力, 經歷과 學歷 等 여러 側面에서 골고루 앞서 있다. 最近 文化日報와 YTN이 輿論調査專門機關인 TNS에 依賴해 調査한 結果에 따르면 李候補는 ‘安定感’에서 盧候補를 29%臺 15%, ‘國政運營 能力’面에서 25.8%臺 14.5%, 經歷 및 學力面에서 12.5%臺 2.9%로 앞서 ‘改革性과 斬新性’(26.6%臺 59%)을 除外하고는 全 部門에서 앞섰다.

    支持層의 堅固性 面에서도 李候補가 앞선다. 最近 各種 輿論調査에서 支持候補 變更意思를 묻는 質問에 ‘繼續 支持할 것이다’는 應答者는 李候補 側이 盧候補 側을 10%포인트 以上 앞선다. 反對로 ‘支持候補를 바꿀 수 있다’는 應答者는 盧候補 支持者가 李候補 支持者보다 10%포인트 假量 많다. 投票意向을 묻는 質問에도 盧候補 支持率이 높은 20~30代는 60~70%만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答한 反面, 李候補 支持率이 높은 40~50代에서는 80~90%가 投票意思를 밝혀, 李候補側 支持가 實際 得票로 이어질 可能性이 더 높다.

    李候補의 最大弱點은 이미지가 固着化하고 力動性이 떨어진다는 點이다. 그는 政治入門 當時 가졌던 ‘變化’‘改革’‘現狀打破’의 이미지를 거의 喪失했다. 野黨 指導者 4年餘 동안 旅券과 極限對立을 反復하는 過程에서 政局을 ‘鬪爭型’으로만 이끌고 代案提示에 失敗했다는 批判을 받았다. 김대중 政府의 改革政策에 對해 事事件件 反對하는 것으로 비친 反面 自身의 비전을 提示하는 데 失敗함으로써 ‘改革反對勢力’ 또는 ‘旣得權 擁護勢力’의 汚名을 뒤집어 쓴 側面도 적지 않다.

    이같은 側面은 그의 個人支持度가 與圈의 잇단 實情에도 不拘하고 일정한 限界線 以下에 묶여 있는 現象으로 나타난다. 그는 한나라당이 지난해 10·25再補選에서 勝利하고 與圈이 國政亂脈과 非理事件으로 크게 흔들리는 時期에도 個人支持度가 黨支持度에 못미치거나, 김대중 大統領보다도 個人支持度가 낮은 異常現象을 經驗해야 했다.

    그에게 不利한 또 하나의 側面은 우리社會의 階層構造 變化樣相이다. 1997年末 IMF事態 以後 只今까지 中産層이 沒落하고 經濟的 兩極化現象이 深化돼 이른바 ‘20對 80의 社會’ 現象이 나타났다. 40~50代 家長의 强制退出, 高學歷失業者 量産, 正規職 勤勞者의 減少와 非正規職 勤勞者의 增加, 大卒 實業의 暴增 等 傳統的 中間層의 두께가 얇아진 狀況에서 李候補의 保守的 이미지는 絶對的 支持階層의 矮小化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 李候補에게 負擔이 되는 것은 支持層의 積極性이다. 노무현 候補의 境遇 支持層의 安定性은 不足하지만 매우 活動的이고 自發的이다. 反面 李候補의 支持層은 活動性이 떨어지는 ‘점잖은 사람들’이다. 이는 ‘노사모’와 이회창 支持모임인 ‘창사랑’의 行動樣式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李候補의 리더십 行態도 不安要因이다. 고비마다 反復된 黨 內紛과 脫黨도미노는 李候補의 리더십에 對한 不信을 낳았다. 李候補는 또 3金 政治 淸算을 主張하면서도 金永三·김종필氏와 政治的 利害에 따라 隨時로 關係變化를 摸索하는 모습 等에서 “一貫性이 不足하다”는 批判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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