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無能한 國家情報院’ 論難|新東亞

‘無能한 國家情報院’ 論難

“院長이 이너라인에 依存…正統 情報엘리트 떠나” (MB政權 國精院 高位職 出身者 證言)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取材本部長 song@yeongnam.com

    入力 2012-01-20 13:09: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人事專橫으로 幹部들 눈치 보기 바빠
    • 國精院 “對北情報 能力 强化했고 獨斷的 人事 안 했다”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元世勳 國精院長

    지난해 12月 19日 낮 12時 靑瓦臺 構內食堂.

    大統領室 職員들이 三三五五 자리를 잡고 李明博 大統領과 夫人 김윤옥 女史의 立場을 기다리고 있었다. 李 大統領의 七旬 生日이자 41番째 結婚記念日을 맞아 大統領 內外와 祝賀 午餐을 하기로 돼 있었다. 이날은 또 2007年 大統領選擧에서 勝利한 지 꼭 4年째 되는 날이었다. 參謀들은 當時를 回想하며 談笑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暫時 後 靑瓦臺 職員들의 携帶電話에 一齊히 文字 메시지가 떴다.

    “김정일 死亡.”

    화들짝 놀란 參謀들은 約束이라도 한 듯 各 房으로 흩어졌다. 北韓 朝鮮中央TV의 ‘特別放送’을 지켜봤다. 이 視角 李 大統領은 午餐場으로 오고 있었다. 隨行 參謀로부터 같은 內容을 緊急報告받는다. 그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午餐은 김윤옥 女史가 主宰해 늦게 進行됐다.



    靑瓦臺의 태평스러운 風景

    앞서 이날 아침 參謀들은 業務 始作 前 깜짝 祝賀파티를 열었다. 李 大統領이 靑瓦臺 本館으로 出勤하자 기다리고 있던 靑瓦臺 職員 200餘 名이 一齊히 結婚 祝賀 노래를 불렀다. 一部 職員들은 고깔帽子를 썼다. 參謀들은 이 大統領 活動寫眞과 祕書官室별 祝賀 메시지 寫眞이 담긴 大型 카드를 生日膳物로 건넸다. 李 大統領은 “고맙다”며 生日케이크를 잘랐다. 참 和氣靄靄하고 태평스러운 風景이었다.

    朝鮮中央TV, 朝鮮中央放送, 平壤放送 等 北韓 媒體들은 이날 午前 10時에 “오늘 12時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特別放送이 있겠습니다”라고 알렸다. 이어 午前 10時 23分, 10時 30分에 特別放送을 거듭 豫告했다. 特히 朝鮮中央TV는 普通 午後 5時부터 放送을 始作하는데 이날은 午前 9時부터 放送을 내보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午前 10時 뉴스도 省略했다.

    北韓은 그동안 김정일 國防委員長 再推戴 等 懸案이 發生할 때마다 미리 알린 뒤 發表해왔다. 더욱이 ‘特別放送’이라는 表現으로 豫告한 것은 1972年 7·4 南北共同聲明 發表와 1994年 7月 9日 김일성 主席 死亡 때 두 次例뿐이었다.

    이쯤 되면 12月 19日 午前 靑瓦臺, 國家情報院, 國防部, 外交通商部 等 關係 當局은 急迫하게 돌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機關에서 緊張感은 全혀 없었다. 例를 들어 이날 午前 國精院에서 ‘異常 徵候’ 急報가 靑瓦臺로 올라갔다면 靑瓦臺의 雰圍氣는 달랐을 것이다. 김정일 死亡을 미리 感知하는 對北情報力도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基本的인 情報 分析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넋 놓고 지내온 것으로 評價될 수 있는 대목이다.

    國防部도 事情은 마찬가지였다. 12月 19日 午前 김관진 國防長官은 國會에서 한나라당 黃祐呂 院內代表와 國防改革法案을 論議하다 낮 12時20分 國防部 狀況室로 遑急히 달려갔다. 鄭承兆 合參議長은 前方部隊 巡視 中 이 大統領의 電話를 받고서야 서울로 돌아왔다고 한다. 外交通商部, 統一部, 國精院의 高位 幹部도 當然히(?) 外部에서 點心 食事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傳해졌다. 統一部의 한 當局者는 午前 “特別放送 內容이 뭐日 것 같으냐”는 質問에 딴말만 했다. 다른 關係 部處에서도 “6者會談 關聯 立場 表明이나 核問題 程度일 것”이라는 對答만 나왔다.

    이춘희 朝鮮中央TV의 아나운서는 검은 喪服 차림으로 “偉大한 領導者 김정일 同志께서 主體 100年 12月 17日 8時 30分에 現地指導의 길에서 急病으로 逝去下詩였다는 것을 가장 悲痛한 心情으로 알린다”며 흐느꼈다. 이때야 當局者들은 食事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非常勤務體制에 들어갔다. 情報라인 高位 人士들의 姿勢에 問題가 있다는 指摘이다. 다음은 한 對北 專門家의 말이다.

    “김정일 死亡 後 52時間 동안 北韓의 公式 發表 때까지 政府가 아무런 情報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深刻한 問題다. 17年 만에 特別放送을 한다면 적어도 緊張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朝鮮中央TV를 모니터하고 있던 言論社 記者도 電話를 걸어와 ‘特別放送 始作 몇 十 分 前부터 葬送曲 비슷한 音樂을 내보내고 있어 異常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政府 當局者들이 太平하게 있었다는 건 紀綱解弛, 業務怠慢으로밖에 說明이 안 된다.”

    이어 이 對北 專門家는 “實務線에서 異常 氣流를 感知하고 上官에게 報告한 事例도 있겠지만 結局 國精院長을 비롯한 首腦部의 ‘直觀的 洞察力’에 問題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든 情況을 綜合해볼 때 北韓의 公式 發表 前 政府가 김정일 死亡 消息에 깜깜했던 건 分明해 보인다. 取材過程에서 어떤 政府 當局者도 事前에 알고 있었다는 論據를 提示하지 못했다. 國精院 高位 幹部도 한 知人에게 “全혀 몰랐다”고 吐露했다는 傳言이다.

    李明博 大統領은 김정일 委員長이 死亡한 지난해 12月 17日 日本 出張 中이었다. 靑瓦臺는 “노다 요시히코 日本 總理가 첫 外國 訪問地로 韓國을 選擇한 데 對한 答訪 性格”이라고 했다. 큰 懸案을 論議하는 訪問은 아니었다. 김정일 死亡과 같은 非常事態에 軍 統帥權者인 大統領이 國內에 없다는 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洞네 情報員’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2011年 12月 19日 朝鮮中央TV가 김정일 死亡을 알리고 있다.

    結局 對北情報 蒐集網에 큰 구멍이 났음을 의미한다. 對北諜報를 總括하는 國精院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政治權 一部 人士는 “洞네 情報員”이라고 말한다. 國精院은 只今 엄청난 豫算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2011年 國精院 豫算은 特殊 活動費 名目으로 4963億 원이었다. 以外 豫備費 3000億 원과 알려지지 않은 豫算 等 1兆 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朴映宣 民主黨 議員은 “國精院 豫算이 무더기로 通過될 때 大部分 北韓情報 蒐集에 쓰인다고 報告됐다. 그 많은 豫算을 北韓情報 蒐集에 쓰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國民은 답답해한다”고 했다.

    前職 國精院 職員과 對北 專門家는 國精院의 無能과 關聯해 理由를 두 가지 脈絡에서 찾았다. 첫째는 北韓과의 對峙를 풀고 對話를 重視했던 김대중·노무현 政權을 거치면서 對北情報 蒐集을 위한 人力과 裝備가 大幅 줄었다는 것이다. 두 番째는 李明博 政府 들어서도 認識 不足과 內部 問題로 인해 復舊努力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情報機關의 情報 蒐集 方法은 大槪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람을 相對로 情報를 캐내는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와 最尖端 裝備를 使用해 情報를 얻어내는 ‘時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가 그것이다. 北韓 內部 人事의 陳述로부터 對北情報를 얻는다면 휴민트에 該當한다. 시진트에는 레이더나 通信監聽用 裝備가 動員된다. 김일성 死亡 當時 우리 情報機關은 通信諜報活動으로 關聯 內容을 迅速히 入手했다.

    휴민트와 시진트를 融合할 때 시너지 效果를 極大化할 수 있다. 例를 들어 北韓 高位 人士를 包攝해 金正恩이 자주 가는 別莊을 알아낸 뒤 人工衛星으로 이 地點으로 車輛들이 移動하는지를 集中的으로 監視하면 金正恩의 實時間 位置를 把握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政權이 휴민트와 詩진트 運用에 必要한 豫算을 大幅 減縮하고 人員과 裝備를 줄이는 바람에 이 두 가지가 同時에 무너졌다고 한다. 國精院의 한 職員은 “휴민트는 結局 돈 아니냐. (北側 情報員을 돈으로 買受해야 이 情報員이 高級 情報를 알려준다는 意味로 解釋됨) 豫算을 줄이면 휴민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當然하다”고 말했다.

    “金大中·盧武鉉이 怪物로 만들어”

    그뿐만 아니라 情緖的으로 情報要員의 士氣를 꺾는 일이 非一非再했다고 한다. 김대중 政權 時節 國精院 次長을 지낸 김은성 氏는 김정일 死亡 後인 지난해 12月 24日 自身이 몸담았던 김대중 政權을 ‘左派政權’이라고 批判했다. 그는 “左派政權 10年間 ‘歷史 바로 세우기’ ‘過去事 眞相糾明’으로 過去 左翼事件을 모두 뒤집어엎어버림으로써 情報機關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했다. 國家情報機關을, 事件을 造作해 民主鬪士를 죽이고 暴壓을 한 怪物로 만들어버렸다. 國精院은 勿論 軍·檢·警의 公安(公安) 能力마저 縮小시켰다”고 했다. 이어 그는 “노무현 前 大統領은 國精院 報告書를 읽을 價値가 없다 하여 無視해버렸다. 獨對報告度 中斷시켰다. 國精院 報告書를 읽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에게 자랑(?)했다. 國精院 要員들은 일할 意欲을 喪失했다. 情報 使用者가 賤視하는데 누가 熱心을 내겠는가”라고 했다.

    取材 結果 김대중 政權 出帆 直後인 1998年 4月 1日 安企部(國精院의 前身)는 對北情報라인 組織改編을 名分으로 書記官級 以上 職員 581名에 對해 事實上 退出 措置를 取했다. 特히 對北情報라인을 中心으로 2級 以上 幹部 33名이 무더기 退職했다. 이 時期 對共 業務 擔當 警察 2500餘 名, 기무사 要員 600餘 名, 公安檢査 40餘 名이 解職됐다는 主張도 있다.

    理解 12月 安企部에서는 300名이 追加 名退했다고 한다. 김대중 政權 10個月 만에 北韓 擔當 人力을 中心으로 900餘 名의 安企部 職員이 나갔다는 것이다. 이듬해 1月 安企部는 國家情報院으로 名稱을 變更하고 新規 職員 500餘 名을 뽑아 補充했다고 한다.

    “김대중 政權이 우리 政府를 위해 北韓 內部에서 活動하던 情報員 名單을 北側에 통째로 넘겨주는 바람에 保衛部에 줄줄이 逮捕됐다”는 多少 衝擊的인 證言도 最近 나왔다.

    情報當局은 휴민트 體制가 무너진 後 北韓을 오가는 中國人, 朝鮮族에게서 諜報(正確한 情報로 確認되기 前 段階의 情報)를 蒐集했지만 그 水準이 매우 낮았다. 情報를 提供하는 사람 中 一部는 自己 誇示나 돈을 더 받기 위해 거짓 諜報를 濫發했다. 이 바람에 오히려 混線이 加重되는 境遇도 많았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情報當局이 김정일 死亡을 알아내지 못한 一次的 責任은, 北韓의 눈치를 살피느라 對北情報 蒐集體系를 허물어버린 김대중·노무현 政權에 돌아가는 것으로 비친다. 노태우 政權 時節 對北 密使로 活動한 박철언 前 安企部長 第2特補는 “北側과 對話하더라도 對北情報 蒐集을 徹底하게 해야 한다. 相對에 對해 많이 알면 對話를 圓滑히 풀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2011年 12月 19日 李明博 大統領이 靑瓦臺에서 김정일 死亡에 따른 國家安保對策을 論議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政權의 情報機關도 情報網 崩壞의 責任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도 많다. 保守 勢力이 政權을 잡아 4年이 지났지만 對北情報 蒐集體系는 別로 改善된 게 없다는 것이다. 이에 對해 김은성 氏는 “大統領의 無關心이 情報業務 發展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한 前職 國精院 職員은 “國精院이 政治的 바람을 너무 많이 탄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그의 說明이다.

    “進步政權이 들어서면 國精院 내 特定地域 出身이 被害를 본다. 거꾸로 保守政權이 들어서면 反對便 特定地域 出身이 두려움에 떤다. 情報도 모르는 사람들이 落下傘으로 高位職을 차고 앉아 改革이랍시고 입맛대로 人事를 하는 것이다. 수많은 先輩가 國益을 위해 궂은 일하다 政權 바뀐 뒤 冊잡히고 잘렸다. 이제는 이런 일을 나서서 하지 않으려 한다.”

    “元世勳 院長이 問題”

    記者는 이명박 政權 初期까지 國精院 高位 幹部를 지낸 A 氏의 證言을 들었다. A 氏는 進步政權의 國精院 無力化 試圖를 批判하면서도 “김정일 死亡 때의 無能은 現 政權 國精院의 責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대중 政府 時節 對北情報라인이 무더기 퇴출됐는데….

    “김대중·노무현 政府 때 對北 情報力이 弱化된 것이 事實이다. 國精院 內에 專門的이고 集中的으로 對北 情報를 分析하는 파트가 있는데 (進步政權 以前에는) 아주 强했다. 北韓 關聯 팩트(facts·事實的 情報들)에 精通한 專門家가 많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政權 들어서 南北對話에 障礙가 된다고 判斷해….”

    ▼ 具體的으로는 어떻게 힘을 뺀 것인가.

    “김대중 政府 時節 對北 核心部署가 올린 報告에 對해 임동원 院長 같은 사람이 작살을 냈다. 어떻게 하든지 北韓을 美化하고…. 우리가 ‘金日成’ ‘김정일’ 하던 것을 뒤에 ‘將軍’이라고 職銜 붙이고 했던 사람들이 無條件 交流나 對話 쪽으로만 神經 쓴 거다.”

    ▼ 內部에서 어떤 現象이 벌어졌나.

    “10年 동안 쭉 그렇게 하니 무너지고 죽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무슨 수를 쓰든 間에 北韓의 動向을 캐칭(catching) 하기 위해 휴민트度 하고 科學 裝備도 動員했는데 그런 걸 絶對 못하게 했다. 그런 活動을 할 수 없으니 (情報蒐集 能力이) 떨어진 거다.”

    ▼ 只今이라도 다시 하면 되지 않나.

    “過去 通信監聽 等을 利用해 情報를 蒐集했다. 그런데 北韓이 關聯施設을 地下化하고 通信도 디지털로 바꿨는데 이건 監聽을 못한다. 이에 對한 準備를 하지 않았던 거다. 北韓을 따라잡을 時間을 놓쳤다.”

    여기까지 過去 政權을 批判한 A 氏는 이어 이명박 政權의 國精院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더 重要한 問題는 MB 政府 들어와 뭘 했느냐는 거다”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特히 元世勳 國情院長이 恐怖統治, 人事專橫을 했다고 主張했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다.

    “MB 政府의 國精院은 北韓에 對한 情報力을 强化하고 專門家를 키웠어야 했다. 實際로는 노무현 政府 (要職에 있던) 사람들을 몽땅 몰아서 剔抉했다. 特히 2009年 2月 元世勳 院長이 온 뒤로 ‘權威主義’樣相을 보여왔다. 원 院長이 國精院 人事에서 內部統制體系나 公式라인을 거치지 않고 人事專橫을 했다. 그러니 (幹部들이) 눈치 보기 바쁘지. 只今 (國精院) 內部는 엉망이다. 이런 것들이 크게 作用해서…. 責任은 元世勳 院長에게 있다.”

    李 大統領이 서울市長에 在任할 當時 서울市에서 勤務했던 원 院長은 이 大統領의 側近으로 통한다. A 氏에 따르면 원 院長은 情報에 對한 專門性 없이 組織을 運營하고 自己 사람에만 치우쳐 只今과 같은 事態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A 氏는 記者에게 “元世勳 院長에게 問題點이 있다. 責任이 있다”는 말을 여러 次例 되풀이했다. “怨 院長이 ‘이너라인(inner line)’에만 依存하는 바람에 많은 數의 正統 情報엘리트가 떠났다”는 말도 했다.

    이와 關聯해 政治權 一角에서도 元世勳 院長의 잘못된 人事가 情報空白을 招來했다고 批判한다. 崔宰誠 民主黨 議員은 “國精院 내 對北情報 擔當 部署의 高位層은 勿論 中間 幹部까지 大擧 交替된 것으로 듣고 있다. 元世勳 院長의 人士가 只今의 狀況을 만들었다”고 했다.

    前職 情報 關係者들은 最近 ‘한겨레’ 인터뷰에서 “元世勳 院長이 組織改編과 人事를 자주 했는데 原則이 없었다” “對北人的情報 라인을 ‘飯MB’로 몰아 逐出했다” “國精院 內部에서 慶南-忠淸 라인이 得勢하고 다른 地域 出身이 排除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人事는 人事委員會를 통해 이뤄지게 되어 있지만 이 人事委員會가 事實上 無力化된 것으로 안다” “李 大統領의 서울市長 在任 時節 서울市를 出入한 國精院 職員이 人事에 影響力을 行使했다” “相當數 職員을 다른 分野로 轉換 配置해 專門的 業務에 支障을 招來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全혀 事實 아니다”

    無能한 國精院 論難과 元世勳 責任論에 對해 國精院의 反論을 들어봤다. 國精院 側에 1月 13日 e메일 質疑書를 보냈는데 얼마 後 答信이 왔다. 다음은 質疑와 答辯 要旨다.

    ▼ 現 政府 들어 노무현 政府 때 重用됐던 人員을 閑職으로 보냈나.

    “過去 政府 重用됐던 對北情報 專門 人力을 閑職으로 내보냈다는 主張은 事實과 다르다. 過去 政府의 對北情報 專門 人力이라는 것은 舊(舊) 對北戰略局 人力으로 보이는데 對北戰略局은 主로 南北會談 및 公式的인 對北 支援業務를 擔當하던 組織으로 對北情報 力量과는 相關이 없다. 그리고 現 政府 들어 國精院은 對北戰略局 機能을 北韓情報 分野에 모두 移管해 運營 中이다. 人力도 大部分 北韓情報 分野와 關聯된 部署에 配置되어 勤務하고 있다. 또한 國精院은 組織의 機能的 再編과 함께 人員·豫算을 持續的으로 擴大해 對北工作 力量을 持續的으로 强化해왔다. 따라서 過去의 對北情報 人力이 閑職으로 밀려나 對北情報力量이 弱해졌다는 主張은 全혀 事實이 아니다.”

    ▼ 現 政府 들어서도 國精院의 휴민트가 崩壞되었다는 主張도 나왔는데….

    “現 政府 出帆 直後 徐薰 前 3次長 等 政務職이 交替되었지만 이는 政權交替 時 ‘責任政治’ 原理에 따라 政務職 交替가 隨伴되는 데 따른 通常的인 것이다. 國精院에만 局限된 것이 아니다. 더욱이 對北 휴민트 라인을 ‘飯(反)이명박 勢力’으로 몰아 逐出했다는 主張은 全혀 事實이 아닌 것으로 徐薰 前 3次長도 言論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또 徐薰 前 3次長은 對北 協商 分野 專門家로, 對北情報 蒐集·工作을 擔當하는 本質的인 意味의 휴민트 業務와는 相當한 距離가 있었다. 그 後任으로 北韓情報室長 等을 歷任한 對北 情報通인 한기범 前 3次長이 任命되었다는 點에 비추어 볼 때 휴민트가 瓦解되고 對北情報가 弱化되었다는 論理는 根據가 없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政府 時節 國精院이 對北 協商에 關與하는 過程에서 相當數 對北 情報라인이 露出되어 휴민트 力量이 弱化되었다는 指摘이 나오고 있는 實情이다. 現 政府 들어서는 過去 政府 時節 萎縮되었던 휴민트 力量을 單純히 以前 水準으로 復元하는 次元을 넘어 大幅的인 人力·豫算 投入 等을 통해 훨씬 强力한 휴민트 體制를 構築하고 있는 狀態다.”

    ▼ 中國 所在 北韓 幹部들이 김정일 死亡 發表 以前 緊急히 本國으로 歸還했다고 한다. 이러한 北韓과 中國의 特異動向을 感知해 김정일 死亡 發表 以前에 김정일 死亡을 充分히 豫測할 수 있었다는 主張도 있다.

    “김정일 死亡 以後 北韓에서도 核心 實勢를 除外한 高位層조차 公式發表 前까지 認知하지 못하고 正常的 活動을 展開했다. 總理 최영림, 副總理 김낙희, 世襲體制 構築 核心人物인 黨 祕書 김기남이 12月 17日 平南 肅川郡을 訪問해 ‘農業指導體系 確立 50回 中央報告會’에 參席했다. (12月 18日 勞動新聞). 中國을 訪問 中이던 北韓 電子工業上 한광복은 12月 15日 장더장 中國 副總理와 面談하고 死亡發表 이튿날인 12月 20日 귀北했다. 中國도 總理나 國務委員이 김정일 死亡을 全혀 모른 채 地方視察 또는 海外巡訪 日程 을 消化했다. 원자바오 總理는 12月 18~19日 장쑤省으로, 對北關係의 核心人物인 다이빙궈 外交擔當國務委員은 12月 19日 아침 미얀마로 出張을 갔다.”

    “실·局長 說明 듣고 人事했다”

    ▼ 北韓이 김정일 死亡을 發表하는 12月 19日 午前까지도 國精院이 徵候를 把握하지 못했다는 主張이 있다.

    “北韓의 豫告 放送 때 아나운서는 검은 喪服이 아닌 紫朱色 저고리의 平常服을 着用하고 있었고 平素와 다름없는 語調를 維持했다. 民間團體는 單純 推定만으로도 公表할 수 있지만 國精院이 無作定 公開할 境遇 國內 株價暴落이나 外國人 資金 離脫과 같은 金融市場 混亂, 生必品 사재기 等 社會的 動搖가 發生할 素地가 多分하다. 世界 各國은 北韓의 發表 前까지 몰랐고 그 以前에 알 수 있는 方法은 휴민트뿐인데 過去 共産主義 獨裁國家와 마찬가지로 北韓도 ‘最高 指導者 死亡’과 같은 重大 事案은 極히 制限된 人員들에게만 通報한다. 設令 北韓 內部의 휴민트가 김정일 死亡을 卽刻 認知했다 하더라도 外部와의 모든 通信이 監聽당하고 사람의 往來가 徹底히 統制되어 있는 北韓과 같은 社會에서는 이를 平壤에서 外部에 알리는 데에만 며칠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現實이다. 死亡 事實은 金淨은 및 一部 最側近만 알고 있는데 이들을 휴민트로 使用하는 것은 不可能하고 情報機關은 알아도 말을 못한다.”

    國精院 關係者는 元世勳 院長의 이너라인이나 人事專橫 關聯 主張에 對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人事는 院長의 固有權限이지만 獨斷的으로 할 수 없다. 該當 國·室長의 說明 없이 그 많은 人員에 對한 人事資料를 院長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느냐”고 說明했다. 또 “(怨 院長) 就任 以後 對北 情報力을 强化했다. 充實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