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霧淞과 關羽가 마신 술 黃州(黃酒)|新東亞

霧淞과 關羽가 마신 술 黃州(黃酒)

  • 김원곤| 서울대 醫大 敎授·胸部外科 wongon@plaza.snu.ac.kr

    入力 2012-01-19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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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水滸誌’ 最高 豪傑 中 한 名인 霧淞(武松)은 沙鉢로 술을 18盞을 마시고 고개를 넘다 虎狼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 무宋이 우리가 흔히 아는 中國술 白晝(白酒)를 18沙鉢 마셨다면 虎狼이를 때려잡기는커녕 酒幕을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三國志’의 關羽는 ‘데운 술이 食器도 前에’에 火雄의 목을 베고 돌아와 따뜻한 술을 들이켰다. 關羽가 마신 술도 三國志(189~280)의 時代的 背景을 勘案하면 當然히 醱酵酒였을 것이다. 高粱酒와 같은 독한 술을 데워 마신다는 槪念 自體가 語塞하다.
    • 中國 4代 奇書에 登場하는 英雄들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옛 中國의 4代 奇書(奇書·‘三國志演義’ ‘水滸誌’ ‘西遊記’ ‘金甁梅’) 中 하나로 손꼽히는 水滸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元來 이름이 水滸傳(水滸傳)인데, 글字 그대로 ‘물가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뜻이다. 冊 內容은 양산박(現在의 中國 산둥(山東)省 首長(壽張)縣 近處로 推定)이라는 受賞 世界를 舞臺로 權力의 不當한 壓制에 抗拒하는 豪傑 108名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梁山泊의 主要 人物 中 相當數는 當時 下級軍人과 職責이 낮은 行政管理 出身으로, 비록 그 地位는 높지 않았지만 이들 한 名 한 名이 모두 民衆 指導者의 性格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小說의 時代的 背景은 北送(北宋·960~1127)의 第8代 皇帝인 徽宗의 治世機(1101~1125)다. 徽宗은 名君으로 評價받는 신종의 아들로, 元來 王位 繼承 序列로는 皇帝가 될 可能性이 없었으나, 兄인 哲宗이 後嗣 없이 일찍 죽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皇帝가 되는 幸運을 누린 人物이다. 徽宗은 ‘風流天子’로 불릴 程度로 閑良 氣質이 剛했다. 皇帝가 되자 國政보다는 그 自身을 위해 國庫를 蕩盡했다. 結局 그의 無責任하고 放漫한 國家 運營은 150年 以上 持續돼오던 北宋이 金나라에 依해 滅亡당하는 決定的 原因을 提供하게 된다.

    徽宗의 時代에 調整은 腐敗한 奸臣과 宦官들이 得勢하며 統制 없는 權力을 휘둘렀다. 水滸誌는 歷史的 事實들을 바탕으로 만든 創作物이기 때문에 小說에 나오는 高位 官吏들은 大部分 實際 存在했던 人物들이다. 當時 4名의 奸臣, 卽 사간(四奸)으로 불렸던 宰相 蔡京, 宦官인 同官과 양진, 그리고 故丘 中에서 特히 故舊는 小說의 처음부터 主要 人物로 登場해 마지막까지 代表的인 惡人으로 描寫되고 있다. 이런 그들의 視角에서는 調整에 對抗해 活動하는 梁山泊의 豪傑들은 民草의 不滿을 代辯하는 民衆 指導者라기보다 不法을 저지른 前科者이면서 天下를 어지럽히는 한낱 盜賊의 無理일 수밖에 없었다.

    양산박 108 豪傑

    16世紀 後半 名臺에 登場한 水滸誌는 著者도 明確하지 않고, 그 版本도 70回分, 100回分, 120回分 等 다양해 처음 小說이 지어진 後 相當한 添削이 있었음을 斟酌할 수 있다. 이 中 基本이 되는 70回分에서는 個別 豪傑이 梁山泊으로 集結하는 過程을 옴니버스 構成으로 獨立的으로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마치 한 篇씩 獨立된 短篇小說처럼 즐길 수 있다.



    그中에서도 水滸誌 最高 豪傑 中의 한 名인 霧淞(武松)李 登場하는 場面은 그의 兄 舞臺(武大)와 兄嫂 반금련(潘金蓮), 그리고 兄嫂의 政府 序文經(西門慶)李 어우러져 흥미롭게 展開되면서 水滸誌 中 가장 재미있는 部分으로 認定받고 있다. 여기에서 序文經과 반금련의 關係는 또 다른 中國의 4代 寄書人 ‘金甁梅(金甁梅)’의 中心 內容을 이루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水滸誌 關聯 內容이 中國 4代 奇書의 折半을 차지하는 셈이다.

    水滸誌 22回分에서 무宋은 小旋風 時辰儀 집에서 水滸誌의 中心人物인 松江을 偶然히 만나 意氣投合한 뒤, 길을 떠나 故鄕의 兄을 만나러 가게 된다. 故鄕으로 가기 위해서는 途中에 警兩强(景陽崗)이라는 險峻한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그 近處에 到達했을 때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침 霧淞은 고개 아래에 있는 酒幕을 發見했다. 그런데 酒幕에는 ‘삼완佛果江(三碗不過崗)’이라는 意味深長한 글이 씌어 있었다. 酒幕의 ‘술 석 沙鉢을 마시면 고개를 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酒幕 主人은 自己 집 술이 鬪病香(透甁香·香氣가 술甁을 뚫고 나갈 程度의 술)으로 불릴 程度로 香과 맛이 좋지만 한便으로는 出門度(出門倒·門을 나가자 마자 쓰러질 程度의 술)로 불릴 程度로 독한 술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내고 마시는 손님이라도 한 사람에게 석 沙鉢 以上을 팔 수는 없다고 미리 다짐을 한다. 그러나 무宋은 석 盞을 마신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더 要求한다. 主人이 挽留해도 소용없었다. 結局 期於이 18沙鉢을 마신 霧淞은 醉氣에 호기롭게 酒幕을 나선다. 그러고는 漫醉 狀態에서 어두운 고갯길을 걷던 中 때마침 나타난 큰 虎狼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이 일은 무宋타호(武松打虎)라는 故事로 오늘날까지 傳해진다. 霧淞의 醉中 武勇談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록 親兄弟이긴 하지만 霧淞과는 달리 못생기고 弱骨이면서 가난한 親兄 舞臺와 再會하고 나서의 일이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兄嫂로 登場하는 妖女 반금련이 마을의 維持 序文經과 눈이 맞으면서 發生한다. 霧淞은 結局 舞臺를 毒殺하면서까지 不倫을 저지르는 반금련과 序文經을 죽인 罪로 盟主로 귀양을 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監獄을 管理하던 典獄(典獄)의 아들 시은의 付託으로 洞네 乾達이자 힘이 天下壯士인 장문신과 對決을 벌이기 위해 快活林(快活林)이라는 곳으로 가는 場面이 나온다. 決鬪 날, 무宋은 채비를 갖추고 떠나기 前 시은에게 쪽紙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무삼佛果網(無三不過望)’이라고 적혀 있었다. 疑訝해하는 시은에게 무宋은 “술이 없이는 싸울 힘과 氣分이 나지 않는다. 快活林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酒幕마다 석 沙鉢씩 술을 마시지 않고는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出發場所人 城門에서 쾌활림까지는 十四오리 거리로, 足히 여남은 個의 酒幕이 있기 때문에 한 酒幕에서 석 沙鉢씩이면 無慮 서른대여섯 沙鉢을 마셔야 된다는 뜻이었다. 시은은 決戰을 앞둔 무宋이 술에 醉해 일을 그르칠까 못내 걱정스러웠지만, 무宋은 보란 듯이 보이는 酒幕마다 들러 술을 마신다. 그러고는 醉한 狀態에서 洞네의 所聞난 歷史 장문신을 腕力으로 거뜬히 무찌른다.

    반금련을 죽이고 귀양 간 霧淞

    그렇다면 무宋이 警兩强 고갯길 앞 酒幕과 快活林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酒幕에서 마신 술은 果然 어떤 種類의 술이었을까? 오늘날 中國 술이라고 하면 누구나 今方 떠올리는 高粱酒, 卽 百株(白酒)였을까?

    기름진 中國 料理에 곁들여 작은 盞으로 조금씩 마시는 獨特한 香의 독한 白晝는 아무도 否認할 수없는 中國 술의 象徵이다. 그러나 悠久한 中國歷史를 통해 白酒와 같은 높은 度數의 술이 中國 社會에 紹介된 것은 뜻밖에도 그렇게 오래前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自然에 存在하는 酵母菌이 과일이나 穀物 속에 있는 黨 成分에 作用해 自然的으로 만들어지는 醱酵酒에 비해, 人爲的인 蒸溜 過程을 거쳐 알코올 濃度가 높은 술을 얻는 蒸溜酒는 人類 歷史를 통해 훨씬 늦게 紹介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黃州의 代表 술인 紹興酒.

    오늘날 볼 수 있는 典型的인 白酒의 境遇, 알코올 濃度가 50度 以上인 製品이 許多하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度數의 술을 만드는 데 必要한 蒸溜 技術은 世界 最大 帝國을 建設한 몽골의 全盛期 때 아랍 世界를 통해 中國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定說이다. 中國 明나라 時節의 이시진이 著述한 有名한 藥學書인 ‘本草綱目(本草綱目)’에서도 ‘蒸溜酒人 燒酒는 過去에는 없었고 元나라 때부터 나타난 술이다. 燒酒를 만들려면 普通 술을 容器에 담아 끓여서 蒸氣가 오르게 해 그릇에 떨어지는 술 방울을 받아 담는다’라고 記述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只今도 볼 수 있는 燒酒고리로 燒酒를 내리는 傳統的인 方法과 正確하게 一致한다. 이 또한 우리나라 燒酒가 高麗 時節 몽골 侵略 當時 몽골軍에 依해 그 製造 方式이 紹介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오늘날 傳統 製造 方式에 依한 生産으로 有名稅를 타는 安東燒酒度 過去 安東에 몽골軍의 兵站基地가 있던 데서 由來했다는 것이 一般的인 解釋이다.

    아랍에서 들여온 白酒

    勿論 一部에서는 間歇的인 資料를 土臺로 中國에서의 蒸溜酒 歷史가 이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主張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 學問的으로 이를 뒷받침할 만한 證據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中國술의 起源에 關해서 이야기할 때 반드시 擧論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義賊(儀狄)이다. 書翰(西漢) 때의 冊인 戰國策(戰國策)에는 “옛날 皇帝(黃帝·中國 傳說上의 賃金)의 딸 義賊이 술을 맛있게 빚어 夏나라 禑王에게 올렸더니, 禑王이 이를 맛보고는 後世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者가 있으리라고 하였다”라고 記述하고 있다. 또 한 名은 夏나라의 다섯 番째 王으로 알려진 杜康(杜康)으로, 只今도 그의 故鄕인 中國 허난(河南)省 뤼孃(汝陽)縣에서는 杜康의 業績을 기린 記念館과 함께 每年 술의 始祖로 모시는 祭祀가 行해지고 있다. 歷史學的 考證 側面에서는, 杜康 쪽이 보다 많은 根據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於此彼 술이라는 것이 특정한 사람의 創意的 發明品이 될 수 없기에 論爭 自體가 意味 없는 일인지 모른다.

    이 때문인지 옛 中國의 代表的 詩人 陶淵明(365~427)은 이 두 名을 엮어 ‘義賊이 술을 만들었고, 杜康은 이를 發展시켰다’라고 나름대로 슬기롭게 이들 關係를 整理하기도 했다. 現在 杜康記念館은 ‘옛 두강이 만든 술은 오늘날의 百株가 아니다’고 明確하게 線을 그었다. 따라서 몽골帝國(1206~1368) 以前의 中國에서는 蒸溜酒人 百株를 마셨던 것이 아니라 度數가 그리 높지 않은, 오늘날의 와인이나 막걸리와 같은 醱酵酒 系統의 술을 마셨던 것이다. 水滸誌의 무宋이 마셨던 술도 그 舞臺였던 北送이라는 時代를 勘案하면 當然히 그런 種類의 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天下의 霧淞이라 한들 오늘날의 高粱酒와 같은 술을 沙鉢로 18盞을 마시고 虎狼이를 때려잡거나, 30沙鉢이 넘는 술에 맨 精神의 天下壯士를 相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술로써 一世를 風靡했던 天下의 二太白(701~762)인들 그의 有名한 詩 ‘월하독작’에서 ‘꽃발 가운데 술 한 缸아리(花間一壺酒) / 함께 한 이 없이 홀로 마신다(獨酌無相親)’를 읊으면서, 그 독한 高粱酒를 혼자서 缸아리째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萬一 그랬다면 詩想이 떠오르기는커녕, 卽時 昏睡狀態로 들어가 生命이 危殆한 地境에 處했을지 모른다.

    또 다른 中國 4代 奇書의 하나인 ‘三國志演義(三國志演義)’에서 有名한 場面 하나를 생각해보자. 羅貫中의 三國志演義는 敷衍說明이 必要 없을 程度로 익히 알고 있는 有名한 小說이다.

    中國 漢나라 末期의 混亂期에서 始作해 새로운 秩序의 主人公이 되기 위해 이른바 三國鼎立(三國鼎立)의 形勢를 만든 魏, 蜀, 五 세 나라를 둘러싼 歷史的 事實을 바탕으로 14世紀에 만들어진 이 長篇小說은 永遠한 베스트셀러로 불릴 程度로 우리나라에서 永續的인 人氣를 끌고 있다.

    그야말로 錚錚한 英雄豪傑들과 指導者들이 登場하는 이 冊의 人物 中에서 斷然 中心에 서 있는 主人公은 桃園結義(桃園結義)로 義兄弟의 緣을 맺게 되는 劉備, 關羽, 裝備다. 그밖에 世 義兄弟에 견줄 만한 스타級 登場人物로는 諸葛孔明, 趙子龍, 曹操, 旅抱 等을 꼽을 수 있다. 앞서 紹介한 水滸誌 登場人物들을 三國志의 英雄들과 比較해본다면, 무宋은 關羽型 人物이고 무宋과 견줄 만한 또 다른 豪傑 임충은 趙子龍型 人物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三國志演義의 수많은 登場人物 中 關羽는 舞踊에서나 그 人品 面에서 可히 他의 追從을 不許할 程度로 獨步的이다. 五官참六場(五關斬六將)의 武勇談을 筆頭로 三國志演義 곳곳에서 그의 活躍은 별처럼 빛난다. 特히 그는 武裝으로서의 出衆한 實力을 넘어 人格的으로도 餘他 將帥들과는 格이 다른 人物로 描寫되고 있다. 오죽하면 後世에 그의 祠堂을 지어 神(關神)으로 모시며 推仰하는 사람들이 只今까지 줄을 짓겠는가. 이런 關羽가 아직 世上에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冊 草飯部 이야기다. 當時 한 王室을 蹂躪하고 있던 童濯에 맞서 元素를 盟主로 한 中國 天下의 諸侯 聯合軍이 對決하는 場面이 나온다. 劉備와 함께 關羽, 張飛도 비록 변변치 못한 地位였지만 聯合軍에 合流하고 있었다.

    火雄의 목을 벤 關羽

    그런데 聯合軍은 死守官(?水關)이란 곳에 이르러 童濯君의 盲腸 火雄에 依해 가로막히고 만다. 사나운 火雄은 聯合軍 將帥들을 秋風落葉처럼 處置하며 聯合軍을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元素는 聯合軍의 諸侯, 將帥들과 對策을 論議하면서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이 자리에 나의 長壽 안量과 문추 中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저까짓 火雄 따위에게 이런 受侮를 當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라고 恨歎하고 있었다. 그러자 當時 마궁수(馬弓手)라는 보잘것없는 職責에 있던 無名의 關羽가 앞으로 나서면서 自己가 火雄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元素의 四寸 아우 元述이 대뜸 “아무리 우리가 이런 處地에 있다고 하더라도 微官末職의 縣令(劉備를 일컬음) 밑에 있는 마궁수 따위를 將帥로 삼아 火雄의 相對로 내보낸단 말입니까?”하고 말하며, 當時 시골 縣令 職에 있던 劉備까지 싸잡아 嘲弄한다. 關羽의 發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座長 元素도 元述의 意見에 同調한다. 이때 張差 三國志演義 내내 關羽와 특별한 因緣이 持續되는 三國志의 또 다른 主人公 曹操가 나서면서 “그의 容貌가 예사롭지 않으니 한番 機會를 주어봅시다”라며 關羽를 거들고 나선다. 이에 關羽度 “火雄의 목을 베어 오지 못하면 저의 목을 바치겠습니다”라며 出戰 意志를 다시 내세운다. 그러자 元素도 마지못해 그의 出戰을 許諾한다.

    여기서 그 有名한 ‘데운 술이 食器도 前에’라는 逸話가 誕生한다. 卽 出戰하는 關羽에게 曹操가 데운 술을 勸하며 “이 술 한 盞을 들고 가시오”라고 하자, 關羽는 “술은 그냥 두십시오. 갔다 와서 마시겠습니다”라며 一旦 辭讓한다. 그러고는 出戰하자마자 瞬息間에 火雄의 목을 베고 온 뒤 그 술을 마시니, 술은 식지 않고 如前히 따뜻한 狀態였다는 것이다.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日本 傳統酒 사케.

    이때 關羽가 마신 술도 三國時代(189~280)의 時代的 背景을 勘案할 때 當然히 醱酵酒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點은 ‘술을 데워 마셨다’는 그 技術이다. 술을 어느 程度 아는 사람이라면 高粱酒와 같은 독한 술을 데워 마신다는 槪念 自體가 매우 語塞하다. 더욱이 關羽가 마신 술이 蒸溜酒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推測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事實 醱酵酒만을 놓고 보면, 술을 따뜻하게 해서 마시는 風俗은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이런 式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世界 各國에서 行해지던 飮用法이었다. 日本의 傳統술인 日本株(사케)는 오늘날 우리에게 데워 먹는 술로는 가장 널리 알려졌다. 勿論 只今도 高級 日本週는 차가운 狀態에서 그대로의 香과 맛을 즐기지만, 추운 겨울날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사케 한 盞은 그 特有의 風靡로 愛酒家들을 사로잡고 있다.

    데워 마시는 사케와 글루바인

    또 獨逸에서 由來된 글루바인(Glu‥hwein, warm wine)은 와인에 各種 香料들과 과일, 그리고 雪糖을 넣은 뒤 데워 마시는 술로, 유럽의 代表的인 ‘데워 마시는 술’이다. 이 술은 英語로는 멀드 와인(Mulled Wine), 프랑스語로는 뱅쇼(Vin Chaud)라고 한다. 主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中心으로 겨울철에 마시는 이 술은 赤葡萄酒를 利用해 만드는데, 最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一部 와인 바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中國에서도 主로 데워서 마시는 有名한 술 種類가 하나 있다. 앞서 三國志演義에서 關羽가 마신 술이 醱酵酒라는 것과 데워서 마셨다는 두 가지 點을 考慮하면 이 술과 거의 같은 形態의 술로 생각할 수 있다. 바로 黃州(黃酒)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中國 傳統술이다.

    黃州는 흰色(實際로는 透明한 色)을 띠고 있어 白晝라는 이름이 붙은 中國 傳統 蒸溜酒에 견주어, 술의 色깔을 勘案해 붙여진 이름이다. 參考로 와인의 境遇 赤葡萄酒의 特徵的인 色깔 때문에 中國에서는 紅酒(紅酒)로 불린다.

    黃州는 찹쌀 또는 차조를 主原料로 만든 醱酵州로서 發效에 보리누룩을 使用해 짙은 黃色을 띤다. 알코올 度數는 같은 醱酵酒인 와인이나 日本 淸酒와 비슷한 14~18% 이고, 맛이 津하면서도 부드러워 各種 料理 맛을 내는 데에 使用된다. 黃州는 그 오랜 歷史와 함께 種類도 셀 수 없이 많지만, 現在는 百株가 워낙 人氣를 끌면서 相對的으로 生産地가 줄어 그 生産量도 함께 줄고 있다.

    黃州 中 가장 有名한 술은 斷然 紹興酒(紹興酒)다. 紹興酒의 生産地인 사오싱(紹興) 玄은 中國 貯藏(浙江)性에 있는 작은 都市로, 歷史的으로는 春秋時代 月(越)나라 水道가 있었던 곳으로 有名하다. 바로 그 有名한 臥薪嘗膽(臥薪嘗膽) 考査의 主人公인 월왕 구천이 그야말로 波瀾萬丈한 歷史를 썼던 곳이다. 월왕 구천이 쓰라린 敗戰 以後 吳王 夫差에게 바쳤던 술이 紹興酒라는 說도 있다. 그렇다면 當然히 臥薪嘗膽 過程에 구천이 온갖 侮辱을 견디면서 復讐의 칼날을 갈며 部下들과 남몰래 마셨던 술도 바로 紹興酒였을 것이다. 사오싱縣은 近代 中國의 大文豪 루쉰(魯迅)을 輩出한 곳으로도 有名하다.

    黃州의 代表 紹興酒

    紹興酒는 이렇게 黃州 中에서 歷史가 가장 오래된 술이다. 찹쌀을 보리누룩으로 발효시켜 사오싱縣 郊外에 있는 若干의 미네랄이 包含된 젠後(鑒湖)의 물로 빚는다. 누룩 以外에 신맛이 나는 材料나 甘草를 原料로 使用하는 境遇도 있다. 製造 方法은 찹쌀에 누룩과 술, 藥을 넣어 발효시키는 複合醱酵法이 主로 使用된다. 色깔은 黃色 또는 暗紅色으로, 오래 熟成하면 香氣가 더욱 좋아져 商品價値가 높아진다.

    紹興酒는 만드는 方法에 따라 원홍주(元紅酒), 街伴奏(加飯酒), 善釀酒(善釀酒), 香雪週(香雪酒) 4가지로 나뉜다. 이 中 원홍주와 街伴奏는 若干 쓴맛이 돌고, 나머지는 단맛이 난다. 원홍주는 紹興酒 全體 生産量의 80%를 차지할 程度로 生産量이 많다. 1979年 全國平柱會議(全國評酒會議)에서 優良株로 選定되기도 했다. 원홍주라는 이름은 술 가마에 붉은 漆을 해 붙여졌다고도 하고, 첫째로 맛있는 술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反面 街伴奏는 그 이름 때문에 飯酒로 마시는 술로 알고 있으나, 事實은 다른 紹興酒에 비해 찹쌀을 10%假量 더 使用하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香雪週는 度數가 20% 程度로 比較的 높으며 그 맛은 달고 香이 津하다. 善釀酒는 원홍주를 2~3年 묵혔다가 빚은 것으로, 옛날 어떤 선량한 老婆가 新鮮으로부터 이 술을 얻었다 해서 이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紹興酒와 關聯해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傳해온다. 옛날 사오싱 隣近에 살던 한 男子가 아내가 아이를 갖자 氣分이 좋아 아이가 태어나면 親舊들에게 待接하기 위해 술을 빚었다. 그런데 期待와 달리 딸이 태어나자 火가 나 술을 마당 한구석 나무 밑에 묻어버렸다. 後날 딸이 총명하게 자라 媤집을 가게 되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親知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옛날 묻어버렸던 술이 생각나 땅을 파보니 아주 맛있는 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술을 ‘뉘얼훙(女兒紅)’이라고 불렀으며 그 後 사오싱 地方에서는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두는 慣習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有名한 紹興酒 뉘얼훙이 誕生한 背景이다.

    이밖에도 紹興酒에는 有名한 花鳥株(花雕酒)가 있다. 이것은 街伴奏의 하나인데, 紹興 地方에서 예로부터 딸을 갖게 되면 街伴奏를 빚어 꽃을 그려 넣은(花雕) 缸아리에 담아두었다가 딸의 婚禮를 치르는 날 祝賀主로 내놓는 習俗에서 由來했다고 한다. 또는 술을 담은 술독에 꽃무늬가 배어나온다는 데서 由來했다고도 한다. 普通 10年 程度 熟成시켜 만든다. 이런 까닭에 술을 얼마큼 묵혔느냐의 差異가 있을 뿐 花鳥週도 街伴奏에 屬한다. 이렇게 해서 特히 오래 묵힌 술은 이름 앞에 ‘千녠(陳年)’이라는 修飾語를 붙인다. 여기서 ‘千(陳)’은 오래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紹興酒는 앞서 말한 대로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것이 그 風味를 鑑賞하는 데 제格인데, 이때 마른 梅實을 술에 넣으면 그 맛을 더 豐富하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紹興酒는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中國집에서는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술이기 때문에, 高粱酒와 같은 白晝 一邊倒의 中國 술에서 벗어나 한 番쯤은 새로운 장르의 中國 술을 接해보는 것도 生活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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