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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健熙 會長은 未來를 내다보는 鬼神이었다”[경제사상가 李健熙 探究 ?]|新東亞

“李健熙 會長은 未來를 내다보는 鬼神이었다”[경제사상가 李健熙 探究 ?]

“소프트웨어 開發者 1萬 名을 키워라”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1-07-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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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事業 成功은 韻(運), 近(根), 둔(鈍)에 달렸다

    • 오늘날 ‘ESG 經營’도 내다본 眼目

    • 늪에서 빠져나오겠다는 切迫感

    • 슈퍼컴퓨터 導入한 事緣

    • 記者들에게 “종이가 없어질 것이다”

    • ‘와이프 膳物 챙겨오라’며 돈을 준 理由

    1978년 해외사업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 회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삼성 제공]

    1978年 海外事業推進委員會에 參席한 李健熙 會長이 이병철 選對 會長의 말을 傾聽하고 있다. [三星 提供]

    그동안 連載한 ‘이건희와 美術’篇을 접고 다시 ‘業의 槪念’ 便으로 돌아가 보자.

    요즘 創業에 對한 젊은이들의 關心이 높은데 果然 事業에서 成功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병철 會長은 自敍傳 ‘湖巖 自轉’에서 이렇게 말한다.

    ‘事業이란 偶然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意欲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제 아무리 收益性이 높은 事業일지라도 그것을 發展 擴張시켜 나갈 能力이 없으면 成功할 수 없다. 時期(時期)와 사람, 거기에 資金이라는 3拍子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成功을 期約할 수 없다.’

    意志나 能力도 重要하지만 事業 成功의 要諦를 ‘때와 사람, 돈’ 이라는 3要素로 簡明하게 짚은 湖巖의 洞察力이 놀랍다. 特히 ‘때’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런데 李健熙 會長은 自身의 冊에서 先親의 이런 생각을 더욱 槪念化시킨다. 일을 對하는 態度와 哲學을 매우 簡明하면서도 本質을 담은 言語로 表現하고 있는데. 注目되는 點은 끊임없는 人間의 努力을 强調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事業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책에서 引用).



    “事業에 成功한 사람을 놓고 簡單히 運 좋은 사람이라고 評하는 境遇가 있지만 事業을 해본 사람은 이 말에 同意하지 않는다. 成功하려면 그에 값하는 남다른 努力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苦難을 克服해야 한다는 事實을 體驗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先親은 事業 成功의 要諦로 韻(運), 近(根), 둔(鈍) 세 가지를 꼽으셨다. 내 나름의 解釋을 보탠다면 運이란 環境 變化에 適應하는 데 成功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運의 裏面에는 남모를 苦惱와 努力이 숨어있다. 斤이란 顧客의 信賴를 얻어 내기 위한 끈氣와 執念을 의미하고, 遯隱 잔꾀를 부리지 않고 基本에 忠實한 姿勢를 의미한다. 나는 先親이 말씀하신 은, 近, 둔을 念頭에 두면서 事業하는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定해두고 있다.

    初心(初心)을 끝까지 維持하는 것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2010년 1월a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2010’을 참관하고 있다. [삼성 제공]

    李健熙 會長을 비롯한 三星 一家가 2010年 1月a 美國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國際家電展示會(CES) 2010’을 參觀하고 있다. [三星 提供]

    먼저 事業 初期에 가졌던 初心(初心)을 끝까지 維持하는 것이다.

    나는 企業人이 暫時의 成功이나 失敗에 흔들리면 큰 成功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事業의 號?不況 때마다 내가 이 事業을 왜 始作했는지를 自問하면서 初心을 다시 새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둘째는 一時的 利益보다는 信用을 얻으려고 해야 한다. 어떤 顧客도 좋은 品質과 親切한 서비스를 願하지 不良品이나 不親切을 願하지 않는다. 그리고 顧客에게 한番 信用을 잃게 되면 아무리 좋은 品質, 싼 價格으로도 발길을 되돌려 놓기 어렵다. 그런 點에서 나는 日本의 企業人들을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顧客을 向해서는 발도 뻗지 않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疏忽히 하는 企業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본다. 技術 發達이 自動化를 實現하고 尖端 컴퓨터가 시스템化를 불러온다 해도 일의 中心은 언제나 사람이다. 나는 經營者로서 사람을 疏忽히 해서 얻은 돈은 無意味하며 부끄러운 돈이라고 생각한다.”

    事業이 힘들 때 왜 내가 이 業을 始作했는지 初心으로 돌아가 보고, 一時的 利益 以前에 顧客에 對한 信用을 먼저 생각하며, 사람을 疏忽히 해서 번 돈은 ‘부끄럽다’고 말하는 故人의 마음가짐은 ‘돈’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업’에 끌려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은, 近, 鈍이 ‘業의 態度’를 槪念化한 것이라면 ‘業의 槪念’은 業의 本質을 把握하라는 槪念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核心 力量에 對한 把握’이다. 그렇다면 ‘核心 力量’이란 무엇일까. 故人의 말이다(책 中 ‘核心力量과 業의 槪念’).

    “核心 力量이란 競爭 會社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固有한 力量을 말한다. 過去 우리나라는 核心 力量이 없이도 經濟 成長을 이룩할 수 있었다. 先進國에 비해 技術 水準은 뒤지지만 낮은 人件費와 저(低)價格의 利點을 살려 輸出을 늘려 왔고 國內 市場이 開放되지 않은 德을 보았다. 이제는 더 以上 이런 方式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最近 數年 동안 國內 製造業 人件費는 生産性을 앞지르며 가파르게 上昇했다. 게다가 先進國의 덤핑 規制는 날로 强化되고 있으며, 國內 市場도 續續 開放되고 있다. 바야흐로 世界的인 無限 競爭時代가 到來하고 있는 것이다. 急速히 進展되는 情報化 趨勢에 따라 머잖아 消費者들은 안房에 앉아서도 世界 곳곳의 商品 情報를 얻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世界 最高 物件을 求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變化에서 最高만이 살아남는 새롭고도 冷酷한 또 다른 競爭 時代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 企業에 要求되는 重要한 것이 바로 競爭社가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固有한 力量, 卽 核心 力量을 갖추는 것이다. 이 核心 力量은 多樣한 製品과 서비스에 活用할 수 있는 것일수록. 그리고 單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持續的으로 適用할 수 있는 것일수록 剛한 競爭力을 發揮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核心 力量이란 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다시 故人의 말이다.

    “核心 力量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硏究 努力과 投資家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重要한 것은 會社가 追求하는 業(業)의 槪念과 會社가 가진 强弱點이 무엇인지를 確實하게 把握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그 業이 나아갈 方向에 맞게 그리고 그 業에 맞는 會社의 强點만을 살려서 제대로 硏究하고 投資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前 나는 삼성그룹의 모든 會社에 業의 槪念을 다시 한番 定立하고 會社의 强弱點을 正確하게 把握해 보라고 指示한 적이 있다. 簡單히 말해 自己 自身의 모습부터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自己 會社의 實相을 제대로 把握해서 限界 事業이나 赤字事業 같은 弱한 部分은 果敢하게 잘라내고 有望한 分野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核心 力量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ESG 經營도 내다보았다

    요즘 企業들마다 親環境(Environment), 社會的 責任經營(Social), 透明한 支配構造(Governance)의 머리글字를 딴 單語 ESG經營이 話頭다. ESG는 個別 企業을 넘어 한 國家의 成敗를 가를 키워드로까지 浮上하는 中이다. 그런데 李健熙 會長은 이미 20餘 年 前부터 이와 비슷한 것을 말하는데, 어떤 當爲나 道德的 名分에서 出發하는 것이 아니라 製品 原價에 對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想像力으로 價値 經營을 說明하고 있어 매우 現實的으로 들린다.

    “企業 經營에서 原價 槪念은 매우 重要하다. 그런데 時代 變遷에 따라 原價 槪念도 傳統的인 製造原價에서 目標原價로, 目標原價에서 未來志向的인 價値原價로 바뀌고 있다. 傳統的인 製造原價 例를 들어보자. 1리터 물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費用이 100원이고 여기에 마진 5원을 붙여 105원에 판다고 하면 製造原價는 100원이다. 마진率 5원은 最小限 그 程度는 남겨야 生存할 수 있다거나 競爭社에서 그 程度 받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을 參照해서 決定했을 것이다. 그러나 製造 原價는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時節에나 적합한 槪念이다. 經濟成長 速度가 鈍化되고 消費者들의 欲求 充足이 重要해지면 原價槪念도 바뀐다. 여기서 目標原價 槪念이 登場한다. 市場調査를 해본 結果 消費者가 願하는 값은 (105원이 아니라) 100원인데 企業立場에서는 最少 5% 利益은 남겨야 生存할 수 있다고 할 때 製品 原價는 95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때 95원이 目標原價가 된다. 그런데 生産 費用이 100원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設計, 製造, 마케팅 等 會社 前 部門이 合心해서 100원의 製造原價를 95원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다시 물을 例로 든다면 生産部署에서 水素와 酸素를 結合시켜 물을 만드는 方式代身 地下水를 퍼 올리는 方式으로 바꾼다든지, 販賣 部署에서 廣告費를 줄이는 等의 方法을 講究해야하는 것이다.”

    故人은 여기서 더 想像力을 擴張시킨다. “앞으로 時代는 目標原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價値 原價‘ 槪念이 製品 販賣價에 適用될 것”이라는 것이다.

    “(價値願哥란) 말 그대로 顧客들이 그 製品에 얼마만한 價値를 認定하는가를 따져 販賣價를 策定하는 것이다. 例를 들어 公害가 甚한 地域에서는 水道물을 그대로 먹을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環境에서 萬若 땅속 깨끗한 물을 퍼 올려 95원에 食水를 만들 수 있는 會社가 있다면 이 會社는 굳이 5% 利益率에 執着할 必要가 없다. 100원이 아니라 200원에 물을 팔아도 顧客들은 기꺼이 그 물을 사먹게 된다. 게다가 물 속에 健康을 增進시키는 미네랄이라도 섞여 있으면 300원을 받아도 無妨하지 않겠는가. 未來 競爭은 이처럼 原價가 아닌 價値의 競爭이다. 같은 材料로 만들더라도 附加價値가 높은 商品을 만들어야 더 높은 價格에 팔 수 있다. 消費者가 願하는 價値가 무엇인지 한발 앞서 알아내고 消費者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物件을 만든다면 그 企業은 原價 負擔에서 어느 程度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내건 ‘價値 經營’이야말로 요즘 말하는 ESG와 相通하는 槪念 아닌가. 親環境的이고 社會的인 責任感을 갖고 支配構造까지 透明한 企業 活動을 消費者들에게 알리고 說得할 수 있다면 該當 製品은 原價 負擔에서 자유로운 時代가 왔으니 말이다.

    늪에서 빠져나오겠다는 切迫感

    李健熙 會長은 纖維(제일모직)나 雪糖(제일제당)에 集中됐던 三星의 核心力量을 電子業으로 바꾸었다. 就任 直後 第2創業을 宣言하면서 ‘管理의 三星’을 ‘技術의 三星’으로 바꾸겠다면서 더 以上 投入과 算出에 集中하는 리더십은 안 된다는 거였다. 1993年 1月 社長團 會議에서 한 말이다.

    “지난 3年間 不景氣가 왔기 때문에 景氣 사이클上 好景氣가 올 것이다. 모든 資金과 人力을 技術 投資에 集中하라. 그동안에는 三星의 技術力이 弱했기 때문에 팔고 싶어도 팔 것이 없었고 具色도 안 맞았다. 好景氣가 오지 않아도 技術 投資는 經營에 繼續 남는 것이다. 언제 해도 해야 되는 것이고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늪에서 빠져나가겠다는 切迫한 생각으로 해보자.”

    이어 條目條目 具體的인 指示를 내린다.

    “重裝備의 境遇 油壓器 程度의 消極的인 國産化로는 안 된다. 各種 輸入 部品을 細密히 分析해서 積極的으로 國産化하라. 지게車의 境遇 現在 國産化率이 70%인데 95%까지 大膽하게 올려라. 이런 努力이 없으면 永遠히 國際 競爭力을 가질 수 없고 언제 會社 門을 닫느냐 하는 것만 決定할 일이 남게 된다. 公害 問題로 電氣 動力의 重要性이 커지고 있다. 電氣部分 國産化 等 이것저것 자꾸 저지르고 키워라…상용차를 國産化하는 過程에서 赤字가 났다고 너무 神經 쓸 일 아니다. 經營을 잘못했다고 詐欺 죽을 必要 없다. 어떤 面에선 勇氣 있고 잘한 것이다. 向後 몇 年間 赤字를 甘受 하더라도 技術이 蓄積 發展되고 더 以上 日本에 依支하지 않을 程度가 될 수 있도록 國産化에 더 神經 쓰라.”

    李 會長의 技術 重視 宣言은 어떤 面에서는 旣存 리더십에 對한 斷絶을 의미했다. 그것은 곧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아버지 리더십에 익숙했던 사람들과의 斷絶이기도 했다. 조용상 前 三星JAPAN 代表理事의 말을 곱씹어보면 이런 雰圍氣가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저는 오리지널 ‘管理 出身’이란 프라이드가 剛했습니다. (三星 內 管理 排出의 産室인) 삼성물산이 먼저고 半導體나 電子는 ‘세컨드 컴퍼니’ 程度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會長이 就任하면서 그룹 中心 業種을 物産이 아닌 電子로 擇했습니다. 管理部署의 힘을 빼고 戰略·마케팅·營業 部分에 힘을 실어준 거죠. 世界的인 企業을 만들려면 世界的 水準의 補償을 해야 한다면서 몇 百萬 달러씩 들여 이 分野 人材를 데려오고 破格的인 褒賞을 했습니다. 旣存 秩序에 익숙해있던 사람들 中에는 當然히 배 아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슈퍼컴퓨터를 導入한 事緣

    박정옥 前 에스원 代表는 삼성전관(三星SDI 前身)에서 綜合硏究所腸, 三星 祕書室에서 技術팀長 等을 歷任하면서 三星의 技術 發展을 함께한 산 證人이다. 瞬間受賞方式 브라운管을 直接 開發한 엔지니어이기도 한 그는 三星의 成長 原動力은 李會長의 技術 重視 經營이었다고 斷言한다.

    “會長은 ‘技術, 技術’을 외쳤지만 職員들이 잘 따라 오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는 날, 아예 祕書室에 技術팀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品質 安全팀, 電算팀, 硏究開發팀 等으로 흩어져 있던 組織을 統廢合해 技術者들을 한 곳으로 모은 거죠. 이때 진대제, 송문섭, 장준호 等 美國 스탠포드大 出身의 莫强 멤버들이 모여 들게 됩니다.”

    그는 李會長의 新經營 宣言 2年 前인 1991年부터 祕書室 技術팀長으로 일했다.

    “會長은 무엇보다 日本을 따라 잡기 위한 實踐 事項을 整理하라고 指示했습니다. 技術 水準을 빨리 先進化시키기 위한 評價와 豫測을 强化하고 生産性을 條目條目 따져본 뒤 選擇과 集中 戰略을 폈습니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行動으로 보여준 거죠.”

    그러면서 會長의 代表的인 實踐 事例로 ‘슈퍼컴퓨터 導入’을 들었다.

    “當時 國內에 있던 슈퍼컴퓨터는 氣象廳에 하나, 무슨 大學校에 하나 두 臺 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들여오라고 한거죠. 막상 들여오자 어떻게 活用하라는 특별한 指示나 注文도 없이 ’삼성종합기술원에 갖다 주라, 갖다 주면 잘 갖고 놀 것이다' 라고만 하셨습니다. 會長의 그런 모습은 職員들에게 最大限 自律性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박정옥은 會長이 아예 1991年 3月부터는 新任 任員들에게 技術 重視 經營 敎育을 시키기도 했다며 이렇게 傳했다.

    “技術을 經營의 核心要素로 認識해야 한다면서 ‘비(非)技術者는 技術을 알고, 技術者는 經營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落後된 技術 水準을 早期 先進化하는 것, 이게 經營의 最優先 課題이며 이것이야말로 技術 重視 經營이라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技術者들을 끊임없이 督勵했습니다. ‘99.999%에 滿足해서도 안 되고 100%여야 된다, 99%까지 왔으니까 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프라이드가 없는 사람들이다. 自尊心이 있으면 그럴 수가 없다’면서 三星의 技術者로서 自負心을 가져야 한다고 數次例 當付했습니다.”

    그는 會長이 稱讚이나 叱責보다는 ‘더 나아가라’는 것을 强調했던 走馬加鞭(走馬加鞭)型 리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1992年度에 1社1品에 對한 報告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라도 世界 市場을 席卷할 수 있는 超一流 商品을 만들라'는 會長님 말씀에서 始作된 것이었지요. 各 社別로 報告가 다 끝난 後에는 '各 事業本部가 1個 以上 戰略 課題를 만들라’는 새로운 指示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當初 19個였던 課題가 65가지로 늘어났지요. 當時 報告를 모두 들으셨던 會長께서 叱責보다는 追加를 하거나 修正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준 일이 只今도 생생합니다.”

    李 會長은 平素에 ‘根據 없는 두려움과 利己主義 때문에 또는 現實性이 없다는 理由만으로 健全한 提案과 建議를 無視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技術者들의 아이디어를 督勵했다. 그의 冊에 나오는 ’退溪學의 再照明‘이란 글이다.

    “朝鮮中期 學者 退溪 李滉 先生은 國力을 키우기 爲해 오늘날 高速道路 槪念인 新作路(新作路)를 全國에 걸쳐 東西로 다섯 個, 南北의 세 個씩 만들 것과 집집마다 소를 두 마리씩 기를 것을 朝廷에 建議했다. 當時 朝廷의 모든 大臣들은 한결 같이 反對했다. 큰 길을 내면 오랑캐가 쳐들어오기 쉽다는 消極的이고 敗北主義的인 理由에서였다. 萬一 그때 調整이 退溪 先生의 提案을 받아들였다면 우리 歷史가 크게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큰 길을 내려면 大型 建設?土木 裝備가 必要하고, 그런 裝備를 만들기 위해서는 强한 쇠를 많이 쓰게 되니까 鐵鋼業이 發達했을 것이고, 그 結果 兵器를 만들 能力이 생겨 壬辰年에 始作된 戰爭에서 日本에 秒前부터 그토록 無慘히 當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鐵器가 發達하면 國土 開發과 營農技術度 發展하게 되니 農業生産量이 增大했을 것이고 輸送手段이 發達하고 큰 길을 따라 物資 輸送이 원활해져 經濟가 크게 發達했을 것이다. 소를 기르게 되면 飼料 生産과 貯藏法 뿐 아니라 優生學, 獸醫學 等이 發達하면서 人間과 動物의 共生이라는 共同體 原理가 社會全般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더구나 소를 많이 기르려면 사람들이 말을 타게 되고 쉴 곳을 위해 그늘이 必要하니 植木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과 소가 所得을 가져와 牧畜業이 復興할 뿐만 아니라 展示에는 騎馬兵을 만들어서 戰鬪力이 높아졌을 것이다.

    退溪學은 나라를 튼튼히 하고 國民 經濟를 살찌우는 實用的인 學問으로 現實을 밝혀주는 우리 固有의 資本主義 原理라고 할수 있다. 이런 祖上의 智慧가 있는데도 우리는 모든 것을 자꾸만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 國家가 一流가 되기 위해서는 部(富)와 江(强)만 갖고는 안 되며 그 社會를 支撐하는 指導的 原理가 있어야 한다. 特히 새로운 世紀로 넘어가는 時期에는 知覺 變動에 比喩될 程度의 變化가 닥치는 만큼 이를 受容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要求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退溪學을 새롭게 照明하고 社會全般에 照明해볼 必要가 있다. 우리는 技術開發에 많은 投資를 하고 있고 經濟發展이 必要하다고 하면서도 隱然中에 技術者를 ‘장이’로, 商人을 ‘장사꾼’으로 가벼이 여기고 있다. 아직도 士農工商(士農工商)의 序列意識이 뿌리깊기 때문이다. 이러한 思考方式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技術과 經濟가 主導하는 國際社會에서 더 以上 발돋음하기가 어려워진다.

    國際社會에서는 技術이 뛰어난 나라가 큰소리치며 떵떵거리고 있고 장사 잘 해서 돈 많이 번 나라가 經濟는 勿論 政治까지 主導한다.

    退溪 先生 亦是 이 時代에 살아있다면 ‘新(新)士農工商’을 얘기했을 것이다. 社(士)는 水準 높은 理論으로 든든한 받침이 되어 주고 弄(農)은 豐盛한 收穫으로 國民의 힘이 되어 주면 공(工)은 좋은 技術로 사람들이 便히 살아가는 物質的 環境을 만들어 주고 賞(商)은 깔끔한 매너로 國際社會를 멋지게 리드해 나가지 않았을까.”

    2011년 9월 22일 삼성전자 반도체 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메모리 16라인 가동식’에서 이건희 회장이 16라인에서 생산된 ‘1호 반도체 웨이퍼’를 전달받고 있다. [삼성 제공]

    2011年 9月 22日 三星前者 半導體 나노시티 火星캠퍼스에서 열린 ‘메모리 16라인 稼動式’에서 李健熙 會長이 16라인에서 生産된 ‘1號 半導體 웨이퍼’를 傳達받고 있다. [三星 提供]

    記者들에게 “종이가 없어질 것이다”

    李 會長의 1社1品 擴大는 다양한 成果로 이어졌다고 한다. 박정옥 前 에스원 代表는 이렇게 말한다.

    “過去 祕書室에는 技術上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對象(大賞)은 半導體가 獨食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會長의 1社1品 擴大 指示가 있었던 1992年에 처음으로 通信 分野가 TDX 交換機로 大賞을 받았습니다. 이런 雰圍氣에 힘입어 三星 코닝의 퓨전글라스, 完全平面 TV와 같은 世界 最初 製品이 誕生한 거죠. 그로부터 딱 10年 뒤 ‘보르도 TV’가 世界 市場을 席卷하게 된 것도 다 그런 背景이 있었죠. 1社1品 政策이 빛을 發하면서 그룹 體質이 完全히 技術 重視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朴 前 代表는 “會長이 未來를 내다보는 眼目을 생각하면 ‘鬼神이었다’라고 밖에 表現할 수 없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벤처業體마다 開發者 確保 競爭이 熾烈한데 이미 30年 前인 그 時節에 ‘소프트웨어 開發 人力 1萬 名 育成’을 내걸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뽑으라는 具體的인 指示까지 했는데 ‘專攻을 數學이나 電子, 統計에 制限하지 많고 哲學 專攻者도 좋다. 그 사람 適性과 맞기만 하면 된다’거나 ‘男子만 限定하지 말고 女子도 뽑아라, 固陋한 생각과 偏狹한 視角으로 開發者 1萬 名 育成은 不可能하다’고 했습니다.”

    李健熙 會長은 그 當時부터 일찍이 디지털 마인드로 武裝된 사람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1991年度부터 '디지털을 經營學的 常識으로 여기고 槪念을 把握해야 한다'는 注文을 했습니다. 中央日報 任員들을 모아 놓고는 '종이가 없어진다는데 準備는 하고 있는가?' 물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當時에는 디지털 槪念을 紹介한 書籍조차 全無한 時節이었습니다. 唯一한 冊이 延世大 박규태 敎授라고 電子工學 分野 元老가 쓴 '디지틀 工學'이었는데 '디지털'李 아닌 '디지틀'로 題目이 나올 程度로 生疏한 槪念이었죠.

    李健熙 會長이 하도 技術, 技術을 强調하니 제가 그 冊을 求해 敎育을 시켰던 記憶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正確히 10年이 지난 時點에서 디지털이 꽃을 피웠으니 그 程度 眼目이라면 ‘鬼神級 레벨’ 아닌가요.”

    故人은 實際로 生前에 “디지털 技術에 適應하지 못하면 個人도 企業도 國家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글 ‘디지토피아’는 20餘 年 前에 쓰여진 것이라는 것을 勘案하면 다시 한番 豫測力에 놀라게 된다.

    “1970年代에 바늘 代身 數字로 時間을 나타내는 電子時計를 차고 다니는 것이 流行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電子時計 程度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디지털 製品의 洪水 속에서 살고 있다. 컴퓨터는 이미 日常用品이 됐고 레코드板은 CD로 바뀌었으며 液晶 TV까지 登場했다.

    디지털 技術은 連續的인 電氣波로 表現되던 아날로그 信號를 0과 1의 비트(bit)情報로 表現하는 尖端 電子技術이다. 모든 情報를 0과 1로 標示하므로 混亂의 素地가 없다. 그만큼 분명하고 正確하다. 이를 電話機에 活用하면 音質이 깨끗하고 TV에 活用하면 音質과 火傷이 깨끗하다.

    뿐만 아니라 製品의 槪念 自體를 바꾸기도 한다. 只今까지 寫眞은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被寫體를 찍은 後 寫眞館에서 印畫해서 앨범에 保管하는 것이 常識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技術을 카메라에 應用하면 寫眞을 디스켓에 保管하고 컴퓨터를 통해 얼마든지 編輯이 可能하고 出力도 자유롭다. 디지털 카메라 外에도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디지털 TV, 知能型 自動車 等 디지털 技術을 活用할 수 있는 領域은 無窮無盡하다.

    디지털 文明이 우리 生活에 끼치는 影響은 實로 엄청나다. 過去에는 物件을 사려면 市場에 가야했고 골프 練習을 하려면 골프場에 가야 했다. 이제는 이런 常識이 흔들리고 있다. 컴퓨터 畵面에 떠오르는 物件들을 구경한 다음 選擇키만 누르면 市場에 가지 않고도 物件이 配達되어온다. 室內에서 스윙만 해도 푸른 잔디 위를 날아가는 흰 공을 볼 수 있다. 집에 있어도 會社에서 일어나는 모든 業務를 체크할 수 있고 業務結果는 通信網을 통해 보내면 된다.

    只今까지 갖고 있던 時間과 空間에 對한 槪念도 바꾸어야 한다. 다가올 未來에는 假짜가 眞짜처럼 느껴지는 假想의 世界에 살게 될 것이다. 얼마 前부터 우리 社會에 불고 있는 인터넷 烈風은 그것을 可能하게 하는 代表的 手段이다. 未來는 디지털이 만드는 유토피아, 卽 ‘디지토피아(digitopia)’라 斷言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핑크빛 ‘디지토피아’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只今 世界 各國은 自國의 디지털 技術과 製品을 世界 標準으로 만들기 위해 熾烈한 角逐戰을 展開하고 있다. 世界 有數의 電子業體들度 서로 便을 달리하여 多國籍 聯合軍을 構成하고 生死를 건 技術開發, 製品 開發 競爭을 벌이고 있다. 우리에게 디지털 社會는 엄청난 再跳躍의 機會를 가져다 줄 것이 틀림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나마 1萬 弗 所得을 可能케 한 産業時代의 競爭力마저 無用之物로 만드는 威脅이 될 수도 있다.

    過去 産業時代의 우리 經濟 發展 戰略은 先進國으로부터 斜陽 産業을 引受하고 技術을 移轉받아 模倣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技術隔差가 20年以上 나는 永遠히 뒤쫓아가는 後發國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多幸히 디지털 分野는 아직 未開拓 狀態이고 比較的 先進國과 技術隔差가 그리 크지 않은 分野이므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디지털 先進國 進入도 不可能하지는 않다고 본다. CDMA 等 디지털 分野에서 몇가지 世界를 先導하는 技術은 이러한 展望을 더욱 더 밝게 해준다.

    機會는 變化를 先占하고 맞이할 準備가 되어 있을 때 찾아오고 주어진다. 우리도 디지털 時代의 勝者가 되기 위해서는 只今부터 디지털 産業을 國家 戰略産業으로 選定하고 그 育成에 國力을 集中해 나아가야 한다.”

    한便 朴 前 代表는 이 대목에서 會長의 人間的인 모습도 傳하고 싶다고 했다.

    “會長은 손님이 있는 境遇만 除外하고 팀長들에게 언제든 房에 들어와 ‘거짓말 말고 있는 대로 느낀 대로 이야기 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하진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따뜻하고 情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特히 記憶에 남는 건 海外 出張 갈 때 人事를 드리러 가면 꼭 와이프 膳物을 챙겨오라고 1000달러, 2000달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條件이 하나 붙었죠. ‘電子製品 中에 가장 탐나는 것으로 사고 그 理由를 내게 說明하라’는 거였습니다. 歸國해서 사온 膳物을 보여드리면 ‘잘 했다’라든지 ‘이 製品은 더 알아보라’는 講評을 하기도 했습니다. 膳物 살 돈을 주시면서도 그냥 하시는 게 아니라 人心도 쓰시고 일도 시키고 한 거죠(웃음).”


    #經濟思想家李健熙 #未來를보는귀신# #ESG經營 #종이가없어질걸 #新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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