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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尹汝貞의 首相에 拍手칠 資格이 없다|신동아

우리는 尹汝貞의 首相에 拍手칠 資格이 없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因襲的 女性嫌惡의 ‘生存者’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basil83@gmail.com

    入力 2021-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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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카 거머쥔 完璧한 演技者

    • 가시밭길의 이름, 家父長制

    • ‘惡女 張禧嬪’, 廣告에서 잘리다

    • ‘길티 플레져’와 國뽕 스민 호들갑

    • 수많은 ‘尹汝貞들’에게 보내는 拍手

    뷰파인더는 1983年生 筆者가 陣營 論理와 묵은 觀念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時代 診斷書’입니다.

    배우 윤여정이 4월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레드카펫에 올라 웃음 짓고 있다. [AP 뉴시스]

    俳優 尹旅程이 4月 26日(韓國時間) 美國 캘리포니아州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第93回 美國 아카데미 施賞式場에서 레드카펫에 올라 웃음 짓고 있다. [AP 뉴시스]

    온 나라가 尹汝貞 烈風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스카賞 受賞이라는 傾斜가 벌어졌으니 어찌 보면 當然한 일이다. 現地人처럼 매끄러운 發音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을 正確하게 또박또박 傳達하는 ‘尹汝貞式 英語’도 話題다. 德分에 적잖은 사람이 ‘英語 울렁症’에서 벗어나 힐링을 맛보고 있다. 글렌 클로즈 같은 大俳優와 맞붙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韓國의 ‘할머니’ 役割로 오스카 女優助演賞을 받았으니 이런 快擧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反應들은 어딘가 不便하다. 俳優 尹汝貞의 受賞을 祝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只今 쏟아지는 搖亂한 讚辭가 애써 가리고 덮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 社會는 그에게 未安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俳優로서 오래도록 成功的인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그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는 한 사람의 俳優이자 女性으로 險難한 가시밭길을 通過했다. 가시밭길의 이름은 大韓民國 家父長制와 保守的 性役割, 그리고 女性嫌惡였다. 尹汝貞은 設令 오스카를 받지 못했더라도, ‘유별난 女子’를 向한 우리 社會의 攻擊性을 穩全히 받아내고 克服했다는 것만으로 拍手 받아 마땅한 勝利者다.

    ‘惡女 張禧嬪’과 理由 없는 敵愾心

    尹汝貞은 大學校 1學年이던 1966年 탤런트 公採 試驗에 合格해 演技者의 길에 들어섰다. 以後 김기영 監督의 1971年 作 ‘化女’의 主演을 맡아 濃艶하면서도 强烈한 演技를 펼치며 靑龍映畫祭 女優主演賞을 受賞했다. 1946年生 尹汝貞은 고작 스물다섯 나이에 韓國 最高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事實이 있다. 尹汝貞은 配役에 對한 理解, 表現力, 瞬發力 等 모든 分野에서 빠질 데 없는 完璧한 演技者이지만, 그間 맡아온 主要 役割은 無難한 ‘好感型’이 아니었다. 大體로 ‘演技派’에게 어울리는 무언가로 看做되는 役割, 많은 境遇 惡役이었다.

    ‘化女’에서 尹汝貞은 作曲家 동식의 집에 下女, 卽 食母로 들어가 劫奪을 當하고 동식의 아내에 依해 强制로 遺産을 當한 後 復讐劇을 펼친다. TV에서의 히트作 ‘張禧嬪’ 또한 마찬가지다. 張禧嬪이 어떤 캐릭터인지 모르는 讀者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惡女 張禧嬪’의 典範을 만든 사람이 바로 尹汝貞이다.

    청춘스타로 잘 나가던 尹汝貞은 갑자기 미움의 對象이 됐다. 當時 尹汝貞은 淸凉飮料 오란氏의 廣告 모델이었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가 있었는데, 눈에 구멍이 뚫리는 式의 ‘테러’가 恣行됐다. 及其也 尹汝貞은 廣告 모델에서 잘렸다. 本人이 藝能 프로그램에 出演해 證言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사람들이 放送局으로 쳐들어왔고 文房具 主人은 物件 같은 것을 던지기도 했단다.

    이 이야기를 果然 ‘뭘 몰랐던, 淳朴했던 時節’의 追憶으로 置簿할 수 있을까. 勿論 尹汝貞은 그런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本人이 ‘괜찮다’고 하는 것과, 우리가 ‘正말 괜찮은 일이었구나,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儼然히 다르다. 그 後로도 尹汝貞의 삶은 平坦치 않았다. 그를 向해 理由 없는 敵愾心을 表出하는 大衆 亦是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音樂茶房 ‘쎄씨鳳’의 멤버들과 어울려 멋진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 中 한 사람인 歌手 조영남과 戀愛를 거쳐 結婚까지 했다. 조영남은 神學을 工夫하기 위해 美國으로 留學을 떠났고 尹汝貞度 그 길에 함께 했다.

    13年의 結婚 生活은 離婚으로 끝났다. 歸國한 그는 두 아들을 養育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熱心히 延期할 수밖에 없었다. 大衆은 反撥했다. ‘어떻게 離婚한 女子가 TV에 出演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尹汝貞은 그 反撥을 穩全히 實力으로 突破했다. 그 過程에서 드라마 作家 김수현이 매우 큰 役割을 했다.

    尹汝貞의 歸國 後 첫 出演作은 박철수 監督의 ‘어미’(1985)였다. ‘어미’는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 때문에 더욱 有名한 作品이다. 시놉시스를 한 마디로 要約하면 ‘悲劇으로 끝나는 韓國版 테이큰’이다. 라디오 進行者이며 著名한 作家인 洪 女史(윤여정 分)는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맘이다. 高等學生인 딸은 엄마가 홀아비인 崔 敎授(신성일 분)를 만나 密會를 즐기는 동안 人身賣買 組織에 拉致당한다. 딸은 강간당한 後 性賣買 業所로 팔려가고, 그런 딸을 찾기 위해 어머니는 殺人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딸은 衝擊을 克服하지 못해 自殺하고, 어머니는 世上을 向한 復讐劇을 벌인다.

    正直하게 말하자면 ‘어미’는 그리 좋은 作品이 아니다. 設定과 脚本, 演技 모두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煽情的인 演出이 沒入을 깨뜨린다. 김수현 本人부터가 이 作品을 劇場에서 본 後 매우 激忿했다. 以後 김수현은 박철수와 絶對 協業하지 않겠다고 宣言했고 그 말을 지켰다.

    김수현이 擇한 最適의 俳優

    1995년 11월 18일 첫 방영된 KBS2 ‘목욕탕집 남자들’은 김수현 작가가 대본을 썼다. 극중에서 윤여정(왼쪽)과 고두심이 대화하고 있다. [KBS 제공]

    1995年 11月 18日 첫 放映된 KBS2 ‘沐浴湯집 男子들’은 김수현 作家가 臺本을 썼다. 劇中에서 尹汝貞(왼쪽)과 고두심이 對話하고 있다. [KBS 提供]

    代身 김수현의 파트너로 登極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尹汝貞이었다. 演技 잘 하고 卓越한 臺詞 傳達 能力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좋건 나쁘건 大衆의 關心을 한 몸에 얻고 있는 스타. 하지만 그에게 끼얹어진 汚名 아닌 汚名 때문에 다른 作家나 演出者들이 선뜻 데려가지 못하는 問題的 人物. 하지만 김수현은 KBS2 ‘沐浴湯집 男子들’, MBC ‘사랑과 野望’, ‘사랑이 뭐길래’ 等 主要 히트作에서 尹汝貞에게 좋은 配役을 連이어 맡겼다.

    重要한 건 各各의 作品에서 尹旅程이 遂行한 役割이다. 媤어머니에게 대드는 철모르는 로맨티스트 둘째 며느리(沐浴湯집 男子들), 女主人公을 拔擢해 俳優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당찬 女性 디자이너(사랑과 野望),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家父長的인 집에 시집가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親庭엄마(사랑이 뭐길래).

    여기에는 하나같이 共通點이 있다. 韓國 社會가 當然하다고 여기는, 좋아하는, 異議 없이 받아들이는 ‘女性의 役割’로부터 어딘가 벗어난 것이라는 點에서 그렇다. 女性에 對한 立體的 視角을 드러내기 위한 最適의 俳優가 바로 尹汝貞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수현은 大衆이 보는 드라마를 쓴다는 自意識을 한 番도 놓은 적이 없다. 結論에 다다르면 社會 通念을 正面으로 거스르는 代身 和解와 統合, 或은 縫合을 選擇했다. 特히 큰 成功을 거둔 홈드라마에서 그런 傾向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不拘하고, 김수현 드라마의 登場人物들은 當時 韓國 社會의 平均보다는 한 발자국, 最小限 半 발자국 程度는 앞서 나가는 認識을 보여줬다. 그런 까다로운 役割을 遂行하는 게 尹汝貞의 主要 任務였다.

    2007年 SBS에서 放映된 ‘내 男子의 女子’에 對해 當時 주철환 이화여대 言論弘報映像學部 敎授와 유지나 동국대 映像映畫學科 敎授가 나눈 對談을 보면 그 點을 分明히 알 수 있다. 柳 敎授의 말을 들어보자.

    “김수현은 過去에 보여줬던 挑發性에서 나아가, 이番 드라마에서는 結婚制度, 卽 家父長的 一夫一妻制의 矛盾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親舊의 男便과 바람이 난) 김희애가 ‘셋이 같이 살자’고 말하는 데서 端的으로 드러나는 거죠.”

    “映畫로 比較하면 김수현 程度의 女性意識이면 相當한 것입니다. 박철수 監督이 映畫化한 ‘어미’만 봐도 그렇죠. 페미니즘 텍스트 같아요.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페미니즘 意識은 더 剛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慇懃슬쩍 縫合하는 마무리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어미’가 言及되고 있다는 點에 注目해볼 必要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어미’는 김수현의 스크린 復歸作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尹汝貞은 김수현과 짝을 이뤄 韓國 社會가 女性에게 强要하는 平面的인 役割을 克服해나갔다. 映畫나 드라마 속 캐릭터로도 그랬고, 現實 속의 한 人間으로도 그랬다.
    勿論 그 過程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張禧嬪’ 時節처럼 여기저기서 봉변당하는 水準은 아니었지만, 尹汝貞을 바라보는 大衆의 視線은 그리 곱지 않았다. 너무도 재미있는 김수현 드라마에서, 주어진 役割을 너무 잘 해내기에, 안 볼 수가 없었을 뿐이다. 이렇게 尹汝貞은 往年의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中堅 俳優로서 自身의 立地를 다시 한 番 確保해갔다.

    社會가 즐겨오던 ‘길티 플레저’

    4월 29일 서울 노원구의 한 영화관 전광판에 영화 미나리 포스터가 나오고 있다.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뉴스1]

    4月 29日 서울 노원구의 한 映畫館 電光板에 映畫 미나리 포스터가 나오고 있다. 俳優 尹旅程이 오스카 女優助演賞을 受賞하면서 映畫에 對한 關心도 다시 높아지는 雰圍氣다. [뉴스1]

    2021年 4月, 尹汝貞은 오스카 女優助演賞 受賞이라는 偉業을 達成한다. 그러자 한 言論에서 그의 全 男便인 조영남을 인터뷰했다. 조영남은 ‘대단한 일이다, 바람 피워서 이혼당한 男便에 對한 最高의 復讐’라는 式의 코멘트를 했고, 그것이 言論에 報道되면서 다시 한 番 輿論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勿論 조영남의 저 發言은 주책없는 소리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前後 脈絡 自體가 너무도 異常하다. 尹汝貞을 ‘조영남의 前 否認’으로 바라보고, 離婚했다는 事實을 罪惡視하고, 甚至於 數十 年이 지난 後에도 이야깃거리로 삼던 것은 조영남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社會 全體가 그런 式이었다. ‘쎄씨鳳’ 會員들의 音樂이 다시 流行하고, 及其也 2018年 映畫 ‘쎄씨鳳’이 開封할 當時를 떠올려보자. 그 時節의 追憶談이 입에 오르며 尹汝貞은 繼續 願치 않는 脈絡으로 召喚됐다. 大衆 亦是 그런 ‘追憶 팔이’를 거리낌 없이 즐겼다.

    尹汝貞을 두고 한 俳優와 演技를 이야기하는 代身 그의 失敗限 結婚을 論하며 시시덕거리던 것은 우리 社會 全體가 즐겨오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어떤 行動에 罪意識을 느끼면서도 結局 즐기게 되는 心理) 아니었던가. 다시 한 番 말하지만 오스카賞 受賞에 對한 조영남의 發言이 마뜩찮은 것과는 別個다. 조영남 한 사람만을 극렬히 非難하면서 마치 自身은 潔白한 양 서둘러 알리바이를 만드는 듯한 모습에 외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나뿐인가.

    只今 나는 尹汝貞이라는 훌륭한 俳優를 두고 女性嫌惡의 ‘犧牲者’라는 式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本人도 그렇게 認識되는 것을 願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女性嫌惡의 ‘生存者’라는 點만큼은 분명하다. 콧대 높은 女子, 똑똑한 女子, 한 마디賭地지 않는 女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지고 드는 女子. 그런 女子가 人生 안 풀리고 亡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血眼이 된 우리 社會의 現 住所를 잊어서는 안 된다.

    尹汝貞은 늘 그랬다. 韓國 社會가 女性에게 强要하는 高踏的이고 因襲的인 女性像을 잘 알았다. 그러면서도 反對 되는 길을 擇해왔다. 그의 人生은 그로 인해 順坦하게 흘러오지 않았지만 單 한 番도 自身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71年 3月 11日, ‘化女’로 靑龍映畫賞 女優主演賞을 受賞한 後 ‘朝鮮日報’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그대로 한 平生을 살아온 것이다.

    順從에서 벗어난

    “저는 決코 美人이 아니죠, 김기영 先生님도 저를 퍼니페이스(funnyface)라고 하셨는데 저 亦是 同感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驛은 根本的인 女性의 魅力, 純宗이나 美的인 感覺을 벗어난, 웬만해선 妥協이 잘 안되는 그런 性格을 가진 役割입니다.”

    尹汝貞에게 眞正 尊敬心을 표하고 싶다면, ‘國뽕’ 中心의 過度한 호들갑을 멈추는 게 어떨까. 代身 大衆의 偏見과 憎惡를 딛고 스스로를 表現하고 있는 女性 藝術家들을 좀 더 열린 視線으로 바라보고 包容할 수 있어야겠다. ‘47年生 尹汝貞’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尹汝貞들’을 向해 힘찬 祝賀와 應援의 拍手를 보낸다.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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