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工作 計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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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工作計劃 1980年 3月 保安司 言論班長 이상재 가 '團結된 軍部의 基盤을 主軸으로 持續的인 國力 伸張을 위한 安定 勢力을 構築'이라는 目的으로 全斗煥 保安司令官의 決裁를 받아 實行한 言論 懷柔 工作 計劃이다. 이는 新軍部 의 執權 過程 途中 言論을 掌握하기 위한 計劃으로 活用됐다.

背景 [ 編輯 ]

新軍部는 1980年 初부터 執權을 위해 言論을 活用할 計劃을 構想했다. 保安司令部 는 1980年 2月 1日頃부터 保安司에 情報處를 新設하고 情報處 內에 言論關係 業務를 擔當하는 言論界를 두는 한便, 이와는 別途로 李商在를 責任者로 하는 이른바 ‘言論半’을 稼動했다. 1980年 3月에는 言論에 對한 懷柔와 工作을 核心으로 하는 'K-工作計劃'을 만들었다. 그 實行을 위해 4月 전두환 保安司令官의 사인을 받고 別途의 言論操縱半(對策班)을 構成했다. [1]

言論半(言論操縱半)의 主要 業務는 檢閱 操縱 業務와 工作 業務로 나뉜다. 檢閱 操縱 業務란 視聽 檢閱團에서 每日 實施하는 言論·出版 報道檢閱 業務를 操縱?監督하는 것이고, 工作 業務는 設定된 任務遂行을 위해 各 言論機關의 主要人士에 對한 接觸工作을 施行하는 것이다. 言論半의 報道檢閱團은 外勤要員 5名은 各 言論社의 情報를 蒐集하고, 전○○와 김기철은 蒐集된 情報를 聚合해 文書를 起案했으며, 이상재는 把握한 情報를 바탕으로 檢閱 操縱 및 言論인 懷柔 業務를 했다.

言論班長 이상재는 報道檢閱團을 實質的으로 操縱·監督하고 言論社 幹部들의 性向을 把握하고, 이들을 懷柔하기 위해 ‘K-工作計劃’을 企劃했다. K-工作班은 次長級 以上을 懷柔하기 위한 班長 1名, 重鎭記者 以上을 相對로 輿論을 蒐集하는 分析官(文公部 職員) 2名, 輿論蒐集 및 言論社 行事日程을 入手하는 蒐集官 5名 等 모두 14名으로 編成됐다. K-工作計劃의 K는 KING을 뜻하는 것으로 '전두환을 最高 人物로 만들기 爲한 言論公爵'으로서 計劃됐다는 意見이 있다. [2]

K-工作 計劃의 槪要 [ 編輯 ]

  1. 目的 : '團結된 軍部의 基盤을 主軸으로 持續的인 國力 伸張을 위한 安定 勢力을 構築함'에 있음.
  2. 方針 : 誤導된 民主化 輿論을 言論界를 통하여 安定勢로 轉換 · 言論界의 呼應 誘導에 主力 · 報道 檢閱團을 통한 奉仕活動 ·重鎭들과 個別 接觸 懷柔工作 實施
  3. 現 狀況과 目標
  4. 目標 達成 基本 方案 : 報道檢閱團을 통한 奉仕活動
  5. 懷柔工作 細部計劃
  6. 計劃 實施를 위한 半 改編
  7. 所要豫算
  8. 參照事項 : 본 公爵은 極度의 保安이 要求됨으로 K工作이라 略稱하고, 工作業務 遂行 過程에서 修正 및 補完을 요할 때는 事前 司令官의 裁可를 득한 後 實施한다.
  9. 別添 : 言論半 編成表, 懷柔工作 對象者 名單

言論人 懷柔 工作 [ 編輯 ]

新軍部는 K工作計劃의 一環, 또는 連續線에서 保安司令官의 言論社主 및 言論社 幹部 面談을 推進하고 이에 對한 言論人의 反應을 蒐集 分析했다. 新軍部는 言論인 懇談會를 開催해 言論社主, 幹部 等의 反應을 살피는 同時에 新軍部 側에 協助하도록 要求했다. 懇談會에서 司令官 전두환에 對한 言論人들의 反應 및 評價를 蒐集 報告하고, 懇談會 內容이 記事에 어떻게 反映되는지 亦是 報告했다.

工作計劃書에 添附된 懷柔工作 結果 分析表를 살펴보면, 重鎭 言論人을 接觸해 言論人들의 政治的 性向과 政策 主張을 分析하고 備考欄에 接觸 回收와 ‘養護’, ‘協助希望’, ‘積極’, ‘警戒’, ‘小隙’等으로 評價 區分했다.

新軍部는 '確固한 時局觀을 定立토록 醇化 誘導’한다는 目的 아래 重鎭 言論人 接觸했다.「중진언론인 接觸醇化 計劃」의 ‘重鎭言論人 接觸 對話方向’ 項目 中 ‘전두환의 이미지 浮刻’의 細部內容에 따르면 新軍部는 '正義感이 强하고 包容力 있는 大汎한 人物', '憂國衷情에 불타는 私心 없고 淸廉潔白한 典型的인 軍人', '農村出身으로 庶民的이고 素朴 仁慈한 汎國民的 人物, '海外留學, 視察 等 文武 兼備한 民主主義 信奉者', '어려운 時期에 國家의 運命을 걸머지고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愛國者' 等으로 全斗煥의 이미지를 浮刻하기 위해 注力했다.

保安司는 5.18 等 主要 事件 發生時에도 懇談會를 열어 言論 協助를 誘導했다. ‘光州騷擾事態의 早速한 陳情과 秩序回復 維持를 위해 重鎭言論人을 招請, 現地實態를 取才토록 誘導하고 國民啓導를 促求토록 誘導’한다는 名分 아래, 新聞 放送 通信使의 社會部 記者 32名, 國防部 出入記者 17名 等 合計 49名을 2處 2課長 中領 이용린이 引率해 1980年 5月 24日 光州一圓 所要現場을 取材하도록 했고, ‘光州騷擾事態의 早速한 陳情과 秩序回復 維持를 위해 重鎭言論人을 招請, 桐事態의 實相을 올바르게 인식시켜 國民啓導를 促求토록 誘導’한다는 目的으로, 新聞 放送 通信使의 社長, 編輯局長, 政治部長, 社會部長 各 16名 合計 64名을 4日에 걸쳐 호텔에 招請해 懇談會를 가졌다.

이러한 言論인 接觸 公爵은 1980年 8月 下旬까지 推進된 것으로 알려졌다. 把握된 言論人들의 同情, 作成된 言論社 强制 統廢合 關聯 시안들은 各各 言論人 强制 解職, 言論社 强制 統廢合 過程에 參考 資料로 活用됐다. [3]

各州 [ 編輯 ]

  1. 軍事作戰 같은 ‘K-工作計劃’ 全斗煥 ‘言論操縱半’에 署名
  2. 國防部 過去史委 新軍部의 言論統制事件 調査結果報告書 25~31쪽
  3. 國防部 過去史委 新軍部의 言論統制事件 調査結果報告書 32~42쪽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