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順 高事情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文化財 情報 | 이름 = 和順 高事情
(和順 高士亭) | 類型 = [[全羅南道의 記念物| 番號 = 248 | 指定 = 2015年 12月 24日 | 解除 = 2019. 7. 18 | 住所 = 全羅南道 和順郡 화순읍 上三2길 29(三千里 11) | 時代 = 朝鮮時代 | 面積 = 1,700m 2 | 指導 = 大韓民國 | 꼬리票 = 和順 高事情 | 緯度도 = 35 |緯度分 = 3 |위도初 = 12 |南北 = N | 經度度 = 126 |經度分 = 59 |經度初 = 23 |東西 = E

{{鄕土文化遺産 情報 | 이름 = 高事情
(高士亭) | 國家 = 대한민국 和順郡 | 類型 = 鄕土文化遺産 | 番號 = 40 | 指定 = 2008年 12月 30日

和順 高事情 (和順 高士亭)은 全羅南道 和順郡 화순읍 에 있는 朝鮮時代 의 建築物이다. 2008年 12月 30日 和順郡의 鄕土文化遺産 第40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和順郡 和順邑 三川里에 있다. 單層의 八作지붕 골기와 建物로서 正面 3칸, 側面 2칸에 左一室을 가지고 있다. 海州人 忍齋 崔弘宇의 亭子인데, 그는 贈吏曹判書 崔慶長의 子이며 壬亂義兵將 忠毅公 崔慶會의 姪이다. 亂中에는 함께 倡義하였으며 平亂後 杜門하여 朝廷으로부터 여러次例 齋郞·別提·洗馬等의 벼슬이 내렸으나 모두 이를 辭讓함으로써 南州高士란 稱號를 얻었는데, 이것이 亭名의 由來가 되었다. 亭子는 그의 莊子인 後憲에 依해 1678年(肅宗戊午)에 建立됐으며 1920年頃에 改修하였다고 한다. 英祖때의 陽明學者이며 書藝家인 李匡帥(1707∼1777)가 쓴 懸板이 있으며 高事情에 쓰인 建築資料는 나무의 核心部만 남도록 깍아 다듬은 木材라고 傳한다. 앞뜰에는 下馬碑가 서 있으며 樹齡 3百年의 喬木인 槐花樹(둘레 2.4m∼2.7m)가 古木이된 잣나무와 같이 서 있다.

指定 事由 [ 編輯 ]

和順 高事情은 正名 3칸의 八作지붕 建造物로 朝鮮後期에 建立된 亭子이다. 최홍우(崔弘宇, 1562~1636)와 아들인 最後헌(崔後憲)과 關聯이 있다. 壬辰倭亂期 최경회 義兵將 等의 義兵活動과도 聯關이 있는 場所로서 歷史的 意味가 있고, 亭子는 建築的 特徵이 있음으로 鄕土文化遺産으로 指定하여 保存할 價値가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分類:大韓民國의 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