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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度演 칼럼]서울, 도쿄 그리고 워싱턴의 벚꽃|東亞日報

[金度演 칼럼]서울, 도쿄 그리고 워싱턴의 벚꽃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4月 17日 23時 45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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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日本産 벚꽃 숲 옆에 제퍼슨 記念館
繁榮 礎石 놓은 제퍼슨, 奴隸와 不適切 關係
美, 一部 問題 삼아 全體 삶 否定하지는 않아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김도연 客員論說委員·太宰未來戰略硏究院 理事長
사람 사는 世上은 總選(總選)으로 부산했지만 봄은 꽃의 季節이다. 겨우내 숨어있다가 따사로운 볕과 더불어 점잖게 모습을 드러내는 할미꽃이나 或은 빛나는 노란色의 아기똥풀꽃은 그 이름도 정겹다. 메말랐던 가지에서 피어나는 나무꽃들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今年에도 개나리, 진달래, 木蓮 그리고 벚나무 等이 한결같았는데, 그中에서도 벚꽃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듯싶다. 옛날 우리 서원(書院)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해 벚나무를 避하고 梅實나무를 심었다는데, 首肯이 가는 이야기다. 華奢한 벚꽃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우리가 本格的으로 벚꽃을 接하게 된 것은 아마도 日帝(日帝)가 韓半島를 侵略하면서 昌慶宮을 動物園으로 바꾸고 그곳에 ‘사쿠라’를 大量으로 심으면서 비롯된 것 같다. 그 後 한동안, 昌慶苑 밤 벚꽃 놀이는 서울 市民들의 重要한 祝祭였다. 메이지 維新 後, 日本 本土에서도 幕府 政權이 所重히 여겼던 도쿄의 우에노 神社를 亦是 動物園으로 만들며 여기에 사쿠라를 大量 植樹했다. 우에노는 只今도 日本에서 가장 손꼽히는 벚꽃 觀光地다. 昌慶宮에서는 이미 오래前 모두 除去됐지만, 그러나 벚나무는 이제 우리 韓半島 곳곳의 公園이나 學校 等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親近한 存在다.

世界的으로 벚꽃의 또 다른 名所는 美國 워싱턴시에 있다. 美國 國民들은 尊敬하는 大統領으로 워싱턴, 제퍼슨 그리고 링컨을 꼽는데, 이들을 推仰하기 爲해 워싱턴은 首都 이름으로 삼았고 제퍼슨과 링컨은 그 都市 안에 壯大한 記念館으로 남겼다. 그런데 제퍼슨 記念館 周圍의 廣闊한 벚나무 숲은 4月이 되면 人波로 북적이는 觀光 名所다. 이 숲은 1912年에 日本이 寄贈한 3000餘 그루의 벚나무로 두 나라 間의 親善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제퍼슨 記念館은 1943年 그의 誕生 200周年을 맞아 이 地域에 建設됐다. 그 後, 美國은 日本과 慘酷한 戰爭을 치렀지만 親日(親日)의 象徵인 벚나무를 모두 뿌리 뽑자고 목청 높이는 사람은 없었던 模樣이다. 벚꽃은 變함없이 美國人의 사랑을 받았고, 一週日 前에는 日本 總理 기시다 후미오가 美國을 訪問하면서 또다시 250그루의 벚나무를 寄贈했다.

제퍼슨은 美國 獨立 後 初代 國務長官, 2代 副統領 그리고 3代 大統領을 지내며, 繁榮하는 國家의 礎石을 놓았다. 제퍼슨의 墓碑銘, 卽, “美國 獨立宣言과 宗敎 自由法의 基礎者이며 버지니아주립대의 아버지, 제퍼슨 여기 잠들다”는 生前에 그가 스스로 作成했다. 그러나 제퍼슨은 이렇게 簡略하게만 記憶하기엔 너무 아까운 人物이다. 그는 哲學, 自然科學, 農學 等 多方面의 權威者였으며, 特히 大規模 農場을 運營하는 能力 있는 經營者였다. 이를 土臺로 大統領이 돼서는 1803年에 루이지애나 地域 約 200萬 ㎢의 땅을 프랑스로부터 1500萬 달러에 買入했다. 우리 南北韓 面積의 거의 열 倍에 該當하는 面積이다.

그는 農場 經驗을 통해 庭園 가꾸기가 人間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꽃과 나무에 對한 깊은 愛情을 이야기했다. 同時에 農業을 新技術 開發로 國民 삶을 潤澤하게 할 수 있는 核心 産業으로 여겼다. 땅을 파고 뒤엎는 農事 用具인 쟁기는 생김새나 細部 디자인에 따라 能率이 많이 달라지는데, 제퍼슨은 스스로 쟁기를 發明하고 이에 對해 特許를 얻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모두 앞서는 그의 最高 業績은 人權이란 槪念을 具體化한 것이다. 33歲의 제퍼슨이 기초한 美國獨立宣言서의 한 句節 “모든 人間은 平等하게 태어났다”는 프랑스 大革命의 導火線이 됐고, 이는 只今까지도 人類의 삶에 큰 影響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제퍼슨은 當時의 農場에 수많은 黑人 奴隸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에게 이들의 人權은 무엇이었을까? 勿論 링컨의 奴隸解放 宣言 100餘 年 前 일이다. 제퍼슨은 1784年에 프랑스 大使로 赴任하면서 딸들의 몸종으로 奴隸를 데려갔는데, 그中에는 14歲짜리 黑人 少女도 있었다. 제퍼슨은 이 少女와 持續的인 關係를 維持했고, 둘 사이에는 아이가 대여섯 名 태어났다. 오늘의 價値觀으로는 想像도 할 수 없는 엄청난 人權蹂躪인데, 그러나 이 때문에 제퍼슨 記念館을 없애야 한다는 極端的 主張은 없는 듯싶다. 過去 行跡의 一部를 問題 삼아 人物 全體를 묻어버리자는 主張이 걸핏하면 橫行하는 우리 社會가 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現在의 基準으로 過去를 評價하거나 或은 그 反對 卽, 過去의 基準으로 現在를 評價하는 일은 모두 신중해야 한다.


김도연 客員論說委員·太宰未來戰略硏究院 理事長
#제퍼슨 記念館 #韓半島 侵略 #慘酷한 戰爭 #反面敎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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