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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習慣[동아廣場/김금희]|東亞日報

메모의 習慣[동아廣場/김금희]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5月 2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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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堂 앞치마 벗지 않고 거리 나선 當惑感
記憶力 失手 늘자 메모 習慣 들이기 始作
품 더 들지만 두려움 줄어, 變化는 必要하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客員論說委員·小說家
메모를 거의 하지 않는 便이었다. 長篇小說을 쓸 때도 노트를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몇 張을 넘기지 않았다. 讀者들과 만나면 으레 平素에 쓸 거리를 메모해 두는가, 어떤 式으로 作成해 놓는가 하는 質問을 받는데 그때도 거의 記憶에 依存한다고 答해왔다. 오히려 노트에 이러저러하게 小說을 써야겠다고 적고 나면 그걸로도 充分했는지 結局 쓰지 않게 된다고. 머릿속에 든 생각들을 肉體를 통해 꺼내놓는 過程이 메모라면 그건 精神과 肉體가 같이 나누는 對話에 가까울 것이다. 이미지나 單純한 着想에 不過했던 것이 글字의 몸을 갖게 되고 그렇게 具體化된 생각의 肉體를 다시 눈과 머리를 通한 思惟를 통해 再檢討하는 것. 그런 메모의 重要性에 對해 깨달은 건 不過 얼마 前이었다.

요즘 나이가 들면서 正말 記憶力이 예전 같지 않았다. 運動 時間을 豫約하고도 엉뚱한 타이밍에 가서 “先生님, 저 왔습니다” 하는 바람에 運動 講師가 唐慌해하는 일이 늘었다. 原稿를 쓰러 나간다며 노트북을 안 들고 나가기도 하고 原稿 마감이나 講演 날짜를 하루에도 몇 番이나 다시 確認하는 건 日常이 되었다. 大學 先輩가 十數 年 前 自己 집에서 한 집들이 寫眞을 보내면서 우리 참 앳됐다라고 했는데 내게는 그날에 關한 記憶이 全혀 없어 너무 未安해지기도 했다. 얼마 前에는 全州에 講演을 하기 위해 내려갔는데 中國집에서 자장면을 맛있게 먹은 뒤, 飮食物이 튀는 걸 막으려고 입었던 앞치마를 그대로 멘 채 市內 구경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發見했을 때의 當惑感과 一種의 虛脫感이란, 거기에는 차마 웃어넘길 수 없는 憂慮와 두려움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變化들을 恨歎만 할 수는 없었다. 닥치기 前에는 漠然하게 생각했지만 이제 正말 ‘實際狀況’이니까. 나는 平生 몸에 익히지 못했던 메모의 習慣을 들이기 始作했다. 四十代 中盤인 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世界의 正確히 中間에 있는 世代라고 할 수 있다. 10代 때부터 PC를 使用했지만 아직 디지털이 限定的으로 現實에 適用되던 時期라서 大學生이 되어서도 모든 學習 資料는 종이冊으로 봤고 筆記 亦是 노트로 했다. 以後 編輯者로 종이冊을 만들면서 亦是 종이로 텍스트를 읽어왔던 나는 只今도 電子冊으로는 資料를 잘 읽지 못한다. 그러면 노트로 메모를 하면 되겠지만 現實的으로 便利性이 問題였다. 檢索이나 이메일, 모바일 메신저들을 利用하면서 携帶電話가 내 記錄의 많은 部分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事實이니까.

結局 나는 종이노트만 固執하던 以前의 習慣을 바꿔 携帶電話도 메모의 道具로 使用하기 始作했다. 一旦 메모 폴더를 短篇과 關聯한 것, 앞으로 쓸 長篇과 關聯한 것 그리고 에세이로 쓰고 싶은 것들로 나눴다. 日常을 살아가다가 쓰고 싶은 場面이 있으면 그걸 그냥 이미지로 간직했던 時節과 달리 그런 瞬間이 오면 폴더를 찾아 文章으로 적어놓았다. 只今 열어 보면 그 폴더들에는 “銀빛머리 紳士는 電話부스에서 하루를 보냈다”라는 文章과, “엄마의 돗나물”이라는 키워드가 메모돼 있다. 모두 나중에 글로 쓰고 싶은 場面들이다. 本格的인 作業에 들어가기 前 主人公에 對한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作成하기 始作한 것도 重要한 變化였다. 以前보다 時間과 품이 더 들었지만 一旦 남겨놓자 人物의 重要한 포인트들을 記憶 못 하리라는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그동안 메모를 잘 하지 않은 건 作業에 있어 어떤 突發性, 偶然한 想像力의 展開, 不安定하고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 같은 것을 選好했기 때문일 것이다. 勿論 單純히 메모하지 않는 것이 그런 小說的 志向의 全部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一種의 基礎 程度로는 여겼다. 하지만 이제 그런 方式을 再調整하지 않을 수 없다. 作家 亦是 時間의 物理的 變化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며 奮鬪하는 사람에 不過하니까. 變化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致命的인 不便을 얻을지도 몰랐다. 아예 쓸 것이 기억나지 않는 狀態 말이다.

앞치마를 돌려주러 中國집으로 되돌아갔을 때 마음씨 좋은 社長님은 “別일 아니에요. 이런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하고 나를 慰勞했다. 個中에는 너무 멀리 가버려 그냥 안 돌려주고 가는 사람도 不知其數인데 그래도 돌아올 수 있을 程度만 간 게 어디냐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全州의 이 午後를, 그 洞네에서만 四十 年 넘게 자장면을 만들어온 社長님이 건네는 그 괜찮다는 말을 携帶電話에 메모했다. 萬若 그 얘기를 當身이 글로 읽고 있다면 메모하는 習慣 德分일 테고, 그렇다면 내 새로운 選擇이 아마도 옳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금희 客員論說委員·小說家
#동아廣場 #김금희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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