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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뉴딜은 進步 執權 다진 政治 轉換點… 韓國 뉴딜은 어디로[인사이드&인사이트]|동아일보

美 뉴딜은 進步 執權 다진 政治 轉換點… 韓國 뉴딜은 어디로[인사이드&인사이트]

  • 東亞日報
  • 入力 2020年 6月 1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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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政策의 政治經濟學

최혜령 경제부 기자
최혜령 經濟部 記者
“오늘날 같은 不幸한 時代에는 經濟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잊혀진 사람(forgotten man)’에 對한 對策이 必要합니다.”

1932年 4月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民主黨 大選 候補 挑戰을 宣言한 라디오 演說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의 發言은 1929年 大恐慌 以後 빚더미와 生活苦에 짓눌린 勞動者, 農民, 가톨릭교도, 黑人 有權者 等 疏外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루스벨트는 이들을 위한 政策을 펴고 있다는 事實을 以後에도 數次例 强調했다. ‘잊혀진 사람’이었던 이들은 巨大한 ‘뉴딜 聯合’을 이뤄 50年 가까이 民主黨 政權을 떠받쳤다.

美國의 뉴딜 政策은 흔히 政府가 財政을 풀어 大規模 公共 일자리를 만들고 建設과 土木工事를 일으킨 經濟事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勞動者를 保護하고 福祉制度의 根幹을 만들어 該當 政策의 受惠者들을 支持 基盤으로 吸收한 政治的 轉換點이었다. 學界 等에서 韓國版 뉴딜을 注目하고 있는 것도 이런 次元이다. 76兆 원을 投入하는 이番 事業이 單純히 經濟 回復 手段에 그칠지, 美國처럼 政治的 布石의 첫걸음인지가 關心을 끌고 있는 것이다.

○ 期待에 못 미친 1期 뉴딜

1929年 10月 24日 뉴욕 證券去來所에서 株價가 暴落하면서 始作된 大恐慌으로 美國에서는 失業者가 넘쳐나고 物價가 暴落했다. 뉴욕 州知事였던 루스벨트는 民主黨 大選 候補로 選出되자마자 “여러분에게 美國 市民들을 위한 뉴딜을 約束합니다. 但只 票를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主人에게 돌려주는 改革에 勝利하기 위해서 말입니다”라고 뉴딜을 前面에 내세웠다.

뉴딜 政策은 1933年 루스벨트가 就任한 後 始作된 1基와 1935年부터 始作된 2期로 나뉜다. 1, 2基를 貫通하는 基本 方向은 貧困과 失業의 救濟(relief), 産業秩序와 經濟의 回復(recovery), 根本的인 制度改革(reform)의 3R였다.

1機에는 農民 및 勞動者의 일자리와 所得을 維持하는 政策이 大部分이었다. 農産物 生産量을 調節해 價格 暴落을 막았다. 남아도는 穀物은 政府가 사들이고 農事를 쉬는 農民에게는 補助金을 줬다. 聯邦緊急救濟局을 設立해 失業者들에게 食糧과 옷 等을 보내는 데 5億 달러를 投入했다.

緊急銀行法 制定 等 金融 시스템도 整備했다. 銀行이 破産해도 預金者들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聯邦예금보험공사(FDIC)를 設立했다. 證市를 統制하기 위해 證券去來委員會(SEC)를 만들었다.

뉴딜 하면 떠오르는 테네시江 流域 開發과 후버댐 建設에 나서 大規模 公共일자리를 만든 것도 이 時期다. 勞動者들에게 所得을 保障하는 한便 값싼 全力을 大量 供給하고 洪水를 豫防했다.

이 期間 동안 루스벨트 政府의 努力에도 不拘하고 좀처럼 失業者 數가 줄어들지 않았다. 政府가 일자리를 만들어내도 解雇가 繼續돼 失業者 數에 큰 變化가 없었다. 美國 政府는 한쪽에서는 經濟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다는 指摘을, 다른 한쪽에서는 介入이 지나쳐 企業家 精神을 억누른다는 批判을 받았다.

○ ‘잊혀진 사람’李 뉴딜 聯合으로

1936年 大統領 選擧를 앞두고 始作된 2次 뉴딜은 各種 制度를 改革(reform)해 進步 性向의 民主黨 支持層에 훨씬 가깝게 다가갔다. 1935年에는 와그너법이라고 불리는 全國産業復興法을 制定해 史上 처음으로 勞動組合結成權과 團體交涉權을 保障했다. 여기에는 所得 引上을 容易하게 해 需要를 創出하려는 經濟的인 意圖도 깔려 있었다. 時間當 40센트의 最低賃金과 法定 最高 勞動時間도 導入했다. 文在寅 政府의 所得主導成長과 脈을 같이하는 이 法은 1935年 違憲 判決을 받았지만 다시 制定돼 結局 合憲 判決을 받았다.

當時 美國에서는 總 勞動人口의 15%인 1100萬 名이 失業者였지만 州政府의 救護基金은 大部分 바닥 난 狀態였다. 事業主에게서 걷은 稅金과 聯邦政府 財源을 合해 每月 最大 20달러의 失業給與를 提供하는 內容의 社會保障法이 制定됐다. 高齡者, 隱退者, 障礙人에게 주는 年金도 導入됐다. 美國 福祉制度의 土臺를 만든 것이다.

反面 富裕層에게는 高率의 稅金을 물렸다. 年間 5萬 달러 以上의 個人所得에 累進課稅를 導入했다. 500萬 달러 以上의 草稿所得에는 最高 79%에 이르는 所得稅를 물렸다.

일자리 創出도 繼續됐다. 公共事業振興廳은 道路와 다리를 놓고 空港과 病院을 지어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17∼28歲의 靑年層에게는 山에서 伐木하거나 火災 鎭壓을 하는 일자리를 마련해줬다. 俳優와 畫家, 音樂家 等에게는 文化事業을 推進해 各種 公演과 創作을 支援했다. 1936年 치러진 大選에서 루스벨트는 1932年보다 더 큰 票差로 再選에 成功했다.

뉴딜의 經濟的 效果에 對한 論難은 現在進行形이다. 뉴딜이 오히려 經濟 回復을 더디게 했고, 美國이 大恐慌에서 脫出한 것은 第2次 世界大戰 德分이었다는 主張이 적지 않다. 하지만 뉴딜이 美國 민주당의 支持 基盤을 넓혔다는 點은 異論(異論)의 餘地가 거의 없다.

1865年 南北戰爭이 끝난 後 민주당의 票밭은 南部의 農民들이었다. 그러다 1920年代 好況期를 거치면서 美國 內에는 都市勞動者와 貧困層, 移民者들이 늘어났다. 뉴딜이 提供한 일자리와 勞動權, 社會保障制度는 이들의 팍팍한 生活을 파고들었다.

進步 性向을 가진 都市의 中産層과 知識人들도 政治 志向이 비슷한 뉴딜 政策에 支持를 보냈다. 産業界에서도 政府 支援이 必要한 石油, 海運, 自動車 産業 等 新興 産業이 뉴딜과 민주당에 合流했다. 以後 뉴딜 聯合은 짧게 보면 保守層이 뭉친 1960年代까지 約 30年, 길게 보면 1980年代 로널드 레이건 大統領의 登場까지 約 50年間 이어졌다.

○ 아직은 政治事業과 經濟事業의 中間에 있는 韓國版 뉴딜

이달 初 政府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雇傭安全網 强化에 2025年까지 總 76兆 원을 投入한다는 內容의 韓國판 뉴딜을 發表했다. 여기에는 現 政府 마지막 해인 2022年까지 일자리 55萬 個를 만든다는 計劃도 包含됐다.

韓國판 뉴딜은 現在로선 企劃財政部가 主導하는 經濟事業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文在寅 大統領의 發言에는 美國 뉴딜이 그랬듯 韓國판 뉴딜 亦是 政治地形의 變化를 이끌어내겠다는 脈絡도 感知된다. 文 大統領이 韓國版 뉴딜을 發表하면서 “사람이 于先이고 包容國家를 만들어야 한다”고 强調한 것은 루스벨트의 뉴딜과 一脈相通한다. 또 “單純히 危機 局面을 克服하는 프로젝트를 넘어서는, 總體的으로 大韓民國이라는 國家의 大轉換을 이뤄내게 하는 未來 비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根本的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全 國民 雇傭保險의 基礎를 놓는 等 雇傭安全網을 大大的으로 擴充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사람 投資를 擴大해 나가겠다”고 强調했다.

包容國家의 基盤으로 提示된 것은 全 國民 雇傭保險이다. 올 5月 基準 雇傭保險 加入者는 1382萬 名으로 全體 經濟活動人口 2821萬 名의 折半에 못 미친다. 全 國民 雇傭保險이 現實化되면 아직 加入하지 않은 特殊雇傭職 9個 業種 63萬 名이 于先 受惠者가 될 것으로 보인다. 長期的으로는 自營業者와 無給家族從事者 680萬 名이 失業給與를 받는 等 社會安全網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들과 그 家族들이 더불어민주당을 支持하면 든든한 基盤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反面 디지털과 그린 뉴딜 等 다른 內容은 아직까지는 旣存 事業과 큰 差異가 없다는 評價를 받고 있다. 5世代(5G) 移動通信 國家網 擴散과 農漁村 超高速 인터넷網 設置, 公共施設物 에너지 效率 改善 等은 以前부터 推進됐거나 이미 施行 中이다. 産業革新 效果가 큰 遠隔醫療 導入이나 首都圈 規制 緩和 等도 對策에서 빠졌다. 全體 豫算 76兆 원 中 다음 政權인 2023∼2025年에 45兆 원을 쏟아붓는다는 計劃이지만 次期 政府에서 힘을 받을 수 있을지 疑問이라는 指摘도 있다.

이 때문에 與圈 內部에서도 韓國版 뉴딜에 補完이 必要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政策 方向이 알려진 5月 初, 더불어市民黨의 共同代表를 지낸 최배근 건국대 經濟學科 敎授는 “內容을 들여다보면 革新成長을 再包裝한 것이고 根本的인 差異가 보이지 않는다”고 指摘했다. 이어 “뉴딜을 産業投資 程度로만 理解하는 게 아닌지 疑懼心이 든다. 오히려 包容的인 側面은 더 縮小되는 것 아닌가 하는 指摘이 當然하다”고 말했다.

專門家들은 뉴딜 政策을 選別的으로 受容할 必要가 있다고 助言한다. 성태윤 연세대 經濟學部 敎授는 “美國의 뉴딜은 福祉制度와 預金保護 等은 效果가 있었지만 政府 介入이 지나쳐 오히려 景氣 回復에 妨害가 된 點도 있었다”면서 “一旦 經濟 效果가 檢證된 것 中心으로 導入하는 것이 必要하다”고 말했다. 新律 명지대 政治外交學科 敎授는 “財政健全性을 악화시키면서 돈을 푸는 政策을 繼續하면 韓國판 뉴딜의 成功 與否는 懷疑的일 것”이라면서 “政策이 成功하면 政治的 支持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최혜령 經濟部 記者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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