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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國 居住 脫北 女性이 아들에게…프랑스어 冊 出刊 話題 [동정민의 파리이야기]|東亞日報

英國 居住 脫北 女性이 아들에게…프랑스어 冊 出刊 話題 [동정민의 파리이야기]

  • 東亞日報
  • 入力 2019年 5月 14日 17時 07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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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저를 버렸어요?” “엄만 널 버리지 않았단다.”

이날 프랑스 파리 8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플뢰르 펠르랭 전 문화부 장관(가운데)과 함께 사진을 찍은 두 저자. 왼쪽이 탈북한 박지현 씨, 오른쪽이 한국 출신 세린 씨.
이날 프랑스 파리 8區에서 열린 出版記念會에 參席한 플뢰르 펠르랭 前 文化部 長官(가운데)과 함께 寫眞을 찍은 두 著者. 왼쪽이 脫北한 朴志玹 氏, 오른쪽이 韓國 出身 細鱗 氏.
“國家는 서로 달라도 人間愛의 普遍的인 메시지를 담은 이 冊의 프랑스 出刊은 큰 意味가 있으며 프랑스 사람들도 큰 感動을 받을 것이다.”

13日 午後 프랑스 파리 8句의 한 살롱. ‘두 韓國女性(Deux cor¤ennes)’ 出版記念會에 參席한 플뢰르 펠르랭 前 프랑스 文化部 長官은 記者와 만나 “이 冊을 잃고 너무 큰 衝擊과 感動에 사로잡혔다”며 “그동안 北韓의 獨裁와 기아에 對한 이야기를 들었고 北韓을 다녀온 프랑스 사람들이 보여준 寫眞도 봤지만 그건 事實上 理論的인 것이었고 北韓 사람과 人間的인 交感을 느끼게 해 준 이 冊은 完全히 다른 經驗이었다”고 말했다.

英國에 定着한 脫北者 朴志玹 氏의 굴곡진 人生을 亦是 英國에 살고 있는 南韓 出身 作家 細鱗 氏가 인터뷰해서 프랑스語로 쓴 冊은 유럽 곳곳에 出刊됐으며 英語版도 準備 中이다. 13日 프랑스語版 出刊을 맞아 라디오 ‘프랑스 24’에서 朴 氏를 인터뷰했다.

朴 氏는 1998年 咸鏡北道 淸津에서 脫北한 뒤 中國에서 奴隸로 팔려갔다가 公安에 잡혀 北韓 勞動 敎化所로 끌려간 後 다시 脫北에 成功했다. 細鱗 氏는 外交官인 아버지를 따라 佛語圈에서 學窓時節을 보내고 프랑스 소르본4大學을 卒業했다. 韓國 入養兒 出身인 펠르랭 前 長官은 “北韓 女性을 實際로 만나본 건 처음”이라며 “이런 자리에 參席하는 게 낯설지만 한 番 直接 만나고 싶어서 好奇心에 招待에 應했다”며 朴 氏와 반갑게 人事했다.

프랑스에 출간된 ‘두 한국여성(Deux cor¤ennes)’ 표지
프랑스에 出刊된 ‘두 韓國女性(Deux cor¤ennes)’ 表紙

冊은 “왜 나를 버렸나요?”라고 묻는 朴 氏의 아들 철이의 質問으로 始作한다. 아들은 英國에 定着한 지 4年 뒤인 2012年 朴 氏가 居住하고 있는 英國 맨체스터의 한 벤치에서 조심스럽게 “엄마 이거 하나만 물어보고 이제 答을 들으면 머리에서 다 지울게요”라며 입을 뗐다. 그는 “엄마가 가고 난 後 周邊 사람들이 ‘너희 엄마가 너를 버렸다’고 말했는데 眞짜 數字 百을 세고 나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朴 氏는 記者에게 “中學校에 들어가기 前 아들이 이 質問을 했을 當時 그저 울기만 하고 答을 못했다”며 “이 冊은 政治的인 冊이 아니라 아들에게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고 너를 사랑한다’는 答”이라고 說明했다. 둘은 왜 헤어졌고 어떻게 只今 英國에 함께 있는 것일까.

三寸이 自身의 눈앞에서 “배고프다”를 외치며 餓死로 죽는 모습을 본 朴 氏는 아버지의 勸誘로 1998年 2月 脫北을 했다. 그러나 中國에서 5000위안(藥 85萬 원)에 46살 中國 男性에게 팔려갔다. 賭博과 暴力을 일삼는 中國 男便과 家族들 틈에서 國籍과 이름도 잃은 채 살던 朴 氏는 中國에서 낳은 아들 철이만 바라보고 살았다. 철이가 다섯 살 되던 해 朴 氏는 한밤中에 中國 公安에게 끌려가 北送됐다. 當時 朴 氏는 “엄마 돌아올게”라는 말도 남기지 못하고 生離別을 해야 했다. 北韓 勞動 敎化所로 끌려가 갖은 苦楚를 겪은 朴 氏는 아들을 찾겠다는 一念으로 다시 脫北해 人身賣買를 自請한 뒤 2005年 철이를 찾았다. 以後 함께 몽골 沙漠을 거쳐 2008年 難民이 認定돼 英國에 亡命해 살고 있다.

朴 氏에게 아들의 質問은 平凡한 삶을 計劃했던 그가 北韓 人權運動家로 活動하게 된 契機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나만 아픈지 알았는데 나 말고도 아픈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됐다”며 “아들이 그 質問을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제 철이는 어엿한 英國 칼리지 大學生이 됐다.
두 저자가 기자와 인터뷰 후 찍은 사진
두 著者가 記者와 인터뷰 後 찍은 寫眞

冊은 南韓과 北韓 女性이 自身의 追憶을 나누면서 共通點을 찾는 過程이기도 하다. 細鱗 氏는 “2014年 지현 氏를 앰네스티 通譯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北韓 사람을 만난다는 漠然한 恐怖와 무서움이 컸다. 하지만 對話를 나누다 보니 어린시절 할머니에 對한 追憶, 兄弟와 家族에 對한 愛着, 父母에 對한 恭敬 等 너무나 비슷한 대목이 많았다”며 “南과 北의 間隙을 좁히는 機會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朴 氏는 “事實 北韓 生活하면 憎惡와 憤怒만 생각났는데 이番 冊을 쓰면서 아름다운 어린시절 追憶도 떠오르고 나의 새로운 幸福한 어린 時節을 記憶해 낼 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이어 “北韓 사람도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北韓 住民들은 배고프고 불쌍한 政治的 꼭두각시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每日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讀者가 리뷰에 쓴 ‘아픔을 보여준 冊인데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는 評을 읽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北韓 사람이 초라하게만 그려지는 게 싫다”고 傳했다.

박 씨가 이날 기념회에 참석한 프랑스 청중들의 여러 질문에 답하고 있다.
朴 氏가 이날 記念會에 參席한 프랑스 聽衆들의 여러 質問에 答하고 있다.
이날 出版記念會에는 프랑스 記者와 出版業 從事者 40餘 名이 參席했다. 北韓 女性을 처음 만나본 프랑스 參席者들은 各種 궁금症을 쏟아냈다.

한 프랑스 男性은 “韓國과 北韓 政府는 相對에 對해 어떻게 말하나”고 묻자 朴 氏는 “北韓 사람들은 韓國 사람을 敵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해 北韓에서 出版된 兒童圖書에는 아직도 北韓이 못사는 韓國에 醫藥品과 飮食을 보내고 있다고 쓰여 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參席者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自由國家 英國에 와서 가장 좋은 點은 무엇이냐”는 質問에 그는 “家族”이라고 答했다. 朴 氏는 “北韓은 金氏 一家를 아버지, 朝鮮勞動黨을 어머니라고 가르치며 眞짜 家族愛를 맘껏 느끼지 못하게 한다”며 “英國에 와서 家族과 함께 같은 소파에 앉아서 함께 저녁 먹고 웃으며 對話하는 것 自體가 가장 좋은 點”이라고 말했다. 朴 氏의 冊에는 어린 時節 아버지에게 “왜 김일성 首領님을 當身보다 더 많이 사랑해야 하나요? 내 眞짜 아빠는 當身 아닌가요”라고 물었던 에피소드도 들어있다. 當時 아버지는 “조용해라. 이웃이 들을 수 있으니. 나도 네가 異常하게 생각할 걸 알지만 네가 더 크면 理解할 것이다. 너는 學校生活만 熱心히 하면 된다”고 答했다고 적혀 있다.

朴 氏는 “英國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란 건 무엇이냐”는 한 女性 記者의 質問에 “런던 히드로 空港에 처음 내렸을 때 空港 街販臺에 新聞이 이렇게 많다는데 놀랐고 大統領 얼굴이 1面에 많지 않아서 놀랐다”고 答했다.

파리=동정민 特派員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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