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卒業式에서 學士帽 던지는 寫眞은 언제부터 찍기 始作했을까?[청계천 옆 寫眞館]|東亞日報

卒業式에서 學士帽 던지는 寫眞은 언제부터 찍기 始作했을까?[청계천 옆 寫眞館]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23日 11時 00分


코멘트

변영욱의 百年寫眞 No. 53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家族과 風景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時代입니다. 寫眞이 넘쳐나는 오늘을 살면서, 100年 前 新聞에 실렸던 黑白寫眞을 한 張씩 살펴봅니다. 讀者들의 댓글을 통해 우리 이미지의 原形을 찾아가는 旅程이기도 합니다.

오늘 紹介드릴 寫眞은 1924年 3月 22日 字 동아일보에 실린 寫眞입니다. 4名의 女性들이 卒業 家運과 學士帽를 쓴 채 正面 寫眞記者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寫眞 맨 오른쪽 女性은 선글라스라고 해도 될 만큼 검은 眼鏡을 쓰고 있습니다.

1924년 3월 22일 동아일보.
1924年 3月 22日 東亞日報.
卒業式 寫眞은 분명한데 무슨 內容인지 說明을 살펴보겠습니다.

◇梨花의 大學科
卒業生 4名

市內 정동에 있는 梨花學堂 大學과 卒業式은 20日 午後 7時 半에 貞洞 禮拜堂에서 열었는데 來賓과 觀客이 千餘名이며 눈같은 옷에 四角帽를 쓴 金로다 孃 外 3名에게 卒業證書를 주고 卒業生 김종준 兩 金로다 孃의 卒業 演說이 있고 기쁨과 悲哀가 섞인 卒業歌로 式을 마치었는데 今年 卒業生은 4名이다. /1924年 3月 22日子 東亞日報

▶ 서울 市內 정동에 있는 梨花學堂의 大學과 卒業式이 있었군요. 저녁 7時 30分에 卒業式을 했다는 게 特異합니다. 먹고 살기 힘든 時節, 來賓과 學父母들이 卒業式에 參席하려면 日課가 끝난 時間이 便했을 것 같긴 합니다. 卒業生은 4名인데, 祝賀客은 無慮 1千 名에 達한 것으로 보아 寫眞 속 人物들에 對한 궁금症이 커집니다.

▶ 요즘은 卒業式은 2月 末, 入學式은 3月 初이지만 100年 前에는 한 달씩 늦었습니다. 新聞을 보면 3月에 卒業, 新學期 始作은 4月 1日 이런 패턴이 보입니다. 卒業 시즌을 맞은 3月値 新聞에는 各 學校 優秀 卒業生들의 證明寫眞이 실려 있습니다. 東亞日報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와 每日申報에도 같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新聞社別로 寫眞이 다른 것으로 보아, 學校 側에서 提供한 寫眞이 아니라 新聞社에서 寫眞記者들이 各 學校로 가서 學生들을 直接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優秀 卒業生들은 그날 꽤 바쁜 日程이었겠습니다. 新聞社 別로 와서 寫眞을 찍자고 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只今의 基準으로 보면, 梨花女大 單科大學 最優秀 卒業生의 얼굴을 新聞에 싣는 거니 ‘異常한’ 報道입니다. 理由를 생각해 봤습니다. 高等學校나 大學校 卒業生의 나이가 17歲~20歲 程度 되니 이들이 社會生活을 20年 程度 하고 나면 30代 後半 ~40代 初盤이었을 겁니다. 1920年代 新聞에 실렸던 얼굴들은 20年이 지나 1945年 우리나라 建國 當時 各 分野에서 重要한 役割을 하셨을 테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우리 社會의 未來를 책임지게 될 人物의 誕生을 놓치지 않고 紹介하려고 했던 新聞의 執着이 보입니다.

▶學士帽를 四角帽라고 表現을 했네요. 요즘 大學 卒業式에서 쓰는 학사모와 模樣은 差異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重要한 人物이라고 하더라도 寫眞이 너무 심심하지 않으신가요? 無表情하게 正面을 凝視하는 4名의 모습을 只今 新聞에 쓴다면 讀者들이 疑訝해할 거 같습니다. 只今의 寫眞과는 느낌 差異가 큽니다. 어쩌면 우리가 只今 찍고 보는 寫眞이 지나치게 鋪裝되고 誇張되었을 可能性도 있습니다.

▶심심한 寫眞을 보다 보니, 卒業式에서 學士帽를 던지는 寫眞은 언제부터 나왔을까 궁금해집니다. 新聞에도 가끔 실리기도 하고, 인터넷 記事에도 많이 添附되는 모습 말입니다. 어쩌면 讀者 여러분도 한 番씩 찍어보셨을 수도 있는 寫眞입니다.
언제부터 이런 種類의 寫眞을 찍었던 걸까요? 동아일보 寫眞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봤더니 생각보다 歷史가 길지 않습니다. 2000年 5月 4日에 찍은 寫眞이 가장 오래된 寫眞입니다. 寫眞 說明은 이렇습니다.

“벌써부터 卒業 氣分 ? 來年 2月 卒業을 앞두고 4日 연세대 本館 앞에서 卒業앨범 寫眞을 찍고 있는 人文學部 學生들. 寫眞師의 信號에 따라 一齊히 學士帽를 空中에 던지며 歡呼하고 있다. 2000年 5月 4日.”

▶ 인터넷 檢索을 통해 資料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學位服을 처음 입은 것은 1908年 最初의 現代式 高等敎育機關이자 의(醫) 學校인 濟衆院의 卒業式이었다고 합니다. 美國 留學生들의 經驗을 土臺로 검은 가운을 입었고, 검은色 술이 달린 검은 四角帽를 썼다고 합니다. 學士帽를 하늘로 던지는 퍼포먼스의 始作도 美國 海軍士官學校 任官式이라는 記事도 여기저기 檢索이 됩니다. 階級章이 달린 將校 帽子를 支給 받으면서 學生 身分을 象徵하는 學士帽를 空中으로 던져서 새로운 始作을 自祝했을거라는 說明도 함께 있습니다. 아일랜드 牧童들이 울타리 안에서 事故가 制限되는 것을 憂慮해 母子 던지기 試合을 통해 世上을 넓게 바라보는 機會를 가졌다는 說(設)도 있습니다.

正確한 歷史的 考證은 제가 할 수 있는 分野가 아닐 수도 있으니 이쯤 하겠습니다. 아무튼 100年 前에는 없던, 學士帽 던지는 風習이 外國에서 들어와 우리나라에 定着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或是 2000年度 以前에 學士帽 던지는 寫眞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中에 그런 寫眞을 알고 계시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感謝하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왜 學士帽를 던지는 걸까요? 寫眞記者인 저도 지난 2月 서울 市內에서 열린 卒業式을 몇 番 取材하러 갔습니다. 卒業式의 嚴肅한 모습을 新聞에 쓰기엔 좀 語塞해서 이것저것 특별한 場面을 찾아보려고 努力을 하지만 別로 특별한 場面을 못 찾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境遇 몇몇 學生들에게 諒解를 求하고 學士帽를 하늘로 던지라고 付託을 합니다. 演出 寫眞인거죠. 寫眞記者들이 演出을 해도 되냐고 물으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 基準으로는, ‘누군가에게 被害가 가는 狀況이 아니라면’ 不可避할 境遇 演出을 합니다. 밋밋한 寫眞을 찍기 싫어 學士帽를 던지는 모습을 演出하는 게 하나의 理由일 겁니다. 入試를 위해 고달프게 보낸 高等學校 3年과 社會 進出을 위해 熱心히 工夫했던 大學 4年의 힘든 時間을 훌훌 털어낸다는 意味를 담으려고도 하는 것 같구요. 그들의 앞길엔 밝은 未來가 기다린다는 希望도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寫眞의 背景은 흐린 하늘보다는 파란 하늘이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런 寫眞도 이제는 新聞에 많이 실리지는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卒業式의 특별한 場面도 流行이 있습니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大衆化되던 때는 商業 寫眞師분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場面이 新聞에 꽤 자주 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前에는 四角帽를 父母님이나 配偶者에게 씌워 드리고 工夫 뒷바라지를 感謝해하는 寫眞을 찍던 時節도 있었습니다.

▶ 오늘은 100年 前 서울 梨花學堂의 卒業式에서 四角帽를 쓴 채 카메라를 凝視하고 있는 4名의 卒業生 寫眞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寫眞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學士帽 던지는 寫眞에 對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視線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