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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무브’의 時代, 藝術 作品을 所藏한다는 건… 마티스의 ‘畫家의 家族’ [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東亞日報

‘머니 무브’의 時代, 藝術 作品을 所藏한다는 건… 마티스의 ‘畫家의 家族’ [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10月 9日 11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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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畫家 앙리 마티스는 數 年 前까지만 해도 韓國에서 大衆的 作家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最近 마티스 포스터가 韓國의 밀레니얼 世代에게 인테리어用으로 사랑 받기 始作하고, 조금씩 大衆에게도 친숙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생각해보니 저의 生涯 첫 所藏品도 마티스의 1953年 테이트 갤러리 展示 포스터였네요.

그런데 마티스 그림의 진수는 線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色彩와 構圖에서도 드러난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簡單하게 만들어진 포스터로는 마티스의 果敢함을 즐기기가 어려운데요. 오늘 그래서 마티스가 1911年 그린 ‘畫家의 家族’을 가져와봤습니다. 먼저 그림을 볼까요.

마티스가 그린 家族 肖像畫



이 그림, 마치 체스 게임을 하듯이 形態와 色彩의 均衡을 高度로 計算해 緊張感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한 數를 놓고, 脈絡에 맞춰 다음 數를 놓으면서 數學 問題를 풀듯 마티스는 自己만의 게임을 하고 있는데요. 理解를 돕기 위해 于先 그림 속의 人物이 누군지 알아보겠습니다.

마티스의 家族은 아내 아멜리와 두 아들 피에르와 張, 그리고 딸 마르게리트가 있었습니다. 이 그림 속에는 마티스를 除外한 家族 構成員이 描寫되어 있어요. 가운데 체스를 두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두 男子가 피에르와 張 兄除겠지요. 그림의 왼쪽에 앉은 女性이 아내 아멜리, 그리고 오른쪽에 서 있는 女子가 딸 마르게리트입니다.

사람들이 마치 그림에 파묻히듯 複雜한 패턴과 무늬가 印象的이죠.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人物은 누구인가요? 限없이 밝은 色彩 속에 시커먼 옷을 입은 오른쪽 女性이 저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위로 떠오르는 캔버스를 붙잡듯이 무거운 色彩가 그림의 中心을 잡아주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女性이 마티스의 아내라고 처음엔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집 안의 中心은 엄마가 아닐까, 라는 推測 때문이었죠. 그런데 정작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는 왼쪽 구석 소파에 앉아 있네요. 딸 마르게리트가 마티스에게 어떤 存在였길래 캔버스에서 이렇게 登場한 것일까요?

아픈 손가락, 마르게리트


마티스가 그린 딸 마르게리트의 얼굴. 기관 절개술을 받아 목에 생긴 흉터를 검은 스카프로 가리고 있다.
마티스가 그린 딸 마르게리트의 얼굴. 機關 切開術을 받아 목에 생긴 흉터를 검은 스카프로 가리고 있다.
마티스에게 딸 마르게리트(마고)는 특별한 存在였습니다.

唯一한 딸인 마고는 6살이었던 1901年 急性 傳染病인 디프테리아를 앓습니다. 이 때 機關 切開術을 받고 튜브에 依支해야만 呼吸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힐러리 스펄링의 마티스 電氣에 따르면, 當時 醫師가 마티스의 집 다락房에서 急하게 手術을 했고, 아버지는 어린 딸이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父母로서는 正말 가슴이 찢어지는 經驗이었겠지요.

그러나 마고는 苦痛을 이겨내고 단단하게 자라 아빠의 그림을 理解하는 몇 안 되는 支持者이자, 冷徹한 批評家가 됩니다. 홈스쿨 敎育을 받으며 藝術家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成人이 되어서는 스튜디오의 複雜한 일을 處理하는 管理者가 되기도 했고요. 그女가 40代 後半인 1945年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運動에 參加했다 게슈타포에 逮捕돼 拷問도 當하고 生命의 威脅도 여러 次例 겪으며 波瀾萬丈한 삶을 살았죠.

‘화가의 가족’ 속 마고의 모습
‘畫家의 家族’ 속 마고의 모습
이 그림이 그려진 1911年은 마고가 16살 때입니다. 가장 무겁고 어두운 色을 갖고 있지만, 손에 들고 있는 冊의 노란色이 그女가 한 없이 가라앉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있습니다.

마티스가 이 그림을 그리기 2年 前 마고는 두 番째 手術을 받아야 했습니다. 呼吸器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숨을 쉬기 위해서는 새로운 튜브가 必要했죠. 이 때 ‘앙데팡당’展에 作品을 냈던 마티스는 開幕式에 參席하지 못합니다. 當時 親舊에게 쓴 便紙에서 마티스는 “딸의 手術 後 아무 것도 할 意欲이 없다. 特히 그림은 더더욱 그리기 싫다”고 말합니다.

多幸히 마고는 고비를 넘기고 健康을 回復했습니다. 그제서야 마티스度 그림을 그리기 始作했고요. 어린 나이에 子息이 生死를 넘나드는 것을 지켜본 아버지의 心情은 어땠을까요. 十 數年間 묵힌 感情을 마티스는 짙은 검은 色의 옷에 풀어 넣은 것만 같습니다.

마음의 風景을 풀어 놓은 밸런스 게임


‘화가의 가족’ 속 형제들의 모습
‘畫家의 家族’ 속 兄弟들의 모습
視線을 왼쪽으로 옮겨보면 흥미로운 光景이 펼쳐집니다. 바로 똑같이 붉은 옷을 맞춰 입은 두 兄弟의 모습인데요. 두 사람이 正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을까요? 그럴 可能性은 稀薄합니다.

마티스가 비슷한 時期에 그린 ‘붉은 스튜디오’를 보고, 그의 作業室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두리번거렸다고 합니다. 四方이 벌건 스튜디오를 想像했는데, 實際는 全혀 달랐기 때문이죠. 마티스는 그럼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빨간 壁을 찾으시나요? 그건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卽 畫家는 現實을 있는 그대로 複寫한 것이 아니라 自身의 마음속에 風景을 풀어 넣었다는 이야기인거죠. 마치 家族 中 가장 어린 마고가 그림 속에서 가장 크게 表現된 것처럼요.

여기서 재밌는 건 두 兄弟가 두고 있는 체스 게임板입니다. 체스板이 그림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消失點 遠近法이 破壞된 모습이 보이시나요? 한쪽 팔을 괴고 있는 왼쪽 男子의 姿勢에 따라 체스版圖 한 귀퉁이가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죠. 그리고 체스板의 格子 무늬는 바닥의 複雜한 카페트 무늬로 擴張되어 리듬을 자아냅니다.

華麗한 패턴이 한 畵面에 爆彈처럼 쏟아져 자칫하면 지저분해보일 수 있는 그림을 마티스는 絶妙하게 整頓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複雜한 文樣을 마티스는 스페인에서 본 아라베스크 樣式에서 靈感을 얻었습니다.

마티스는 이 그림의 스케치를 스페인 세비야에서 始作해 프랑스의 집에서 完成했어요. 이슬람 文化圈인 무어族의 複雜한 幾何學 文樣이 마티스의 再解釋으로 생생한 밸런스 게임으로 誕生한 셈이죠. 두 兄弟가 하고 있는 체스 게임처럼 말입니다.

畫家의 家族을 그려달라고 注文한 男子


그런데 마티스는 갑자기 왜 家族 肖像을 그렸을까요?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마티스가 自發的으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그림을 일찌감치 알아본 러시아의 事業家 兼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이 마티스에게 “當身의 家族 肖像畫를 그려달라”고 注文했습니다.

드미트리 멜리코프가 그린 세르게이 슈킨의 1915년 초상화
드미트리 멜리코프가 그린 세르게이 슈킨의 1915年 肖像畫
20世紀 以前 유럽 그림의 大部分은 네덜란드 地域의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依賴한 것입니다. 王이나 貴族이 自身이나 家族의 肖像을 付託하거나, 自身이 갖고 있는 땅과 같은 것들을 注文한 그림이 相當히 많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王權이나 宗敎的 프로파간다를 目的으로 한 그림이 大部分이죠.

그런데 슈킨은 왜 自身의 家族도 아닌 마티스 家族의 肖像을 依賴한 걸까요? 直接的인 理由를 찾을 순 없었지만 슈킨과 마티스의 關係를 미루어 斟酌해보았습니다. 1910年 슈킨은 마티스의 그림을 받고 쓴 便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當身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未來는 當身의 것이에요.”

이 말에서 슈킨은 他人의 認定이나 누가 봐도 멋진 그림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닌, ‘未來’를 보고 마티스의 그림을 所藏했음을 斟酌할 수 있습니다.

于先 ‘사람들이 當身을 싫어한다’는 말에서도 보이듯, 當時에는 마티스의 作品을 所藏하는 것이 全혀 멋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의 基準으로 말한다면 基本도 갖추지 않은 怪常한 그림을 걸어 놓는 怪짜로 取扱받을 만한 일이었죠.

마티스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畫家들은 요즘으로 치면 ‘惡플러’들의 댓글과도 맞먹을 侮辱을 듣거나 루머에도 시달렸답니다. 한 評論家는 人種差別的 辱說을 하거나, 그가 貪慾的이라고 原色的으로 非難했습니다. 이를테면, “마티스는 當身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마티스는 술보다 危險하다! 마티스는 戰爭보다 더 큰 被害를 끼친다!”라는 表現도 했다네요. 슈킨이 마티스에게 便紙를 보낸 것은 같은 해 그가 이런 ‘批判 爆彈’을 맞고 나서였습니다.

마티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춤’도 슈킨이 의뢰해 그의 집에 걸린 그림이다.
마티스의 가장 有名한 作品인 ‘춤’도 슈킨이 依賴해 그의 집에 걸린 그림이다.
그런데 슈킨은 ‘未來가 마티스의 것’이라며 그를 應援합니다. 여기서 ‘未來’란 마티스의 그림이 담고 있는 時代의 價値, 銳利한 感覺과 눈 같은 것들이지요. 作家가 보는 世上을 가지려 했던 슈킨은 當然히 畫家에게 自身의 家族을 ‘묘사’하라는 注文이 아니라, 畫家가 가장 잘 아는 對象인 畫家의 家族으로 肖像을 그리며 그만의 ‘밸런스 게임’을 마음대로 펼쳐달라는 要請을 한 것입니다.

슈킨도 러시아에서 “아버지의 異常한 趣向 때문에 두 아들이 自殺했다”는 等 洶洶한 所聞에 시달렸답니다. 그럼에도 마티스는 自身을 알아봐주는 少數의 컬렉터, 作家들과 함께 非難을 견디며 默默히 作業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一般人에게도 사랑받기까지는 100年 가까운 時間이 걸렸죠. 勿論 아직도 마티스가 살던 마을에서는 그를 非難하는 사람이 있고, 마티스가 모델과 不適切한 關係였다는 루머도 如前하다고 합니다. 英國의 電氣 作家 힐러리 스펄링의 電氣는 마티스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追跡해가며 이런 誤解를 풀어나갑니다.

힐러리 스펄링의 마티스 전기 ‘Matisse the Master’
힐러리 스펄링의 마티스 電氣 ‘Matisse the Master’


畫家의 家族, 컬렉터가 된다는 것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스펄링의 電氣를 통해 마티스의 삶을 立體的으로 엿본 德分입니다. 特히 作家가 追求하는 信念과 價値를 알아봐주고 非難을 함께 견뎌 준 컬렉터, 그리고 ‘畫家의 家族’ 그림 속에서 밸런스 게임의 對象이 되었듯 마티스의 周邊을 맴돌며 그의 藝術 世界를 떠받쳐준 家族들의 모습이 印象的이었습니다.

흔히 컬렉터라거나 藝術家의 家族이라고 하면 뭔가 近似하고, 浪漫的이며 華麗한 모습을 想像하잖아요. 그런데 實狀은 全혀 다른거죠. 마티스의 아내는 그림이 늘 最優先인 男便을 理解하면서도 오랜 時間 속을 썩였고, 末年엔 마티스와 離婚을 합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마티스를 支持해주었지만 그 過程에 얼마나 많은 가슴 앓이와 苦生이 있었을지는 한 卷의 冊에 담긴 內容 理想이겠지요.

그러니 저에게는 ‘畫家의 家族’ 속 마티스 家族들의 모습이 마치 作家의 藝術 世界를 뒷받침해주며 每瞬間 艱辛히 均衡을 잡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힘들지라도, 이제 그러한 삶은 누구나 處한 生存의 條件이며 이런 苦痛 속에서 眞正한 아름다움이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特히 마음에 남은 건, 自己만의 눈으로 率直하게 世上을 보고 自身만의 宇宙를 創造하는 藝術家, 그리고 그 信念으로 통하는 사람들의 關係입니다. 요즘 藝術 作品 蒐集이 流行이라 하고, ‘아트 投資’에 關心이 많아지고 있죠. 作家의 信念과 時代的 價値가 맞아떨어진다면 ‘아트 投資’는 正말 收支가 맞는 일입니다. 그런데 數 年 週期로 바뀌는 流行에 따라 事故 팔리는 그림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 가운데 슈킨과 마티스의 이야기가 感動으로 다가온 거죠.

제 周邊에선 最近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K作家가 함께 展示했던 J作家의 作品을 所藏하며, “J의 作品은 韓國 美術史에 남을 만한 것이다. 나는 이 作品을 잘 간직하다 꼭 美術館에 寄贈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J作家는 그로테스크한 人體 表現으로 美術界에서도 好不好가 갈리는 作品을 하고 있거든요.

그 말을 傳해 들은 J作家의 아내는 ‘美術館에 寄贈하고 싶다’는 眞心어린 말이 正말 고마웠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누가 뭐라하든 내가 본 世上과 時代의 價値로 判斷하고, 信念으로 서로를 認定해주는 그런 모습에 저도 많은 感動을 받았습니다. 藝術 作品을 所藏한다는 건 結局 相對方의 눈과 世界를 갖는, 巨大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티스와 슈킨, 마티스의 家族, K作家와 J作家. 時空間을 넘나 들며 엿본 사람들의 삶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림을 所藏한다는 건 무엇인가. 모두가 無視하고 非難하는 가운데에서도 信念과 價値를 共有하는 關係. 나는 그런 信念을 剛斷 있게 받아들일 準備와 覺悟가 된 컬렉터일까?…


김민 記者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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