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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完全 싼티 스타일!|週刊東亞

週刊東亞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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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完全 싼티 스타일!

싸이, 김기덕, 허각, ‘워낭소리’ … 1等에 對한 叛亂

  • 최규성 大衆文化評論家 oopldh@naver.com

    入力 2012-10-05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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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완전 싼티 스타일!

    2012年 10月 4日 밤 서울廣場에서 싸이와 서울市民은 하나가 됐다.

    월드歌手 싸이(Psy·本名 박재상)의 빌보드 싱글 핫(HOT)100 차트 1位 登極 與否에 關心이 集中되고 있다. 世界 最高 權威와 傳統을 자랑하는 美國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1位 競合을 벌이는 韓國 大衆歌手라니, 이게 꿈인가 生時인가. 10月 4日 歷史的인 1位 登極을 期待했지만 綜合點數에서 500點이 不足해 如前히 2位다. 한 週 前 3000點이나 벌어졌던 間隙을 一週日 만에 2500點 따라잡았기에 世界 頂上 登極 카운트다운은 如前히 有效하다. 싸이는 韓國 大衆音樂 100年 歷史에서 單 한 名도 오르지 못한 前人未踏의 未開拓地를 ‘말춤’을 추며 거침없이 疾走하고 있다.

    主流로 떠오른 B級 文化

    난 완전 싼티 스타일!

    1960年代 創作 록音樂을 처음 선보인 록의 代父 신중현.

    頂上 登極 與否를 떠나 이미 싸이는 韓國 大衆音樂의 살아 있는 傳說이 됐다. 現在 ‘江南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신드롬의 源泉인 인터넷 動映像 共有 사이트 유튜브에서 照會 數 3億6000萬 件을 記錄했다. 7月 15日 처음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公開한 以後 81日 만에 이룬 偉業이다. 그동안 가장 높은 照會 數를 記錄한 뮤직비디오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Gee’로, 3年에 걸쳐 8400萬 件을 記錄했다. 싸이의 거침없는 行步는 ‘빌보드’誌의 寸評처럼 ‘로켓 같은’ 速度로 떠나는 超高速 宇宙旅行 같다.

    ‘江南스타일’은 美國 市場보다 더 保守的이고 아시아 音樂을 受容하는 데 否定的인 態度를 보여 왔던 英國 公式 차트에서 이미 1位에 올랐다. 또한 18個 國家의 아이튠즈 ‘탑 송스(TOP SONGS) 차트’에서도 1位를 휩쓸고 있다. 國內外 言論은 一齊히 그의 신드롬을 分析하느라 정신없고, 이제는 韓國人 歌手 最初로 빌보드 차트 1位 登極 與否에 觸角을 곤두세우고 있다.

    싸이로 因해 B級 文化에 對한 關心도 增幅하고 있다. B級 文化란 主流 高級文化의 反對 槪念으로, 幼稚하거나 暴力的이고 煽情的인, 低豫算으로 製作한 文化를 가리킨다. 오랫동안 大衆은 이 ‘싼티’나는 文化를 外面했고, 少數만 熱狂했다. 따지고 보면 1960年代 創作 록音樂을 처음 선보인 록의 代父 신중현과 ‘怪짜 監督’으로 불린 김기영 監督, ‘피에타’로 베니스國際映畫祭에서 黃金獅子賞을 받은 김기덕 監督의 作品도 B級 文化에 다름 아니다. 그런 點에서라면 大衆 嗜好에 符合하는 트렌드와는 距離가 먼, 時代를 앞서가고 先驅的 實驗을 선보였던 모든 作品과 아티스트는 韓國 B級 文化의 先驅者인 셈이다.



    B級 文化에 對한 關心을 誘發한 것은 싸이가 처음은 아니다. 장기하로 代辯되는 인디音樂과 獨立映畫 ‘워낭소리’의 豫想치 못한 興行을 통해 이미 徵候가 나타났다. 오디션 烈風을 불러온 ‘슈퍼스타K 2’ 決勝戰에서 對決했던 허각과 존朴도 빼놓을 수 없다. 外貌와 스펙에서 두 사람은 確然히 A級과 B級으로 區分됐다. 그런데 大衆은 노래 實力 빼고는 優越한 구석 하나 없는 허각을 最終 選擇했다. 왜 그랬을까. 2000年代 들어 우리 社會는 華麗한 스펙과 外貌, 黃金萬能主義에 물들어 있다. 所謂 ‘1等만 記憶하는 더러운 世上’이 됐다. 이에 잘난 人間에 치어 相對的 剝奪感을 느꼈던 大多數 大衆이 잘나 보이는 모든 것에 反感을 드러내기 始作했다.

    디지털時代에는 不便한 眞實을 徹底히 숨기고 近似하게 包裝한 A級 文化의 過剩供給과 더불어 A級 人間이 世上을 主導했다. 이에 挫折과 厭症을 느낀 大衆은 自身이 느끼는 現實과 未來에 對한 不安感 같은 缺乏 心理를 報償받으려고 代案的 文化인 B級 文化에 熱狂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點에서 B級 典型인 싸이의 成功은 豫定된 手順일 수도 있다. 旣存 케이팝(K-pop) 歌手들은 멋지고 近似하게 自己를 包裝한다. 싸이는 近似하게 包裝하기보다 망가진 모습을 오히려 浮刻한다. 外貌는 ‘싼티’와 ‘低廉艦’이지만 알맹이는 諧謔과 率直함으로 채워진 水準級의 作品이라는 事實을 大衆이 認識하기 始作한 것이다.

    싸이는 一般 大衆보다 自身을 寒心하고 無識하게 보이는 이미지로 親近感을 이끌어냈다. 宏壯히 怜悧한 戰略이다. 데뷔曲 ‘새’를 發表했을 때 大衆은 그를 ‘獵奇歌手’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승기의 ‘내 女子라니까’, 서인영의 ‘신데렐라’,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 같은 히트曲을 織造한 히트製造기다. 原色的인 愉快함을 킬러 콘텐츠로 만들 줄 아는 싸이는 ‘江南스타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傳達했고 全 世界는 그의 춤에 魅了됐다.

    ‘江南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빵 터진 最高의 瞬間은 化粧室 便器 場面이다. 싸이는 누구나 한 番쯤 해봤지만, 하지 않은 척하는 不便한 眞實을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赤裸裸하게 보여준다. 그것을 보면서 大衆은 自身이 괜찮은 存在라는 慰安을 받는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기는 化粧室 안이나 스마트폰이나 매한가지다.

    난 완전 싼티 스타일!

    2010年 10月 22日 ‘슈퍼스타K 2’ 最終 라운드에서 허각의 優勝이 確定된 瞬間, 마지막까지 熾烈한 競爭을 펼친 존박이 拍手를 보내고 있다(왼쪽). 韓國 映畫史上 最初로 世界 3代 映畫祭인 第69回 베니스國際映畫祭에서 黃金獅子賞을 受賞한 映畫 ‘피에타’의 김기덕 監督.

    狂風의 始作, 6輯 ‘싸이 6甲 Part 1’

    B級 文化의 得勢는 디지털이 만들어낸 透明性의 힘이다. 스마트폰 普及으로 空虛한 스펙 자랑은 사라졌다. 檢索하면 바로 모든 걸 確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잘난 척’하는 競爭보다 失手하고 망가진 이야기가 술자리와 TV 토크쇼에서 大勢를 이루는 것은 그런 逸脫的인 率直한 모습에 大衆이 人間的 魅力을 느끼기 때문이다. 性的 象徵性이 剛한 말을 춤으로 表現하고 채찍을 휘두르면서 펄쩍펄쩍 뛰지만, 全혀 멋있거나 强靭해 보이지 않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熱狂하는 現象은 디지털時代의 缺乏이 불러온 完璧한 逆說의 美學이다.

    7月 15日 싸이가 6輯 ‘싸이 6甲 Part 1’을 發表하고 음원차트를 ‘올 킬’했을 때만 해도 모두 異例的인 狂風 程度로 생각했다. 그러나 全 世界 여름 音樂市場을 完全 席卷했고, 풍요로운 結實을 앞두고 있다. 비주얼的으로 ‘江南’과 距離가 멀고, 近似한 아이돌도 아닌 35歲 有婦男 歌手 싸이의 ‘江南스타일’이 全 世界를 興奮시킨 要因은 무엇일까.

    먼저 萬國公用語人 웃음 코드를 들 수 있다. 또한 單純하면서도 中毒性 强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코믹하면서도 性的 코드를 絶妙하게 結合한 ‘말춤’도 빼놓을 수 없다. 美國 放送에서 韓國語로 ‘大韓民國 萬歲’를 외치는 堂堂함도 强點이다. 그가 美國에서 人氣 있는 要因에 對해 美國 言論은 “以前 韓國 大衆歌手와 달리 英語에 能通하고 世界的 스타 앞에서도 주눅 들거나 羨望하는 表情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傳한다. ‘思想이 울퉁불퉁한’ 싸이의 江南스타일的 個性도 人氣의 絶對 要因이다.

    江南스타일은 무엇을 뜻할까. 歌詞를 살펴보면 낮에는 따사로운 人間的인 女子, 밤이 오면 心臟이 뜨거워지는 女子, 그런 反轉 있는 女子이면서 貞淑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女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女子, 가렸지만 웬만한 露出보다 冶한 그런 感覺的인 女子가 바로 江南스타일이다. 男子의 境遇는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밤이 오면 心臟이 터져버리는 그런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筋肉보다 思想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가 江南스타일이다. 故로 江南스타일은 스타一理視한 패션이나 富裕한 生活 樣態를 指稱하기보다 熱心히 일하고 즐길 줄 아는 自身이라는 ‘共感帶’가 생긴다.

    싸이가 던지는 强力한 메시지

    世界人과 疏通하는 ‘말춤’은 어린이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單純한 춤이다. 東西古今의 모든 名曲을 살펴보라. 하나같이 難解하기보다 쉽고 單純하다는 共通點을 지닌다. 흥미로운 것은 ‘오빤 江南 스타일’이라는 노랫말이 歌詞를 알아듣지 못하는 一部 外國人 사이에서는 ‘오픈 콘돔 스타일’로 들리는 幻聽作用까지 發揮하며 섹시 興行코드로 作用한다는 點이다.

    싸이의 成功은 케이팝의 볼륨 擴張이라는 點에서 意味가 크다. 아이돌 댄스音樂이 全部라는 케이팝에 對한 海外의 否定的 認識이 싸이로 因해 허물어지고 있다. 核心은 ‘세련된 外貌’와 ‘俊秀한 몸매’가 아닌 ‘獵奇’와 ‘코믹’이다. 부담스러운 外貌는 코믹이라는 背水의 陣을 통해 劇的 反轉을 이뤄냈다.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싸이의 成功에 우리 時代 大衆은 代理滿足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當해낼 수 없다. 싸이의 豫想치 못한 成功은 어떤 音樂이든 自己 色깔을 擔保한 良質의 콘텐츠는 끝내 成功한다는 可能性을 보여줬다. 걱정스러운 것은 成功한 콘텐츠로 장르 쏠림 現象이 極甚하게 나타나는 우리 社會의 淺薄한 慣行이다. 그의 成功을 보고 비슷한 스타일로 ‘묻지마’식 따라 하기를 試圖할 蓋然性이 크다. 이는 攻滅로 가는 지름길이다. 싸이는 트렌드에 敏感하기보다 自己 色彩가 分明한 音樂으로 오랜 施行錯誤 끝에 成功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異常한 自己만의 想像力과 差別化한 콘텐츠, 그리고 忍耐와 努力, 危機에도 挫折하지 않는 오뚝이 같은 自信感. 未來가 不確實한 디지털時代의 大衆에게 던지는 싸이의 强力한 메시지다. 者! “갈 때까지 가보자”고 목 놓아 외치는 싸이의 終着驛이 어디인지 氣分 좋게 지켜보자.

    ‘싸이’는 누구인가

    藝名부터 獵奇的… 울퉁불퉁 音樂 人生 딛고 華麗한 非常


    난 완전 싼티 스타일!

    2007年 6月 4日 兵役 非理 疑惑과 關聯한 調査를 받기 위해 서울東部 地檢에 出頭한 싸이.

    音樂 人生의 頂點을 달리는 싸이의 지난 12年 音樂旅程은 決코 平坦하지 않았다. 1977年 12月 31日 서울 江南에서 태어나 靑少年期를 江南 武道場을 涉獵하며 보낸 그는 事實 집안의 골칫덩어리였다. 以後 美國 버클리대 音大에서 受學한 그는 江南 富裕層인 아버지가 自費로 만들어준 2001年 1輯 ‘싸이 프롬 더 싸이코 월드(Psy from The Psycho World)’로 데뷔했다. ‘나 完全히 새됐어’라는 流行語를 낳은 랩 댄스曲 ‘새’로 그는 華麗하게 非常했다.

    ‘싸이코’에서 앞部分을 따온 藝名부터 獵奇的이었던 그의 戰略은 率直하고 거침없는 堂堂함에 있었다. 하지만 單숨에 大衆을 사로잡는 吸入力에도 評壇으로부터 正當한 音樂的 評價를 받지 못했다. TV 藝能프로그램 出演을 마다하지 않았던 行步로 뮤지션보다는 엔터테이너 이미지가 剛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創作과 프로듀싱 能力까지 兼備한 뮤지션이라는 事實은 가려졌다.

    受容 可能한 表現의 境界를 絶妙하게 줄타기해온 그의 破格的인 歌詞가 全혀 부담스럽지 않은 理由도 特有의 웃음코드 때문이다. ‘노래하는 社會運動家’를 自處했던 2輯 ‘成人用’도 ‘19禁’ 딱紙가 붙었을 만큼 危殆했지만 뮤지션으로서의 眞摯한 態度를 읽을 수 있는 앨범이었다. 成功的 데뷔도 暫時. 大麻草 波動으로 那落으로 떨어진 그는 2002年 韓日월드컵 때 끼를 噴出한 수많은 公演으로 反轉의 機會를 마련했다. 3輯 ‘챔피언’의 大舶으로 되살아났지만 이番에는 公益勤務 波動과 再入隊라는 惡材에 휘청거렸다.

    그런데 또 일어섰다. 쓰러지기를 反復한 그의 音樂 人生은 危殆危殆해 보였지만 언제나 일어서는 ‘오뚝이’였다. 싸이는 國內에서 4時間짜리 超大型 公演을 훌륭하게 演出해온 極少數 歌手다. 2002年 ‘올나잇스탠드’를 始作으로 軍 問題로 自肅하는 期間에도 公演을 쉬지 않았던 그다.



    韓國 歌手들의 빌보드 차트 征服社

    1959年 金시스터즈가 最初… 韓國語론 ‘트윙클’李 126位


    난 완전 싼티 스타일!

    美國에 進出한 後 2009年 9月 뉴욕에서 열린 한 파티에 參席한 원더걸스.

    빌보드 차트는 美國 音樂雜誌 ‘빌보드’가 每週 發表하는 大衆音樂 人氣 順位表다. 1894年 美國 뉴욕에서 創刊한 ‘빌보드’는 1950年代 中盤부터 大衆音樂의 人氣 順位를 集計해 發表해왔다. 그中 ‘싱글 핫100’ 차트는 앨범 販賣量과 放送 回數 等을 綜合한 것으로 美國은 勿論, 世界 各國 大衆音樂의 傾向을 읽을 수 있는 指標다.

    빌보드 차트는 그동안 韓國 歌手들과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빌보드 차트에 처음 進入한 韓國 歌手는 1959年 아시아 걸그룹 史上 最初로 美國에 進出한 金시스터즈다. 當時 李承晩 大統領의 許諾을 받아 美國에 進出한 以後, 美國 最高의 人氣 地上波 TV 토크쇼 ‘밥 호프 쇼’ 出演과 싱글音盤 發表로 重要 音樂雜誌의 表紙모델, 各種 特輯記事의 主人公이 되는 暴發的인 反應을 이끌어냈다. 金시스터즈는 1962年 美國 現地 音盤社 모뉴멘트(MONUMENT)를 통해 데뷔 앨범을 發表했다. 美國 보컬그룹 코스터스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앨범 2面 첫 트랙 ‘찰리브라운(Charlie Brown)’李 빌보드 싱글 차트 7位에 登極해 世界를 깜짝 놀라게 했다. 韓國語가 아닌 英語로 부른 노래였다.

    金시스터즈 以後 한동안 빌보드 차트와 因緣을 맺지 못했던 韓國 歌手들은 2009年 걸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싱글 차트 76位를 記錄하며 다시금 불을 댕겼다. 같은 해 앨범 綜合 차트 빌보드 200에서 보아의 앨범이 처음으로 127位에 오르며 進入에 成功했다. 이어 올 3月 아이돌그룹 빅뱅의 신보 ‘얼라이브’가 차트 150位에 올랐다. 韓國語 앨범 最初로 빌보드 메인 차트에 進入한 記錄이다. 이어 5月에는 少女時代 유닛그룹 태티서의 ‘트윙클’李 126位를 記錄하며 韓國語 앨범 最高 順位 記錄을 세웠다.

    韓國 男子 솔로歌手로는 最初로 빌보드 싱글 핫100에 進入해 2位에 登極한 싸이는 以前의 모든 記錄을 單숨에 뛰어넘었다. 萬一 싸이가 빌보드 차트 1位에 오른다면 國內 歌手로는 前無後無한 記錄이며 아시아 歌手로는 2番째 記錄이다. 1963年 6月 15日 日本 엔카 歌手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すきやき·原題 上を向いて步こう)’가 3週 連續 1位에 오른 바 있다. 그의 노래 ‘右에오 무이테 아루코우(上を向いて步こう)’는 유럽 재즈밴드의 리메이크로 西歐에 알려진 後, 아무런 聯關도 없는 題目 ‘스키야키’로 遁甲해 1位를 차지하는 奇跡 같은 일을 演出했다. 當時 사카모토 큐는 日本語 노래로 世界 大衆音樂의 中心인 美國에서 1位를 차지해 世界를 驚愕케 만들었다. 그 記錄마저도 이제 韓國語로 노래한 싸이가 깨기 一步直前이다.

    싸이, 사카모토 큐, 金시스터즈의 닮은꼴은 아무도 豫想하지 못한 偉業이라는 點이다. 單 한 曲 반짝 狂風을 일으키고 사라진 日本의 傳說 사카모토 큐와는 달리 싸이가 美國 땅에서 롱런하려면 개그歌手의 이미지를 벗고 自身의 音樂性을 라이브舞臺와 後續 히트曲으로 遺憾없이 發揮해 ‘원히트원더(one hit wonder)’로 그칠 것이라는 現地의 豫想을 깨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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