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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발짝 더'의 마음으로|디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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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발짝 더'의 마음으로

옷깃에 가랑비 젖듯 取材源에 스며든 5個月
김재희 記者 | 동아일보 文化部 2022-02-10 18:00:26
“그래도 오늘 좀 더 親해진 거 같아요.”

安山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地下鐵에 午後 10時 쯤 몸을 실은 히어로팀員들은 이 말을 자주 했다. 하루 終日 安山의 敎會, 警察署, 市民團體를 돈 뒤, 마지막 日程으로 各 回次 主人公들과 저녁食事를 마친 팀員들은 녹초가 된 狀態였다. 너덜너덜해진 우리에게 가장 큰 慰安은 어제보다 오늘의 取材源이 우리를 더 便하게 對했다는 느낌,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事實이었다. 첫 만남에서 "네" "아니오"로 一貫했던 원곡중 2學年 피브키나 이리나 가 처음으로 學校에서 누구와 親한지를 이야기했을 때, “힘든 거 없다”며 듬직한 모습만 보이던 先日中 3學年 이고리 허가이 가 進路에 對한 苦悶을 털어놨을 때 히어로팀員들은 이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뿌듯함으로 疲勞를 씻었다.

조금은 不便하고 語塞한 첫 만남에서 한 꺼풀 벗겨진 모습을 알아가기까지의 過程에는 時間이 걸렸다. 가랑비에 옷 젖듯 徐徐히 取材源에게 다가가는 過程은 낯설었다. 旣存 取材部署에서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當場 다음날 紙面에 실을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壓迫은 記者라는 職業의 宿命이기에,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 이토록 오랫동안 功을 들인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팀員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오늘 좀 더 親해졌다”는 말 뒤에는 늘 이 말이 따라왔다. “親해질 時間이 주어진다는 게 참 多幸이에요. 히어로팀이 아니었다면 絶對 이렇게 못 했을 텐데.”
마음을 얻는데에 지름길은 없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것이 重要했던 理由는 取材源들의 傷處와 恥部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히어로팀 1~4回 各 回次 에는 問題意識이 있었고, 問題意識은 各 回次 主人公들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다. 非合理的인 法과 制度에 對한 批判을 듣는 건 比較的 쉬웠다. 이들이 가장 말하길 꺼려했던 건 眞心으로 傷處가 됐던 記憶들이었다. 異邦人으로써 韓國에서 겪었던 差別의 經驗들은 時間이 지나 흐릿해지기도 했지만, 同時에 이들이 애써 記憶의 저便으로 묻으려 무던히 애쓴 過去이기도 했다. 어렵게 지운 記憶을 다시 상기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躁急함은 팀員들을 支配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얘기가 되는’ 멘트를 들어야만 하는 職業病에 數年 間 鍛鍊이 된 탓이었을 것이다. 都統 마음을 열지 않는 取材源 앞에서 말을 빙빙 돌리다 “韓國에서 겪은 差別이 무엇이냐”를 끝내 묻지 못하고 虛脫한 마음으로 택시에 몸을 실은 날도 숱했다. 早急한 마음에 “永住權 申請은 왜 못하셨어요? 財産要件을 못 맞추시나요? 사는 곳은 月貰인가요?”라고 돌直球를 던졌다가 “뭘 그렇게까지 仔細히 알려고 해. 오늘은 그만하자”며 不便한 내色을 하는 取材源 앞에서 안절부절 못했던 記憶도 있다. ‘지친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 아니, 事實은 每番 지쳤다. 取材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傷處를 아프지 않게 건드릴 수 있는 方法이 무엇인지가 머릿속 한켠을 빙빙 돌았다.
경기 안산시 선일중 3학년 아딜벡, 이고리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길에 이고리가 찍어준 사진. 왼쪽부터 아딜벡, 필자, 남건우 기자. 
京畿 安山市 先日中 3學年 아딜벡, 이고리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地下鐵驛으로 向하던 길에 이고리가 찍어준 寫眞. 왼쪽부터 아딜벡, 筆者, 남건우 記者.
僥倖을 바랄 수 없는 取材였다. 엿듣거나, 取材源이 말失手를 하거나, 첫눈에 取材源의 好感을 사서 單獨 情報를 듣는 境遇가 種種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에게 들으려 한 건 드러내길 꺼리는 過去였다. 取材源의 말失手를 바랄 수도, 單番의 人間的 好感을 바랄 수도 없었다. 徹底한 ‘기브 앤 테이크’도 不可能했다. 이들은 하루하루 生計가 急한 外國人 勞動者와 在外同胞, 또는 힘든 時期를 지나온 뒤 어렵사리 平凡한 家庭을 이룬 移住民 家庭이었다. 當場 이들에게 무언가를 約束할 수 있는 카드가 우리 손엔 없었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當身들의 이야기로 韓國 社會가 바뀌는데 힘을 보태달라는 것’이었다.

純粹한 好意, 그 힘에 기대는 것밖에는 方法이 없었다. ‘共存’이라는 記事의 趣旨에 共感했던 사람들은 마음을 열어 주었다. 移住民이 漸漸 많아지는 韓國, 이런 韓國의 現實에서 當身들이 겪었던 不合理, 差別, 아픔의 經驗이 韓國을 共存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點을 傳達하는데 取材 初盤의 相當部分을 割愛했다. 普通 記事를 쓸 때 取材源을 한番, 많게는 두 番을 만나지만 히어로팀 取材에서는 두 番째 만남까지 記事의 메시지를 說明하고 그들의 共感을 얻는데 割愛됐다. 1~4回의 主人公들 모두 세 番째 만남에서야 眞짜 인터뷰가 始作됐다.
時間은 背信하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곳 애써 外面하려 했던 差別의 記憶, 或은 自身도 미처 差別이라 생각해보지 못했던 經驗에 對한 이야기는 세 番째 만남 以後로도 數次例 더 만난 끝에야 나왔다.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갈래?”

只今 사는 집이 月貰냐는 質問에 “그만 하자”던 몽골人 치메도르치 어티겅도야 氏 가 이런 提案을 했다. 正確히 다섯 番째 만남에서였다. 退勤 뒤 어린이집에서 孫子를 下院시킨 뒤 저녁 7時가 다 돼 約束場所에 나타난 그였다. 30分만에 ‘男便이 기다린다’며 걸음을 재촉하던 그를 부축해 집앞까지 바래다줬다.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던 터였다. 屋塔房 階段 앞에서 어티겅도야 氏는 “저녁 안 먹었지? 먹고 가”라며 記者의 등을 두드렸다.


어티겅도야 씨의 남편이 요리해 준 몽골식 고기볶음밥. 
The Original Content어티겅도야 氏의 男便이 料理해 준 몽골式 고기볶음밥.
어티겅도야 氏의 男便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몽골式 고기볶음밥’을 뚝딱 料理해 卓子 위에 놓았다. 볶음밥을 뜨며 孫子 얘기, 딸 얘기를 하던 어티겅도야 氏는 이내 韓國에 발을 디뎠을 때를 回想했다. ‘너무 仔細히 알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던 그는 韓國에 처음 왔을 때 귀에 벌레가 들어가는 單칸房에서 生活했다는 것도, 只今 살고 있는 집 亦是 月貰지만 幸福하다는 것도 그날 처음 털어놨다. ‘記事에는 쓰지 말아 달라’며 月給과 財産까지 이야기했다. “韓國에서 이렇게 熱心히 살았는데도 내가 모은 돈이 이것밖에 안 돼.”

4回의 主人公인 鉏샤니 氏 의 이야기를 듣기까지도 오랜 時間 親해지는 過程이 있었기에 可能했다. 샤니는 堂堂하고 快活한 26살 職場人이었다. 苦難이 있어도 그걸 苦難이라 생각하지 않는, 强靭한 性格의 所有者였기에 그에게서 傷處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學窓時節 差別의 記憶이 있느냐”는 質問을 던지면 늘 샤니는 “全혀 없었어요”라고만 했다. 그런 샤니度 親오빠, 單짝 親舊와 함께 만나고 서너 番 넘게 食事도 하며 가까워진 끝에 傷處가 됐던 過去의 記憶을 털어놨다.

바람이 찼던 11月의 어느 날 밤이었다. 1次 떡볶이집, 2次 이자카야를 거쳐 3次로 간 羊꼬치집에서 샤니는 “요즘 親舊들 만나면 이 술밖에 안 먹는다”며 연태高粱酒와 칭따오 麥酒를 섞은 ‘連打誤’를 만들어줬다. 連打誤 몇 盞을 마신 샤니는 高等學校 時節 國史試驗에서 1等을 한 그를 일으켜 세운 先生님이 “샤니는 國事를 몰라도 되는데도 成績이 좋다”고 稱讚했던 날을 떠올렸다. 

“나도 韓國人인데 왜 내가 國史를 몰라도 되느냐고 先生님한테 가서 따졌어요. 火도 나고 속도 上했죠.”
혼자가 아니야
히어로팀 4期는 回次에 區分을 두지 않고 모든 取材源들을 最大限 다 같이 만나려고 했다. 팀員들은 서로의 不足한 點들을 채워줬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質問을 던져주기도 했고, 꺼내기 어려운 날카로운 質問들을 부드럽게 돌려서 말해주기도 했다. 共同取材의 또 다른 長點은 똑같은 말을 들어도 다양한 解釋이 可能하다는 것이었다. 取材源이 한 말의 基底에 어떤 感情이 깔려있었을 것인지를 서로 짚어주기도, 或은 흘려들었던 取材源의 말이나 자주 使用하는 單語가 그 사람의 重要한 特徵이 되기도 했다.

2021年 8月부터 2022年 1月까지 5個月 동안 1週日에 3, 4番을 安山에 가면서 히어로팀院은 이들과 무척 가까워졌다. 나중엔 “오늘은 왜 ○○記者 안 왔어요?”라며 아쉬워하는 取材源도 생겼을 程度다. 記事가 나간 뒤 밥 먹자며 取材源들에게서 連絡이 왔다. 安山에서 보기로 한 분도, 서울의 맛집을 가기로 한 분도 있다.

돌이켜보면 지치지 않은 게 神奇할 程度로 많은 곳을 다녔다. 히어로팀 4基의 取材 現場은 그 어느 旗手보다 넓었다. 鞍山, 水原, 大阜島, 浦項, 광나루, 安養까지. 1週日 내내 安山을 누비다가 4話 主人公 윤대성 氏 의 海兵隊 入隊를 取材하기 위해 浦項을 가기도, 2話 主人公 와티 의 단골 魚묵집을 가기 위해 安山에서 水原으로 핸들을 돌리기도 했다. 팀員 누구 하나 꺼리지 않고 5個月 동안 全國 坊坊曲曲을 누릴 수 있었던 原動力은 “그래도 오늘 좀 더 親해졌다”는 뿌듯함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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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6~01.19 · 시리즈 4話 · 히어로 콘텐츠 4期
김재희 기자
김재희 記者 | 동아일보 文化部

2015年 入社해 産業部, 社回附, 文化部를 거쳐 企劃 및 深層取材를 하는 히어로콘텐츠팀에 왔습니다. 히어로는 記者가 아닙니다. 우리 社會 어딘가에서 記者에 依해 發見되길 기다리는 분들이 히어로입니다. 그 분들이 내는 勇氣있는 목소리가 더 나은 世上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숨은 히어로를 찾기 爲해, 躊躇하는 히어로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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