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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回 原曲에는 國境이 있다

原曲에는 國境이 있다

發刊일 2022年 1月 16日

全校生 中 韓國人은 單 여섯 名, 安山原曲初.
누군가에겐 國境을 그어 避하고 싶은 곳,
누군가에겐 國境 너머로 가는 디딤돌이다.

韓國에서 外國人이 가장 많이 사는 都市, 安山. 그中에서도 唯獨 外國人이 많은 洞네가 있다. 바로 원곡동이다.

外國人 比率 70%(1萬4139名). 10名 中 7名이 外國人이다.

半月工團과 가까운 원곡동 빌라村, 再開發이 마무리되고 있는 백운동 新築 아파트團地.

그 境界에 國境을 그리듯, 安山原曲初等學校가 있다.

“너 韓國人이었어?”

下校길 粉食집에서 安山原曲初 5學年 최성훈(假名·12)李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같은 班 親舊 양주원(12)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원이는 입안 가득 떡볶이를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12月 칼바람에 두 볼이 발갰다. 성훈이는 주원이와 親舊가 된 지 3年 만에 주원이의 國籍을 처음 알았다.

“주원이度 다른 나라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살 때 中國에서 온 성훈이는 주원이가 韓國人인 事實에 놀랐다. 數百 名이 다니는 原曲初에서 성훈이는 單 한 番도 韓國人 親舊를 본 적이 없었다. 只今까지 성훈이가 본 親舊들은 모두 外國人이거나 外國人 父母에게서 태어나 韓國 國籍을 얻은 아이들뿐이었다. 原曲初 學生 中 韓國人은 單 여섯 名에 不過하기 때문이다. 성훈이는 보기 드문 韓國人에 주원이가 屬할 줄 몰랐다.

1學年 때부터 原曲秒에 다닌 주원이는 3學年 때서야 原曲初의 특별함을 깨달았다. 2年 前 어느 날, 下敎하며 다른 學校 親舊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걸 봤다. 아이들은 韓國語만 쓰고 있었다. 주원이에게는 이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原曲初 近處에선 下校 時間에 러시아語, 中國語가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아, 우리 學校엔 韓國人이 別로 없는 거구나….’

주원이네 班 數學 時間엔 韓國人 先生님과 러시아語 先生님 두 분이 들어온다. 러시아語 先生님은 러시아에서 온 親舊들에게 러시아語로 數學을 알려준다. 點心 給食 메뉴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러시아 소고기 飮食), 탄두리 치킨에 라氏(印度 飮食). 原曲初 近處엔 러시아에서 온 學生들에게 러시아語로 數學科 國語를 가르쳐 주는 學院도 있다.

이날 午後 1時 半頃 原曲初 正門을 나온 아이 50餘 名 中 大部分은 원곡동 빌라村으로 向했다. 주원이를 비롯한 5名假量만 빌라村 反對便인 新築 아파트 團地로 向했다. 新築 아파트 團地는 原曲初에서 걸어서 10分도 안 되는 距離에 있다. 하지만 원곡동이 아닌 백운동에 屬한다. 印度가 좁은 빌라村과 달리 印度도 道路도 넓은 아파트 團地. 原曲秒에 다니는 大多數 아이들에겐 낯선 곳이다.

安山原曲初 5學年 양주원은 學校에 얼마 되지 않는 韓國人이다.

주원이 家族은 지난해 8月 백운동 新築 아파트로 移徙했다.

“아파트에 原曲初 다니는 애가 한 名도 없어요. 元來 6學年 兄 한 名이 原曲初 다녔는데 關山初로 轉學 갔어요.”

주원이가 다니는 아파트 近處 跆拳道 學院이나 論述 學院에도 原曲初 親舊는 없다. 學校와 달리 學院엔 親舊들이 全部 韓國人이다. 주원이에겐 外國人이 大多數인 學校와 韓國人이 前婦人 學院이 너무도 다르다.

“엄마, 우리 班에 韓國人이 나랑 先生님밖에 없어.”

주원이 어머니 최지윤 氏(假名·46)는 어느 날 주원이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韓國 아이가 別로 없으니 괜히 주원이만 疏外되는 거 아닌가.’

지윤 氏는 不安感에 주원이를 轉學 보낼까 苦悶도 했다. 周邊에서도 걱정을 키웠다.

“주원 엄마, 왜 그 學校엘 보내?”

“다른 學校에 안 보내?”

하지만 주원이는 싫다고 했다. 주원이는 原曲초가 좋다. 좋은 親舊, 좋은 先生님이 있는 우리 學校니까. 지윤 氏도 주원이가 5年째 잘 다니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學校에서 中國語나 러시아語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도 있고, 앞으로 外國人이 더 많은 世上에서 살 테니 미리 適應하면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登校하는 學生들이 京畿 安山市 檀園區 백운동 新築 아파트 團地 앞을 지나고 있다.

같은 아파트 團地에 사는 김지민 氏(假名·39)는 6學年인 딸을 關山秒에 보낸다. 原曲秒보다 조금 더 멀다.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2016年 初等學校 入學을 앞둔 딸의 住所地를 親庭으로 옮겼다.

“原曲初 敎育課程이 너무 多文化 아이들 爲主로 돌아간다고 들었어요. 多文化 아이들이 오히려 韓國 애들을 王따시킨다는 얘기도 있었죠….”

周邊 韓國人 學父母들도 마찬가지였다. 管山草 配定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아이 住所地만 옮기거나, 아예 家族이 다같이 잠깐 그쪽으로 移徙 다녀오기도 했다. ‘僞裝轉入’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父母 마음은 大槪 그랬다.

‘韓國 애라서 疏外되면 어쩌지?’ ‘이러다 國語 成績 떨어지면 안 되는데….’

地域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原曲初 配定을 避하는 ‘꿀팁’李 공유됐다.

“原曲初 配定인데 어떡해요.”

“빨리 住所를 옮기세요. 入學하고 난 뒤 轉學시키긴 어려워요.”

韓國人 學父母들은 아이들에게 일러두곤 한다.

“原曲初 쪽으로는 가지도 말아야 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智旻 氏가 원곡동에 간 건 2年 前 知人 食堂을 訪問한 게 마지막이었다.

“食堂街는 것도 무서워요. 外國人이랑 눈 마주치면 괜히 害코지 할 것 같고…. 혼자는 絶對 못 가요.”

  • “多文化 많은 곳은 雰圍氣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原曲秒에 아이 안 보내려면 轉入申告밖에 方法이 없어요.”

  • “新築 團地에서 關山初로 아이들 보내기 위해 엄마들이 엄청 努力했어요.
    學校 距離는 멀지만 만족해요.”

  • “原曲初는 外國人들이 많아 水準이 떨어진다고 들었어요.”

  • “多文化 많긴 합니다. 悲秋千이요.”

높아지는 障壁

원곡동과 백운동은 國境으로 갈린 것 같지만 5年 前까진 하나의 원곡동이었다. 백운동은 過去 원곡 1, 2동이었다. 원곡동은 原曲本洞으로 불렸다. 2017年에서야 只今처럼 나뉘어졌다.

백운동 地域 住民 數가 크게 늘었고, 數字로 나뉜 洞名을 整備해야 할 必要도 있었다. 여기에 원곡동에 線을 그으려는 輿論도 作用했다.

“外國人이 많다는 원곡동에 對한 否定的 認識이 名稱을 바꾸는 데 影響을 미쳤죠.”(송바우나 安山市議員)

障壁은 더 높아졌다.

“原曲秒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어요.”

백운동 新築 아파트 入住民들은 入住 6個月 前부터 原曲初 配定에 反對하기 始作했다. 住民들은 京畿道安山敎育支援廳에 100件이 넘는 民願을 提起했다. 通學區域을 關山初까지 넓혀달라는 內容이었다.

안복현 原曲初 校長은 學父母 說明會를 열었다. 移住背景 學生들은 韓國語 實力에 따라 水準別 授業을 하니 韓國 學生들 被害가 없다는 點을 알리고 싶었다. 韓國人 學生들이 惠澤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弘報하려 했다.

하지만 安 校長은 그 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진다. 學父母들이 言聲을 높였다.

“왜 그런 學校에 다녀야 합니까?”

“學校 成績이 全國 몇 等인 거예요?”

安 校長은 애써 準備한 說明 資料를 다 紹介하지도 못했다.

敎育支援廳은 結局 지난해 7月 決斷을 내렸다. 新築 아파트 通學區域을 原曲初, 關山初로 指定했다. 學父母들은 둘 中 한 곳을 選擇할 수 있게 된 것. 新築團地 一部 洞에선 管山草가 가깝다는 理由에서였다. 管山草는 빈 敎室이 많지만, 原曲初는 隣近 再開發이 끝나면 過密學校가 될 수 있다는 點도 作用했다.

新築 아파트 學父母들에겐 選擇肢가 두 곳이 됐다. 하지만 原曲秒에 入學한 아이는 單 한 名도 없었다. 原曲初 忌避 現象은 더 심해지고 있다. 原曲初 1, 2學年엔 주원이처럼 祖父母 때부터 韓國人인 學生이 單 한 名도 없다. 지난해 10月 基準 原曲初 學生 數는 總 449名. 이 中 移住背景 學生은 지난해 基準 98.6%, 443名이다.

原曲初 移住背景學生 比率

  • 2013年

    59.3%

  • 2015年

    78.4%

  • 2017年

    86.7%

  • 2019年

    94.7%

  • 2021年

    98.6%

*出處: 安山원곡초등학교. 每年 4月, 2021年만 10月 基準.

원곡동은 어떻게 이렇게 變했을까. 原曲初 앞에서 20年假量 文房具를 하는 洪某 氏(66)는 원곡동의 變化를 몸소 體感했다.

“15年 前쯤부터 韓國人들은 漸漸 고잔동 같은 洞네로 빠져나갔어요. 새 아파트가 올라오는 곳들이죠. 원곡동 빈자리는 移住勞動者들이 채웠죠. 그러면서 外國 아이들이 늘었어요.”

畵面 中央의 버튼을 左右로 움직여보세요.

사람들이 애들을 漸漸 적게 낳은 탓도 있었다. 隣近 工團 때문에 空氣가 나빠져 사람들이 떠난다는 얘기도 들렸다. 원곡동 外國人 住民 比重은 2012年만 해도 35%였다. 2021年엔 70%나 됐다.

住民 이명자 氏(41)도 원곡동과 함께 컸다. 祖父母 때부터 원곡동에 산 土박이다. 自身은 勿論이고 딸, 아들까지 같은 원穀草를 나왔다. 명자 氏가 원穀草를 卒業한 時期는 1994年. 當時만 해도 원곡동은 安山의 中心이었다. 활기차게 돌아가는 半月工團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원곡동 中에서도 原曲初는 人氣 學群이었다.

20年 뒤 큰딸이 入學할 때는 原曲初의 位相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를 原曲秒에 보낸다고 하면 다른 學父母들은 명자 氏를 ‘特異하다’고 했다.

“거기 外國人 다니는 學巧잖아요.”

“水準 떨어지는 學校에 왜 굳이 아이를 보내요?”

1994年 이명자 氏 安山原曲初 卒業 寫眞(왼쪽 寫眞). 지난해 12月 이명자 氏가 같은 場所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다.

명자 氏는 2018年 原曲初의 마지막 韓國人 學父母會長을 지냈다. 只今은 中國人 學父母가 會長을 맡고 있다. 명자 氏가 會長을 맡는 동안 韓國 學生들은 한 名, 두 名씩 轉學을 갔다. 反面 移住背景 學生들은 京畿 安山市 常綠區, 京畿 시흥시에서 애써 轉學을 왔다.

國境 너머의 아이들

어른들이 만든 原曲의 國境. 이 너머의 世界를 原曲初 學生들은 卒業 後에야 接한다. 原曲初에선 自身과 비슷한 處地의 移住背景 學生들만 主로 만나기 때문이다. 卒業하면 學校 때와는 溫度가 다른, 차가운 現實과 마주한다.

우즈베키스탄 國籍의 高麗人 피브키나 이리나(15·女)는 初等學校 2學年 때 父母님을 따라 韓國에 와 줄곧 원穀草를 다니다 2020年 卒業했다.

初等學校 때는 適應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原曲初에는 러시아語를 하는 二重言語 講師가 있었다. 러시아語로 얘기할 親舊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韓國 애들이랑 놀았어요. 漸漸 러시아에서 온 親舊들이 많아지면서 나중에는 거의 러시아語 할 줄 아는 親舊들이랑 놀았죠.”

이리나는 原曲初에서 韓國語를 못하는 親舊들에게 通譯士였다. 每日 두 時間씩 꾸준히 韓國語를 배운 結果였다. 6學年 때부터는 밴드部에 들어가 學校에서 公演을 했다. 防彈少年團의 ‘봄날’, 盧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를 기타로 쳤다. 밴드部 活動을 한 뒤부터는 學校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졌다. 親舊들과 기타를 치고 싶었다.

安山 원곡동 한 카페에서 만난 피브키나 이리나.

이리나는 정든 원穀草를 卒業하며 韓國 學生이 더 많은 원곡중을 選擇했다. 지난해 3月 基準 원곡중의 移住背景 學生 比率은 17.8%다.

“러시아 애들이 많은 中學校가 있지만 거긴 가기 싫었어요.” 이리나는 韓國人이 많은 學校에서 韓國語를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오히려 中學校에 오고 나서 말數가 더 줄었다. 韓國人 親舊와 親해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나의 中學校 親舊는 러시아系 아이들 네 名뿐이다.

“같은 班 韓國人 親舊들하고 더 얘기하고 싶어요. 놀고 싶고…. 근데 韓國人 親舊들은 다른 班 애들이랑 親해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韓國語가 늘기 힘들다.

“先生님과 班 애들이 다 같이 있는 團體 채팅房이 있어요. 애들이 ‘레알’(眞짜의 俗語) 같은 말이나 줄임말을 쓰면 전 잘 못 알아들어요. 다른 애들은 學校에서 있던 일을 채팅房에서 얘기하죠. 근데 저는 그냥 글을 읽기만 해요.”

工夫도 漸漸 어려워졌다. 數學은 그나마 낫다. 우즈베키스탄에서 先行學習을 한 터였다. 하지만 어려운 單語가 많은 國語, 國史가 큰 問題다.

“國語, 歷史는 머릿속에서 飜譯이 잘 안 돼요. 問題를 못 풀겠어요. 집에 가서 다시 解釋해봐야 해요.”

이리나는 요즘 갓 태어난 조카를 돌보는 틈틈이 時間을 쪼개 美術學院에 다닌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具體的인 計劃도 세웠다. 安山에서 高等學校까지 나온 뒤 프랑스로 留學을 가 美術大學을 나오고 싶다. 大學을 마치면 韓國으로 돌아와 디자인 會社에 就業하고 싶다. 韓國에서 자랐으니 韓國에서 繼續 살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꿈이 漠漠하게 느껴진다.

“제가 韓國 사람이 아니니 會社를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죠?”

共存을 試圖하는 사람들

原曲初는 國境을 지우려 애쓰고 있다. 이리나 같은 아이들이 壁에 부딪히지 않도록.

原曲初 數學時間엔 韓國語와 러시아語, 中國語가 들린다. 各 言語 講師가 該當 言語圈에서 온 學生들을 돕는다. 러시아語 擔當 김율리아 先生님(29)은 나눗셈 記號 等 中央아시아圈과 다른 韓國의 符號와 表記法 等을 가르친다.

“韓國語로 意思疏通에 어려움이 없는 學生이라도 數學問題를 理解하고 푸는 데는 도움이 必要할 때가 있어요. 그런 學生들을 돕기 爲해 協力授業을 進行합니다.”

原曲初는 京畿道敎育廳이 指定한 多文化國際革新學校다. 移住背景 學生에게 韓國語와 母國語를 같이 가르친다. 韓國 定着을 도우면서 뿌리를 잊지 않게 하려는 趣旨다.

情緖的 融合道 돕는다. 四物놀이와 民謠, 跆拳道와 테니스 授業을 한다. 밴드部를 따로 運營하며 藝體能 敎育에도 공들인다. 原曲初 安 校長은 藝體能 活動이 아이들 間 距離感을 좁힐 것으로 믿는다.

“音樂이나 運動은 말이 안 통해도 아이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契機가 됩니다.”

‘世界 飮食 體驗의 날’도 한달에 한番 運營된다. 給食 때 다양한 國家 飮食이 나오는 날이다. 감惠恩 原曲初 營養士는 아이들이 給食을 패밀리 레스토랑 外食처럼 반길 때마다 뿌듯하다.

“親環境 式自在로 無償 給食을 한다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왜 비싸고 좋은 걸 우리에게 주나요’라고 물어요. ‘여러분이 자라서 이 나라 國民으로 같이 健康하게 살라고 支援하는 거예요’라고 說明해주죠. 그러면 아이들이 ‘感動이에요’라고 해요.”

安山原曲初 테니스 演習場에서 테니스部 學生들이 練習을 하고 있다(위쪽 寫眞). 지난해 11月 安山原曲初 ‘世界 飮食 體驗의 날’에는 멕시코 飮食이 나왔다.

原曲初 德에 5學年 제임스(假名·12)는 빠르게 韓國에 適應했다. 2019年 아버지를 따라 韓國에 왔을 때만 해도 韓國語를 한 마디도 못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2年 만에 流星과 羅老號 發射에 對해 韓國語로 說明하는 ‘宇宙 少年’이 됐다.

“科學者가 돼 宇宙를 硏究하고 싶어요. 學校에서도 科學 時間이 第一 좋아요. 重力이나 加速度 같은 어려운 表現은 유튜브로 豫習하고 있어요.”

제임스의 동생 3學年 주디(假名·9)가 가장 좋아하는 場所는 學校 圖書館이다. 주디 亦是 水準別 韓國語 授業의 도움을 받았다. 아직 韓國語 發音은 서툴지만 야무지게 表現한다.

“音樂 時間에는 아름다운 氣分이 들고, 體育時間에는 신나는 氣分이 들어요.”

주디는 昨年까지 親舊들이 ‘놀자’고 말할 때 親舊들을 노려보기만 했다.

“‘놀자’는 말을 ‘놀리자’로 알았어요. 날 놀리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이젠 그 差異를 알아요. 그래서 親舊들이 많아졌어요.”

學校는 제임스와 주디에게 韓國에 適應할 時間을 벌어준 곳이다.

原曲初에서도 어려움은 있다. 中國과 러시아系 아이들이 大多數를 이루며 다른 나라 아이들은 少數者가 됐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제임스는 皮膚色이 다르다는 理由로 中國系 親舊에게 놀림 받았다.

母國語로만 말하는 아이들은 韓國語를 배울 機會를 놓친다. 韓國人과 移住背景 學生이 골고루 섞인 學校에서 일하다 지난해 原曲秒에 온 한 先生님은 이 點이 憂慮스럽다.

“韓國 아이들이 一定 比率 以上이어야 外國 아이들도 韓國語를 배울 意志를 가져요.”

敎師들의 負擔도 加重된다. 러시아系 學生이 最近 急增해 164名이나 된다. 隣近에 러시아語로 韓國語와 數學을 가르치는 學院이 생겨날 程度다. 하지만 原曲初의 러시아語 二重言語 講師는 둘 뿐이다.

安山,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런 現象은 原曲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移住背景 學生이 곳곳에서 늘고 있다. 敎育部에 따르면 2021年 全國 初等學校 學生 中 4.2%가 移住背景 學生이다. 比重이 9年 前(1.1%)에 비해 4倍假量으로 늘었다. 實際로 原曲初 隣近의 安山署初等學校 亦是 지난해 基準 移住背景 學生이 全體의 折半 水準이다.

中學校와 高等學校에서도 비슷한 現象이 벌어지고 있다. 安山 선일中學校도 移住背景 學生 比率이 50%를 넘었다. 安山國際비즈니스高等學校도 19%假量이 移住背景 學生이다.

全國에서 비슷한 環境의 學校들이 原曲秒에 ‘共存 노하우’를 묻는다. 大邱의 新黨初等學校도 그 中 한 곳이다. 2018年 移住背景學生이 全體 學生의 折半에 조금 못 미쳤지만, 只今은 65%에 이른다.

大邱 新當初에는 隣近 성서工團에서 일하는 移住勞動者 子女들이 다닌다. 다른 洞네에서 新黨初로 遠距離 通學을 하기도 한다. 移住背景學生 學生들을 위한 맞춤型 프로그램이 있다는 所聞이 돌아서다.

學校는 急激히 늘고 있는 移住背景 學生에 奔走하다. 시의적절하게 對應하기 어려울까 憂慮가 나온다.

“언젠가 先生님들이 韓國語로 授業하기 어려워질까 봐 걱정이네요.”

앞으로 人口가 줄며 外國人을 받아들이는 건 不可避하다. 只今 늘고 있는 移住背景 아이들은 그들의 2歲, 3歲를 낳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爲한 ‘共存 政策’이 必要할 때다.

敎育現場에서는 最大限 많은 學校에 移住背景 學生을 위한 制度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移住背景 學生들이 特定 學校로 몰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한 學校에만 移住背景學生들이 몰리다보면 韓國人 學父母들이 該當 學校를 忌避하게 됩니다.”(안복현 原曲初 校長)

“우리學校는 베트남 出身 學生들이 많아 自己들끼리 어울리며 베트남語를 主로 써요. 韓國 아이들과 어울릴 機會가 적다 보니 韓國語를 배우는 速度가 느려요.”(김진성 新當初 交感)

안상규 安山瑞草 校監은 韓國語 豫備學校가 必要하다고 말한다.

“外國에서 온지 얼마 안 된 學生은 韓國語 豫備學校에서 韓國語를 가르친 뒤 一般 學校에서 授業을 들을 수 있도록 支援했으면 좋겠어요.”

多文化 敎育 焦點이 移住背景 學生들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點도 問題다. 旣存 韓國人 學生도 달라진 現實을 받아들이고 共存하도록 敎育해야 한다는 指摘이 많다. 地域社會가 國境을 긋지 않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人口의 27%가 移住背景 出身인 獨逸에선 一般 學校에 相互文化 敎育을 勸한다. 移住民에겐 獨逸 文化를 가르친다. 移民者가 늘어난 아일랜드도 2005年 初等學校부터 高等學校까지 水準別 相互文化 敎育 過程을 마련했다.

大邱新當初

移住背景學生 比率(%)

  • 2018年

    49.7

  • 2019年

    54.6

  • 2020年

    56.4

  • 2021年

    65.4

資料: 大邱新當初等學校

國境은 如前히 그곳에 있다

‘原曲初 마지막 韓國人 學父母會長’ 명자 氏는 原曲初 隣近에 工事 中인 新築 아파트 團地에 2023年 入住한다. 原曲初 바로 코앞에 있는 團地다. 原曲初에서는 期待도 나온다. 이 團地의 通學區域만큼은 原曲初에만 配定될 것이라고. 原曲秒에 韓國 學生이 늘면 共存이 더 可能하리라고.

하지만 地域 住民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隣近 公認仲介業所에선 벌써부터 通學區域 變更 얘기가 나온다.

“入住 時點에 住民들이 民願을 넣으면 아파트 通學區域이 關山初로 擴大될 거예요. 아파트 價格이 좀더 올라갈 수 있죠.”

이 團地 再開發組合 關係者는 移住民 아이들이 오히려 轉學 갈 거라고 壯談했다.

“通學區域이 바뀌지 않더라도 韓國 아이들이 많아지면 그 學校의 移住民 아이들이 轉學을 나가게 될 거예요. 1, 2年만 있으면 學校 雰圍氣가 (韓國人 中心으로) 바뀔 겁니다. 지켜보세요.”

韓國人과 移住民이 어울려 산다는 選擇肢는 좀처럼 어른들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國境은 如前히, 그곳에 있다.

原曲初 先生님들은 移住背景 學生들에게 適應의 ‘첫 단추’로 韓國語를 꼽는다. 하지만 移住背景 아이들은 韓國에서 나고 자라도 韓國語를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조나단은 2016年 韓國에서 태어났다. 父母님은 인도네시아人이지만 조나단은 韓國을 떠나본 적이 없다. 5年 동안 ‘조나단의 世界’는 팔 뻗으면 世間이 손에 닿는 水原의 원룸이 全部였다.

조나단은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만 繼續 거절당했다.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希望은 安山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水原으로, 水原에서 安山으로. 조나단의 父母님은 아들을 위해 ‘移住 속의 移住’를 敢行한다.

京畿 安山도, 移住民의 섬

  • 記事 取材 이새샘 신희철 김재희 남건우 記者
  • 寫眞·動映像 取材 송은석 양회성 남건우 記者
  • 動映像 編輯 남건우 記者 박세진 PD 안채원 CD
  • 그래픽 김충민 記者
  • 프로젝트 企劃 位은지 記者
  • 사이트 製作 임상아 고민경 뉴스룸 디벨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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