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파이어아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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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카를 파이어아벤트
學者 情報
出生 1924年 1月 13日 ( 1924-01-13 )
오스트리아 第1共和國
死亡 1994年 2月 11日 ( 1994-02-11 ) (70歲)
스위스 보주 제놀리에
學派 認識論的 아나키즘

파울 카를 파이어아벤트 ( 獨逸語 : Paul Karl Feyerabend , 1924年 1月 13日 ~ 1994年 2月 11日 )는 오스트리아 科學哲學者 이다. UC 버클리 에서 哲學 敎授를 歷任하며 現代 科學哲學 에 크게 貢獻했다. 科學의 發展 過程에 있어서의 모든 方法論을 拒否하였으며, 科學的 知識을 다른 種類의 知識과 區分할 수 있는 어떤 特性도 存在하지 않는다고 主張하였다.

生涯 [ 編輯 ]

폴 파이어아벤트는 1924年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났다. 그는 빈에서 初等學校, 高等學校 時節을 보냈다. 1943年 그는 獨逸軍에 入隊하여 鐵十字 勳章을 授與받았다. 軍 服務 期間 中 그는 東部 戰線에서 脊椎에 流彈을 맞았고, 남은 生涯 동안 다리를 절어야 했다.

1947年에 빈 大學校 에 入學하여 演劇學, 歷史, 社會學, 物理學, 數學, 天文學을 工夫하였으며 1951年 哲學으로 博士 學位를 取得하고서 英國 文化願(British Council)의 奬學金 支援을 받아 런던 政治經濟大學校 로 가서 칼 포퍼 아래에서 硏究하였다. 처음에는 포퍼의 反證主義的 科學館 을 尊敬하였지만 뒤에 포퍼의 科學館을 徹底히 批判하게 된다. 1955年 以後 1990年까지 UC 버클리 , 오클랜드 大學校 , 서섹스 大學校 , 예일 大學校 , 런던 大學校 , 베를린 大學校 , ETH 취리히 等에서 敎授職을 맡았다. 마지막엔 UC 버클리와 ETH 취리히의 두 군데에서 同時에 敎授職을 가지고 있었다. 隱退 以後 1990年에 UC 버클리와 ETH 취리히에서 名譽敎授職을 받았다.

이 期間 동안 파이어아벤트는 科學에 對한 批判的인 立場을 展開하였다. 그는 自身의 科學哲學을 스스로 아나키즘 敵, 다다이즘 敵이라고 評價했다. 파이어아벤트는 런던 政治經濟大學의 러커토시 임레 와 함께 科學的 方法論에 對한 擁護와 批判을 主題로 冊을 쓰려 했다. 이 計劃은 1974年 러커토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霧散되었고, 파이어아벤트는 自身이 맡은 部分을 《 反方法論 》이라는 題目으로 出刊하였다.

1989年 UC 버클리를 떠난 파이어아벤트는 1991年 學界에서 隱退한 後 1994年 스위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史上 [ 編輯 ]

科學哲學 [ 編輯 ]

파이어아벤트는 科學者들이 恒常 使用하는 一般的인 科學的 方法論은 存在하지 않는다고 力說하였다. 그는 定해진 方法論이야말로 科學者들의 자유로운 思考를 妨害함으로써 科學的 進步를 막는다고 생각했다. 파이어아벤트는 토머스 쿤 패러다임 理論을 部分的으로 受容하면서, 한 理論이 다른 理論으로 代替되는 過程은 理性的 要素가 아닌 美的 要素에 依해 決定된다고 主張하였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革命과 갈릴레오 等의 科學私的 事例 硏究를 통해 自身의 主張을 뒷받침하려 努力하였다.

파이어아벤트는 歸納을 强調하는 論理實證主義 와 이에 對한 代案으로 浮刻된 칼 포퍼 反證主義 兩쪽에 對해 否定的인 立場을 取했다. 그는 觀察이나 反證主義的 論駁 모두 科學과 科學이 아닌 것의 境界 條件을 設定하려는, 失敗할 수밖에 없는 試圖로 보았다. 라카토쉬 임레 의 硏究 프로그램 理論에 對해서는 理論 自體의 模糊함이 自身이 主唱한 아나키즘的 科學論으로 歸結될 수밖에 없다는 留保的인 態度를 取했다.

또한 파이어아벤트는 現代 社會에서 科學이 차지하고 있는 地位가 中世 基督敎, 나치즘과 마찬가지로 危險한 敎祖라고 보았다. 그는 甚至於 科學의 抑壓으로부터 社會를 解放시켜야 한다고 主張하기도 했다. 그의 思想은 科學의 發展을 人文社會的 結果로 解釋하는 스트롱 프로그램 의 成立에 影響을 주었다.

民主的 相對主義 [ 編輯 ]

그는 科學知識만이 信賴할 수 있는 唯一한 知識이며, 이러한 知識의 確保는 科學의 方法에 依해 可能하다는 科學主義에 反對한다. 卽, 科學主義가 權力과 손을 잡고 行政과 敎育과 政治 等 人間 生活 全般을 規制하고 있는 現代社會를 批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願하는 社會는 多樣性이 許容되고 個人의 자유로운 選擇이 尊重받는 ‘民主的 相對主義’이다. 그는 ‘自由를 增大하고 풍요로운 삶과 보람된 삶을 살려고 하는 努力’을 擁護하고 ‘全人的으로 發展된 人間을 길러내고 또 길러낼 수 있는 個性의 咸陽’을 支持한다. 그리고 祖上들이 唯一하게 참되다고 생각 한 宗敎의 束縛에서 우리를 解放시켰듯이 이데올로기的으로 硬直된 科學의 束縛에서 이 社會를 解放 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파이어아벤트가 理想的으로 생각한 社會는 '모든 知識이 同等하게 取扱되는 社會'이다.

批判 [ 編輯 ]

萬若 科學에 어떤 普遍的인 原理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도 좋다(anything goes)”라는 것이라는 그의 主張은 포퍼 等 旣存의 科學哲學者들로부터 急進的인 相對主義 라는 批判을 받았다.

主要 著作 [ 編輯 ]

  • 異性이여 안녕(Farewell to Reason)

이 冊은 理性 中心, 科學 中心의 近代 以後 西歐 世界觀에 對한 一種의 宣傳 布告이며, 科學이 가장 信賴할 만한 知識이라는 常識에 對한 强力한 挑戰이다. 科學이나 神話나 迷信, 占星術과 比較해서 決코 優越한 知識일 수 없다는 파이어아벤트의 結論은 固有한 科學的 方法이 存在하지 않는 다는 洞察에 根據하고 있다. 科學은 論理的 性格을 지닌 知識이 아니라 歷史的 性格을 지닌 知識이기 때문에 몇가지 規則으로 說明될 수 있을 程度로 그렇게 單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採擇할 수 있는 唯一한 科學的 方法은 ‘어떻게 해도 좋다’는 것이다.

  • 反方法論 (Against Method : Outline of an Anarchistic Theory of Knowledge)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