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컨스터블
(
John Constable
1776年
6月 11日
~
1837年
3月 31日
)은
英國
의
浪漫主義
畫家이다.
터너
와 같은 時代에 태어난 風景畫家이지만 이 두 사람처럼 對照的인 사람은 없다. 터너는 매우 빨리
王立藝術院
會員이 되었으나, 컨스터블은 會員이 되는 데에 많은 歲月을 보냈다. 터너는 빛 속에 自然을 溶解시키지만 컨스터블은 생각하는 것같이 自然을 그리고, 터너는 細部를 버리지만 컨스터블은 細部에서부터 描寫를 해 나간다. 그러나 두 사람 다 自然에 對한 觀察은 깊고, 더불어 近代 風景畫의 先驅者가 되었다.
컨스터블은
서퍽州
의 한 마을에서 製粉業者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大器晩成韓 사람으로서, 개川이나 수풀이 많은 故鄕의 自然을 사랑하였다. 그 自然은 그에게 있어서는 깊은 眞實의 存在였다. 自然 가운데에서 眞實을 보고, 그는 自己의 눈을 믿었다. 그것 때문에 一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流暢한 描寫를 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自然의 性格에 다가가는 强靭한 內容을 가지고 있다. 그는
1802年
에
王立藝術院
에 入選한 以來 每年 發表를 繼續하였다. 사랑하는 女人과 結婚한 것은 40歲 때였으며, 아내를
結核
으로 잃은 이듬해인
1829年
에 겨우 王立藝術院 會員으로 뽑혔다. 그러나 그 後는 健康도 좋지 않고 孤獨한 晩年을 보냈다. 컨스터블은 風景만을 그렸는데, 自然이 갖고 있는 생생한 모습 特히, 하늘의 구름을 綿密하게 硏究하여 畫幅에 담았고 이를 契機로 '구름 畫家'로 불리기도 했다.
프랑스
의 畫家보다 먼저 外壙(外光) 아래서 製作한 가장 이른 한 사람이며, 英國에서는 生前에는 認識되지 못했으나, 當時의 槪念과는 反對로 卑近한 눈앞의 政經에도 自然의 眞實을 찾아내고 있으며, 後에 프랑스의
바르비종파
에도 깊은 啓示를 附與했다.
乾草를 싣는 馬車
[
編輯
]
主要 作品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