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半島 返還 條約
(
日本語
:
奉天半島還付ニ?スル?約
,
中國語
:
交還奉天省南邊地方條約
)은
1895年
11月 8日
에
淸나라
와
日本 帝國
사이에 맺어진 條約으로, 이 條約에 따라 日本은 淸나라로부터
割讓
받은
랴오둥 半島
(遼東半島)를 返還하였다.
名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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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代 日本에서는
搖動患部條約
(遼東還付?約), 中國에서는
랴誤亂 條約
(遼南條約)으로 稱한다.
背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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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淸日 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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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1894年
(靑
光緖
19年, 日本
메이지
27年) 7月 勃發한
淸日 戰爭
의 結果, 이 戰爭에서 勝利한 日本은
1895年
4月 17日
, 敗戰國인 淸나라로부터
랴오둥半島
(펑톈半島)와
타이완섬
,
펑후 諸島
를 永久히 割讓받고 戰爭 賠償金 2億兩(1895年 當時 3億 2千엔)을 支拂하도록 하는 內容의
시모노세키 條約
을 締結하였다. 이로서 淸나라의 랴오둥半島와 타이완섬, 펑후 制度는 日本이 戰爭으로 얻은 첫
海外 領土
가 되었다.
三國 干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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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事態를 注視하던
러시아
는 同盟關係에 있던
프랑스
와
獨逸
을 끌어들여, 日本의
랴오둥半島
獲得이 淸日 兩國의 友好를 해치며,
東아시아
의 平和에 威脅이 된다는 理由로 日本이 랴오둥半島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淸나라
에 다시 返還하도록 日本政府를 壓迫하였고, 返還이 이루어지지 않을 境遇
武力을 行事
할 뜻이 있음을 日本에 내비치었다.
[1]
日本은 結局 이 세 나라의 힘에 屈服하여 랴오둥半島를 淸나라에게 返還하기로 合意하였다.
[1]
條約 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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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年
11月 8日
, 淸나라
베이징
에서 淸나라 代表
리훙장
(李鴻章)과 日本 代表
하야시 다다스
(林董)가 參席하여 條約이 締結되었다.
條約內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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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本 帝國
은 淸나라에
랴오둥半島
를 返還한다.
- 淸나라
는 1895年 11月 16日까지 返還에 對한 賠償金으로 日本에
銀貨
(銀貨) 3000萬兩을 支拂한다.
- 賠償金을 받은 3個月 以內에,
日本軍
은 랴오둥半島에서 撤收한다.
影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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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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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日本 國內에서
對러 感情이 惡化
되었으며
朝鮮
과
滿洲
를 두고 러시아와 葛藤이 深化되었으며
러日 戰爭
이 勃發하는 要因이 되었다.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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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랴오둥半島
를
淸나라
에게 되돌려준 代價로
1898年
, 淸나라로부터 랴오둥半島의
뤼순港
과
다롄항
을
조차
받고 鐵道를 敷設하였으며 軍港을 設置하였다.
[2]
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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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親러시아 性向의
명성황후
가
日本에 依해 暗殺
된 後, 朝鮮 政府의 러시아에 對한 依存度는 더욱 높아져,
1896年
2月
高宗
이
러시아 公使館으로 居處를 옮기는 事件
이 일어났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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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各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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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
나
Fukuju Unno, 『日本의 歷史, 일청戰爭-일러전쟁(1992)』
- ↑
Yoko Katou, 『戰爭의 日本近現代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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