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군 (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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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군 (湘軍)은 淸나라 末期 臨時로 創設된 湖南省 의 軍事組織으로 商用(湘勇)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太平天國의 亂 이 勃發했을 때, 淸나라의 正規軍인 八旗軍 綠營 이 鎭壓하지 못하고 밀리게 되자 어쩔 수 없이 淸나라 政府의 命에 依해 各地의 香神들이 臨時로 軍隊를 組織했다. 이를 鄕勇 (鄕勇)이라고 불렀고, 上軍도 그러한 組織 中 하나였다.

活動 [ 編輯 ]

湖南省 上向(湘鄕)의 香神(地方有力者)이었던 曾國藩 이 上군의 創始者이다. 曾國藩은 湖南 各地의 鄕勇 (地方의 有力者가 自發的으로 自己 防衛를 위해 만든 民兵 組織)을 整理해 上군을 結成했다. 曾國藩 은 繼續되는 淸나라 正規軍의 敗戰을 보고 軍資金을 마련하여 官吏 노릇을 하는 詐欺 높은 새로운 軍事 組織을 創設하고자 했다. 鄕勇組織令은 어디까지나 鄕土防衛를 目的으로 한 指令이었지만, 1853年, 上군은 전수防衛의 命令을 無視하는 形態로 장시省 으로 遠征을 떠나 태평천국군을 맞서했다. 이러한 公的으로 曾國藩은 昇進을 하게 되고, 上군은 太平天國의 亂 에 對抗하는 重要한 戰鬪力이 되었다.

1854年 (함풍제 4年), 當時 陸軍은 13嶺 6,500名, 水軍은 10嶺 5,000名이었지만, 1864年(童穉 3年)에 太平天國 을 멸망시켰을 때는 12萬 名까지 불어나 있었다. 淸나라 滿洲族 貴族 中에는 地方 한족의 武裝에 不信을 품는 사람도 있었지만, 太平天國의 亂을 鎭壓하기 위해 上군을 重用할 수밖에 없었다. 動치 元年(1862年)에는 안후이 에서 曾國藩 의 弟子 李鴻章 回軍 을 創設했는데, 上군과 마찬가지로 鍛鍊 을 바탕으로 一部 上군에서 編入한 部隊를 더해서 創設되었다.

평화로운 時期에 武力을 維持한다는 것은 淸나라 朝廷으로부터 자칫 叛亂의 疑惑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曾國藩은 太平天國의 亂 이 鎭壓된 以後 上군을 解散했다. 當時, 上군에는 全國 各地의 人材가 曾國藩 麾下에 몸을 담았고, 그러한 參謀는 300 ~ 400名 以上에 達했다. 나중에 이러한 長壽와 參謀 中에서 總督이 된 사람은 15名, 巡撫가 된 사람은 14名, 기타 文武官度 多數에 이르게 된다. 이 上군 出身의 人材들은 以後 洋務運動 에 큰 役割을 하게 되었다. 上군은 淸나라를 求했고, 한족이 政治權의 中心으로 進出하는 契機를 만든 것이다.

上군 解産 後 哥老會 에 몸을 담은 參加한 將兵들이 多數 있었다고 한다.

主要 人物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