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過去 내려놓고 一身우일신”… “老年, 배우고 일해야 몸도 마음도 健康”[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過去 내려놓고 一身우일신”… “老年, 배우고 일해야 몸도 마음도 健康”[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12月 23日 01時 40分


코멘트

남의 눈을 神經쓰지 않는다
過去에 戀戀하지 않는다
小小한 일거리, 或은 工夫로
世上과의 接點을 만들어야
老後 準備, 미리미리 차근차근

100歲 카페는 2021年 1月 인터넷版으로 始作해 隔週 土曜版 新聞과 日曜日 인터넷版으로 讀者들과 만나왔다. 低出産이 深刻한 가운데 高齡者가 急增하는 ‘定해진 未來’ 앞에서 國家와 社會, 個人의 準備는 未洽해보였다. 豐饒로운 100歲 人生을 위해 必要한 것으로 △돈 △健康 △幸福의 3가지를 꼽고 젊어서부터 미리미리 準備하자는 메시지를 傳達하고자 했다.

連載 滿 3年이 돼 가는 只今도 이 趣旨는 變함이 없다. 올해에는 特히 인터뷰 性格의 ‘이런 人生2幕’을 많이 썼다. 한바탕 現役時節을 거친 시니어들의 다양한 2幕을 통해 讀者들도 아이디어를 얻고 힘을 內侍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저물어가는 한해, 100歲 카페를 빛낸 主人公들을 돌아본다.

“老年에도 일을 해야 몸도 마음도 健康”
개인택시 운전하는 전직 교장선생님 정정호 씨.
個人택시 運轉하는 前職 校長先生님 정정호 氏.
外國語高 校長 退職 後 個人택시 運轉士로 일하는 정정호 氏(67)를 紹介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은 ‘年金 받는 분이 굳이 돈을 번다’는 否定的 反應이었다. 鄭 氏도 같은 理由로 한 次例 만남을 辭讓했다가 한 달 뒤에야 인터뷰에 應했다.

技士에 달린 댓글들은 豫想대로였다. 여기 더해 生計를 위해 힘들게 일하는 다른 택시 運轉士들이 느낄 違和感을 憂慮하거나 老年 運轉의 危險性을 指摘하는 內容들이 많았다. 정작 本人은 “充分히 豫想했고 나 自身이 떳떳하니 全혀 問題없다”며 淡淡했다. 말 그대로 남의 눈보다 내 마음가짐이 重要하다는 姿勢다.

新聞記事가 나간 土曜日부터 그의 携帶電話는 불이 났다고 한다. 仁川의 敎員 커뮤니티부터 學生들, 學父母들까지, 甚至於 어릴 적 故鄕 鐵原時까지 들썩였다고 한다.

그를 통해 ‘過去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實感할 수 있었다. 分明 그의 블로그에는 敎師로서의 正體性이 거의 없었는데, 技士에 使用할 옛날 寫眞들을 찾아 보여주는 場面에서 억눌러왔던 追憶과 그리움이 생생히 傳達돼왔다. 그의 記事에 뜨겁게 反應하는 분들도 오랜 敎職生活에서 맺어진 因緣들이 많았다.

鄭 氏는 敎育者답게 記者에게도 많은 激勵를 傳해줬다. 인터넷版 記事가 나간 日曜日 閑散하던 그의 블로그에 하루 訪問者가 2000名이 넘었다며 寫眞을 찍어 보내주고 自身에게 몰려오는 周邊 反應과 激勵들을 共有해줘 記事 쓰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素朴하고 하찮은 일이라도 좋다
江原 春川에서 電源生活하며 文化觀光解說師로 일하는 박의서 前 敎授 夫婦.
100歲 카페에는 老年에 새로운 일거리에 푹 빠져 있는 분이 적잖게 登場했다. 大槪 現役 時節보다 素朴한 일거리다.

3年째 江原 春川에서 田園生活을 하는 박의서 前 안양대 敎授(72)는 地域의 텃勢를 살짝살짝 느끼면서도 時 所屬 文化觀光解說師 일에 熱心이다.

月 100萬 원 안짝으로 버는 程度지만 이 일이 없었다면 삶의 質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한다. 解說을 더 잘하기 위해 工夫를 繼續하고 個人的으로 冊을 쓸 準備도 하고 있다.

銀行 任員으로 退職한 뒤에도 開放形 公職에서 일하던 박삼령 氏(76)는 65歲에 癌이 發病한 以後 삶을 百八十도 바꿔 山林治癒指導士가 됐다. 競爭이 熾烈해져 일할 機會가 줄고 있지만 하루 일을 얻기 위해 自費를 들여 地方에 踏査를 다닐 程度로 眞心이다.

10餘 年間 父母님을 看病하다 直接 療養院을 세워버린 林秀卿 보아스골든케어 代表.
10年 以上 父母님 看病을 하다가 아예 直接 療養院을 設立한 임수경 氏(62)는 本來 情報技術(IT) 專門家였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年 門을 연 療養院은 이제 軌道에 올라 設立 過程에서 진 莫大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게 됐다. 父母님 便安하게 모실 수 있어 한시름 덜었고 高齡者의 隊列로 접어든 本人과 家族, 親舊들을 위한 ‘갈 곳’을 장만했다는 點에서 洽足해한다.

그는 “父母님 世代는 우리가 負擔하지만 우리 世代는 子女에게 기댈 수 없다”며 ‘現打’를 안겨주기도 했다.

退職이라는 ‘現實’, 미리 準備해야
재직 중 치밀한 준비로 정년퇴직 바로 다음 날 새 직장에 출근한 최경묵 씨.
在職 中 緻密한 準備로 停年退職 바로 다음 날 새 職場에 出勤한 최경묵 氏.
退職은 잘 準備하고 맞이하는 境遇와 그렇지 않은 境遇 以後 삶에 天壤之差가 난다.

停年退職을 向해 緻密하게 準備한 케이스로는 流通業體 部長級으로 停年退職한 다음 날 知識産業센터 管理所長으로 새出發한 최경묵 氏(62)가 있다.

前 職場에서는 萬年 次長(退職 前 마지막 1年間만 部長이었다)으로 30年 가까이 일하며 資格證을 땄고 그것을 活用해 在職 中에도 經歷을 쌓았다. 會社 立場에서는 그가 建物 安全管理者를 겸해주니 한 사람分 雇傭을 줄일 수 있었다. 그의 境遇 職場에서 서러움을 겪었던지라 더 일찌감치 自身의 앞날을 걱정하고 準備할 수 있었다.

대기업 임원 퇴직 뒤 책을 내고 유튜브를 제작하는 등 더 바빠진 정경아 씨.
大企業 任員 退職 뒤 冊을 내고 유튜브를 製作하는 等 더 바빠진 정경아 氏.
反對로 適當히 따뜻하게 지낸 사람일수록 비바람 치는 曠野에 던져졌을 때 衝擊이 크다.

新世界그룹에서 任員을 지냈지만 4年 前 滿 50歲에 退職해야 했던 정경아 全 常務(54)는 그 衝擊을 삭여 冊을 두 卷이나 썼다.

退職 2年 만인 2021年 낸 첫 冊 ‘독한 언니의 職場生活白書’에서 그는 退職은 내色 않고 職場生活만을 다뤘는데, 그가 받은 衝擊을 逆說的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退職 4年 車가 된 올해에야 自身의 退職을 正面으로 마주한 두 番째 冊 ‘어느 大企業 任員의 退職日記’를 내놓았다. 그는 요즘 동아일보에 칼럼을 連載하는 한便 유튜브와 講演 等을 통해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統計廳에 따르면 韓國人의 주된 職場에서의 非自發的 退職年齡은 平均 49.5歲. 어찌보면 정년퇴직할 수 있다는 것 自體가 福받은 케이스다. 두 사람 사이 어디쯤에 該當하는 職場人이라면 會社를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準備가 必要하다는 點을 새겨둬야 할 듯하다.

힘의 源泉은 家族
初等學校 中退 學歷을 克服하고 60歲에 看護助務士로 새 人生을 始作한 이숙희 氏.
시니어들에게도 家族은 힘의 源泉이 된다.

初等學校 中退 學歷을 克服하고 60歲부터 慶南 巨濟의 韓醫院에서 看護助務士로 일하는 이숙희 氏(64)에게 100歲 카페 인터뷰는 世上에 自身을 커밍아웃하는 일이었다. 記事가 나간 뒤 모두의 理解와 認定을 받게 돼 餘恨이 없다며 기뻐했다.

11月 KBS 라디오放送에 出演하기 위해 夫君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늘 아내를 믿고 支援해주는 男便, 엄마에게 自信感을 심어주고 方向을 正確하게 짚어주는 딸까지, 家族은 이숙희 氏를 支撐해주는 든든한 ‘빽’이다.

조동근 氏는 60歲에 理髮所를 始作했다.
京畿 平澤에서 理髮所를 運營하는 조동근 氏(63)도 먹고사는 問題에 쫓겨 中學校 中退로 끝날 뻔했던 境遇다. 新婚 初期 中學校와 高校 檢定試驗에 合格하고 방송통신대에 入學했지만 20代 夫人에게 닥친 病魔에 다시 한番 危機가 몰려왔다.

記事에서 빼먹은 에피소드 하나. 夫人이 非長巖으로 癌病棟에 長期入院했던 當時, 病院 側은 病勢를 체크하기 위해 患者의 피를 엄청나게 뽑아가곤 했다. 患者食만으로는 回復이 어려울 것을 걱정한 그는 病棟 階段站에서 携帶用 가스버너로 보양食을 만들어 아내에게 먹였다.

病院 側에서 制止하자 “난 저 사람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며 抵抗해 警察署에 끌려가기도 했다. 2, 3日 뒤 그가 다시 料理를 始作하자 病院 側도 모른 척해버렸다고. 1980年대니까 可能했던 얘기지만 그는 이런 執念으로 家庭과 婦人을 지켜냈다.

30餘 年 間 어머니의 看病을 위해 애썼던 在美作家 김석휘(74) 氏는 記事를 읽은 周邊사람 德에 美國 移民 初期 同苦同樂했다가 40年間 連絡이 杜絶됐던 親舊와 連結될 수 있었다. 다만 親舊분이 알코올과 心臟疾患 탓에 認知 障礙가 相當히 進行돼 疏通은 어려웠다고. 그는 “나이들면서 後悔되고 마음 아픈 記憶들만 늘어난다”고 吐露했다.

工夫하는 老年이 아름답다
81歲에도 每日 두 時間씩 筋力運動을 쉬지 않는 이순국 前 신호그룹 會長.
이순국 前 신호그룹 會長(81)은 出版社에서 新刊 ‘다시 始作하는 人生授業’을 보내온 것이 契機가 돼 인터뷰를 請했다.

한때는 財界序列 25位를 넘볼 程度로 事業을 키웠지만 外換危機로 모든 것을 잃은 뒤 68歲부터 健康을 扶餘잡기 爲한 努力을 始作했다. 自身의 몸을 實驗對象으로 삼아 身體 改造를 斷行하고 74歲에 體育學 碩士, 76歲에 體育學 博士, 81歲에는 醫學博士(豫防醫學) 學位를 받으며 “뭔가를 始作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證明해보였다.

新刊에서 그는 홀로 죽음을 向해 櫓를 저어가는 한 人間의 모습을 表紙에 그려놓고 있다. 只今도 每日 2時間씩 筋力運動을 하는 理由는 ‘自身의 人生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公企業 退職 後 방송통신대에서 4個 學科를 涉獵 中인 김광성 氏는 工夫를 통해 每日 새로워진다고.
13年 째 방송통신대 學生 身分을 이어가는 김광성 氏(71)도 뒤늦게 알게 된 工夫의 재미를 놓지 못하는 境遇.

7年 前 再就業해 서울市內 鑑定評價法人의 常任顧問, 그 子會社인 不動産仲介法人의 代表를 맡아 現役 生活을 한다.

“방송大에서 젊은이들과 만나며 感覺을 維持했기에 就業도 可能했다”며 學校에 공을 돌리는 그는, “이 나이에 工夫는 知識이 아닌 智慧를 얻는 過程”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된 정연홍 씨. 10년째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청소일을 한다.
作家가 된 정연홍 氏. 10年째 같은 아파트 團地에서 淸掃일을 한다.
大邱의 環境美化員 정연홍 할머니(71)는 장난처럼 ‘冊을 쓰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지난해 11月 첫 冊 ‘나의 監査는 늙지 않아’를 내면서 꿈을 이뤘다. 갑자기 듣게 된 ‘作家’ 呼稱이 쑥스럽지만 幸福하다고.

글을 잘 쓰기 위해 熱心히 冊을 읽고 重要한 대목을 베껴 써보기도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뭔가를 쓰고 있다.

이웃과 함께, 同世代와 함께
정영록 前 서울대 國際大學院 敎授. 베이비부머들의 歸村타운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정영록 前 서울大 敎授(65)는 8月 末 學校를 停年退職했다. 5年 前부터 全南 求禮로 居處를 옮기고 뜻 맞는 사람들과 歸村타운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旣成世代의 歸村으로 脂肪消滅을 막고 質 높은 老後를 살아갈 터전을 만들자는 것.

3月에 인터뷰 記事가 나간 뒤 政府나 地自體, 個人들의 連絡이 많았다. 政府에서 主管하는 地域活力타운 選定 審査에도 參與했는데, 이곳저곳 候補地를 돌면서 ‘쓴소리’를 쏟아냈다고 한다.

올 初 100歲 카페를 裝飾한 金宗壎(50) ‘우리洞네좋은사람들’ 代表는 올해도 서울 江南區에서 ‘우리 洞네와 함께 나이들基’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地域 어르신들의 住宅에 落傷을 防止하기 위한 設備를 마련해주는 일에서부터 ‘살던 곳에서 나이들基(aging in place)’가 可能한 地域社會 만들기를 摸索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活動을 持續可能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18日 共有오피스에 冊床 한個 놓고 작은 社會的企業 ‘쉘位파트너스’를 出帆시켰다.

지난해 11월 열린 한국노년교육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분당, 위례인생학교 사례를 발표하는 백만기 씨.
지난해 11月 열린 韓國老年敎育學會 秋季 學術大會에서 分黨, 慰禮人生學校 事例를 發表하는 백만기 氏.
지난해 末 100歲 카페에서 隱退者들이 ‘갈 곳’에 對해 ‘公共에서 施設을 提供하고 民間이 運營主體가 되는 方式‘을 提案했던 백만기 慰禮人生學校 校長은 11月 ‘京畿人生캠퍼스’가 열린다는 消息을 傳해왔다.

當時 記事를 본 京畿道에서 그를 찾아갔고 京畿道廳 舊廳舍에 場所를 만들고 運營을 그에게 委任하기로 했다는 것. 그로서는 盆唐, 慰禮에 이은 세 番째 人生學校다. 現在 25個 示範講座가 運營中인데, 京畿道는 앞으로 31個 市郡에 人生學校를 普及할 豫定이라고 한다. 白 氏의 平生 目標인 ‘全國에 人生學校 100個 만들기’가 現實感을 갖기 始作했다.

‘느리게 나이들基’ 硏究하는 젊은 醫師
서울峨山病院 老年內科 事務室을 背景으로 선 정희원 敎授
지난해 4月 여러次例 取材했던 정희원(39) 서울峨山病院 老年內科 敎授. 처음 만난 날 記者가 “當身은 반드시 스타가 될 것”이라고 自信있게 豫言한 人物이다. 젊지만 該博했고 流暢한데 謙遜하고 問題意識도 좋았다.

“아하하..그런 건 바라지도 않고요, 冊이나 좀 팔렸으면 좋겠어요”라고 答하던 그의 表情이 개구장이 같았다.

豫言은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 뒤로 冊을 2卷 더 냈고 新聞에 定期칼럼을 쓰는가하면 各種 講演에 불려다니고 TV나 유튜브에도 자주 얼굴을 내민다.

趣味인 호른을 熱心히 練習해 ‘동아音樂콩쿠르에 出戰할 거’라 했는데 지난해 正말 ‘出戰했고, 떨어졌다’는 消息을 傳해왔다. 올해 두番째 新刊인 ‘느리게 나이드는 習慣(한빛라이프)’을 最近 보내왔다.

댓글에서 읽히는 ‘살기 힘들다’는 아우聲
記者는 100歲 카페 技士에 달리는 댓글들을 熱心히 읽는 便이다. 우리 時代 시니어의 肖像이 그려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좋은 기운도 얻을 수 있어서다.

때로는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熱心히 사는 老年을 紹介하면 種種 ‘이제 됐으니 그만 쉬며 人生을 즐기시라’는 助言이 달리는데, 이는 他人에 對한 理解가 不足한 탓이라고 본다. 30, 40臺가 보람을 얻고 活力을 느끼고 싶다면 70, 80代 어르신도 보람과 活力이 必要하다.

他人의 努力이나 幸福을 認定하고 싶지 않은 心理가 읽히거나 過度한 被害意識이 傳해져오기도하는데, 그만큼 ‘내 삶이 힘들다’는 마음의 表現으로 보였다.

特히 安定的으로 年金을 받는 職種에 對한 疾視가 甚한데, 아직 不實한 韓國의 年金制度 탓도 있어 보인다. 國民年金이 導入된 1988年 以來 꾸준히 年金을 納付해온 世代가 本格的으로 受給者가 된다면 맞벌이라면 3~400萬이 넘는 家庭도 드물지 않게 된다. 反面 低出産으로 인한 生産人口 減少로 年金의 未來를 憂慮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實際로 老後를 살아본 분들의 共通된 證言은 나이가 들수록 生活費는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 이때는 生計問題보다 남는 時間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 보람과 意味를 찾을 것인가가 더욱 重要해질 수 있다.

一身우일신(日新又日新)
‘이런 人生 2幕’에 登場하는 분들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가장 많은 境遇는 이메일을 通한 自薦他薦이다. 出版社에서 100歲카페에 어울릴 것같은 神竿을 보내주기도 한다(내돈내산인 境遇가 더 많다).

재미있는 것은 한 記事가 나가면 類似한 분들의 紹介가 몰려온다는 點. 예컨대 前職 敎師가 主人公으로 나가면 敎職에서 隱退하신 분들의 메일이 갑자기 많아지고, 隱退 後 電源살이하는 분 얘기가 나가면 全員에 定着한 분들이 全國에서 連絡해오는 式이다. 이런 境遇 아무래도 비슷한 事例를 連달아 다루기 어렵다보니 뒤로 돌려지게 된다.

이 밖에도 言及하지 못한 더 많은 분들을 人生2幕이라는 主題로 만났다. 이들은 老年에도 社會와 사람, 世上과의 疏通은 重要하다고 입 모아 말한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熱心히 찾아 紹介하고자 한다.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