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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獨]李完用의 二重性 드러낸 ‘詩’… 1916年에 쓴 親筆 簇子 公開|東亞日報

[單獨]李完用의 二重性 드러낸 ‘詩’… 1916年에 쓴 親筆 簇子 公開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8月 15日 12時 07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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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條約과 韓日倂合條約 等을 主導한 親日派 이완용(1858~1926)의 二重性을 드러내는 글이 光復 77周年인 15日 公開됐다.

鄕土史學者人 심정섭 氏(79·廣州 北區 매곡동)는 이날 李完用의 親筆簇子 1點을 동아일보에 처음으로 公開했다. 沈 氏는 大韓民國 臨時政府 國務委員을 지낸 獨立運動家 白江 조경한 先生(1900~1993)의 外孫子로, 獨立運動 關聯 飼料와 親日資料를 蒐集·硏究하고 있다.

이番에 公開된 李完用의 簇子는 가로 33㎝, 세로 106㎝로, 1916年 여름에 作成됐다. 簇子에 적힌 詩는 ‘琴書四十年(거문고와 함께 冊 읽기 四十 年을 하였더니), 幾作山中客(거의 山中의 나그네가 되었구나), 一日茅棟成(하루 만에 띠(갈대) 집을 지을 수가 있으니), 居然我泉石(샘과 돌과 평화롭게 私奴라)’다.

이 詩는 中國 南宋 性理學者인 朱熹가 벼슬을 버리고 落鄕해 무이산에 隱居할 때 지은 無二精舍 雜詠 12修 中 첫 番째다. 沈 氏는 “外할아버지인 白江 先生에게 ‘李完用은 1909年 李在明 義士(1887~1910)의 義擧로 重傷을 입은 뒤 그 後遺症으로 健康이 惡化되자 인왕상 溪谷에 祕密 別莊을 짓고 療養하면서 詩, 書藝에 沒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沈 氏는 “李完用이 詩를 통해 自身이 朱熹처럼 落鄕해 自然 속에 悠悠自適하고 있다는 것을 慇懃히 誇示하면서 日帝가 自身이 한 親日行跡에 비해 낮은 作位인 伯爵을 내리자 이에 不滿을 품은 것을 詩를 통해 間接的으로 드러낸 것으로 推定된다”고 說明했다.

李完用은 日帝가 1905年 大韓帝國의 外交權을 剝奪한 强制條約人 乙巳勒約(乙巳勒約)에 贊成한 ‘乙巳五賊(乙巳五賊)’, 1907年 行政·司法事務를 빼앗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主導한 ‘정미七赤(丁未七賊)’, 1910年 國權을 빼앗은 庚戌國恥(庚戌國恥)를 主導한 人物들인 ‘警술國籍(庚戌國賊)’에 包含된다. 李完用은 國權侵奪에 모두 關與한 唯一한 人物로, 賣國奴로 불린다.

當代의 名筆로 불렸던 李完用은 1913年 日本 王을 讚揚하는 글을 써 보내고, 1916年 王世子 이은과 日本 王族 李方子 女史가 結婚을 決定하자 朝鮮總督府 機關紙인 每日申報에 讚揚하는 글을 썼다. 1919年 3·1萬歲 運動이 일어나자 세 次例나 警告文을 作成했다. 警告文은 ‘朝鮮獨立運動은 虛說이며 妄動이다. 朝鮮과 日本은 祖上이 같다’는 內容으로 日帝의 主張과 一脈相通했다.

李完用이 더 積極的으로 親日行爲를 하자 日帝는 1921年 侯爵爵位를 내렸다. 侯爵 爵位는 아들, 孫子에게 繼承돼 朝鮮의 貴族으로 온갖 映畫를 누렸다. 沈 氏는 “李完用은 末年에 一族인 이영구에게 暗殺될 뻔 했고 死亡以後 全北 益山의 무덤이 後孫에 依해 파헤쳐져 없어졌으니 朝鮮 王朝의 萬古逆賊에게 加해지는 剖棺斬屍와 다름없다”고 强調했다.


이형주 記者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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