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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경리 先生 有故 ‘日本産高(日本散考)’ 發掘 첫 紹介|東亞日報

故 박경리 先生 有故 ‘日本産高(日本散考)’ 發掘 첫 紹介

  • 東亞日報
  • 入力 2008年 7月 18日 02時 53分


原稿紙 63張 分量
歷史에 땜질하고, 아닌 것도 그렇다 하고…


《‘토지’의 作家 故 박경리 先生(1926∼2008)의 有故 ‘日本産高(日本散考)’가 發掘됐다. 故人의 딸 金榮珠 土地文化館腸은 “流品 整理 中 未發表 肉筆 原稿를 찾았고 最近 日本 問題가 불거지며 公開를 決心했다”고 17日 밝혔다. 日本産高 1篇 ‘憎惡의 根源’과 2篇 ‘神國의 虛像’은 各各 200字 原稿紙 25張 안팎으로 完成本이지만 3篇 ‘東京 까마귀’는 13章으로 未完이다. 金 館長은 “15年餘 前에 씌어진 原稿로 推定된다. 故人께서 日帝强占期를 直接 겪으신 만큼 日本에 對한 글을 쓰고 싶어 하셨다”면서 “한 卷으로 完決 짓지 못하셨지만 作家的 直觀과 感受性으로 日本에 對한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오래 苦心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日本産高’ 3篇을 要約 揭載한다.》

<1>憎惡(憎惡)의 根源(根源) ▶<1>憎惡의 根源 專門

解放 後, 1950年 日本서 初版을 發行한 世界文藝辭典 東洋篇을 보면 文藝思潮 項目에 無慮 26페이지가 日本文學을 위해 割愛되어 있고 中國文學이 12페이지, 印度文學이 約 5페이지, 아라비아 페르시아 南方亞細亞가 各各 1페이지 안팎, 다음은 日本周邊文學으로 묶었는데 아이누, 遺構, 臺灣 順으로, 그中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朝鮮文學이라 하여 半 페이지를 쓰고 있다. 事實 이 같은 일은 茶飯事요, 우리 民族文化를 忽待하는 日本의 處事가 어제오늘 始作된 것도 아니다. 신물 나게 겪어왔고 그 일에 對해서는 우리 거의가 不感症 狀態다. 우리 文化를 忽待했다 하여 感情的으로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이라 해야 할까 그것 때문에 붓을 들었고 微妙한 깨달음은 오랜 옛날 묻혀버린 時間의 수렁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日本에 一方的으로 우리가 當해 왔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怨恨도 一方的일 수밖에 없고 意識 깊은 곳에 물려 있는 憎惡의 가시는 여간하여 뽑아내기 어렵다는, 이것이 世代를 不問하고 우리들 共通된 感情이며 認識이다. 한데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怨恨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始作했다. 어쩌면 그들의 意識 깊은 곳의 怨恨이 더 오래이며 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 잠재된 過去의 劣等感이 우리 民族文化를 짓이기려 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征服者의 屬性이라는 꽤 寬大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執拗함은 劣等感의 發露나 征服者의 屬性으로는 說明이 充分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決코 日本周邊文學을 執筆한 다케시다 街즈마(竹下數馬)라는 사람이 意圖的으로 그랬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設或 出版社의 方針이었다 해도 그것엔 關心 없다. 모두 枝葉的인 것이며 個人이나 出版社의 偏見이기보다 日本社會 全般에 걸쳐 오랜 歲月 심어진 先驗的인 것, 無意識 속에 깊이 박힌 것, 바로 그것에 問題가 있을 것 같다. 日本은 아이누, 遺構, 臺灣에 對해서는 否認할 必要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祖上에 關한 限, 民族源流에 關해서는. 그들은 否認한다. 源流를 否認하면서 韓國의 모든 것을 否認한다. 執拗하게 光跡으로.
이노우에 기요시(井上淸) 저 ‘日本의 歷史’에서 人種에 關한 것을 拔萃해 보면 조몬(繩文)土器時代, 日本人種의 原形이 形成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고 後에 韓國에서 높은 야요이土器文化(彌生式土器文化)가 들어와 支配했는데 新來人種이 조몬 時代人을 멸망시켰는지 混血이 되어 人種的 特性이 抹殺되었는지 그러나 조몬 時代人에게 吸收되었으리라는 것이 日本 人類學者들의 通說이라 한다. 率直히 말해서 日本은 渡來人이라 表現하는 한족(韓族)이 그들 支配階級을 形成했던 것을 否定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心情일 것이며 可能하다면 日本人種을 日本列島 固有의 人種이기를 바라는 것이 本心일 것이다.
只今에 와서 우리와 日本이 同族 어쩌고 하는 것도 實은 陳腐한 얘기다. 歷史 硏究의 領域일 뿐, 터럭만큼의 同質感도 없는 마당에 感傷에 젖을 必要는 없다. 서로 理解하게 되면 좋고, 다만 人類라는 自覺으로 나를 다스려가며 앞으로 이 글을 써 나갈 생각이다.

<2>神國(신국)의 虛相(虛像) ▶ <2> 神國의 虛相 專門

神國(神國)은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用語다. 생각해 보면 日本만큼 ‘天’ 者와 ‘神’字를 愛用하는 나라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王의 이름도 그렇고 一般人의 姓氏 地名 等, 거룩하고 덩치 큰 글字를 푸짐하게 쓰고 있다. 神武 崇神 神功皇后 天智 天武라는 王, 王后 이름에서부터 天田 天野 神山이라는 姓氏, 地名으로 떠오르는 것에 神戶 神田 天域, 年號에도 天承 天治 神兵에서 軍神 神風 神器, 到處에 神宮(神宮)이 있고 神社(神社)가 있으며 ‘天’字를 쓰되 中國은 天子인 데 비하여 日本은 天皇, 地上을 다스리기보다는 하늘의 皇帝인 셈이다.
에도時代 後記, 國學者 社大人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히라다 亞쓰다네는 詩人이기도 한 사람인데 그 當時 日本 尊重의 烈風이 대단했다. 그래 그랬겠지만 神大門子 (神代文字)라고 그가 들고 나온 것이 놀랍게도 우리 한글과 恰似한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神大門者로서 韓國에까지 傳達되어 諺文이 되었노라, 배꼽 잡고 웃을 主張을 한 것이다.
새삼스러운 얘기, 그야말로 지겹게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過去 日本의 歷史學, 特히 國史學의 學者들은 皇國史觀을 鞏固히 하기 위하여 歷史에 無數히 많은 땜질을 했고 또 많이 쏠아내고 했으며 韓日 合邦을 正當化하기 위해 手段과 方法을 가리지 않았던 것도 다 아는 일이거니와 그러나 안다는 그 自體는 無意味한 일이었다. 事實이 이렇고 저렇고 해봐야 所用이 없고 學者의 良心 운운했다가는 바보가 된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捏造된 歷史敎科書는 如前히 被害 받은 國家에서 論難의 對象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沒廉恥는 그것을 是正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씨가 마르게 사내들이 죽어간 2次大戰, 日本의 惡夢은 사람이 賢人神(現人神)으로 存在하는 거짓의 그 黃桃主義 때문이다. 街打비라(한겹의 日本옷)같이 속이 비어 있는 神國思想에 매달려온 日本人의 歷史意識 그것의 克服을 바라는 마음 懇切하다. 자유롭게 思考하는 사람으로, 野心 없는 이웃으로 마주보기 위하여, 그리고 人類의 平和를 위하여.
百家信徒(伯家神道)에서는 日本人은 神의 子孫으로 卽 神이다. 日本 信徒(神道)의 한 分派에서는 日本을 萬國의 宗主國이라 했고 후지산은 地球의 眞髓(鎭守)라 하는 誇大妄想, 그런 妄想은 後日 世界 征服을 꿈꾸는 妄想으로 發展했고 유대人의 選民思想이 有가 아니다. 枯死祈禱 例外는 아니다. 黃道思想의 骨髓라 할 수 있는 新代篇(神代篇)에는 到處에 그 矛盾이 露呈되어 있다.
王權 確立을 위하여 王室 美化는 必須條件이며 따라서 捏造와 削除 剽竊은 不可避한 일이다. 神話란 어느 곳에서든 歲月 따라서 削除되고 捏造하고 표절되는 屬性을 지니고 있다. 해서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은 이야기는 거짓말이요 노래는 참말이라 했던 것이다. 어떤 民族이든 그 起源에 神話 없는 民族은 없다.

<3>東京까마귀 ▶ <3> 東京까마귀 專門

餘裕綽綽하다/사람 사는 언저리 아니면 못사는 주제에/사람의 눈치쯤 아랑곳없이/停車場 둘레를 어슬렁거리다가도/지갑을 줍듯 먹어만 보면/스윽 달아난다.
장호 詩人의 詩集 ‘東京까마귀’ 속의 詩 한 句節이다.
日本에는 까마귀가 많다고 한다. 小說이나 詩(俳句)에도 까마귀는 곧잘 나타난다. 流行歌, 童謠, 甚至於 자장歌에도 심심찮게 登場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처럼 嫌惡感으로 그 새를 對하지 않는 模樣이고 그들 情緖 속에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日本人들의 情緖에는 짙은 憂愁와 虛無主義가 깔려 있다. 그리고 어둡다. 해서 고천(枯天)에 앉은 겨울까마귀는 그들 情緖의 近似値며 우리의 輕快한 새타령이 주는 느낌과는 매우 對照的이다.
그림장이 李仲燮은 日本에서 돌아오는/길에/민둥산 붉은 흙을 飛行機에서 내다보고서/눈물이 나더라고 말했지만/(중략) 釜山 영주동 까치집이 내다보이는 우리 집에 와서도 그랬고/정릉 골짜기 까치집이 있는 下宿집에서도 그랬듯이/까치만 쳐다보면 늘 그는 입을 반푼이처럼 헤벌레 하고 있었겄다.(‘까마귀에 쫓겨 온 李仲燮’)
까마귀와 까치의 對備는 民族과 民族 間의 숨 막히게 다른 뉘앙스를 느끼게 하지만 畫家 李仲燮의 個人的 苦惱, 民族的 슬픔, 내 江山에 對한 짙고 애틋한 愛情이 느껴져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日帝下에서 살아본 사람이면 내 自身의 눈물, 내 自身의 모습으로 錯覺하게 되는 句節이다.
옛날 서울 정릉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山洞네여서 일꾼들을 불러다가 自然石으로 築臺를 쌓은 일이 있었다. 일하면서 주고받는 그들 對話를 듣자니까 徵用 가다가 도망친 얘기였다. 뼈가 바스라진다는 둥 險惡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異常한 것은 그들의 表情이었다. 憎惡와 怨恨이 없었다. 때론 웃고 익살스러운 몸짓을 하며 일하는 것처럼 슬렁슬렁하는 말套가 그렇게 閑暇할 수가 없었다. 落薦이랄까 諧謔이랄까 그런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 異常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樂天的 諧謔이 갖는 餘裕 때문에 끝내는 犧牲하여 이 民族이 亡하지 않고 긴 歲月 存續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整理=박선희 記者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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