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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것은[관계의 再發見/고수리]|東亞日報

우리가 두고 온 것은[관계의 再發見/고수리]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9月 14日 23時 27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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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上京해서 처음으로 얻었던 放은 月貰 18萬 원짜리 男女 共用 考試院 房이었다. 窓門 없는 길쭉한 房. 房門을 걸어 잠그고 웅크려 누우면 어둡고 눅눅한 棺 속에 눕는 氣分이었다. 얇은 合板을 덧대어 가른 放은 防音이 되지 않았고, 어둠 속에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에 다들 나란히 누워 살아 있구나 實感했다. 가장 작고 좁고 무섭고 외로운 房이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門을 열면 바퀴벌레 數十 마리가 私私삭 흩어지던, 집主人에게 속아 들어간 房. 遊興街 中央에 반짝이던 考試院, 모텔村에 숨어 있던 考試院, 江南 빌딩村 뒷골목에 놓여 있던 考試院. 考試 工夫를 한 것도 아닌데 考試院을 轉轉하며 머물렀다. 짐을 챙겨 房門을 나서는 瞬間, 내 痕跡은 감쪽같이 사라져 建物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비슷비슷한 房들이었다.

男동생이 上京하고 같이 살았던 마지막 집이 第一 좋았다. 葬禮式場 옆에 지어진 오래된 聯立住宅. 처음으로 各自의 房을 나눠 가진 집에서 살았다. 우리는 退勤길에 같이 場을 봐와 밥을 지어 먹고 설거지하고 房을 쓸고 닦고 빨래를 갰다. 生活이라 할 만한 日常과 痕跡이 생겨났다. 그 집에 두고 온 게 하나 있다.

房과 房을 轉轉하며 살다 보니 空間에 愛着이 없기 때문일까. 나는 空間을 예쁘게 꾸미는 일에 무심한 便이었다. 따로 化粧臺를 두지 않고 壁거울 앞을 서성이며 化粧하곤 했는데, 동생은 그런 내가 마음이 쓰였나 보다. 한밤中에 어디선가 化粧臺 하나를 주워 왔다. 뭐랄까, 어느 집 할머니가 썼을 법한 키 작고 아주 예스러운 原木 化粧臺였다. 서랍을 열면 合板에 빨간 不織布 천이 붙어 있었다. “누나, 이제 여기서 火葬해.”

化粧臺 앞에 앉아 거울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이렇게 귀엽고 찡한 거지. 찡한데 웃기고, 웃긴데 고맙고, 고마운데 촌스럽고, 촌스러운데 또 짠하고. 동생 눈치를 살피며 쓰는 척하다간 그냥 두었다. 그 化粧臺, 동생이 맨 나중에 집을 떠나면서 어딘가 버렸을 텐데. 가끔 생각난다. 한밤에 촌스러운 化粧臺를 낑낑 짊어지고 5層 階段을 올라왔을 동생의 마음이.

結婚하면서 짐을 챙겨 먼저 그 집에서 나오던 겨울밤, 男동생 앞에서 으엉으엉 어린애처럼 울음이 터졌다. “야, 나 이제 가.” “苦生했어, 누나. 잘 살아.” 동생은 나를 안아주었다. 그날 되게 추운 겨울밤이었는데도 따뜻했다. 우리는 그 집에 追憶을 두고 왔다. 아침에도 哭소리가 들리던 葬禮式場 옆의 허름한 聯立住宅.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더웠던 오래된 집. 그러나 生活과 追憶이 있어 비로소 사람 사는 것 같았던 집. 都市살이에서 唯一하게 따스했던 우리 집이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上京 #空間 #愛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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