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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洪範圖가 본 洪範圖|東亞日報

[송평인 칼럼]洪範圖가 본 洪範圖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9月 6日 00時 06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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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聯서 나온 資料 보기 前까지 洪範圖 아는 체 말아야
그의 自意識은 蘇聯을 새 祖國으로 삼은 빨치산
韓人 武裝解除에 加擔했고 强制移住에도 不滿 없어
문재인이 한 挑發 바로잡는 걸 挑發이라 해선 안 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論說委員
洪範圖에 對해서는 蘇聯 崩壞 以後 公開된 資料를 보기 前까지는 알량한 知識으로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 그中에서도 꼭 봐야 할 資料가 1932年 洪範圖가 蘇聯 政府로부터 年金과 特惠를 받기 위해 提出한 履歷書와 蘇聯 政府 側 質問 項目에 맞춰 應答한 앙케트 資料다. 두 資料는 洪範圖가 自身의 삶을 한 番은 자유롭게, 또 한 番은 形式에 맞춰 要約한 것이다. 동아일보가 1993年 대우그룹과 共同企劃해 巨金을 주고 러시아에서 購入한 資料에 들어 있었다.

洪範圖는 1921年 11月 레닌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간 것은 그해 6月 自由詩에서 韓人 部隊 사이에 發生한 流血 事態를 報告하기 위함이라고 썼다. 單純히 56名의 韓人 代表 中 한 名이 아니라 自由視 事變을 報告하기 위해 갔으며, 自由視 事變은 外見上 러시아 部隊가 앞장섰지만 韓人 部隊끼리 싸운 流血 事態임을 밝히고 있다.

洪範圖는 自由視 事變 3個月 前 이미 武裝解除를 主導한 칼란다리詩빌리 部隊의 韓人 旅團 第1大隊長으로 任命됐음도 밝혔다. 洪範圖나 그의 部隊가 單純히 武裝解除에 應한 것 以上의 役割을 했을 것이라는 疑心이 可能하다. 그래야 그가 自由視 事變 後 裁判委員을 맡고 레닌에게 拳銃과 金貨를 褒賞으로 받은 事實이 說明이 된다. 그가 褒賞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强制 무장해제된 사할린 部隊院 2名에게 暗殺될 뻔한 事件은 그를 向한 怨恨이 澎湃했음을 보여준다.

國內 洪範圖 硏究者는 한두 名에 不過하고 洪範圖가 좋은 評價를 받아야 먹고산다. 그래서 根據도 不分明한 證言을 土臺로 洪範圖가 自由詩 事變에 땅을 치며 痛哭했다느니, 裁判委員으로서 抑鬱한 被害者가 생기지 않도록 努力했다느니 하는 浪說을 늘어놓고 있다.

洪範圖는 1919年부터 1920年까지 빨치산 部隊를 거느렸다고 썼다. 봉오동과 靑山裏 戰鬪는 1920年 6月과 10月의 일이다. 두 戰鬪에 臨할 때 그의 自意識은 獨立軍이 아니라 빨치산이었던 것이다. 그의 빨치산 證明書에는 칼란다리詩빌리 部隊 編入 前부터 包含해서 1919年 9月부터 1922年 11月까지 赤衛軍(敵軍을 護衛하는 準軍事組織)에 勤務한 자라고 나온다.

그는 1913年 日本의 手配를 받아 蘇聯의 極東地域으로 건너왔다고 썼다. 그의 部隊는 1919年 러시아 敵軍에게서 訓鍊을 받고 敵軍의 도움으로 武裝을 强化했다. 산(山)포수였던 洪範圖는 極東地域에서 1次 大戰과 러시아 內戰을 겪으면서 현대 武器의 威力을 實感하고 獵銃으로는 日本軍을 相對할 수 없다는 事實을 깨달아 러시아 敵軍과 함께하기로 일찍이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

洪範圖는 自由視 事變 以後 獨立英雄으로 불리기에는 수치스럽게도 다시 銃을 잡지 못했다. 무장해제된 韓人 部隊는 敎育訓鍊部隊로 編成됐다가 解體됐다. 武裝解除의 目的이 本來 그것이었으나 洪範圖度 속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가 口述한 自敍傳이란 게 남아 있는데 그 冊에서 武裝解除에 不滿다운 不滿을 吐露한 적이 없다. 甚至於 스탈린 治下의 强制 移住에 對해서도 그렇다. 오히려 2次 大戰 때 獨逸이 蘇聯에 改悛하자 戰爭터로 보내달라고 나설 程度였다.

그의 1927年 蘇聯 共産黨 加入은 形式的인 節次였을 뿐이다. 이미 1919年 무렵부터 그의 自意識 속의 새로운 祖國은 蘇聯이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工夫해서 共産主義者가 된 사람은 아니지만 ‘黨은 個人보다 偉大하며 黨은 언제나 옳다’고 여긴 뼛속 깊이 共産主義者였다.

鳳梧洞-靑山裏 戰鬪는 武裝鬪爭의 黎明으로 錯覺한 黃昏이었다. 日本軍의 反擊으로 間島의 朝鮮人들은 無辜한 虐殺을 當하고 獨立軍은 땅끝까지 쫓겨갔다. 武裝解除에 應한 쪽은 永遠히 銃을 빼앗겼고 武裝解除를 拒否한 뒤 滿洲로 돌아온 쪽은 支離滅裂했다. 獨立軍이 맘 놓고 숨쉴 땅 한 자락이 없었는데도 李鍾贊 光復會長은 나라를 잃은 적이 없고 따라서 建國이 뭔 말이냐는 헛소리를 光復節 記念辭에서 늘어놓았다.

洪範圖보고 地獄에나 꺼지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는 나름 信條의 사나이였다. 다만 大韓民國 現充員은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國防部는 더 아니고 陸史는 더욱더 아니다. 再造山河(再造山河) 云云하며 이념적 挑發을 始作한 것은 文在寅 前 大統領이다. 挑發을 바로잡아 元狀態로 되돌리는 걸 똑같이 挑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언제쯤 精神을 차릴 것인가.



송평인 論說委員 pisong@donga.com



#洪範圖 #信條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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