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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紛 막지 못한 政治의 失敗… 펠로폰네소스 戰爭 부르다[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東亞日報

內紛 막지 못한 政治의 失敗… 펠로폰네소스 戰爭 부르다[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6月 29日 23時 3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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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펠로폰네소스 戰爭(紀元前 431年∼紀元前 404年)은 델로스 同盟의 盟主 아테나이와 펠로폰네소스 同盟을 이끈 스파르타의 霸權 다툼이었다. 同盟에 屬하거나 中立을 내세웠던 나라들이 하나둘씩 戰爭에 말려들면서 다툼은 ‘世界 大戰’으로 擴大되었다. 이 周邊國들은 ‘고래 싸움에 等 터진 새우’ 같은 犧牲者였을까? 그렇게 보는 것은 너무 一面的이다. ‘펠로폰네소스 戰爭史’는 巨大한 破局이 어떻게 ‘먼 나라의 不和’에서 始作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 類似한 事件의 反復을 警告하는 투키디데스의 ‘懲毖錄’이다.》



먼 나라에서 始作된 戰爭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의 도화선인 코린토스-케르퀴라-에피담노스의 갈등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기원전 433년 시보타 항구 근처에서 벌어진 케르퀴라와 코린토스의 해전을 묘사한 그림.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戰爭史’는 戰爭의 導火線인 코린토스-케르퀴라-에피담노스의 葛藤 이야기에서 始作한다. 紀元前 433年 時報打 港口 近處에서 벌어진 케르퀴라와 코린토스의 海戰을 描寫한 그림.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널리 알려져 있듯이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戰爭의 ‘가장 참된 原因’을 아테나이의 勢力 膨脹에 對한 스파르타人들의 두려움에서 찾았다. 하지만 어떤 事件에서든 주된 原因이 있다면 補助的 原因도 있기 마련이다. 아테나이의 膨脹이 펠로폰네소스 戰爭의 주된 原因이었다면, 그 背後에는 古代 그리스 世界의 固有한 葛藤 構造가 있었다. 當時 그리스의 여러 나라는 貴族情과 民主正義 正體 葛藤을 겪었고, 이런 內部 葛藤은 다른 나라들과의 同盟 關係와 얽혀 더더욱 複雜한 樣相을 띠었다. 나라 안에서 누가 政權을 잡느냐에 따라 同盟 關係가 달라졌고 同盟 關係에 따라 國內 停滯가 左右되었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葛藤은 特히 植民地와 모시(metropolis) 사이에서 자주 불거졌다. 圖式的으로 생각해 보자. 나라 A가 人口 過剩이나 土地 不足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植民地 B를 開拓한다. B 亦是 똑같은 問題에 直面해서 植民地 C를 세운다. 피를 나눈 A, B, C의 關係는 어떨까? A는 B의 內政에 干涉하고 B는 이에 反撥한다. A와 B의 葛藤이 B와 C 사이에서도 反復된다. 게다가 A, B, C가 저마다 正體 葛藤에 빠져들면 狀況은 더 꼬일 수밖에. 투키디데스 戰爭社는 이런 葛藤 속 ‘삼대(三代)’의 이야기에서 始作한다. 코린토스-케르퀴라-에피담노스의 葛藤이 戰爭의 導火線이었던 것이다.

에피담노스는 케르퀴라 移住民들이 세운 나라였다. 먼 곳 작은 나라의 內紛이 큰 戰爭의 불씨가 되리라고 누가 想像이나 했을까? 그런데 에피담노스에서 民主派가 貴族派를 몰아내고 政權을 掌握하면서 紛爭의 도미노 現象이 일어났다. 쫓겨난 貴族派는 外部 勢力을 끌고 돌아와 民主派를 攻擊했다. 民主派는 케르퀴라에 도움을 請했지만, 케르퀴라는 中立을 내세워 支援을 拒絶했다. ‘아버지’에게 외면당한 에피담노스는 ‘할아버지’ 코린토스에게 손을 벌렸다. 主權을 넘기겠다는 約束과 함께.

집안싸움이 온 洞네 싸움으로 飛火

코린토스人들에게는 반가운 提案이었다. 平素 모시를 깔보던 케르퀴라를 膺懲할 機會가 왔다! 괘씸한 ‘아들’을 魂내려 ‘孫子’ 便을 드는 ‘할아버지’의 心情이 그럴까? 에피담노스 事態에 코린토스가 介入하자 케르퀴라의 立地가 흔들렸다. 에피담노스의 支配權을 놓고 코린토스와 衝突한 케르퀴라는 마침내 中立을 抛棄하고 아테나이와 同盟을 맺는다. 選擇의 餘地가 없었다. 코린토스가 스파르타의 同盟國이었으니까. 아테나이가 케르퀴라와 코린토스의 싸움에 介入하면서 집안 싸움이 온 洞네 싸움으로 飛火된 셈이다.

코린토스의 立場에서는 케르퀴라가 미운 子息이라면 아테나이는 오랜 怨讐였다. 競爭心과 復讐心에 불타오른 코린토스가 同盟國 스파르타를 끌어들여 戰爭을 벌이려 한 것은 當然하다. 처음에는 아테나이度 스파르타度 全面戰을 願치 않았다. 투키디데스는 平和를 위한 두 나라의 外交的 努力을 仔細히 紹介한다. 하지만 두 나라는 戰略的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케르퀴라의 艦隊가 問題였다. 이 艦隊가 아테나이 手中에 들어가면 펠로폰네소스 同盟國들은 넓은 바다에 배 한 隻 띄울 수 없는 處地가 된다. 反面, 케르퀴라의 艦隊가 펠로폰네소스 同盟으로 넘어가면 海軍에 모든 것을 걸었던 아테나이가 위태로워진다. 달리기 始作한 汽車에서 누가 뛰어내릴 수 있을까?

투키디데스의 모델로써 國際戰의 原因을 說明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戰爭의 ‘가장 참된 原因’만큼 補助的 原因도 함께 따져야 할 것이다. 第1次 世界大戰을 獨逸의 勢力 膨脹에 對한 英國人들의 두려움에서 찾는 사람은 當然히 오스트리아 帝國과 세르비아의 關係에 注目해야 한다. 美國과 中國의 霸權 다툼을 새로운 ‘투키디데스의 陷穽’으로 指目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臺灣이 ‘케르퀴라’가 될 危險性을 警告했다. 하지만 어디 臺灣뿐일까? 內部 葛藤에 휩싸인 나라, 이 內紛이 外部 同盟 關係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나라는 언제든 더 큰 戰爭의 導火線이 아닐까?

투키디데스와 플라톤이 남긴 警告

戰爭의 動機를 提供한 케르퀴라의 運命은 어땠을까? 펠로폰네소스 戰爭이 勃發하고 몇 年 뒤 케르퀴라는 잿더미가 되었다. 都市를 破壞한 것은 외침이 아니라 內戰이었다. 에피담노스 事態의 複製版이었다. 코린토스에 捕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轉向者들이 民主派를 攻擊했다. 法定 訴訟에서 始作된 攻擊은 暗殺과 테러, 權力 奪取로 이어졌다. 하지만 支援하던 스파르타 軍隊가 退却하자 民主派의 反擊이 始作되었다. 激烈한 內戰에 中立은 不可能했다. 女子들까지 싸움에 나섰을 程度다. “어떤 사람들은 個人的 怨恨 때문에 죽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빚을 준 탓에 債務者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慘狀은 케르퀴라에 局限된 일이 아니었다. “各地에서 紛亂이 일어나 民衆의 指導者들은 아테나異人들을, 少數派는 스파르타人들을 끌어들이면서, 나중에는 그리스 世界 全體가 動亂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戰爭史’는 ‘戰爭(polemos)’의 記錄이기에 앞서 ‘內紛(stasis)’의 記錄이다. ‘한 나라의 內紛이 同盟國들의 戰爭을 부르고 이 戰爭이 다시 內戰을 격화시켜 文明을 야만 狀態로 끌어내린다.’ 나는 이것이 투키디데스 戰爭史의 要約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國家’에서 政治의 目的을 內紛을 막는 데 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內紛의 危險과 破壞力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體驗한 사람이었다. 그의 處方이 모든 政治的 意見 差異를 排斥할 程度로 强迫的인 것은 問題이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내전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케르퀴라의 현재 모습. 현재 ‘코르푸’로 불리는 이곳은 그리스의 유명 관광지로 손꼽힌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펠로폰네소스 戰爭 中 內戰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케르퀴라의 現在 모습. 現在 ‘코르푸’로 불리는 이곳은 그리스의 有名 觀光地로 손꼽힌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투키디데스와 플라톤의 警告가 誇張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73年 前 이 땅에서 벌어진 戰爭을 記憶하기 때문이다. 어떤 統計에 따르면 南北韓 軍人 死亡者가 約 44萬 名인 데 反해 民間人 死亡者는 約 65萬 名이었다(‘마을로 간 韓國戰爭’). 수많은 사람이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戰爭들”에 犧牲되었다. ‘펠로폰네소스 戰爭史’의 警告를 ‘길 건널 때 操心해라’라는 老母의 걱정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理由가 여기 있다. 內紛을 막는 政治 以外에 ‘케르퀴라의 運命’을 避하는 方法이 무엇일까.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펠로폰네소스 戰爭 #政治의 失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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