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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00m 土窟에 들어선 ‘地下 彫刻 美術館’[윤범모의 顯微鏡으로 본 名畫]|東亞日報

길이 100m 土窟에 들어선 ‘地下 彫刻 美術館’[윤범모의 顯微鏡으로 본 名畫]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3月 29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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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철 조각가가 7년간 파낸 100m 길이의 토굴 안에는 조각 작품들이 가득하다. 첫 번째 굴 ‘오온을 통해 나를 바라보기’. 
천장엔 연꽃 모양의 조명을, 벽면에는 이리저리 꼬인 뿌리 형태와 해골 등을 조각했다. 인간이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을 표현했다. 강대철 조각가 제공
강대철 彫刻家가 7年間 파낸 100m 길이의 土窟 안에는 彫刻 作品들이 가득하다. 첫 番째 굴 ‘五蘊을 통해 나를 바라보기’. 天障엔 蓮꽃 模樣의 照明을, 壁面에는 이리저리 꼬인 뿌리 形態와 骸骨 等을 彫刻했다. 人間이 다섯 가지 感覺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構圖의 旅程을 表現했다. 강대철 彫刻家 提供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윤범모 國立現代美術館長
驚愕! 바로 그 自體다. 巨大한 땅窟, 7年間 每日같이 그것도 혼자서 窟을 팠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로 한 것도 아니다. 窟을 다 파놓고도 자랑은커녕 門을 닫아걸었다. 全南 長興의 社資産 자락. 平凡한 시골이지만 굴은 예사스럽지 않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갖가지의 造形物이 가득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巨大한 地下 彫刻 美術館이라 할 수 있다. 面積 1650m²(藥 500坪) 規模에 窟 길이만 合쳐도 100m 程度는 될 것 같다. 窟 속 各種 이미지는 扶助 中心으로 50가지 程度다. 한 作家의 求道者的 隨行 空間으로 始作한 特異한 地下 現場이다.

主人公은 彫刻家 강대철이다. 한때 美術界의 彗星으로 脚光을 받았다. 그는 1978年 中央美術大典에서 ‘生命質’로 大賞을 받았다. 固陋한 構想 彫刻界에 新鮮한 새바람이었다. 그가 키운 ‘K 氏 農場의 호박’은 호박 가운데를 軍靴발로 짓이겨 時代 狀況을 象徵하기도 했다. 京畿道 利川의 彫刻公園을 造成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고, 個人展 等 作品 發表도 活潑하게 했다. 1998年 페루 리마 國際 彫刻심포지엄에서 最高作家賞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禪佛敎에 빠지기 始作하면서 作業은 遂行으로 바뀌기 始作했다. 아예 遂行 目的의 建物도 지어 道伴들과 함께하는 生活을 했다. 그런 結果였는지 海印寺 백련암의 聖哲 스님 銅像을 만들었고, 이는 慶南 山淸의 聖哲 스님 記念館 造形物로 이어졌다(2015년). 遂行은 美術界를 떠나게 했고, 隱遁 生活로 이어졌다. 강대철의 潛跡. 隱遁 生活은 作家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智異山에서 餘生을 보내고자 옮긴 살림터가 現在의 社資産 자락 아늑한 곳이다. 이곳에 ‘茶 마시는 房’이라도 하나 만들려고 땅을 팠다. 土質이 特異했다. 壓搾된 마사토와 黃土는 그 나름대로 粘力이 있고 堅固했다. 良質의 흙을 만나는 바람에 높이 5m의 10餘 坪 空間을 確保할 수 있었다. ‘冥想의 房’으로 훌륭했다. 하지만 흙壁은 彫刻家의 삽질을 불렀다. 게다가 聖哲 스님 記念館 일도 끝냈기 때문에 餘裕가 생겨 本格的으로 窟 파기 삽질을 始作했다. 구불구불, 여기저기 窟을 팠다. 네 個의 窟을 파는 데 萬 3年이 흘러갔다. 窟이 깊어지자 파낸 흙 버리기가 重勞動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눈만 뜨면 땅窟 破棄 作業에 邁進했다. 흙 破棄 作業 自體를 構圖의 方便으로 삼았기 때문에 可能했다. 藝術家의 길이나 求道者의 길이나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還甲 나이에 새로운 땅을 選擇했고, 土窟 破棄에 7年을 보내고, 이제 70代 中盤의 나이에 이르렀다.

“反復되는 곡괭이질 德分에 어깨 위에 춤사위가 얹어졌는지 앉아서 쉴 때도 어깨가 들썩인다. 신명 난 이가 興에 겨워하듯 들썩인다. 땅을 파는 곡괭이질이 나를 찾아가는 旅行길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지를 모른 채 살아온 歲月, 이제야 곡괭이와 더불어 大自由人이었던 나를 찾아가네.” 作家는 혼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토굴 입구에 조성한 ‘예수 재림’. 석관에 누워 있는 미륵불을 예수가 바라보고 있다. 범종교적으로 성자들의 메시지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왼쪽 사진). 토굴 앞에 선 강대철 작가. 그는 “토굴을 완성하려면 2, 3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강대철 조각가 제공
土窟 入口에 造成한 ‘예수 再臨’. 石棺에 누워 있는 彌勒佛을 예수가 바라보고 있다. 汎宗敎的으로 聖者들의 메시지를 理解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왼쪽 寫眞). 土窟 앞에 선 강대철 作家. 그는 “土窟을 完成하려면 2, 3年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강대철 彫刻家 提供
第一 먼저 만나는 空間은 ‘예수 再臨’, 그러니까 彌勒과 같은 모습이다. 壁面과 바닥의 棺 속에 누운 聖上은 制度圈 속에 갇힌 現實 諷刺이기도 하다. 첫 番째 굴은 五蘊(五蘊)을 念頭에 두고 굵은 뿌리 形態 위에 腦의 形象과 骸骨을 彫刻했다. 뿌리는 生命의 根源이다. ‘나’의 實體를 찾아가는 실마리로서의 모습이다. 두 番째 굴은 釋迦牟尼佛像을 造成했고, 세 番째 굴은 五蘊 作用을 통해 이루어지는 意識의 實體를 表現했다. 네 番째 굴은 無常觀(無常觀)으로 白骨을 選擇하여 生死一如의 自覺을 담았다. 이어 佛敎의 唯識論의 根源을 念頭에 두고 阿賴耶識을 表現하고자 했다. 無意識의 世界를 意味한다. 巨大한 뿌리 形象 곁에 警戒의 對象으로 爬蟲類의 모습을 넣었다. 火를 잘 내고 다투기 좋아하는 動物은 意外로 鰐魚나 도마뱀 같은 爬蟲類라 한 動物學者의 硏究를 反映했다. 여섯 番째 굴은 길이만 해도 20m에 이르렀다. 여기에 고행상을 造成했다. 나무 뿌리 다발은 腦 神經網과 같고 演技(緣起)의 어떤 構造와도 같다. 關係 속에서 存在하는 삶. 일곱 番째 굴은 法輪을 비롯해 뿌리 形態와 腦의 構造를 새겼다. 左腦와 右腦 가운데에 胎兒를 새겨 넣었다. 한마디로 ‘강대철 土窟’은 한 作家의 創意力을 바탕으로, 그것도 깨달음으로 가는 修行의 方便으로, 조성한 特異한 空間이다. 大衆的 好奇心의 側面으로만 봐도 놀라움, 바로 그 自體일 수밖에 없다. 美術界를 떠난 지 20年 以後의 成果라 할 수 있다.

애初 緻密한 計劃 아래 作業을 始作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勞動量을 計算했다면 더욱 不可能했을 것이다. 흙은 繼續 삽질을 要求했고, 壁面은 갖가지의 造形物을 許容했다. 그래서 歲月 가는 줄도 모르고 어두운 땅窟에서 외로운 作業을 遂行해 낼 수 있었다. 慰勞가 되었다면 壁面 위의 龕室에 켜놓은 촛불이리라. 깜깜한 땅窟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는 形象들. 거기에 한 隱遁 生活者의 執念과 삶의 斷面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韓半島 땅끝 자락에서 일군 驚異로운 ‘地下 美術館’ 아니 ‘깨달음의 善防’이다. 강대철은 ‘長興 土窟’을 마무리하고 近來 江華島 傳燈寺를 위해 觀音像을 製作했고, 곧 點眼式을 擧行한다. 1980年代 ‘날리던 彫刻家’의 華麗한 變身이라 할까, 潛跡한 作家의 조용한 改善이라 할까. 하지만 강대철의 ‘地下 美術館’을 公開하는 나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世俗的 好奇心만 刺戟하는 것 같아서 더욱 그렇다.

윤범모 國立現代美術館長



#地下 彫刻 美術館 #土窟 #예수 再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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