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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 戰場에서 얻은 敎訓[임용한의 戰爭史]〈197〉|東亞日報

지평리 戰場에서 얻은 敎訓[임용한의 戰爭史]〈197〉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月 2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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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年 1月 28日 美軍 2師團 23聯隊 所屬 1個 小隊가 지평리 南東쪽에 位置한 쌍굴터널 近處를 偵察하기 爲해 出發했다. 다음 날 2次 偵察에서 이 小隊는 中共軍의 襲擊을 받아 高地에 孤立된다. 美軍은 死鬪 끝에 艱辛히 이들을 救出하지만, 이 戰鬪는 벌집을 쑤신 格이 됐다. 當時 美國 政府는 6·25戰爭 抛棄를 苦悶하고 있었다. 1月 13日 해리 트루먼 大統領의 聲明으로 이 論議는 中止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戰鬪 結果로 證明해야 했다. 매슈 리지웨이 將軍은 東部戰線의 中共軍이 脆弱하다고 보고 北進을 命令했다.

아직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美 2師團은 엉거주춤 橫城 쪽으로 進擊하다가 中共軍과 遭遇한 것이다. 이 작은 戰鬪는 다음 날 連帶 規模의 戰鬪로 發展한다. 마침 6·25戰爭에 參戰한 프랑스 大隊가 先鋒에 서고, 23聯隊 3大隊가 參加해 雙굴 近處 高地를 占領하고 이틀間 中共軍 大軍과 激戰을 벌인다. 이 戰鬪에서 勝利한 뒤 23聯隊는 지평리로 進入했고, 2月 13日부터 16日까지 6·25戰爭의 판勢를 바꾼 지평리 戰鬪를 벌이게 된다.

지난 이틀間 雙굴 地域과 지평리의 戰跡地 踏査를 다녀왔다. 偶然히 踏査팀이 將軍, 領官, 副士官, 士兵에 從軍記者 出身이라는 氣막힌 構成이 되었다. 生存勇士分 인터뷰도 하고, 指導와 戰鬪記錄을 들고, CSI(科學搜査隊)처럼 塹壕 痕跡, 銃彈 자국을 더듬으며 高地와 稜線을 돌아다녔다.

두 가지 놀라운 事實을 發見했다. 當時 戰鬪 位置를 찾고, 復元하고 생생하게 體驗하는 일이 可能했다. 어떤 곳이 埋伏 地點인지, 왜 이들은 살고, 이들은 죽었는지, 어떤 部隊가 훌륭한 部隊이고, 勝利하는 部隊인지 現場이 말해주고 있었다. 두 番째는 理由 없는 結果는 없다는 것이었다. 빼앗긴 高地는 元來 脆弱한 곳이었다. 突破당한 地點은 充分한 對備를 못한 탓이었다. 臨機應變의 指揮는 알고 보면 準備하고 對備한 結果였다. 世上의 眞理도 그렇다. 個人을 탓하고, 集團을 탓하기 前에 社會의 構造와 世界의 變化와 時代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戰場에서 살아남았거나 남을 살린 사람은 다 그런 사람들이더라.



任用한 歷史學者


#지평리 #敎訓 #戰爭 #2師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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