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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에서 다시 찾은 音樂 熱情, ‘참새와 허수아비’의 조정희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東亞日報

山에서 다시 찾은 音樂 熱情, ‘참새와 허수아비’의 조정희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1月 13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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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

가수 조정희 씨가 지난해 12월 북한산에 오르다 큰 고드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년 넘게 산을 타며 건강을 지키고 있는 그는 “이 고드름은 지난 한 해 동안 산과 더불어 무탈하게 살아온 나 자신을 칭찬하며 주는 트로피”라고 했다.  조정희 씨 제공
歌手 조정희 氏가 지난해 12月 北漢山에 오르다 큰 고드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年 넘게 山을 타며 健康을 지키고 있는 그는 “이 고드름은 지난 한 해 동안 山과 더불어 無頉하게 살아온 나 自身을 稱讚하며 주는 트로피”라고 했다. 조정희 氏 提供
1982年 MBC 大學歌謠祭에서 宿命的인 離別의 아픔을 노래한 ‘참새와 허수아비’로 大賞을 受賞한 歌手 조정희 氏는 20餘 年 前부터 山을 타기 始作해 히말라야 等 世界의 名山까지 누비며 健康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조정희 氏의 얼굴 모습. 조정희 氏 提供.
“2003年 登山 마니아인 知人의 山行 招待로 月岳山(忠北) 제비봉에 올랐어요. 平素 피트니스센터에서 運動을 하고 있어 體力에는 自身이 있었는데 下山 때부터 다리가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整形外科 專門醫를 찾았더니 안 쓰던 筋肉을 갑자기 써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때 登山이 全身 運動이라는 것을 確實히 알게 됐어요.”

산 사랑의 始作이었다. 普通 힘들면 다시 山에 안 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山이 그를 불렀다. 그는 “그때 萬若에 제가 아프다고 抛棄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이다”고 했다. 歌手 生活을 뒤로하고 結婚한 뒤 아이들 育兒에 集中했고, 30代 中盤부터 헬스로 몸을 만들던 그였다. 먼저 집에서 멀지 않은 청계산과 대모산을 始作으로 北韓産, 北岳山, 仁王山 等 首都圈 山을 올랐다. 그리고 雪嶽山, 智異山. 漢拏山 等 全國의 名酸度 탔다. 週 4日을 登山할 만큼 熱心이었고 只今도 時間이 許諾되면 州 2~3日 山에 오르고 있다.

“山을 타면서 더 健康하고 단단한 몸을 膳物로 받았어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自然 가운데 저는 山이 가장 좋습니다. 말없이 받아주는 그 넉넉한 품이 늘 그립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季節 다른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山길을 걷다 보면 절로 歎聲이 나옵니다. 1月 山行을 15回 갈 程度로 겨울 山을 좋아합니다. 여름엔 適當한 愚衆 山行도 즐깁니다. 살갗에 빗물이 부딪히고 빗줄기를 보며 걷는 그 맛은 經驗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힘들지만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며 山行을 마치고 나면 제 몸이 말합니다. ‘너무 좋다’고.”

조정희 氏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화악산 中峯에서 太極旗를 등에 꽂고 환하게 웃고 있다. 조정희 氏 提供.
曺 氏는 지난해 末 病院을 찾아 骨密度 檢査를 했는데 허리 T스코어(測定된 골密度를 健康한 젊은 成人의 平均과 比較해 標準化한 點數)에서 +1.5로 나왔다. T스코어 -1.0 以上이면 正常, -1.0 未滿에서 ?2.5 超過는 骨減少症, -2.5 以下는 骨多孔症으로 定義하는데 그보다 훨씬 좋게 나온 것이다. 그는 “4年 6個月 前 檢査 때보나 數値가 더 좋아졌다. 醫師도 젊은 사람보다 더 좋다며 놀랐다”고 했다. 백대현 方背聖母整形外科 院長은 “登山은 햇볕을 맞으면서 하기 때문에 骨 生成에 必須인 비타민D가 合成되고, 持續的인 山行으로 뼈를 刺戟 함으로써 골密度를 높인다”고 했다. 인바디 測定 結果 筋肉量도 늘고 있다. 體重도 55kg을 꾸준히 維持하고 있다.

조정희 氏가 無等山 서석대에서 中峯으로 내려가다 쌓인 눈 위에 하트를 그리고 활짝 웃고 있다. 조정희 氏 提供.
某 라디오 프로그램을 進行하던 2010年代 中後半엔 定期的인 山行이 쉽지 않았다. 放送을 그만두고 2018年부터 다시 本格的으로 山行에 나섰고,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李 擴散한 2020年 初부턴 ‘山岳人’으로 거듭났다. 그는 “헬스클럽 等이 다 막혔고 산이 唯一한 解放區였다”고 했다. 코로나19街 潛潛해지면서 海外로 눈을 돌렸다. 曺 氏는 “當初 2019年부터 海外 山行을 準備했는데 코로나19 擴散하면서 가지 못했다”고 했다. 2022年 11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피케이피크를 오른 뒤에는 剛한 成就感을 얻었다.

“히말라야는 山을 오를수록 신비로움에 휩싸여요. 네팔의 작은 에베레스트로 불리는 피케이피크에서는 히말라야의 高峯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正말 幻想的이죠. 그런데 히말라야는 電氣와 暖房, 化粧室 等 生活 環境이 劣惡해요. 山을 오르면서 高山病度 克服해야 하죠. 그런 與件에 適應하고 克服하면서 精神的으로도 크게 成長했어요. 경이롭고 偉大한 自然 앞에서 저 自身이 손톱만큼의 點도 안 되는 存在임을 느끼며 謙遜도 배웠어요.”

조정희 씨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행을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이 산행 때 고산증으로 해발 3000m부터 얼굴이 붓기 시작했다고 했다. 조정희 씨 제공.
조정희 氏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山行을 마치고 포즈를 取했다. 이 山行 때 高山症으로 海拔 3000m부터 얼굴이 붓기 始作했다고 했다. 조정희 氏 提供.
“山을 타면서 비움의 哲學도 배웠어요. 價値와 觀點이 移動됐다고 할까요. 살면서 價値를 두는 基準이 달라졌어요. 같은 狀況이라도 理解하고 받아들이는 觀點의 變化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힘든 山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浩然之氣는 勿論, 精神的 物質的으로 스스로 슬림化하고 싶다는 생각이 剛해지더라고요.”

曺 氏는 “山行과 信仰은 닮아 있다”고 했다.

“저는 基督敎人입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도 어려움으로부터 自由로울 수 없죠. 山行과 信仰은 모두 스스로를 다스리고 이겨내야 한다는 點에서 서로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山을 오르는 건 힘든 일입니다. 挑戰하며 苦痛을 이겨내는 山行을 통해서 마음의 筋肉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정희 氏가 노르웨이 3代 피요르 中 하나인 셰라크 볼텐 頂上에서 萬歲를 부르고 있다. 조정희 氏 提供.
曺 氏는 지난해 4月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두 名産 테이블마운틴과 라이온스헤드를 올랐다. 5月엔 美國 미네와스카 州立公園 샤완겅크산에도 갔다. 7月엔 ‘버킷리스트’였던 노르웨이 3代 피오르와 로포텐諸島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는 “前 바위山을 좋아하는데 3代 피오르 中 하나인 셰라크 볼텐 트레킹 코스가 가장 좋았다. 흙과 나무가 거의 없는 花崗巖 바위山이다. 絶壁 사이에 낀 바위가 絶景인데 正말 印象的이었다”고 했다.

國內 山 中에서도 바위가 많은 雪嶽山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山은 다 좋아요. 그中 雪嶽山은 그 깊이와 雄壯함이 우릴 푸근하게 품어주잖아요. 恐龍稜線, 寒溪嶺, 오색약수 코스 等 雪嶽山 코스는 다 좋아요. 저는 바위가 주는 느낌이 좋아요. 바위의 기운이랄까? 신발이 바위에 닿는 느낌이 좋고, 바위山은 깨끗해요. 正常이나 큰 너럭바위가 있으면 한참을 머물며 바위를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조정희 氏가 노르웨이 3代 피요르 中 하나인 트롤퉁가 頂上에서 포즈를 取했다. 조정희 氏 提供.
山行은 知人들과 함께한다.

“저는 되도록 혼자 山에 가진 않아요. 萬一의 事故에 對備해서도 혼자 山에 가는 것은 危險하지요. 또 團體 山行보다는 서너 名이 가는 山行을 選好합니다. 山行은 긴 時間 함께 하잖아요. 正말 힘든 狀況에서 거의 克己 訓鍊 같을 때도 있어요. 그때 自身을 다 露出할 수밖에 없지요. 서로를 理解해주는 配慮心이 必要합니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山을 오르는 것 自體가 즐거움이고 幸福이라고 생각합니다.”

登山을 하면서도 헬스도 繼續 즐긴다. 힘들게 山을 오른 다음 날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고 나면 몸이 훨씬 개운하다. 그는 “運動을 하는 건 우리가 每日 밥 먹고 숨 쉬는 거와 같다. 그러니까 그걸 안 하고서 어떻게 우리가 健康하기를 바랄 수 있겠나. 健康하게 살기 위해 運動은 꼭 必要하다”고 했다.

조정희 씨가 노르웨이 북쪽 끝 로포텐의 라이네라는 마을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다. 조정희 씨 제공.
조정희 氏가 노르웨이 北쪽 끝 로포텐의 라이네라는 마을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다. 조정희 氏 提供.
登山을 즐기며 肺活量이 좋아져 노래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7月 노르웨이 山行을 마치고 왔는데 某 放送에서 出演 要請이 왔다. 한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아 망설였는데 노래房 가서 불러보니 呼吸이 예전보다 좋아져 出演을 決定했다”고 했다.

大學歌謠祭는 왜 나갔을까?

“第1回 大學歌謠祭 大賞 首相曲 ‘나 어떡해(샌드페블즈)’를 듣고 新鮮한 衝擊을 받았어요. 以後 每年 이어지는 大學歌謠祭를 보면서 大學에 가면 꼭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노래를 잘하고 좋아했던 저에게 大學歌謠祭 出捐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왜 歌手로 活動하지 않았을까?

“大賞을 받은 뒤 大學 祝祭에 불려 다녔고, 放送 出演, 音盤 發賣 提案 等 큰 機會가 제게 왔죠. 그런데 어린 마음에 堪當하기 버거웠어요. 大學歌謠祭는 노래를 잘하고 좋아하는 大學生이면 出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歌手가 되기 위한 登龍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放送 프로그램 錄畫에 갔는데 아침 9時부터 밤까지 리허설을 했어요. 終日 기다렸다가 노래했다를 反復했어요. 宏壯히 힘들었어요. 音樂 하는 건 좋았는데 이걸 職業으로 삼는 건 自身이 없었어요.”

조정희 氏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名山인 테이블마운틴이 바라보이는 라이온스헤드 頂上에 앉아있다. 조정희 氏 提供.
曺 氏는 남은 學業(産業디자인)을 마쳤고 卒業한 뒤 얼마 後 結婚했다. 그는 세 아이의 出産과 育兒, 學業 뒷바라지에 온 힘을 기울였다. 某 大學에서 新聞放送 碩士 過程도 마쳤다. 音樂과 放送에 對한 完全燃燒되지 않은 그리움을 瞬間瞬間 느끼고 있다. 또 ‘참새와 허수아비’를 記憶하고 愛情하는 고마운 팬들에게 어떻게 報答을 할지 苦悶 中이라고도 했다. 健康한 未來를 위해 그는 持續的으로 山을 타고 있다.

“登山은 實力이 아니라 意志가 重要하다고 생각합니다. 前 아주 甚하지 않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山行을 抛棄하지 않습니다. 英國의 登攀家 조지 말로리가 ‘거기 山이 있으니 간다’고 했지요. 저도 그래요. 山이 좋습니다. 늘 純粹와 熱情, 眞情性 이런 單語들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려 합니다. 山을 오를 때도 그렇고요. 100歲 時代, 國民 여러분께서도 山과 더욱 親해져서 山이 갖고 있는 그 여여함의 힘을 늘려나가는 2024年이 되길 所望합니다.”

조정희 氏가 지난해 가을 月出山 천황봉 頂上에 올랐다. 그는 “頂上에서 바라보는 黃金들녁이 長官이었다”고 했다. 조정희 氏 提供.
조정희 氏가 백운봉 正常 統一癌 곁에서 활짝 웃고 있다. 조정희 氏 提供.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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