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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言狀을 써야 나 떠난 뒤 子息들이 안 싸워요”[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遺言狀을 써야 나 떠난 뒤 子息들이 안 싸워요”[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2月 3日 01時 40分


코멘트

[이런 人生 2幕]元惠榮 웰다잉運動本部 共同代表
“마무리가 깔끔해야 좋은 人生”
離婚訴訟보다 더 많아진 相續訴訟… 83%가 訴訟價額 1億 원 以下 憾情싸움
美國은 56%, 韓國은 1%만 遺言狀 作成… 相續·寄附는 遺言狀 써보는 데서 始作
1000萬 老人 時代…法·制度 뒷받침 돼야

풀무원農莊에서 有機農 農法의 代父로 불렸던 先親 원경선 翁 生前에 함께 한 원 代表. 원혜영 氏 블로그

지난달 中旬 午餐을 請해온 元惠榮(73) 웰다잉運動本部 共同代表는 “올해가 超高齡社會의 元年이 될 것같다”는 말부터 꺼냈다. 全體 人口에서 高齡者가 차지하는 比重이 20%를 넘어서면 超高齡社會다.

當初 2026年으로 점쳐지던 韓國의 超高齡社會 進入 時點은 몇 年 前부터 2025年으로 당겨지더니 이제는 올해 後半이 될 거라는 展望이 나온다. 出産率이 떨어진 만큼 高齡化가 더 빨라지는 것이다.

그는 이런 時代를 제대로 된 準備없이 맞는 現實에 對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6日 正式 인터뷰를 請했다. 100歲카페로서는 3年만에 다시 하는 인터뷰다.

웰다잉문화운동은 올 한해 ‘유언장 써보기’ 확산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1월 초 ‘유언장개론’을 펴내고 무료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이 교과서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하는 원혜영 공동대표. 웰다잉문화운동 사무실에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웰다잉文化運動은 올 한해 ‘遺言狀 써보기’ 擴散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1月 初 ‘遺言狀槪論’을 펴내고 無料相談센터도 運營하고 있다. “이 冊이 敎科書 役割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하는 元惠榮 共同代表. 웰다잉文化運動 事務室에서. 金東周 記者 zoo@donga.com


1000萬 老人時代 元年
그는 2020年 70歲를 起點으로 總 7線(國會議員 5線, 富川市長 2線) 經歷을 내려놓고 政界隱退한 뒤 ‘웰다잉 傳道師’로 變身했다. 그間 延命醫療意向書 作成하기, 葬禮文化 改善, 遺言狀 쓰기, 臟器寄贈, 遺産寄附 等의 運動을 펼쳐왔다. 國會議員 時節인 2016年 無意味한 延命醫療를 받지 않을 權利를 保障하는 延命醫療決定法을 通過시켰고 2019年에는 尊嚴하게 죽을 權利를 保障하는 法的 基盤 造成을 위한 웰다잉基本法을 代表發議했다. 이 過程에서 隱退하면 이쪽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난 3年 間 成果는 어떠셨는지요.

“조금씩 천천히 進行되고 있어요. 事前延命醫療 意向書 署名者는 지난해 10月 200萬 名을 넘겨서 어느 程度 定着段階라고 보고, 올해부터는 ‘遺言狀 써보기’에 힘을 기울이려 합니다. ‘遺言狀 쓰기’가 아니고 ‘써보기’예요. 完成된 遺言狀이 아니라 처음 써보는 遺言狀으로 始作하자는 거죠. 延命醫療意向書가 내 生命에 對해 決定權을 行使하는 것이라면 遺言狀은 財産에 對한 決定權을 찾는 게 됩니다.”

延命醫療結晶法(俗稱 尊嚴死法)은 그 무렵 日本에서 關聯 取材를 하다보니 自身들이 훨씬 오래 前부터 論議만 하고 있던 것을 韓國이 앞서서 導入했다고 感歎하는 評價를 들은 일이 있다. 그 主人公이 院代表人 셈이다.

그는 1月 初 웰다잉文化運動이 펴낸 ‘遺言狀 槪論’이란 冊을 내밀었다. 相續 專門인 李陽元 辯護士가 執筆했다.

“이게 敎科書 役割을 하기를 바랍니다. 올初부터 專門辯護士들이 遺言 無料相談을 해주는 온라인서비스센터도 開設했어요. 美國人은 成人의 56%가 遺言狀을 쓰는데 韓國은 1%도 되지 않아요. 最近 들어서는 相續紛爭度 急增하고 있죠.”

離婚訴訟보다 더 많아진 相續紛爭
相續紛爭은 엄청난 富者들에게나 該當되는 얘기일까. 法院行政處에 따르면 最近 10年 사이 相續裁判은 늘고 離婚裁判은 줄어드는 趨勢다(표 參照). 相續裁判에서 83%는 訴訟物 價額이 1億 원 以下다. 돈보다 憾情싸움이 더 크다는 얘기다. 裁判過程에서는 父母의 偏愛, 成長過程에서의 不平等, 獨박看病의 抑鬱함 等 平素 묻어둔 恨이 다 쏟아져나온다. 結局 家族은 다시는 안 보는 사이가 되고 만다.



離婚과 再婚, 獨身 等 날로 複雜해지는 家族의 形態도 本人이 交通整理 해놓지 않으면 葛藤要素가 된다. 여기 더해 미리 遺産을 配分하는 過程에서 一部를 社會에 寄附하는 것도 보람있는 일. 平素 關心 있었던 分野에 10%건 1%건 寄附한다면 自身의 삶이 더욱 意味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最近 뉴스만 봐도 相續紛爭에 빠진 LG는 遺言狀이 아예 없고 순복음교회의 境遇 遺言狀의 實效性이 다퉈졌죠. 어머니가 셋째아들에게 遺産을 몰아줬는데 遺言狀 作成 當時 法的 能力이 없는 狀態였다는 게 長男과 次男의 主張이었어요. 判決은 遺言 當時 法的인 效力을 認定하는 쪽으로 났더군요. 두 境遇 모두 제대로 된 遺言狀을 準備했더라면 葛藤을 훨씬 줄였을 텐데, 그걸 못한 거죠.”

親舊의 慌忙한 죽음, 遺族의 悲痛…“遺言狀 썼더라면”
遺言狀 쓰기의 根本的 意味는 더욱 깊이가 있다.

“遺言狀을 쓰는 건 사랑하는 家族과 벗들과의 아름다운 離別을 準備하는 일이예요. 지난해 제 親舊가 腹痛으로 入院한 지 이틀 만에 世上을 떠났어요. 殯所에서 夫人이 ‘말 한마디 못하고 보냈다’고 哀痛해하는데 이 親舊가 遺言狀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遺言狀에 아내에 對한 고마움과 사랑이 表現돼 있었다면 夫人에게 얼마나 慰勞가 됐을까….”

―내가 世上에 무엇을 남길까를 생각하다보면 오늘을 意味있게 살기 위해 姿勢를 다잡게 될 것같습니다.

“내 마지막 모습을 내가 決定해둔다는 意味도 있지요. 假令 囚衣 代身 平常服을 입겠다거나 작은 葬禮式을 하고 싶다면 미리 決定해둬야 해요. 子息들 立場에서는 體面도 따져야 하고 孝道 意識도 있으니 차마 그런 決定을 할 수 없거든요.”

―延命醫療를 拒否하거나 臟器寄贈 誓約을 했지만 막상 狀況이 닥쳤을 때 家族이 反對하는 境遇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家族에게 自身의 뜻을 時間을 들여 알려두는 게 重要하죠. 마음의 準備가 되게끔 말이죠. 그게 좋은 마무리지요.”

1988년 총선 당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원 씨의 포스터. 38세라는 젊은 나이와 ‘민주투사’라는 점이 강조돼 있다.
1988年 總選 當時 한겨레민주당 候補로 出馬한 元 氏의 포스터. 38歲라는 젊은 나이와 ‘民主鬪士’라는 點이 强調돼 있다.


“난 福받은 人生…돈에 無關心했던 건 後悔”
―本人의 遺言狀은 쓰셨나요.

“몇年 前부터 썼습니다. 다만 저는 財産이 워낙 없어요. 살고 있는 집, 國民年金, 若干의 貯金이 全部라, 집을 두 아들에게 나눠주는 程度지요. 사람들은 제가 풀무원 創業자니까 뭔가 있을 거라고 誤解하는데 政治 入門할 때 共同創業者에게 다 넘기고 商標權만 갖고 있다가 그것도 나중에 奬學財團으로 넘겨받았어요.” 이렇게 設立된 富川敎育文化財團은 1996年 設立된 뒤 28年째 數千名에게 奬學金을 주고 있다.

“隱退하고 보니 돈에 너무 無關心했던 게 좀 後悔됩니다. 國民年金에 若干의 貯蓄을 더해 月 200萬 원 前後面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萬若의 事態는 念頭에 없었어요. 예컨대 저나 아내가 重病이 걸려 終日 看病이 必要하다면? 내가 老朽 돈 問題에 너무 神經을 안 썼구나 反省이 들더군요.”

그는 1951年 自身이 태어난 집에서 只今도 산다. 그린벨트로 묶인 德에 우물과 蓮못, 數百 坪 마당을 가진 豪奢를 누리지만, 집을 팔 수가 없다. 考試地價로는 서울 邊두리의 傳貰값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政界隱退 뒤 失業者 兼 自願奉仕者가 되신 건가요.

“70歲까지 일했으니 福받은 人生이죠. 親舊들이 60歲 전후해서 모두 退職했는데 그동안 이 親舊들과 어울려 지내면서도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고 답답했을지 미처 몰랐어요. 제가 隱退하고 보니 아차하는 거죠. 같이 놀아주고 밥도 먹고 旅行도 다니고 해야 했는데 그걸 생각 못했네…라고. 사람은 다 自己가 겪어봐야 아는 거예요.”

與圈 重鎭 時節, 靑瓦臺에서 擔當 찾다 抛棄
“1000萬 老人 時代인데, 그 분들이 活氣없이 時間만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예요. 1000萬 老人은 한番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新人類’라고도 하죠. 隱退 뒤에도 30年을 더 살아내야 하는 이 분들이 보람있게, 品位있게 人生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重要한데, 最高 政策決定機構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런 槪念이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이를 위해 發議했던 웰다잉 基本法은 21代 國會에서도 通過되기 어려워보인다.

그는 文在寅 政府 때 市民社會首席 社會政策首席 政策室長 等 擔當者(가 될 만한 候補들)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 새로운 現象이 워낙 重要하고 빨리 進行되고 있으니 關心을 갖고 어디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부터 論議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다가 抛棄했어요. 다들 ‘내 擔當이 아닌 것같다’고 하더군요. 當時 與圈 重鎭이던 제가 그런 狀況이었으니 오죽했겠어요. 위에서 關心 없다면 公務員들은 絶對 움직이지 않아요.”

―政府로서는 아무래도 財政負擔을 의식하지 않을까요.

“高齡者 關聯해서는 基礎年金부터 醫療費 支援, 看病支援에 일자리支援까지 天文學的 돈이 必要한 일이 많지요. 唯一하게 財政이 들지 않는 分野가 웰다잉이예요. 오히려 費用을 줄이는 效果가 있지요. 高齡者들이 延命醫療를 하지 않으면 醫療費가 줄고 작은 葬禮式은 家計에 보탬이 되죠. 高齡者들이 寄附를 많이 하면 社會의 脆弱한 곳에 遺産이 돌아가니 도움이 되고요. 只今의 高齡者 世代는 韓半島에서 처음으로 오랜 貧困의 代물림에서 벗어나 自身이 땀흘려 모은 깨끗한 돈을 後代에 물려주는 世代라고 봐요.”

1000萬 老人 品格 지키고 社會的 浪費 葛藤 줄여야
―좀더 具體的인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이제라도 關心을 가지고 이 問題를 다루기 위한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워보이는 게 低出産高齡化委員會인데, 低出産과 高齡化는 內容上 떼어내야 합니다. 어떻게 人口를 늘릴 것이냐와 現在 存在하는 1000萬 老人을 어떻게 健康하고 責任있고 堂堂한 市民으로 살도록 도와줄 거냐는 次元이 다른 얘기죠. 法으로서는 一旦 ‘웰다잉基本法’이 通過되고 시스템은 低出産高齡社會委員會에서, 行政은 保健福祉部가 主務가 돼 좀더 統合的인 體系를 만들어야 합니다.”

―取材를 하다보면 高齡者問題를 다루려는 努力들이 여기저기 있긴 한데 全體를 아우르는 머리 部分이 없고 斷片的인 對應만 있더군요.

“法이 만들어진 것만 따로따로 이뤄지는 現實이죠. 一例로 葬禮文化를 改善한다며 保健福祉部가 만든 葬禮文化振興院도 있고 延命醫療決定法에 따라 만들어진 國家生命倫理委員會 안에 事前延命醫療 管理機關이 있어요. 두 機關은 類似한 일을 하지만 따로 놀아요. 葬禮에 對한 것, 延命醫療, 臟器寄贈, 遺言狀 쓰기, 後見制度 이런 것들을 統合的으로 하면 시너지도 생기고 浪費도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원혜영 대표에 따르면 사전연명의향서 작성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유언장 쓰기는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元惠榮 代表에 따르면 辭典延命意向書 作成은 生命에 對한 自己決定權을, 遺言狀 쓰기는 財産에 對한 自己決定權을 行使하는 일이다. 金東周 記者 zoo@donga.com

―다시 遺言狀으로 돌아와서, 언제 쓰는 걸 勸합니까.

“定해진 때는 없지만 정년퇴직할 때 或은 65歲 法的인 高齡者가 됐을 때를 契機로 하는 건 어떨지요.”

親戚 親知들과 만나고 時間 餘裕도 갖는 名節이 다가온다. 暫時 몸과 마음의 짬을 내어 自身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는 世上과 家族에게 무엇을 남길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遺言의 方式 5가지
―‘遺言狀槪論’에서

遺言은 法에 依한 方式으爐해야 效力을 갖는다. 우리 相續法에는 遺言의 方式으로 5가지를 定해놓았다.

1) 自筆證書에 依한 遺言 : 遺言者가 그 全文과 年月日, 住所, 姓名을 自書하고 捺印해야 한다(작성이 쉽고 祕密維持에 容易하나 僞造나 紛失, 相續人들이 그 存在를 모르게 될 可能性이 있다)

2) 錄音에 依한 遺言 : 遺言者가 遺言의 趣旨, 姓名과 年月日을 口述하고 證人이 遺言의 正確함과 自身의 姓名을 口述해야 한다(필기가 어려울 境遇 適合. 僞 變造 憂慮)

3) 公正證書에 依한 遺言
遺言者가 證人 2名이 參與한 公證人의 面前에서 遺言의 趣旨를 말하고 公證人이 이를 筆記朗讀하여 遺言者와 證人이 그 正確함을 承認한 뒤 各自 署名 또는 記名捺印(가장 安全하고 正確하지만 費用이 든다. 1億 원에 15萬 원 程度)

4) 祕密證書에 依한 遺言
遺言者가 筆者의 姓名을 적은 證書를 嚴封捺印하고 이를 2名 以上의 證人에게 提出해 自身의 遺言書임을 表示한 뒤 그 封書 表面에 提出年月日을 記載하고 遺言者와 證人이 各自 署名 또는 記名捺印. 表面에 記載된 날로부터 5日 內에 公證人 또는 法院書記에게 提出해 封印 確定日子人을 받는다(절차 複雜하고 遺言의 存在가 露出된다)

5) 口授證書에 依한 遺言

疾病 其他 急迫한 事由로 인해 위 4가지 方式을 따를 수 없을 境遇 遺言者가 2名 以上 證人 中 1名에게 遺言 趣旨를 口述하고 이를 들은 自家 筆記朗讀하여 遺言者의 證人이 그 正確함을 承認한 뒤 各自 署名 또는 記名捺印, 7日內 檢認申請(實效性 많지 않다)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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