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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싫어 떠났는데 절이 쫓아와”…‘악마의 2壘手’ 정근우의 平生 恩人은[이헌재의 人生홈런]|東亞日報

“절이 싫어 떠났는데 절이 쫓아와”…‘악마의 2壘手’ 정근우의 平生 恩人은[이헌재의 人生홈런]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24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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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를 ‘악마의 2루수’로 만든 김성근 표 ‘죽음의 펑고’.   한화 제공
정근우를 ‘惡魔의 2壘手’로 만든 김성근 票 ‘죽음의 펑高’. 韓華 提供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 절이 싫었던 중이 떠났다. 그런데 절이 繼續 중을 따라온다면 어떤 氣分일까. 그것도 한두 番이 아니라 平生이라면.

選手 時節 ‘惡魔의 2壘手’라 불렸던 정근우(42)와 김성근 監督(82)의 關係가 딱 그렇다. 둘의 因緣은 2000年代 後半 SK 와이번스에서 始作됐다. 金 監督은 赴任하자마자 정근우와 최정 等 젊은 選手들을 ‘地獄의 펑高’로 訓鍊 시켰다. 競技가 있는 날도 例外가 아니었다. 서울 蠶室에서 競技가 있을라치면 點心 즈음에 隣近 京畿高에서 한두 時間 펑高를 받고 午後 6時 半 競技에 投入됐다. 이들의 成長을 바탕으로 最强 戰力을 構築한 SK는 세 次例나 韓國시리즈 頂上에 오르며 ‘王朝 時代’를 열어 젖혔다.

스승과 제자를 넘어 부자 같은 모습의 김성근 감독(왼쪽)과 정근우의 모습.   정근우 인스타그램
스승과 弟子를 넘어 富者 같은 모습의 김성근 監督(왼쪽)과 정근우의 모습. 정근우 인스타그램
金 監督이 2011시즌 途中 監督職에서 물러나고 정근우는 2014年부터 한화 이글스로 移籍하면서 둘의 因緣은 끝이 나는가 했다. 하지만 누구도 豫想치 못하게 金 監督이 2015年 한화 監督으로 赴任하면서 절이 중을 쫓아온 模樣새가 됐다.

金 監督은 赴任하자마자 日本에서 地獄訓鍊을 實施했는데 첫날부터 정근우는 펑高 1000個를 받아야 했다. 정근우는 이미 當代 最高의 2壘手였지만 訓鍊에서는 例外가 아니었다. 그의 유니폼은 瞬息間에 검은 흙으로 물들었다. 몇 時間에 걸친 訓鍊 끝에 그가 그라운드 위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場面은 如前히 많은 팬들 腦裏에 强烈하게 남아 있다.

2017年으로 마지막으로 韓貨로 떠난 金 監督은 日本 소프트뱅크로 向했다. 정근우 亦是 2022年 LG에서 유니폼을 벗으면서 두 사람이 다시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隱退한 정근우는 野球 藝能프로그램인 ‘最强野球’에 出演하고 있었는데 金 監督은 2022年 말 運命처럼 最强野球의 第2代 監督으로 赴任했다. 當時 정근우는 自身이 連載하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題目의 글을 올렸다. “절이 싫어 떠났는데 절이 쫓아왔어요.”

最强野球는 野球 藝能프로그램이다. 하지만 金 監督 赴任 後엔 單純한 藝能이 아니다. 隨時로 모여서 함께 訓鍊을 한다. 정근우는 “監督님이 오시고부터 장난이 아니다. 當身의 눈으로 確認해서 檢證되지 않으면 競技에 내보내지 않는다. 無條件 熱心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은퇴 후 한 동안 운동을 멀리했던 정근우는 최근 야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 정근우 제공
隱退 後 한 동안 運動을 멀리했던 정근우는 最近 野球 藝能 프로그램에 出演하며 몸과 마음을 回復했다. 정근우 提供
弄談처럼 ‘절’과 ‘中’으로 表現했지만 事實 두 사람의 關係는 각별하다. 피로 맺어진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은 富者(父子) 같은 關係다. 정근우는 “監督님은 내게 또 한 名의 아버지 같은 분이다. 平凡한 選手 ‘정근우’를 좋은 選手로 키워주셨다. 萬若 監督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只今의 정근우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2009年 가을 日本 고치 마무리 訓鍊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둘째 아이가 곧 태어난다는 消息을 들은 정근우는 歸國을 準備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飛行機 出發까지 時間이 남아 있자 金 監督은 그 時間마저 정근우에게 ‘地獄의 펑高’ 두 박스를 쳤다.

同時에 金 監督은 정근우 몰래 아내의 出産을 위해 서울에 있는 病院 豫約 等 모든 準備를 마쳐 놓았다. 정근우는 “監督님은 選手들에게 恒常 剛한 분이다. 하지만 選手뿐 아니라 家族들까지도 뒤에서 살뜰하게 챙기신다. 그날 以後 監督님을 平生 모셔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平生의 家族이 된 두 사람은 올해 설을 앞두고는 한 百貨店 廣告에 함께 出演하기도 했다.

정근우의 단란한 가족 사진. 왼쪽부터 큰 아들 재훈 군, 딸 수빈 양, 아내 홍은숙 씨, 둘째 아들 지완 군, 정근우. 정근우 제공
정근우의 團欒한 家族 寫眞. 왼쪽부터 큰 아들 재훈 君, 딸 수빈 양, 아내 홍은숙 氏, 둘째 아들 遲緩 軍, 정근우. 정근우 提供
金 監督과의 再會 以後 정근우는 몸과 마음이 한層 健康해졌다. 2022年을 마지막으로 16年間의 프로 生活을 마감한 後 그는 한동안 運動과 담을 쌓았다. 그동안 너무 熱心히 運動을 한 것에 對象 補償心理 때문인지 몸을 便하게 두고 싶었다. 그 흔한 스트레칭조차도 하지 않았다.

選手 生活을 하느라 만나지 못했던 親舊들을 만나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 거의 唯一하게 하는 運動은 知人들과의 골프였다. 골프를 마친 뒤엔 또 술을 마셨다. 그러는 사이 몸이 몰라보게 불었다. 平生 없던 이中 턱이 생길 程度였다.

정근우(오른쪽)이 절찬한 친구들인 이대호(왼쪽), 추신수(가운데)와 함께 찍은 사진. 1982년생인 이들은 한국 야구의 황금세대로 불린다. 정근우 인스타그램
정근우(오른쪽)李 絶讚한 親舊들인 이대호(왼쪽), 추신수(가운데)와 함께 찍은 寫眞. 1982年生인 이들은 韓國 野球의 黃金世代로 불린다. 정근우 인스타그램
하지만 요즘 그는 예전의 날렵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더 以上 藝能이 아닌 藝能프로그램을 위해 一週日에 두세 番은 選手 때처럼 訓鍊을 한다.

가볍게 러닝을 뛰고, 폴과 폴 사이를 10回 왔다 갔다 하면서 有酸素 運動을 한다. 以後 펑高 等을 받으며 守備 訓鍊을 하고, 배팅 訓鍊까지 充實하게 消化한다. 그는 “한 番 運動을 나가면 3時間씩은 한다. 스트레칭부터 有酸素, 筋力 運動까지 모두 包含되어 있어 따로 피트니스 센터 等에 가서 運動을 하지 않아도 탄탄한 몸을 維持할 수 있다”고 했다.

프로 때처럼 집에 와서도 빈 스윙 訓鍊을 하기도 한다. 틈이 나면 팔굽혀 펴기도 하고 腹筋 運動도 한다. 정근우는 “隱退한 지 4年이 됐지만 아직도 野球에 對한 未練이 남아 있는 것 같다. 藝能프로그램이지만 如前히 정근우가 살아있다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저도 어느덧 40代다. 우리 나이 代에 많은 분들이 힘들게 살아가지 않나. 그분들에게도 뭔가 힘이 되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정근우가 여행 중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  정근우 인스타그램
정근우가 旅行 中 水泳場에서 찍은 寫眞. 정근우 인스타그램
그는 이 밖에도 여러 經路를 통해 野球와의 因緣을 繼續 이어가고 있다. 그는 얼마 前 野球 專門 유튜브 채널 ‘정근우의 野球人生’을 새로 오픈했다. 以前에도 유튜브 活動을 했지만 自身의 이름을 걸고 本格的으로 野球 이슈를 다뤄보기로 했다. 첫 回 게스트로는 切親한 親舊이자 ‘朝鮮의 4番 打者’로 불린 이대호가 出演했다. 이달 初에는 仁川市 敎育廳 弘報大使度 맡았다.

지난해에는 양상문 監督을 도와 韓國 女子 野球 代表팀의 코치로도 活動했다. 最小限의 交通費만 받으며 女子 選手들을 指導했고, 世界 大會에도 出戰했다. 時間이 날 때는 이곳저곳 學校를 다니며 野球 才能寄附도 한다.

정근우의 막내딸 수빈 양이 올초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근우 제공
정근우의 막내딸 수빈 孃이 올初 全國體典에서 金메달을 딴 뒤 記念寫眞을 찍었다. 정근우 提供
靑少年들의 運動과 健康에 關心이 많은 그는 ‘피겨 대디’이기도 하다. 2男 1女 中 막내인 수빈 孃(12)李 피겨스케이트 選手로 뛰고 있다.

수빈 孃은 올 初 江原道에서 열린 第105回 全國洞契體育大會 피겨 女子 12歲 以下 部에서 金메달을 목에 걸었다. 昨年 10月 慶南 金海에서 열린 꿈나무 大會에서도 金메달을 땄다.

정근우는 “運動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처음엔 시키고 싶지 않았다. 特히 피겨란 種目은 무척 힘든 運動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本人이 너무 재미있어한다. 才能보다는 努力을 많이 하는 걸 보고 힘 닿는 데까지 支援하려 한다”고 했다.

平素 눈물이 없는 그도 올해 수빈 孃이 全國體典에서 金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렸을 때 뒤돌아서 눈물 몇 방울을 훔쳤다. 정근우는 “大會를 準備하면서 마음苦生이 甚했던 딸이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正말 얼마 만에 울어본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피겨 選手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父母가 피겨 選手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全國에 몇 個 되지 않는 氷上場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녀야 한다. 아내가 主로 딸을 데리고 다니지만 정근우도 時間이 날 때마다 딸을 태우고 氷上場을 오간다. 수빈 孃은 主로 果川 氷上場에서 訓鍊하는데 점프 運動이나 體力 運動 等을 할 때는 서울 牧童, 京畿 安養 等으로도 移動해야 한다. 정근우는 “피겨 選手들은 먹는 게 第一 問題다. 몸매 管理가 重要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힘들게 運動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 父母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정근우는 꾸준한 운동과 식단조절로 선수 시절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정근우는 꾸준한 運動과 食單調節로 選手 時節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를 維持하고 있다. 이헌재 記者 uni@donga.com
歷代 韓國 프로野球 最高의 2窶籔로 評價받는 그는 偏見을 克服한 選手였다. 野球를 잘했던 그는 相對的으로 작은 키(172cm) 때문에 高校 卒業 後 프로 知名度 받지 못했다. 고려대에 入學한 그는 “스스로는 키 작은 거 말고는 短點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結果로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며 “大學 入學 後 正말 努力을 많이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度 熱心히 하고 스윙 訓鍊도 많이 했다. 먼저 프로에 간 親舊들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刺戟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切齒腐心한 그는 大學 卒業 後 뒤늦게 프로에 入團했지만 單숨에 韓國을 代表하는 2窶籔가 됐다. 넓은 守備 範圍와 通算 打率 3割이 넘는 방망이 솜씨로 ‘惡魔의 2壘手’라는 別名도 얻었다. 정근우는 “살아가면서 野球를 통해 받은 게 너무 많다. 그만큼 많이 돌려드리고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며 “熱心히 살았던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앞으로도 最善을 다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記者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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