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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記者 購讀|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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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寧하세요. 김순덕 待機者입니다.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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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0~2024-04-29
칼럼 100%
  • [김순덕의 挑發]大體 尹 大統領의 國政 비전은 뭔가

    아직 魂이 덜 난 模樣이다. 親尹 院內代表를 세우겠다는 執權勢力말이다. 大統領 때문에 總選 慘敗하고도 答情이(李)라니! 興奮해 이런 소리를 하면, 尹錫悅 大統領은 이미 나라를 求했다고 道士처럼 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라 걱정하는 平凡한 사람들, 그 中에서도 主로 右派에서 나오는 소리다. ‘李在明 大統領’의 誕生을 막은 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 했다는 거다. 萬一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가 大統領이면 어떤 大韓民國으로 바뀔지는, 그림이 그려진다. 基本所得이 온 國民을 받쳐줘 일 안해도, 努力 안 해도(학생은 工夫 안 해도^^) 먹고사는 데 支障없는 安心國家가 될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中國에도, 臺灣에도 ‘셰셰(謝謝·고맙습니다)’하는 기막힌 外交로 國際社會에서 尊敬받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 勿論 正反對가 될 公算도 크다. 2年 前 大選에서 尹錫悅 大統領候補를 찍은 48.56% 民意 中 相當數는 이런 걱정근심의 反映이었다.● ‘公正과 常識’은 國政原則이었다윤 大統領은 任期를 마칠 때 어떤 大韓民國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公正과 常識의 나라? 이미 깨졌다. 大統領室 홈페이지를 보니 甚至於 ‘公正과 常識’은 國政運營의 原則이었다. ‘理念이 아니라 國民의 常識에 基盤해 國政을 運營하고, 우리 國民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適用되는 法治의 原則을 固守’한다고 친절히 說明한다. 헹. 김건희 女史 問題만 봐도 公正과 常識과는 距離가 멀다. 年金·勞動·敎育 改革? 可能할 것 같지가 않다. 尹 大統領도 “이番 政府 末期나 다음 政府 初期에는 앞으로 數十 年間 持續할 수 있는 年金改革의 ‘完成版’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2022年 末 第1次 國政課題 點檢會議에서 밝혔다. 蹉跌 없이 進行된대도 任期 中엔 開市도 못한다는 소리다. 같은 날 尹 大統領은 勞動柔軟性 改革도 强調했다. “制度가 바뀌지 않으면 國際市場에서 3流, 4流로 轉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當時 發表된 로드맵에 따르면 勞動市場 二重構造 解消는 이미 昨年 下半期 이뤄졌어야 했다. 이런 式이면 3年 後 우리는 3流, 4流로 轉落한 나라에서 살 판이다. ● 國政비전이 ‘다시 大韓民國!’이라고? 그럼 敎育改革이라도 成功하면 우리 아이들은 좋아질까. 2025年 우리나라는 國家敎育課程에서 世界 最初로 AI 디지털敎科書를 導入한 나라가 된다(는 計劃이 나왔다). 하지만 修能과 大入制度가 그대로면, 私敎育에 목매는 現實도 그대로일 게 뻔하다. 그밖에 또 尹 大統領이 무슨 일을 圖謀해 어떤 나라로 이끌어갈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하도 답답해 大統領室 홈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國政비전’이라는 門牌를 클릭하니 ‘다시 大韓民國! 새로운 國民의 나라’가 뜨는 것이었다. 尹錫悅 政府의 비전이 그거였다니! 就任辭에서 强調한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 體制를 基盤으로 國民이 眞正한 主人인 나라로 再建’한다는 뜻인 듯하다. 就任辭 맨 끝에서도 ‘自由, 人權, 公正, 連帶의 價値를 基盤으로 國民이 眞正한 主人인 나라’라고 再次 强調했었다. 말은 좋되… 空虛하다. 尹 大統領이 自由를 數十番 强調한 것은 알겠는데, 只今 적잖은 政治評論家와 記者들이 放送에 나와 “이런 말하면 告訴당할까 봐…” 憂慮한다. 表現의 自由가 威脅받는 나라에서 大統領이 自由를 외치는 건 코미디다. 尹 大統領-檢察 連帶가 確固한 것은 알겠는데, 總選에서 野黨 찍은 이들은 “大統領 周邊은 堂堂하냐” 코웃음 친다. ‘人權과 公正과 連帶의 價値가 基盤인 나라’는 嘲弄거리가 된 거다. ● 參謀가 써준 ‘偉大한 普通사람의 時代’그래서 大統領의 ‘비전’이 切實한 것이다. 앞으로 3年 꾹 참고 尹 大統領을 支持하면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 그림을 보여줄 必要가 있다. SK의 前身인 선경그룹은 1980年 대한석유공사(유공) 引受 後 長期 經營 目標를 情報通信事業 進出로 定하고 ‘2000年代 世界 一流의 情報通信企業’을 새 비전으로 提示했었다. KT를 引受하기 한참 前부터 이런 비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SKT도 可能했을 터다.하다못해 노태우 大統領(1988年 2月~1993年 2月 在任) 時節엔 ‘偉大한 普通사람의 時代’라는 비전이 있었다(비전대로 됐느냐고 따지지 마시길. 다만 ‘權威主義 終熄이라는 그림만은 分明히 그려지지 않는지?) 그 不朽의 口號 “偉大한 普通사람의 時代를 열겠다”는 실은 有能한 參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언론인 出身으로 國會議員과 김영삼 大統領 때 勞動部 長官을 지낸 남재희는 回顧錄 ‘時代의 調停者’에서 이렇게 썼다. 盧泰愚 大選 候補의 演說文을 專擔했던 김학준 前 서울大 敎授(回顧錄 속 表現. 當時엔 민정당 議員이었다)가 하루는 大選에서 매우 重要한 演說文이라며 민정당 政策위議長이던 自己 房을 찾아왔더란다. 읽어보니 밋밋하고 新聞社에서 쓰는 말로 ‘야마’(山·强調點)가 없었다.생각 끝에 “偉大한 平民의 時代를 열겠다”는 句節을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김학준은 ‘平民’을 ‘普通 사람’으로 바꾸면 어떠냐고 했다. ‘偉大한 普通 사람의 時代’라는 비전은 그렇게 誕生했다. ● 尹 大統領은 왜 參謀들 도움을 받지 않나‘물태우’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노태우가 無頉하게 大統領 任期를 마칠 수 있었던 것도 徹底하게 參謀들에 依存했기 때문이라고 남재희는 評價한다. 有能한 參謀들의 集合的 合意에 따라 政治를 한 結果였다는 거다(회고록에 따르면 盧 大統領은 김학준 公報首席이 靑瓦臺를 떠나는 退任式 때도 김학준 自身이 써준 말씀資料를 그대로 읽더라고 했다^^ 하지만 김학준 前 동아일보 會長은 盧 大統領과 任期를 같이 했다. ‘大統領 退任式’ 말씀資料를 그대로 읽었다는 게 팩트다.).‘물’과는 거의 相剋日 듯한 尹 大統領은 演說文도 直接 쓴다고 알려져 있다. 檢察 公訴狀을 많이 쓴 經驗에다 自身이 第一 잘 쓴다는 自信感 때문일 터다. 就任辭도 尹 大統領이 다듬고 修正해 거의 새롭게 쓴 原稿였다(그래선지 記憶에 남는 名句節은 없다). 國民을 가르치는 것 같은 51分間의 醫大 關聯 對國民談話, ‘그러나’와 ‘하지만’李 15番이나 들어간 總選 慘敗 國務會議 冒頭發言 亦是 尹 大統領이 손을 댔다는 後聞이다.올초 KBS 新年對談에서 尹 大統領은 “參謀들이 써준 豫想 質問과 答辯을 보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게 바로 災殃이었음을 大統領은 알아야 한다. 血稅 내는 立場에선 가슴이 미어질 판이다. 損害가 곱절李曙다(제 할 일 못하는 國政메시지祕書官한테 왜 내가 낸 稅金으로 月給줘야하느냐고요!). ● 사람을 부리는 것이 임금의 能力臣下는, 요즘 말로 官僚는, 自己 일 잘하면 最高다. 하지만 賃金은 달라야 한다.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도 없지만 自身이 더 잘 한다고(그리고 잘 안다고) 臣下가 할 일까지 떠맡아 하는 임금은 임금답지 않다. ‘信하는 스스로 어떤 일을 自任하는 것을 能力으로 삼고 賃金은 사람을 부리는 것으로써 能力을 삼는다’. 中國의 人在學 古典 ‘인물지(人物志)’에 나오는 귀절이다. 有能한 參謀를 찾아 앉히고 제대로 부려먹는 것이 大統領의 能力이라는 意味다. 祕書室長 하나 바꾸는데도 그리 뜸을 들이더니 어쨌든 새 사람이 들어왔다. 正常的 大統領室이라면 5月 10日 大統領 就任 2周年을 期해 記者會見을 마련해야 마땅하다. ‘김치찌개 懇談會’로 퉁値高 넘어갈 일이 아니다(윤 大統領이 “김치찌개” 소리 할 때마다 슬프다. 記者가 김치찌개에 換腸한 줄 아시는지). 정진석 新任 大統領祕書室長이 果然 有能한지, 尹 大統領이 사람 볼 줄 알게 됐는지, 記者會見에서 再次 確認될 것이다.● 자칫 ‘迫切한 政府’로 記憶될 수도 있다대통령 모두 發言만은 제발 參謀가 써준 대로 읽기 바란다. 그 속에 國民을 어떤 나라로 이끌겠다는 비전을 다시 담아 分明히 傳達해주었으면 한다. 就任辭에 쓴 ‘글로벌 리더 國家’나 ‘國際社會에서 尊敬받는 나라’? 1度 다가오지 않는다(총선 慘敗한 大統領이 國際社會에서 尊敬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길…). 설 名節 때 對國民 메시지로 ‘우리의 사랑이 必要한 거죠’ 노래를 부른 것이 國政運營 비전인 ‘따뜻한 政府’를 浮刻시키려고 그랬다는 건데 아…그게 비전인지는 동아일보 技士報告 처음 알았다. 正말 안타깝지만 이 政府가 따뜻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남동과 大統領 周邊이 아니라면).‘자유민주주의와 市場經濟 體制’는 尹 大統領만의 비전이랄 수 없다. 차라리 “公正과 常識으로 돌아가겠다”며 지난 2年의 過誤에 고개 숙인다면, 國民과 和解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自信 없으면 이제라도 國民이 記憶할 만한, 그리하여 希望을 갖고 따라갈 만한 비전을 새롭게, 제대로 提示해주기 바란다. 또 타이밍을 놓치면 尹錫悅 政府는 ‘迫切한 政府’로 記憶될 수도 있다. 김순덕 칼럼니스트·拷問 dobal@donga.com}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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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DJ냐, 朴槿惠냐… 尹 大統領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歷史에 答이 있다. 먼 過去까지 갈 것도 없다. 總選에서 敗北한 金大中(DJ), 朴槿惠 두 前職 大統領만 比較해도 答은 今方 나온다. 大統領 中間評價人 4·10總選에서 ‘政權 審判論’으로 大破, 아니 大敗한 尹錫悅 大統領이 當場 어째야 하는지.집권 3年次 2000年 4·13 總選에서 與小野大를 맞은 DJ는 對國民 特別談話를 냈다. “總選 民意는 與野가 協力해 나라의 政治를 안정시키라는 至嚴한 命令을 내린 것”이라고 所懷를 밝히며 이회창 한나라당 總裁에게 與野領袖會談을 提議했다. 敗北 나흘 만에 TV로 生中繼된 談話였다. ‘總裁會談’ 代身 입때껏 안 써왔던 ‘領袖會談’이라는 用語를 쓴 것도 視線을 끌었다. ● DJ 對國民 談話-朴, 靑瓦臺 冒頭發言 執權 4年次인 2016年 4·13總選에서 1席次로 敗한 ‘박근혜 靑瓦臺’는 달랐다. 靑瓦臺 代辯人 名義로 “20代 國會가 民生을 챙기고 國民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國會가 되기를 바란다. 國民들의 이러한 要求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달랑 두 줄짜리 論評을 내놨을 뿐이다. ‘民心을 謙虛하게 받아들인다’는 그 흔한 크리셰조차 없었다. 大統領 育成은 總選 닷새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首席祕書官會議를 主宰하는 자리에서다. 늘 그랬듯 斷乎한 表情으로 그는 “國民의 民意를 謙虛히 받들어 國政의 最優先 順位를 民生에 두겠다”고 했다. ‘國會 審判論’을 외쳤던 大統領 自身을 辯護하듯 “20代 國會가 民生과 經濟에 邁進하는, 일하는 國會가 되기를 期待하면서 政府도 새롭게 出帆하는 國會와 緊密하게 協力해 나갈 것”이라고, 卽 國會가 變해야 한다고 一鍼까지 놨다. 當然히 領袖會談 提議 같은 건 없었다. 6分 間의 모두 發言 中 總選 關聯 發言도 꼴랑 45秒였다. 與黨에서조차 답답하다는 反應이 나왔다. “大統領이 儀禮的인 謝過라도 當然히 表明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勿論 非朴(非朴槿惠)系 議員들이 主로 하는 소리였지만. ● 國務會議 冒頭發言 擇한 ‘尹錫悅 모델’ 尹錫悅 政府는 ‘박근혜 모델’로 가는 듯하다. 勿論 現在까지 얘기다. 總選 敗北 다음날 李官燮 大統領祕書室長이 記者들 앞에 나타나 “이番 總選 結果에 對한 大統領의 말씀을 제가 代身 傳해드리도록 하겠다”더니 “總選에서 나타난 國民의 뜻을 謙虛히 받들어 國政을 刷新하고 經濟와 民生 安定을 위해 最善을 다하겠습니다”라고 44字(空白 包含하면 56字)를 읽었다. 朴 前 大統領 때는 그래도 두 줄이었는데 이番엔 김밥처럼 고작 한줄이다. 尹 大統領은 16日 午前 國務會議 모두發言을 통해 自身의 立場을 밝힌다고 했다. 2016年처럼 祕書들 앞이 아니라 國務委員들 앞이라서 多幸이라고 해야 하나? 記者會見도 아니고, 國務委員들 듣는 形式을 왜 굳이 國民이 알아서, 새겨들어야 하는지 부아가 난다. 總選 壓勝 뒤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가 거듭 促求했던 大統領과의 만남도 大統領室에선 아직 決定을 못한 눈치다. 敗北 6日만에 하는 育成告白이면(이미 朴槿惠 때보다 하루 늦었다) 尹 大統領은 제대로 해주었으면 한다. 國民들 代身해 質問해줄 記者들이 없어 궁금症은 다 풀 수 없겠지만 제발 與黨 內에서조차 답답하다는 소리는 안 나오게, 담아야 할 內容은 다 담아서 읽어주기를 懇切히 바란다. 尹 大統領이 아니라 나라 걱정하는 國民을 위해서다. ● 就任 2周年 記者會見이라도 해야 한다대국민 談話 一週日 뒤 열린 與野領袖會談에서 DJ와 이회창은 ‘國民大統合의 政治’를 約束하는 共同發表文을 내놨다. 勿論 다 지켜졌다고 하긴 어렵다. DJ는 한달 뒤 새總理에 자민련 總裁 李漢東을 任命하고 總選 過程에서 廢棄되다 시피했던 DJP 連帶도 復元했다(이회창은 DJ의 ‘人爲的 정개 改編’ 에 憤怒보다 幻滅을 느꼈다고 自敍傳에 썼다). 이렇게 與小野大를 克服한 놀라운 政治力으로 DJ는 終局엔 政權 再創出에 成功했던 것이다. 反省 할 줄 몰랐던 朴 前 大統領이 그 뒤 어떤 길로 갔는지, 멀지 않은 歷史가 말해준다(정말이지 그 끔찍한 單語를 쓰고 싶진 않다). DJ 半의 半 만큼의 政治力도 없어 보이는 尹 大統領이 ‘民生’만 强調해 現 事態를 克服할 수 있을지 걱정들이 많다. 市中엔 尹 大統領이 果然 變할 것인가, 안 變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紛紛하다. 國務會議 모두 發言을 擇한 것 보면, 그 傲慢해 보이는 스타일이 變할 것 같지가 않다. “指導者가 統治스타일을 바꾸지못하는 것은 타고난 性向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特定한 路線을 追求함으로써 恒常 成功해 온 境遇에는 그것을 抛棄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有名한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다. ‘閏統 스타일’ 때문에 政權은 總選에서 審判받았다. 抛棄해야 할 理由는 이제 充分하지 않은가. 國務會議 冒頭發言 속에 “5月 10日 就任 2周年을 期해 반드시 記者會見을 마련하겠다”는 말이 들어간다면, 또 한番의 希望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김순덕 칼럼니스트·拷問 dobal@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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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大統領만 빼고 다 바꾸라’는 성난 民心

    題目에 꽂힌 讀者들은 말할지 모른다. 아니, 우린 大統領을 바꾸고 싶은 것이라고. 그럴 方道가 없어 촛불 或은 짱돌을 들 듯 憤怒 投票, 示威 投票, 膺懲 投票를 한 것이라고. 누가 뭐래도 이番 總選은 尹錫悅 大統領에 對한 審判이었다. 內閣制 같으면 總理를 쫓아내고 政權을 갈아 치우는 野黨 勝利다. 國民의힘이야 慘敗가 슬프다고 해도 如前히, 儼然히 執權黨이다. 只今까지와 別로 달라질 것도 없다. 大統領이 願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黨 代表 쫓아내라면 쫓아내고, 內部 銃질 없이 大統領의 ‘체리 따봉’에 感泣하면 그만이다. 勿論 野圈은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程度가 있다. 傲慢한 大統領을 國民이 容納하지 않듯 傲慢한 野圈도 結局은 審判받는다. 2000年 4·13總選이 그랬다. 少數派 政權이었던 김대중(DJ) 大統領은 新年 初 ‘大統領黨’인 새천년민주당을 創黨하며 “政治가 國政의 발목을 잡는 事態는 반드시 是正돼야 한다”고 巨大 野黨의 橫暴를 批判했다. 그러나 執權 3年 次에 치러진 16代 總選에서 執權黨은 고작 115席이었다. 한나라黨(現 國힘)은 DJ 政權 審判論으로 133席을 차지해 第1黨을 지켰지만 ‘帝王的 總裁’ 이회창은 3年 後 大選에서 敗하고 말았다. “現職 大統領으로서 最高의 꿈은 政權 再創出”이라고 DJ는 回顧錄에 썼다. 尹 大統領에게도 3年의 時間이 있다. 大統領만 빼고 다 바꾼다면, 總選 敗北를 딛고 그래도 大韓民國의 正體性을 지킨 大統領으로 政權 再創出에 寄與할 機會는 살아있다. 敗北 나흘 뒤 DJ는 談話文을 통해 野黨 總裁와의 領袖會談을 提議했고 實際로 만나 相生 政治도 約束했다. 尹 大統領이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암만 談話文을 내고 只今껏 안 만났던 野黨 代表와 會談을 한대도 尹 大統領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意志가 없으면 國民 信賴만 잃을 수 있다. 昨年 10月 서울 講書區廳長 補選이 끝나고도 그랬다. “저와 內閣이 反省하겠다” “國民은 無條件 옳다”고 말했다지만 바뀐 건 없다. 尹 大統領으로부터 改閣 人事 薦擧를 要請받은 한 人士는 自身이 건넨 괜찮은 名單이 參謀陣의 評判照會를 거치면서 괜찮지 않게 돼버리더라고 恨歎을 했다. 結局 祕書室 찔끔 改編과 總選用 改閣에 그쳐 마침내 이 地境까지 온 것이다. 區廳長 하나 바꾸는 ‘쪼만한 選擧’일 뿐 政權 中間評價는 아니라고, 大統領에게 ‘내 귀에 캔디’ 같은 소리나 했던 그들이 艱辛이다. 大統領이 國힘 代表들을 갈아 치울 때 “그건 아니다” 한마디 못 하고 북 치고 장구 친 그들이 艱辛이다. 學藝會 같은 民生討論會나 演出했던 參謀陣과 內閣은 勿論이고 ‘입틀幕’에 이어 ‘派틀幕’ 事態까지 번지게 만든 警護處에도 奸臣이 수두룩하다. 이들 無能한 奸臣들은 곧 噴出할 大統領室-內閣 改編 要求에 對해서도 몇 달 前 斷行한 걸 또 할 必要 있느냐며 제 한 몸 保存에 汲汲할 것이다. 糖이 問題이지 大統領은 잘못 없다며 心氣 警護에만 汨沒하는 奸臣이 들끓지 않고서야 2年 前 ‘公正과 常識’을 들고나와 “無道한 文在寅 政權 交替”를 외쳤던 大統領 候補 尹錫悅은 어디 갔는지 納得이 안 되는 것이다. 그때의 尹錫悅은 只今, 없다. 지긋지긋한 내로남不 박살낼 줄 알았는데 婦人과 同窓, 檢察 特殊通 等 내 食口에게는 迫切하지 못하면서 내 食口 아니면 潛在的 被疑者로 아는 檢察主義者 尹錫悅만 보일 뿐이다. 曺國革新黨이라는 幼兒的 黨名을 짓고 代表職에 오른 曺國이 突風을 일으킨 것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當身들은 떳떳한가’ 싶은 背信感 때문이었다. 이대로 3年을 갈 순 없다. 大統領을 갈아 치울 수 없으니 大統領 빼고 다 바꾸라는 것이다. 尹 大統領 스스로 認定했듯 政務感覺이 꽝이니 政治 經驗 많은 祕書室長을 들이라는 것이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問題라면 問題”라며 夫人만 감쌀 게 아니라 眞짜 게이트 생기기 前에 제2부속실을 設置하라는 것이다. ‘梨泰院 慘事’ 뒤에도 政治的 責任을 묻지 않았던 冲岩高 後輩 李尙玟 行政安全部 長官은 이제라도 更迭하라는 것이다. 支持率에 戀戀하지 않고 뚜벅뚜벅 가겠다고 傲氣卽生(傲氣則生)할 때가 아니다. 國民 앞에 고개 숙이고 사즉생(死則生)하는 모습을 안 보이면 나라가 亡할 것 같아 不安하고 不吉한 것이다. 살아生前 金壽煥 樞機卿은 2000年 月刊誌 新年號에서 DJ에게 남은 任期 3年間 黨籍을 떠나 온 國民이 바라는 政治를 펴줄 것을 建議한 바 있다고 했다. 우리 곁에 큰 어른이 있다면 分明 같은 助言을 했을 것이다. 尹 大統領이 變化를 可視的으로 드러내 國民을 내 便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악착같은 野圈 攻擊에 ‘不幸한 大統領’으로 記錄될 수도 있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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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이생網” 아닌 “이悤忙”… 大統領은 專攻醫들 褓쌈이라도 해오시라

    ‘이생網(이番 生은 亡했다)’. 젊은이들이 하는 말이란다. ‘이悤忙(이番 總選은 亡했다)’. 尹錫悅 大統領의 1日 對國民 談話에 ‘愛國報酬’를 自處하는 이들은 가슴을 친다. 總選을 코앞에 두고 긴 沈默 끝에 大統領이 앞에 나섰으면, ‘醫大 2000名 增員’ 問題로 지치고 不安한 國民 心身을 풀어줘야 했다. 尹 大統領은 그러지 않았다. “繼續되는 專攻醫들의 集團行動으로…국민들의 不便을 早速히해소해드리지 못해 大統領으로서 悚懼한 마음”이라면서도 政府가 옳고 醫師들이 틀렸다고 ‘나는 不通 大統領’ 같은 表情으로 51分間 原稿만 읽었다. 國民의 알 權利를 위해 存在하는 記者들 質問받기는커녕 出入까지 막았다. 檢察總長도 이런 式으로 搜査結果 發表를 하진 않는다. 그날 나는 總選 遊說現場을 가보려고 國民의힘 서울 한 地域區 候補의 動線을 먼저 물어보고 있었다. 午前만 해도 곧 알려주겠다던 出入記者 말이 午後가 되자 달라졌다. ‘이悤忙’…大統領 때문에 이番 總選은 亡했다는 雰圍氣라며 오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 2年 前에도 自稱 ‘愛國保守’ 애태우더니2년 前 大選을 코앞에 두었을 때도 尹錫悅 當時 國힘 候補는 어지간히 支持者들 애를 태웠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尹 大統領은 혼자 힘으로 大統領 된 게 아니다. 安哲秀 국민의당 候補와의 單一化 協商이 大選 2週 前인 2022年 2月 22日 깨졌는데 李在明 더불어민주당 候補와의 支持率 差異가 달랑 1%포인트였다(윤 37%, 이 38%로 지고 있었다·갤럽 調査). 하도 답답해 2月 26日 ‘挑發’에다 ‘尹錫悅은 安哲秀를 褓쌈이라도 해오라’고 썼을 程度다. 只今은 이렇게 써야하나 싶다. “尹 大統領은 專攻醫들을 褓쌈이라도 해오시라.” 元來 支持率도 안 챙기고, 共感 能力이 좀 떨어지는 大統領이라고는 한다(대통령 脫黨을 主張했다 撤回한 서울 麻布乙 함운경 國힘 候補는 大選 候補 時節 自身의 가게를 찾아왔던 大統領에 對해 “事實關係를 說明하려고 하는 性向이 剛하다. 그러니까 國民들이 어떻게 認識하느냐는 別로 神經을 안 쓰시더라”고 했다). 選擧와 政治에서 重要한 것은 事實이 아니라 認識이다. 2021年 9月 李在明의 大庄洞 疑惑이 터지면서 다시 뒤집힌 支持率은 김건희 女史의 虛僞履歷이 불거졌는데도 限死코 謝過도 안 하고, 國힘 內 葛藤까지 暴發하면서 2022年 1月 初 26%(尹)-36%(李)까지 뒤졌다(죄송해요. 辱說 아니에요). 이걸 다시 뒤집은 것이 李在明 夫人 김혜경의 過剩儀典 論難이다. 公式選擧運動 開始日 2月 17日 41%까지 올라갔던 支持率은 一週日 만에 또 뒤집혔다. 누가 누가 더 싫은가, 더 不道德한가를 가리는 듯한 歷代級 非好感 大選. 輿論調査 公表 마지막 날인 3月 2日 支持率은 39%(尹)-38%(李), 安哲秀 국민의당 候補 12%였다. ● 大選 때도 1週日 前 候補 單一化마침내 다음날 아침. 安哲秀가 ‘條件 없는 尹錫悅 支持’를 發表하고 候補를 辭退했다. 大選 꼭 一週日 前이다. 前날 밤 마지막 TV討論會 뒤 尹錫悅과 머리를 맞대고 두 時間 半 동안 서로의 政治哲學을 虛心坦懷하게 論議했다는 거다. 그 場所가 이番 總選 前에 ‘責任을 지고’ 不出馬를 宣言했던 찐尹 張濟元 議員의 妹兄 집이었다. 그리하여 結果는 48.56%(尹)-47.83%(李). 0.73%포인트. 歷代 最小 隔差였다.눈치 빠른 讀者들은 2年 前 얘기를 꺼내는 理由를 알아챘을 것이다. 總選이 코앞인 只今, 嚴正한 ‘政治中立’을 해야 마땅한 大統領이 意圖的으로 議政葛藤을 일으켰다 電擊 解決에 나선 것이라곤 보지 않는다. 그러나 總選과 相關없이, 풀 것은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國民의 生命, 젊은 醫師들의 未來가 걸린 일이다. 마침내 尹 大統領이 醫大 增員 政策에 反撥해 現場을 떠난 專攻醫들과 만날 模樣이다. 全國醫科大學敎授協議會(全義敎協) 非常對策委員會 조윤정 弘報委員長이 2日 브리핑에서 “박단 (專攻醫協議會腸) 代表에게 付託한다”며 “萬若 尹 大統領이 朴 代表를 招待한다면 아무런 條件 없이 만나보라”고 말한 다음, 大統領室에서 迅速하게 “大統領이 專攻醫들을 만나 直接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 제발 입을 닫고 귀를 여시라만나거든, 尹 大統領은 제발 좀 듣기 바란다. 專攻의 代表를 만나 또 혼자 繼續 自己主張을 되풀이하면, 꽝이다. ‘亦是 大統領은 꼰대 中에 上꼰대…’ 젊은 醫師들은 失望해 차갑게 마음을 닫을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만나는 것만 못하다. 全義敎協 조윤정이 大統領과 專攻醫들의 만남을 懇曲히 當付하는 말에 問題 解決의 端初가 담겨 있다. 그는 “大統領의 熱情과 精誠만 認定해도 對話는 始作할 수 있다”며 專攻醫들을 向해 “大統領의 熱情을 理解하도록 暫時나마 努力해 달라”고 했다. 大統領을 向해서는 “于先 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맺힌 抑鬱함과 울음을 헤아려 달라”며 “大統領께서 먼저 (專攻醫들에게) 팔을 내밀고 代表 한 名이라도 딱 5分만 안아 달라”고 했다. “醫療 現場에서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子正 무렵이 돼서야 그날의 한 끼를 解決해야만 했던, 새벽 컨퍼런스 時間에 睡眠 不足으로 떨어지는 고개를 가눠야 했던 젊은 醫師 先生님들이 바로 只今까지 必須 醫療를 支撐해왔던 분들”이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조윤정은 브리핑 途中 목이 메면서 “法과 原則 위에 있는 것이 常識과 사랑이라고 배웠다. 아버지가 아들을 껴안듯 尹 大統領의 熱情 가득한 따뜻한 가슴을 내어달라”고 했다. 이보다 感動的인 말을 찾을 수 없어 그대로 옮기는 거다. 그렇게 大統領이 共感力을 키우고, 그리하여 大統領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모습만 보여준대도…다수 國民은 希望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士族 1. 大統領과 專攻醫 間의 ‘條件 없는’ 만남을 要請했던 조윤정은 3日 “專攻醫에 對한 免許停止 處分 撤回와 大統領 謝過가 于先”이라고 밝히고 弘報委員長職을 辭退했다. 하루새 얼마나 힘들었을지…이해한다. 그럼에도 만남은 이루어지길.사족 2. 大選 一週日 前, 尹 大統領은 只今 잊었겠지만 絶體絶命의 時期에 候補職을 讓步했고, 그 뒤 大統領室로부터 말 못할 受侮도 겪었던 던 醫師 出身 安哲秀 國힘 議員이 2日 代案을 提示했다. 醫療界와 專門家, 市民團體, 國際機構로 構成된 協議體를 早速히 꾸리되 時間이 不足하면 醫大 定員 擴大 問題는 來年으로 넘기자고.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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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與黨 속 野黨’ 한동훈이 者臨하라

    高麗公事삼일(高麗公事三日)이란 옛말이 있다. 壬辰倭亂 때 展示行政을 總括하는 都體察使 류성룡이 地方에 보낼 公文을 下達했는데 다음 날 고칠 部分이 생겼다. 難堪한 瞬間, 公文이 아직 안 내려갔음을 알게 됐다. 多幸이다 싶으면서도 괘씸해 問責하자 部下는 “公文이 달라질 수 있어 사흘 있다 보내려 했다” 하더란다. 류성룡의 ‘懲毖錄’에 나오는 얘기다. 急하게 推進하고, 또 今方 잊고 잘못을 反復하기. 우리 性情은 예나 只今이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醫大 定員 2000名 擴大를 밀어붙이는 大統領이나 ‘進步政權 沒落’을 몰고 온 祖國을 잊고 曺國革新黨에 歡呼하는 國民이나 五十步百步다. 너나없이 躁急하고 健忘症도 甚하지만 그래도 反省할 줄 아는 리더십도 있어 우리가 이만큼 왔다. 總選을 2週 앞둔 只今은 어디를 봐도 답답하다. ‘政府 牽制論’이 커지는데 野黨은 더 믿을 수 없어 不安하다. 犯罪(嫌疑)字로 그득한 政黨들이 復讐血戰에 汨沒해 果然 나라와 國民을 위할지 疑問이다. 代案은 있다. 한동훈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이 ‘與黨 속 野黨’ 役割을 宣言하는 것이다. 文在寅 政權에서 政務首席을 지낸 이철희는 “靑瓦臺에서 第一 두려운 것은 與黨”이라고 했다. 大統領室은 ‘오버’할 可能性이 많은데 野黨 反對는 當然하게 여기지만 與黨이 “NO” 하면 다시 考慮하게 된다는 것이다. 國힘度 過去엔 大統領에게 할 말은 하는 與黨이었다. 김영삼 前 大統領도 黨과 定例會同을 했고, 李明博 前 大統領도 정동기 前 民政首席의 監査院長 辭退 等 黨의 建議를 受容한 前例가 적지 않다. 國힘은 ‘內部 銃질’을 못 견뎠고 尹錫悅 大統領은 上命下服의 檢事 體質을 버리지 못했다. 大統領과 與黨의 架橋 役割을 해야 할 政務首席은 黨 代表 候補로 나선 議員에게 敢히 “아무 말 안 하면 아무 일 안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大統領祕書室長은 한동훈에게 물러나라는 大統領 말을 傳하기까지 했다. ‘尹心이 黨心’이고 ‘黨心이 民心’이라는 奸臣들 言行에 民心이 돌아선 것이다. 이젠 民心이 黨心이고, 黨 中心으로 大統領의 國政運營 成功을 돕겠다고 한동훈이 나서야 한다. 理由는 첫째, 政府 牽制論이 높음에도 不拘하고 野黨을 믿을 수 없어서다. 한동훈이 27日 동아일보에 밝혔듯 더불어民主黨과 祖國革新黨은 公共善을 追求하는 黨이라 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적어도 防彈 걱정 없는 한동훈이 與黨 속 野黨 役割을 自任하면, 차라리 믿고 政府 牽制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브라질도 7代 經濟 强國이었다가 司法獨裁와 檢察獨裁 때문에 갑자기 墜落했다”는 李在明 民主黨 代表 主張은 野黨 代表의 資質을 疑心케 한다. 브라질에 빗대 尹錫悅 政府의 檢察獨裁를 批判하려는 건 理解한다. 그러나 李在明이 2年 前 大選 候補 時節 다큐멘터리 ‘危機의 民主主義’에 關해 했던 말을 또 했다는 것은 2年間 어떤 發展도, 배움도 없었다는 意味다. 그 나라 두 前職 大統領이 在任 中 南美 最大 建設社 오데브레시로부터 政治資金 33億9000萬 달러(約 3兆9000億 원)를 받아 國內外 政治人과 官僚들에게 뿌린 건 事實이기 때문이다. 美 聯邦法院은 海外腐敗防止法 違反으로 오데브레시에 35億 달러 罰金을 宣告했다. 무엇보다 大庄洞 疑惑에서 자유롭지 않은 李在明이 할 소리는 아니다. 血稅가 제 돈인 양 퍼준다고 외치는 識見은 더 不吉하다. 2016年 彈劾당한 지우마 호세프는 첫 任期 때 財政會計法을 違反하며 豫算을 헤프게 써 再選 1年 後인 2015年 國家負債 等級을 정크본드 水準으로 떨어뜨린 前歷이 있다. 檢察獨裁 때문에 그 나라가 突然 墜落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한동훈이 與黨 속 野黨을 自任해야 하는 세 番째 理由는 ‘高麗公事삼일’이라는 우리 性情 때문이다. 當場은 祖國革新黨의 突風이 불고 있지만 曺國은 나라의 ‘道德的 安全網’을 무너뜨린 人事였다. 支持者들이 “같은 잣대를 尹錫悅 政府에 들이댄다면 果然 떳떳한가” 묻는 건 안다. 그러나 總選 뒤면 손가락 자를 有權者가 적지 않을 터다. 한동훈이 與黨 속 野黨으로서 그 質問을 政府에 하고, 또 答辯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한동훈은 ‘醫大 定員 事態’ 仲裁에 나섬으로써 果然 問題 解決 能力이 있는지 보여줄 試驗臺에 섰다. 尹 大統領은 全斗煥의 4·13護憲 宣言처럼 ‘醫大 定員 2000名 固守’를 밝힌 바 있다. 류성룡에게는 宣祖의 마음을 눅이면서 傾聽하게 만드는 能力이 있었다고 한다. 한동훈이 제2의 6·29宣言에 成功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政府 牽制論을 吸收하고 總選을 勝利로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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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李在明-尹錫悅, 누가 더 帝王的인가

    果然 帝王的 總裁다.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는 決코 朴用鎭을 容納하지 않았다. 過去 性犯罪者 辯護 履歷이 불거져 辭退한 서울 강북乙 조수진 候補 자리에 22日 親命(親李在明) 한민수 代辯人을 戰略公薦했다. 조수진과 競合을 벌였던 現役 朴用鎭 議員은 考慮되지도 못했다. 黨 最高位와 黨務委로부터 權限을 委任받은 李在明 代表가 내린 決定이다. ‘帝王的 大統領’도 國民 눈이 무서워 敢히 못할 膽大한 決定을 一介 政黨 代表가 해낸 셈이다. 金永三-김대중-김종필 3金 時代 退場과 함께 帝王的 黨 總裁의 時代도 終末을 告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비록 野黨 總裁라 해도 公薦權과 政治資金을 틀어쥐고 國會議員들을 手足처럼 부리던 前近代的 加算注意(家産主義·patrimonialism)는 21世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政治資金보다 莫强한 개딸 팬덤을 武器로 公薦 룰을 바꾸고, 黨內 民主主義를 否定한 채 黨 代表가 全權을 틀어쥐는 政黨의 私黨化(私黨化)는 SNS時代에도 可能하다. 이 黨의 公薦管理委員長을 맡은 임혁백이 2014年에 쓴 著書 ‘非同時性의 同時性’ 民主黨 판이다. ● 李在明의 民主黨과 뭐가 다르냐고?그럼 尹錫悅 大統領은 帝王的 大統領인가. 尹 大統領의 ‘20年 知己’ 주기환 全 國民의힘 光州市黨 委員長이 21日 大統領 民生特別補佐官에 任命됐다. 與黨 衛星政黨人 國民의미래 比例代表 24番에 配定되자 삐져선 辭退했는데, 하루 만에 大統領이 한동훈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을 大파로 후려치듯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옆에 세운 거다. 그 前날 더 駭怪한 일이 벌어졌다. 親尹(親尹錫悅) 核心 李喆圭 議員이 한동훈에게 “李在明의 民主黨과 뭐갸 다르냐”고 公開 狙擊을 한 것이다. 尹 大統領과 親分 깊은 주기환을 比例代表 當選圈 안에 配置해 달라고 要求한 事實이 있다고 대놓고 밝히면서 이건 주기환이 黨에 貢獻했기 때문이지 私賤이 아니라고 했다.참 도긴개긴이다. 尹 大統領이 帝王的 大統領은커녕 帝王的 總裁에 한참 못 미친다고 눈물을 찍어내야 할 것인가. 주기환은 “單純히 술 한 盞 하는 程度가 아니라 속내를 다 털어놓는 關係”라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두 분이 繼續 爆彈酒를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놓으시기 바란다. 個人的 속내 털기에 그치지 않고 何必 總選을 코앞에 둔 이 때 大統領이 찐潤을 公職에 임명하니 ‘政權 審判論’李 솟구치는 것이다.● 大統領 候補 ‘配偶者 副室長’ 職責까지 親명이든, 親尹이든 그들의 ‘브로맨스’에 是非 걸 생각은 없다. 아무리 피보다 津한 사이라 해도 ‘管理를 公的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君主의 私有物로 여기는 것’李 加算主義다(‘비동시성의 同時性’ 641쪽). 甚至於 주기환의 아들도 大選캠프와 大統領職引受委員會에 이어 大統領祕書室 附屬室에서 6級으로 일하고 있다. 尹 大統領은 公職 任命權이 있어 大統領室에 자리를 만들어줬고, 李在明은 개딸 팬덤과 또 ‘보이지 않는 巨大한 빽’이 있어 公薦을 준 것이 差異일 뿐이다. 萬若 李在明이 大統領이라면 어떤 자리를 만들어줄지 想像超越이다. 尹 大統領 夫人도 第2附屬室을 안 두고 있는데(그래서 서둘러 設置하라는 판인데) 大統領 候補 時節 ‘配偶者실 室長’에 ‘配偶者실 副室長’까지 設置했던 李在明 아니던가(그 副室長이 이番에 私薦 論難을 딛고 競選 勝利한 권향엽 候補다). 아니, 大統領 候補 配偶者에 對한 儀典이 그 程度면, 김혜경 氏가 大統領 夫人 됐으면 어쩔 뻔 했느냐고? 政治學者 임혁백은 “21世紀 韓國 政治를 先進化하기 爲해선 前近代的인 儒敎的 街山主의 傳統을 淸算해야 한다”고 著書에서 强調했다. 萬一 그가 민주당 公薦管理委員長을 맡지 않았다면 2024年 總選으로 因해 韓國 政治는 한層 後進化 됐다고 목청을 높였을지 모를 일이다. 임혁백은 이番 公薦으로 家産主義의 特徵인 李在明의 보스注意, 보스 中心의 인치注意를 굳혀준 것은 勿論 韓國 民主主義 後退에도 寄與한 꼴이 되고 말았다. ● 理念에 따라 民主 後退 認識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政權 審判論은 갈수록 커지는 樣相이다. 最近 스웨덴 民主主義多樣性硏究所(V-Dem)가 發表한 ‘民主主義 報告書 2024’에선 韓國을 自由民主主義에서 獨裁化로의 轉換이 進行되는 國家 中 한 곳으로 꼽았다. ‘檢察 獨裁 審判’에 힘을 실어주는 報告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異常한 點이 있다. 이 硏究所는 英國 이코노미스트誌에선 ‘缺陷 있는 民主主義’라고 본 수리남, ‘하이브리드 政權’이라고 본 부탄을 自由民主主義라고 分類했다는 事實이다(두 나라를 貶毁할 뜻은 全혀 없다^^). 수리남이 民主主義 順位 45位인데 韓國이 47位라고? 나는 同意하기 어렵다. 이걸 理解하게 해주는 또 다른 硏究를 發見했다. 2023年 初 韓國리서치가 實施한 ‘民主主義 後退 認識 調査’를 分析한 朝鮮大 지병근 敎授의 ‘民主主義 後退 認識의 이념적 偏向性’ 論文이다. 應答者들 絶對 多數가 尹錫悅 政府 時期에 韓國 民主主義가 後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되 應答者의 理念이 保守的일수록 尹錫悅 政府보다 文在寅 政府 時期에 民主主義가 가장 많이 後退했다고 認識하며, 進步的일수록 이와 正反對로 認識할 可能性이 增加했다는 거다.● 다시 大統領이 드러나고 말았다대선 0.73% 差異가 말해주듯 우리나라는 이념적으로 거의 兩分된 나라다. 艱辛히 政權 交替에 成功했는데 議會權力은 帝王的 野黨 總裁가 꽉 잡고 있다. 그래서 保守 性向, 아니 尹錫悅 政府가 곱진 않지만 文 政權 뺨치는 ‘李在明의 民主黨’에 繼續 議會權力을 줘선 안 된다고 믿는 有權者들은 요즘 애가 탄다. 獨不將軍 式으로 밀어붙이는 尹 大統領을 덜 보이게 하려고 國힘은 73年生 한동훈을 내세웠다. 강감찬 아꼈다 壬辰倭亂 때 쓸 수 없다며, 急하게 出發했지만 산뜻하게 李在明을 壓倒하는가 싶었는데, 期於이 大統領은 코끼리만한 덩치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番 週 갤럽 調査에서 ‘政府 牽制 爲해 野黨 候補 當選’ 應答이 51%다. 前 週보다 늘었다. 甚至於 中道層에서도 與黨(26%)보다 野黨(58%), 無黨層度 與黨(19%)보다 野黨(43%) 勝利를 願한다. 왠지 아는가. 總選은 大統領 支持率이 左右한다. 大統領 職務遂行 肯定率이 꼴랑 34%여서다. 前週보다 올라도 시원치 않은데 2%포인트가 떨어졌다. 尹 大統領은 肯定評價 理由 첫 番째가 醫大定員 擴大(27%)이고 두 番째가 決斷力/推進力/뚝심(10%)인데 뭔 소리냐며 激怒할 지 모른다. ‘醫師들 惡魔化’에 더욱 邁進할까 怯난다. 方向은 옳을수 있어도 2000名씩 5年間 無條件 定員 擴大를 밀어붙이는 건 國民을 不安케 한다. 大統領은 아프거나 (萬에 하나 일어나선 안 될) 事故가 나도 最高意思가 달라붙겠지만 普通사람은 다르다. 或是나 病院 갈일 생길까 걱정이 泰山이다.● 李在明에게 政府 牽制 맡길 수 있나더 늦기 前에 한동훈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말 뒤집기를 밥먹듯 하는 李在明의 民主黨에 政府 牽制를 맡길 수 없다며, 國政運營에 責任 있는 執權與黨으로서 ‘均衡과 牽制’ 役割을 다하겠다고 分明히 밝혀야 할 때다. 選擧 遊說만 할 게 아니다. 醫大定員 擴大 發表 以後의 醫療改革 問題에 對해 國民을 안심시킬 수 있는 政策도 내놓아야 한다. 大統領을 제대로 補佐하지 못하는 大統領室에도 똑바로 하라고 말하기 바란다. 國힘 勝利를 위해서라면, 國定基調 轉換이나 大統領 脫黨도 要求할 수 있어야 한다. 只今 政權 審判論이 바람을 타는 것은, 如前히 尹 大統領은 國民 앞에 傲慢한데 大統領 앞에서 唯一하게 ‘깡다구’를 보인 한동훈이 總選 뒤 國힘에서 남아나지 못할 것 같아서다. 權力이란, 男子의 嫉妬란 무서운 法이다. ‘總選 後 留學說’에 對해 그는 22日 “저는 뭘 배울 것이 아니라 無條件 奉仕하는 일만 남았다”고 했지만 國힘을 지키겠다는 末까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발 尹 大統領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달라고, 比例代表 政黨으로 犯罪(嫌疑)字 그득한 曺國革新黨을 찍겠다는 應答이 無慮 15%나 나오는 것이다. ● 한동훈이 나라를 이끌 비전을 말하라 尹 大統領은 달라지지 않았다. 李官燮 大統領祕書室長은 1月 19日 東亞日報와의 通話에서 “尹 大統領은, 公薦은 黨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大統領室은 公薦에 絶對 關與하지 않는다는 立場”이라고 말했지만, 아니었다(대통령실 아닌 李喆圭가 公薦에 介入했다). 한동훈이 ‘지르면’ 大統領은 지는 척 받아주고 葛藤을 縫合하는 모습을 演出했으나 그 담엔 그대로다. 한동훈이 어렵게 입을 뗀 大統領 夫人의 名品백 事件 以後 第2附屬室度, 特別監察官度 設置하지 않았다. 李鐘燮 濠洲 臺詞가 早期 歸國했다고 ‘大統領室 搜査 外壓 事件’ 疑惑이 사라질리 萬無하다. 李在明의 ‘망나니’ 노릇을 하는 바람에 學者로서의 名譽가 많이 毁損됐지만 임혁백은 著書에서 强調했었다. “韓國 政黨의 制度化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政黨의 목소리가 政策 決定 過程의 꼭대기에 있는 大統領에게 傳達되는 制度的 通路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大統領도 自身의 政策을 決定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執權 與黨과 相議해야 한다”고. 그래야 執權與黨의 權威와 權力도 올라가고, 大統領도 與黨과 統合的으로 움직여 成功的 國政運營을 할 수 있다고. 盧武鉉 前 大統領의 過度한 黨政分離로 열린우리당은 選擧에서 連敗했다. 文在寅 前 大統領은 찰떡같은 黨政 원팀으로 總選에선 大勝했으나 政權을 잃었다. 帝王的 黨 代表와 大統領, 어느 쪽이 더 民主主義를, 나라를 말아먹는지는 各自의 理念에 따라 判斷이 다를 수 있다. 다만 責任 있는 與黨 代表로서, 그리고 낡아빠진 加算注意를 뿌리뽑고 政治의 世代交替를 해낼 수 있는 73年生 政治人으로서 한동훈은 비전을 밝혀야 한다. 總選에 이길 境遇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다시 한番 分明히 말해주었으면 한다. 大統領한테 失望한 有權者가 李在明 아닌, 祖國 아닌, 한동훈에게서 希望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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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李在明이 時代精神’이면 國民性 改造될 판

    結局 朴用鎭은 公薦 받지 못했다. 더불어民主黨 議員 中 꽤 合理的 人物로 꼽히면서 大選 競選, 黨 代表 競選에서 李在明 代表와 맞섰던 그가 4月 總選에 出馬도 못 하게 됐다. 李在明은 2022年 8月 黨 代表 競選演說會에서 “우리 朴用鎭 候補도 公薦 걱정하지 않는 黨을 만들겠다”며 공정하고 合理的인 黨 運營을 다짐했다. 어쩌면 只今 李在明은 흐흐 웃고 있을지 모른다. 박용진도 公薦 걱정 않는 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眞짜 만들 줄 알았느냐고. 일찌감치 單數公薦 받은 親命 정청래 最高委員은 지난달 “時代마다 時代精神이 있다”며 “李在明이 民主黨의 時代精神”이라고 했다. “李在明 旗발로 總團結해 時代的 소명인 尹錫悅 政權을 審判하고 總選에서 勝利하자”는 主張이다. 黨內 偶像化 作業쯤은 모르고 싶다. 하지만 내 血稅까지 黨 國庫補助金으로 들어가니 모른 척할 수 없다. 民主黨이 李在明의 祠堂(私黨)일 수도 없고 개딸들만의 政黨이어서도 안 되는 理由다. 政權審判을 時代的 召命으로 잡는 건 그들 自由지만 李在明을 時代精神으로 내세우는 건 深刻하다. 非命橫死 뒤 脫黨한 홍영표 議員 말을 굳이 옮기자면 “李在明 代表가 時代精神이면 民主黨도, 大韓民國도 亡하는 길”이어서다. ‘하면 된다’ 精神을 불러일으킨 故 朴正熙 前 大統領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維新 獨裁라는 歷史的 過誤는 容納할 수 없지만 朴正熙의 ‘하면 된다’는 온 國民의 自信感과 自立心을 刺戟해 가난을 떨쳐내고 大韓民國 近代化를 이끈 當代의 時代精神이었다. 李在明이 象徵하는 時代精神으로 민주당은 무엇을 들 것인가. 洪永杓는 ‘말 바꾸기’를 첫손에 꼽았다. ‘尊敬하는 朴槿惠 大統領’이라고 말했다가 “尊敬한다고 했더니 眞짜인 줄 알더라”며 뒤집는 程度는 愛嬌였다. 不逮捕特權 抛棄, 衛星政黨 抛棄 같은 公約 뒤집기도 이番 公薦 事態에 비하면 藥果다. 나 같으면 ‘설마’를 李在明의 時代精神으로 꼽고 싶다. 22代 總選 民主黨 公薦은 한마디로 ‘설마가 사람 잡은 公薦’이었다. 國語辭典에 ‘그럴 理는 없겠지만’이란 뜻으로 否定的인 推測을 强調한다고 나오는 府使가 이토록 頻繁히 쓰인 公薦도 없을 거다. 설마 ‘시스템 公薦’을 導入했다면서 골대 옮기듯 公薦 룰을 고치고, 選出職公職者評價委員長에 李在明 支持 모임 代表 出身 송기도 全北大 名譽敎授를 임명해 물갈이 現役 議員 55名 中 70%에 肉薄하는 悲鳴(非李在明)을 잘라낼 줄은 몰랐다. 議員 評價에서 下位 10%로 찍혀 30% 감점받는 걸 알게 된 박용진도 지난달 “豫想을 이만큼은 했죠, 설마하니 이러랴. 그런데 結果는…” 했을 程度다. 李在明의 時代精神 설마가 겁나는 것은 普通 ‘그럴 理는 없겠지만’ 하고 推測하는 일이 그의 周邊에선 泰然히 벌어지기 때문이다. 別名이 萬毒불鍼(萬毒不侵·만 가지 독에 免疫이 있다)이라는 李在明은 自己 自身의 生存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一般人의 常識과 想像을 뛰어넘는, 그래서 到底히 있을 수 없는 일도 ‘李在明은 합니다’. 甚至於 李在明은 昨年 10月 大庄洞 開發 特惠 疑惑 裁判에서 裁判長에게 被告人席에 나란히 앉은 側近 정진상 前 민주당 政務調整室長을 “한番 안아보게 해 달라”고 請해 끌어안더니, 이番에 公薦 룰까지 바꿔 ‘大庄洞 辯護士들’을 줄줄이 地域區에 公薦하기까지 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할수록 섬뜩하다. 國民이 李在明의 時代精神을 따르면, 말 바꾸기와 거짓말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설마 到底히 그럴 수 없는 일도 泰然하게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公薦받기 위해 “차은우보다 李在明이 더 美男”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듯, 阿附는 普通이 될 것이다. 어제 했던 사랑의 約束이나 商法上의 契約을 깨는 것도 우습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萬에 하나, 詐欺罪나 悖倫 等으로 붙잡혀 가더라도 無道한 政權에 依한 迫害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좀 더 勇敢하면 ‘非法律的 判斷’을 받겠다며 민주당이나 祖國革新黨에 入黨해 公薦 申請을 할 수도 있다. 어떤 犯罪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全 國民 멘털이 强해지고 道德性 水準이 떨어지면서 可히 國民性 改造가 벌어질 판이다. 全 國民의 李在明火, 끔찍하지 않은가. 설마 이런 李在明이 大統領 되랴 싶겠지만 萬毒불鍼 李在明은 또 모른다. 只今은 黨內 悲鳴만 자른 黨 代表이나 大統領이 될 境遇 알 수 없다. 反對勢力은 悲鳴도 못 지르게 잘라버리는 李在明의 時代精神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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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敎育·文化獨立運動家로 이제야 評價받는 인촌 金性洙

    神堂을 차린 祖國 曺國革新黨 代表는 尹錫悅 政權 ‘早期終熄’이란 말을 달고 산다. 總選 目標價 檢察政權 早期終熄이라며 大統領 彈劾이란 單語까지 입에 올린다. “좀 더 나아가면 內亂 煽動”이라는 朴敏植 前 國家報勳部 長官 말을 굳이 傳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난 大選 敗北 뒤 더불어民主黨 前 代表 李海瓚이 했던 말은 傳하고 싶다. “5年은 今方 간다.”2심 有罪 判決을 받고 大法院 判決만 南은 祖國에겐 單任制 大統領의 남은 任期 3年 半도 너무 길 것이다. 안다. 하지만 오늘은 總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定해진 大統領 任期 5年度 어떤 이에게는 죽도록 길 수 있다는 事例로 드는 것 뿐이다. 그래서 萬若, 눈 떠보니 祖國(祖國)은 植民地가 됐고 언제 獨立할지 期約없는 100餘 年 前이었으면 어땠을지 묻고 싶은 거다.“우리는 民衆 속에 가서 民衆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暴力·暗殺·破壞·暴動으로써 强盜 日本의 統治를 打倒하고… 理想的 朝鮮을 建設할지니라.” 丹齋 申采浩는 1923年 ‘조선혁명선언’에서 2000萬 民衆에게 暴力 破壞의 길로 나아갈 것을 促求했었다.● 丹齋 申采浩, 敎育·文化獨立運動을 ‘敵’으로 規定 敎科書에선 丹齋를 獨立運動家·歷史家로 배웠지만 其實 그는 敎育的, 文化的, 外交的으로 獨立을 追求한 이들을 無調理 ‘敵’으로 規定했던 革命家였다(죽창가를 부르던 曺國과 恰似한 點이 없지않다). 그러나 따져보자. 丹齋 自身은 1910年 中國으로 亡命했지만 2000萬 百姓 全部가 丹齋처럼 나라를 떠날 순 없다. 더구나 그땐 只今의 曺國처럼 3年 半만 기다리면 政權이 바뀌도록 定해진 狀況도 아니었다. 언제 獨立될지, 그런 날이 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丹齋는 “經濟掠奪의 制度 下에서 生存權이 剝奪된 民族은 그 種族의 保存도 疑問이거든 하물며 文化發展의 可能이 있으랴” 조선혁명선언에서 慨歎했다. “檢閱·押收, 모든 壓迫 中에 몇몇 新聞 ·雜誌를 가지고 ‘文化運動’의 木鐸으로 스스로 떠들어 대며, 强度의 脾胃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言論이나 主唱하여 이것을 文化 發展의 過程으로 본다 하면, 그 文化 發展이 도리어 朝鮮의 不幸인가 하노라” 主張했다. 그래놓고 이듬해인 1924年 東亞日報 1月 1日子 前面에 ‘朝鮮古來(古來)의 文字와 市價의 變遷’이라는 글을 실었으니 新聞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1936년 그의 獄中 殉國 記事 亦是 동아일보에 揭載됐다). 外交獨立運動에 對해서도 丹齋는 “歎願書나 列國公館(列國公館)에 던지며…(중략) 國家 存亡·民族死活의 問題를 外國人 甚至於 敵國人의 處分으로 決定하기만 기다리었도다”며 貶毁했다. ‘義烈團 宣言’이라고도 하는 이 글을 쓴 時期엔 武裝鬪爭만이 피 끓게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0年 前 朝鮮 땅에서, 그 後로도 한참동안 朝鮮總督府 아래 子息들 공부시키며 먹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모조리 銃칼 들고 나서긴 힘든 일이다. ● 敎育과 文化獨立運動 評價한 3·1節 記念辭 그럼에도 日帝 强占期 이 땅에서 펼쳐온 ‘다양한 運動’은 제 몫의 評價를 받지 못해온 게 事實이다. 우리를 支配해온 獨立運動에 對한 認識 相當部分이 義烈團 宣言 같은 革命的 思考에서 비롯된 셈이다. 尹錫悅 大統領의 이番 3·1節 記念辭는 只今껏 가려져 왔던 國內에서의 敎育·文化獨立運動을 言及했다는 點에서 劃期的이었다. “3.1運動을 起點으로 國內外에서 여러 形態의 獨立運動이 펼쳐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熾烈하게 武裝獨立運動을 벌인 鬪士들이 계셨습니다. 國際政治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世界 各國에서 外交獨立運動에 나선 先覺者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力量을 갖추도록, 敎育과 文化獨立運動에 나선 實踐家들度 계셨습니다.”짐작하시겠지만, 여기서 ‘敎育과 文化獨立運動에 나선 實踐家들’은 인촌 金性洙 先生 等을 念頭에 둔 것이다(대통령실의 한 首席도 그렇게 確認했다). 尹 大統領은 “우리의 獨立을 保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모든 先驅的 努力의 結果였다”며 “이 모든 獨立運動의 價値가 合當한 評價를 받아야 한다”고 記念辭에서 强調했다. 늦었지만 多幸이다. 그래서 이 機會에 意外로 잘 안 알려진, 東亞日報 사람들한테는 참 자랑스러운 3·1運動과 인촌, 大韓民國 近代化와 隣村에 對해 傳하고 싶다. ● 上層 地主가 近代化에 寄與한 唯一한 韓國近代 以前의 社會는 날 때부터 身分이 定해진 階級社會였다. 萬一 눈 떠보니 當身의 父親이 上層階級 支柱라면, 祝賀한다. 그들이 社會的 責任을 기꺼이 지는 나라라면, 國民도 해피할 것이다. 그러나 東洋에서 그런 나라는 거의 없었다. 歷史學者 이승렬은 오늘날 韓中日 三國 差異가 上層 地主勢力에서 成長한 自由主義 부르주아지의 存在 與否에서 비롯됐다고 본다(2021년 甓돌冊 ‘近代 市民의 形成과 大韓民國’). 日本 地主들은 淸日-러일戰爭을 勝利로 이끈 强力한 官僚制와 軍에 휘둘려 軍國主義에 捕獲됐고, 敗戰 뒤에도 自由主義로 定着하지 못해 只今도 자민당 거의 一黨 體制다. 中國 持株 亦是 農業官僚制에 寄生하다 1911年 辛亥革命에서 挫折하고 國共內戰서도 敗했다. 下層 農民에 基盤한 共産黨은 全體主義 一黨獨裁에서 現在 거의 시진핑 皇帝體制다. 反面 韓國은 進取的 地主 엘리트가 自由主義 勢力을 形成해 近代化를 이끌고, 議會主義를 主導한 나라다. 朝鮮의 旣得權 勢力이던 서울京畿, 忠淸과 黃海道 地主 多數는 日本에 協力했지만(이회영 一家 等 少數는 亡命해 獨立運動) 邊方인 湖南 地主勢力은 달랐다. 農業官僚制(의 收奪)로부터 比較的 자유로워 開港 後 企業型 農業과 米穀貿易을 통해 成長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젊은 부르주아지 2世들은 日本 留學으로 世上 變化를 깨우쳤고, 나라와 未來를 苦悶했다. ● 中央學校 宿直室은 3·1運動의 産室蓄積된 部와 知識을 그들은 自身만의 富貴榮華에 쓰지 않았다. 敎育과 文化 그리고 經營에 獻身하며 溫乾한 民族主義 勢力으로 浮上했다. 그 中心人物이 1915年 中央學校를 引受하고 1920年 동아일보를 創刊한 인촌 金性洙(1891~1955)였다. 서울 季冬의 中央學校 宿直室은 젊은 隣村의 살림집이자 古下 宋鎭禹(1890~1945), 基當 현상윤(1893~1950) 等 東京留學生 出身 中央學校 敎師들이 學校와 民族의 將來, 世界情勢를 痛論하는 民族 秀才들의 舍廊房이었다. 3·1運動의 産室度 이 작은 기와집이다. 話題의 다큐멘터리 映畫 ‘建國戰爭’은 3·1運動을 이끈 背景에 李承晩 博士가 있다고 보는데 동아일보社가 1985年 發行한 ‘인촌 金性洙의 思想과 일화’에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1918년 12月의 어느 날 워싱턴에서 在美同胞들과 救國運動을 하고 있던 雩南 李承晩이 密使를 보내왔다. “윌슨 大統領의 民族自決論이 正式으로 提出될 이番 (파리)强化會議를 利用하여 韓民族의 奴隸生活을 呼訴하고 自主權을 회복시켜야 한다. 美國에 있는 同志들도 이 救國運動을 추진시키고 있으니 國內에서도 이에 呼應해 주기 바란다.”’● 己未獨立宣言 33人에 隣村이 빠진 理由하지만 李承晩 自身의 陳述에 依하면 李承晩이 直接 國內에서 萬歲運動을 企劃하거나 指示한 事實은 없다고 朴明洙 서울신학대 名譽敎授는 2023年 論文에서 밝혔다(‘3·1운동과 大韓民國 臨時政府 樹立에 미친 美洲 獨立運動의 影響’). 다만 當時 李承晩의 名聲이 매우 높아서 사람들은 獨立運動의 背後에 李承晩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點은 분명하다고 했다. “季冬 金性洙의 舍廊房에는 1880年代와 1890年代 태어난 高學歷 엘리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들은 大部分 社會 經濟 言論 文化 等 다양한 領域에서 일어났던 國內의 溫乾한 民族運動에 關與했다”고 이승렬은 著書에 썼다. 인촌과 高下, 基糖이 日本留學時節 만든 東京留學生會에서 2·8獨立宣言書를 들고 찾아온 곳도 바로 季冬 舍廊房이었다. 3·1運動에 天道敎 基督敎 佛敎界의 代表들을 한데 모으는 데는 中央學校에 뭉친 이들 進取的 부르주아지 2世代가 架橋 役割을 했다. 이들은 位階를 따지지 않고 서로를 尊重하며 네트워크를 形成했고, 獨立의 目標로 共存共榮과 平和를 主張했다. 이 새로운 ‘政治的 人間’들이 韓國 市民階級의 礎石을 놓으면서 自由主義 勢力을 擴張하여 解放 以後에는 大韓民國 政府 樹立過程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이승렬의 分析이다. 그럼에도 ‘己未獨立宣言 33人’에 隣村의 이름이 빠진 理由가 있다. 高下의 우격다짐같은 勸誘로 인해서다. “日帝에 抗拒하여 獨立을 爭取한다는 것은 正말 一朝一夕, 單판 勝負로 얻어지는 건 아닐거야. 밤새도록 혼자 생각해봤는데 이 運動은 永久的인 鬪爭이 돼야 한다는 結論을 얻었네…(중략) 聖水가 投獄되면? 우리 中央學校 亦是 當場 廢校野!…(中略) 資金은 대줘도 그 자취는 남기지 말고 祕密會議 같은 外部會議에는 나가지 말고!”(‘인촌 金性洙의 思想과 일화’)● 公船事後(公先私後)와 親명橫財는 相剋隣村은 中央學校와 보성전문(現 高麗大學校)의 敎育을 통해 近代 市民을 길러냈다. 1919年 京城紡織 設立은 經濟의 近代化, 1920年 4月 1日 동아일보 創刊은 思想의 近代化와 關聯이 있다고 이승렬은 썼다(그래서 그의 冊 題目이 ‘近代 市民의 形成과 大韓民國’이다). 우리 憲法 1條 1項이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 憲法을 기초한 유진오 博士 亦是 隣村이 引受한 보성전문학교 敎授였다.민주주의는 알겠는데 共和主義는 抽象的이고 어렵다. 모두의 利益과 權利를 保障하기 위해 公的 利益과 共同體의 安寧을 重視한다는 槪念. 우리 事務室엔 ‘公船事後(公先私後)’라는 인촌 精神을 쓴 額子가 걸려 있다. 工事가 부딪힐 땐 無條件 功을 最優先으로 重視하고, 私的인 일은 나중으로 돌리는 것(하다못해 밤中에 取材와 집안일이 겹칠 때도 取材가 먼저였다). 나는 이것이 共和主義를 實踐하는 가장 쉽고도 옳은 方法이라고 생각한다. 隣村은 1946年 韓國민주당 首席總務를 맡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最近 橫行闊步하는 민주당 ‘親명橫財-非命橫死’ 公薦은 公船事後와 完全相剋이다.‘전북 高敞과 全南 潭陽은 開港 以後 米穀市場이 擴大되면서 商業的 農業을 통해 자유롭게 부를 蓄積할 수 있는 機會의 땅이었다. 朝鮮王朝의 周邊部여서 새로운 文明에 對한 拒否感이 相對的으로 적었고 時代 變化에 敏感했으며 차라리 近代化와 學習을 통해 國家的 危機를 突破하려는 熱氣도 充滿했다. 特히 金性洙는 地域 人物과 財力을 連結하는 獨特한 役割을 했고, 그 裏面에는 열린 姿勢로 뒷받침했던 父母 世代의 努力과 財力이 있었다.’ 이승렬은 著書에 적었다. 湖南은 大韓民國 近代化를 이끈 指導者들을 키운 땅이었다. 그랬던 湖南이 100年 後 光州엔 複合 쇼핑몰 하나 없는 ‘民主黨 植民地’ 처럼 되고 말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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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民主主義 碩學 임혁백은 왜 ‘李在明의 망나니’가 됐나

    ‘문재인이 分明히 알아야 할 것은 노무현 政府는 失敗한 政府라는 것이다.’ 임혁백 더불어民主黨 公職選擧候補者推薦管理委員長이 高麗大 敎授 時節인 2012年 11月 동아일보 ‘동아廣場’에 쓴 칼럼 中 한 대목이다. 2007年 大選 當時 鄭東泳 與黨 候補의 敗北는 民主黨 大慘敗日 뿐 아니라 노무현 統治에 對한 總體的인 國民的 不正이었다고 임혁백은 썼다. 그럼에도 2012年 大選 過程에서 文在寅 候補는 盧 政府 遺産 繼承을 選擧口號로 내세웠고 캠프는 ‘老빠’로 가득하니 選擇은 國民 몫이라는 매서운 內容이었다. 그랬던 임혁백이 28日 서울 鍾路에 盧武鉉 前 大統領의 사위 곽상언 辯護士를 單數 公薦했다. 昨年 12月 出馬 宣言하며 “저는 盧武鉉의 사위로 알려진 사람으로 노무현 政治를 繼承하는 것이 宿命”이라고 했던 곽상언을 公薦한 거다. 老婆心에 미리 밝히자면, 나는 政治學者 임혁백을 尊敬해 마지않는다. 민주당 代辯人이 말했듯 임혁백은 ‘民主主義의 世界的 碩學’이라는 것도 잘 안다. 過去 死刑 執行 때 罪人의 목을 베던 ‘망나니’란 用語가 좀 無嚴해도 임혁백은 ‘非同時性의 同時性; 韓國 近代政治의 多重的 時間’이라는 著書를 쓴 만큼, 透明하고 공정하고 또 至嚴하게 칼을 휘두르는 公薦 管理者 役割을 할 것으로 믿어 疑心치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다. 임혁백의 言動이 막돼서 망나니라는 게 아니고 글과 行動이 달라지는 게 碩學答紙 않다. 그는 달랑 칼럼 한 便만으로 盧 政權을 批判한 게 아니다. 2006年 ‘좋은政策포럼’을 發足해 “韓國 進步勢力이 停滯的 危機, 受權能力 危機, 平和管理 危機의 三重 危機에 빠졌다”고 診斷하는 等 盧 政權 實情을 機會 있을 때마다 批判했다. 그래 놓고 自身이 批判한 盧 政權을 繼承하겠다는 노무현 사위를 ‘選擧區 世襲’시켜 公薦한 것은 前近代的 處事다. 굳이 著書에 맞춰 본다면, 近代性을 完結하고 脫近代로 進入해야 할 時期에 共和主義的 價値觀과 社會的 信賴를 깨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異常한 公薦은 곽상언만이 아니다. 임혁백의 學者的 良心과 公管委院長의 樣式을 무너뜨리는 公薦이 한두 곳이 아니다. 곽상언은 李在明의 競爭者가 아니어서 괜찮을지 몰라도 임혁백은 自己 말까지 뒤집으며 黨 代表 李在明을 닮아가고 있다. 甚至於 學界에선 碩學 임혁백이 달라졌다며 憂慮가 번지는 狀況이다. 지난달 記者懇談會에서 임혁백은 “實質的 審査는 내가 한다. 系派에 關係없이 시스템에 依해 공정하게 審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政治學者 임혁백이었다. 그러나 “黨 統合과 民主主義를 威脅하는 憎惡와 暴力 發言 等을 公薦 基準에 反映한다”더니 임혁백은 突然 李在明이 했던 憎惡와 暴力 發言, 飮酒運轉을 公薦 基準에서 빼버렸다. ‘尹錫悅 檢察政權’ 誕生에 原因을 提供한 사람은 책임지라고 李在明을 위해서 銃대까지 멨다. 總選 뒤 黨權 競爭에서 李在明의 競爭者가 될 법한 임종석 前 大統領祕書室長 等은 絶對 公薦 못 준다는 얘기다. 2012年 우리 新聞에 ‘公薦權을 國民에게 돌려줘라’ 칼럼을 썼는데 只今은 民主黨 密室公薦을 뻔히 알고 謝過까지 하면서도 束手無策인 모습이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임혁백은 ‘이기는 公薦’을 强調했지만 이제는 完全 ‘지는 公薦’을 한다. 공정하지도 透明하지도 않다. 왜 進步的 民主主義 碩學이 뒤늦게 이토록 말도 안 되는 公管委院長을 固守하는 것일까. 自身의 ‘防彈’만이 重要한 李在明은 碩學 防牌막이가 必要했던 것이다. 親명으로 똘똘 뭉칠 수만 있다면, 總選 敗北도 相關없다. 大選에서 이기면 그 많은 司法 리스크쯤 ‘셀프 赦免’도 可能하다고 믿고 있을 터다. 임혁백은 2022年 한 인터뷰에서 韓國 政黨의 가장 큰 問題가 ‘사인(私人) 正當化’라고 했다. 朴用鎭 議員에게 下位 10%를 알리면서 “나도 (理由를 모르고) 通報만 한다” 할 만큼 임혁백은 李在明 祠堂(私黨)에서 허수아비다. 共和主義의 核心은 公益, 公的 德性의 支配다. 李在明에게는 그게 없다. 아니라고? 임혁백이 李在明에게 總選 不出馬를 要求해 보시라. 그럼 알 것이다. 萬에 하나, 그럴 理 없겠지만 지난 大選 때 李在明의 支持 그룹에 몸담았던 임혁백이 總理라도 시켜준다는 約束을 받고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라도 그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바란다. 設令 李在明이 다음 政府 大統領이 된대도 그는 “總理 시켜준다 했다고 正말 시켜줄 줄 알았느냐”고 할 사람이다. “박근혜를 尊敬한다고 했다고 正말 尊敬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던 걸 잊었는가.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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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 李承晩, 러시아-共産 全體主義 本質 꿰뚫은 偉大한 政治家

    설 連休 온 食口가 ‘建國戰爭’을 봤다. 劇場이 滿員이어서 뿔뿔이 떨어져 앉아야 했다. 德分에 各自 눈치보지 않고 映畫에 빠져들 수 있었다. 記者인 나는 習慣처럼 메모를 했고 젊은 내 딸은 눈물 훔치는 옆 사람을 구경했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자 觀客들이 일어나 나오면서 拍手를 쳤다. 이쯤 되면 起立拍手다. 다큐멘터리와 一般 映畫의 差異는 팩트냐 아니냐다. 記事는 事實을 쓰고 小說은 아니다(칼럼은 意見을 쓴다^^). 李承晩 칼럼을 쓸 때마다 달리는 댓글이 主로 ‘李承晩은 6·25戰爭이 터지자 漢江다리를 끊고 도망간 나쁜 大統領’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避難民을 漢江에 빠져 죽게 만들고는 “서울市民 여러분, 安心하고 서울을 지켜주십시오” 國民 속이는 放送까지 했다는 건데 김덕영 監督은 그게 事實이 아님을 밝혔다. 그래서 고맙다. 이제 우리는 李承晩 大統領을 限껏 尊敬해도 되는 것이다.● 大韓民國을 세우고 지켰지만 過誤度어렵게 세운 大韓民國을 지켜낸 뒤, 四捨五入 改憲에 이어 4·19에 이르는 過程까지 李承晩을 尊敬하기는 그러나 쉽지 않다. 한 人間을 斷片的으로 評價해선 안 될 일이지만, 또 只今껏 李承晩을 지나치게 迫切하게 對한 點은 反省하고 是正해야하지만, 그럼에도 無條件 偶像化하는 것도 警戒할 必要가 있다.‘1950년대 駐韓 美國人들 사이의 共通된 話題는 80歲의 李承晩이, 特히 經濟問題에 있어서, 얼마나 요상하고 멍청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미국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無償援助를 받아내어…헤아릴 수 없는 不淨腐敗 事件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부르스 커밍스의 ‘韓國現代史’가 不便하고 惡意的으로 보이는 것도 事實이다. 김영명 翰林大 名譽敎授 亦是 李承晩 政權의 基本構造를 ‘日人體制 또는 家父長的 權威主義’로 規定했다(2006년 ‘韓國의 政治變動’). 아무도 自由民主主義를 經驗해본 적 없는 나라에서 李承晩은 大統領 自身이 ‘政派를 超越한’ 位置에 서는 自由民主主義를 追求했다. 八旬 高齡의 大統領 옆에는 파파의 健康만 챙기는 令夫人이 帳幕을 쳤다. 그 사이를 阿諂꾼과 거짓 情報 傳達꾼만 파고들었다는 事實은 섬뜩하다.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않는 ‘韓國的 民主主義’ 원조를 보는 듯해서다. “長期執權은 했지만 獨裁는 아니”라는 다큐멘터리 속 나레이션에 同意할 수 없는 理由다.● 李承晩이 洞察한 러시아의 侵略本能그럼에도 只今 李承晩을 다시 보는 理由는 그가 러시아, 그리고 共産全體主義의 本質을 누구보다 앞서 꿰뚫어본 偉大한 政治人이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이 ‘鐵의 帳幕’을 말한 것이 1946年이었다. 李承晩은 1904年 29歲 나이에 監獄에서 쓴 ‘獨立精神’에서 러시아 專制政治의 本質을 알렸다. 꼭 120年 前이다. 러일戰爭이 터진 1904年 2月부터 넉 달 間 쓴 이 冊에서 그는 ‘옛날부터 俄羅斯 사람들의 政治的 目標는 오로지 남의 땅 빼앗는 것’이고 ‘專制政治로 强國이 된 나라’라고 喝破했다. 英國 스웨덴 甚至於 日本도 立憲君主制를 導入한 近代國民國家의 時代였다. 러시아는 제 國民을 奴隸로 아는 前提君主國임을 自負하면서 高宗에게 따라하라고 勸했다는 걸 젊은 李承晩이 알고 있다는 게 되레 놀랍다. ‘前提(專制)나 壓制(壓制)나 위에서 하시기에 달려 있는데 어찌 百姓이 敢히 相關하겠는가…아라사는 專制政治로써 天下의 强國이 되어 萬國이 다 두려워하는 바이니 우리를 단단히 依支하면 日本이 敢히 어찌할 수 없을 테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將次 큰 禍를 當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다’(현재 俄羅斯-蘇聯-러시아를 따라가는 나라가 北朝鮮 金氏 王朝 아닌가! ).李承晩은 專制政治의 源流로 臺(大) 피득(표트르 大帝·在位 1682~1725)도 紹介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大統領이 歷史的 멘토로 삼는 人物이다. 그가 남긴 14條目의 祕密遺書엔 弱小國家를 뺏어오는 祕法이 담겨 있다. 剛한 나라와 먼저 힘을 合해 작은 나라를 나누어 없애고 그 後에는 틈을 타서 그 나라를 마저 쳐 없애며, 自由하는 나라에는 婚姻이나 結緣을 통해 먼저 內定을 干涉하여 權利를 主張하라는 거다. 이오시프 스탈린 蘇聯共産黨 書記長이 2次 世界大戰 뒤 어떻게 東유럽을 蹂躪했는지, 韓半島 北쪽에 얼마나 서둘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는지 돌아보라. 푸틴이 일으킨 2次 大戰 以後 유럽 最大의 戰爭 우크라이나 侵攻事態度 마찬가지다. 뼛속 깊이 박힌 俄羅斯의 領土 野心, 專制政治 DNA는 蘇聯共産黨이 무너졌음에도 決코 사라지지 않았던 거다. ● “共産主義 따르는 政治는 반드시 失敗”1917年 蘇聯共産黨 政府가 들어서자 李承晩의 反러鑑定은 反共思想으로 바뀌기 始作했다. 李承晩은 共産主義를 ‘元來 자유롭게 되기를 願하는 人間의 本性을 거역해가며 國民을 支配하려는 思想體系’로 看做했고 共産主義 理念을 따르는 政治는 반드시 失敗할 것이라고 壯談했다(홍용표 2007年 論文 ‘現實主義 視角에서 본 李承晩의 反共路線’). 臨政 國務總理 李東輝가 蘇聯과 連帶할 것을 主張할 때도 李承晩은 “蘇聯과의 協力은 曺國을 共産主義 國家의 奴隸로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論理로 反對했다. 李承晩이 1941年 日本의 美國 侵略 野慾을 暴露한 ‘Japan Inside Out’에서 蘇聯 共産主義를 獨逸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日本 軍國主義와 나란히 全體主義로 分類한 것은 重要하고도 意味 있다. 그때만 해도 世界는 共産主義에 對한 幻想에 빠져 있었고 蘇聯은 自己네 實狀을 감추고 있던 時期여서다. 李承晩은 ‘民主主義 代(對) 全體主義’ 章에서 ‘蘇聯, 日本, 나치스, 파시스트 勢力들은 自己들 政府와 같은 새 政府를 設立하기 위해 美國 政府를 전복시키겠다는 意圖를 宣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美國 民主主義에 對한 直接的인 挑戰임에 疑心의 餘地가 없다’고 썼다. 그리고 ‘韓國의 運命은 世界의 自由民들의 運命과 分離될 수 없다’며 美國의 猛省을 促求했다.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이 就任 初부터 强調했던 ‘民主主義 代 權威主義의 對決’을 聯想시킨다. 李承晩은 그만큼 世上을 앞서간 人物이었다.● 푸틴까지 이어지는 표트르대제-스탈린 遺産답답하게도 當時 美國 大統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蘇聯을 威脅으로 여기지 않았다. 聯合國 英國 總理 윈스턴 처칠이 “問題는 러시아”라며 가슴을 쳤지만 루스벨트는 마지막 瞬間까지 스탈린이 合理的인 人間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주면서 아무것도 要求하지 않았다(박지향 2023年 著書 ‘윈스턴 처칠, 運命과 함께 걷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300通 以上의 메시지를 分析한 ‘MY Dear Mr. Stalin‘이라는 冊도 있을 程度다. 징그럽지 않은가. 또 美國 大統領이 될까 겁나는 트럼프가 過去 北韓 김정은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처럼. 目的을 위해선 手段方法을 가리지 않는 共産主義의 本質을 꿰뚫어 봤기에 李承晩은 美國이 要求한 左右合作 政府 樹立을 斷乎히 拒否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면 다 똑같은 줄 알고 美國은 東유럽에, 中國과 우리에게 左右合作을 限死코 勸했던 것이었다. 美國과 蘇聯 願하는대로 左右合作에 나섰다가는, 폴란드처럼 亡命政府는 排除되고 民主 指導者들은 追放되거나 處刑되고 結局 親蘇 傀儡政權이 들어설 게 뻔했다. 白凡 金九는 몰랐고 李承晩은 꿰뚫어 봤던 點이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蘇聯 共産主義가 網하고도 共産全體主義 屬性은 사라지지 않았다. 알렉세이 나발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大統領의 靜寂이 17日 矯導所에서 服役 中 急死했다. 47歲. 푸틴 獨裁에 勇猛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抗拒해온 나발니는 러시아 自由의 象徵이었다. 푸틴에게 叛亂을 일으켰던 傭兵企業 首長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昨年 8月 突然 飛行機 事故를 當한데 이어 나발니까지 목숨을 뺏긴 거다. 1940年 地球 反對便 멕시코까지 刺客을 보내 政敵 레온 트로츠키를 殺害했던 스탈린처럼, 푸틴이 멘토로 모시는 待避得처럼, 푸틴도 前制定-共産全體主義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形局이다. 어쩌면 푸틴 以後 또 다른 支配者까지도. ● 李承晩 初代 大統領이 아니었다면… 多幸히도 우리는 ‘韓國的 民主主義’ 亡靈에서 벗어났다. 우리끼리는 “이게 나라냐” 또 “이건 나라냐” 不滿을 터뜨려도, 野黨이 ‘檢察獨裁’라고 목청을 높여도, 大韓民國은 世界人口의 7.8%만 經驗하는 ‘完全한 民主主義’ 속에 사는 나라다. 英國 이코노미스트 傘下機關 EIU가 15日 發表한 ‘2023年 民主主義 指數’ 報告書에 나온다. 167個國을 完全한 民主主義(8點 以上), 缺陷이 있는 民主主義(6點 以上), 混合 體制(4點 以上), 權威主義 體制(4點 以下)로 分類했는데 韓國은 22等이지만 아시아에선 5個國 밖에 없는 完全民主다(뉴질랜드, 臺灣, 濠洲, 日本, 다음이 우리^^). 民主主義 맹주국이어야 할 美國도 完全치 못하다(결함민주). 한때 우리처럼 ‘아시아의 네 마리 龍’이었으나 卓越한 支配勢力 德에 우리보다 훨씬 잘살고 있는 싱가포르도 缺陷民主다(그게 더 나을까?). 世界 人口의 3分의 1程度만 러시아를 非難하거나 西方에 同調하는 國家에 살고 있지, 나머지는 中立 아니면 甚至於 러시아를 支持하는 나라에 산다. 옛날부터 만만한 나라는 侵略하고, 批判者는 죽이고, 權力者는 腐敗한 무서운 나라인데도. 남의 나라 恨歎할 때가 아니다. 北韓은 權威主義 體制라는 말도 아깝고 안타깝다. 165等. 꼴찌에서 세 番째다. 우리에게 李承晩 大韓民國 初代 大統領이라는 人物이 없었다면, 只今의 우리는 全體主義 獨裁國家 北朝鮮처럼 됐을 公算이 무섭게 크다(‘눈 떠보니 北韓’이라고 想像해보셔요. 얼마나 끔찍한지). 그것만으로도 偉大한 建國 大統領 李承晩을 推仰할 理由는 充分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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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우리는 이미 ‘祖國의 바다’에 빠져 있다

    ‘文在寅 靑瓦臺’ 祕書室長 任鍾晳은 抑鬱하겠다. 더불어民主黨 임혁백 公薦管理委員長이 公薦 不適格者로 ‘尹錫悅 檢察政權 誕生에 原因을 提供한 분들’을 指目했다. 當場 尹錫悅 檢察總長 任命과 不動産政策 失敗에 責任 있는 門 政權 사람들을 뜻한다는 解釋이 나오면서 任鍾晳이 公薦을 못 받게 생겼다. 不動産政策 失敗에 責任을 물어야 한다는 指摘엔 同意한다. 하지만 尹 總長 任命을 尹 政權 誕生의 原因처럼 指目하는 건 억지스럽다. 只今의 尹 大統領은 2019年 7月 總長 任命 當時 文 大統領한테 ‘우리 總長님’ 소리까지 들으며 ‘살卷數’(살아 있는 權力 搜査)를 督勵받았던 사람이다. 오히려 曺國 前 法務部 長官이 尹 政府 誕生의 一等功臣이라 해야 옳다. 2021年 알앤써치의 門 政權 國政 評價調査에서도 가장 큰 實情으로 꼽힌 것이 不動産政策(41.8%), 두 番째가 曺國 長官 任命(10.2%)이었다. 2019年 8月 大統領이 曺國을 長官으로 指名하지 않았다면, 檢察總長이 政權에 ‘挑戰’하고 野黨 大選 走者로 뜨는 일은 없었을 公算이 크다. 어쩌면 自稱 社會主義者 曺國이 政權 再創出에 成功해 現在 大統領으로 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曺國 事態’가 韓國社會에 끼친 餘波는 政權을 뒤집을 만큼 크고도 깊다. 첫째는 이른바 進步의 沒落을 몰고 왔다는 點이다. 江南 左派를 自處했던 曺國은 道德性을 코에 걸었던 進步의 僞善을 부끄럼 없이 露出했다. 大統領 職務遂行 肯定率도 法務部 長官 任命-辭退를 거치면서 就任 後 처음 30%臺로 내려갔다. 2019年 ‘서울大人 曺國 辭退 促求’ 集會를 主導했던 國民의힘 김근태 議員은 “曺國 事態가 政權交替의 始發點”이라고 했다. “나는 進步”라는 應答도 彈劾 局面인 2017年 1月 37% 最大値에서 내려오기 始作해 尹 總長이 辭退한 2021年 4月 26%로 “나는 保守”와 同率을 記錄했다. 2023年 現在 우리 國民의 主觀的 政治 性向은 保守가 30%, 進步가 26%다. 86運動圈그룹의 僞善的 道德主義를 鮮明하게 보여준 이도, 그리하여 86 淸算 要求를 불러온 이도 祖國으로 봐야 한다. 平等과 公正, 正義와 改革을 말하면서 自己 딸은 外高에서 高麗大 理科系列로, 釜山大 醫學專門大學院으로 보낸 내로남不의 끝판王이 조국이었다. 이 事實이 알려지자 “나의 進步的 價値와 아이의 幸福이 衝突할 때 結局 아이를 위해 讓步하게 되더라”고 발뺌한 적도 있다. 2011年 칼럼에서 이를 指摘하자 그는 “내 속의 ‘僞善’과 ‘言行不一致’를 고치려고 努力할 것이나 東亞의 攻擊에 萎縮될 생각은 없다”고 트위터로 나의 ‘低級哲學’을 非難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僞善과 言行不一致는 날로 심해졌음이 ‘尹錫悅 檢察’을 통해 드러났다. 虛僞 인턴십 確認書와 僞造 奉仕表彰狀 等 子女 入試非理로 그는 最近 2審에서 懲役 2年의 有罪를 宣告받았다. 假짜 證明書까지 만들어 딸에게 地位를 물려주는 ‘世襲 資本主義’의 醜惡한 罪惡을 恣行하고도 2016年 ‘財(再)封建化의 時代, 正義를 말한다’란 講演에서 “내 父母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 努力의 結果가 決判 나는 것이 우리 社會의 가장 根源的 問題”라고 强調했던 强心臟이 놀랍다. 둘째, 曺國은 大入制度까지 바꿔 놨다. 돈으로도 만들 수 없는 그들만의 스펙 쌓기가 ‘엄빠(엄마 아빠) 찬스 階級’에선 可能하다는 事實을 露出하면서 ‘大入 公正性 强化 方案’李 拙速으로 發表돼서다. 鄭蓍는 擴大되고 學生簿 等 非敎科 活動, 自己紹介書가 廢止되자 2018年까지 20兆 원 아래였던 私敎育費도 急增했다. 2019年 21兆 원에서 2022年 無慮 26兆 원이 됐다. 살림은 더욱 팍팍해졌고 修能까지 어렵게 나오면서 國民 心性까지 破壞되는 形局이다. 셋째, 曺國 餘波로 理念葛藤도 極甚해졌다. 韓國社會葛藤解消센터와 韓國리서치의 ‘2019 韓國人의 公共葛藤 意識調査’에서 88.4%가 ‘保守와 進步 間 葛藤이 深刻하다’고 答했다. 地域·世代·貧富·勞使葛藤을 제치고 理念葛藤이 가장 深刻한 問題로 登極하면서 陣營에 따라 人間關係도, 事實關係도 달라지는 常識 破壞, 價値觀의 顚倒 現象이 極甚해졌다. 左派 政治人은 勿論 知識人까지 曺國의 犯罪 아닌 檢察 搜査를 攻擊하며 ‘檢察 쿠데타’라고 主張한다. 李在明 民主黨 代表처럼 裁判 中이어도, 曺國처럼 有罪 宣告를 받고도 泰然히 出馬하고, 新黨 創黨에 나서 大法院 判決 때까지 國民 위에 君臨하려 든다. 罪를 짓고도 “모른다” “떳떳하다”며 오리발 내미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曺國이 끼친 影響 때문에 우리는 이미 ‘祖國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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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매정하지 못한 大統領 夫婦… 國民에게는 왜 그리 매정한가

    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大統領 夫人 김건희 女史의 名品백 疑惑 事件에 對한 尹錫悅 大統領의 認識이다. 大統領은 7日 錄畫 放送된 KBS 特別對談에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問題라면 問題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좀’이 아니라 많이 아쉽다. 對談 다음날 동아일보 社說 題目이기도 하지만(윤 大統領 新年 錄畫對談, 內容도 形式도 ‘많이 아쉽다’) 무릇 뭇사람들이 잔뜩 期待를 걸고 있는 일을 벌일 때는 ‘떡 하나 더’가 아니라 過할 만큼, 그러니까 期待를 뛰어넘는 膽大함을 보여줘야 成果가 나는 法이다. 朝鮮第一의 사랑꾼으로 소문난 이가 프로포즈를 하면서 膳物을 내민다면 相對方의 期待값에 0을 하나 더 붙여줘야 感動 이벤트가 된다. 짠돌이 膳物이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두어 달間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對한 大統領의 最初 言及 아닌가. 밤 10時부터 TV對談을 보며 이제나 저제나 목 빼고 기다린 國民을 생각한다면, 大統領은 듣는 이의 마음을 좀더 配慮했어야 옳았다. ● “拍節하기 어렵다”세 番이나 言及 그럼에도 “大統領이나 大統領 夫人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迫切하게 對하기는 참 어렵다”는 前提부터 깔고 尹 大統領은 始作했다. 拍節(迫切)하게. 國語辭典에 따르면 ‘人情이 없고 쌀쌀하게’라는 요즘 듣기 쉽지 않은 單語를 세 番이나 言及한 것도 特異하다. 1時間 34分 進行된 對談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린지 無慮 53分이 지난 다음이었다. “제 아내가 中學校 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셔가지고 아버지와의 同鄕이고 뭐 親分을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앵커 “房門을 接近했던”) “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거기에다가 또 저도 마찬가지고 大統領이나 大統領 夫人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迫切하게 對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官邸에 있지 않고 이렇게 私邸에 있으면서 또 地下 事務室도 있고 하다 보니까 자꾸 오겠다고 하고 해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問題라면 問題고 좀 아쉽지 않았나…” 앵커가 與黨에선 政治工作의 犧牲者라고 하는데 同意하느냐고 묻자 尹 大統領은 “政治工作으로 봐야죠” 하면서도 “政治 工作이다라고 하는 게 重要한 게 아니고…” 라고 했다. 그럼 政治工作에 當했다는 게 重要한 게 아니라 大統領 夫人의 處身의 重要하다는 말씀? “迫切하게까지야 누구를 對해선 안 되겠지만 조금 더 분명하게 좀 斷乎할 때는 斷乎하게 線을 그을 때는 線을 그어가면서 處身을 해야 되겠다는 그런 것”이라니 迫切하게 하겠다는 건지, 하지 않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再發 防止를 위해 特別監察官과 第2附屬室 設置 計劃을 묻는 質問에도 尹 大統領은 또 ‘拍節’을 言及했다. “第2附屬室이 있었더라도 제 아내가 내치지 못해 가지고 자꾸 오겠다고 하니까 事實上 通報하고 밀고 들어오는 건데 그거를 迫切하게 막지 못한다면 제2부속실이 있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 賂物 拒絶한 公職者는 매정閑暇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거다. 아, 尹 大統領과 夫人은 迫切하지 못한, 참 人情 많고 多情한 사람들이구나. 大統領은 “그 이슈 가지고서 夫婦싸움을 했느냐”는 質問에도 “全혀 안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 金 女史는 複道 많은 사람이구나. 보통의 公職者 夫婦라면 金英蘭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違反 같은 問題가 터지면 夫婦싸움이 일어나는 게 正常이다. 設令 夫婦싸움을 안 했더라도 그 밤中에 TV를 지켜보는 國民을 생각한다면 大統領은 “國民이 걱정할(실은 매우 失望할) 일이 벌어져 아내에게 싫은 소리 좀 했다” 程度는 말해야 마땅하다. 或如 나중에 法的 問題가 벌어질까 憂慮해 大統領이 ‘遺憾’ ‘謝過’ 같은 單語를 입 밖에 내지 못할 순 있다. 그럼에도 나라를 뒤집어놓은 일을 벌여놓고도 大統領 夫婦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건, 그들은 多情했는가 몰라도 國民에겐 참 매정한 소리다. 國民感情은 全혀 考慮하지 않는 共感能力 빵點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朝鮮第一의 사랑꾼 아닌 ‘朝鮮第一의 퐁X南’ 소리까지 나오는 거다. 結局 金 女史는 史跡 親分으로 만남을 要請한 親北 性向의 牧師 崔某 氏를 迫切하게 拒絶하지 못했고, 그가 놓고 간 ‘이른바 파우치 外國 會社 그 조그마한 백’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問題일 뿐이다. 迫切하게 말한다면, 私的 因緣으로 밀고 들어오는 不透明한 訪問者를 拒絶하거나 자그만한 파우치든 큰 名品백이든 賂物 絶對 안 받는 公職者와 그 夫人만 매정한 사람인 셈이다.● 金 女史에게는 누구도 迫切할 수 없다 大統領室 參謀陣이 마련한 豫想 質問과 答辯地를 參考했다면, 尹 大統領이 絶對 이렇게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메모 한 張 없이 對談에 臨한 大統領은, 卽 누구의 助言도 듣지 않는다는 事實을 드러냈기에 더욱 걱정스럽다(앗, 金 女史 빼고). 甚至於 尹 大統領은 “개고기食用禁止法案 말고도 金 女史와 다른 事案에 對해서도 많이 論議하느냐”는 質問에 “그래도 比較的 아내하고 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便”이라고 分明히 밝혔다. “늦게 들어와 일찍부터 일하고 하다 보니 對話를 많이는 못 합니다마는”하면서도 굳이 아내와 國政을 많이 論議한다는 事實을 털어놓다니, 이 또한 第2附屬室 設置 要求 輿論에 神經쓰지 않는 매정한 答辯이다.국민이 걱정하는 것은 金 女史가 政治工作에 걸려 親北 性向 牧師가 놓고간 ‘자그마한 파우치’를 두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大統領 夫人의 動線과 豫算 等을 國會가 監視할 수 있는 第2附屬室 設置는 ‘檢討’만 하는 사이, 金 女史는 南北問題에 積極 나서겠다는 式으로 强한 國政 介入 意志를 보이는 것이 두렵고 우려스러운 거다. 國民의힘 한동훈 非常對策委員長度 이 問題는 여기서 끝낼 雰圍氣인 걸 보면, 金 女史를 制御할 힘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尹 大統領은 어떤 大統領으로 記憶되고 싶으냐는 質問에 “어린이를 많이 아낀 따뜻한 大統領으로 記憶되고 싶다”고 答했다. 안타깝게도 只今까지의 大統領 모습은 과히 따뜻하지 않다. 어린이들은 많이 아끼는지 모르겠으나 野黨에는 勿論 尹核關이 아닌 與黨 사람들, 慘事 犧牲者들의 家族, 甚至於 言論社 記者들에게도 매정하기 그지 없다. 新年會見 代身 미루고 미루다 마련된 이番 特別對談은 모처럼 大統領의 통 큰 모습을 보여줄 機會였다. 그걸 아쉽게도 尹 大統領은 迫切하게 넘겨버렸다. 김순덕 칼럼니스트·拷問 dobal@donga.com}

    •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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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李在明의 大統領 같은 新年會見

    어제 新年 記者會見을 연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는 堂堂하고 自信滿滿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다”며 모두 發言을 始作할 때는 餘裕가 넘쳤다. 尹錫悅 大統領은 2022年 8月 就任 100日 記者會見을 한 以後 昨年에도, 올해도 新年會見을 마다하는 狀況이다. 記者들을 限死코 避하는 尹 大統領과 對比되면서 오히려 李在明이 大統領 같은 모습이었다. 質問도 보드랍고 恭順했다. 昨年 新年會見 때 11個 質問 中 6個나 됐던 ‘司法 리스크’ 關聯 質問은 나오지 않았다. 選擧制에 對한 質問에 李在明이 “意見 收斂 中”이라며 넘어가도 “李 代表가 準聯動型 比例代表制를 公約했다 竝立形으로 方向을 틀지 않았느냐”며 다시 캐묻는 일 따위도 없었다. 이렇게 쉬운 新年會見을 尹 大統領은 왜 限死코 忌避하는지 안타깝다. 大統領 記者會見 같은 모습은 그러나 거기까지다. 李在明은 昨年에 했던 政府 批判을 거의 反復했다. 昨年 會見에선 “어려운 經濟 狀況에 安保 慘事까지 더해지면서 ‘코리아 리스크’가 全面化되고 있다”며 暴力的 國情과 政敵 죽이기 中斷을 要求했는데 올해는 低出生과 民主主義를 追加해 大韓民國이 4代 危機에 處했다고 指摘했다. 尹錫悅 政府가 지난 2年間 政敵 죽이기에만 올인해 나라를 危機로 몰아넣었다는 診斷이다. 尹 大統領의 國政 運營에 다 拍手를 치긴 어렵다. 그러나 李在明 죽이기에만 汨沒해 低出生 危機까지 왔다는 소리는 삶은 소대가리가 仰天大笑할 自己中心的 分析이다. 甚至於 極端的 政治를 끝낼 수 있는 腹案을 묻는 質問에 李在明은 “저에 對한 所謂 暗殺 試圖, 政治 테러가 個人에 依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大統領이) 權力을 相對를 죽이는 데 使用하게 되니까 國民들도 그에 맞춰서 좀 더 激烈하게 分裂하고 葛藤하고 敵對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日 李在明이 釜山 加德島에서 當한 不意의 襲擊이 尹 大統領 責任이라는 臆測까지 불러일으키는 發言이다. 勿論 그의 말대로 “現實을 바꾸는 첫 出發點은 統合의 責任을 가진 權力者가 統合의 責任을 다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개딸(改革의 딸들)이라는 殺伐한 李在明 팬클럽의 그악스러운 行態가 民主黨과 나라를 葛藤과 分裂로 몰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悲鳴(非李在明)系 議員 地域區에 “銃알 한 발이 있다면 處斷할 것”이라는 脅迫 懸垂幕까지 내걸었는데도 李在明은 傍觀했다. 李在明 自身의 얄팍하고 偏狹한 認識과 ‘사이다 發言’李 나라와 國民과 甚至於 同盟까지 찢어놓을 地境임을 本人만 모르는 척한다. “大邱·慶北이 代理人들을 支配者로 여기면서 지배당한 側面이 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마지막으로 가는 게 택시(運轉)” “韓美日 聯合訓鍊을 핑계로 自衛隊의 軍靴발이 다시 韓半島를 더럽힐 것”, 甚至於 最近엔 “우리 北韓의 김정일, 또 김일성 主席의 努力이 貶毁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 等等 귀를 疑心케 하는 發言을 한 사람이 李在明이었다. 어제 低出生 對策이라며 發表한 ‘出生基本所得’도 괜한 社會 葛藤을 일으킬 素地가 크다. 지난해 經濟 解法이라던 基本住居, 基本金融의 延長인데 韓國國會學會 主催 2022年 學術會議에서 ‘20代 大選에서 李在明 候補의 選擧 戰略과 失敗要因’으로 大庄洞 非理 疑惑 等 信賴性 墜落에 이어 두 番째로 꼽힌 敗北 理由가 國民 情緖에 안 맞는 基本所得制 公約이었다. 이番엔 大學 敎育費까지 支援하겠다며 私立大 登錄金을 國公立大 水準으로 낮추고 長期的으로는 大學敎育 無償化를 推進하겠다니 차라리 民主黨 黨命이나 衛星政黨을 ‘基本민주당’으로 하라고 勸하고 싶다. 京畿道知事 法人카드로 소고기와 點心 샌드위치까지 알뜰하게 챙겨 먹었다는 公共貴族 一家가 國民 血稅는 마구 걷어 누구 맘대로 퍼주겠다는 건가. 黨 代表 1年 半 동안의 成果를 묻는 質問에 李在明은 “제 自身이 評價하기는 適切치 않다”고 모처럼 맞는 말을 했다. 민주당이 ‘李在明 防彈’ 말고 또 뭘 했는지 암만 머리를 쥐어짜도 모르겠다. 李在明은 大統領을 겨냥해 ‘權力 私有化’를 批判했다. 그러나 민주당 公薦管理委員會를 비롯한 要職에 自己 사람을 꽂아 넣고, 公薦 審査 5個 項目에서도 ‘飮酒運轉’은 쏙 빼놓아 自己만 살겠다는 式으로 ‘黨 權力 私有化’를 하는 黨 代表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고도 總選 結果가 말해줄 것이라며 151席 過半席을 期待하는 强心臟이 놀랍다. 野黨 代表 新年會見에 꽉 막힌 心臟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尹 大統領이 鎭靜 大統領다운 新年會見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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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尹 大統領은 왜 國民을 이기려 드는가

    ‘約束 對鍊’ 이었으면 좋겠다. 跆拳道나 劍道에서 兩側이 事前에 約束한 方法으로 攻擊-防禦해서 技術을 硏磨하는 것. 李官燮 大統領祕書室長은 21日 國民의힘 한동훈 非常對策委員長을 만나 辭退하라는 尹錫悅 大統領의 뜻을 傳했고, 한동훈은 “國民 보고 나선 길”이라며 拒否해 한放씩 주고받았다. 新聞없는 日曜日 인터넷版이 발칵 뒤집혔다. 大統領祕書室長이 白晝대낮에 執權黨 代表를 만나 “그만두라”는 大統領 말을 傳했다고? 안 그래도 垂直的 黨政關係가 問題여서 隱密히, 쥐도 새도 모르게 作業해도 모자랄 판에 院內代表까지 같이 만났다고? 이 程度면 國民들(한동훈 表現에 따르면 ‘同僚 市民’) 다 보고 듣고 아시라고 대놓고 저지른 擧事가 아닐 수 없다. 甚至於 다음날인 22日 尹 大統領은 豫定됐던 民生討論會에 30分 前 搖亂하게 不參을 通報했다. 感氣 기운 때문이라지만 德分에 한동훈은 選民後嗣(先民後私) 政治人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尹 大統領은…선처후민(先妻後民)으로 지질하게 찍힐 수도 있겠으나 미리 짠 約束 對鍊이면, 犧牲과 獻身의 大統領이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말만 안 했을 뿐. ● 6·29를 돋보이게 해준 ‘4·13 護憲’1987年 노태우의 6·29 宣言이 革命的으로 보였던 것은 전두환 當時 大統領의 ‘4·13 護憲’ 特別談話가 있어서라 해도 過言이 아니다. 可當치 않은 比喩라는 것, 안다. 하지만 하도 ‘한동훈의 6·29’를 苦待하는 이들이 많아 되돌아보자는 거다. 當時 신민당의 穩健 代表 이민우는 全斗煥이 띄운 內閣制 改憲論에 솔깃해 있었다. 이에 김영삼 김대중 兩金 氏가 憤氣撐天 脫黨해 混沌의 創黨 정국이 이어졌다. 全斗煥이 4月 13日 “改憲 論議 留保, 現行 憲法으로 年內 大選 實施”를 發表하자 野圈은 “長期執權 陰謀”라며 激烈히 反撥했다.마침내 6月 16日 전두환은 ‘直選制 改憲 要求 完全受容’의 決心을 굳혔다고 回顧錄에 썼다. 그러자 그間 잠 못 이루며 苦心했던 일이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限없이 평화스러워지는 氣分이었다고 했다. 이런 全斗煥의 脚本에 노태우는 “제가 直選制 受容을 包含한 民主化措置를 建議 드리면 閣下께서는 크게 怒해서 호통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效果가 있겠다”고 말했다(전두환은 卽答하지 않았다). ● 民生보다 金 女史가 그리 重한가6·29와 4·13을 굳이 쓰는 理由는 좀 苟且하다. 尹 大統領도 그러지 않았을까 믿고 싶어 全斗煥 回顧錄을 들여다 본 거다(영화 ‘서울의 봄’李 떠올라 또 굳이 밝히자면, 政權을 어떻게 잡았는가와 執權 後 어떻게 成果를 올렸는가는 따로 評價해야 한다고 본다). 大統領이 한동훈에게 온 國民 다 알게 “관두라”고 외치고, “國民 보고 나왔다”는 한동훈의 한 放을 먹는 約束大連을 펼침으로써, 말하자면 4·13 護憲 宣言 같은 惡役을 自處함으로써 한동훈에게 自身을 밟고 가는 모습을 만들어준 게 아닌가 믿고 싶은 거다. 그랬다면 마음도 限없이 평화로워졌을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不吉하다. 전두환은 그래도 憲法을 지키기 爲해 護憲宣言을 했던 것이었다. 尹 大統領은 무엇을 지키겠다고 있어선 안 될 黨務 介入 疑惑까지 일으킨단 말인가. 설마 否認 김건희 女史가 憲法보다 重하다는 意味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金 女史가 大統領에게 民生보다 重한 것은 分明하다. 22日 尹 大統領이 빼먹은 國政 行事가 何必 ‘國民과 함께 하는 民生 討論會’였다. 尹 大統領이 “첫째도 經濟(民生), 둘째도 經濟(民生), 셋째도 經濟(民生)”이라며 海外巡訪도 民生에 力點을 뒀다고 强調한 게 한두 番이 아니다. 그런데 大統領이 코로나도 아닌 感氣 기운에 民生討論會를 빼먹었다고?? ● 이순자 女史는 靑瓦臺 生活 點檢했다김 女史는 2022年 6月 서울 연희동으로 이순자 女史를 訪問해 90分間 머문 적이 있다. 짧지 않은 時間, 무슨 對話를 나눴는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李 女史도 40代 初盤의 젊은 나이에 便치만은 않은 令夫人 役割을 했다. 檀君 以來 最大 어음詐欺라던 李哲熙-장영자 事件이 터진 것이 1982年, 전두환 執權 2年次였다. 張玲子는 李順子의 작은아버지의 妻弟다. 그는 “事實上 나도 生面不知나 다름없는 한 女子의 大膽한 詐欺行脚의 被害者”라고 回顧錄에 썼지만 事件이 終結되고 나서도 고슴도치처럼 온 몸에 非難을 받아야 했다. ‘큰 손’으로 온갖 不道德한 奢侈와 利權에 介入하는 女子. 貪慾으로 가득 찬 權力型 不淨腐敗의 溫床…. 그래서 “大統領 任期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따로 헤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男便에게 말했다고 回顧錄에 썼을 程度다(2017년 ‘當身은 외롭지 않다’). 그 아픔을 겪으면서 李 女史는 靑瓦臺 生活을 點檢했다. 于先 周邊에 正直한 忠告를 付託했더니 한참들 망설이다 ‘사치스럽고 나서기를 즐겨하는 權力 志向型의 女子’로 보인다고 말해주더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自身이 봐도 拒否感이 생길만큼 TV에 자주 登場했다. 컬러TV 初期여서 韓服에 金箔을 박아 입었는데 너무 華麗해 보이기도 했다. 조용히 公報首席을 만나 付託했다. “行事 參席 回數를 줄이고, 不得已 參席하면 TV畵面에 내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神經써달라”고. ● 國民 離間질 大統領室도 問題다현 大統領室엔 民政(民情)이 없다. 그렇다면 參謀陣 하나하나가 민정이 돼도 모자랄 판에 衷心만 가득해 悲劇이다. 大統領室은 “大統領 夫婦에게 接受되는 膳物은 大統領 個人이 收取하는 게 아니라 關聯 規定에 따라 國家에 歸屬돼 管理, 保管된다”며 金 女史의 純潔無垢함을 防禦하긴 했다. 헹. 大統領 官邸의 伴侶犬 토리가 웃는다. 그럼 尹 大統領은 왜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이 膳物한 선글라스를 國家에 歸屬해 管理, 保管하지 않고 自身이 쓰고 다니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大統領 夫婦와 國民을 離間질하는 參謀가 바로 細作 같다. 眞心 大統領과 나라를 생각하는 祕書室長이면, 大統領이 “그만 두라”고 傳하라고 할 때 “그건 아닙니다” 해야 하는 것 아닌가.윤 大統領에게 가장 所重한 것은 民生도, 法治도, 우리나라도 아니다. 오직 하나, 令夫人뿐임을 온 世上이 알아버렸다. 참 大統領답지 않다. 우리가 期待했던 尹 大統領답지도 않다. 몰래카메라 不法撮影은 그것대로, 法대로 處罰하면 된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한다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우리는 다만 , 뻑하면 ‘激怒’만 하는 大統領이 國民에게는 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前任 政權에선 살아있는 權力 앞에 굽히지 않던 사람이었다. 왜 龍山-한남동 九重宮闕에 들어간 다음엔 國民을 이기려고만 드는가. 김순덕 칼럼니스트·拷問 dobal@donga.com}

    •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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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한동훈은 切迫하지 않다

    國民의힘 한동훈 非常對策委員長이 指名된 지 사흘 뒤면 한 달이다. ‘汝矣島 文法’에 맞춰 三顧草廬 하는 演出을 안 했던 건 산뜻했다.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와 개딸 全體主義, 運動圈 特權勢力 暴走를 막겠다”며 가는 데마다 8度 사나이의 親和力을 보인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三七日이면 檀君神話 속 곰이 쑥과 마늘만 먹으며 禁忌를 지키다 사람으로 變할 수 있는 時間이다. 意味 있는 三七日이 지났는데도 한동훈은 政府與黨에 失望한 民心을 돌리진 못하는 形局이다. 한 달 前보다 國힘 支持率(36%)도 높이지 못했고 4月 總選 政府 牽制論(35%)도 못 줄였다(갤럽 調査). 勿論 政治改革案을 연달아 내놓긴 했다. 하지만 熾烈한 苦悶의 痕跡이나 政治的 想像力은 보이지 않는다. 歸責 時 再補闕 無公薦 方針은 改革案이 아니라 謝過를 하며 밝혔어야 마땅했다. 不逮捕特權 抛棄, 禁錮刑 以上 議員의 裁判 中 歲費 返納, 議員 定數 減縮安堵 人요한 革新委員會에서 勸告案으로 이미 發表한 內容이다. 그만큼 한동훈이 切迫하지 않다는 얘기다. 5年 前 민주당의 싱크탱크 民主硏究院에선 ‘總選 勝利 3代 法則’李 革新公薦, 未來비전, 그리고 切迫함이라는 政策 브리핑을 내놨다. 公薦 잘하고, 單純한 陳永 審判論이 아닌 未來 公約을 내놔야 한다는 건 當然하다. 그보다 ‘이기기 위해선 못 할 게 없다’는 切迫함이 있어야만 勝利한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共有했다는 게 重要하다. 그래서 文在寅 政權은 2020年 4·15總選 前 所得 下位 70% 코로나 災難支援金 支給을 發表하고도 選擧 이틀 前엔 與黨 院內代表가 “(서울 廣津乙) 高旼廷 候補를 당선시켜 주면 100% 國民 모두에게 緊急災難支援金을 드리겠다”며 露骨的인 現金 撒布 作戰까지 외쳤던 거다. ‘尹錫悅 아바타’ 소리까지 듣는, 甚至於 民主黨에서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 하는 한동훈을 國힘이 非對委員長으로 迎入한 것은 그의 個人技 때문만은 아니었다. 大統領의 ‘버럭’李 무서워 아무도 못 하는 ‘고양이 방울 달기’를 한동훈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을 터다. 國힘의 아킬레스腱은 大統領과의 垂直的 關係다. 特히 總選 公薦에서 龍山 입김을 막고 ‘令夫人 리스크’ 解決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적잖은 이가 期待했다. 大統領 職務遂行 肯定 評價가 33%, 不定 評價가 59%인 1月 둘째 週 갤럽 調査에서 不定 評價 理由 두 番째가 ‘(김건희) 特檢 拒否權 行使’였다. 尹 大統領이 밤낮으로 외쳐도 나아지지 않는 ‘經濟·民生·物價’ 다음일 만큼 深刻하다. 總選 結果는 大統領 支持率에 따라 달라진다. 한동훈은 “9回末 2아웃 2스트라이크面 願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後悔 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打席에 들어섰다. 그런데 後悔 없이 휘두르기는커녕 벌써부터 ‘大統領 死因’에 도리도리하는 모습이다. 昨年만 해도 “法 앞에 例外는 없어야 한다. 國民 보기에도 그래야 한다”며 總選 後 特檢論을 披瀝했던 그다. 해가 바뀌자 ‘김건희 特檢’을 ‘도이치 特檢’으로 바꿔 말하며 特檢 反對를 밝힌 한동훈은, 시시하다. 尹 大統領의 ‘公正과 常識’은 무너졌다. 이젠 한동훈의 國힘이 무슨 公約을 내놔도 믿기 힘들 만큼 信賴가 흔들리고 있다. 國힘이 總選에서 敗해도 한동훈은 損害 볼 일 없을지 모른다. 훌훌 털고 辯護士 開業을 해도 前官禮遇로 數億 원臺 年俸을 챙길 수 있다. 海外 留學을 떠났다 2027年 大選 前 해맑은 얼굴로 돌아와도 大選 走者로 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多數 國民은 다르다. 國會가 非토크라시(vetocracy·反對만 하는 政治)에 휘둘려 尹錫悅 政府의 남은 3年을 虛費하면, 한동훈이 斬新하게 외쳤던 ‘同僚 市民’의 貴한 3年度 脈없이 浪費된다. 한동훈은 용산 아닌 國힘과 國民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즉생의 姿勢로 말했으면 한다. ‘雙特檢法’(김건희 女史 株價造作, 大庄洞 50億 클럽 疑惑 特檢)을 國會 재票決 할 境遇, 國힘은 堂堂하게 票決에 臨하겠다고 말이다. 就任 한 달 記者會見 자리에서 調査 時點을 總選 以後로 延期하자는 條件을 걸고 밝혀도 좋다. 2020年 10月 秋美愛 當時 法務部 長官으로부터 關聯 搜査指揮權을 배제당한 檢察總長의 指揮權을 풀어주도록 이老公 長官 職務代行에게 促求하는 方法도 있다. 한동훈이 예뻐서도, 大統領 夫人이 미워서도 아니다. 지난 大選 때 獨立運動 하는 心情으로 尹錫悅을 찍었던 多數 國民을 代身해 하는 말이다. 그리해 준다면 한동훈은 限死코 記者會見을 避하는 尹 大統領과 對比되면서 國힘은 勿論 終局에는 尹 大統領과 나라를 수렁에서 救한 政治人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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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戰爭 같은 政治라고? 多數 國民은 ‘中道派’다

    “相對를 죽여 없애야 하는 戰爭 같은 政治를 이제는 終熄해야 한다.”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가 10日 서울대병원을 나서면서 내놓은 첫 메시지다. 同意한다(그리고 快癒를 빈다). 그러나 文字 그대로만 보면 마치 李在明이 敵對的 政治人, 卽 政敵(政敵)에게 죽임을 當할 뻔한 것처럼 읽힌다.물론 李在明은 “이番 事件이 憎惡의 政治, 對決의 政治를 끝내고 서로 尊重하고 相生하는 政治를 復元하는 里程標가 되기를 所望한다”고 했다. 釜山警察廳 搜査 發表에 따르면 李在明을 襲擊한 殺人未遂 嫌疑者 金某 氏는 政治人이 아니라 民間人이다. 犯行을 敎唆한 背後勢力은 現在까지 없다고 警察은 發表했다. 12日 민주당은 警察 搜査가 縮小됐다며 ‘背後’를 徹底히 밝혀내라고 主張하고 나섰다. 李在明은 “事件을 契機로 우리 모두가 되돌아보고 저 亦是도 다시 한番 省察하겠다”고 했으나 省察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憎惡의 政治, 對決의 政治에 매달리는 건 政治人들이지 多數 國民이 아니라는 事實이다. 바쁜 讀者를 위해 이어질 內容을 세줄 要約하면 다음과 같다.① 政治的 兩極化는 巨大兩黨 問題다.② 强性支持層만 보는 政治는 解法 아니다. ③ 無黨派를 움직이는 건 結局 大統領이다.● ‘政治的 兩極化’는 政治人 問題憎惡의 政治에 對해 憂慮와 警覺心을 갖는 건 重要하다. 하지만 冷靜히, 客觀的으로 짚어볼 必要가 있다. 相對를 죽여 없애야 하는 戰爭 같은 政治, 卽 ‘政治 兩極化’를 政治學에선 理念 兩極化와 情緖 兩極化로 나눠 分析한다. 이 分類가 重要한 理由는 處方도 다르기 때문이다. 理念 兩極化란 單純히 保守와 進步로 나뉘는 게 아니다. 中道가 줄어들면서 保守集團은 더 保守的으로, 進步集團은 더 進步的으로 쏠리는 걸 뜻한다. 陣營 내 딴 목소리가 사라지고 忠誠心을 보여야 살아남는 巨大 兩黨 政治엘리트들이 여기 屬한다. 소금을 더 퍼부어 더 짠 소금물로 만들려는 只今의 민주당이다. 오죽하면 ‘原則과 常識’ 이란 모임을 만든 議員들이 뛰쳐 나왔겠나.하지만 그건 政治人들 얘기고 國民 次元에선 다르다. 有權者의 理念 兩極化가 成立되려면, 中道派와 無黨派가 줄면서 兩黨 支持度가 높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硏究 結果는 너무나 많다. 韓國行政硏究院이 2023年 펴낸 700쪽 넘는 經濟·人文社會 硏究會 協同硏究叢書 亦是 “有權者들의 理念性向 分布에서 左右 兩極端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21世紀 以後 치러진 다섯 次例의 大統領選擧 分析에서도 이념적 兩極化가 深化됐다고는 볼 수 없다는 硏究 結果다(건국대 김성연 敎授 2023年 論文 ‘韓國 有權者들의 이념적 兩極化와 黨派的 整列’). ● 中道-無黨派 有權者가 더 많다이는 갤럽 調査에서도 確認된다. 昨年 12月 調査한 昨年 末 有權者 政治性向을 보면 中道派(中道的+性向 留保)가 無慮 42%다. 스스로 保守的(32%), 進步的(26%)이라고 밝힌 數値를 훨씬 넘는다. 朴槿惠 彈劾 정국이었던 2017年 1月 中道가 36%(保守 27%, 進步 37%)로 唯獨 적었을 뿐, 2016~2022年 中道派는 45% 안팎이다. 이들은 無黨派와 좀 다르다. 無黨派는 支持政黨이 없다는 건데 갤럽 調査 結果 2023年 28%가 無黨派다. 2022年(22%)보다 늘었고 特히 18~29歲 無黨派는 37%→48%다. 中道派는 이들 無黨派+消極的 支持者 또는 反對者들로, 政策이나 사람 또는 狀況에 따라 黨을 바꿔 투표하곤 한다. 議員들이 每事 싸우는 것을 꼴 보기 싫어하는 普通사람들이 大槪 여기 屬한다. 앞서 ‘政治 兩極化’는 理念 兩極化와 情緖的 兩極化로 區分한다고 했다. 卽 理念 兩極化는 政治人들 사이에서나 搖亂할 뿐 有權者들은 中道派가 더 많다는 게 重要하다. 自身이 支持하지 않는 政黨을 더 싫어하는 情緖的 兩極化는 有權者 사이에서도 進行 中이다. 지난 2022年 大選이 바로 좋아하지 않는 候補를 떨어뜨리려는 ‘非好感 大選’이었다. ● 無黨派를 움직이는 大統領 支持率이념적 兩極化와 情緖的 兩極化를 굳이 區分해야 하는 理由는 解決策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萬一 有權者가 理念 兩極化 傾向을 보인다면, 政治는 相對陣營 有權者를 說得하는 戰略을 짜야 한다고 하상응 서강대 敎授는 2022年 論文에서 指摘했다. 只今껏 兩黨이 憎惡의 政治, 極端의 政治로 달려간 것도 잘못된 分析 탓이었다. 兩黨 極端的 選手들은 有權者들도 自己네처럼 이념적, 政治的으로 兩極化 했다고 믿고 相對陣營을 죽일 듯 攻擊에 汨沒했다. 이런 政治가 一部 極端的 有權者에게 影響을 미칠 순 있다. 野圈 元老 人士인 유인태는 李在明 被襲에 對해 “워낙 우리 政治가 서로 相對를 惡魔化 하면서 憎惡만 키워온 業報가 아닌가”하고 말했을 程度다. 只今처럼 有權者들이 理念 兩極化 없는 情緖的 兩極化를 보이고 있을 때는 解法도 달라야 한다. 與野는 極端的 政治를 멈추고, 政府는 더 많은 中道派와 無黨派를 보고 政策을 펴야 했다. 아무도 代辯해주지 않는, 그래서 부글거리는 ‘조용한 多數’의 要求를 反映해 大統領 支持度를 높여야 정국이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다. 왜 또 大統領 支持度가 나오냐고? 無黨派를 움직이는 것은 結局 大統領 支持率이어서다. ● 無黨派, 第3地帶냐 與黨 支持냐흔히 選擧는 構圖싸움이라고 한다. 巨大兩黨의 소금물에서 빠져나온 두 前職 黨 代表를 비롯해 梁香子, 琴泰燮, 또 ‘常識과 原則’ 팀 等이 第3地帶 合從連橫을 摸索하는 模樣이다. 이들이 ‘敵(敵)만 아니면 다 우리便’으로 한데 모여 記號 3番을 엮어낼지는 아직 모른다. 이 黨, 저 黨, 싸움當 싫은 中道派 및 無黨派가 제3당을 注視할 것이라는 期待도 적지 않다. 그러나 總選 結果를 左右하는 건 結局 大統領이다. 자꾸 論文을 들이대서 未安하지만 大統領 支持率이 上昇하면 野黨 候補의 當選 可能性은 떨어진다(문우진 아주대 敎授 2022年 論文). 더 눈에 띄는 것은 無黨派의 움직임이다. 이한수 아주대 敎授는 2023年 論文에서 大統領 支持率이 增加하면 與黨 對備 野黨 比率과, 與黨 對備 無黨派 比率은 有意味하게 減少한다고 했다(‘대한민국 有權者들의 政黨 支持 變化에 對한 巨視的 探究’). 大統領에 對한 亘的的 評價를 한 野黨 支持者들과 無黨派가 與黨에 對해 肯定的인 信號를 보이는 傾向이 있다는 2017年 이한수의 硏究 結果와 符合한다.● 어게인 2016年? 어게인 實用主義?2016年 第3黨의 登場을 復棋해볼 必要가 있다. 與黨인 只今의 國힘, 卽 새누리당은 ‘瞋縛(眞짜 朴槿惠) 對 非朴’ 公薦으로 大統領黨 變身을 꾀해 國民의 失望을 샀다. 運動圈 물을 빼는 듯했던 민주당은 比例代表 公薦 波動을 겪으면서 ‘도로 親盧(親文)當’으로 復活했다. 反面 安哲秀의 國民의黨은 創黨功臣들과의 葛藤에도 不拘하고 兩黨 公薦 싸움에 失望한 不動層이 몰려 院內 交涉團體 構成에 一旦 成功했다(오래가진 못했다). 尹錫悅 大統領은 잊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記錄은 남아있다. 2021年 12月 12日(공교롭게도 12·12다) 國힘 外延 擴張 機構로 만든 새時代準備委員會 懸板式에서 當時 大統領候補 尹錫悅은 “國民의힘도 實事求是, 實用主義 政黨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고 宣言했다. 그러면서 “選擧對策委員會에서 담기가 아직 쉽지 않은 中道와 合理的 進步를 (새時代準備위가) 다 包含할 것”이라고 强調했다. 그때는 그가 大統領 되면 正말 國民統合을 이뤄낼 수 있을 줄 알았다.용산에 들어가니 달랐을지 모른다. 지나치게 왼쪽으로 치우친 政官界 이념적 兩極化를 中間으로 옮기다보니 바른쪽으로 剛하게 끌어당긴 側面도 있을 것이다. 이에 對한 改善策으로 行政硏究院의 甓돌만한 最終報告書 ‘政治兩極火 時代 韓國 民主主義의 發展 方案’은 大統領 1人에 集中된 權力構造, 敵對的 共生關係가 特徵인 兩黨制를 바꾸는 改憲과 選擧制 改革 等을 提案했으나…지금은 늦었다. ● 大統領은 果然 無黨派를 돌릴 수 있을까정치 兩極化는 政治 엘리트만의 現象이라 해도 民主主義를 退行시키기에 深刻하다. 民主黨 소금氣가 묽어질 幾微는 斷言컨대, 없다. 國힘度 公薦管理委員會 構成을 보면 大統領黨으로 달려갈 兆朕이 보인다. 이 틈을 뚫고 中道·改革新黨의 第3地帶歌 꿈틀대는 狀況이다. 갤럽 最近 調査 結果 4月 總選에서 ‘政府 支援論’李 35%인 反面 ‘政府 牽制論’은 51%였다. 保守 有權者 65%가 與黨 勝利, 進步 有權者 83%가 野黨 勝利를 期待한 건 當然하다. 그러나 中道層에서 與黨 勝利(27%)보다 野黨 勝利(56%) 期待가 많다는 건 政府與黨이 가슴을 칠 일이다. 無黨層度 마찬가지다. 折半이 新黨을 包含한 野黨 勝利를 願했고 與黨 勝利를 願한다는 應答은 고작 15%다. 석 달 남은 總選, 尹 大統領의 支持率에 따라 結果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한동훈 國힘 非常對策委員長의 個人技만으론 不可能하다. 大統領은 果然 中道·無黨派를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인가. 김순덕 칼럼니스트·拷問 dobal@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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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歷史의 動力, 大統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올 수 있다

    더불어民主黨은 大統領 夫人 김건희 女史의 도이치모터스 關聯 特檢法을 그냥 넘기지 않을 態勢다. 어제도 萬一 尹錫悅 大統領이 拒否權을 行使한다면 모든 法的 措置를 檢討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數字에 弱한 나로선 金 女史가 結婚 前 株價를 어쨌다는 건지 알 道理가 없다. 親尹(親尹錫悅)系 아닌 議員들이 “檢察에서 탈탈 털었는데도 나온 게 없다”고 한 말을 믿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歷代 大統領이 家族 關聯 特檢을 拒否한 적 없다”는 민주당 主張에 윤재옥 國民의힘 院內代表가 “高 盧武鉉 前 大統領은 側近 非理 關聯 特檢 拒否權을 行使했다”고 反駁한 건 失手라고 본다. 側近은 家族이 아닌 데다 2003年 11月 25日 大統領이 拒否權을 行使하자 野黨인 한나라당(現 國힘)에서 與黨인 열린우리당만 빼고 다른 野黨과 共助해 열흘 만에 209 臺 54로 再議決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與黨은 “(大選資金 非理 隱蔽를 위한) 防彈特檢이자 (來年) 總選을 위한 政略特檢”이라고 野黨을 攻擊했다. 國힘이 只今 민주당에 대고 하는 말과 다름없다. 歷史의 아이러니다. 總選을 보름 앞둔 2004年 4月 特檢팀 最終 搜査 發表에서 特別히 밝혀낸 게 없다는 것도 特檢의 아이러니다. 그때와 다른 點은 있다. 特檢法이 再議決된 뒤 尹 大統領이 尊敬한다는 노무현은 “잘못했다, 未安하다 말하기 以前에 참 부끄럽다”고 言論 懇談會에서 거듭 謝過를 한 것이다. 勿論 ‘政治人에게는 側近이 怨讐(原水)’라는 말이 있지만 側近과 家族은 무게가 같지 않다. 그러나 國民 눈에는 大統領 家族도 公的 領域에 包含돼선 안 될 私的 領域에 不過하다. 設令 大統領 夫人이라 해도 國民은 權力을 委任한 바 없다. 公的 領域에 私的 關係를 앞세운다면, 그것도 一種의 腐敗다. 尹 大統領은 新年辭에서 “民生 現場에서 國民 여러분을 뵙고 苦衷을 直接 보고 들을 때마다 大統領으로서 무거운 責任感을 느꼈다”고 했다. “經濟 外交, 세일즈 外交는 바로 우리 國民의 일자리를 創出하는 일자리 外交”라고도 强調했다. 그런데 어쩌랴. 國民 記憶 속에 또렷이 남은 건 金 女史가 大統領 海外 巡訪길에 數十 名의 隨行員을 帶同하고 名品 숍을 訪問한 모습이다. 그러고도 韓國에서 뒤늦게 公開된 映像에선 300萬 원짜리 名品 가방을 賂物로 받았다는 疑惑을 남겼다. 昨年 12月 둘째 週 갤럽 調査에서 尹 大統領 職務遂行 否定評價가 62%였다. 그 理由 中 하나가 金 女史 行步(2%)다. 2022年 2月 문재인 當時 大統領 夫人 金正淑 女史의 옷 奢侈 問題가 불거졌을 때도 金 女史 行步는 不正評價 理由에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抑鬱하더라도 金 女史는 이미지 管理를 할 必要가 있다. 이달 中 尹 大統領이 가질 豫定인 新年 記者會見에서 “國民 여러분께 心慮를 끼쳐 罪悚하다”고 멋지게 代身 謝過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2부속실과 特別監察官을 設置해 金 女史의 조용한 活動을 補佐하겠다고 밝힌다면, 모질지 못한 우리 國民은 金 女史와 和解할 수 있을 것 같다. 低成長 兩極化 속에 江南 빼고 全 國民이 相對的 剝奪感으로 부글거리는 狀況이다. 尹 大統領은 新年辭에서 “公正한 社會를 만들기 爲한 努力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長官 聽聞會만 봐도 ‘父母 찬스’를 누리고 또 물려주며 世襲資本主義를 즐기는 얌체族이 수두룩했다. 大統領은 “自己들만의 利權과 理念에 基盤을 둔 牌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打破하겠다”고 했으나 檢察 出身 檢彼我·企財部 出身 모피아는 人士 回轉門을 타고 公務員年金까지 받으며 몇 바퀴씩 해먹는 것을 全 國民이 目睹하고 있다. 延世大 송복 名譽敎授는 只今 우리나라 高位 官僚, 上層 階級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이지 않아 國民이 絶望하고 있다고 했다. 英國, 프랑스 같은 先進國일수록 繼續 尊敬心을 誘發하는 사람들이 있고, 繼續 道德心을 높여주는 集團이 있어 歷史를 이끄는 動力이 나오는데 우리 社會에선 運 좋게 높은 자리 올라간 사람들이 惠澤받은 만큼 道德性과 責任倫理를 보여주지 못해 經濟도 더는 跳躍을 못하고 있다는 指摘이다. 그것을 尹 大統領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變革的 리더십의 要諦는 비전 達成을 위해 個人的 犧牲을 甘受하는 것이다. 샤를 드골 前 프랑스 大統領은 1969年 大統領職을 辭任할 때 大統領 年金조차 辭讓했다. 國家를 위한 奉仕에 代價는 必要 없다는 信念이 있어서다. 曺喜大 大法院長 같은 有能하고 깨끗한 人選을 繼續하는 것도 方法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公職社會가 달라지고, 保守勢力이 달라지고, 젊은 世代 눈빛이 달라지면서, 나라엔 새로운 活力이 넘쳐날 것 같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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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30年 前 ‘新世代’였던 그대에게, 安寧들 하신거죠?

    일할 땐 “프로”…삶은 “즐겁게”. 30年 前인 1993年 4月 동아일보 創刊 73돌 企劃으로 열 달間 連載했던 ‘新世代’ 시리즈 첫 回 題目이다. 좀 幼稚한가(맞다. 내가 썼다ㅠㅠ). 젊은 날 限껏 模樣을 내고 찍었던 빛바랜 앨범 寫眞을 들춰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當時 反應은 暴發的이었다. 東亞日報答紙 않게 톡톡 튄다는(^^;) 評價도 적지 않았다.73년생 한동훈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이 26日 委員長 受諾 演說에서 젊은 날 서태지와 아이들을 召喚했다. “同僚市民과 共同體의 未來를 위한 빛나는 勝利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只今이 바로 그 때입니다.” 92年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바로 只今이 그대에게 唯一한 瞬間이며 바로 여기가 但只 그대에게 唯一한 場所이다’라고 외친 ‘幻想 속의 그대’에서 따왔다는 後聞이다. ‘新世代 30周年 記念 挑發’을 세 줄로 줄이면 이렇다.① 新世代는 모든 靑春의 共通點 말고도 特異點이 있었다. ② 잘 자란 新世代가 한동훈이라면 退行的 그룹은 한총련이다.③ 主流가 되지 못했다는 新世代, 이제 다시 뛴다.● 나는 消費한다, 故로 나는 存在한다왜 30年 前 ‘新世代’였을까. 93年 新軍部 전두환-노태우 時代를 종식시키고 김영삼 大統領의 ‘文民政府’가 71%의 國政支持率로 벅차게 出帆했다. 91年 蘇聯이 무너졌고(좌파는 꼭 이걸 ‘現實社會主義’가 무너졌다고 한다) 92年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旣成世代에 文化衝擊을 던진 다음이었다. 美國선 베이비 부머 世代의 2歲, 도무지 알 수 없는 X世代가 登場했다. 生涯 前半期에 맞는 ‘첫 番째 引上’李 個人의 價値와 正體性에 決定的 影響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도 70年 戰後 經濟成長期에 태어났고 校服自律化와 民主化 속에 成長해 自意識과 欲望과 大衆文化에 眞心인, 生前 처음 보는 人類를 探究해볼 必要가 있었다. 시리즈 첫 回 副題가 ‘自由와 個性의 삶’이다. 太陽은 ‘나’를 中心으로 돈다고 믿으며 집에서나 學校에서나 甚至於 職場에서도 “나는 나”라고 主張했던 ‘韓國 最初의 個人主義 世代’가 그들이었다. 88서울올림픽과 檀君 以來 最大 好況期에 靑少年期를 보낸 新世代에게 哲學이 있다면 ‘나는 消費한다, 故로 나는 存在한다’. 그 무렵 新世代 女性을 사로잡았던 不朽의 廣告 카피가 있다. 채시라가 堂堂한 職場 女性의 모습으로 登場해 多數 女性들의 롤 모델로 登極한 廣告. ‘그女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 “내가 熱心히 사는 것이 正義(正義)” 時代를 不問하고 모든 靑春이 다 갖고 있는 特徵이라고 할 수도 있다. 5回 職場人 便에서 部下 職員에게 業務를 맡겼더니 첫마디가 “안 될 것 같다”여서 놀랐다는 한 팀長의 하소연. 요즘 MZ世代의 ‘3요’(이걸요? 제가요? 왜요?)에 쇼크 먹는 任員들 얘기와 恰似한가. “큰 正義(Great Cause)의 時代는 가고 이제 ‘내가 熱心히 사는 게 正義다’라고 믿는 日常의 正義가 定着되는 것이 新世代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當時 서울대法大 안경환 敎授는 法大에선 그게 工夫로 나타난다고 했다. “父母가 잘난 것도 내가 잘난 것과 마찬가지고, 그걸 活用하는 것도 能力이며 機會”라는 階級意識도 新世代는 스멀스멀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熱心히 工夫해 主流로 成長한 新世代 中 한 사람이 國힘 非對委員長 92學番 한동훈이 아닐까 싶다. 심규진 스페인IE大學 敎授는 最近 著書 ‘73年生 한동훈’에서 “한동훈의 能力主義 敍事엔 旣存의 能力主義가 가지고 있는 촌스러운 ‘짠내’, 同情과 눈물을 要求하는 新派가 없다”고 썼다. 人生이 祝福이고 惠澤 받았다고 여기는 旣得權層이라면, 어렵게 자랐다고 世上에 敵愾心을 갖는 그래서 反則과 脫法을 當然하게 여기는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 “한동훈의 確固하고 道德的이며 貴族的인 自意識은 自身보다 낮은 곳에 있는 者들에 對한 責任意識 卽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連結된다”고 심규진은 썼다. 責任意識만으론 不足하다. 同僚市民 앞에 보여주고, 政策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지 온 國民이 注視하는 狀況이다. ● 民主黨에 어른대는 97運動圈 한총련 新世代 시리즈에서 놓친 部分이 93年 봄 出帆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었다. 시리즈를 거의 專擔했던 내가 運動圈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총련이 너무나 마이너였던 理由가 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92年 單行本 ‘歷史의 終焉’에서 民主主義와 自由市場經濟의 勝利를 宣言했고, 極端的 左派 理念과 學生運動은 新世代 關心事와 距離가 멀었다. 제일기획附設 마케팅硏究所의 輿論調査結果 60%以上의 20代 젊은이들이 아예 政治는 自身의 關心事가 아니라고 했다. 젊은 世代라고 다 未來를 象徵하는 것도 아니다. 젊음의 爆發力으로 歷史의 退行을 몰고 오기도 한다. 1928年의 獨逸은 靑年들이 主軸이 된 나치 突擊隊가 바이마르 民主主義를 荒廢化시켰고 곧이어 나치 體制가 確立되면서 獨逸의 民主主義가 死亡했다고 신진욱은 ‘그런 世代는 없다’에서 指摘했다. 世界化 바람 속에서도 世上 變化에 눈감은 한총련은 出征式에서 “外勢와 獨裁에 맞선 전대협의 鬪爭精神을 繼承해 自由·民主·統一을 向한 百萬學徒…”를 외쳤다. 94年 ‘民族의 運命을 開拓하는 不敗의 愛國대오’로 標語를 바꾸면서 한총련은 더 외骨髓로, 强勁 主思派로 달려갔다. 97年 民間人을 프락치로 몰아 때려 숨지게 한 이종권 事件과 李錫 事件 뒤에 한총련 幹部들이 있다. 그들 中 一部가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의 側近을, 扈衛武士를 自處하며 來年 總選 公薦을 노리는 건 또 무슨 退行인가. ● 그들이 唯獨 민주당을 支持하는 理由93年 12月 시리즈 마지막은 座談으로 마무리된다. 큰 題目은 ‘社會變化 이끄는 前衛(前衛) 浮上-合理 바탕 旣存秩序 解體 性向’. 장상수 當時 삼성경제연구소 先任硏究員은 “企業도 新世代에 맞춘 制度를 導入하고 있다”며 “情報知識社會로 나아가는 未來社會의 흐름을 主導할 世代가 只今의 新世代”라고 했다. ‘主流 秩序의 顚覆者’ 서태지와 아이들이 ‘何如歌’를 發表한 것도 93年이었다. “芮芮芮芮예 야야야야야 예이예이예이 野이야/너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마음이/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문화 大統領’으로 君臨하던 그들이 96年 1月 突然 隱退를 發表했다. 그리고 97年 外換危機가 닥쳤다. 韓國사람 모두에게 IMF事態는 衝擊이었지만 當時 新世代는 더 큰 衝擊을 받았다는 主張이다. 大學 卒業 무렵 就業絶壁을 맞았거나 父親의 事業 失敗 또는 名譽退職으로 自身의 未來도 暗鬱해졌다는 敍事가 적지 않다.전례 없이 커졌다가 갑자기 抛棄된 欲望은 크나큰 精神的 내상으로 남는다. 特히 保守政府에서 IMF事態가 닥쳤고, 2009年 또 다른 保守政府에서 新世代가 만들었던 大統領 盧武鉉이 목숨을 끊었다(고 그들 一部는 믿는다). 新世代가 40代가 된 只今 唯獨 班(反)保守層, 民主黨 支持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敍事와 無關치 않다.● 그런 世代는 없다? 新世代는 살아있다? 모든 世代는 自己들 世代가 가장 不幸하다고, ‘낀세대’라고 믿는 傾向이 있다. 40代는 特히 더해서 586世代와 MZ世代 사이에 꽉 끼어 社會 主流로 뜨지 못하고 늙어가는 ‘낀낀세대’라는 소리도 나온다. 高齡化·停年延長 德에 86世代는 如前히 活動하는데 젊은 날 新世代였던 그들은 昇進도 늦고, 權限도 누려보지 못한 채 MZ世代에 밀려나고 있다는 不滿도 부글거린다. 中央大 신진욱 敎授(社會學)는 2022年 ‘그런 世代는 없다’고 아예 冊 題目에 썼다. 586으로 뭉뚱그려진 1960年代 生 中 4年制 大學에 간 사람은 12%에 不過했다. 政治權에선 86運動圈이 오랜 映畫를 누리는 바람에 한총련 出身 97(90年代 學番·70年代 出生)그룹이 오래 굶었는지 몰라도 요 몇年 새 집값 暴騰 때 資産 最上位層이 늘어난 쪽은 3040臺였다. 要컨대 世代 내 不平等과 階層化가 빠르게 進行되는 것이지 (젊은층) 꿀 빠는 꼰대世代와 얼떨결에 패싱 當한 낀세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分析이다. 둘러보면 맞는 말이다. 30年 前 386이 只今 모두 旣得權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30年 前 新世代가 現在 모두 相對的 剝奪感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當代의 두드러진 現象을 取材 報道하는 게 저널리즘이고, 마침내 30年 後 確實한 主流로 뜨고 있는 新世代를 目睹하고 있다. 30年 前 新世代로 熱心히 살아온 그대들, 그동안 安寧들 하셨던 거죠? 새해 福 많이 받으셔요! 김순덕 待機者 dobal@donga.com}

    •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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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73年生 한동훈, 假짜 民主化勢力 끝장내고 世代交替를

    老婆心에 告白하자면 나는 한동훈 法務部 長官과 一面識도 없다. 하지만 한동훈이 ‘尹錫悅 아바타’는 아니라고 본다. 檢察 때 일 잘해 尹 大統領 寵愛를 받았다지만 첫째, 한동훈은 술을 입에도 못 대기 때문이다. 둘째, 구리구리한 꼰대가 아니다. 셋째, 옷도 잘 입고 精製된 言語로 말도 잘해서다. 한동훈이 來年 總選 亡하게 생긴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을 맡을 模樣이다. 黨 代表를 둘이나 끌어내린 大統領室이 힘을 썼다는 소리가 나온다. 또 檢察 出身이냐 싶다. 안 그래도 ‘檢察 共和國’ 批判을 듣는 판에 그가 事實上 黨 代表인 非對委長을 맡으면 國民의힘은 龍山의힘이 되고 ‘尹心 公薦’도 KTX가 되리라는 展望이다. 더불어民主黨이 “한나땡”(한동훈이 나와 주면 땡큐) 외칠 만하다. 이미 政治人 뺨치게 進化한 한동훈이 果然 그럴까. 人요한 前 革新委員長은 檢察 出身도 아닌데 “나라님” 云云하며 大統領한테 한마디 못했다. 醫師지만 서울 講書區廳長 補選 失敗 理由를 誤診하고 용산 아닌 黨에 메스를 댔다. 能力主義로 武裝한 한동훈은 19日 公共善이 自身의 基準이라고 했다. 文在寅 政權 때인 2021年 初 한 인터뷰에선 尹 大統領과의 關係에 對해 “價値를 共有하는지는 몰라도 利益을 共有하거나 盲從하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했다. 누구처럼 虛言症에 걸리지 않았다면, 上命下服에 익숙한 檢察 出身 大統領 앞이라 해서 할 말을 못 하거나 할 일을 못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럴 自信 없으면 非對委長 자리는 맡지 말아야 한다. 한동훈을 위해 無難한 非對委長을 내세워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강감찬 아꼈다 壬辰倭亂 때 쓸 料量이겠지만 高麗가 亡하면 朝鮮도 없다. 當然히 壬辰倭亂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감찬 위하려다 高麗 王이 죽듯, 國힘이 總選에서 지면 大統領도 제 役割 못 한다. 國힘과 大統領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내 나라와 우리 아이들 未來가 抑鬱해서 하는 말이다. 문재인 當時 大統領을 宿主 삼아 나라를 親北·親中으로 몰고 갔던 86(80年代 學番·60年代生) 運動圈 出身들이 總選에 나올 態勢다. 全大協 벼슬의 前職 高官大爵 때문에 오래 굶은 97(90年代 學番·70年代生) 한총련 出身들은 李在明 民主黨 代表의 扈衛武士를 自處하며 現役 議員 물갈이 攻勢를 벌이고 있다. 1980, 90年代 民主化運動을 이끌었다는 그들은 假짜 民主化 勢力이었다. 國民 앞에선 “主思派와 關聯 없다” 主張했지만 北韓이 韓國民族民主前線(한민전) 名義로 내보낸 救國의소리 放送 指令대로 人民民主主義革命을 꾀했다는 게 범민련 南側本部 事務處長 出身 民境遇의 證言이다(최근 著書 ‘스파이外傳-南朝鮮解放戰爭 프로젝트’). 86그룹 맏兄이던 ‘돈封套’ 송영길 前 民主黨 代表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이” 꼰대질을 하자 “어릴 때 運動圈 했다는 것 하나로 數十 年間 市民들 위에 君臨했다”며 ‘後進 政治’를 세련되게 叱咤한 사람이 한동훈이다. 時代錯誤的 ‘×八六 政治’를 종식시키고 全大協보다 極端的 左派인 한총련의 政治 進入을 막으면서, 지긋지긋한 보스政治 팬덤政治를 끝내고, 멀쩡한 保守를 넘어 態度 또한 괜찮은 쿨한 保守로 가려면 73年生 新世代 政治人 한동훈이 ‘世代交替’를 들고나와야 한다. 關鍵은 용산이다. 大統領 夫人 김건희 女史 리스크를 더는 안고 갈 수 없다는 保守層 民心을 똑똑한 한동훈이 모를 理 없다. 1982年 張玲子-李哲熙 詐欺 事件 때 전두환 當時 大統領의 親舊 盧泰愚 體育部 長官은 長文의 泣訴便紙로 大統領 妻家 一族의 拘束과 公職 辭退를 說得했다. 1987年 6·29宣言은 全斗煥 脚本에 “閣下께서 호통을 쳐달라”는 盧泰愚 演出이 덧붙여졌다는 後聞이다. “權力과 國民의 利益이 配置될 때 힘들고 損害 보더라도 國民 便을 들라고 이 나라 法과 國民들이 檢事에게 身分 保障도 해주고 尊重해 주는 것”이라고 한동훈은 昨年 1月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一介 公職者’ 모두에게 適用되는 말이다. 自身의 말을 記憶한다면 便紙를 쓰든 ‘아름다운 뒤통수’를 치든, 한동훈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할 것이다. 總選 公薦도 公共善과 當選을 最優先으로 두면 答이 나온다. “大統領의 國民과의 疏通이 90點”이라는 奸臣 같은 龍山 出身에게 公薦 주는 일들이 벌어지면 總選 勝利는 勿論이고 한동훈에게 ‘별의 瞬間’은 없다. 多幸히도 2022年 尹錫悅의 大選 勝利를 展望했던 英國 이코노미스트는 2024年 展望에서 國民의힘이 總選 過半數를 確保할 可能性이 크다고 썼다.김순덕 待機者 yuri@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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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挑發] 皇帝의 아킬레스腱은 아내였다

    映畫 ‘서울의 봄’에 가려졌지만 리들리 스콧 監督의 ‘나폴레옹’도 퍽 政治的으로 읽힐 수 있는 映畫다. 勿論 스콧 驚異 韓國 狀況을 考慮했을 理 없다. 프랑스에선 英國 出身 監督이 意圖的으로 歷史的 事實과 다르게, 나폴레옹을 찌질하게 演出한 反(反)프랑스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란 評價도 紛紛하다. “映畫가 다큐멘터리냐?” 一喝했다는 監督은 最近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莫强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確信을 가진 人物이, 어떻게 아킬레스腱을 가질 수 있을까. 나폴레옹에게 아킬레스腱은 한 女子였다. 그래서 나는 核心을 파고들었던 거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關係라는.” “偉大해지고 싶겠지. 하지만 當身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 말해봐(You want to be great. You are nothing without me. Say it).” 유럽 人口 折半을 다스린 帝國의 皇帝가 나폴레옹이다. 그런 偉大한 男子를 손끝으로 가지고 놀던 唯一한 사람이 조세핀이었다. 날름거리는 촛불 아래 그 女子가 속삭이듯, 아니 씹어 뱉듯 이렇게 말하는데 불현듯 우리 大統領과 大統領 夫人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 “當身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작년 1月 MBC ‘스트레이트’ 가 放送되기 前, 當時 大統領 候補 夫人이었던 김건희 女史가 7個 內容에 對해 放送禁止 假處分申請을 했다. 안타깝게도 內容이 流出돼 버렸는데 그 中 하나가 이거였다. “우리 男便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完全 바보다.”내가 아는 많은 男子들은 껄껄 웃었다. 實은 自己도 집에서 萬날 듣는 소리라며 그게 무슨 대수냐고 했다. 참 속도 좋다. 男便이 집에서 라면 하나 못 끓여먹어 마누라가 챙겨줘야만 한다는 투정과, 國政을 책임지는 大統領 얘기는 같은 級이 아니다. 國政까지 大統領 夫人이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大統領이라면, 나라엔 災殃이 아닐 수 없다. 스콧 監督이 解釋하는 映畫 속 나폴레옹은 그런 모습이다. 戰爭터에선 “내 事前에 不可能이란 없다”고 외쳤을지언정 조세핀 앞에선 바보멍청이日 뿐이었다. 유럽 大陸을 征服한대도 사랑이라는 戰爭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敗者(敗者)다. 이건 歷史學者들도 認定하는 事實이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사랑하지 않았고, 離婚할 때야 비로소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고(조르주 보르도노브 ‘나폴레옹 評傳’). ● “가장 幸福한 記憶은 아내를 만난 것”尹錫悅 大統領은 올 4月 美國 國賓 訪問에 앞서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幸福한 記憶’을 묻는 質問에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어서 늦게, 50(살)이 다 돼서 제 아내(김건희 女史)를 만나 結婚하게 된 것이 가장 기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大統領 就任 1年이 다가오는 時點이었다. 그것도 美國 訪問을 앞두고 尹 大統領은 가장 幸福한 記憶으로 ‘大統領 當選’도 아니고(정권교체를 願했던 多數 國民은 救國의 心情으로 2番을 찍었다), 日本과의 關係 改善도 아니고, 김건희 女史와의 結婚을 言及한 거다. 이런 個人事 發言이 大統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해주는 側面은 있다. 하지만 이 境遇엔 ‘나의 아킬레스腱은 내 아내’라고 公表한 것과 다름없다. 尹 大統領에게 가장 큰 幸福을 준 사람이 大統領 夫人인데 누가 敢히 “輿論이 안 좋은데 金 女史와 妻家를 監視하는 特別監察官을 둬야 한다” “大統領祕書室에 金 女史 日程과 豫算을 擔當하는 第2附屬室을 따로 둬야 한다”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원래 이렇게 ‘짖어대라’고 祕書室長이 있는 거라고 도널드 럼스펠드는 强調했다). 大統領과 大統領夫人 活動이 別途 揭示되는 美國 白堊館 홈페이지와 달리 우리 大統領室엔 大統領과 大統領 夫人 寫眞이 함께 올라가 있다. 그래서 龍山에서 VIP1, VIP2 소리가 나오는 거다(심지어 VIP제로란 말도 들린다). ● 皇帝의 아내는 老鍊한 政治家였다조세핀은 어려서 占쟁이한테 프랑스 女王이 된다는 運命的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너무나 女性스럽고 優雅해 남들이 몰라봤을 뿐, 男子를 操縱할 줄 아는 조세핀은 老鍊한 政治家였다. 映畫에선 조세핀의 不貞 때문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遠征에서 부랴부랴 오는 걸로 나오지만 實은 나폴레옹이 召喚 命令도 안 받고 돌아올 것이란 情報를 警務代身 푸셰에게 傳해준 스파이가 바로 조세핀이었다(슈테판 츠바이크 ‘어느 政治的 人間의 肖像’).皇帝가 된 나폴레옹은 온통 皇帝뿐인 周邊國과의 關係를 위해 後繼者를 必要로 한다. 結局 ‘國民의 利益’을 優先해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와 離婚을 擇하는 것이다. ‘幸運의 별’ 조세핀과 헤어진 뒤 敗北를 거듭하다 죽음 앞에서 듣는 그 女子의 幻聽은 섬뜩하다. “내가 當身을 파멸시켰지. 다음 生엔 내가 皇帝가 되고 當身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야.” 實際로 조세핀은 第1統領의 아내로서, 皇帝非로서의 役割은 훌륭하게 해냈다는 게 歷史家들의 評價다. 앙드레 모로아는 ‘프랑스史’에서 파리는 조세핀에게 ‘勝利의 聖母’라는 稱號를 바쳤다고 했다. ● 金 女史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老鍊한 讀者들은 내가 왜 먼 길을 돌아왔는지 알 것이다. 檢察은 인터넷媒體 서울의소리가 김건희 女史의 名品백 收受 疑惑 事件을 告發함에 따라 15日 서울중앙지검 刑事1部에 事件을 配當했다. 도이치모터스 株價造作 事件 連累 疑惑에 對해소환 調査 없이 書面 調査만 했다는 檢察이 名品백 收受 疑惑이라고 바짝 搜査할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두고 볼 일이다. 昨年 9月 그 名品백을 받은 자리에서 몰래 찍었고 올해 11月 末 公開한 그 映像에서 自稱 統一運動, 普通 親北 活動家로 알려진 在美僑胞 牧師에게 金 女史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客觀的으로 前 政治는 다 나쁘다고 생각해요” “막상 大統領이 되면 左나 右나 그런 거보다는 眞짜 國民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金 女史는 過去 公開된 錄取錄에서 “내가 政權 잡으면 하하하 거긴 無事하지 않을 거야”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도 아니고, ‘男便이’도 아니고, ‘내가 政權 잡으면’이다. 그런 意識이 살아 있으니, 그리고 아무런 牽制도 받지 않으니 이 映像에서도 “저에 對한 關心이 어느 程度 끊어지면 積極的으로 南北問題 (解決에) 나설 생각”이라며 “우리 牧師님도 한番 크게 저랑 같이 일하자”고 昨年 9月 마치 大統領처럼 말한 게 아닌가 싶다. ● “드러나지 않게 잘하라고 했다”더니대통령 選擧 前에 했던 金 女史의 沙果를 全 國民이 記憶한다. “男便이 大統領이 되어도 아내의 役割에만 忠實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初 尹 大統領은 한 新聞과 單獨 인터뷰에서 “就任해 보니 配偶者도 할 일이 적지 않더라”며 “드러나지 않게 謙遜하게 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程度가 아니라는 것을 尹 大統領만 모르고 있다면, 個人的 喜劇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의 悲劇이다. 昨年 9月 ‘挑發’ -‘“우리 男便은 바보”…錄取錄은 尹錫悅 리스크였다’에서 나는 스페인 訪問 때 둘렀던, 財産申告 때 빼먹은 6200萬 원 짜리 半 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도 늦었지만 申告하고(아, 知人에게 빌렸다니 膳物 返還 倉庫에 保管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特別監察官度 任命해 ‘김건희 리스크’를 끊어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大統領의 愛妻症은…안타깝지만 죄다. 나폴레옹의 아킬레스腱이 조세핀이듯, 尹 大統領의 아킬레스腱은 金 女史다.▶[김순덕의 挑發]“우리 男便 바보”…錄取錄은 ‘尹錫悅 리스크’였나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反復한다. 來年 總選에서 폭亡하지 않으려면, 곧 構成될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會를 통해 쫓기듯 임명하지 않으려면, 特別監察官과 第2附屬室長 任命을 尹 大統領 스스로 速히 斷行하는 게 낫다. 그것이 映畫 속 나폴레옹처럼 國民의 利益을 優先하는 길이다. 김순덕 待機者 dobal@donga.com}

    •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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