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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업 國立公園管理工團 理事長|新東亞

인터뷰

권경업 國立公園管理工團 理事長

“智異山·雪嶽山만큼은 未來 世代에 讓步 必要”

  • 入力 2018-01-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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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頭大幹 되살려낸 代表的 山岳人 出身

    • 가이드 山行 ‘山大將’ 制度圈 吸收 主張

    • 國立公園 入場客 制限 公論化 必要

    • 山行은 하늘 가까이 가기 위한 構圖(求道)

    • 全國 最初 老人 無料 給食 等 나눔의 삶 30年

    권경업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박해윤 기자]

    권경업 國立公園管理工團 理事長 [박해윤 記者]

    벗어내린 初夜의 설레임
    紋亢羅 속옷 같은 숫눈이
    마등령을 덮었다
    부신 눈 밤 깊도록 앓게 한
    수줍던 그대 속살빛으로
    대포항 물 때 맞춘 달빛 내리고
    二十수 年 或은 더
    꼭꼭 품어온 까무러칠 듯 보드라운 그대 가슴
    쓰다듬던 無知한 내 손길이듯
    어디선가 눈을 쓸어 靈을 넘는
    거친 바람의 소리
    앓다가 쉬어버린 내 마른 목의
    當身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되어
    발시리고 손끝아린 새벽길 헤쳐
    설악골 비선대로 내려갑니다

    - ‘바람은 當身에게로’ 專門

    한겨울 夜間 山行의 感動을 이렇듯 ‘性(性)스럽게 담아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歲月 거친 山을 오르고, 詩心을 갈高닦기 위해 不眠의 밤을 지새웠을까. 

    이 詩를 쓴 권경업(67) 國立公園管理工團 理事長은 1970~80年代 釜山을 代表하는 山岳人이었다. 1990年 女性山岳人 남난희 氏와 함께 最初로 백두대간을 宗主, 日帝에 依해 지워진 ‘백두대간’을 復元해내기도 했다. 또한 ‘山岳視’라는 새로운 장르를 開拓한 詩人이기도 하다.

    執務室을 職員 休憩室로

    1月 9日 江原道 原州에 있는 國立公園管理工團 執務室에서 만난 그는 탄탄한 가슴, 날렵한 허리, 단단한 팔뚝이 일흔을 앞둔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山을 타는 사람은 亦是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몸이 좋다”고 하자 “한 달 넘게 山을 못 탔더니 몸이 무너지는 게 느껴진다. 職員들이 나를 뺑뺑이 돌리나 싶을 程度로 精神 못 차리게 바쁘다”라며 웃었다. 그는 2017年 11月 30日 就任했다. 

    “山에 못 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게 食事다. 집에선 아내가 챙겨주는데 여기서 혼자 살다 보니 規則的인 食事가 힘들고, 特히 과일과 菜蔬를 챙겨 먹기가 힘들다. 나뿐 아니라 지난해 4月, 우리 工團이 서울에서 이곳 原州로 移轉하면서 家族과 떨어져 사는 많은 職員의 苦悶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執務室을 職員 休憩室로 만들어 한쪽에 샐러드바를 만들려 한다. 누구든 와서 과일과 菜蔬를 低廉하게 마음껏 먹을 수 있게. 職員 福祉 次元이 아니라 當場 나부터 必要해 만들려 한다.” 



    그럼 執務室은. 

    “옆에 있는 작은 倉庫를 使用하면 된다. 그 程度 크기면 業務 보는 데 아무 支障 없다. 나 혼자 쓰는 執務室이 이렇게 클 必要 없다.” 

    月給 一部도 職員들과 나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와서 보니 非正規職이 많더라. 올 1月 1日 字로 非正規職 775名을 正規職人 無期契約職으로 轉換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다. 얼마 前 雪嶽山에서 勤務한 無期契約職員들을 만났는데, 15~20年이 지나도 月給이 거의 그대로였다. 進級도 안 되고. 月給은 國家가 法으로 定하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間接的으로라도 도울 方法을 찾고 있다. 于先 내 月給에서 每달 100萬 원씩 떼어 이분들 福祉를 위해서 쓰도록 했다. 비록 얼마 안 되지만 苦痛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五色 케이블카 設置 論難

    권경업 이사장이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에서 재난안전대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권경업 理事長이 北漢山國立公園 道峰事務所에서 災難安全對策에 對한 說明을 듣고 있다.

    山岳人이기는 하지만 國立公園 關聯 專門家는 아니다. 

    “文在寅 政府 모토가 國民 觀點에서 行政을 펴겠다는 것이다. 그런 面에선 50年 以上 國立公園을 利用해온 내가 適任者라는 周邊 勸誘가 많았다. 政府가 나를 임명한 건 그동안 생각했던 問題點들을 改善해보라는 뜻인 것 같다.” 

    落下傘 論難도 있었다. 

    “나는 巖壁登攀을 오래 했기 때문에 줄은 잘 타지만 落下傘은 탈 줄 모른다(웃음). 文在寅 大統領과는 一面識도 없다. 2016年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다는 건 吳보다. 아, 大選 直前 文 大統領이 釜山市民들과 함께 禁令産을 山行한 적이 있는데, 市民의 한 사람으로 參與하기는 했다.” 

    이제 業務 把握은 끝났나. 

    “들어와서 보니 이게 어마어마한 組織이다. 내가 알던 部分은 全體의 1%도 안 된다. 자칫 손을 잘못 대면 優(愚)를 犯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아주 조심스럽다.” 

    經營 原則이 있다면. 

    “自然 第一 優先主義다. 自然에도 主權이 있고, 이는 保護되어야 한다. 自然이 없으면 國立公園도 없다. 그렇다고 無條件 自然을 떠받들고 利用하지 못하게 하는 건 問題다. 適切하게 調和를 이뤄야 하지만, 꼭 自然 生態 中心으로 가야 할 곳들이 있다. 智異山과 雪嶽山이 代表的이다. 于先 이 두 곳만이라도 ‘特別自然保存地區’로 指定해 사람이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程度는 人間이 讓步할 수 있지 않을까.” 

    國立公園 안에 케이블카를 設置하는 것을 놓고 葛藤이 尖銳하다. 環境 破壞라는 主張과 오히려 더 큰 環境 破壞를 막고 步行 弱者의 觀光 權利를 높인다는 反論이 팽팽한데. 

    “雪嶽山 오색약수 케이블카 設置는 反對다. 只今 與件은 步行 弱者가 五色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갈 수도 없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高速버스 自體가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雪嶽山 頂上은 完全 망가진다. 이미 雪嶽山엔 權金城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다. 거기서도 秀麗한 景觀이 다 보인다. 그 程度로 滿足했으면 좋겠다.”

    권경업 이사장이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를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권경업 理事長이 雉岳山國立公園事務所를 찾아 職員들을 激勵하고 있다.

    權 理事長은 記者에게 “1年 동안 智異山과 雪嶽山 簡易 化粧室에서 收去하는 人分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300t이 넘는다. 드럼桶으로 1500統이다. 이걸 사람이 손으로 收去해 헬기로 실어 나른다. 費用도 費用이지만 헬기가 한 番 뜰 때마다 動植物이 얼마나 被害를 받겠나. 環境汚染은 또 어떻고. 우리처럼 國立公園을 人員 制限 없이 밤낮으로 出入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外國은 하루, 一週日, 한 달, 一 年 單位로 出入 許容 人員을 限定한다. 사람의 痕跡을 自然 스스로 淨化할 수 있는 水準을 維持하는 것이다.” 

    國立公園 入場客 數를 制限하자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公論化를 거쳐 國民的 合意를 얻어 施行해야 한다. 적어도 雪嶽山과 智異山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내야 한다. 지난 50年 동안 山을 다니면서 山이 變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目擊했다. 智異山 主稜線이 옛날엔 이끼가 쌓여 푹신푹신했다. 天王峯 꼭대기도 그랬다. 只今은 어떤가. 하도 많은 사람이 밟고 다녀 맨땅이 되었다. 비가 오면 土沙가 다 쓸려 내려간다. 智異山을 17時間 만에 縱走하는 사람들도 있다. 山岳마라톤을 하는 셈이다. 그런 건 다른 山에서 해도 된다. 只今 많은 科學者가 매달리고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智異山에 곰, 여우 等 滅種危機 動物을 復元하기 위해 努力하고 있는데, 밤새도록 사람들이 다니면 動物들이 適應하겠나.”

    國立公園의 날 制定

    우리나라에 國立公園이 처음 指定된 지 50年이 되었다. 그리고 國立公園管理工團이 만들어진 지 30年이 되었다. 現在 22個 國立公園이 있다. 全 國土의 6.6%에 該當하는 規模다. 國立公園은 그동안 우리나라 自然을 保護하고 管理하는 데 많은 寄與를 했다. 

    日帝强占期, 産業化 過程에서 毁損됐던 自然이 많이 復元됐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숲은 比較的 많이 復元됐지만 아직 完璧하게 復元된 게 아니다. 아름드리 枯木 안에 다람쥐, 오소리가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데 그 程度가 되려면 100年쯤 더 흘러야 한다. 只今 우리나라 山은 山이 아니다. 四方이 道路로 막힌 섬일 뿐이다. 산이 이어지지 않고 조각조각 나 있다. 如前히 山짐승이 살기 힘들다. 智異山 半달곰이 지난해 6月 慶北 金泉 修道山自然休養林에서 發見됐다는 건 아주 鼓舞的인 일이다.” 

    國立公園管理工團은 어떤 일을 하나. 

    “國立公園을 管理·保護하고, 訪問客들 安全을 지키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待避所는 勿論 海拔 1000m가 넘는 山 要所要所 據點에 專門 人力을 配置해 遭難客이나 負傷者를 救助하는 일을 한다. 이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非朴을 하며 待機하고 있다 狀況이 發生하면 現場으로 바로 달려간다. 며칠 前에도 據點 勤務者가 登山客을 살려냈다. 正말 重要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또한 種復元技術員에서 곰, 여우, 늑대, 山羊 等 滅種危機 動植物 復元事業을, 國立公園硏究院에서 철새硏究센터, 海洋硏究센터 等을 두고 國立公園 保全 方案을 硏究하고 있다. 毁損된 自然 地形 復元 硏究도 한다. 한마디로 더 좋은 自然을 後孫에게 물려준다는 使命感 하나로 僻地 奧地에서 일하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國立公園의 날’을 制定해 國民 여러분이 이분들을 激勵하고 慰勞했으면 한다.” 

    새로 構想하는 事業이 있다면. 

    “2015年 統計廳 資料에 따르면 한 달에 한 番 以上 山에 가는 人口가 1300萬 名에 達한다. 이들 中에는 사람을 모아 버스를 貸切해 가는 가이드 山行이 많다. 여기엔 꼭 ‘山大將’이라 하는 引率者가 있다. 登山客의 安全과 生命을 책임지는 役割을 하는 山大將을 制度圈 안으로 품어야 한다.” 

    資格證 制度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老人을 돌보는 일도 老人療養師 資格證을 取得해야 한다. 國民의 生命과 安全을 擔保해야 하는 山大將의 能力도 모르고 無條件 따라가는 건 問題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事故가 많다. 이제는 그들을 制度圈 안에 품어 體系化하고 國民의 安全을 지키고 自然을 保存하는 尖兵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올해 草案을 잡아보려 한다. 잘 活用하면 일자리 創出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다.” 

    力點을 두고 있는 또 다른 事業이 있다면. 

    “北韓 地域의 自然, DMZ(非武裝地帶)에 關心을 기울이려 한다. 어느 날 덜커덕 統一이 되면 北韓 地域의 自然을 지켜낼 수 있을까? 短時間에 毁損돼버릴 可能性이 크다. 한番 毁損된 自然을 復元하려면 數百 年이 걸린다. 統一이 되기 前에 保存 計劃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未來를 위해서 只今 미리 準備해야 한다. 硏究院에 北韓과 DMZ 關聯 팀을 꾸리라고 指示했다.”

    맨발의 셰르파가 준 敎訓

    16歲 때부터 山에 오른 權 理事長은 1977年 1月 史上 두 番째로 雪嶽山 土旺山 氷壁登攀에 成功하며 韓國 山岳界에 이름 석 字를 刻印했다. 1982年엔 地方으로는 最初로 釜山學生山岳聯盟팀을 이끌고 히말라야 派빌鳳 登頂에 成功했다. 그는 “히말라야 登頂이 내 人生의 큰 轉換點이 됐다”고 말한다. 

    “當時 遠征 費用이 1億5000萬 원이었다. 只今으로 치면 50億 원쯤 되는데, 그걸 釜山地域 事業街 金東仁 社長이 支援했다. 腦卒中으로 쓰러진 後 每日 登山으로 健康을 回復한 분인데, 산이 새 生命을 줬으니 報答해야 한다며 山岳人을 後援했다. 그분 도움으로 登頂을 떠났는데, 250名의 셰르파를 雇用했다. 그런데 모두 맨발로 數十 kg 짐을 지고 며칠 동안 雪山을 오르는 거다. 그렇게 받은 돈이 하루 1달러가 채 안 됐다. 잠깐 산 頂上에 서는 喜悅을 맛보기 위해 쓰는 50億 원의 巨金을 이곳 住民들의 住居, 敎育, 醫療 環境을 바꾸는 데 쓰는 게 더 보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社會事業에 뛰어드는 重要한 契機가 됐다.” 

    그 後 釜山 구포에서 食堂을 차린 그는 어느 程度 安定이 되자 1989年부터 全國 最初로 老人 無料 給食을 始作했다. 혼자 하던 慈善事業에 後援者들이 생겨났다. 非營利團體 ‘아름다운사람들’은 會員만 3000名이 넘는다. 

    “처음엔 먹고살려고 장사를 始作했다. 그러다 빚도 다 갚고 富者는 아니더라도 餘裕가 생겨 집사람에게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김동인 氏에게 報答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한다면 이 社會가 나아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1年엔 네팔 체풀룽에 慈善病院 ‘토토 하얀病院’을, 2015年과 2017年엔 라오스 奧地 2곳에 慈善病院 ‘與民樂 女性兒童病院’을 各各 設立했다. 

    “1982年 히말라야 登攀 때 下山하던 中 셰르파가 크레바스(氷河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져 목숨이 危重한 狀況이 되었다. 어렵게 救助했는데, 그가 품에 간직하고 있던 寫眞을 꺼내더라. 우리가 頂上에서 찍은 寫眞이었다. 引證 寫眞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自己 목숨을 걸고 지켰던 거다. 네팔 慈善病院은 그에 對한 報恩이었다.”

    山岳人과 登攀家

    백두대간을 처음 縱走한 것으로 有名하다. 

    “1987年 山經表라는 古書가 發見됐다. 옛날 우리 祖上들은 地圖가 없었다. 그래서 山을 中心으로 地理를 따졌다. 交通, 物資交流 等 우리네 삶과 密着한 山줄기를 한 個의 臺諫, 한 個의 停刊, 13個 靜脈으로 分類한 게 ‘山經表’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山脈은 日帝가 全國 土地 測量을 하면서 地質을 基準으로 分類한, 우리 삶과는 無關한 槪念이었다. 山經表 發見을 契機로 우리 山줄기를 復元하자는 意味에서 가장 큰 山줄기인 백두대간을 縱走하게 됐다. 縱走하며 나는 詩를, 남난희 氏는 紀行文을 쓰며 世上에 알렸다.” 

    愚問이지만, 山을 오르는 理由가 있다면. 

    “나는 山岳人과 登攀家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登攀家는 오직 頂上에 서기 위해 山을 오르지만 山岳人은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山에 오른다. 우리 先祖들은 構圖(求道)의 過程으로, 좀 더 높은 精神世界에 이르기 위해 山에 올랐다. 내가 自然이 되고 自然이 내가 되는 山行이다. 山꼭대기까지 올라가도 좋고 그저 멀리서 産을 마음에 품고 돌아와도 좋은 거다. 反面 西歐 알피니즘(alpinism)은 오직 頂上에 旗발 꽂으려 山에 오른다. 그동안 우리 山行 文化가 알피니즘에 埋沒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게 山과 하나가 되어가는 過程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은 詩가 하나둘 묶여 18卷의 詩集이 되었다. 그의 山行管을 잘 보여주는 詩가 있다.

    오르는 것이 아니네
    내려오는 것이네
    굽이굽이, 두고 온 事緣만큼
    해거름 길어지는 山 그리메
    막燒酒 몇 盞, 목젖 쩌르르 삼키듯
    그렇게 마시는 것이네
    거기 묵김치 같은 人生 몇 쪽
    우적우적 씹는 것이네
    지나보면 世上事 다 그립듯
    돌아 보이는 稜線길
    그게 즐거움이거든

    - 時 ‘登山’ 專門

    ‘자벌레’ ‘갈참나무’의 心性

    권경업 이사장은 사회활동을 통한 나눔이 산이 일깨워준 교훈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권경업 理事長은 社會活動을 통한 나눔이 산이 일깨워준 敎訓을 實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박해윤 記者]

    ‘弄심마니’라는 團體도 만들었던데. 

    “1987年 小說家 박인식·최성각, 山岳人 남난희, 演劇人 최유진 等 山을 좋아하는 10餘 名이 모여 當時 滅種危機人 山蔘을 山에 심어 未來 世代에게 傳해주자고 意氣投合했다. 30, 50, 100年 後에 우리가 심은 삼을 登山客이든 藥草꾼이든 누구든 캐면 우리 社會의 富가 커지는 거니까 좋은 일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只今은 參與者 數字가 150餘 名으로 늘었고, 그 동안 심은 3年根이 12萬 週가 넘는다. 그 옆엔 山蔘 씨앗도 함께 뿌렸다. 우리가 심은 德에 이젠 山蔘이 滅種 段階를 넘어 늘어나는 趨勢라고 한다. 會員들 모두 이 땅에 한 가지는 寄與했다는 自負心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30周年 行事도 치렀다.” 

    社會活動을 오래 했으니 政治 勸誘도 많이 받았을 텐데, 그동안 政治에 발을 들이지 않은 理由는. 

    “아버지는 大地主의 아들이었지만 當身의 安危를 생각하지 않고 平生 나라의 獨立을 위해 全 財産을 바치고 監獄에도 가셨다. 光復 後에는 進步運動을 하며 苦楚도 겪으셨다. 어머니가 行商을 하며 어렵게 5男妹를 키우셨다.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를 怨望하기도 했지만 커서는 가장 尊敬하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뭘 할 수 있을까 苦悶하다 떠올린 게 남을 돕는 거였다. 그것으로 滿足하고 幸福하다.” 

    그러면서 그가 ‘山行’이라는 自身의 詩 한 篇을 들려주었다. 

    “길섶, 키 낮은 들꽃에게도 / 고개 숙이고 / 敬拜의 허리를 굽히는 이여 //꽃香氣는 當身을 위한 것입니다.” 

    頂上만을 向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 고개를 숙일 때 비로소 보이는 自身보다 낮은 便에 있는 存在들을 向한 그의 關心과 愛情, 그리고 이를 통한 幸福이 傳해졌다. ‘아침이슬 한 방울도 무거워할’ 자벌레의 여린 心性과 ‘키 낮은 것을 위해 / 한여름엔 (茂盛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고 / 한겨울엔 (잎을 떨궈) 볕을 더 들이려는’ 갈참나무의 베푸는 마음을 함께 가진 權 理事長이야말로 이 時代의 참 山岳人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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